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도야. 너 학교갔다가 염라대왕 이마에 키스를 하는 수가 있다."
"갈거야. 오늘 진학상담한데."
"오늘 아니면 선생이 죽기라도 하냐? 비도 오잖아, 그냥 누워서 쉬어!
이렇게 아픈데 학교가는 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다!"
"나 학교 자주 빠져서 오늘은 가야되."
"뭐?! 너 학교도 빠지고 그랬어?!"
"갔다올께."
말은 심술맞게 해도 걱정스러운 눈길로 날 바라보는 언니에게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 주곤 현관문을 잡았다.
한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를 누군가가 내려치는 것 처럼 띵하고 아파왔다.
온 몸에 안 쑤신 곳도 없고, 먹었다가는 모두 개워낼 것 같아서 매일 챙겨먹던 아침밥도
거르고 말았다.
"하아.."
감기 몸살이겠지. 어제 그렇게 비를 맞았으니.
엘레베이터를 탔을 뿐인데도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닦아 내다가 문득 손을 보았다.
하얀 붕대로 감긴 손.
한 순간에 수 많은 감정들을 불러 일으킨다.
멍청히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지환오빠의 부축을 받으며 집에 온 나를 본 언니는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고 조용히 내 손의 상처를 제대로 소독하고 치료해 주었고,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도리어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간 지환오빠를 보내곤
울고 있는 내 머리를 쓰다 듬어 줄 뿐이었다.
물어봐 주지 않아서 고맙고, 믿어준다는 말을 해줘서 더 고마웠다.
1층에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고, 벽에 기댔던 몸을 세웠다.
장마긴 장만가 보다. 비가 사정없이 땅을 내려치고 있다.
저 사이를 어떻게 걸어갈까 하는 생각에 잠시 한숨을 내쉬다가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만나.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
손이 불편해서 제대로 써지지 않아 한 쪽 손으로 버튼을 꾹꾹 눌러가며 문잘 보냈다.
전송을 위해 확인 버튼을 누를까말까 망설이다가,
이 망설임이 그 나쁜 자식을 영영 잃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저없이 확인 버튼을 누르곤
진동이 오면 잘 알수 있게 치마 주머니 안에 핸드폰을 집어 넣었다.
"빨리 비 그쳤으면 좋겠다."
고갤 들어 하늘을 바라보다가 한숨이 뒤섞인 말을 내뱉곤 우산을 펼쳤다.
밖으로 걸어가자 금새 신발 젖었고, 비가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가 아팠다.
아니. 귀가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다 착각이라고, 그만 하자고 나에게 말하는 이수의 목소리가 오버랩되어 들리는 것 같다.
더위가 가셔서 좋긴하지만..그냥, 어서 장마가 그쳤으면 좋겠다.
***
"손은 다친거니?"
"넘어졌다가 유리에 찔렸어요."
"조심 좀 하지."
담임은 핀잔 섞인 말투로 내 손에 시선을 주더니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를 뒤적인다.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다른 쪽 손으로 다친 손을 감싸 쥐고는 시선을 떨궜다.
방과후. 상담실에 마주보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이다.
날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담임에게서 좋은 말이 나올 리는 하나도 없을게 분명하다.
요즘들에 학교를 빠진 일도 꽤 있었고, 류강노와 잡혀서 반성문 쓴 일도 있었으며
류강노가 큰 사고를 치던 날, 옆엔 통곡을 하던 내가 있는 모습을 봤을게 뻔하니까.
오늘 하루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쉬는 시간에 양호실로 내려가 진통제를 받아서 먹었는데도 나아지기는 커녕 더 몸이 아렸다.
무슨 열병이 이렇게 지독해.
담임이 두 개로 보이는 듯한 착각에 손으로 눈을 지긋이 눌렀다가 땠다.
"몸도 안 좋은 것 같은데."
"아니요. 괜찮아요."
"휴. 라희야. 내가 다른 말은 안 하겠다. 너도 요즘에 니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알 것 아니냐."
"네."
"내신 살펴보니까 아무래도 1학기 수시로 가기는 힘들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의고사 점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이번 달에 본 모이고사는 완전 죽을 쒔더라.
니 점수 보이지. 언어랑 외국어는 그나마 괜찮은데 수리랑 사탐이 바닥이야.
수리는 이번에 어렵게 나왔다쳐도 사탐 떨어졌다는 건 다 니가 소홀히 했다는 말 밖에 안돼."
숫자가 눈 앞에서 아른 거린다.
