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정상은 만년설처럼 두터운 눈 속에 파묻혀 있고 바닷가에 쉼 없이 불어대는 해풍에서는 섬뜩한 한기가 느껴지는 2월이다. 하지만 남제주군 대정읍 일대의 드넓은 들녘에서는 때 이른 봄기운이 또렷이 느껴진다. 제주도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인 수선화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수선화는 대도시의 화원이나 가정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관상용으로 개량된 서양 수선화이다. 애초부터 우리 땅에서 스스로 나고 자란 야생 수선화를 보려면 남해안의 거문도나 제주도를 찾아가야 한다. 특히 제주도에는 때깔은 소박하면서도 꽃향기가 아주 진한 야생 수선화를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도 야생 수선화가 가장 흔한 곳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9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남제주군 대정읍의 들녘이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분주히 오가는 도로변에도 수선화가 있고, 바닷가의 양지바른 언덕에도 피어 있다. 또한 마을 안의 돌담 밑과 고샅길뿐만 아니라 들녘의 밭둑과 무덤 가에서도 수선화가 피고 진다.
기나긴 유배생활에서 비롯된 절망감과 고독으로 인해 적잖이 힘겨웠을 추사는 수선화를 매우 어여삐 여겼다.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추사의 글 가운데에는 수선화를 예찬하는 내용이 여럿 있다. 그중 권돈인이라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수선화는 정말 천하의 구경거리이다. 중국의 강남은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여기는 방방곡곡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수선화 없는 데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추사는 소담스레 꽃을 피운 수선화를 두고 “희게 퍼진 구름 같고 새로 내린 봄눈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추사와는 달리, 현지 주민들에게 있어서 수선화는 별로 달갑지 않은 식물이었다. 제주도 방언으로 수선화는 “마농”이라 불린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말이 먹는 마늘”이지만, 진짜 속뜻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마늘”이라는 뜻이다. 야생 수선화는 번식력이 강해서 한번 밭에 뿌리를 내리면 다른 농작물의 생장을 가로막을 정도로 무성하게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좁고 척박한 밭에 온 식구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 농부들에게 수선화는 눈에 띄는 대로 뽑아 버려야 할 잡초에 불과했던 것이다. 실제로 대정들녘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뿌리째 뽑혀서 밭가에 나뒹구는 수선화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요즘에는 일부러 수선화를 심어 놓은 곳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도로변의 작은 공원이나 유명관광지의 화단, 민가의 정원에 청초하고 단아한 모양의 야생 수선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드넓은 대정들녘 중에서도 대정향교와 산방산 사이의 도로변과 밭가, 송악산~사계리 해안도로변, 대정읍 상모리의 알뜨르비행장터 등지에서 야생 수선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선화가 핀 대정들녘에는 추사적거지, 대정읍성, 대정향교, 알뜨르비행장터, 일오동굴, 백조일손지묘 등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 많다. 그 가운데 추사적거지는 대정읍 안성리에 자리잡고 있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승승장구하던 추사 김정희가 졸지에 유배객이 되어 제주도에 당도한 것은 1840년(헌종6) 9월 27일이었다.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안동 김씨 일파가 10년 전에 종결된 ‘윤상도의 옥사’를 다시 들춰내서 추사를 중죄인으로 옭아맨 것이다.
