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 ‘생 피에르가 있는 정물’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외톨이
일본어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는 '집에 틀어박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사회문제 관련 기관에서는 이미 국제 학술어로 정착된 ‘히키코모리’와 우리말로 풀어 쓴 ‘은둔형 외톨이’라는 두 용어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이 ‘히키코모리’에 관한 우려가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큰 사회문제로 등장하여 이에 대한 정부와 학계의 관심도 큽니다.
비교적 부정적 인상을 주는 ‘게이샤’(기생), ‘야쿠자’(조직깡패), ‘하라키리’(할복자살) 등 많은 일본어 낱말이 영국의 권위 있는 옥스포드(Oxford) 영어 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것처럼 이 ‘히키코모리’도 일본어 발음 그대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 이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입니다. 일본 총무청은 1990년에 ‘청소년백서’를 발표하여 청소년의 장기 등교거부와 ‘히키코모리’ 문제를 보고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히키코모리’는 청소년의 문제라고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3월에 일본 내각부(內閣府)가 발표한 보고는 40세~64세의 중고년 '히키코모리’가 추정치로 약 61만 명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2016년에 발표한 15세~39세의 청소년 ‘히키코모리’ 추정수 약 54만을 합치면 115만이 돼 국민을 놀라게 했습니다.
‘히키코모리’는 그 성질상 통상의 인구조사에서 정확한 통계를 얻기가 어려워, 일정 지역의 표본조사를 통해 전국 숫자를 추정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고 당국은 밝혔습니다. ‘히키코모리’ 문제를 20여 년 연구해 온 일본 쓰쿠바(筑波)대학 사이토 타마키(齊藤環) 교수는 정부 당국의 추정수의 약 2배인 200만 이상이 ‘히키코모리’ 해당자이며 이 중 반 이상이 중고년(中高年)일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에 관한 여러 권의 책도 낸 사이토 교수에 의하면 일본 다음으로 ‘히키코모리’가 인구비례로 한국에 많고,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유교문화국으로 경제발전을 어느 정도 달성한 국가들에 이 ‘히키코모리’ 문제가 크다고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가족과 동거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에 이 문제가 많다고 말한 사이토 교수는, 성인이 되면 독립하여 생활하는 서구문화의 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비교적 적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히키코모리’가 비교적 많은데, 일본, 한국, 스페인, 이탈리아 네 나라의 공통점은 청년이 부모와 동거하는 율이 인구의 70%를 넘는다는 점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는 ‘히키코모리’ 수가 선진국 중 가장 많은 반면 홈리스(homeless) 수는 가장 적어 정부의 통계에서도 5천명 미만이고, 개인주의가 우선하는 영국에는 26만명, 그리고 미국에는 백만 이상의 홈리스가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히키코모리’ 문제는 가족주의 대 개인주의 구도에서 관찰해야 하며 젊은이의 거처가 ‘집안이냐 노상(路上)이냐’의 차이에서 문제해결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홈리스는 생활환경이 나빠 평균수명이 50 정도인 것에 비해 ‘히키코모리’는 주거환경이 좋아 평균수명이 80을 넘을 것이라고, 사이토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올해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문제가 특히 화제에 오른 것은 지난봄에 나흘 간격을 두고 ‘히키코모리’ 관련의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76세의 전직 정부 고관이 44세의 ‘히키코모리’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은 평화스럽던 가정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매스컴의 대대적인 취재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교양 있는 아버지가 ‘히키코모리’ 아들이 근처 초등학교 운동회의 확성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불평하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흘 전의 ‘히키코모리’ '묻지마' 살인사건을 연상해 타인에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예방키 위해 이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로 많은 사랍의 동정을 샀습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이 아이도 그와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강박감에서 자기 아들을 죽였다는 이 사건 후 많은 사람이 이 전직 농수산성 차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전 오사카(大阪) 시장이며 인권 변호사인 하시모토 토루(橋下徹) 씨도 트위터에 “나도 같은 입장이 되면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 나흘 전에 일어난 것은 51세의 ‘히키코모리’가 등교하는 초등학생이 탄 스쿨버스를 습격하여 두 사람을 죽이고 10여 명의 다른 아이와 보호자에 부상을 입히고 범인 자신은 자살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가 이제는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중고년을 포함한 모든 연령층의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8050’이라는 유행어도 생겼습니다. 즉 “80대의 노부모가 50대의 ‘히키코모리’ 자식을 돌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금년 봄의 ‘히키코모리’ 관련 살인 사건 이후 ‘히키코모리’를 범죄예비군으로 보는 국민이 많아졌지만, 이것은 틀린 생각이라고 사이토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이 두 사건은 20년 만에 일어난 ‘히키코모리’ 관련 사건이라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히키코모리’의 일반적 정의는 ‘집에만 틀어박혀 외부와의 연락을 6개월 이상 단절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휴대전화, 텔레비전 등이 발달한 오늘날, 이 낡은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사이토 교수는 말합니다.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 씨는 잡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에 쓴 글에서 일부 ‘히키코모리’ 관련 범죄가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매년 3천5백 명 이상이 사망하는 교통사고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고, ‘히키코모리’는 결코 범죄예비군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히키코모리’ 당사자 중에 인터넷을 통해 언론활동을 하거나, 소설이나 음악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가정에 있으면서도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8050’ 문제에 약간의 희망을 준다고도 했습니다.
