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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어왕]중에서 리어왕 _ 셰익스피어 作
닥쳐라, 켄트! 딸애와 내 분노 사이에 끼어들지 마라. 한때 나는 저 딸애를 가장 귀여워했다. 딴 애들은 제쳐놓고 저애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코딜리어를 향해) 썩 물러가라. 보기도 싫다! (켄트에게) 저애에게 마음을 의탁하지 않는 한, 무덤만이 나의 안주의 땅이 되는구나! 프랑스 왕을 불러라. 아무도 갈 사람이 없는가? 비어건디 공을 불러. 코딜리어는 자만심을 솔직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자만심과 결혼하라지. 나의 권력과 최고의 지위와 왕권에 따르는 모든 해택을 두 공작에게 넘겨주련다. 나는 그대들이 마련해줄 백 명의 기사들을 거느리고 매달 번갈아 가며, 그대들의 집에 머물고자 한다. 다만, 국왕의 칭호와 자격만은 내가 보유하기로 하고 통솔, 수입 그 밖의 집행권은 사랑하는 두 사위에게 넘겨주겠다. 그 증거로 이 왕관을 벗어줄 테니, 두 공작이 번갈아 가며 사용토록 하라. (왕관을 벗어준다.)
2. [리어왕]중에서 리어왕 _ 셰익스피어 作
폭풍아, 몰아쳐라! 나의 뺨을 찢어라! 사납게 몰아쳐라. 비야, 폭포가 되고 용솟음쳐 쏟아져라. 생각같이 빠른 유황의 불이여! 참나무를 버개는 천지를 진동하는 뇌송이여! 내 흰 머리털을 태워라. 두껍고 둥그런 이 지구를 쳐서 납작하게 만들라. 인간 창조의 모태를 부수고 배은망덕한놈을 만드는 모든 씨를 당장에 없애라. 번갯불아, 뿜어 올라라. 천둥아, 마음껏 으르렁대라! 비야, 바람아, 천둥아 너희는 내 딸이 아니지. 너희를 비난하진 않으련다. 너희에게 준 것이 없으니 내게 복종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네 마음껏 무섭게 쳐라. 너의 노예요, 약하고 멸시받은 이 늙은 나는 여기 이렇게 서 있으련다. 그러나 너희가 악독한 두 딸년의 편이 돼서 이렇게 늙고도 흰머리를 목표로 하늘의 싸움을 일으키다니 너희는 비굴한 사자로구나. 오, 이것은 너무 심하다.
3. [리어왕]중에서 리어왕 _ 셰익스피어 作
아! 필요를 논하지 말라! 아무리 비천한 거지일지라도, 필요 이상의 것이 있는 것이다. 이 배은망덕한 마귀 같은 년들아! 나는 너희 두 년에게 복수하고 말 테다. 그것은 온 세상을 온통 무서움에 떨게 할 것이다. 너희는 내가 울 줄 알겠지만, 나는 울지 않을 테다. 울 만한 이유는 산더미 만큼 있다. (멀리서 폭풍우 소리) 하지만 이 심장이 천 갈래 만 갈래 찢겨져도 나는 절대 울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미칠 것 같다.
4. [리어왕]중에서 애드거 _ 셰익스피어 作
제가 줄곧 돌봐드렸지요. 오, 목숨에 대한 끈질긴 애착이여! 단번에 목숨을 끊기보다는 미치광이로 변장하여 하루하루 연명했지요. 그러다가 두 눈을 잃으신 아버지와 만난 겁니다. 그리고 반 시간 전 저는 비로소 아버지께 제 정체를 밝혔습니다. 승리에 대한 보장이 없는 터라 단순히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자 말씀드린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그것이 화근을 불러일으킬 줄이야. 아버지는 기쁨과 슬픔의 양극단을 오가시다가 그만,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제가 울고 불며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슬퍼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더니 저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서는 자기 몸을 내던지듯 아버지의 유해를 얼싸안고 리어 왕과 자신 사이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비참한 얘기가 있을까요! 그자도 얘기를 하는 동안 생명줄이 가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두 번째 나팔소리가 울렸고, 저는 그자를 거기 그대로 둔 채 일리로 뛰어온 것입니다.
5. [리어왕]중에서 애드거 _ 셰익스피어 作
나는 죄인으로 체포령이 내렸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나무 굴속에 숨어서 잡히는 건 면했구나. 항구란 항구는 다 폐쇄되었고, 어느 곳이든 파수병이 물샐틈없이 경계망을 치고 나를 잡겠다고 눈을 밝히지 않은 곳이 없다. 어쨌든 도망치는 데까지 도망쳐 목숨을 부지해야 돼. 그러려면 구질구질한 거렁뱅이 몰골로 지내야 한다. 가난은 사람을 능멸해서 짐승같이 해놓는다던데 내 모습이야말로 천하고 구차한 행색이어야 해. 얼굴엔 숯검정을 바르고, 허리에는 누더기를 두르고, 머리는 산발을 하고, 비바람이나 추위에도 알몸뚱이로 견뎌내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베들레헴에 있는 미친 거지들이 좋은 시범이 될 것인즉 그들을 본 따자. 이 거렁뱅이들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마비되어 무감각해진 팔뚝에다가 바늘이나 나무의 가시 또는 못이나 로즈마리의 뾰족한 가시를 쫒는 다지. 그런 무서운 꼴로 구차한 농가나, 가난한 작은 촌락의 양 우리, 물방앗간을 찾아다니면서 미친놈같이 저주도 했다가 또는 기도도 외면서 적선을 하라고 떠들어댄다 이 말이지. “불쌍한 거지 털리곳이오, 불쌍한 각설이 톰이오!” 이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이다! 이전의 애드거는 없어지는 거야. (퇴장)
6. [리어왕]중에서 애드거 _ 셰익스피어 作
누가 가엾은 톰에게 무얼 좀 안 주겠어? 무서운 악마에게 불 속으로, 불꽃 속으로, 시대 속으로, 여울 속으로, 습지와 수령 위로 끌려 다닌 이 톰에게 목매어 죽는 밧줄을 걸어 놓고, 수프 옆에는 쥐약을 늘어놓고, 톰에게 교만심을 일으키게 해서, 다갈색 준마에 올라 4인치밖에 안 되는 다리를 건너게 하고 게 그림자를 배반자라고 쫓아가게 했어. 정신을 똑바로 차려요! 톰은 추워요. 아, 덜덜덜. 당신을 회오리바람, 별의 재앙,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소서! 가엾은 톰에게 자선을 좀 베풀어줘요. 악마가 학대하고 있어요. 에잇, 이놈, 이번엔 붙잡고야 말 테다. 여기, 여기는 또 여기, 여기다.
7. [리어왕]중에서 켄트 _ 셰익스피어 作
비록 그 화살촉이 저의 가슴을 꿰뚫을지라도 차라리 활을 쏘십시오. 리어왕께서 광란하시면 이 켄트도 신하의 예를 잃습니다. 폐하께서는 대체 무엇을 하시렵니까? 권력이 아부에 굴종할 때, 충절이 겁을 먹고 입을 다물기라도 하리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권위가 우행에 농락당할 때 명예는 직업의 의무를 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왕위는 그대로 보존하십시오. 그리고 신중히 생각하셔서 이 해괴하고 경솔한 처사를 중지하십시오. 제 목숨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막내 따님이라고 하여 폐하에의 애정이 가장 적은 것은 아닙니다. 또 소리가 낮아, 허공에 울리지 않는다 하여 마음이 빈 것은 아닙니다.
8. [리어왕]중에서 애드먼드 _셰익스피어 作
대자연이여, 그대는 나의 숭배하는 여신, 나는 그대의 법칙에 순종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나는 가증스러운 관습에 희생되고 세상의 괴팍스런 잔소리에 구속되어 형보다 그저 일 년 남짓 늦게 태어났다고 해서 자신의 상속권을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인가? 왜, 내가 서자라서? 천한 출신이라서? 나에게도 준수한 품골이, 멋들어지게 균형 잡힌 육체와 고상한 심성이 있지 않은가, 큰마누라가 낳은 자식보다 뒤질 게 뭐가 있는가? 그런데 왜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낙일을 찍지? 못나서? 천해서? 사생아라서? 서출, 서출이라고 말이야. 자연의 본능이 남의 눈을 속여가며 야성적인 욕정에 못 이겨 생겨난 우리가, 재미없고 김빠진 피곤에 절은 잠자리에서 비몽사몽지간에 생긴 바보들의 무리보다 종자도 좋고 양기도 더 세찰 것이 아니겠는가? 자, 그럼 적자이신 애드거 형님 나리, 난 너의 토지를 차지해야만 되겠다. 아버지의 사랑은 적자에 못지않게 서자 애드먼드에게도 있다. 적자라, 참 멋진 말이군! 그런데 적자 형님, 이 편지가 성공하고 내 계획이 잘만 되면 서자 애드먼드는 적자 형을 짓누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난 가지를 뻗어나갈 것이고 꽃도 피우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 신들이여, 서자를 편을 들어주서소!