처음에 포교 송계순의 집에 머물던 추사는 얼마 뒤 강도순의 집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추사는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진력했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세한도〉와 추사체의 완성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제주도에 유배된 지 꼬박 7년 3개월, 햇수로는 9년 만인 1848년 12월에 유배에서 풀려났다. 현재 추사적거지에는 당시의 초가가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추사적거지 옆에는 옛날 대정현의 관아가 자리했던 대정읍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태종 17년에 처음 세워진 석성이다. 대정읍성의 동문터 밖에는 ‘濟州大靜三義士碑’(제주대정삼의사비)라는 비석이 있다. 신축년(1901)의 농민항쟁을 이끈 세 지도자, 즉 이재수․오대현․강우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추사적거지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단산(바굼지오름)의 남쪽 기슭에는 대정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구조와 기능은 여느 향교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주변의 풍광과 분위기가 퍽 독특하다. 향교 앞의 드넓은 들녘 너머로는 눈이 시도록 푸른 바다와 형제섬, 송악산 등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의 서남단 바닷가에 우뚝 솟은 송악산(104m)은 가파도와 마라도,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한라산 정상까지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빼어난 오름이다. 그리고 송악산 북쪽의 들녘은 일제시대에 오무라 해군항공대의 ‘알뜨르비행장’이 들어섰던 곳이다. 지금도 들녘 곳곳에는 당시 건립된 비행기격납고의 잔해가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송악산 기슭의 해안절벽 아래에는 일본군이 군수품과 어뢰정을 숨겨두기 위해 파놓은 인공동굴도 많다. 모두 15개여서 ‘일오동굴’로도 불리는데,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됐던 TV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 알려진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그밖에도 송악산~사계리 해안도로는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답고 운치 있는 해안드라이브코스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길이다.
<관련 여행정보>
○ 관련 인터넷 웹사이트: 남제주군청(www.namcheju.net)
○ 문의전화
남제주군청 관광진흥과(064)730-1720
남제주군청 관광지관리사무소(064)730-1541
남제주군 대정읍사무소(064)794-2301
추사적거지기념관(064)794-3089
○ 대중교통 정보
- 버 스 : ․06:00~21:25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서부관광도로행(제주→동광→보성→대정) 버스 이용. 추사적거지 입구에서 하차.
․06:00~21:00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서회선일주도로행(제주→애월→한림→신창→대정→화순→중문→서귀포) 버스 이용. 대정(모슬포)에서 하차.
* 문의처 : 제주종합버스터미널(064)753-1153~4)
○ 자가운전 정보
제주공항 - 신제주 - 서부관광도로(95번국도) - 동광사거리 - 대정 방면 - 추사적거지 입구
○ 식당 정보
- 해녀식당(모슬포항 입구, 생선회와 회덮밥, 064-794-3597)
- 항구식당(모슬포항 입구, 자리물회, 064-794-2254)
- 산방식당(대정읍내, 밀냉면과 수육, 064-794-2165)
- 남경미락(사계리, 생선회, 064-794-0055)
- 진미식당(사계리 해안도로변, 생선회, 064-794-3639)
- 형제식당(사계리 해안도로변, 갈치조림, 064-792-0092)
긴 겨울을 지나 봄의 시작을 알리는 햇살이 얼굴에 따사롭게 비춰와도 봄이 왔음을 실감하기에는 주위가 너무나 황량하기만 하다. 이럴 때는 가족들과 함께 서둘러 남쪽으로 봄맞이 나들이를 나가보는 것도 좋겠다.
거문도 사건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원래 삼도라고 불리웠으나 사건 당시 청나라 북양대신 정여창이 거문도 주민들과 필담을 나누던 중 그 해박함에 놀라 거문도(巨文島)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섬 전체에서 풍겨져나오는 느낌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여수에서 불과 2시간 정도만 배를 타고가면 짙푸른 바닷물에 담담하게 몸을 담그고 있는 거문도를 볼 수 있으며, 선착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싸아하게 밀려드는 개운한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다.
