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정직․설명력이 3大 조건 ●최악의 답변은 『노코멘트』 ●유머는 없어도 설득력이 엄청났던 닉슨 ●책임회피 않아서 위기 탈출한 케네디 ●솔직한 시내트라 |
李南圭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주요내용
「위대한 커뮤니케이터」 레이건 / 인터뷰에 적합한 사람 - 시내트라, 트루먼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연설가는 쿠오모
유머를 사용할 때 하면 안 되는 말들
고어와 페로의 대결 / 최악의 답변은 「노 코멘트」
「위대한 커뮤니케이터」 레이건
/ 인터뷰에 적합한 사람 - 시내트라, 트루먼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고,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지도 않은 영어 단어로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라는 말이 있다. 「전달자」라고 直譯(직역)하기도 이상하고, 原語(원어)대로 「커뮤니케이터」라고 쓸 수밖에 없는 이 단어의 의미는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잘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다.
미국 - 특히 政界(정계) - 에서는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정치가 「끊임없는 설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로널드 레이건이다. 이렇다 할 정치적 배경을 가지지 못했던 이 캘리포니아 출신 老정치인이 워싱턴에 진출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할아버지처럼 조용히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는 즉각 미디어로부터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란 별명을 얻었다. CNN 방송이 작년에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지 부시, 지미 카터,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등 4명의 전직 대통령들 중 레이건 前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43%로 가장 높았다.
CNN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의 사회자 래리 킹은 「커뮤니케이터 達人(달인)」 ( CBS 앵커 댄 래더)이란 말을 듣고 있다. 「래리 킹 라이브」는 1985년 시작이래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이 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토크쇼에 등장한 사람은 각계 각층의 명사 등 3만5000여 명에 달한다. 래리 킹은 1999년 사형집행 직전의 女사형수와 가진 인터뷰로 TV보도부문 에미상을 받았고, 1997년에는 63세의 나이로 37세의 광고모델과 일곱번째 결혼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USA 투데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한 그는 책도 여러 권 썼다. 그 중에는 「How to Talk to Anyone, Anytime, Anywhere」라는 對話術(대화술)에 관한 책이 있다. 우리 정치인들이 이 책을 한 번 읽었더라면, 21세기를 여는 正初(정초)의 與野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인터뷰에 적합한 사람 - 시내트라, 트루먼
래리 킹은 뉴욕시의 빈민가 브루클린의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 학교를 졸업한 후 떠돌아다니다가, 스물세살 때 마이애미의 조그만 라디오방송국에 서 3주일 동안이나 매니저를 조른 끝에 週給(주급) 55달러로 아나운서 일을 시작했다. 이때 그는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매니저의 지시대로 姓(성)을 자이커에서 킹으로 바꾸었다.
킹은 대학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어렸을 때 「Big Mouth(떠버리)」라는 별명을 들었을 정도로 언변이 좋았다. 그가 방송인으로서 성공한 것은 정직과 성실을 신조로 삼고,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였다고 말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그의 토크쇼에 출연한 사람은 빌 클린턴(3회), 매들린 올브라이트(10회 이상) 등을 꼽을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크렘린 내부에서 많은 논란을 거친 끝에 그의 쇼에 등장했다. 킹은 그의 방송인 생활을 통해서 각계 각층 의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그 중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한 사람도 있었고,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의 상대로 적합한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 열의를 가지고 있고, 그 일을 명확하고 흥미 있게 설명할 줄 알며, 사물에 대해 적극적인 반응을 하고,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킹은 그런 사람의 하나로 프랭크 시내트라를 꼽고 있다. 시내트라는 신문기자를 싫어했지만, 일단 토크쇼에 나오면 편안하고 솔직하게 음악이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유머감각이 뛰어났고,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킹은 정치인 중에서는 해리 트루먼이 가장 편안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였다고 말하고 있다. 트루먼은 항상 자기 일에 정열을 쏟고 있었고, 정책 목표를 알기 쉽게 설명할 줄 알았다. 특히 신문기자나 경쟁자인 공화당원을 붙잡고 이야기할 때는 모 두들 배를 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는데, 대부분 자신을 소재로 한 유머였다는 것이다. 리처드 닉슨도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유머를 즐겼지만, 별로 인상적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대신 그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분석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결과를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닉슨은 이밖에도 광범위한 분야에 흥미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장사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팝송이나 야구에 관해서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궁 무진한 대화의 소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특히 야구에는 거의 狂的(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더라면, 스포츠중계 아나운서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닉슨은 사위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와 함께 지역 리그 소속 야구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연설가는 쿠오모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대통령선거에서 두 번이나 아이젠하워에게 패배한 불운한 정치인이었다. 그에게는 흔히 지식인을 경멸하는 뜻으로 사용되는 「Egghead」란 별명이 따라다닐 정도로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지식인이었다. 킹도 그 때문에 대통령선거에서 그에게 투표를 했다고 한다. 