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
그것은 문학이었습니다.
만나서 밥 먹고 남 이야기하 하는 일회용 만남이 아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참 나를 찾아 나서는 길이었습니다.
밀봉된 나와 만나는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쓰는 과정을 통해 사물과 세상의 질서를 재구성하여
자기 삶의 질서를 만드러가는 연금술과 같은 길이었습니다.
큰 수술을 하고 몸 추스를 시간도 없이 빗살의 멘토가 되겠다고
나선 이민숙 선생님. 마음처럼 따라와 주지 않는 우리를 당근과 채찍으로
이끌어주시며 스스로 고생을 자초하시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하며 시어머니 모시고 사시는 김영아 언니
안구건조증으로 책 보기조차 힘들텐데 차라리 그 시간에 부족한 잠이나 더 자는 게 낫지 않을까.
모두가 퇴근하는 시간에 네 살 된 딸 향인이를 업고 집을 나서는 양미자 언니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배우거나 한 듯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을 것입니다.
친정 엄마 요양원 모시고 마음 둘 곳 없는 오미숙 언지
어수선한 마음 가라 앉히려 산이라도 다니지
시댁 갈 일이 많고 네 명 남자 틈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김지란
좋아하는 숲이나 다니면서 스트레스 풀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시어머니 모시고 자궁 수술까지 한 윤선미
시집살이에서 고작 빠져 나온 것이 시 공부라는 곳이려니
사춘기에 접어든 쌍둥이 아들 키우는 임현정
자기 영역 넓혀가는 아이들 바라보며 고민도 많았을 텐데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새내기 학부모 이수진
교실 청소와 도서 도우미 등 아이들 뒷바라지에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지 않을까
멀리 이사 갔다는 핑계로 문학에 소홀히 할만도 한 송경숙 이연욱 윤재남
그저 문학이 좋아 이제 막 발을 담근 장혜영 언니
모두들 이런 저런 사연들이 있지만 목요일 밤이며 샘뿔로 모이는 이유는
분명 무의식적으로 이끌게 하는 문학이 있다는 사실
그렇게 만나서 우리들은 문학 이야기도 밤을 지새우곤 하였습니다.
<윤재남 님의 권두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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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김영아
빈털털이가 된 우리는 원룸 주차장 달 방으로 들어간다
부엌 창문 너머 텃밭에 유채꽃이 반가운 걸 보니
가난이란 불편할 뿐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 줄 용기가 움트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탕진을 한 그이가 야간 일을 나선 한밤중에
보일러가 터져 침대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비몽사몽 바닷 속에는 암울한 공포가 먼지처럼 떠다닌다
썰물 같은 자리에 불가사리처럼 나부러진 잡동사니
모두 버리고 나니 염전처럼 텅 빈 자리엔 젖은 마음들만 남았다
땡볕과 바람과 고슬고슬 말라가는 짜고, 쓴, 닷맛
돌아보면 아득히 멀리 있고 눈 감으면 가슴속에 있는 소금 창고
자귀나무
오미숙
복숭아 밭머리에 아버지가 심은 자귀나무
연분홍색이 어느새 누르끄레해졌어요
장날이면 술주정에 저녁밥상을 엎고
다음날 밥상에 오른 잔소리에
웬 말이 그렇케 많노 고만해라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지만
어김없이 또 취한 당신
언제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처럼
마법을 부리는 듯 했어요
당신 손에 기어이 뜯겨 나가는 풀포기
매끈해진 밭뙈기에
자식 같은 복숭아가 복슬복슬 달렸지만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이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가난이라는 옹이
쓰라림으로 부르는 노래 한 가락,
덩실덩실 춤추다 그만 옆집 담장이라도
넘어갈 것 같아 조마조마 한 날들
어느 날 당신은 한 없이 나약해지더니
격렬한 삶도 멈춰버렸지요
그늘이 되어준 나무 아래
게으르면 못쓴다 와 대답이 없노
꾸짖는 아버지의 목소리 들리네요
아버지 거기
자귀나무 피었나요?