지금 사이토 교수가 우려하는 것은, ‘히키코모리’의 범죄사건이 아니라 멀지 않은 장래에 일본에 그들의 대량 고독사 현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2030년쯤에 일본은 ‘히키코모리’ 장수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지금 50대 중반의 ‘히키코모리’ 수만 명이 연금 수급자가 될 것인데, 이들 수많은 사람이 연금 수급신청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히키코모리’ 지원 대책이 훨씬 더 확충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과문의 탓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히키코모리’에 관한 추정 통계나 복지대책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통계청의 추산이라고 하며 우리나라의 ‘히키코모리’ 가능한 인구수가 약 31만이라고 한 글을 본 적은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심각한 ‘히키코모리’ 실상과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사회의 대응을 ‘타산의석’(他山의石)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퍼온 글] / 출처; 2019.11.12 06:56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황경춘(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동・서독 격차 어떻기에…
독일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강 근처에 작은 박물관 ‘트레넨 팔라스트(눈물의 궁전)’가 있다. 분단 시절 동베를린에 속했던 이 건물은 옛 동・서독 주민이 상대 지역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날 때 거치는 검문소였다. 짧은 만남 후 긴 눈물을 흘렸던 이산가족들은 이곳에서 통일을 꿈꾸며 서로를 위로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올해로 30년이 됐지만, 아직도 동・서독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이 남아 있다. ‘베시(wessi)’와 ‘오시(ossi)’라는 신조어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독일어로 서쪽과 동쪽을 뜻하는 베스트(west)와 오스트(ost)에서 유래한 이 말은 ‘거들먹거리는 서독놈’과 ‘게으르고 멍청한 동독놈’을 빗댄 표현이다.
서로를 비하하는 심리적 배경에는 경제력 차이가 깔려 있다. 올 8월 기준 독일의 전체 실업률은 3.1%이지만 옛 동독 지역 실업률은 6%에 달한다. 동독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서독의 84%에 불과하다. 독일 500대 기업의 93%인 464곳이 서독에 본사를 두고 있다. 우량 기업 상위 30개도 서독에 몰려 있다.
이런 불균형은 지난해까지 2조 유로(약 2600조 원)의 통일비용을 쏟아 부었는데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독일 정부는 1991년부터 일정 소득 이상 서독 주민과 기업의 소득세・법인세에 7.5%를 추가 과세해 옛 동독의 인프라・생활개선에 썼다. 서독 주민들은 “내 세금으로 동독인들을 먹여 살리고 서독은 역차별한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그런데도 동독인들의 소외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독일 정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동독지역 주민의 57%가 스스로를 ‘2등 시민’이라고 답했다.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옛 동・서독 지역 간 격차 해소에 반세기가 더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45년간의 분단을 극복하고도 ‘미완의 통일’에 시달리는 독일을 보면서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 등 외교 전문가들은 “분단 시기 서독의 1인 국내총생산(GDP)은 동독의 4배였지만 지금 남북한은 30배 차이”라며 “간극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동독은 서독 TV를 시청할 수 있었고, 편지와 소포 왕래가 가능했다. 그러나 남북한은 격렬한 전쟁을 겪었고 분단 기간도 70년이 넘었다. 독일보다 더 깊은 고민과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퍼온 글] / 출처; 한경닷컴 /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19.11.12 00:12
유쾌한 B급 문화
요즘 펭수를 모르면 일단 자신이 꼰대 대열에 합류할 조짐이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다음, 그게 뭔지 한 번 동영상을 보거나 검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무심하게 있으면 합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다음, 유튜브나 TV를 통해 몇 번 본 뒤에도 좋든 싫든 도대체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확실히 꼰대군에 포함됐다는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게 좋겠다.