9. [벚꽃동산]중에서 로빠힌 _ 안톤 체호프 作
제가 샀습니다. 모두 좀 기다려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머리가 어지러워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네요. (웃는다.) 우리가 경매장에 갔더니 제리가노프는 벌써 거기 와 있었어요. 우리 가예프 선생은 일만 오천 루블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제리가노프는 부채 위에다 삼만 루블을 더 불렀어요.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채고, 나는 그 자를 상대로 사만을 올렸죠. 그러자, 그 자가 사만 오천을 불렀고 난 오만 오천으로 응수했어요. 이렇게 그자는 오천 루블씩 올려 가는데, 나는 일 만씩 올렸죠. 마침내 끝이 났어요. 부채 위에 구만 루블을 불렀더니, 결국 내게로 낙찰 되었어요. 이 벚꽃동산은 이제 제 거예요! 제 거라구요! (호탕하게 웃어댄다.) 오오, 하나님, 벚꽃동산이 이제 내 거예요. 제가 술에 취해 미쳐버렸다고 해도 좋고, 제가 꿈을 꾸고 있다고 해도 좋아요. (발을 구른다.) 그러나 저를 비웃지는 말아주세요.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무덤 속에서 저를 보셨다면 좋았을 거예요. 노상 매를 맞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돌대가리, 겨울에도 맨발로 뛰어다니던 바로 그 동상 걸린 로빠힌이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영지를 샀으니까요.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농노로 지냈고, 여기 부엌에조차도 들어가지 못했던 그 영지를 내가 산 거예요. 이건 생시가 아니에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죠. 이건 마치 뭐랄까. 이것은 당신들이 상상했던 것이에요. 다만 불확실한 것처럼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것이죠. (정답게 미소 지으며 열쇠를 집는다.) 열쇠를 집어던졌군요. 이젠 이 집 살림을 하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려는 거겠죠? (열쇠를 찰랑거린다.) 상관없어.
10. [벚꽃동산]중에서 뜨로피모프 _ 안톤 체호프 作
인류는 자기의 힘을 완성하면서 전진하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있어 현재엔 이해하기 힘든 것도, 언젠가 가까운 장래엔 반드시 명백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찾고, 없는 사람을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러시아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한 인텔리겐치아의 대부분은 아무것도 탐구하지도 않거니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동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금 현재론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인텔리겐치아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하인들에겐 함부로 반말을 하고 짐승을 다루듯이 농군들을 대하고, 공부는 하지 않고, 책 같은 것도 제대로 읽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과학에 대해서는 주둥이만 놀릴 분이고, 예술 같은 것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심각하게 찌푸린 얼굴들을 하고는, 고상한 말만 지껄이며 철학자연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보는 앞에서 일꾼들은 구역질나는 것을 먹고, 베개도 없이 서너 명 씩 한방에 처박혀 자고, 가는 곳마다 빈대와 악취와 습기와 정신적인 물결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정이고 보니, 우리들 사이의 모든 미사여구는 자타의 눈을 속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우선, 요즈음 그렇게도 자주 떠들어대고 있는 탁아소 같은 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도서관은 어디에 있고요? 어디, 내게 좀 가르쳐주세요. 그런 건 다만 소설에서나 쓰고 있을 뿐, 실제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다는 것은 오직 저속하고 불결한 아시아식 생활뿐입니다. 나는 심각한 얼굴 표정을 두려워합니다. 좋아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심각한 이야기도 나는 두려워합니다. 오히려 침묵을 지키는 게 낫지요!
11. [벚꽃동산]중에서 뜨로피모프 _ 안톤 체호프 作
러시아 전체가 우리의 동산입니다. 이 지구는 크고 아름답기 때문에, 그 위에는 얼마든지 훌륭한 곳이 있습니다. (사이) 잘 생각해보세요, 아냐……. 당신의 조부모님도, 증조부님도, 당신의 선조는 모두 농노 소유자로서 산 영혼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과연 이 동산의 하나하나의 벚나무, 하나하나의 잎, 하나하나의 줄기로부터 인간적인 존재들이 당신네들을 노려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과연 당신네들에게는 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겁니까. 산 영혼을 소유한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막론하고, 그런 제도하에서 살았고, 또 살고 있는 당신네들을 모두 변질시켜버려서, 당신의 어머니나, 당신의 아저씨도, 당신네들이 부채 밑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전혀 모르고 있는 겁니다. 남의 대가로, 즉 당신네들이 현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있는 그 사람들의 대가로 살고 있다는 것을 당신네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이백 년쯤은 뒤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렇다할만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거에 대해서도 뚜렷한 정견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그저 철학자연하며, 우울을 호소하고, 보드카나 마시고 있을 뿐입니다. 이건 분명한 일입니다만, 우리가 현재의 상태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린 우리의 과거를 속죄하고, 그것을 깨끗이 청산해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과거를 보상하는 길은 오직 고통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비상한 노력,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거예요. 이 점을 잘 이해하셔야만 합니다. 아냐.
12. [밤으로의 긴 여로]중에서 에드먼드 _ 유진 오닐 作
(표정이 굳어지며 격한 비난의 눈길로 아버지를 쳐다본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일이 없게 했어야죠! 어머니 탓이 아니란 건 저도 아주 잘 알아요! 누구 탓인지도 알죠! 바로 아버지예요! 아버지의 그 빌어먹을 인색함 때문이라고요! 어머니가 저를 낳고 심하게 아팠을 때 괜찮은 의사를 불렀다면, 어머닌 이 세상에 모르핀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을 거예요! 그런데 아버진 호텔 돌팔이한테 어머니를 맡겼고, 그 돌팔이는 자기가 무식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제일 쉬운 방법을 쓴 거예요. 나중에 어머니가 겪게 될 일은 신경도 쓰지 않고요! 그게 다 싸기 때문이었죠! 아버지는 맨 싸구려만 찾으니까! 어머니가 모르핀 중독이라는 걸 알았을 때 왜 치료를 안 시켰어요? 고칠 수 있었던 초기에. 돈이 들까봐 그랬겠죠! 어머니한테 의지력으로 이겨내는 도리밖에 없다고 했겠죠! 아버진 아직가지도 속으론 그렇게 믿고 있을 거예요. 약물 중독에 대해 잘 아는 의사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13. [밤으로의 긴 여로]중에서 에드먼드 _ 유진 오닐 作
(절박한 기분으로 항의한다.) 아버지 자꾸 신경 쓰실 필요 없잖아요! (손을 뻗쳐 병을 잡은 후 술을 따른다. 티로온은 말리려고 하다가 체념한다. 에드먼드는 술잔을 들어 마신다. 잔을 놓는다. 일부러 취하여 애써 감상적인 기분속에 잠겨버리는 것 같은 표정이다.) 그래요, 제 머리 위에서,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시는 거예요. 과거 속을 방황하는 유령이 되어서 말예요.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잊어버린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떤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어요. 추녀에서 떨어지는 안개 물방울 소리, 태엽 풀린 시계의 불규칙한 초침 소리, 아니, 삼류 카바레의 테이블 위에 쏟아진 김빠진 맥주 속에 뚝뚝 떨어지는 창부의 애달픈 눈물 소리! (스스로 감탄하여 감상적으로 웃는다.) 근사하죠? 이건 보들레르가 아니라 창작이에요. 정말이에요. (술기운으로 말을 늘어놓는다.) 아버진 지금 추억 중에서 가장 멋있는 부분만 말씀하셨죠. 이번엔 제 얘길 할까요. 모두 바다하고 관계가 있어요. 이런 일이 있었죠. 부에노스아이레스 행인 스칸디나비아의 범선을 탔을 때의 일이에요. 무역풍이 불고 보름달이 떴었죠. 그 낡은 배의 속력은 십사 노트, 전 갑판 망대 위에서 배 후미 쪽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래서는 파도의 거품이 솟아오르고 머리 위 높은 곳에서는 흰 돛이 달빛을 담뿍 받고 있고요. 그 아름다움에 전 취했었죠. 그 아름다움의 리듬에 취했어요. 잠시 무아의 경지에 빠져 있었죠. 말 그대로, 자신의 생활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난 자유의 몸이었어요. 난 바다 속에 용해된 거예요. 난 흰 돛이 되고 높이 흩날려 내리는 물보라가 된 거지요. 아름다움이 되고 리듬이 됐어요. 달빛이 되고 배가 되고 몽롱한 별빛을 담고 있는 높은 하늘이 됐어요. 과거도 미래도 없는 평화와 조화와 소박한 기쁨 속에서, 자신의 생명과 인류의 생명보다도 위대한 그 무엇 속에서 생명 그 자체가 된 거예요. 신이 됐다고 해도 좋아요.
14. [밤으로의 긴 여로]중에서 에드먼드 _ 유진 오닐 作
뭐가 거짓말이에요? (점점 힘을 모아) 제가 선원이 돼서 적은 수입에 일은 고되고 갈 곳이 없어서 공원 벤치에서 노숙을 하고,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전 아버지를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 고난과 싸우셨기 때문이죠. 전 모든 걸 꾹꾹 참아 왔어요. 이런 집안에선 참거나 미치거나 둘 중의 하나죠. 하지만 이번 일은 너무 하셨어요. 구역질이 난단 말예요. 자기 아들이 폐병에 걸렸는데 인색한 노랭이의 정체를 동네방네에 다 퍼뜨린 것이 참을 수 없단 말예요. (분이 터져서) 노랭이 같으니! (화가 나서 목소리가 떨리고 목이 막혀 쉰 소리가 난다. 이윽고 갑자기 기침이 터진다.)
