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섹시 골퍼'로 불리는 나탈리 걸비스. 인기도 많지만 그만큼 '거품' 논란도 많다(사진=연합뉴스) |
사실 골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도도하고 잘 흔들리는 깍쟁이 캐릭터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한 홍세라이기에 [신사의 품격]에서 골프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드러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미녀 골퍼로서 겪는 상황 일부는 흥미롭다. 보통 운동선수의 경우 슬럼프가 지속되면 심지어 순위가 별로인 수준이 아니라 컷오프가 몇 년째 이어지는 골퍼의 경우라면 그냥 대중과 매체의 기억에서 잊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예쁘고 여전히 스폰서가 붙고 여전히 셀러브리티인 경우라면 다르다. 관심은 여전하지만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 관심은 비난의 얼굴로 돌아온다.
홍세라는 실력보다는 몸매 관리를 해야 샷 하나하나가 화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흔히 ‘섹시 골퍼’로 불리는 나탈리 걸비스의 경우 카메라를 든 수많은 갤러리를 몰고 다닌다. 미모라는 코드에 있어 거의 10년째 LPGA를 대표하는 그는 2007년 에비앙마스터스 우승 이전까진 실력도 없으면서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가 해마다 찍는 세미누드 캘린더 사진이 성을 상품화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미모를 이용한 이러한 활동이 최소 에비앙마스터스 수준의 준 메이저급 대회 우승 이후에나 대중과 매체에 용납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역시 LPGA를 대표하는 미녀 골퍼 산드라 갈. 유독 미녀 선수일 수록 우승 여부가 더 중요해진다(사진=연합뉴스) |
걸비스를 비롯해 산드라 갈, 안나 로손 등의 미녀 골퍼들을 호의적으로 소개하는 기사에서조차 ‘얼굴만 예쁘고 성적이 나쁜 건 아니’라고 수식하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얼굴이 예쁜 건 프로선수로서 강점이지만 또한 성적으로 변명해야 하는 약점이기도 하다. 선수로서 성적이 나쁜 건 문제지만, 얼굴이 예쁘면서 성적이 나쁘면 더 문제가 된다. 인기와 실력이 비례해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댈 때, 똑같이 못하더라도 이들에게는 ‘거품’이란 평가가 뒤따른다.
미셸 위 신드롬은 왜 적의로 바뀌었을까
한국계로서 한국에서도, 미국 국적으로서 미국에서도 큰 인기와 기대를 모았던 미셸 위가 겪은 부침은 그래서 홍세라를 연상케 한다. 미국인 선수 기준으로도 장신인데다 여타 다른 여성 골퍼에 비해 다리가 날씬하고, 그 비율 좋은 장신의 몸으로 휘두르는 드라이버 샷이 유독 호쾌한 그의 외형은 그 자체로 스타성이 넘쳤다. 2005년, 십대의 나이에 프로 데뷔를 하자마자 나이키를 비롯한 대형 스폰서의 지원을 받으며 ‘1000만 불 소녀’라는 호칭을 얻은 건 모든 종목을 포함한 스포츠 마케팅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남자 대회에의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고, 나쁘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LPGA 우승은 거두지 못하자 수많은 미국 내 칼럼니스트들이 때론 악의적으로 공공연히 미셸 위를 비난했다.
![]()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던 미셸 위. 하지만 그 인기는 어느 순간 비난으로 바뀌었다(사진=연합뉴스) |
결과론일 수 있지만 2004 소니오픈에서의 1타차 컷오프 이후 계속됐던 남자 대회 도전은 LPGA 경력을 생각할 때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의 강박적인 PGA 도전을 반대한 ESPN의 칼럼은 어느 정도 타당했다. 그럼에도 간과돼선 안 되는 건, 그는 남자 대회에 출전해 탈락하는데도 스폰서가 붙는 게 아니라 탈락해도 남자 대회에 도전하는 선수이기에 스타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특출한 외형과 함께.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미모와 장타라는 성적 외의 요소로 십대 때 엄청난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정작 멘탈 게임인 골프에서 자신들의 비난이 아직 십대인 소녀를 얼마나 흔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결국 미셸 위 역시 2009년 첫 우승을 통해 겨우 이런 여론을 조금 잠재울 수 있었다. 요컨대, 모든 여성 골퍼에게 LPGA 우승이 이루고 싶은 것이라면, 미녀 여성 골퍼에겐 이뤄야 하는 것이다.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얼짱’ 골퍼들이 미래의 홍세라가 되지 않기를
![]() 최근 US오픈 우승으로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최나연. 하지만 모든 '얼짱' 골퍼가 이런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건 아니다(사진=연합뉴스) |
얼마 전 US오픈을 통해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얼짱’ 최나연의 활약과 대중의 환호를 보며 뿌듯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건 그래서다. 고교 시절부터 ‘얼짱’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1살 어린 신지애와 함께 차세대 한국 골프를 이끌 인재로 평가받던 그는, 이번 우승을 비롯해 국내 대회와 LPGA 무대에서 언제나 꾸준하고 인상적인 성적을 거둬왔다. 그럼에도 2009년 삼성 월드챔피언십에서 LPGA 첫 승을 거두자 국내 매체에서는 그가 실력보다는 ‘얼짱’으로 유명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라는 식으로 승리를 축하했다. 현재 세계랭킹 1위인 대만의 청야니만 아니었다면 데뷔 첫 해 LPGA 신인상을 탈 수 있었다는 경력조차 ‘얼짱’이라는 이름값을 채우기엔 부족했던 것일까.
워낙 기복이 없는 데다 메이저 대회까지 우승해 세계랭킹 2위에 오른 만큼, 이제 최나연에게 얼굴 못지않은 실력 운운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얼굴이 예쁜데 실력까지 완벽하게 검증됐으니 최고라는 명제 반대편에는 예쁜 만큼 실력을 검증해야 한다는 잣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얼짱’ 골퍼가, 최나연 같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여 드라마 속 홍세라의 한숨이, 그가 겪는 기묘한 잣대의 비난이 드라마 바깥의 미래의 홍세아들에게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들 모두에게 임태산 같은 든든한 아군이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