바람에 잠시 머리를 식히고 나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거문도 등대를 보러가는 2시간 정도의 산행 코스가 거문도 관광의 백미인데 등대를 보러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개 유림해수욕장에서부터 걸어가기 시작하여 30분정도 지나 신선바위를 내려다볼 수 있는데 신선바위는 말 그대로 신선이 노닐다 간 곳처럼 신비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어 보는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렇게 신선바위를 지나가다 보면 줄지어 있는 등산로 소원탑을 만나는데 지나가는 이들의 소망이 담겨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곳에 잠시 서서 올 한해의 소망을 담아 소원탑의 한 귀퉁이를 만들어 보는것도 산행의 묘미이다. 소원을 빌고 나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가다보면 일제 시대때부터 만들었다는 365계단이 나오는데 내리막 계단으로 되어 있는 이곳은 직접 돌을 날라 쌓았다고 한다. 행여 이 계단을 다니는 사람들의 발목이 삐기라도 할까 작은 돌 조각을 계단 사이 사이에 박아놓아 균형을 맞추어놓은 마음 씀씀이가 여간 푸근한 것이 아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려가다가 양쪽 끝에 쪽빛 바다를 끼고 정갈하게 나무 판자를 깔아놓은 목넘어 잔교의 그 길은 여름이 되면 양끝에서 쉴새없이 넘나드는 파도로 인해 걷는이의 마음을 한층 더 들뜨게 하는데 그 때문에 산 이름도 수월산(水越山)이다.
수월산을 끼고 길게 뻗어 있는 동백터널숲은 봄이 오면 거문도 새색시에게 화관을 씌워주는 장한 일을 하는데 꽃잎이 어지러이 흩날리지 않고 통으로 떨어진 붉은 동백꽃이 노란 꽃술을 하늘을 향해 펼쳐보이면 눈앞에 펼쳐지는 그 풍경만으로도 봄의 기운을 한껏 빨아들이게 된다.
길다란 동백숲을 지나 1905년에 세워져 100년의 세월을 이고 있는 거문도 등대를 보면 등대 곳곳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도 그 긴 세월동안 한결같이 바다를 비춰주는 저 등대는 묵묵히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 등대를 찾는 이들을 등대 옆 길가의 수선화로 반갑게 반겨준다.
이 외에도 서도 끝의 녹산곶 산봉우리에는 초지를 가로질러 있는 무인등대인 녹산등대가 있다. 제주도에 섭지코지가 있다면 거문도엔 녹산 초지가 있는데 이 길 또한 호젓하게 가볼 수 있는 곳이다.
거문도에 와서 봄의 기운을 마음껏 누렸다면 그 다음에 꼭 가봐야 할 곳은 백도이다. 상백도와 하백도를 포함해 39개의 무인군도로 이루어진 국가명승지 7호인 이곳은 거문도에서 부정기적으로 유람선이 출발하며 관람 소요 시간은 40분 정도이니 이왕에 거문도까지 왔다면 좀 더 욕심을 내어 백도를 보는 것이 남도 봄맞이의 정수이다.
백도라는 이름은 대략 100여개의 섬이 모여있어 백도라 하기도 하고, 100에서 하나가 모자란 99개라 하여 일백 백(百)자에서 한 일(一)자가 빠진 백도(白島)라 하기도 한다. 매바위나 병풍바위가 있는 상백도와 옥황상제의 아들이 바위로 변했다는 서방바위, 각시바위, 거북바위 등이 있는 하백도는 곳곳에 기이한 모습으로 자리 잡아 관람객의 시선이 다른데로 돌아갈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백도는 생태계 파괴 방지를 위해 섬에 내릴 수 없어 배를 타고 돌아 보는 것만 허용이 되고, 또 날씨가 안좋으면 배가 운항하지 않으니 그 자태를 본다는 것은 행운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다. 보통 하루 1회에서 3회정도 운항한다.
물이 깨끗하기로 소문난 이곳에 왔으니 먹거리를 그냥 지나칠수는 없는 노릇이라 2월의 먹을만한 제철 음식으로 병어돔회와 삼치 구이를 적극 추천한다.