15. [밤으로의 긴 여로]중에서 티로 온 _ 유진 오닐 作
또 그 따위 소릴! 네 형 놈한테서 물이 들었어. 그 녀석에겐 제일 나쁜 것이 진리라니까.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너의 조모께서는 낯선 땅에 어린것들 넷하고 남게 되셨어. 나하고 네 큰고모 한 분. 작은고모 두 분. 네 큰아버지하고 둘째아버지는 그 전에 다른 데로 옮겨 가셨지. 별 도리가 없었거든. 하루 먹고 살기도 어려웠지. 가난한 살림에 꿈인들 있었겠니. 뭣 같은 오두막집에서 두 번이나 내쫓겼어. 몇 가지 안 되는 가구를 그놈들이 길바닥으로 내 팽개쳤어. 할머니하고 고모들이 다 우셨다. 나도 울었지.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 내가 바로 세대주이기 때문이야. 그게 바로 열 살 때란 말이다. 학교도 그때 그만두었지. 줄 견습공이 되어서 하루 열두 시간씩 기계 공장에서 일했다. 더러운 헛간 속 같은 데였지. 비가 새고 여름엔 한증하는 것 같지. 겨울엔 난로도 없고 추워서 손끝이 말을 듣지 않았어. 햇볕이라고는 두 개의 더러운 조그만 창에서 새어 들어오는 것뿐. 흐린 날은 줄 앞까지 얼굴을 갖다 대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였어. 네가 일한다는 건 문제도 안 돼. 내가 그렇게 일하고 얼마 받은 줄 아니? 일주일에 오십 센트야. 정말이다. 주급 오십 센트야. 정말이다. 주급 오십 센트. 너의 할머니는 낮에는 미국 사람 집에서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먹지도 못했어. 감사절이었던가, 크리스마스 날이었던가. 할머니가 소개를 해주시던 미국인한테서 선물로 일 달러를 덤으로 받으셨지. 할머니께서는 돌아오시는 길에 그 돈으로 먹을 걸 전부 사셨어.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시면서 우리들을 껴안고 키스를 하시면서 “고마운 일이다. 이제야 식구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구나.” 이렇게 말씀하셨지. (눈물을 닦으며) 너의 할머니께서는 훌륭한 분이셨다. 어려운 일에도 굴하지 않고 상냥하신 분이셨어.
16. [사천의 선인]중에서 양순 _ 브레히트 作
빨리 좀 꺼져라? 여기가 공원이지 창녀촌이냐! 비오는 날, 후미진 공원 구석에서도 저것들을 피할 수가 없으니. (침을 뱉는다.) 넌 뭘 봐?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싶어? (비가 내린다. 양순이 센테와 나무 밑으로 비를 피한다.) 얘길 해야 꺼지겠군. 비행사가 뭔지 알아? 그놈들이 비행사냐? 그까짓 가죽 헬멧 하나 쓰고 있다고? 그놈들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비행장 관리들한테 뇌물을 줬기 때문이야. 그놈들 중에 누구한테든지 이천피트 상공에 올라가서 급강하 한 다음 최후의 순간에 승강타를 잡아당겨 보라고 해봐. 그럼 뭐라고 할 것 같아? “그런 건 내 계약에는 없어.” 하면서 꽁무니를 빼겠지. 착륙할 때 문제는 또 뭐야. 그건 자기 엉덩이로 내려앉는 것같이 해야 해. 비행기는 사람이나 똑같다구. 그 멍청이들은 그걸 몰라. (사이) 하지만 제일 큰 바보는 나야. 난 북경의 항공학교에서 비행에 관한 책은 다 읽었었지만, 딱 한 페이지를 건너뛰었어. 비행사가 남아돌아 이젠 비행사가 필요 없다고 적힌 페이지를 말이야. 난 우편물 없는 우편 비행사야. 내 말 이해하겠어? 아니다. 네가 이해할 리가 없지. 넌 결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어.
17. [사천의 선인]중에서 경찰 _ 브레히트 作
감사합니다. 무슨 얘긴지 알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센테는 몸을 팔았죠. 그렇지만 이제 담배장사예요. 그런데 만약 육 개월 치 월세를 낼 수 없다면 다시 길거리로 나가야 한다. 돈이 있으면 담배장수 센테인데, 없으면 다시 몸 파는 센테가 돼버린단 말이에요. 어떻게 하면 임대료가 생길까? 모르겠는데……. (사이) 남편! 돈 있는 남편을 구해주는 것……. (생각을 계속하며) 슈이타 씨! 우리는 자본이 필요합니다. 자본!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본을 구하나? 결혼! 결혼하는 것입니다. (시적으로) 여섯 달 치 집세를 낼 수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돈이랑 결혼하는 거지 뭐. 센테는 혹할 만한 상댑니다. 가게를 갖고 있고 예쁘고. 신문에 광고를 내면 돼요. 내가 문안을 만들어드릴까? 좋으시다면, 광고를 만들어 보죠. (혼자 낄낄거리면 노트를 꺼내서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쓴다.) 약간의 자본을 투자하고…, 상처한 분도 좋고…, 결혼을 새 출발로 여겨…, 번창하는 담배 가게를 함께 운영하실 분을 찾습니다. 이런 말도 덧붙이는 거예요. 호감을 줄 만한 외모임.
18. [사천의 선인]중에서 경찰 _ 브레히트 作
센테 양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꺼이 호의를 베푼, 말하자면 자신도 살고 남도 살게 한 처녀였습니다. 반면 슈이타 씨는 원칙적인 남자입니다. 센테 양의 선량한 심성은 그로 하여금 이따금 엄격한 조치들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했지요. 그러나 그는 이 처녀와는 반대로 항상 법의 편에 섰습니다. 제판관 나으리, 그는 자신의 사촌 여동생이 신뢰감에서 숙소를 제공해주었던 사람들이 절도단임을 폭로했으며, 다른 한 경우에는 센테의 새빨간 위증을 마지막 순간에 제지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 슈이타 씨는 명망 있고 법을 존중하는 시민이지요.
19. [사천의 선인]중에서 슈푸 _ 브레히트 作
아무 소리 마세요. 조용히! 다 알고 왔어요. 아가씬 노인들한테 손해를 입힐까봐 사랑을 포기했지요? 자기를 믿어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기 싫어서. 알 것 같아요. 이 동네에서 남 헐뜯기 좋아하는 정서방도 당신을 천사라고 부르는 것을. 아가씨, 신랑이 될 뻔한 사람은 당신의 가치를 몰라주었죠? 그래서 떠났군요. 아, 이 가게를 닫아버리다니……. 수많은 배고픈 사람들의 쉴 곳이었는데……. 그냥 눈감아버릴 수 없어요. 난 날마다 아가씨가 배고픈 사람들한테 밥을 주고 쉴 곳을 주는 모습을 장작개비처럼 서서 보았어요. 너무나 아름다웠소. 이제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없겠지요? 사천의 착한 사람은 영영 사라져버리나요? 허락해주세요. 당신을 돕고 싶소. 다른 말은 필요 없어요. 보증도 서지 마세요. 고맙다는 말도 하지 마시고요. (수표책을 꺼낸다.) 여기 있어요! 백지 수표. (수표를 수레 위에 놓는다.) 내 사인입니다. 원하는 금액을 적어 넣으면 돼요. 원하는 대로. 그만 가보겠어요. 조용히 겸손하게 아무 권리도 주장하지 않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존경심에 가득 차서 전혀, 사심 없이. (사라진다.)
20. [안 내놔? 못 내놔!]중에서 경관 _ 다리오 포 作
몰라서 묻나? 빤한 얘기지! 우선 나는 이 일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야겠지. 아주 간결하고 형식적인 양식에다 말이야. 그리고 그 결과, 법에 의거한 강력한 처벌이 요구되겠지. 그러고는 저녁 열 시 뉴스에 한토막 나올 거야! 유능한 경관의 행동으로 밀수품이 적발되고 범인이 밝혀졌다고 말이야! 그리고 바로 그 텔레비전을 본 밀수꾼 아저씨들은 그 경보 신호에 모두들 국외로 도피를 하겠고. 결국 누군가 잡혀서 판사에게 내가 증거를 제시하면 판사는 인상이 찌그러질걸. 그도 그럴것이 판사도 자기 부류의 동료를 심판하기는 싫으니까! 그래서 뭐 길어 봤자, 한 넉 달 정도 언도하겠지. 그리고 세이트트로페즈 해변에서 젊은 계집들을 끼고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을 기업주들은 당장에 대통령한테 아우성을 쳐서 넉 달 징역을 보석금으로 뒤바꿔놓는다구!