내 안의 회색빛 사진첩
윤재남
하얀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언제나 한 채널에만 열려 있는 라디오
형광등 스탠드는 희미한 빛을 넌지시 건넨다
서랍장에는 일기 속의 꿈들이 꿈틀거리고
옷장 속 가득한 옷들
총애의 기억으로 외출을 기다린다
오래된 청소기는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화분에서 커가는 행운죽
파란 하늘 아래 놓아주고 싶다
화장대 위에는 사랑을 불러올 수도 없는 화장품들
대출 기한을 넘긴 저자들의 생각이 쌓여있다
5분 먼저 가는 벽시계 아래
레일바이크를 타고 가는 사진 속 가족
저마다 다른 곳을 바라보며
열심히 폐달을 밞는다
깡통
윤선미
벌건 쥐불 신나게 돌리기
깡통 가득 오곡밥 빌어 먹고 날 새기
땅땅땅 참새떼 쫒아 내기
깡통엔 즐거운 추억이 담겨 있다
마우스 크릭 몇 번에
은행대출과 아버님 퇴직금은
만져보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
은행엔 신용불량자라는 블랙리스트
우편함엔 쌓여만 가는 빚 독촉장
낮이면 무료급식소를 떠돌고
밤이면 신문지 덮고 잔 듯 만 듯
주식은 예고없이 깡통을 채웠다
매일 한강다리 왔다 갔다 한다는
한 마디에
검게 탄 피로 채워진 자궁
멈추지 않은 각혈 참지 못해
딱딱해져 버린 날,
내 몸에 깡통된 아기집
심장은 기어이 숨쉬기를 건너뛴다
없으면 없는 대로
보듬고 채워가며 살면 되지
우린 닮은 꼴
생일
이연욱
종갓집 맏며느리 십오 년에
내 생일은 없다
생일인지도 모르고 지내던 오후
딸의 남자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어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다영이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아이를 낳다보면 엄아 마음을 안다고 했다
미역국을 받아 먹었어도 나는 모른다
아기낳고도 나는 모른다
엄마도 나를 낳고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는 사실을
엄마도 생일이면 엄마가 보고 싶다는 사실을
본적
"소싯적 겁나 잘나갔는디
이 바닷가 꼴창으로 시집올지 누가 알았거냐"
밤마다 파도 소리에 실려오는
친정엄마 오래된 레파토리
조선팔도 화양면 꼴짜기 발통기미
마을을 거대한 발통
한 코 한 코 그물에 걸려
젊음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리고
꼼짝없이 갇혀버린 엄마의 생
친정 엄마 또 다른 레파토리
무주구천동 빠가사리
바닷가 문절이 만나 힘 못 쓰고 팍 죽어버렸구만
기막힌 짠물 수 없이 들이킬 때마다
구천동 그리워 찾았다는
마을 끝 외딴 노랑바구
바구에다 그리운 고향 대신
집 떠나고 없는 아들 딸 이름 셋
엄마의 본적으로 새기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통
임현정
오물이 눌러 붙어 있다
잘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새로워도 너에게 들어가면 더러워져
썩어 흐믈흐믈해진 내용이 나에게 튈까 걱정이다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아
꽃을 꽂아 화병이라한다
진정 찌꺼기가 되지 못한 나는
너의 냄새를 악취라 부를 수밖에
내 감정은 음식물쓰레기통
이름 짓기(동시)
송경숙
엄마 배가 커다란 풍선 같이 불렀어요
온 가족 둘러 앉아 이름을 지어요
우주에서 온 생명이니까
별이가 좋겠어요!
우리가족 사랑으로 클 거니까
사랑이가 좋아요!
잘 듣지 못하는 왕할아버지가 웃으시기만 하고
할아버지는 승연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삼촌은 태명으로 지은 감동이가 좋대요
별아! 사랑아! 승연아!
불러보며 가족들 입은 벙긋 벙긋
하지만 나는 똘똘이란 이름이 제일 좋아요
나처럼 자전거도 잘 타고
노래도 잘 불러야 하니까요
군말
"올해 순천작가회의 가을 시화전에 동반 출품한 작품들을 둘러보다가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누구랄 것이 없이 거의 모든 시화작품 앞에 오래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들을 한 묶음으로 대했던 것을 반성하는 시간도 되었다. 그만큼 개개인의 개성과 시심이 깊어 보였다. 아무도 대신 앓아줄 수 없는 개인의 슬픈 안부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시어 하나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을 정성어린 고통 시간들도 고스란히 눈에 밟혔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1인 3역을 하거나 이모저모로 생활에 찌들 수밖에 없는 처지임에도 그들은 뭐하자고 팍팍 써지는 것도 아닌 시에 매달려 밤을 지새우곤 했을까? 세상 사람들이 눈을 밝히며 읽어줄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 이 문학의 자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간단할 수도 있다. 시를 쓰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 아닐까? 즐겁다는 말! 그 깊이를 아는 자만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말이다."
위 글은 지난 가을 시화전을 하고 난 뒤에 쓴 글입니다.
어제 여수 빗살 문학회 제 7집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돌아와
오늘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문집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먼저 윤재남 님의, 회원들의 근황이 세세히 적힌 권두언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아, 내가 참으로 귀한 벗들을 만나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어제 자리에 앉아서 마음 작정하지 않고 그냥 몇 장 찍은 사진 중에
올려도 좋을만큼 무난히 잘 나온 사진만 몇 장 골라서 올리면서
그것만으로는 너무도 부족하고 섭섭하여
문집에 실린 많은 훌륭한 시편 들 중에 한 편씩만 골라 올렸네요.
여수 빗살 문학회 제 7집 출판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산파 역을 해주신 이민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렇다> 우수문학 도서 선정도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첫댓글 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벗님들 읽어보시라고 스크렙했네요. 전 지긍 순천벗 번개팅차 벌교로 가고 있네요. 이따 벌교 갈대밭 보여드릴게요^^^
좋은 시간 되셨네요...축하합니다.
아,영옥샘! 왜 오랜만이하는 생각이 들지요? 하하.
@낭만샘(안준철) 미국에서 딸내미 35일간 와 있는데...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거의 갖지 못했죠. 지금은 조용합니다. 아니 허전하여 몸둘바를 모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