펭수는 2019년 4월 교육방송(EBS) 봄 개편으로 신설된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인 남극에서 온 펭귄이다. TV 프로그램이지만 사실상 유튜브 기반이며, 가상 캐릭터이지만 실체가 있다.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졌지만 20, 30대가 열광한다. 펭수의 직설적인 화법이 젊은 어른들을 강타했다. ‘어른들의 뽀통령’이라 할 만하다. 그의 직설 화법을 글로 아무리 설명해봐야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그냥 보면 된다. 단지 직설 화법으로만 인기를 얻었을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요즘의 대세라 불러도 크게 무리가 없을 ‘B급 문화’ 현상이라고 보는 편이 설득력 있다. 펭수는 어른들의 점잖은 척함, 근엄함, 가식, 꼰대질을 그 자리에서 막말급으로 지른다. 불공정이나 갑질 같은 것들에 너무나도 예민한 20, 30대 감성이 속이 다 시원하다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류 또는 촌스럽다 정도의 느낌으로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는 문화 코드를 B급 문화라고 한다. 의상이나 언행 등이 저급한 콘텐츠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할리우드의 B급 영화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저질이란 거다. 그런데 진화했다. 촌스러운데 재미가 있고, 고리타분한데 새로운 뭔가가 더해진 것 같다. ‘묻고 따블로 가’ ‘마포대교가 무너졌냐’ ‘사딸라’ 같은 말들이 유행하는 것도 이른바 레트로(retro)현상이 더해진 B급 문화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B급 문화에는 뭔가 가려운 곳을 콕 긁어주는 시원함, 가식을 들춰내는 통쾌함, ‘근데 뭐가 어때서’ 하는 여유로운 상쾌함이 어우러진 풍자와 패러디가 있다. 게다가 기득권(또는 금수저)의 탐욕이나 갑질에 일격을 가하는 짜릿함도 언뜻 배어 있다. 물론 상위층에 끼어들 능력이 없는 이들의 막된 언동쯤으로 보는 경직된 이들도 있지만.
B급 문화는 격식을 깨는 방법으로 반항과 반란의 즐거움을 갈구하는 인간의 솔직한 본능을 푹 찌른다. 그래서 유쾌하다.
[퍼온 글] / 출처; 국민일보 / 김명호(국민일보 수석논설위원) / 2019-11-12 04:05
진먼 고량주 국・공 합작
중국 푸젠성(福建省) 남동부 샤먼(廈門)항에서도 보이는 진먼다오(金門島)는 대만 땅이다. 샤먼과는 4㎞ 거리지만 대만과는 270㎞ 떨어져 중국 쪽에 가깝다. 진먼다오는 제주도보다 약간 작으며, 10만 명 정도가 산다. 동쪽에 다(大)진먼다오, 서쪽에 샤오(小)진먼다오가 있는데, 서쪽 섬엔 민간인이 살지 않아 진먼다오라고 하면 보통 동쪽 섬을 일컫는다. 진먼다오는 대륙의 골리앗 공산정권에 맞선 반공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1949년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대만으로 밀려날 때 수많은 국민당 병사가 피 흘리며 사수했다. 중국군은 1958년 8월 23일에도 공격했지만, 대만 정부는 44일간 사투를 벌이며 지켜냈다. 최병우 당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취재 중 순직했는데, 관훈클럽은 그를 기려 ‘최병우 국제보도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 지정 4대 경제특구 중 하나인 샤먼은 중국과 대만을 잇는 접점이다. 샤먼 항은 진먼다오 행 인파로 늘 북적인다. 중국인들과 대만인, 그리고 샤먼 방문 외국인 여행객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진먼 고량주는 한국인에게 익숙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샤먼의 고급 아파트는 대개 진먼다오 사람들 소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먼다오 사람들은 샤먼에 투자도 많이 했다. 지난해부턴 본토에서 진먼다오로 식수를 공급한다. 최근 샤먼에서 만난 한 중국 관리는 “1995년 진먼에서 식수를 요청해왔고, 수중관을 통한 식수 공급이 지난해 8월 시작됐다”고 했다. 식수 공급 협상은 대만의 정부가 바뀌어도 지속됐고, 이젠 하루 1만t의 식수가 매일 공급된다. 진먼다오 주민들은 물 걱정에서 벗어났고, 무엇보다 진먼 고량주도 마음껏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요즘엔 진먼∼샤먼 교량 건설 논의도 진행 중이다. 진먼 고량주를 매개로 한 ‘국공합작’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금강산 일대의 한국 측 시설을 몽땅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금강산 일대 숙박시설 등은 현대아산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간 계약에 따라 건립된 것이고, 현대아산 측 총투자금은 4억 달러 이상이다. 권력자가 일방적 이해관계에 따라 계약을 맘대로 파기한다면 ‘진먼 고량주’ 같은 ‘한반도판 국공합작’은 불가능하다. 북한 또한 외국투자를 받을 수 없어 중국과 같은 경제성장은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퍼온 글] / 출처; 문화일보 / 이미숙(문화일보 논설위원) / 2019년 11월 11일(月)