21. [안 내놔? 못 내놔!]중에서 조반니 _ 다리오 포 作
그래? 알았어. 바닥은 내가 닦을게. 걱정말라구. (모두 나간다.) 으이구, 세상에 끔찍해라. 이제 이 아무것도 모르는 루이지 녀석이 야근 끝내고 돌아와보면 아버지가 되어 있는 꼴이니 심장마비에 걸릴 거야. 더구나 그 애기가 다른 여자 뱃속으로 옮겨져 있다는 걸 알면 아마 심장마비가 재발하겠지? 그래, 그러니까 한꺼번에 알려주면 안 돼. 조금씩, 조금씩 빙빙 돌려서 천천히 얘길 해야지. 가만있자. 그러면? 그래, 교황 얘기부터 해야지. 그러면 단계적으로 천천히 얘기하는 게 될 거야. (걸레질 시작한다.) 아유, 이게 도대체 웬 꼴이야? (바닥을 기다시피 하면서 걸레질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물이지? 냄새하구! 꼭 식초 냄새 같은데…, 그러니까 이게 소위 양수라는 건가? 젠장할, 왜 태어나기 전에 꼭 아홉 달씩이나 뱃속에 있어야 되는 거지? 어 가만, 이게 뭐야? 올리브인데! 올리브가 뱃속에 들었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돌았나? 그럼 올리브가 어디서 나온 거지? 아? 여기 또 있네. 두 개씩이나……. 제길, 이게 어디서 나온 건지만 몰라도 당장 먹어치우겠는데, 그래 난 지금 배가 고프단 말이야. 그러지 않아도 지금 막 새모이 수프를 끓여볼까 하는 참이었는데…, 하긴 맛이 괜찮을지도 몰라. 두 덩어리만 넣고 양파를 많이 넣어 볼까? (냉장고를 연다.) 아니, 이건 내 용접기가 왜 여기 있지? 이놈의 마누라, 내가 그렇게 얘기해도 듣지 않고 꼭 이걸로 가스 불을 붙인단 말이야. (그것으로 가스에 불을 붙이고 요리한다.)
22. [아침부터
(왼손으로 안주머니를 뒤지며, 오른손으로 나팔을 들고 샹들리에 쪽에 대고 나팔을 분다.) 아, 찾았구나! 오늘 아침 눈 속에서는 경멸을 받더니 엉킨 전깃줄 속에서는 환영을 받는구나. 자네에게 인사를 드리네. (나팔을 분다.) 길은 다 지나 이제 내 뒤에 있어. 내 힘은 탕진되었어. 나는 내 몸을 아끼지 않았어. 나는 내 길을 어렵게 택해왔어. 쉬울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오늘 아침 눈 속에서 우리 둘이 만났을 때 자네는 좀 더 간곡하게 나를 초대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순간적으로 내가 깨달았더라면 이 모든 고생을 나는 안 할 수도 있었어. 그걸 깨닫기 위해 명석한 두뇌가 필요한 것도 아니야……. 내가 왜 그리 주저했지? 왜 내가 그 험한 길을 택했던 거야? 그리고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처음부터 끝가지 너는 그곳에 앙상한 뼈로 앉아 있구나. 아침부터
23. [인형의 집]중에서 헬메르 _ 입센 作
(열려 있는 문께로 다가가) 응, 그래. 좀 진정하라구. 마음을 좀 가라앉혀 봐. 귀여운 당신, 내 귀여운 종달새. 좀 푹 쉬어. 내 날개 밑에 넣어줄게. (문께서 이젠 왔다 갔다 한다.) 이 가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믿음직스러워. 응? 여기 있으면 모든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잖아. 난 여기서 당신을 보호하고 말이야. 당신이야말로 내가 무서운 독수리로부터 구해낸 비둘기거든. 뛰는 그 가슴을 진정시켜줄게. 이제 평온이 찾아올거야. 내일이면 모든 게 달라 보인다니까. 정말이야! 다시 전과 같이 될거니까. 당신을 용서한다고 되풀이할 필요도 없지. 난 벌써 다 잊어버렸어. 당신은 정말 진실하고 정직한 남자의 사고방식을 몰라. 남편이 자기 부인을 용서한다는 건 말할 수 없는 달콤함이 깃들어 있다는 증거지. 그래서 아내는 은연중 더 깊은 내연의 처가 되고, 말하자면 다시 재생되는 부부지연이라고나 할까? 즉, 부인은 아내인 동시에 사랑하는 아이 같은 거요. 그래 맞아, 당신은 지금부터 그렇게 될 거야. 암, 그렇고말고. 오, 가여운 당신. 이제 그만 걱정하라니까? 제발 맘을 풀어요. 그래야 내 맘도 풀리고 우리 일심동체가 되지. 응?
24. [인형의 집]중에서 헬메르 _ 입센 作
아무래도 뜯어볼 용기가 안 나. 드디어 당신도 나도 파멸인지 몰라. 아냐, 역시 안 볼 수는 없어. (급히 봉투를 찢고 대여섯 줄 얼른 읽어본다. 동봉된 서류를 보고, 기뻐 소리친다.) 노라! 노라! 아냐, 잠깐 기다려. 다시 한번 읽어보자. 응, 역시 나는 살았어, 노라, 난 살았어! 당신도 마찬가지지. 당신도 나도 둘 다 살았어. 봐, 이렇게 당신의 차용증서를 돌려보냈어. 이제까지의 일은 미안했다, 후회하고 있다고 써 있어. 심기일전, 행복한 생활로 들어간다고 말이야. 여하간 써 있는 문구야 아무래도 좋아. 우리들은 산 거야, 노라! 이미 누구도 당신에게 해를 가할 수는 없어. 아아, 노라, 노라! 그렇다 이런 꼴 보기 싫은 것부터 먼저 없애버리자. 어쨌든 잠깐 봐두고……. (차용증서를 본다.) 아니, 이 따위 것은 보지 말자. 일체를 꿈으로 돌려버리자. (증서와 편지를 찢어 난로에 던져버리고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고 있다.) 자, 모두 재가 되어버렸어. 크리스마스이브부터라고 써 있었는데, 그러면 요 사흘 동안, 당신은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었겠어? 그러나 이제 이 끔찍한 일은 모두 잊어버립시다. 그저 끝났어, 끝났어, 하고 기쁨의 소리만 지르면 되는 거야. 하지만 노라, 당신은 아직도 실감을 못하는가보군. 일이 다 끝났는데 믿어지지 않아? 왜 그러지? 그런 불쾌한 얼굴을 하고 말이야. 불쌍하게도 당신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군. 내가 용서한다는 걸 말이야. 그러나 이젠 괜찮아. 맹세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다 용서했어. 난 다 알고 있어. 당신이 한 일이 모두 나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는 걸 말이야.
25. [인형의 집]중에서 헬메르 _ 입센 作
(방을 왔다 갔다 하다가)아아, 이렇게 무서운 짓을 하다니, 꼭 팔 년 동안 내 기쁨이기도 하고, 자랑이기도 했던 여자가! 위선자, 거짓말쟁이! 아니, 더욱 더 나쁜 범죄자였다니! 거, 참, 밑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더럽다! 더러워! (노라 앞에 멈춰 선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하는 것은 미리 알아차려야 했어. 얘기했어야 했어. 당신 아버지의 경솔한 성질이 그대로…, 닥쳐! 아버지의 경솔한 성질을 그대로 당신은 이어받았어. 종교도 없고, 도덕도 없고, 의무의 관념도 없어. 아아, 그런 인물을 관대히 봐준 것 때문에 이제 와서 천벌을 받아야 하나보다. 그것도 결국은 당신 땜에 한 일이었어. 그런데 그 사례가 이 꼴이야. 당신은 이걸로 내 일생의 행복을 파괴해버렸어. 내 장래를 매장하고 말았어, 아아, 생각만 해도 무섭다. 나는 저 양심을 잃은 인간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어. 그놈은 나를 제멋대로 조정할 수가 있어.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나를 들볶거나, 명령하거나 한다. 그래도 난 싫다고는 말할 수 없어. 한 경솔한 여자 때문에 나는 이런 한심한 처지에 빠져버리고 망쳐버리게 되는 거야!
26. [인형의 집]중에서 헬메르 _ 입센 作
정말 믿어지지 않아. 지금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그러나 어떻게 하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해. 숄을 벗어요! 벗으라고 하잖아! 어떻게 해서든지 그 사나이를 달래야만 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사건을, 이 사건을 무마해버려야 해. 그리고 당신과 나 사이, 우리 둘 사이는 지금처럼 그대로 두어야 해. 그러나 그건 단지 세상에 대한 체면 때문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당신은 전과 다름없이 이 집에 있어야 해. 그러나 아이들의 교육은 허락하지 않겠어. 당신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이야. 아, 이런 말을 자기 아내에게 하지 않으면 안 되다니. 내가 그토록 진심으로 사랑했던, 아니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해야 하다니! 모든 게 끝났어! 오늘부터 행복이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군. 다만 깨진 조각들을 긁어 모아 체면이나 유지해야지.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난다. 몹시 놀라며) 누구야. 이렇게 늦게! 끔찍한 일이…, 드디어 그자가? 숨어 있어. 노라! 병이 났다고 해둘 테니까.