A4용지를 가득 매운 표 사이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 쳐진 내 이름과 떨어진 내 점수가 보였다.
이런 건 신경쓰고 싶지 않은 기분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현실이라는 것에 고갤 주억거렸다.
탁탁. 볼펜을 흔들며 가볍게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가 바늘이 되어 머릴 찌른다.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곤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담임을 보았다.
"학기 초에 적어낸 종이에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적었는데, 구체적인 생각은 있어?"
"....아니요."
"무슨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을 거 아냐."
"...없어요."
"그런 건 아직 확실히 결정을 못했을 수도 있어.
근데 아직까지 결정을 못했다는 건 다른 애들에 비해서 니가 타격이 크다, 라희야.
이제 8월이 다가와. 아직 시간 많은 것 같지. 수능이 코 앞이야.어?"
".........."
"그럼 가고 싶거나 정해놓은 대학이라도 있어?"
선생님의 물음에 입을 다물곤 고갤을 살짝 내저었다.
이 것만으로도 머릿 속이 뒤엉켜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상태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정신적인 압박까지 받게 되니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담임 앞에선 눈물을 보일 순 없기에 손에 힘을 주어 치마를 구겨 잡았다.
그 동안 무의식적으로 피하기만 했었던 것들이 한 순간에 다가오자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이게 현실이지. 나에겐 앞으로 다가올 수능이 있고, 대학이 있었지.
"혹시 류강노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지?
라희야. 고작 남자 때문에 자기 앞 길 추스리지도 못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을 하는 거야."
"아니에요.."
남자 때문에는 맞는데, 류강노 때문엔 아니에요.
선생님. 전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나봐요.
아픈데,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픈데 아이러니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담임의 시선이 느껴졌고,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우곤 담임을
바라보았다.
"제가 뭘 하고 싶은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보고 찾아서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앞으론 학교 공부 착실히 할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날 위해서가 아니라, 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래. 한 번 믿어볼께. 이만 가봐."
탐탁치 않다는 표정을 하더니 이내 말은 날 믿는다는 이야길 해준다.
담임에게 고갤 숙여 인살하고는 조용히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학교만 나가면 된다. 그럼 그나마 몸이 괜찮아 질지도 몰라.
어질거리는 머리로 힘겹게 복도를 걸어 학교를 빠져나왔다.
여전히 하늘에선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고, 쏟아진다는 말이 딱 맞다.
하늘에 구멍이 뻥하고 뚫린 것 같아.
아침과 마찬가지로 우산을 펴기 전에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상담 중이였기에 예의상 꺼둔 핸드폰의 전원을 누르고 화면을 보는 동안 묘하게 심장이 두근댄다.
제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메세지를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였다.
"망할새끼."
모든게 다 지 멋대로지.
멋대로 내 칵테일 뺏어가 듯 내 마음 가져가놓고 이제와선 멋대로 그만두자는 말만 남기고 사라지고..
통화버튼을 눌러보았지만 바로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는 소리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우산을 펴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발을 내딛으며 많은 생각을 한다.
병원은 가기 싫은데 이대로 집으로 향할까 아님 클럽으로 가 볼까.
지환오빠한테 이수를 보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이수를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어딜까. 어딜가야 널 볼 수 있니.
"난 사랑하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이제보니까 사랑하는게 더 힘들어."
들을 사람도 없는 걸 아는데, 너에게 하고 싶은 얘길 비에 대고 한다.
이 말은 다 빗 속에 묻히겠지?
내가 너 때문에 왜 힘들어 해야하는지, 억울해서 이젠 눈물도 안 나와.
사랑하면 자기만 힘든 줄 알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힘들어 하면서 하는게 사랑인데.
자기 혼자만 무슨 유별나게 사랑을 한다고 이러는 거야.
내 마음 아프게..
"응."
[어디야?]
"학교에서 나가는 중."
[몸은 어때? 괜찮아?]
"응,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마. 언닌 집이야?"
[아니..그게...]
진동에 놀라서 허겁지겁 꺼낸 핸드폰엔 언니라는 이름이 떴고,
난 서운한 목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추스리며 전활 받았다.
내 안부를 물어보는 언니는 집이냐는 물음에 말 끝을 흐렸다.
무슨 일 있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눈썹이 찡그려진다.
"왜 뭔데? 말해봐."
[조별 과제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가야 될 것 같아..진짜 미안해.]
"아냐. 괜찮아. 뺀질대지 말고 잘 하고 들어오기나 해."
[진짜 괜찮겠어? 미안해! 언니가 맛있는 거 사들고 들어갈게! 알았지?]