스티븐슨은 뛰어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았고, 자신을 유머의 소재로 즐겨 사용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겸손이었다고 킹은 회상하고 있다. 대체로 정부․기업․연예계 등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감이 강하고, 독선적이기까지 하지만, 스티븐슨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명문가의 一員(일원)이었던 로버트 케네디도 자신을 유머의 소재로 삼는 데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고 한다. 워싱턴 정가에서 그를 언급할 때는 항상 「냉혹하다」는 말이 따라다녔지만, 유머감각은 그렇지 않았고, 누구보다도 훌륭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고 킹은 회고하고 있다. 킹은 자신의 책에서 마리오 쿠오모 前 뉴욕 州知事를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연설가라고 극찬하고 있다. 198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민주당 全黨大會(전당대회)에서 쿠오모 知事의 기조연설을 들은 한 민주당원은 처음으로 자기가 민주당원이란 사실에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쿠오모는 원고가 있든 없든, 청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1950년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2군 팀에 서 외야수를 맡고 있던 쿠오모는 어느 날 투수가 던진 공을 머리에 맞고 몇 주일 동안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그는 유명한 감독 브랜치 리키로부터 메이저로 진출할 수 있는 소질은 없지만, 머리가 좋으니까 로스쿨에 가서 법률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 충고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덕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훌륭한 충고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능력의 한계를 알았던 것이다. 킹은 아무리 좋은 소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좋은 대화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예컨대 가수 아니타 브라이언트는 지나치게 종교에 심취한 나머지, 무슨 주제에 대해서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코미디언 봅 호프도 대화의 상대로 이상적인 사람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그렇지 않다고 킹은 말하고 있다. 봅 호프는 어떤 주제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예외 없이 모든 대답을 개그로 대답한다고 한다. 내셔널 리뷰지의 발행인이었던 윌리엄 러셔도 좋은 대화 상대자는 아니라고 킹은 말하고 있다. 그의 極右的(극우적)인 독단은 뉴트 깅리치, 패트 뷰캐넌, 댄 퀘일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깅리치, 뷰캐넌, 퀘일 등은 모두 잘 웃을 줄 알았고, 농담을 받아주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 주었는데, 러셔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셔는 리처드 닉슨이 사망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닉슨에게 했던 가장 가혹한 말은 「탈리도마이드 장애아가 팔이 없이 태어난 것처럼, 그는 원칙이 없이 태어난 사람」이라고 지적했던 것이다』
유머를 사용할 때 하면 안 되는 말들
연설은 대체로 그 내용이 무겁고, 심각하며, 대체로 청중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게 마련이다. 여기서 연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분위기는 더 심각해진다. 킹은 아무리 심각한 주제일지라도 가능하면 한두 개 유머를 첨가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럴 때도 다음과 같은 말로 유머를 시작하면 오히려 청중들의 흥미를 반감시킨다고 킹은 충고하고 있다.
▲간단한 농담을 하나 하겠습니다.
▲오늘 이곳에 오다가 재미있는 일을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농담을 하나 하겠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농담입니다.
▲재미나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미 알고 계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들어보십시 오.
유머를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갈 때도 군더더기 말은 피해야 한다고 킹은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것은 농담이었습니다…』 같은 것이다. 그보다는 그 농담의 결론이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킹은 1930년대 유명한 영화배우이자 칼럼니스트였던 윌 로저스의 사례를 즐겨 소개한다. 로저스는 어떤 모임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전쟁의 가장 큰 문제가 독일 잠수함 U보트가 우리 배를 격침시키고 있는 데서 생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서양을 가열해서 끓게 만들면 독일 잠수함들은 물 속에 숨어 있을 수 없으므로 水上으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다가 U보트를 하나씩 해치웁니다. 오클라호마에서 수렵시즌에 사냥꾼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연히 여러분은 대서양을 어떻게 비등점인 섭씨 100도까지 가열할 수 있느냐고 물으실 겁니다. 제 대답은 「그런 것은 기술자가 해결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는 정책 수립자일 뿐이니까요』
청중들의 웃음이 수그러들면, 로저스는 『그것이 바로 정책수립과 수행의 차이점』이라고 지적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유명한 영화배우 재키 글리슨은 뉴욕시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있다고 선언했다 . 모든 도로를 북쪽으로 향하는 일방통행으로 만들어 뉴욕주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떠넘기면 된다는 것이다. 청중들의 웃음이 수그러들면, 그는 『문제의 해결책이 필요이상으로 복잡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유머를 사용해서 질문을 회피하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백악관에 있을 때, 청년민주당원들이 그의 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기자 회견장에서 어느 기자가 이 문제를 질문했을 때, 케네디는 장황하게 자기 정책을 옹호하는 대신 미소를 지으며 완곡하게 그들이 아직 어리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청년민주당이나 청년공화당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시간이 우리편이란 사실입니다』
고어와 페로의 대결 / 최악의 답변은 「노 코멘트」
1993년 가을 앨 고어 부통령과 로스 페로가 「래리 킹 라이브」에서 北美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하원의 표결을 앞두고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이들의 토론은 그들이 동원한 언어, 바디 랭귀지 같은 면에서 교과서 적인 것이었다. 결과는 페로의 참패로 끝났다. 당시 이 협정을 추진하고 있던 클린턴 행정부는 페로를 비롯한 보수파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해서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다. 고어는 페로와의 정면대결을 결심하고, 래리 킹에게 전화를 걸었다.
