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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로그인 3회] 꿈에서 만나요 | |||||||||||
황영미 소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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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침대에 누워있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정신이 말똥했다. 꿈을 꾸었다. 너무나 생생하여 꿈이라고 믿을 수 없는 그런 꿈. 엄마가 주방에서 파를 다듬으며 말했다. 엄마는 웃기만 했다. 꿈에서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죽지 않았구나, 이렇게 자주 내 꿈에 나타나는 걸 보면. 몇 년 후, 어른이 된 내가 바다가 보이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엄마를 닮은 아줌마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영화처럼 나는 묻는다. 혹시 노정유라는 애를 아세요? 조심스러운 내 질문에 곱게 늙은 아줌마는 고개를 젓는다. 몰라요 나는. 기억을 잃어버렸답니다. 공원묘지에 쓰러져 있던 나를 어떤 할머니가 발견하고 자기네 집으로 데려왔어요. 아! 이런 일은 너무 흔하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 시체가 담긴 관을 묻으려는데 뚜껑이 열리면서 죽었던 자가 걸어 나오더라는 이야기. 서프라이즈, 세상에 이런 일이, 세계의 깜짝 놀랄 일들 같은 TV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 해외토픽에도 이런 기사가 심심찮게 나온다. 엽기닷컴에는 하루에 한 명 꼴로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나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따지지 않는다. 엄마와 함께 있는 꿈속 현실이 너무도 압도적이라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다. 엄마는 어묵과 삶은 계란, 라면까지 넣어 즉석 떡볶이를 만들었다. 나는 문제집을 가지고 나와 식탁 의자에 앉았다. 시험문제에서 매번 틀리는 원주율 구하는 문제를 풀고 있다. “엄마, 나 청바지 하나 사주면 안돼? 학원 갈 때 교복 입고 가는 애는 나밖에 없어. 혜빈이 하고 다니면 솔직히 창피할 때가 많아. 인터넷 쇼핑몰에서 지금 세일 하는데. 엄마, 하나 사줘.” 알고 있는 수학공식이 제대로 없으면서 나는 신기하게도 술술 문제를 풀었다. 엄마는 전에 할인마트에서 산 예쁜 그라탕 접시에 떡볶이를 담았다. “그래. 중학교 졸업 기념으로 하나 사지 뭐. 인터넷에서 사지 말고 엄마랑 같이 가서 사자. 옷은 직접 입어보고 사야 해.” 엄마 말투는 충청도 사투리가 섞여 있다. 청바지 얘기가 나오자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온 아빠가 거들었다. 나 보너스 탔는데 우리 정유 가방도 바꿔줄까? 정유 책가방 유행 한참 지난 거잖아. 그러자 엄마는 아빠를 슬쩍 흘겨보며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이이~는! 지금 것도 멀쩡한데 왜 또 사준다고 그래? 자꾸 그러면 애 버릇 나빠져~~. 이게 꿈이라고? 아직도 엄마 목소리가 생생한데. 뜨뜻한 눈물이 손등위로 뚝뚝 떨어졌다. 집에는 엄마 아빠의 결혼식 비디오도 있고 사진도 있다. 노래방에서 ‘내 사랑 내 곁에’와 ‘종이학’을 부르던 엄마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도 있다. 그런데 다 소용없다. 안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으니까. 가슴이 먹먹했다. 오늘도 술에 취한 아빠는 안방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김이 펄펄 나던 떡볶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황당하게도 장면이 바뀌어 솩정훈이 우리 집에 와 있었고, 엄마가 둘이 잘 놀아라, 이러면서 오렌지주스를 갖다 주었다. 이제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엄마가 지독하게 그립다. 학원건물 1층에 있는 분식집에서 카레냄새가 진동할 때,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이 엄마가 쓰던 것과 같은 샴푸를 썼을 때, 해가 질 무렵 아파트단지의 알싸해진 겨울 공기와 맞닥뜨릴 때, 학원에 다녀와 컴컴한 집에 들어설 때 그리고 혼자 있는 매 순간. 그리움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면 나는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말을 건다. 엄마, 우리 반 김지훈 있잖아, 걔 좀 패주고 싶어. 매일 나 갖고 놀려. 나더러 ‘뚱땡이 삼겹살’이래. 50키로도 안 되는데 내가 ‘뚱땡이’야? 우리 반에 60키로 넘는 애도 있단 말이야. 그런 애는 안 놀리고 나만 놀려. 기분 나빠 미치겠어. 엄마 없다고 애들이 나를 무시하는 거 같아. 오래전, ‘레몬티 닷컴’에 엄마가 보고 싶다는 내용의 고민을 올린 적이 있었다. 