창경궁 춘당지
양자컴퓨터
자연과학의 발전은 항상 새로운 깨우침을 준다. 인간의 직관은 참으로 허황하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거 인간은 해가 뜨는 게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다는 주장에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냈고, 시간이 속도나 중력에 의해 멋대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하나의 차원에 불과함을 이해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특히 원자단위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양자의 중첩, 얽힘 현상은 너무나 비상식적이어서 현대 물리학자들조차 여전히 힘겨워하는 수수께끼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 기묘한 양자역학 특성을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면 현재의 슈퍼컴퓨터를 훨씬 능가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진작부터 있어왔다. 기존 컴퓨터는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다 해도 0과 1의 이진법 비트(bit)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반면 양자컴퓨터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큐비트(qubit)를 활용해 차원이 다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한다. 전쟁에 비유하면 재래식 화력을 단숨에 무력화할 만한 비대칭 핵무기와 다름없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 했던 리처드 파인먼은 1980년대에 양자컴퓨터의 출현을 예견한 바 있다.
그 양자컴퓨터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IBM과의 경쟁에서 한발 앞선 듯한 구글이 최근 슈퍼컴퓨터로 1만년 걸릴 계산을 200초 만에 끝내는 `양자우월성`을 달성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아직 초기 단계라 해도 구글의 또 다른 마법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키워놓고 있다.
그런 미래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준비를 하고 있을까. 돈만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양자정보통신 분야의 국가별 투자 규모를 보면 미국, 중국, 유럽연합이 모두 조(兆) 단위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의 투자계획은 2023년까지 445억원에 불과하다. 무덤 속에서도 진작 썩어 없어졌을 과거를 뒤지느라 허송세월하고, 선심 정책에나 헛돈을 뿌려대는 한국의 모습이 새삼 답답하게 느껴진다.
[퍼온 글] / 출처; 매일경제 / 이동주(매일경제신문 비상임 논설위원) / 2019.11.12 00:04:01
부겐벨리아꽃
OTT 전쟁
‘OTT(Over The Top)’는 인터넷을 통한 영상 서비스를 말한다. TV 프로그램부터 영화, 단편 영상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상 콘텐츠를 망라한다. 지금까지 개인이나 가정에서 영상물을 접하는 창구(플랫폼)는 주로 거실의 TV이거나 컴퓨터 화면이었다. 그 화면들을 통해 방송물이나 영상 재생물을 보는 식이었다. 하지만 초고속 인터넷으로 영상물의 실시간 유통(스트리밍)이 원활해지면서 콘텐츠 유통 환경은 급변했다.
□ ‘넷플릭스’는 1997년 비디오나 DVD를 우편ㆍ택배로 배달하는 서비스로 시작했다. 하지만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점인 2007년부터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했다. 기존 케이블TV에서 수신자는 방송사(프로그램 공급사)가 전송하는 프로그램을 그저 수동적으로 보는 입장이었으나,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원하는 영상물을 선택해 주문형으로 콘텐츠를 보는(VOD) 시스템이 정착됐다. 넷플릭스 한 달 회비는 기본 7.99달러. 일반적인 미국의 케이블TV 월 수신료가 최소 50달러 선이다 보니, 넷플릭스는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 가입자 수가 2013년에 이미 미국 최대 케이블TV 채널인 HBO를 넘었고, 지난 3분기엔 전 세계에서 1억5,00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넷플릭스가 주도적인 플랫폼으로 부상하면서 OTT 경쟁도 뜨거워졌다. 2006년 구글은 유튜브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OTT의 강자로 등장했다. 이어 단순한 플랫폼 업체가 아니라 오랜 콘텐츠 제작 전통과 노하우를 가진 업체들도 저마다 OTT 사업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당장 세계 최대 콘텐츠 업체인 월트 디즈니사가 ‘디즈니 플러스’를, 애플이 ‘애플TV 플러스’ 서비스의 포문을 열었다.