27. [굿 닥터]중에서 피터 _ 닐 사이먼 作
소개를 들으셨겠지만, 사실 유부녀 건드리는 데 저만큼 실력 있는 자가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뭐 허풍 떠는 게 아니라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거든요. 혹시 여러분 중에서 큰 게임에 흥미가 있는 분이 계시면, 이제부터 제가 알려드리는 방법을 적어두시기 바랍니다. 뭐, 결혼하신 여자 분들도 적어두면 약간 도움이 될 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저 같은 전문가 눈에 걸렸다 하면 아무 소용 없을 겁니다. 아무튼 제가 쓴 방법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데, 우선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참을성, 둘째는 역시 참을성, 그리고 셋째도 참을성입니다. 끈기와 참을성이 없다고 느끼시는 분은 아예 일찌감치 취미를 바꾸세요. 자, 유부녀를 건드릴 생각이 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여자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는 것입니다! 진짜 무관심하게, 또 가능한 한 그 여자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 여자 남편에게 접근하는 것이죠. (시계를 보고, 무대 한쪽으로 간다.) 이제부터 숙달된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기 제가 아는 친구와 부인이 오는데, 저 여자를 대상으로 잡았다 가정합시다. 그럼, 우선 저 여자를 미치게 사랑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 여자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이제…, 내 몸의 모든 조직과 기관은 그저 저 여자에게 달려들어 껴안고 내 몸의 정열을 불사르고 싶다고 아우성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솜씨는 여기서 달라집니다. 겉으로는 아주 싸늘하게 변할 수 있다는 거죠! 자, 저기 제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천사 중의 천사가 다가옵니다! (남편과 젊은 부인이 등장, 부인은 양산을 든 채, 산책 중이다.)
28. [굿 닥터]중에서 작가 _ 닐 사이먼 作
제 아버님의 얘기에는 사실 깊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전 아버질 아주 사랑했죠. 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이나 오늘 저녁 여러분이 보신 여러 인물들의 모습에서 전 뭔가 나쁜 짓을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엇을 썼건 펜을 놓고 난 다음에 항상, 제가 그 사람들 인생의 알맹이를 도둑질한거 같은 기분이 되는 걸 어쩔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를 못 견디게 만드는 것은, 제가 그런 글을 쓰는 동안 아주 신이 났었다는 겁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가만있자. 아까 처음에 제가 무슨 얘길 하다가 말았죠? 재채기 얘기하기 전에 말입니다. 아! 네, 바로 그 얘길 하다 말았군요. 제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 네, 전 어릴 때부터…, (잠시 생각하다가) 참, 이상하군요. 제가 살아온 인생은 도저히 기억을 할 수가 없다니, 남의 인생만 쓰다가 제 자신이 어떻게 살았고 인생에서 뭘 바랐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지금 커다란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한, 아마 전 바로 제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아무튼 이렇게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혹, 이 근처에 오시는 일이 있으면 다시 들러주십쇼. 아, 아닙니다. 이보다 더 멋진 결말이 있죠. 에…, 혹시 이 근처에 오시는 일이 있으면, 오백만 루블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길 바랍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쇼. 감사합니다.
29. [굿 닥터]중에서 건달 _ 닐 사이먼 作
아유, 나으리, 건 오해요, 누가 진짜 빠져 죽나요? 그저 빠져 죽는 척 하는 거지. 저 찬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잠시 물장구를 치면서 팔을 버둥 대구, 살려달라고 소리치다가는, 부글부글부글 물속에 잠겼다가는 머리를 밑으로 하고 둥둥 떠올라 흐늘흐늘 하는 건데, 어때요, 듣기만 해도 짜릿하고 서늘하죠? 자, 개인 관람은 삼 루블이고 단체 관람은 요금이 다릅니다. 자, 두 분만 있으면 시작할 건데, 안 볼 거요? 아, 입이 딱 벌어지고, 뺨이 불룩거리겠다, 눈알이 튀어나오는데 그게 안 우스워요? 게다가 찢어지는 소리로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악쓰는 게 꼭 돼지 같구요. 뭐, 사실 이 근처에서 그런 솜씨를 가진 건 나밖에 없수!
30. [청혼]중에서 로모프 _ 안톤 체호프 作
저, 실은 다름이 아니구. (자세를 바로잡고) 부탁을 드릴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물론, 어려운 부탁을 드리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제가 좀 당황해서…, 용서해주십시오. 우선, 물 한잔 마시겠습니다. 저, 실은…,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러니까…, 어른께서 절 도와주실 일인데, 물론, 전 여러모로 부족합니다만 이런 부탁을 드릴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고는 있습니다만…, 요점은 다른 게 아니고 전 댁의 따님 나탈리아 스테파노브 양에게 청혼을 드리러 왔습니다. 히휴. 그럼 어른께서 승낙을 하신 겁니까? 제게 따님을 주시겠다는 말씀인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츄브코프 나간다. 로모프 혼자 남아) 으휴, 갑자기 추워져. 꼭 입학시험 전날처럼 전신이 떨려오는군. 어쨌든 결판을 내야지. 총각으로 늙어 죽을 순 없지. 내 나이가 벌써 서른다섯인데 이건 아슬아슬한 나이야. 그리고 난 정상적인 생활을 원해. 심장도 약하고 계속 땀을 흘리지. 게다가 과민하고 흥분을 잘하는 체질인 만큼 규칙적인 생활이 절대로 필요하다구. 정말이지 난 혼자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구. 누워서 잠이 들 만하면 옆구리가 쑤셔오고 왼쪽 어깨가 결리는 데다, 머릿속까지 멍하단 말이야. 그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좀 걸어보다 다시 자리에 누워보지만 잠이 들 만하면 또 옆구리가 쑤셔온단 말이야. 밤새도록 그 지경이라구!
31. [청혼]중에서 츄브코프 _ 안톤 체호프 作
그렇게 흥분하지 말게. 자네 우가디는 물론 훌륭한 개야. 종자도 좋고 걸음이 빠른 데다가 하체가 튼튼하고 말일세. 그렇지만 자네 개는 두 가지 결점이 있어. 첫째, 너무 늙은 데다가 둘째, 아래 턱이 짧아. 그때 옥타타이가 뒤쳐진 것은 백작님이 채찍질을 했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아. 제발 이 얘기를 가지고 내 신경을 건드리지 말아주기 바라네. 그건 왜 그랬느냐면 말이야. 모든 사람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우리 옥타타이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백작님이 셈이 나서 채찍질을 한 걸세. 다시 말하지만 그 사람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우리 옥타타이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백작님이 셈이나서 채찍질을 한 걸세. 그건 자네도 생각나겠지? 그런 차림을 하고 사냥하긴 아까우니 집에나 들어앉아 있게. 주제에 사냥 다닌답시고 돌아다니며 남의 개에 대해서 험담이나 늘어놓다니. 자넨 사냥꾼이 되긴 틀렸어. 아니 뭐라구! 닥치지 못해! 닥치지 않으면 쏘아버릴 테다. 내 권총 맛을 보여줄까. 이 바보 건달 녀석아.
32. [에쿠우스]중에서 알런 _ 피터 셰퍼 作
승마모자와 중산모자를 걸친 작자들, 그리고 승마장의무리들, 허영을 위해 말을 타는 자들. 가자, 에쿠우스! 무찌르자 놈들을! (빠른 걸음이다.) (각형의 회전 속도가 빨라진다.) 착실하게, 착실하게, 착실하게. (알런, 너제트를 채찍질한다.) 드디어 일어섰다. 위대한 에쿠우스가 적을 쫓아버리고 무찌르자! 돌아서 그들을 짓밟고 짓밟아라! 그들을 짓밟고 짓밟아라! 돌아서, 돌아서, 돌아서!!! (에쿠우스의 소요 소리가 격해진다.) (소리친다.) 워, 와, 멋있다! 몸이 굳어지다. 바람 속에서 몸이 빳빳해진다. 내 갈기털이 바람 속에서 빳빳해진다. 나의 옆구리 나의 발굽 갈기털이 채찍처럼 나부낀다. 다리 위로 옆구리로 알몸, 알몸, 나는 알몸이다. 알몸, 나를 느끼는가? 내 몸 위에, 몸 위에, 위에, 네놈 안에 들어가 있고 싶다. 너와 일심동체가 되고 싶다. 영원히, 영원토록 에쿠우스 너를 사랑해. 자, 데려가다오. 우리를 하나로 만들라. (알런 광란하듯 에쿠우스를 달리게 한다.) 하나로, 하나로, 한사람으로 (알런 말의 등에 올라서 트럼펫처럼 소리를 낸다.) 히히~아! 히히~아! 히히~아! 히히~아! 히히~아! 히히~아!