<관련 여행 정보>
○ 관련 인터넷 웹사이트 : 여수시청(www.yeosu.go.kr)
○ 문의 전화 : 여수시청 관광홍보과 (061)690-2249
○ 대중 교통정보
- 항공이용
· 서울 ↔ 여수(매일 11회씩 운행)
- 기차이용
· 서울 ↔ 여수(매일 14회씩 운행)
- 고속버스 이용
· 서울 → 여수(40분 간격 운행/5시간30분)
· 부산 → 여수(40분 간격 운행/3시간)
- 여객선 이용
· 여수 → 거문도(07:40 출발 → 09:40 도착)
거문도 → 여수(15:00 출발 → 17:00 도착)
※ 동절기에는 하루 2편만 운항, 선박 운항 정보는 승선전 확인 요망
· 거문도 → 백도 :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므로 여수항여객선터미널(061-663-0117)에 사전 확인
○ 자가운전 정보
- 경부 고속국도 → 대진고속국도(대전·통영간 고속국도) → 진주 I.C →남해고속국도 → 순천 I.C → 여수행 17번 고속국도 이용
- 경부 고속국도 → 천안·논산간 고속국도 → 호남 고속국도 → 순천 I.C → 여수행 17번 국도 이용
- 소요시간 : 서울 ↔ 여수 444Km, 5시간30분
여수 ↔ 부산 257Km, 3시간
위 치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서부리 379-1(영양군청 문화관광과)
추천계층 : 가족층, 노인층
설날이 다가오면 옛 고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눈 덮인 고즈넉한 고향마을에 온 가족이 모여 한복을 차려입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면서 덕담을 나누는 옛 풍속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밀려온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풍기, 영주 또는 서안동 IC에서 약 1시간 거리에 경북 동북부 내륙에 위치한 청정지역 반딧불이의 고장 경북 영양군이 있다. 북으로 우리나라 육지에서 해와 달이 뜨는 장면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은 민족의 영산 일출산(1,219m)자락에 위치한 영양군은 수많은 충의열사와 문인들을 배출한 문학과 예술의 고장으로 전통적인 농촌 마을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고향의 정취가 푹 배여 있는 문향이다.
영양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문인 중에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조지훈선생, 시인인 오일도선생 그리고 소설가 이문열선생 등이 있으며, 영양읍에서 약 30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한 이들 생가를 비롯한 옛날 모습이 그대로 담긴 고택마을과 문화유적, 청정한 자연환경 등을 군청의 지원을 받아 문중들이 잘 보존해 오고 있다.
영양읍의 북동쪽 약 20분 거리에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의 한사람이었던 조지훈선생의 생가인 주실마을이 있다. 입구에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조지훈선생의 시가 새겨진 시비가 눈길을 끌며, 생가인 호은종택과 어렸을 때 수학했던 월록서당은 아직까지도 고고한 선비정신과 그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는 듯 하다.
영양읍의 남쪽으로 1935년 사재를 털어가며 순수 시문학지 시원을 창간한 현대 서정시인 오일도선생의 감천마을이 있는데 경북 문화재자료 제 248호로 지정된 ㅁ자형의 웅장한 기와집인 44칸짜리 오일도 선생의 생가와 함께 마을 앞을 흐르는 큰 내와 하천절벽에 자생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 114호인 측백수림 군락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마을 입구 31번 국도변에 있는 시비에서 <저녁놀>이라는 오일도선생의 명시를 감상할 수 있다.
“작은 방 안에/ 장미를 피우려다 장미는 못 피우고/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모가지 앞은 잊어버려라/ 하늘 저 편으로 떠가는 저녁놀// 이 우주에 저보담 더 아름다운 것이/ 또 무엇이랴/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붉은 꽃밭속으로/ 붉은 꿈나라로”
감천마을 인근에 조선시대 선조 때 낙향하여 이곳에 은거하던 정영방이 연못을 파고 갖가지 모양의 아름다운 돌을 못바닥에 깔아 만들었다는 우리나라 민간 정원 중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서석지가 있다. 가로 13.4m 세로 11.2m 깊이 1.3~1.7m로 요자형으로 전통 정원 조경미의 오묘한 정취를 느끼게 하는 서석지는 산과 개울 등 뛰어난 풍수지리를 배경으로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옛 돌담 등이 잘 보존된 주변의 서정적인 고택마을과 함께 영양군에서 문학과 예술의 거장이 배출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또 감천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15분 거리에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의 작품을 쓴 한국문학의 거장인 현대 소설가 이문열선생의 두들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석계고택, 석천서당 등 전통가옥 30여 채와 궁중요리서를 쓴 정부인 안동장씨의 유적비 등 전통계승의 발자취를 보여 주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이문열선생 등 문인들과 함께 문학을 이야기하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광산문학연구소가 있다.