올렸다가 이틀 만에 지웠지만. 그때 ‘뱃살공주’가 이런 댓글을 달아주었다. 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있네요. 언젠가는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겁니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나는 엄마의 투병과 임종을 꼬박 지켜보았는데. 폐암을 앓던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당장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렸다. 엄마는 거죽만 남아 앙상해진 몸뚱이로 호흡기를 끼고 다섯 달이나 병실에 누워 있었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나도 금방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때까지 나는 엄마로부터 내가 분리된 인간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호흡곤란을 일으키면 나도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러면 나는 병원 화장실로 달려가 깊은 숨을 쉰 다음,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우리 엄마 좀 데려가시라고. 엄마 저러다 죽는다고. 어차피 낫지도 않는다는데 빨리 좀 데려가시라고. “비싼 건데 공짜로 샀대. 작은아빠가 쓰는 신용카드에 포인트가 쌓이면 그걸로 휴대폰 값을 결제하는 건가봐. 요금도 정액제로 작은아빠가 내 주실 거래. 근데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 대학 가면 태블릿PC도 사주실 건가봐. 물론 좋은 대학 가라는 압력이지. 우리 작은아빠, 변호사잖아.” 좋겠군, 저런 횡재를 하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은채를 보니 질투가 났다. 게다가 태블릿PC라니! 현대판 도깨비 방망이 태블릿PC를 대학만 ‘가주면’ 가질 수 있다고? 쳇! 그때 놀이터 앞에서 생선을 사던 아줌마가 우리를 불렀다. 최신 유행인 밍크조끼를 입은 아줌마는 대낮인데도 어찌나 진하게 화장을 했는지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마귀할멈 같았다. 은채를 언제 봤다고 아줌마는 빚쟁이처럼 다짜고짜 물었다. 내가 대신 대답해줄까 하다가 저런 아줌마한테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채는 우물쭈물하다가 히스토리어학원 다니는데요, 하고 대답했다. 아줌마는 은채를 붙잡고 본격적으로 취조를 할 태세였다. 강남을 선망하는 이 동네 어른들은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특목고와 상위 5퍼센트 내신 말고는 다른 관심도 화제도 없다. 종종 이런 일을 당하는 은채는 자기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안다. 묻는 말마다 친절히 대꾸해줬다가는 질투로 들끓는 아줌마한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 대체 비결이 뭐니? 너 하루에 공부는 몇 시간 하니? 잠은 몇 시에 자? 너, 책 많이 읽었지? 영어는 언제부터 시작했어? 어학연수는 갔다 왔어? 국내에서만 했는데도 그렇게 잘 할 수 있는 거야? 수학도 수Ⅰ까지 끝냈다며? 너희 아빠는 어느 대학 나왔니? 너희 아빠, 조기 퇴직하고 비정규직으로 다시 취직했다며? 월급도 적을 텐데 외국어고 그 비싼 학비랑 기숙사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데 너희 엄마 학부모회도 안 나온다던데 엄마는 뭐하시니? 혹시 이런 거 물어봐도 돼? 너희 엄마 대학은 나왔어? 중학교 선생님이라고? 과목이 뭔데? 은채를 취조하는 내용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CNN 뉴스를 다 알아듣는 게 아니고요, 학원에서 리스닝 시간에 하는 거 있어요. 그거 알아듣는다고요. 저 말고 다른 애들도 알아듣는 애 많아요.” 혼자 실컷 떠들던 아줌마가 천막 사이로 사라졌다. 아줌마가 가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나한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면서 은채를 대하는 꼴이라니. 여하튼 은채는 좋겠다. 공부 잘한다고 최신 스마트폰을 얻질 않나 길거리에서도 유명세를 치르지 않나. 은채와 나는 4단지를 빠져나와 상가 골목을 지나 우리 아파트입구에 올 때까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둘이 있을 때는 아주 친한데, 누구 한 사람이라도 끼면 갑자기 우리 사이는 어색해져 버린다. 우리가 너무 달라보여서. 예전에 은채, 혜빈이, 승리 그리고 나는 친한 티를 내느라 옷이나 머리모양을 비슷하게 하고 다녔다. 우리는 4학년 때부터 바지만 입었고, 머리모양도 일부러 유행을 거스르는 스타일만 고집했다. 하지만 이제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취향이나 성적, 집안 분위기, 외모 등 네 명 다 모두 달라졌다. <계속>
황영미 (안젤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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