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연습 겸 생각 정리 겸, 일주일에 한 번씩 개소리/분석 이라는 걸 해볼까 합니다..
이런 류의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아니시라면 글이 약간 기니까 패스하시는 것이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간 개소리 2013년 4월 첫째주
아(기공룡)웃사이더 둘리 -1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03년, 최규석 작가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라는,
둘리를 각색한 한 단편 만화가 나왔다. 둘리와 아이들의 미래를 그린 이 만화의 내용은 원작을 본
사람들이 상상조차 못할 만큼 우울하고 어둡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공장에서 일하던 둘리는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려 호이를 하지 못하고, 고길동은 도우너에게 사기를 당해 홧병으로 사망하며,
고길동의 아들 철이는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도우너를 나사에 팔아넘긴다.
(새삼스럽지만 도우너는 외계인이다.) 희동이는 어렸을 적 더러운 성질을 못 버려 허구헌날 싸움박질로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또치는 동물원에서 수컷 타조들에게 몸을 팔며, 마이콜은 밤무대에서 노래를 한다.
어린이들의 만화 아기공룡 둘리가 어떻게 이토록 어둡고 우울해질 수 있는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은 원작 속에 모두 들어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01D44A516032310F)
사실 둘리는 명랑만화였던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리는 명랑만화의 탈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명랑만화의 가면 아래에 감춰진 둘리의 진짜 얼굴은 아마도 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한 아웃사이더로서의
슬픔과 외로움일 것이다. (외로운 둘리라는 말은 주제가에도 나오지 않는가.) 최규석 작가가 한 일은
원작에서 감춰진, 하지만 강하게 느껴지는 어두운 측면을 극단까지 끌고 간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는 자신의 각색을 통해 둘리의 가장 핵심적인 정서를 포착한다.
둘리와 아이들이 "어차피 불청객들"이라는 또치의 대사는 둘리에 나오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공유하는 치명적인 공통점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43964E5160326E16)
둘리뿐만 아니라 둘리의 주변에 있는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사회의 불청객들이다. 둘리의 미래가 밝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멀쩡한 20대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1억년 전 과거에서 빙하타고 내려온 공룡에게
과연 사회적 기회라는 게 존재할 것인가? 그렇다면 깐따삐아 별 왕자에게는? 서커스에서 탈출한 타조는?
흑인 혼혈아 같이 생긴 가수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상황이 훨씬 낫긴 하지만 심지어 희동이마저도
부모와 떨어져 고모부 집에 얹혀사는 신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모두 기회의 평등이라는 울타리 밖에 존재하는 캐릭터들이다. 예를 들어보자.
둘리가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 한들, 대학에 갈 수 있겠는가? 아마 입학전형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입학전형이 바뀌어서 대학에 간들, 제대로 된 대학생활이 가능할까? 아마 몇몇 학부모와 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서있을 지도 모른다.
“공룡과 같은 대학이 웬말이냐? 인간이 먼저냐 공룡이 먼저냐?”
둘리가 짤막한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된 것도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둘리는 피구왕 통키 같은 전형적인 소년 만화, 즉 노력을 통해 난관을 헤쳐 나가고 점점 성장하여
마지막에는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구조를 갖는 것이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둘리에겐 노력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둘리가 죽어라 노력해서 피구의 신이 된다 하더라도,
공룡이라는 이유로 선수자격이 박탈될 가능성이 십중팔구이다.
둘리는 아기공룡일 때만 명랑만화일 수 있다. 그들에겐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둘리가 즐거운 만화가 되기 위해선 시간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성장하는 순간, 설령 초등학교라도 가는 순간, 그리하여 비주류들이 주류사회와 마주하는 순간,
만화는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와 같이 급격하게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2부는 구체적으로 원작 둘리에서 나타나는 전복적 성향에 대해 쓸 예정인데.. 이딴 글을 2부나 끌게 됐네요 ㅠㅠ
첫댓글 흐음 흥미롭네요
흥미롭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오 재밌겠네요. 이 작가님은 왠지 그런 정서를 잡아내는 데 탁월할 거란 느낌이 팍팍 듭니다
이분 만화가 다 재밌죠. 이 둘리를 책으로 봤을때 정말 감탄을 하면서 봤는데^^
저도 이 둘리 처음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ㅋㅋㅋ
딸 아이가 여섯살이고, 최근에 둘리를 엄청 좋아하다보니,덩달아 같이 보게 됐는데.
본문에 반론하고 싶은 내용이 조금 있긴 하지만. 괜히 불필요한 얘기같고. ^^;;
둘리라는 만화 속에 애들이 환장할만 소재들로 가득 차 있더군요. 공룡. 귀신. 외계인. 동물. 유니콘. 마녀.. 등등. 종합선물센트 같은 느낌이에요.
(근데 새로 각색된 버전이더군요. 옛날버전과는 확실히 차이나는 에피소드도 좀 있고, 원더걸스도 나와서 노바디를 부르고. ㅋㅋㅋ)
반론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런데 새로 각색된 버전의 둘리는 원작 둘리에 비해 쓸쓸한 정서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는 만화가 재미 위주로 확연히 돌아선 것 같더군요. 원작 둘리에는 웃기게 만드는 동시에 연민을 자아내는 힘도 상당했다고 봅니다. 그 연민을 자아내는 근본적인 힘이 둘리의 캐릭터들이 하나 같이 고향을 떠나온 디아스포라, 아웃사이더 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구요. 그래서인지 각색된 둘리는 예전 둘리만큼 어른이 되서 보기엔 재미가 떨어지더군요. 제 향수 때문에 예전 것이 더 재밌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지만요
마음에 와닿네요. 이어서 부탁드립니다.
마음에 와닿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개소리도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최규석 님 작품이지요 명작
네 명작이죠!!
저두 둘리를 5살조카랑 같이 보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구요...제가 둘리를 너무좋아해서 소장중인데 이 둘리를 조카랑 같이 보다니... ^^다음편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