영양 출생 문인들의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지는 무대인 영양군의 고택마을 문학테마 기행과 함께 영양읍 남쪽 안동으로 넘어가기 전 길목에 위치한 선바위 관광지내에는 영양군에서 운영하는 반드시 방문해야 할 영양군만의 관광매력지 2개소가 있다. 일교차가 심한 고랭지에서 재배하여 달고 향기가 있는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영양고추와 세계 각국의 고추에 관한 모든 정보를 갖추고 있는 전국 유일의 영양고추홍보관 그리고 분재 130점, 야생화 5,000본 그리고 영양 특유의 폭포석 수석 50점이 전시되어 있는 분재수석전시관 관람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 경북 영양군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다.
<관련 여행정보>
○ 대중 교통정보
- 서울 동서울터미날에서 영양까지 1일 3회 고속버스 운행
(서울 → 안동 고속버스, 안동 → 영양 버스 이용이 편리)
- 청량리 → 안동 열차 이용, 안동 → 영양 버스 1일 38회 운행
○ 자가운전정보
- 경부 또는 중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원주IC) →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 → 34번 국도(진보) → 31번 국도 → 영양군
(약 4시간 30분 소요)
- 경부 또는 중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원주IC) → 중앙고속도로
(풍기IC 또는 영주IC) → 영주 → 36번 국도(법전면) → 31번 국도
→ 영양군 (약 4시간 30분 소요)
○ 숙박정보
- 신라장여관 : 영양읍 서부리, (054)683-3284
- 궁전장여관 : 영양읍 서부리, (054)682-6964
- 일월산관광농원 : 일월면 오리리, (054)683-8008
- 검마산자연휴양림 : 수비면 신원리, (054)682-9009
- 동남장여관 : 입암면 신구리, (054)682-2157
○ 식당정보
- 삼양식당 : 산채정식, 영양읍 서부리, (054)682-4700
- 낙동식당 : 민물메기매운탕, 입암면 신구리, (054)682-4070
- 대전식당 : 민물메기매운탕, 입암면 신구리, (054)682-4037
- 일월산식당 : 염소불고기, 토종닭, 청기면 당리, (054)682-7211
- 한우숯불고기는 영양읍 내에 음식점 다수
○ 참고사항
- 추천상품 : 영양고추가루와 고추장, 초화주(지하 암반수에 맵쌀 당귀, 천궁, 오갈피 등 식물 약재와 양질의 굴을 가미한 상쾌한 맛의 술), 머루랑, 영양곰취나물 등
부안 개암사와 내변산 겨울산행
위 치 : 전북 부안군
추천층 : 가족층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위치한 개암사는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천년고찰이다. 백제 무왕 35년(634)에 묘련왕사가 애초 변한의 왕궁터였던 자리에 절을 세우고 개암사라 칭했다고 전해온다. 그 뒤로 여러 차례 중창되어 대찰을 이루었으나 임진왜란 때에 모두 불타버리고 조선 효종 때에 다시 중수되었다고 전한다. 오늘날의 넓은 절터에는 건물이 몇 채밖에 없어서 단아하고도 소박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찾아오는 사람들도 드문 편이어서 산사다운 고즈넉한 정취를 풍긴다.