"알았어, 끊어."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가 없는데 언니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기 일보직전이다.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언니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주곤 전활 끊었다.
학교도 힘들겠지. 맨날 과제다 모임이다 정신 없어 죽겠는데 나까지 신경쓰는 언니에게
미안해진다.
담임한테 안 좋은 소리만 듣는 내가 뭐가 좋은 동생이라고 잘해주냐.
핸드폰을 넣으려다가 여전히 비어있는 메세지 함에 우울해진다.
"엣취!"
갑자기 나온 기침에 서둘러 발을 옮겼다.
집에가서 약을 먹고 2시간 만 자고 일어나면 깨끗히 나아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빨리 나아서 날 슬프게 만드는 이수를 찾아 붙잡겠다는 결심을 했다.
※달콤한 착각 53※
가졌다고 착각한 순간 넌 잃을 것이다. Witten By. 형광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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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일이야."
"우와. 너 괜찮냐? 얼굴이 빨개!"
약을 먹고 자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자 류강노가 씩 웃고 있다.
내 상태를 보더니 바로 얼굴을 굳힌 류강노가 내 안색을 살핀다.
나는 왠지 모를 짜증에 한숨을 내쉬며 괜찮다고 대답을 하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 괜찮아."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누님한테 전화와서 혹시나하고 와 봤더니 장난아니네."
내 이마에 다가오는 손에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어 피했다.
고의는 아니였지만 멋쩍게 웃는 류강노의 모습에 괜히 내가 잘 못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난 너를 보면 화를 냈던 이수의 모습이 생각나는 걸 어떻게.
"일단 죽은 사왔어. 약 좀 먹었냐?"
"응. 먹었어."
"병원은."
"........."
"그럴 줄 알았다! 애도 아니고 병원 엄청 싫어해, 아무튼. 거기에 가면 이쁜 누나들 있고 얼마나 좋은데!"
아픈 사람한테 참 좋은 소릴 하는 류강노를 흘겨보다가 거실에 깔아 놓은 이불 위에 앉았다.
내 눈길에 또 다시 멋쩍게 웃은 류강노는 식탁에 죽을 내려놓곤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나를 바라본다.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계속 보고 있자니 이수가 화내는 무서운 모습이 생각나서 고갤 돌렸다.
"야, 너 뭐야!"
"왜."
"오늘 따라 왜 이리 쌀쌀맞냐, 어?"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냐! 아주 싸늘한 눈빛에 얼겠네, 얼겠어."
따지고 보면 류강노가 잘못한 것도 하나도 없지만 좋게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이수랑 내가 눈 앞에서 입을 맞추는 모습을 봤으면서 태연하게 행동하는 류강노의
모습에 괜히 기분이 이상해진다.
언니가 아침에 식탁에 올려놓은 사탕을 먹으며 어슬렁 거린다.
머리 아파 죽겠는데 가만히 앉아 있기라도하지. 인상을 찡그리며 쳐다보자 이번엔 덩달아
인상을 구긴다.
"알겠다! 나 때문에 이은환 선배랑 싸웠냐? 그래서 그러지?"
"......뭐."
"싸웠지? 그치?"
태연한 표정으로 날 놀리는 류강노의 태도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그보다 자꾸 니가 이수 얘기하니까 생각나서 미치겠잖아.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곳을 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머리도 뜨겁고, 눈도 뜨겁고. 태버릴 것 같다, 진짜.
"내가 뭔 짓을 했다고! 아이스크림 먹은 것 밖에 없는데!! 와, 씨! 아까도 완전 날 죽일 듯이 보는거야!!
친구 놈들 다 쫄아서 제대로 당구치지도 못하고! 이러다가 나 장가도 못가고 죽겠다, 어? 니가 잘 좀 말해봐."
"뭐?"
"아무리 내가 들이대는 거라지만 이거 너무 심하게 나오시는 거 아니냐고, 진짜!"
"류강노."
"아오씨. 이러다가 살인나겠다니까. 눈빛이 아주 레이저야, 레이저. 뭐 그런 쫌스런 인간이 다 있나 몰라."
"류강노!"
"어, 왜?"
"다시 말해봐."
"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류강노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다시 말해봐. 방금 말했잖아. 이수 봤다며.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머리가 핑 하고 도는 것 같았다.
"이수. 어디서 봤다고?"
"여기 오기 전에 당구장."
"어디. 어딘데!!"
"야! 너 왜그래. 어? 어?! 야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몸을 일으켰다가 어지러움에 주저 앉을 뻔 한 걸, 류강노가 잡아줬다.
