지난 5일 넷플릭스에 올라온 에코-스릴러 영화 '센강 아래'(Sous La Seine, 영어 제목은 Under Paris)를 유엔이 제정한 세계 해양의 날인 8일 흥미롭게 지켜봤다. 영국 BBC는 일본 영화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흥행 이후 또다시 등장한 저예산 비영어권 몬스터 영화를 통해 어떻게 대중적인 오락거리가 성공을 거두는지 눈여겨 봤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은 파리 센강 아래 카타콤에 사는 식인 돌연변이 청상아리 릴리트(Lilith)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강물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이들을 골탕먹이는 이 영악한 청상아리 는 현재 넷플릭스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여름 할리우드는 '폴 가이'나 '매드맥스 퓨리오사'같은 블록버스터들의 흥행 고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아마도 미국 영화 제작자들은 프랑스의 사례에서 한두 가지를 배워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성공 요인으로 BBC 컬처의 케이른 제임스는 마블과 DC의 지나치게 복잡한 세계관 강요에 지치거나 "숙제가 아니라 오락거리"를 바라는 관객들에게 장비를 모두 걷어냈으면서도 효과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영화는 '센강 아래'에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1위를 차지했다.
'센강 아래'를 관람하는 이라면 30층 건물 높이의 고질라 같은 것은 기대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어야 한다. 예산 절감 효과와 카메라워크로 영화관보다 TV 스크린에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는 펄프 B급 영화다. 그리고 릴리트 자신은 '백 투 더 퓨처 3편'의 마티 맥플라이가 사진을 찍던 홀로그래픽 상어보다 한결 그럴 듯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배경으로 파리의 다리들과 도로들을 보게 되면 관객의 상상력은 영화 대부분의 장소에 이미 내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자비에 장스 감독은 아무리 돈을 들이지 않고 촬영했더라도 군중의 혼란 장면들이 중요했다고 인정했다. 주인공 *의 귀에서 피가 뿜어져나오는 장면은 관객들이 바닷속 깊은 곳으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잠수부의 홍염은 그의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가던 상어 떼를 밝게 비쳐준다. 그는 또 러닝 타임 대부분에 릴리트를 스크린에서 떨어뜨려 신비한 면모를 간직하는 데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그 상어가 카메라를 향해 헤엄칠 때 흐릿한 물 속에서 그림자처럼 그려지곤 했다.
이와 별개로, 몇몇 상어들은 살아남기 위해 계속 헤엄쳐야 하는 것처럼, 장스의 영화는 군살이 없는데(lean) 이는 한 숨 돌리기 위해 멈추지 않는 에코 스릴러란 뜻이다. ' The Artist'의 베레니스 베조가 추적장치를 상어들에 달아 그들이 환경오염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연구하는 해양생물학자 소피아로 얘기를 끌어간다. 이런 류의 재앙 영화에 늘 그렇듯이 소피아에겐 트라우마가 있다. 3년 전 북태평양 하와이 근처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아래에서 릴리트를 만났는데 불과 석 달 만에 키가 2.5m에서 7m로 자라난 것을 보고 세포를 떼내려다 남편을 비롯해 동료 다섯 명을 모두 잃는다.
소피아에게 처음 릴리트가 센 강 아래 와 있음을 알린 이는 그레타 툰베리처럼 기성 세대가 자신들의 미래를 포획해 착취했다고 믿는 MZ 세대 해양 환경운동가다. 민물에서는 상어가 살 수 없다고 확신했던 소피아는 릴리트의 행동 양태를 보고 그녀가 완전히 적응했음을 깨닫는다. 더욱이 릴리트는 카타콤 수로 안에서 2세를 기르고 있었다.
소피아는 강 순찰대 아딜(나심 리예)를 도와 이 야수를 사냥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MZ 환경운동가들은 상어들을 인류가 바다에 저지른 잘못의 희생양으로 보고 릴리트를 바다로 유인해 풀어주려 한다. 얄팍한 느낌은 있지만 이미 '폴 가이'와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보다 더 깊이를 갖췄다. 여기에 파리올림픽의 테스트 대회로 철인 3종경기를 성공시키기 위해 조용조용 넘어가려는 파리 시장(안느 마리빈)의 정치적 야심이 끼어든다.
사실 관객들은 뻔히 결말에 수많은 관중 앞에서 수십 명의 남성이 상어가 우글거리는 센 강을 헤엄쳐 건널 것을 모두 알고 있다. 몇몇 관객은 대중의 안전보다 홍보에 더 신경을 쏟는 시장이 소개될 때 씩 웃을 것이다. 이 시장은 '고질라 마이너스 원'처럼 '센강 아래'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조스'(1975)에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내는 명확한 신호다. '조스'는 '스타 워즈'가 나오기 전 한여름 블록버스터의 원조 격이었다. 하지만 50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 할리우드에서의 흥행 성공은 더 이상 만화책 캐릭터나 엄청난 물량 공세와 특수효과에 의지하지 않아 흘러간 얘기가 됐다.
따라서 아마도 미국 스튜디오 임원들은 프랑스와 일본 상대로부터 배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그냥 자신들 역사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겠다. 그들은 어떻게 디지털 이미지보다 컨셉트를, 신화를 나열하는 것보다 기둥 줄거리를, 안주하려는 슈퍼 스타보다 배우들을 열심히 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조스' 같은 대박을 다시 터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 릴리트가 말하는 것처럼, 살아남기 위해선 적응해야 한다.
100년 만에 올림픽을 치르는 프랑스 파리가 개막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있다. 이런 영화를 감내하는 것도 부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 서울 한강에서도 철인 3종경기가 열려 오세훈 시장이 열심히 헤엄치고 달리며 자전거 바퀴를 돌렸다. 오 시장은 "한강에서도 안심하고 수영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해 영화 속 파리 시장과 똑같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물론 난 절대 한강 물에 들어가지 않을 거다. 며칠 전 봉준호 감독의 '괴물' 조형물도 10년 만에 철거됐다지만 난 한강 수영, 사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