양쪽에 느티나무 고목들이 늘어선 돌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처마 끝이 날아갈 듯 경쾌해 보이는 대웅보전(보물 제292호)이 올려다 보인다. 그 뒤편에는 울금바위를 치밀어 올린 산자락이 듬직하게 둘러쳐져 있다. 이곳 대웅보전의 문살에는 간결하면서도 짜임새가 있는 사방연속무늬가 수놓아져 있는데, 절집의 정갈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또한 기와를 중간 중간에 박아 넣고 쌓은 흙담장, 대나무 울타리와 갈대로 둘러쳐진 요사채도 개암사만의 소박한 멋을 느끼게 한다.
대웅보전 뒤편의 산등성이에 솟은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총 3km에 이르는 석성의 자취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 성이 바로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였던 주류성이라는 말이 전해오기도 한다. 울금바위에 올라서면 동쪽으로는 녹두장군의 동학군이 기치를 드날리던 고부들판이 끝없이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봉긋한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포개진 심산유곡이 들어온다. 이 서쪽 방면의 산자락들이 바로 조선팔경의 하나이자 호남 5대 명산으로 꼽히는 내변산이다.
내변산은 말 그대로 안쪽 변산, 즉 내륙 쪽의 변산을 가리킨다. 반대로 바닷가 쪽의 변산은 외변산이다. 그리고 내변산과 외변산이 합해서 변산반도국립공원을 이룬다. 호남정맥의 산줄기 하나가 서해바다 쪽으로 불쑥 뛰쳐나온 형상인 내변산에는 의상봉(509m), 신선봉(486m), 쌍선봉(459m) 등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다. 그리고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에는 직소폭포, 봉래구곡, 낙조대 등의 절경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내변산의 봉우리들은 대체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아래쪽의 계곡에는 수많은 폭포와 여울, 소와 담이 형성돼 있어서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특히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해 바다의 저녁노을과 높이 솟아오른 절벽 위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직소폭포의 경관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장관이다. 더욱이 지난 1995년에 부안댐이 완공된 뒤로는 기암괴석의 봉우리와 울창한 숲, 산영(山影)을 담은 호수가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사가 연발하게 만든다.
개암사에서 내변산으로 가려면 부안군 상서면 소재지를 거쳐 고인돌이 여럿 있는 구암마을에서 736번 지방도로를 타야 된다. 구암마을에서 직소폭포 초입의 사자동까지의 거리는 약 삼십리쯤 된다. 겨울철의 내변산 등산코스 중 가족과 함께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코스는 사자동의 내변산매표소에서 약 2.2㎞ 떨어진 직소폭포까지 왕복하는 코스이다. 느긋하게 걸어서 2시간 내외이면 왕복할 수 있는데다가 힘든 구간이 거의 없어서 눈이 와도 무난한 트레킹코스이다. 더욱이 숲길, 옛 절터, 저수지, 담과 소, 폭포 등을 두루 볼 수 있어서 퍽 다채로운 느낌을 준다.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있다면, 직소폭포에서 곧장 재백이고개를 통해 내소사 방면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산행을 마친 뒤에는 다시 외변산으로 나가 채석강의 해넘이를 감상하거나 변산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기에 좋다. 변산면 대항리에 자리잡은 변산온천은 국내 최초의 해변온천이다. 지하 600m에서 나오는 유황온천수는 피로회복, 신경통, 당뇨병, 부인병, 고혈압들의 질환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온천 내에는 40개의 객실과 사우나탕, 식당, 단란주점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온천욕과 숙박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그밖에도 외변산의 격포항, 궁항, 적벽강, 성천 등지에는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오픈세트장이 조성돼 있어서 한번 둘러볼 만하다.
○ 대중교통 정보 :
-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50분~1시간 간격으로 부안행 고속버스 약 3시간 소요. 부안에서 개암사 입구까지는 줄포, 곰소, 내소사행 군내버스를 이용해 개암사 입구(감교리)에서 하차 후 도보로 3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부안에서 내변산 사자동까지는 하루 8회씩 군내버스 운행.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내외이면 닿을 수 있는 김포의 대명포구는 겨울 포구의 낭만과 활력이 가득하고, 인근 강화도의 국방유적지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아로새겨진 곳이다. 그러므로 당일 일정의 드라이브와 답사기행을 겸한 가족나들이코스로 제격이다.
