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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합창단 증후군
2010년 1월 개봉되어 3백만 이상의 관객몰이로 흥행에 성공한 강대규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하모니』가 있다. 중견연기자 나문희와 김윤진, 그리고 신인 강예원 등이 출연한 영화였든 데, 여자 교도소에 수감된 수형자들의 애환을 ‘합창’이라는 끈으로 연결하여 교화(矯化)의 효과도 보고, ‘음악의 힘이 이런 것이다’, 라는 메시지도 전달한 눈물샘을 진하게 자극한 최루성 작품이었다.
합창음악 영화의 원조 격으로는, 1965년 줄리 앤드류스가 주연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있고, 에밀 아돌리노 감독이 수녀원을 배경으로 찍은 코미디 뮤지컬 『시스터 액트』가 우리에게 감동과 흥분을 안겨 준 바 있다. 최근에는 2004년에 제작된 프랑스 영화 『코러스(Les Choristes)』가 국내에서 개봉되어 많은 음악영화 마니아들이 ‘합창 음 악’의 신선하고 아릿한 감동을 영상미학으로 전달받기도 했다. 물론 ‘합창음악 영화’라는 장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분하자면 언급한 국내 외 영화들이 대략 영화의 줄거리에 합창을 덧입히거나, 합창 그 자체가 주제가 되는 영 화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으로만 접근하자면, 영화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합창’을 메인 테마로 만든 영상물이 있는 데, 바로 지난 해 박칼린이 지휘하여 훈훈한 감동을 던져 주었던 ‘남격 합창단’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제7회 거제전국합창경연대회를 목표로 설정하고, 2010년 7월 초 창단하여 대회가 종료된 그 해 9월초에 해단된 지극히 이례적 경우의 합창단 이야기를 연출자의 의도대로 담아 낸 휴먼 다큐이다. KBS 주말 예능프로 <해피 선데이>를 구성하고 있는 ‘남자의 자격’은 여러 미션을 수 하기 위해 연결된 프로그램 중 하나로 ‘남자의 자격 합창단’은 ‘시즌 1’에 해당하는 연출자 의 프로젝트였다. 말하자면 ‘시즌 1’에 이어, 프로젝트 ‘시즌 2’가 바로 가수 김태원이 지휘 하는 ‘청춘합창단’이다. 이미 서류접수에만 3천명의 신청자가 몰려 뚜껑을 열기 전부터 설레임을 자극했던 ‘청춘 합창단’은 52세 이상 나이제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오디션에 2백 여 명이나 참가하였고, 그 가운데 46명이 선발되어 혼성(混聲)으로 이루어진 미션 수행을 위해 창단 된 이른바 급조된 합창단이다.
영국의 웹 디자이너 리처드 혼의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란 책 제명을 부제로 택 하여 조성숙 프로듀서가 끌고 나간 <남자의 자격> ‘청춘 합창단’은, 국내 합창음악의 대 부 윤학원 선생을 멘토로 가수 김태원이 지휘하여, KBS가 마련한 《제1회전국민합창대 축제》 참가를 목표로 연습하여 영예로운 ‘은상’을 수상하였다. 여기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김태원이 지휘한 ‘청춘합창단’이 지난 9월 24일 KBS가 주최한 《제1회 전국민합창대축제》에서 ‘은상’을 수상하였다는 사실을 홍보하고, 격찬하 려는데 글쓴이의 의도가 전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해피 선데이>에 대한 미디어 비평을 하려 함도 아니다.
공식적인 집계 결과는 아니지만, 지난 해 박칼린의 ‘남격 합창단’ 후폭풍이 거세어 전 혀 예상치 못 한 현상이 사회적으로 발생 했는데, 그것은 신생 합창단의 창단이 눈에 띄 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박칼린 신드롬’ 내지 ‘남격 합창단 신드롬’ 쯤 으로 이해하면 될 현상 이다. 이 현상을 순수하게 음악적 정서로만 받아 드리자면, 다니엘 바렘보임과 함께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창단 주역이었던 미국의 문예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의 명저 『음악은 사회적이다』에서 언급했듯이, 한 마디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말을 더 빌리자면, ‘음악은 관용적이고 강제적이지 않으며 세속적인 것, 실현 가능한 것, 도달 가능한 것, 인식 가능한 것을 의미하는 유토피아적인 것’ 이라고 정의하였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표현한 의미대로라면, ‘남격 합창단’ 보다 인적 구성과 음악적인 면에서 훨씬 발전적이었던 ‘청춘 합창단’이야 말로 그가 정의한 음악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음악 사회적 모델인 셈이다. ‘음악은 관용적인 것’을 실현하기 위한 ‘청춘 합창단’은, 새로운 것을 실현하기 위한 어떤 창조적인 행위라기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것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동기 부여 였고, 자발적 참여에 의해 ‘강제성’을 배제하고 지극히 ‘세속적’으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 '실현가능한 것’을 위하여, 또 ‘도달 가능한 것’을 위하여‘, 아울러 ‘인식 가능한 것’을 위 하여 ‘청춘 합창단’ 단원들은 숨가뿐 일정을 소화해 내며 ‘유토피아적’ 행복을 추구하는데 올인 하였다.