□ 글로벌 IT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OTT 전쟁’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OTT 사업은 통신사와 콘텐츠 제작사, 유선방송 사업자 등이 뒤엉킨 가장 뜨거운 플랫폼 경쟁처가 됐다. SK텔레콤이 주도하는 ‘옥수수TV’, CJ ENM이 운영해 온 ‘티빙’ 등이 지상파, 종편 TV 등과 합종연횡을 거쳐 몸집을 키우며 새로운 플랫폼 구축에 앞다퉈 나서는 상황이다. 공정위가 최근 기존의 불허 방침을 바꿔 LG유플러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을 승인한 것도 글로벌 OTT 전쟁을 감안한 조치인 셈이다.
[퍼온 글] / 출처; 한국일보 / 장인철(한국일보 논설위원) / 2019.11.11 18:00
바다속 세상
인류세가 남긴 흔적
전 세계의 인구가 77억 명을 넘어섰다. 매년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세계 인구는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도시에는 높은 빌딩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환경오염과 쓰레기 처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는 남한 면적의 14배에 달하고 무게로는 8만t에 이르는 큰 쓰레기 섬이 나타나기도 했다. 쓰레기 섬을 주로 구성하고 있는 플라스틱은 높은 파도와 태양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해되어 바닷속 부유물로 떠다닌다. 이 중 일부는 해양 생물 몸속으로 들어가 먹이 사슬을 따라 순환하고, 나머지는 해저 퇴적물을 만든다. 플라스틱은 시멘트, 콘크리트와 함께 인류세를 대표하는 특징이 되고 있다.
지층이 쌓인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화석을 표준화석이라 한다. 특정 시기를 대표할 만한 풍부하고 지배적인 동식물의 화석을 말한다. 고생대의 삼엽충, 중생대의 공룡, 신생대의 화폐석이 좋은 예이다. 플라스틱은 이런 역사적 생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
200만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지구에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흔적은 인구 증가와 산업의 발달로 급속히 늘고 있다.
특히 환경오염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는 지표에만 국한되고 있지 않다. 산업 발달로 대기질은 크게 나빠졌으며, 인간뿐 아니라 다른 생물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스모그와 미세먼지가 일상이 된 지역이 많다.
미국해양대기청(NOAA) 제공
지하 깊은 곳에 매장된 자원의 개발, 오염물질의 지하 매립으로 지구 내부도 훼손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셰일오일 개발로 배출되는 폐오염수의 매립은 지구 내부 오염과 함께 지각 내부에 응력 불균형을 불러오고 있다. 폐오염수 지중(地中) 저장이 이뤄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는 지진이 크게 증가했다. 지표 오염을 피하기 위해 택한 길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오염과 재난을 불러온 것이다.
이뿐 아니다. 해저에 쌓인 플라스틱은 지각판을 따라 서서히 이동해 지각판 충돌대를 거쳐 지구 내부로 이동할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합성물질이 전 지구 물질 순환 과정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어떤 일을 만들어 낼지 현재로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지구에 살고 있는 특정 생명체에 의해 지표, 대기, 내부에 이르는 다양한 환경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의 질서를 훼손하는 인간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활동 영역이 지구를 넘어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행성 탐사는 우주공간에서 관측에 머무르지 않고, 행성 지표에 착륙하는 적극적 조사를 동반하고 있다. 달에는 이미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폴로 탐사때 설치된 지진계과 레이저 반사경, 우주인들이 남긴 배변 봉투들이 그것이다.
화성에는 무인 탐사선이 지상 조사를 하고,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 행성 보호사무국에서는 우주 탐사에 나서는 국가와 기업들이 우주 탐사 때 외계 행성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지켜야 할 준칙인 행성 환경 보존 가이드라인을 제정 중이다. 전 세계가 우주 개발에 앞다퉈 나서는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일이다. 인간은 그동안 의도하지 않게 지구의 여러 환경을 훼손해 왔다. 철저하고 꼼꼼한 점검으로 인류가 우주 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은 쓰지 말아야 겠다.