「래리 킹 라이브」에서 두 사람이 대결했을 때, 사람들은 페로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로도 그 승리를 바탕으로 일약 전국적인 정치가가 되어 많은 표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페로는 상대를 너무 얕보았다. 고어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상원의원 생활에서 닦은 세련된 토론 매너와 방법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았고, 상대방을 경멸하지 않았으며,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자신 있게 답변을 하고, 상대방이 실수를 하더라도 조롱하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페로는 성급했고, 날카로운 언어로 상대방을 헐뜯고, 서툰 바디 랭귀지를 사용해서 시청자들에게 과연 그 백만장자 사업가가 도전을 감당할 수 있는 지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고어는 페로의 눈을 바로 볼 수 있게 각도를 잡고 앉았다. 페로는 킹을 정면으로 보고 앉아서, 가능한 한 고어의 시선을 피했다. 고어는 자신감과 여유가 보였지만, 페로는 전투적이고, 흥분한 사람처럼 보였다 . 고어는 자신 있게 말을 했지만, 페로는 계속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 토론은 케이블 텔레비전 사상 최대의 시청자인 2500만명이 시청했다.
최악의 답변은 「노 코멘트」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는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하며, 자신 있게 답변을 해야 한다고 킹은 충고하고 있다. 기자들의 질문에 전부 답변할 필요는 없고, 아무도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답변을 거부하기보다는 가능하면 재치 있는 유머로 질문을 회피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어느 경우이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당장 궁지를 모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중에 더 큰 재난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정치인이나 정부관리들은 『지금 답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아직 보고를 받지 못해서 답변을 할 수 없다』, 『재판에 繫留(계류) 중이므로 논평할 수 없다』, 『이미 조사를 시작했으므로 곧 상세한 발표를 할 수 있을 것』, 『假定(가정)을 전 제로 한 질문에는 답변할 수 없다』는 등의 말로 질문을 회피한다.
그러나 최악의 답변은 「노 코멘트(No Comment)」다. 옛날에는 이 방법도 효과적이었지만, 지금은 유죄나 잘못을 시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킹의 충고는 한 마디, 「정직」이다. 그는 1980년대 타이레놀 사건의 예를 들고 있다. 당시 누군가가 슈퍼에 진열된 이 진통제 캡슐에 독극물을 주입했을 때, 제조社인 「존슨 앤 존슨」社는 사태를 숨기기보다는 텔레비전에 나가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존슨 앤 존슨」社를 신뢰하게 되었고, 위기는 극복되었다.
케네디 대통령도 1961년 쿠바침공 실패(피그만 사건) 때 정직과 진실로 일관했다. 그는 이 계획이 아이젠하워 행정부 말기에 시작된 것이라든가, 입수한 정보가 잘못되어 실패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었지만, 모든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美공군은 현명한 미디어 정책을 가지고 있다고 킹은 지적한다. 이들은 평상시 항공기가 추락하면 즉시 「문제의 항공기는 통상적인 훈련비행 중이었고, 조사단이 구성되어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있는 중」이라고 발표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간단한 조처만으로도 사람들은 공군에 대해서 신뢰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
<월간조선 2001. 3월호>
인간적인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교양, 신뢰)
개성은 약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多讀․多作․多商量)
1. 좋은 글은 받아 적는다.(메모)
2. 틈틈히 정리한다.(주제별 스크랩)
3. 좋은 목소리로 읽어보고, 나 홀로 낭송기회도 가져 본다.(발음, 연기)
4. 자주 생각을 모아 본다.(사색, 일기, 기고)
5. 특별한 목적을 취해본다.(집필)
첫댓글 생유~^^
It gives me a lot of help to be a more talented communic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