그런데 대개 아마추어 합창단의 경우, 실상은 이렇듯 ‘청춘 합창단’과 같은 음악의 사회 적 기능을 수행하고, 또 자기만족도 추구하려고 결성되어 의욕적인 출발을 보이지만, 여 러 가지 장애 요인에 부닥치며 좌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한 경우가 크게 두 가지 인데 하나가 ‘학교 합창단’이고, 다른 하나가 ‘자생(自生) 합창단’이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국내 학교 합창은 놀랍게도 거의 사립 고등학교에 편중돼 있다. 대표적 사례가 숭실고, 배재고, 대광고, 정신여고, 숭의여고합창단 등이다. 이들 학교의 공통된 건학이념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미션스쿨이라는 점 또한 편향적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학교들을 뛰어 넘는 국·공립학교 합창단이 그다지 출현하지 않는다. 미션스쿨은 아니어도 근래에 상일여고합창단이 역동적인 활동으로 학교 합창을 평정해 나가고 있고, 지방에서는 마산제일여고합창단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나 이들 두 학교 역시 사립학교이다. 결론적으로 국·공립 고등학교에서의 합창활동이 비약적 발전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인적 구성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일정 주기로 교체되는 학교장과 음악교사들의(비록 음 악교사들 만이 아니라) 순환 전보근무 제도 때문에 같은 학교에 지속적으로 근무할 수 없다는 인사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사립학교는 상대적으로 이런 시스템의 자 유로움이 있어 능력 있는 지도교사의 열정과, 학교법인의 지속적인 지원, 게다가 학교장 의 관심까지 덧붙여지면, 그 학교의 합창활동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국?공립학교가 이런 점에서 학교 합창의 발전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 과일 수 있다. 애써서 삼사년을 육성해 봐야, 그 지도자가 다른 학교로 전보되면 그 명맥 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학교장이 합창활동 이며 그런 류의 예능지도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비약적 발전은커녕 합창 지도자의 의욕마저도 위축되는 게 사실이다. 자생 합창단의 경우, 학교 합창단과는 사정이 좀 다르 다. 국내 각종 직능별 합창단을 총망라하여 1973년 설립된 한국합창총연합회도, 사실상 자생적으로 창단하여 활동하고 있 는 합창단이 모두 몇 개나 되는지 그 실상을 정확히 파 악하고 있지 못하다. 더욱 놀라운 일은 소위 전문합창단이라고 소개해 놓은 국?공립(국립과 시립?구립?군립을 총칭함)합창단 현황을 2011년 9월 현재, 38개 합창단 정도로 등재해 놓 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국 252개의 지자체 가운데, 자치단체 소속으로 운영되는 국? 공립합창단 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이고, 현실적으로 가장 실정 파악이 용이 한 합창단이 이런데 하물며 자생 합창단의 현황 파악은 어떨 것인가, 하는 점에서 의혹의 실마리는 풀린다. 전문 합창단이라고 임의 규정해 놓은 합창단은 일반적으로 직업 합창단을 의미한다. 자치단체에서 일정액의 급여를 받고 활동하는 합창단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그 외에 학교 합창단을 제외한 합창단이 큰 틀에서 일반 합창단이고, 그 일반 합창단은 거의 자급 자족해야 하는 자생 합창단인 것이다.
자생 합창단에는 학창시절 합창활동의 인연을 성인이 돼서도 계속 이어가자는 취지로
창단된 소위 OB(Old Boys)합창단이 있고, 대학의 동아리합창단과 종교적으로 뜻을 같이
한 종교합창단(교회찬양대 제외하고), 그리고 순수하게 취미활동을 목적으로 한 합창단
등이 있는 데 자생 합창단의 대표적 사례는 역시 어머니(여성)합창단이다.