[퍼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홍태경(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 2019-11-12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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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중시 극심, 성형민국 오명… 꽃미남 하딩 대통령 실패 교훈
비교말고 자존감 갖는 게 중요… 매너 표정 화법에서 매력 찾자
며칠 전 고향친구가 단체 카톡방에 이런 우스개 글을 올렸다. “친구들아 지금 죽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죽어 천국에 갔는데 한창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했단다. 무슨 공사인지 물었더니 한국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하도 많이 하는 바람에 천국에서 본인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커 생체자동인식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네.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니 참고하길.” 꽤나 알려진 버전 아닐까 싶은데, 농담으로 웃어넘기기엔 자못 씁쓸한 얘기다.
우리의 외모 중시, 성형 풍조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직장 다니는 딸아이들 얘기. “젊은 외국인을 만날 때 첫인사가 성형인 경우가 종종 있다. 대놓고 너도 성형을 했느냐, 어느 부위를 했느냐고 묻는다. 마치 한국인 모두가 성형수술을 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건 정말 부끄럽고 속상하는 일이다.” 성형수술을 모두가 하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참 많이 하는 건 사실이다. 서울 강남 거리를 걸어보라. 건물마다 성형외과 간판이다. ‘성형민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외모가 좋으면 세상 살아가는 데 다소 유리한 건 사실이다. 사람의 겉보다 속을 보라고 다들 말하지만 먼저 보이는 게 겉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외모는 처음 내미는 명함이란 말도 있다. 당나라 때 정립돼 조선에까지 건너온 관리채용 기준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굳이 잘못된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신(身)은 건강과 외모를 뜻하는 개념일 텐데, 4개 덕목 중 제일로 꼽혔다.
외모가 중시되는 건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추한 것을 싫어하는 인간 본성 때문이라고 본다.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 몸매가 좋은 사람에 대한 이끌림은 본능에 가깝다. 조선시대 도학정치를 추구했던 조광조도 미모의 여성한테 눈길이 갔던 모양이다. 기묘사화 때 조광조 등 사림파 숙청에 앞장선 남곤과 얽힌 일화 한 토막.
“조광조가 소싯적 어느 날 남곤과 함께 길을 가는데 미모의 여인이 옆을 지나갔다. 조광조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며 눈길을 보냈지만 남곤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갔다. 집에 돌아온 조광조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며 어머니 앞에서 자신을 한탄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의외로 남곤을 가리켜 인간미 없는 차갑고 모진 사람이라 언젠가는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할 거라고 단정하면서 그와의 교유를 금하라고 일렀다.”(손문호의 ‘옛사람의 편지’)
나이깨나 먹은 나도 얼굴 점 빼고 머리숱에 신경 쓰고 있으니 내심 ‘조광조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그럴진대 젊은이들이 성형외과나 피부과, 치과를 찾아 외모 가꾸는 걸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 취향에 따라선 외모에 최고의 비중을 두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외모지상주의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 내면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기도 전에 외모에 가치의 중심을 두고 평가하는 풍조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외모지상주의가 타파돼야 하는 이유는 이른바 ‘워런 하딩의 오류’가 잘 설명해준다. 1921년부터 2년간 미국 대통령을 지낸 워런 하딩은 그 시절 꽃미남의 대명사였다. 잘생겼다는 이유로 상원의원 시절부터 열렬 지지자들을 몰고 다녔다. 때마침 대통령 선거에서 전체 여성한테 처음 투표권이 부여된 데 힘입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가 압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딩은 유약하고 무능한 데다 도박과 불륜 등 막장에 가까운 사생활이 드러나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대중매체, 특히 영상매체가 외모지상주의를 끝없이 부추기고 있다. 외모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부분에 대한 평가까지 외모와 연결짓다보면 엉뚱한 피해자가 생긴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이 때문에 취업 불이익을 포함해 생존권을 위협받는 경우도 있다. 외모를 관리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시간과 돈이 적은 사람이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불공평 구조다.