서울에서는 별로 어렵지 않게 대명포구를 찾아갈 수 있다. 올림픽대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김포 제방도로를 따라가다가 김포시 양촌면의 누산삼거리에서 352번 지방도를 타고 양촌면․대곶면 소재지를 거쳐 곧장 직진하면 금세 대명포구 입구에 당도한다. 그리고 대명포구 입구에서 직진하여 초지대교를 건너서면 강화도에 들어선다.
대명포구는 강물 같은 염하를 사이에 두고 강화도와 마주보고 있다. 그래서 바닷가 포구라기보다는 마치 강가 나루터처럼 마음이 푸근해지고 정겨운 느낌이 든다. 규모는 별로 크지 않지만, 언제 찾아가도 활력이 넘치고 먹거리가 풍부해서 외지관광객들의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대부분 자기 소유의 고깃배 이름을 상호로 내건 횟집들에서는 계절마다 독특한 별미를 내놓는다. 봄에는 꽃게탕과 주꾸미데침, 6~7월 사이의 초여름에는 밴댕이회, 가을철에 접어들면 왕새우구이와 우럭회, 그리고 이맘때쯤의 겨울에는 회나 탕으로 먹는 삼숙이가 일품이다. '삼식이', '삼새기'라고도 불리는 삼숙이는 아귀처럼 못생겼지만, 고기 맛은 우럭 광어보다도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11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많이 잡히는데, 특히 엄동설한이 계속되는 1, 2월에 잡은 것이 가장 맛있다.
대명포구에서 북쪽으로 1㎞쯤 떨어진 곳에는 덕포진이 있다. 조선 숙종 때에 처음 축조되어 1866년의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함대, 1871년의 신미양요 당시에는 미국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먼저 주차장 옆의 덕포진 전시관을 먼저 둘러본 다음, 계단을 올라서면 강물처럼 흐르는 염하와 ‘역사의 땅’ 강화도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이곳에는 손돌이라는 뱃사공의 묘도 있다.
고려 고종이 몽고군의 침입으로 인해 강화도로 피난길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그때 왕과 신하들은 손돌이라는 사공의 배를 탔다. 그런데 염하의 물살이 몹시 거센 탓에 배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하들은 손돌이 왕을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를 칼로 내리쳤다. 쓰러진 손돌은 작은 바가지를 물에 띄우며 “이 바가지를 따라가면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의 말대로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한 왕은 뒤늦게 자신의 경솔했음을 깨닫고 후회했다. 그 뒤로 덕포진 앞의 좁은 물목을 ‘손돌목’이라 불리게 되었고, 손돌이 죽은 10월 20일경마다 어김없이 부는 큰바람을 ‘손돌바람'이라 부른다.
교육관련 용품을 모아놓은 덕포진교육박물관(031-989-8580)에는 1950~70년대의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나무걸상과 책상, 양은도시락 등 추억의 물건 4,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이 박물관은 시력을 잃어 교단을 떠나야 했던 부인을 위해 같은 교사였던 김동선씨가 사재를 털어 세운 것이다. 학교의 교실에서 사용하던 갖가지의 비품과 교과서, 교재도구들뿐만 아니라 전통 농기구들도 전시돼 있다. 이곳은 전시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학생들이 교실에 모이면 ‘땡땡땡’하는 시작종이 울리고 곧이어 수업도 시작된다. 여선생님이 들어와서 반장을 뽑고 인사를 나누고는 풍금을 울린다. 어른들에게는 아득한 옛적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부모세대의 소박하면서도 순수했던 학창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래서 가족단위의 체험행사장이나 어린이들의 현장학습장으로도 안성맞춤이다.