33. [에쿠우스]중에서 다이사트 _ 피터 셰퍼 作
(외친다.) 소년을 봐요! 결과적으로 내가 한 일은 유령을 만들어버렸잖소! 내가 이 애를 어떻게 할 건지 분명하게 당신께 말하리다! (다이사트 각형에서 나가 무대 후면의 모퉁이를 돌아 관객에게 열렬히 이야기한다.) 난 이 소년의 육체의 상처를 고쳐줄 겁니다. 이 일이 끝나면 소년을 멋진 작은 스쿠터에 태워 동물들이 정당하게 대우받고 있는 소위 정상적인 세계로 보내겠습니다. 동물이 멸종되거나 사역에 사용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만 살찌우기 위해 평생 어두컴컴한 곳에 가두어 기르는 세계 말입니다! 하지만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이 소년이 다시는 동물의 가죽을 만지는 일이 없을 거라는 겁니다. 말을 타더라도 오락으로 즐기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 느낄 겁니다. 또 질과 같은 소녀를 만나 즐거움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나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기야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다이사트 이별하는 말투로 직접 알런에게 이야기한다.) 알런, 다시는 말을 타고 달리는 일이 없을 거다. 말도 이젠 안전하게 되고 돈을 벌면 한 푼이라도 아껴서 저축해서 자동차를 사게 될 거다. 그리고 이제 고통은 없을 거다. 괴로움은 하여튼 완전히 사라지고 말구. (사이) (다이사트 담요를 뒤집어쓰고 부동의 자세로 서있는 앨런 옆에 서서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그 소리가 멈출 줄 모릅니다. “왜, 나지? 왜, 나야?” 나를 설명해봐요! 궁극적인 의미에서 내가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본질적인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뒤집을 수 없는 최종적인 것입니다. (다이사트 알런에게서 떨어져 무대 전면의 벤치로 돌아가 마침내 앉는다.) 난 어둠속을 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어떤 방법이겠습니까? 어떤 어둠이겠습니까? 이 어둠이 신이 규정한 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어둠에 깊은 경의를 표시할 겁니다. 지금 이 예리한 자갈이 내 입안에 끼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빠져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긴 사이. 다이사트 응시하며 앉아 있다.)
34. [에쿠우스]중에서 알런 _ 피터 셰퍼 作
친구야…, 친절한 에쿠우스. 자비로운 그대! 날 용서해줘. (침묵) 그건 내가 아니었어. 정말 내가 아냐, 그건. 날 용서해줘…! 날 다시 받아줘! 제발…! 부탁이야! (알런 공포에 몸을 쭈그려 여전히 얼굴을 문으로 돌리고 각형의 전면 끝에 무릎을 꿇는다.) 다시 안 그럴게.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맹세해요! (침묵) (신음하듯) 부탁합니다!!! (다이사트에게 속삭이듯) 나의 것! 넌 나의 것이야! 난 너의 것이고 넌 나의 것! 그때 그의 눈을 봤어.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어! (너제트 무정한 발굽소리를 내면서 중앙 터널로부터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한다.) 난 널 보고 있다. 널 보고 있어, 언제나! 어디서나! 영원히 말이다! 그리고 넌 실패하리다! 언제나 언제까지나 실패하리라! (소년, 고통으로 자기의 몸을 꽉 부둥켜안듯이 하여 홱 돌아선다. 좌우 양측에서 말 두 마리가 너제트와 같이 난간에 나타난다. 성난 듯 말밥굽 소리가 울린다. 에쿠우스의 소요가 전보다 처절하게 들린다.) 그대의 신 에호바는 질투심이 강한 신이니라. 그리고 너를 보고 있으시다! 너를 영원토록 보고 있으시다. 알런! 신이 보고 있으시다! 너를 보고 있으시다! (공포에 사로잡혀) 눈! 새하얀 눈이 바짝 뜨고! 불길 같은 눈초리가 온다…, 온다! 신이 보고 있으시다! 신이…, 안 돼! (사이. 그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무대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전보다 더 조용히 이제 그만, 그만, 에쿠우스!
35. [에쿠우스]중에서 다이사트 _ 피터 셰퍼 作
그럴까? 내 아내 얘긴데 난롯가에 도도하게 앉아 있는 여인 말이오. 그녀와 마주 앉아 있는 사내 생각도 해보시지. 희랍에 관한 미술책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까다롭고 말 많은 남편. 도대체 이 남자가 어떤 신앙을 알고 있다는 거지? 진짜 신앙 말이오. 신앙이 없으면 사람은 쭈그러들고 그처럼 보기 흉한 건 또 없어요. 그런데 난 내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해왔다구요. 호통이나 치고 큰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은 애기 하나 만들지도 못하거든. 사실 그건 내 탓이오. 아내 몰래 진찰을 받아보았지. 정자 수가 최저라지 뭐예요. 그러나 이 사살을 난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난 그저 아내의 울분 섞인 동정을 받으면 됐으니까. 해마다 석 주일동안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지내는데, 싸구려 여인숙에…, 식사는 후불…, 세 낸 자동차를 타고 조심, 조심하는 여행. 여행 가방엔 소화제를 집어넣고. 얼마나 멋진 원시에의 굴복인가요. 난 원시적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죠. “오, 원시적인 세계여!”라고 말입니다. 그러다 집에 돌아와 벽난로 옆에 앉아 상상력과는 절벽인 아내에게 흥미를 끌어보려고 하다보면 저 변태의 소년은 요술을 부려 그걸 현실화하려고 하고, 내가 앉아서 앨고스의 땅을 달리는 반인반마신의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 창 밖에선 그 소년이 햄프사이어의 들판에서 제가 그렇게 되려고 하고 있고, 난 밤마다 뜨개질을 하는 저 여인을 지겹게도 바라보고 있어야 하니, 6년 동안 입 한 번 맞추지 않은 여잘 말예요. 한편 그 애는 한 시간 동안이나 어둠에 서서 자기 신의 털보, 볼에서 흐르는 땀을 빨고 있는 거예요. (사이) 그러다 아침이 되면 난 책을 책상에 꽂고 병원에 가 그 소년을 정신병 환자라고 치료를 하는 거죠. 이제 알겠어요?
36. [페츄니아를 짓밟은 거인]중에서 청년 _ 테네시 윌리엄스 作
아가씨는 지금 집 마당에 가꾸어놓은 작은 꽃밭과 새장 속의 카나리아, 그리고 방 안을 장식한 온갖 자질구레한 장식들에 둘러싸여 서서히 자신의 삶을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보잘것없는 일상적인 것들 속에 파묻혀 가장 중요한 삶의 순간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잠깐만! 아가씨의 귀중한 시간을 잠깐만 빌려주십시오. (창문을 가리키며) 보세요. 사월의 햇살이 비쳐드는 저 창의 창살에 낀 먼지를 보세요.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아가씨는 바로 저 먼지로 태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눈에 띄지조차 않을, 생명도 없고 말도 못하는 수천, 수만 아니 수억의 먼지 가운데 한오라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의문을 던지지도 못하고 해답을 찾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먼지 말입니다. 그러나 아가씨께서는 이 무한한 가능성을 뚫고, 아주 우연히도 바로 아가씨 자신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보스턴 태생의 도로시 심플로서 말입니다. 아름답고 살아 있는 인간으로 말입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움직이는 인간으로 말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아가씨께선 이렇게 주어진 자신의 삶을 어쩌시렵니까? 아가씨께선 지금 한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는 이 기적 같은 사실에 대해서 어쩌시렵니까?
37. [페츄니아를 짓밟은 거인]중에서 청년 _ 테네시 윌리엄스 作
아, 이런! 하하하! 아가씨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 자작시로 대신하겠습니다. (가벼운 음악과 함께) 페츄니아는 책에 쓰인 것밖에는 빋지 않는 숙맥. 언제까지나 판에 박힌 틀에서만 맴돌지. 주위의 사물을 보는 눈은 꼭 하나, 해묵은 도덕 선 아니면 악, 고래 아니면 빈대. 얄밉도록 깔끔덜고, 연약한 가지를 뽐내면서 투박한 장화가 곁을 지나칠 때마다 뿌리를 도사리고 허위와 가식의 꽃잎 속에 숨은 꽃술은 수탉의 울음소리에도 소스라쳐 몸을 움츠리네. 얼핏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듯 보이지만, 눈씨름 장난마저 시끄럽고 거친 장난이라고 뒷걸음치며 (속삭인다.) 상스럽다나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38. [페츄니아를 짓밟은 거인]중에서 청년 _ 테네시 윌리엄스 作
네, 대단히 중요한 물건이죠. 다만 값싼 대용품들의 범람으로 사람들에게 푸대접을 받고 있긴 합니다만, 최근 외국에서는 저희들의 경쟁 회사가 생겼습니다. 죽음의 회사라고 하는데, 전쟁이라는 상표를 내걸고, 새롭고 공격적인 판매 방법으로 저희 회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장 대표적인 상술은 흥분과 격정이라는 겁니다. 그 상술이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가고 있는 원인은 사람들이 페츄니아처럼 보잘것없고, 자질구레하고, 권태로운 것들로 자신들의 집과 마음에 장막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들장미로 바꿔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전쟁이 없어도 충분히 흥분을 그들의 생활에 불어넣을 수가 있을 겁니다. 저희가 페츄니아 파괴 운동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아가씨! 저희 생명의 회사도 죽음의 회사와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방법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저희는 사람들에게 우리 생명의 회사야말로 진정으로 죽음의 회사보다도 더 철저하고 확실히 이 세상에서 하찮은 페츄니아를 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가씨, 저희회사 제품을 한번 사용해보시겠습니까?