외모지상주의 탓에 삶에 자신감을 잃거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는 젊은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우리 구성원 모두가 각성하고 책임져야 할 사회 병리다. 외모지상주의를 완화, 혹은 퇴치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개혁을 서둘러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 스스로가 외모지상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외모에 뚜렷한 주관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적 자기계발 전문가이자 심리학자인 웨인 다이어의 조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 몸이 바로 나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싫어한다는 것은 자신을 인간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이나 매한가지다. (중략) 자신의 신체를 좋아하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의 신체가 자신에게 소중하고 매력적이라고 스스로에게 선언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비교나 평가는 거들떠보지도 말라.”(오현정 번역 ‘행복한 이기주의자’)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자기 외모에 높은 수준의 자신감을 갖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아마도 비율이 그렇게 높진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자신이 없다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외모 가꾸기에 몰두하는 대신 자기만의 독특한 매력 발굴에 나섰으면 좋겠다. 멋진 웃음, 밝은 표정, 청아한 목소리, 품격 있는 화법, 시의적절한 유머, 예절과 센스….
개그맨 유재석과 탤런트 공효진이 외모가 출중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 아니다.
[퍼온 글] / 출처; 국민일보 / 성기철(국민일보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 2019-11-12 04:03
山菊(개국화)
그들만의 아름다운 시절
프랑스어 ‘벨 에포크(Belle Epoque)’를 단순 번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이지만, 이 단어에는 그 이상의 함의가 있다. 프랑스혁명에서 나폴레옹 제정, 보불전쟁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전쟁의 불꽃이 그치지 않는 격동의 시대였다. 거듭된 혼란 끝에 프랑스 국민들은 국민 선거에서 75%의 지지로 나폴레옹 3세를 대통령에 선출했다. 나폴레옹 3세는 영광스러운 프랑스의 재건, 특히 파리의 도시재개발을 추진했다.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 좋았던 좁은 골목과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새로운 대로와 공공건물들이 세워졌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파리는 이 시절에 만들어졌고, 새로운 파리는 전 유럽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카를 마르크스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이 과정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라고 말했지만, 나폴레옹 3세가 보불전쟁(1871)에서 패배하여 퇴위한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1919)이 일어나기까지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기간은 유럽인에게 ‘벨 에포크’였다. 이 시기,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1878년 서구 열강은 지구 면적 중 67%를 식민지나 통치령으로 삼았고, 1914년 무렵엔 그 면적이 더욱 넓어져 85%에 이르렀다.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 60주년을 맞이한 1897년 영국은 전 세계 면적의 5분의 1,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했다.
제국의 영토에는 해가 지지 않았지만, 그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비유럽인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은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다. 서구식 문명화를 명분으로 앞세운 열강의 제국주의와 가혹한 식민 정책 아래에서 세계가 수탈당했다. 그토록 넓은 지역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자유를 빼앗긴 채, 권리도 없이 노예에 버금가는 삶을 살았음에도 오늘날까지 많은 유럽인들 또는 그 시절 부역하며 기득권을 누렸던 비유럽인들 중 일부는 그 시대를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한다. 역사적으로는 가장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 역시 자신의 젊음이 가장 빛났던 시기를 그 같은 시절로 기억하곤 한다.
실제로 나치 정권 치하를 살아낸 독일 노인들 가운데 “당시에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문 앞에 세워둘 수 있었다”는 것과 “장발과 싸움패는 제국노동봉사단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제3제국의 업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파시즘 치하를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던 시대”로 회고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와서 ‘삼청교육대가 어인 말이냐’라고 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조직폭력배 사건이나 기타 등등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을 향해 ‘삼청교육대에 보내야 한다’고 목청 높이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후략>
[퍼온 글] / 출처; 경향신문 /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 2019.11.11 20:43
유전자 검사로 팔자 고치는 세상 오나
예전엔 특정 질병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 있어도 속절없이 당해
이제는 유전자 검사 발달로 내게 맞는 다이어트 방법도 찾아
암・심장병 등 몸속 위험 유전자가 몸 밖으로 나와서 삶을 바꾼다
결혼해서 갓 낳은 딸을 둔 회사원 김모(33)씨는 최근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유전자 검사도 받았다. 작은아버지가 젊은 시절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만성 심장 질환은 나이 들어 생기고, 선천성 심장병이었다면 어린 시절에 문제가 됐을 텐데, 왜 삼촌은 20대 후반에 심장병으로 요절했을까. 혹시 우리 집안에 심장병과 관련된 유전적 취약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검사에 나선 계기다.