대명포구 근처의 약암온천은 찬바람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이곳에는 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다는 홍염천탕이 있다. 이곳 온천수는 400m 지하의 암반에서 끌어올린 해수인데, 철분과 무기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밖으로 나온 지 10분쯤 지나면 색깔이 붉게 변한다. 그래서 홍염천(紅鹽泉)이다. 강화도령이었던 조선 철종 임금도 이 지역을 행차하던 중에 눈병이 나자 이 물로 눈을 씻었더니 눈병이 나았다고 전해지며, 그 뒤로 ‘약암’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약암온천에서 다시 큰길로 나와 좌회전하면 바로 초지대교에 들어선다. 이 다리를 건너면 강화도이다. 강화도처럼 역사적으로 큰 사건을 많이 겪은 고장도 흔치 않다. 한반도의 한가운데이자 한양과 개경의 길목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염하’라는 천혜의 방어선, 1년 농사로 3년을 먹고살 정도로 풍부한 물산 등의 조건을 갖춘 강화도는 우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조선시대 말기에는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등지에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투가 수 차례 벌어지기도 했다.
그중 광성보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1871년) 때의 격전지 중 하나이다. 특히 미국이 1886년에 자국의 상선 셔어먼호가 평양 대동강에서 우리 백성들의 의해 불태워진 ‘셔어먼호사건‘을 핑계삼아 일으킨 신미양요 때에는 가장 치열한 싸움터였다.
최신식 무기와 함대를 앞세우고 강화도 앞 바다에 나타난 미군은 맨 처음 초지진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다음날에는 북쪽으로 올라와 덕진진을 점령한 뒤 광성보로 진격했다. 미군은 먼저 함포로 집중적으로 쏘아댄 다음 육지에 상륙했다. 이때 광성보를 지키던 어재연 장군의 군대는 포탄과 탄약이 떨어지자 칼과 창으로 미군을 맞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맨주먹으로 48시간이나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결국에는 어재연 장군과 그의 동생 어재순을 포함해 아군 350여 명이 전사했다. 이 싸움에서 아군은 크게 다쳐서 어쩔 수 없이 사로잡힌 20여 명을 빼고는 항복한 군사가 단 한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이 전투에 참가했던 어느 미군은 훗날 이런 기록을 남겼다.
“조선 군대의 용기는 참으로 놀랄 만하다. 죽기를 각오하고 맨손으로 맞서 싸우고 결코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물에 떨어져 죽거나 자결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부상자들은 우리에게 흙을 뿌렸다. 우리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자랑스런 일이 아니며, 오히려 장렬하게 전사한 조선 군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지금도 초지진의 성벽과 그 옆의 늙은 소나무에는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에 외적들이 쏘아댄 포탄 자국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덕진진에는 당시 대포발사대인 남장포대가 복원돼 있다. 광성보에서 용두돈대로 가는 산책로 옆에는 미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어재연 장군과 조선군들의 묘가 있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나라를 사랑했던 이름 모를 선조들이 묻힌 곳이라, 그 앞에 서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지게 마련이다.
○ 문의 전화 : 김포시청 문화관광담당(031)980-2471
강화군청 문화관광과(032)930-3220
○ 대중교통 정보 :
- 서울에서
신촌(기점) → 김포공항(송정역) → 김포 고촌 → 김포터미널 → 마송 → 김포대학 → 강화
- 인천에서
인천시외버스터미널 → 석바위 → 제물포 → 송림동 → 검단 → 양곡 → 김포대학 → 강화
○ 자가운전 정보 :
- 100번 서울외곽 순환 고속도로 이용시: 100번 서울외곽 순환 고속도로를 이용 김포 나들목 (김포IC)에서 김포/강화방면 진출하여 48번 국도를 타다가 양촌면 누산삼거리에서 352번 이용.
- 88올림픽대로 이용 시: 88올림픽대로의 끝 지점에서 김포제방도로를 타고 누산삼거리까지 간 다음 352번 지방도 이용
첫댓글 대장님 고맙습니다. 영양 오시면 저희집에서 식사대접하겠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곳입니다.스크랩 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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