나는 몸을 추스리곤 류강노의 팔을 잡아 끌고 현관으로 향했다.
당장 찾아야 한다. 난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자기는 한가하게 당구나 치고 있다 이거지.
억울하고 억울해. 나쁜 새끼.
"미쳤어. 너 왜 그래!!"
"데려다 줘. 이수한테 데려다 줘!!!!!"
"홍라희.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러고 나갔다가 너 골로 가!!"
"괜찮으니까 빨리!"
"야!!"
"지금 여기서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빨리 데려다 줘!!!"
"허..참내!"
내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고갤 흔드는 류강노를 보곤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었다.
그런 나를 돌려 세운 류강노는 제법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내 어깰 잡는다.
"이 상태로 안돼, 홍라희."
"내가 가자잖아!! 그냥 데려다 달라고!!!"
"난 내가 좋아하는 여자 먼저 보내기 싫다."
"그럼 여기서 죽어? 그래 볼까?! 내가 못 할 거 같니?!!!"
"홍라희!!!"
"딱 한 번만!!! 내가 이런 부탁 안하잖아!!!!"
내 소리침에 류강노는 굳은 얼굴로 실소를 내뱉고는 손으로 이마를 집는다.
눈에 힘을 주어 그 모습을 보다가 단념한 얼굴로 알았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는 류강노를
확인하곤 현관문을 열었다.
어떻게 아파트 앞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아 탔는지 기억해 내지도 못할 정도로 정신이 몽롱해졌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류강노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할게 뻔했기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노력했지만 류강노 눈엔 다 보였나 보다.
집에서 나올 때 들고나온 내 가디건을 말 없이 주곤, 한숨을 내쉬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미안. 너한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삼키며 반대편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야?"
"어."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더 할께. 여기서 기다려줘, 나 혼자 들어갈께."
혹시라도 같이 들어가면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류강노에게 또 한번 부탁을 했다.
류강노는 내 말에 고갤 끄덕이더니 들어가 보라고 턱짓을 한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는 듯한 뒷 모습을 보다가 당구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끄러운 목소리들과 뿌연 담배연기가 한대 뒤섞인 곳.
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쉽게 내가 원하는 사람을 찾았다.
보자마자 눈물이 나올 것 같고, 울지 않기 위해 찡해지는 코 끝을 한 번 잡고는 이수에게 다가갔다.
처음보는 친구 2명과 함께 당구를 치는 모습은 시끄러운 당구장에서 색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이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분위기고, 이수가 아니면 만들어 낼 수 없는 분위기.
"수야.."
이수에게 다가가 한 걸음 남겨놓고 멈춰서선 이수의 이름을 불렀다.
나도 모르게 끝이 갈라지는 목소리에 부끄러웠지만 괜찮았다.
이수니까, 이수라서 괜찮았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두 명의 친구와는 달리 들리지 않은 것 마냥 계속해서 당구를 친다.
"이수.."
"........."
"이은환."
계속해서 그 이름을 불러봐도 들리는 건 수근거리는 친구들의 말소리 뿐.
무시할 거라는 건 대충 예상하고 있었기에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렀다.
니가 어디까지 하나 봐. 나도 한 고집하는 사람이야.
"어디 갔었어, 계속 찾았잖아."
"..........."
"문자 받았어? 왜 씹고 그러냐."
"..........."
"이거 완전 나쁜 놈이야. 세상에서 문자 씹는 놈이 제일 나쁜 놈인거 몰라?"
"..........."
"후..나 여기 오려고 미친 소리도 하고 막..!!!!"
쾅!!!
커다란 굉음에 모두의 시선이 향하고 놀라서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이수를 바라보았다.
이수 손에 들려져 있던 당구채의 반쪽은 이미 바닥에 떨어졌고,
내려친 당구대 또한 성치 않았다.
얼마나 강하게 내려쳤으면 당구채가 부러져.
무표정한 이수의 얼굴을 보다가 얼마나 꽉 쥐었으면 핏줄이 서 있는 손을 보았다.
참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꺼져."
"힘들게 찾아왔는데...꺼져가 뭐냐..아무튼 말버릇 더러워."
"그만하고 꺼지라고."
"꺼지라고 하기 전에 한 번 눈 마주치면 어디가 덧나?"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꺼지라고!!!"
"하하..이제야 마주치네."
눈물을 삼키며 애써 웃었다.
화난 표정으로 이수가 소리칠 때마다 심장이 들었다 놓아지는 기분이었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그냥 다 소리치고, 다 화낸 다음에 다시 내 옆으로 오기만 하면 된다.
