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재 지; | 충남 아산시 염치면 대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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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학자인 홍가신(洪可臣, 1541∼1615) 선생이 나라에서 받은 교지(敎旨)들이다. 홍가신(洪可臣)의 자는 흥도(興道), 호는 만전(晩全), 익호는 문장(文莊)으로 본관은 남양인(南陽人)으로 선조 27년(1594)에 홍주목사로 보직되어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청난공신(淸難功臣) 1등에 오르게 되었다. 형조판서까지 그 벼슬이 이르렀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아산의 인산서원(仁山書院)과 정퇴서원(靜退書院)에 모셔졌다. 저서로는『만전집(晩全集)』,『만전당만록(晩全堂漫錄)』 등이 전해지고 있다. 영원부원군(寧遠府院君)에 오르면서 받은 교지와 ‘문장(文莊)’이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받은 교지, 그리고 홍온(洪昷)이 익령부원군(益寧府院君)에 오르면서 받은 교지와 증직교지 등이 있다. 홍가신(洪可臣) 선생의 교지로 다음과 같다. 영원부원군(寧遠府院君) 교지(27×70㎝), 문장공(文莊公) 익호 교지(105×70㎝), 홍온(洪昷)의 익령부원군(益寧府院君) 교지와 증직교지, 부인의 교지가 있다. 교지는 홍온(洪昷) 교지 3건, 홍가신(洪可臣) 교지 2건, 홍우관(洪宇寬) 교지 1건, 홍완(洪玩) 교지 1건, 홍일장(洪日章) 교지 4건, 홍준(洪儁) 8건, 부인교지 9건이며 교지는 홍가신(洪可臣)과 홍준(洪儁)의 교지는 자신들의 관직임명에 따른 것이었으나 다른 교지들은 홍가신(洪可臣)과 홍준(洪儁)의 현달에 따라 받은 증조(曾祖)․조(祖)․고(考)와 증조비․조비․고비 등은 홍가신(洪可臣)과 홍준(洪儁)의 현달로 추증 받은 교지이다. 홍가신(洪可臣) 후손가의 고문서로 상한 년대을 보여주는 것은 1604년의 교지이고, 하한 년대를 보여주는 홍준(洪儁)의 교지이다. 홍가신(洪可臣) 후손가의 고문서는 17세기 초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의 고문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