39. [베니스의 상인]중에서 샤일록 _ 셰익스피어 作
삼천 더컷트라, 으음, 석 달 동안이라. 으음, 안토니오가 보증을 설 거라. 으음, 삼천 더컷트를 석 달 동안이라. 안토니오가 보증인이란 말이지. 안토니오는 좋은 사람이오. 원 천만의 말씀…,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 건 그 사람 정도면 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외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의 재산은 공중에 떠 있는 셈이죠. 배 한 척은 트리폴리스로, 또 한 척은 서인도로 가고 있을 거구. 그리고 거래소에서 들은 얘긴데 셋째 배는 멕시코로, 넷째 배는 영국으로 가고 있다던데.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의 재산은 세계 각지에 마구 흩어져 있다더군. 그런데 배는 나무 판때기일 뿐, 선원들도 그저 인간이오. 그리고 뭍에는 땅쥐, 바다에는 물쥐, 물의 도적에, 바다의 도적이라…, 즉 해적이라는 게 있죠. 게다가 풍랑, 폭풍우와 암초의 위험까지 있잖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은 재력이 충분하지요. 삼천 더컷트라…, 그 사람 보증을 받아볼까. 뭐요, 돼지고기 냄새를 맡게요. 당신들의 예언자 나사렛 사람이 마법을 써서 악마를 몸속에 몰아넣었다는 돼지고리를 먹으라니! 당신네들과 거래도 하고, 얘기도 하고, 같이 걷기도 하고, 이 밖에 다른 일도 다 하겠소만, 같이 먹고 마시고 기도하는 것만은 못하겠소이다.
40. [베니스의 상인]중에서 샤일록 _ 셰익스피어 作
안토니오 선생, 선생께선 거래소에서 내 돈과 이자에 대해서 날 욕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죠. 그러나 나는 꾹꾹 참고 견디어 왔습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우리 민족의 상징이니까요. 당신은 나를 이교도니 살인마니 하면서 이 유대인 저고리에 침을 뱉었습니다. 내가 번 돈 내가 이용하는게 나쁘다는 이유로 말예요. 자, 그런데 이제 와서 내 도움이 필요하시다는 거죠. 내 수염에 침을 뱉고 떠돌이 똥개를 발길로 차서 문간에서 내차듯이 나를 발로 차시던 당신이 돈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데, 뭐라고 답변할까요? 이렇게 말해서 안 될 거 없겠죠? 개한테 무슨 돈이 있습니까? 똥개가 삼천 더컷트나 꾸어드릴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나으리, 나으리께서는 전번 수요일에 저한테 침을 뱉으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발길로 차셨죠!
41. [베니스의 상인]중에서 샤일록 _ 셰익스피어 作
아니, 저런. 다이아 보석이 없어졌어. 프랭크퍼트에서 이천 더컷트나 주고 산 다이아 보석이…, 우리 민족에게 이렇게 천벌이 내릴 줄이야, 여지껏 난 몰랐네그려. 다이아몬드만 해도 이천 더컷트나 되고, 이 밖에도 갖가지 귀한 보석들……. 제기랄, 그년이 내 발목 곁에서 뒈져버려도 좋으니까, 보석들이나 그년 귀에 달려 있으면! 내 발목 곁에서 그년이 입관돼도 좋으니까, 돈이나 관 속에 들어 있으면! 그래 아무 소식도 없어? 원, 제기랄……. 찾느라구 얼마나 돈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겠어. 원, 손해는 설상가상이구만1 도둑년 찾느라구 손해보구. 그리고 벌충도 안 되고 목수도 못하고. 그리고 또 불행이란 불행은 죄다 내 어깨 위에 내려 앉고. 한숨이란 한숨은 죄다 내가 쉬는 한숨이구. 눈물이란 눈물은 죄다 내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이구.
42. [베니스의 상인]중에서 안토니오 _ 셰익스피어 作
별로 없습니다. 이미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바사니오, 악수나 하세. 잘있게. 내가 자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말게. 운명의 여신이 내게는 그래도 친절한 편이지. 불행한 사람을 재물에서 떼어놓은 채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하고 얼굴엔 주름살 천지가 되어 음푹 들어간 눈을 하고 자신의 가난을 목격하면서 살게 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 비참한 꼴만은 면하게 해주거든. 부디 부인께 안부 전해주게. 안토니오는 왜 죽었는지, 얼마나 자네를 사랑했는지, 사실대로 잘 말하고, 부인의 판단을 청해보게. 한때 바사니오에게 친구 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 자네가 친구 하나를 잃었다고 부인이 슬퍼하신다면 나는 군을 위해서 부채를 지불하는 것을 슬퍼하지 않네. 만일 유대인이 아주 깊숙이 자른다면 그야말로 기쁘게 지불하는 것이 될 테니까.
43. [베니스의 상인]중에서 바사니오 _ 셰익스피오 作
(납궤를 연다.) 이건 뭐냐? 오, 포오셔의 초상이로구나……. 입신의 화필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여실하게 창조해낼 수 있었겠는가? 눈은 움직이나? 아니, 내 눈동자에 비쳐나서 움직이는 듯이 보이는 것이냐? 벌어진 이 입술, 사탕 같은 입김에 벌어져 있구나. 이렇게도 다정한 두 입술은 이처럼 향기로운 입김이라야 떼어놓을 수 있겠지. 이 머리카락은 화가가 거미가 되어 이같이 황금의 그물을 쳐놓았는가보다, 거미줄에 걸려드는 모기보다 더 꽉 남자의 마음을 잡아 놓기 위해서……. 그러나 이 눈! 이것을 그린 화가의 눈이 과연 끝가지 멀쩡할 수 있었을까? 한 눈을 그려놓자 화가는 두 눈 다 시력을 빼앗기고, 그림에는 더 이상 손을 대지 못하고 말았을 것만 같은데. 그러나 내 아무리 칭찬해봐도, 칭찬의 말을 가지고는 오히려 이 그림에게는 모욕이 되다시피, 이 초상 또한 실물하고는 천양지차가 있지 않은가……. 종이가 있구나, 내 운명의 총결산이 쓰여 있을 종이가. ‘눈으로 고르지 않은 사람은 늘 행복하고 옳게 고른다. 이제 만족하고, 새것 찾지 말라. 이에 이를 기뻐하고 이 행복을 천복으로 여긴다면, 저 여인에게로 가서, 사랑의 키스를 하고 구혼을 하라.’ 친절한 글이군. (포오셔를 보며) 아가씨 실례지만 그럼 이 글대로, 드릴 것을 드리고 받을 것은 받겠습니다. 상대방과 상품을 놓고 겨루는 사람이 관중 앞에서 잘 싸웠다고 생각하면서도, 박수갈채와 아우성 소리에 정신이 아찔하여, 과연 폭풍 같은 칭찬이 자기를 위한 것인지 하고, 한참 동안 어리둥절해하는 기분, 아가씨, 지금 나는 바로 그런 기분입니다. 아가씨의 확인과 서명과 조언이 있기 전에는 눈앞의 것이 죄다 얼떨떨하고, 정신이 멍멍할 뿐입니다.
44. [베니스의 상인]중에서 란슬로트 _ 셰익스피어 作
내가 이 유태인 주인집에서 달아나더라도 내 양심은 내편을 들어줄 거야. 글쎄 마귀란 놈이 팔꿈치 곁에서 날 이렇게 유혹한단 말이야. “고보야, 란슬로트 고보야, 착한 란슬로트 고보야, 다리를 써, 다리를. 뛰어라, 뒤어서 달아나라니까.”라구. 그런데 내 양심은 이렇게 말하거든. “안 된다. 잘 생각해라. 넌 정직한 란슬로트가 아니야. 조심해라, 고보야.” 또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정직한 란슬로트 고보야. 달아나면 안 돼. 달아나는 건 비겁한 일이야.”라구 타이른단 말이거든. 그런데, 마귀 중에서도 가장 두목이란 놈은 날보고 짐을 싸라는 거야. 글세 그놈이 소곤대기를, “야, 뛰어라, 뛰어. 제기랄, 용기 좀 내서 달아나라니까.”하거든. 그런데 양심이란 놈은 내 염통에 바싹 매달려서 아주 현명하게 이렇게 타이른단 말이야. “정직한 친구, 란슬로트야, 넌 정직한 남자의 아들이 아니냐.”라구. 한데 실은 정직한 여자의 아들이란 말이 더 맞지 않을까. 글쎄, 사실 말이지. 우리 아버진 좀 입맛을 다시구, 약간 냄새를 피우고, 재미도 살짝 본 것이니 말이야. 건 그렇구 양심이란 놈이, “란슬로트야, 꼼짝 마라.”하면, 악마란 놈은, “달아나라.”이러구, 그러면 양심이란 놈은, “꼼짝 말라니까.”이런단 말씀이야. 그래서 난 이렇게 말해주지, “양심아, 네 충고두 그럴사하다.”라구. 그리고 이렇게두 말해주지. “악마야, 네 충고두 그럴싸하다.”라구. 양심의 말을 듣자니 제기랄, 악마 같은 유태인 주인네 집에 주저앉아야 하구, 이 유대인네 집에서 달아나자니 악마 놈의 말을 들어야 하구. 헌데 미안한 말이지만 이 악마란 놈은 마귀가 틀림없거든. 그리고 사실이지 유태인 주인네로 말하자면 바로 악마의 화신이란 말이야. 헌데 내 양심에 두고 말이지만, 그건 좀 무정한 말이지만, 암만 해두 악마의 말이 더 친절한 것 같애. 자, 달아나겠다, 악마야. 내 발꿈치는 네 명령에 따르겠다. 자, 달아나자.