"너 가고 나 엄청 울었어. 찾느냐고 막 비 맞았다. 그래서 몸살 걸렸어.
38.9도래. 나 머리가 핑핑 돌고 엄청 아파. 그리고 넘어졌는데 유리에 찔려서 손도 다쳤어, 이거 봐."
"그만하고 꺼지란 소리 안들려?!"
"아픈데 정신도 못차리겠는데 니 얼굴은 꼭 봐야겠는 거야..그래서 왔어.
그러니까 이수야. 힘든 거 내가 다 받아 줄테니까 다시 내 옆으로 와. 응?"
이수에게 한 걸음 다가가 손을 붙잡았다.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우는 것도 아니고 화내는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이수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왜이리 서투르게 구는 걸까. 동네 애들 다 패고 다니는 못된 유치원 애 마냥.
참으려고 했는데 이수의 손을 잡은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놔."
"혼자되게 안 만들께. 나 끝까지 니 옆에 있을게."
"놓으라고!!"
내 손을 뿌리치는 이수의 힘에 밀려나게 된 나는 순간 등에 부딪히는 느낌에 고갤 돌렸다.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무표정의 류강노가 서 있었다.
"홍라희. 선배한테 이런 취급 받을 이유 없습니다."
"하.."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했잖아. 다시는 그 차가운 눈으로 날 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그래. 왜 그런 눈으로 봐.
주저 앉아 울고 싶었지만 류강노의 입을 막아야 했다.
충분히 이수 화났으니까 거들지 않아도 되니까. 제발!
고갤 흔들며 류강노를 밀어 보았지만 밉게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잘됐네."
자조적인 한마디를 내뱉고 우릴 지나쳐 가는 이수의 모습에 따라 잡으려 했지만,
류강노에게 잡히고 말았다.
류강노의 팔을 때리며 빼내려고 손을 흔들어 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놔!!! 이수야!! 이수야!!!"
"홍라희."
"이수..이수! 나 이수 잡으러 가야되! 류강노!! 이거 놔!!!"
"홍라희,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귀자."
짧은 그 한마디에 정적이 흐르고 나는 고갤 돌려 류강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지한 얼굴에 당황해서 눈을 마주치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쾅-
그리고 곧 바로 들리는 문 소리에 고갤 돌려 이수가 사라진 쪽을 보았다.
♬
아..날짜 지난 요구르트의 맛이란 정말..혀 끝을 마비시키네요.
+) 이효리 짱. 무대가 정말 소름 돋았어요ㅋㅋㅋ
+) 태풍 때문에 비가 많이 오네요. 감기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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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착각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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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20 03:18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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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오..조회수0!!
아 제발..... 수 이러면 안되여 정말루 ㅠ_ㅠ 제발... 수 다시 돌아오게 해주세요 제발요 제발
수 어떡해... 아직두 라희 좋아하는거 가튼데.. 암튼 잘됬으면 좋겠다~~~~
수야 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빠알리 완결 나왔으면 좋겠어요..ㅠㅠ 하루 죙일 새로 나온 편 챙기느라 등골빠져,,ㅌㅋㅋㅋㅋㅋㅋ
수랑 다시 잘되게 해주세얌!!!!
앗라희랑이수더멀어지면 안되는데...ㅜ
우어어엉.. 수야가 왜그러죠.. 빨리 잘됬음 좋겠다.. 다음편 기대할래요!!
으아아아아 수!!!!!!!!!!!!!!!!!!!!!!!!!!!!!!!!!!!!!!!!!!!!!!!!!!랑잘되야지당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제발 수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제발베라벨바ㅔ라베라바루 수야 왜그래 ㅠㅠㅠㅠㅠㅠ
라희가 너무 불쌍해요 ㅠㅠ...
강노야~~~~~~~~~
ㅜ.ㅜ.ㅜ.ㅜ.ㅜ.ㅜ.ㅜ
강노도불쌍하지만......수야왜그래!!!!!ㅠㅠ그러지마...
강노가 제일 불쌍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으헝...
꺄아아아악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언제 평화가 찾아올까요 ㅠㅠㅠㅠㅠㅠㅠ
강노만 불쌍함... 이수 나쁘다.;;
얼.................................
수야 왜그러니?ㅜ
수 진짜 화 많이 났나보네ㅠ
수야 왜그래 왜ㅠㅠ
...............................................................오노마이강노
휴.
수야 ㅠ_ㅠ 그냥 라희랑 잘되면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