국내 어머니(여성)합창단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각 지역마다 레이디스
싱어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합창단을 비롯하여, 시?군?구마다 서너 개의
어머니(여성)합창단은 필수이고, 실버합창, 시니어합창을 포함하면 그 수를 파악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합창단 창단이 등록제나 허가제가 아니라 임의로 창단하고
자유롭게 해단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창단되어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여성)합창단을 포함한 자생 합창단은 대부분
은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해 가는 비적극적 합창단들이다. ‘비적극적’이라함은 연습을 포
함하여 연주활동이 지극히 미미한 합창단을 의미한다. 직업적이 아니기에 전폭적으로
합창활동에 매달릴 수 없는,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연습과 연주에 적극성을 띄지 못하
는 합창단을 지칭하고 있는 데, 그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재정적
문제이다. 그나마도 적극적 합창단들은 지휘자의 음악적 능력도 물론 포함하여 '비적극
적 ’합창단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좋은 조건이 조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하튼 ‘비적극적’이고 ‘적극적’이고를 막론하고 문제는 재정(財政)에 있다. 열정만 가
지고 이끌어 나가기에는 그 열정이 너무 쉽게 소진(消盡)되고 만다. 당장 연습실이 없다
든가, 악보 제본할 경제적 여유도 없다거나, 게다가 단원들마저 출석률이 저조하면 제
아무리 음악적 능력이 뛰어난 지휘자가 이끌어 가는 합창단이라 해도 결과는 명약관하
해 진다. 물론 이러한 열악한 조건을 뛰어 넘어 비약적 발전을 도모하고 명실상부한 직
업합창단 성격으로 성장한 합창단도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극소수일 뿐이다.
바로 이런 여러 이유와 조건으로 인해 합창단이 해체 위기에 놓여 있거나, 지지부진한
활동으로 ‘비적극적' 합창 활동에 놓여 있던 합창단에 자극과 도전을 던져 준 계기가
’청춘 합창단‘ 프로그램이다.
<해피 선데이> 예능프로 ‘청춘 합창단’ 방영 이후 국내 자생 합창단의 지각변동이 피부
로 느껴지고 있다. 좀 과장된 표현인 듯하지만, 지난 해 박칼린의 ‘남격 합창단’ 방영 시
점부터 미약한 진동을 느끼기 시작해, 지금은 마치 온 국민이 합창음악에 경도된 듯 너
도나도 합창을 외쳐 대고 있다. 합창 활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사람들로부터, 과거 합창단 이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며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의욕을 보이기도 한다. 시간 여유가 없어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하물며 음치여서, 라고 음악활동을 애써 외면 하려고 했던 사람들까지 '나도 한번 합창을 해 볼까’ 하며 여러 사람들이 마음을 움직이 고 있다.
이것은 분명 ‘청춘합창단’ 증후군으로 볼 수밖에 없다. 증후군으로는 매우 건강한 증세
이다. 특히, 소비적이고 과시적 증후군에 쉽게 감염되는 우리 국민 정서로 봤을 때 진정
으로 건전한 신드롬이다.이렇게 건강하고 건전한 증후군이 확산될 때 우려되는 것은,
분명한 건강한 확산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책임질 주체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볼 때, 매우 건전하고 바람직한 운동의 확산을 누군가 책임 있게
지원하고 그 확산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국민 정신건강과 문화예술의 향수권을 조장
시키기 위해 지속성을 갖고 유지시켜야 함에도, 현재로선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환상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국내 합창인들을 상징적
으로 대표하고 있는 (사)한국합창총연합회가 나서서 주도할 형편도 못 되고, 어느 뜻있는
메세나가 앞장서서 이 일에 발 벗고 나서 줄 상황도 아니다. 더욱이 ‘증후군’은 그 징후가
한시적 일 수밖에 없는 통념을 극복하지 않는 한,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한
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처럼 합창 중흥을 위해 부여된 동기를 성공적으
작동시키기 위해서라도 에너지를 끌어 모아야 한다.
여기서 단언하건데 그 에너지 원(源)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아낌없는 지원을
의미한다. 음악기능의 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사회 분위기가 건강해지고 국민들의 정신
건강이 건전하게 조성될 수 있는 그러한 운동에 중앙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전혀 관심을
쏟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과오를 범하는 셈이다.
국민들이 합창활동을 통해 각자의 불순하고 억눌린 감정을 정화시키고, 아름다운 화음
의 구현을 위해 너와 나를 확인하고, ‘청춘합창단’과 같은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서로에
게 배려하는 합창의 힘을 느껴 나가는 화합과 건강한 사회공동체적인 일에 정부나 자치
단체가 결코 인색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생색내기 정도의 지원이 아니라 아예 전폭
적인 지원방안이 마련되어 전국의 자생합창단이 혁신적 수준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진지한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기회에 많은 자생 합창단의 연습장소도 해결 되고, 연주회도 신 바람나게
열 수 있도록 자립의 기반을 제공해 주었으면 한다. 그 역할은 거듭 밝히지만, 중앙정부
의 책임 있는 부서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 개입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록 보잘것
없어 보이는 ‘청춘합창단 증후군’이 언급한 두 주체적 기관이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가 많
은 국민들이 합창을 통하여 행복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오천년 역사의 대한민국이 문화
선진국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음악저널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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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음악칼럼니스트 이영진의 소리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