45. [미스 줄리]중에서 장 _ 스트린드베리 作
그건 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사과밖에 딸 수 없으니까 사과를 딴 거죠. 어느 날 어머니와 이 저택엘 들어온 적이 있었죠. 양파 밭에 일하러 온 날이었죠. 그날 난 정원을 지나 아가씨 댁 현관 앞까지 가게 됐습니다. 재스민 그늘이 드리워진 훌륭한 저택. 내 평생 그렇게 아름다운 집을 본 적이 없죠.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는데, 점심때가 되자 주위엔 인적이 고요했습니다. 난 안으로 들어갔죠. 벽에 걸린 왕과 고관들의 초상들도 봤습니다. 창문에 붉은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더군요. (화분의 라일락을 한 송이 꺾어 줄리의 코에다 대준다.) 근사한 건물이라곤 교회밖에 들어간 적이 없었는데 아가씨의 집은 교회보다 더 멋있었습니다. 난 갑자기 뭔지 모를 묘한 감정에 이끌려 가슴이 벅차게 끓어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그때,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난 급히 창문으로 뛰어 내렸죠. 무릎으로 기어서 딸기밭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정신없이 딸기밭을 지나 짚 더미가 쌓여 있는 곳에 숨었죠. 그때였어요! 바로 내가 숨어 있는 짚 더미 앞 넝쿨 장미가 늘어져 있는 테라스에 핑크빛 드레스와 흰 스타킹을 신은 한 소녀가 나타났습니다. 그게 누군지 아세요? 바로 아가씨였습니다. 난 썩은 냄새 나는 그 짚 더미 속에서 장미꽃 사이를 거니는 아가씰 보며 이런 생각을 했죠. ‘가난한 자가 천국에 가서 천사와 함께 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니고 뭐냐.’ 처음으로 내 신세를 한탄했죠.
46. [미스 줄리]중에서 장 _ 스트린드베리 作
(괴로운 듯) 안 돼요. 아직은 벽이 있어요. 이 집에 있는 한, 항상이요. 과거가 있고. 백작님이 계시고…, 여지껏 그 누구보다 존경했던 분이죠. 전 의자 위의 그분 장갑만 봐도 애처럼 어려지고…, 벨 소리만 들어도 놀란 말처럼 허둥대고…, 당당하게 우뚝 선 구두만 봐도 움츠려요. (구두를 발로 찬다.) 미신…, 어릴 때부터 뇌리에 박힌 미신…, 하지만 탈출 할 수 있어요. 다른 나라로 가요. 공화국에선, 제 짐꾼만 봐도 다들 굽실댈 겁니다. 물론 저야 안 그러죠. 원래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요. 전 남자예요. 인격도 있고요. 첫 번째 가지만 잡게 해주고, 어떻게 올라가나 한번 보세요! 지금은 하인이지만, 내년엔 호텔 주인, 십 년 뒤엔 땅을 가진 신사가 될 겁니다! 그리곤 루마니아로 가서 훈장을 받고, 왜요. 결국엔…, 작위도 받아야죠.
47. [미스 줄리]중에서 장 _ 스트린드베리 作
글쎄요. 제 꿈은 다릅니다. 전 항상 어두컴컴한 숲 속, 높다란 나무 밑에 쓰러져 있습니다. 전 위로 오르고 싶죠. 위로, 위로. 꼭대기까지 올라가 빛나는 태양과 눈부신 지평선을 보고 꼭대기 가지에 있는 새 둥우리 속에서 황금빛 알을 꺼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 전 나무를 기어오르죠. 그런데 그 나무는 너무 굵고 미끄러워 제가 아무리 쉬지 않고 올라가도 맘대로 되질 않더군요. 그렇지만 첫 번째 가지, 그렇습니다, 첫 번째 가지까지만 오르면 그 다음은 사닥다리를 타듯 쉽게 오를 수 있을 테니, 비록 꿈이고 아직 닿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닿을 겁니다.
48.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중에서 안토니오 _ 셰익스피어 作
모든 것이 끝장이다! 그 더러운 이집트 년이 날 배반했어. 내 함대는 모두 적에게 투항하고 거기서 모자들을 높이 던지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함께 축배를 들며 야단들이다. 세 번씩이나 사내를 갈아치운 화냥년! 저 애송이 놈에게 날 팔아먹었겠다. 내 마음은 너에 대한 증오뿐이다. 도망갈 자는 도망가라! 저 마녀에게만 복수하면 된다. 더 소원은 없다. 모두들 도망치라고 해, 없어져라! (스캐어러스 퇴장) 아 태양이여, 난 다시는 떠오르는 널 보지 못할 것이다. 이 안토니오는 운명과 여기서 작별하는 거다. 바로 여기에서 이별의 악수를 하는 것이다! 이 꼴이 되다니! 날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던 놈들, 소원이라면 내가 다 들어준 그놈들이 달콤한 아침의 물방울을 활짝 꽃피는 시저에게 떨어뜨리고 있잖은가. 그놈들 머리 위에 높이 치솟았던 이 소나무는 온통 껍질이 벗겨지는구나. 난 배신을 당했다. 아, 이 부정한 이집트 년! 이 지독한 화냥년! 그년의 눈짓 하나로 아군을 전쟁터로 몰아내고 끌어들이고 했잖은가. 그 여자의 사금은 나의 면류관이요, 나의 목적이었거늘……. 집시의 본성을 드러내, 술책을 써서 날 속여 죽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처넣었다. 아아, 이로스, 이로스!
49. [파우스트]중에서 메피스토텔레스 _ 괴테 作
헤헤, 주인님! 항상 나오셔서 만사 일이 어떻게 돼가는지 물어보시고 또 이렇게 반겨주시는지라 시종들 가운데 저도 한몫 챙겼지 뭡니까? 잘 아시다시피 전 점잖은 말은 도통 쓸 줄 모르니 용서를 바랍니다. 하긴 제가 고상한 말을 하면 모두 웃겠죠. 그렇죠? 흠, 사실 태양이 어떻다, 우주가 어떻다 소인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괴로워하는 꼴은 안보고는 못 베기죠. 헤헤, 세상의 작은 신으로 자처하는 그놈들은 밤낮 판에 박은 듯해요. 그야말로 창조된 그날 그대로 기기묘묘합니다. 주인님께서 하늘빛의 그림자를 주지 않았던들 놈들이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겠어요? 놈들은 그걸 이성이라 부르며 지랄들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짐승보다 더 짐승답게 쓰고 있단 말씀예요. 제가 보기에 놈들은 다리 긴 여치들 같아서 날긴 하는데 사실은 뛰어가서 풀 속에나 숨어 케케묵은 노래를 부르는 격이죠.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더 좋은데……. 쓰레기란 쓰레기에 모두 붙어서 코를 처박고 있는 격이라구요.
50. [햄릿]중에서 햄릿 _ 셰익스피어 作
오, 하늘의 제신들이여! 오, 땅이여! 그리고… 지옥도 불러낼까? 맙소사! 심장이여, 탄탄히, 탄탄히 견디어라! 나의 근육들이여, 한꺼번에 늙어 비툴어지지 말아라. 나를 튼튼히 지탱해다오. 그대를 기억해달라? 그러마, 불쌍한 망령이여, 내 기억이 이 흐트러진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내 잊지 않으마. 그대를 기억해달라? 그러마, 내 기억의 수첩으로부터 모든 기록, 격언, 지식, 과거의 인생들을 지워버리겠다. 철없을 때 보았던 모든 기록을 지우고, 당신의 명령 하나만을 이 두뇌의 책 속에 남겨 두리라. 그 밖의 부질없는 것들을 깨끗이 치우리라. 진정으로, 하늘에 맹세코! 아, 악독한 여인! 아, 악당, 악당, 웃음 짓는 괘씸한 악당! 적어도 덴마크에는 이런 악당도 있다는 게지. (적어둔다.) 그래, 숙부라. 그대로 적어둔다. 이번엔 내 좌우명을 적자, 잘 있거라, 잘 있거라, 나를 기억해다오. (무릎을 꿇고, 칼자루에 손을 대면서) 나는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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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
매니매니 많아횻 ^^ 히~~~
아.. 리어왕의 2번 대사를 잘 소화해내는 .. 그런 배우가 나오는 리어왕이 보고 싶다................ 아..
제가 내년에 도전해 볼게염.............^^::
미스 줄리....하인 장...정말 섹쉬하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