김씨는 'MYH7'이라는 유전자 변이가 나왔다. 이 변이는 가족성 비후성 심장 근육병을 일으킨다. 심장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굵어져 심장 박동으로 피가 나가는 출구를 비좁게 만든다. 나중에는 심장 박출 출구가 막혀 급사 우려가 생긴다. 집안 대대로 유전자 변이가 이어진다고 하여 병 이름 앞에 '가족성'이라는 말이 붙었다. 분명 삼촌도 이 변이 때문에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김씨는 요즘 유전자 검사 기관서 나오는 다양한 사례 중 하나다. 가장으로서 건강하게 가정을 꾸려갈 책무가 있기에 김씨는 심장 검진에 철저히 임할 계획이다. 격렬한 운동을 하면 굵어진 심장 근육이 펌프 출구를 막을 확률이 높기에 과격한 운동은 자제키로 했다. 운동선수가 경기 중 심장병으로 돌연사한 경우, 상당수가 이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다.
예전에는 몸속에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가 있어도 알 수 없어 속절없이 당했다. 이제는 유전자 검사가 발달해 변이를 미리 알아내고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됐다. 부정맥 관련 유전자만도 십 수 가지를 찾아낸다. 주변에 깡마른 체구인데 의외로 콜레스테롤치가 높아 강하제를 먹는 이들이 있다. 대개 가족성 고(高)콜레스테롤혈증이다. 이 집안의 '기름진' 내력도 유전자 검사로 걸러낼 수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똑같이 담배를 피우고 살았는데도 어떤 이는 폐암에 걸리고 누구는 폐암을 피해 간다. 이것도 내재된 폐암 위험 유전자와 관련 있다고 본다. 자영업자 이모(50)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줄곧 담배를 끼고 살았다. 그는 최근 유전자 검사를 통해 계속 흡연할 경우 폐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은 유전자형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미 담배를 오래 피웠기에 폐암 발생 가능성은 비(非)흡연자보다 높지만, 지금이라도 금연할 경우 폐암 발병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씨는 자신의 유전자 타입을 알고 나서 금연에 나섰다. 매년 저(低)선량 CT로 폐암 검진도 받을 예정이다.
"당신은 유전자 때문에 이런 질병에 걸릴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처음에는 공포스럽게 느끼지만, 대개는 건강관리 행태를 바꾸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대장암 발생 가능성이 큰 유전자형이라고 진단받으면 많은 이가 고기 섭취량을 줄이고, 운동 시간을 늘리고, 대장 내시경 검진을 열심히 받는다. 그럼으로써 대장암 발생 확률은 줄어들고, 걸리더라도 조기 발견하여 완치에 이르게 된다.
직장 여성 박모(36)씨는 어릴 때부터 황제, 사과, 고구마 등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었다. 그때마다 살은 빠졌으나, 번번이 요요 현상으로 도루묵이 됐다. 유전자형 분석을 받은 결과, 아니나 다를까 쉽게 살이 찌고 요요 가능성이 높은 타입으로 나타났다. 이런 유전자형은 여러 다이어트법 중 저(低)지방 식이가 잘 맞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섭취 칼로리를 줄이기보다, 탄수화물을 적게 먹는 것보다, 유전자는 저지방을 찍었다. 이후 박씨는 운동을 병행하면서 체중 감량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극단적 경우지만, 미국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유방암 위험 유전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미리 양쪽 가슴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유방암 발생을 원천 차단했다. 과감한 선택을 한 이유는 하나다.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자기 곁을 일찍 떠났지만, 본인은 엄마로서 어린 아이들 옆에 오래 남아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몸속 유전자가 몸 밖으로 나와서 그녀의 삶을 바꾼 것이다.
요즘 검진센터 등에서 다양한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있다. 병원에서 전체 유전체를 분석해 볼 수도 있다. 유전자 관련 바이오 회사도 꽤 등장했다.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럽고 유전자 과잉 의존 현상도 벌어질 것이다.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유전자는 곧 우리 삶 안에 자리 잡는다. 팔자려니, 체질 탓이니 하며 살기 힘들어졌다.
[퍼온 글] / 출처; 조선일보 / 김철중(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전문의) / 2019.11.12 03:14
히에로니무스 보슈(Bosch, Hieronymus, 1450~1516) / The Last Judgment Right wing, "Hell" Tripty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