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족구를 나눈다면(?) '열족', '즐족'으로 나뉜다. 전자는 '열심히 족구를 하다'의 줄임말로 대회에도 출전하고, 실력을 향상시켜 나름 족구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 하는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즐기는 족구'의 줄임말로 그저 족구를 재미있게 즐기려고 하는 이들을 뜻한다.
지금까지 내가 소개했던 팀들은 모두 '열족'을 추구하고 있는 팀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거창 아르미 족구단은 '열족'도 '즐족'도 아닌 '행족'을 추구하는 이들이었다. '행족'의 의미는 '행복을 추구하는 족구'의 줄임말이라고 본인들은 말한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대전 올포원의 주장 김은지에게 거창 아르미의 손미은을 소개받고 대화를 나누는 내내 이들의 족구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여성 축구단에 소속되어 있었던 이들이 조금은 어이없는(?) 계기로 시작하게 된 족구를 통해 그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행복을 찾은 이들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자.
축구를 하다가 족구를 하게 된 여인들
거창 아르미 족구단의 시작은 조금 어이없었다. 어쩌면 이것조차도 운명이라면 운명일까?
거창 여성 축구단 소속이었던 이들은 운동을 하고 있었던 스포츠파크 축구장이 갑자기 보수 공사를 하게 되어 2~3개월 동안 축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져 버렸다.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이들에게 이 소식은 거의 재앙과도 같았던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그래도 그 기간 동안 운동을 안 할 수는 없어 축구를 대신할 운동으로 찾은 것이 바로 '족구'였다.
"사실 예전부터 거창군 족구협회에서 여자 축구 선수들에게 족구를 하러 오라는 지속적인 권유가 있기는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족구 재미있을까?', '그것도 운동이 되나?'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그런데 어차피 축구도 못하는 상황에서 족구를 하다가 재미없으면 그만할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웃음) 그리하여 지금까지 축구와 족구를 병행하면서 하고 있어요."
그렇게 족구를 시작한 이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이미 축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족구 정도는 우습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족구를 접해보니 의외로(?) 쉽지가 않았다.
"축구와 족구가 발로 공을 차고 헤딩을 한다는 의미에서 유사한 스포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 축구만 잘하면 족구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웃음) 축구는 공을 차는 것이지만 족구는 공을 죽여줘야 하다 보니 공을 차는 메커니즘은 정반대였어요. 이를 깨닫는데 좀 오래 걸렸어요. (웃음) 돌이켜보니 처음 시작할 때 정말 서브만 넣으면 공이 넘어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하나하나 성취하다 보니 점점 빠져들어 간 것 같아요."
좌충우돌하며 족구에 빠진 이들은 결국 반강제적(?)으로 2013년 11월, 아르미 족구단으로 창단하게 되었다. 이후 2015년 토요애 의령 군수배 준우승, 2016년 거창군수배와 경남협회장기에서 각각 공동 3위, 2021년 경남도지사기 공동 3위의 성적을 거두다가 2022년 11월 거창군수배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첫 우승 소감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그 대회에 참석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언니들 얘기로는 사실 참가팀이 달랑 세 팀이었기 때문에 우승 소감을 말하기는 좀 민망하다고 하네요. (웃음) 그냥 얼떨떨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승했는데 기분이 나빴을 리는 없잖아요. (웃음) 나름 성과를 거두고 어디에 우승도 해봤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가 생긴 것 같아 기쁩니다."
함께 족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이쯤 되면 보통 전국 대회 우승이라던가 체전부 입성과 같은 목표를 두고 운동을 하고 있을 법도 하지만 이들은 '행족'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솔직히 이 정도의 기량을 가지고 열족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의아했지만 이 또한 사정이 있었다.
"아무래도 거창군이 시골 지역이다 보니 인구의 대부분이 노령층이고 족구를 할 만한 여성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어요. 그나마 있는 인원들조차도 공부, 직장 등 개인적인 사유로 타지에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씩 떠나있고, 신입회원은 상상도 못하죠. 그래서 족구단을 창단한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4명이 발을 맞추고 운동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아요."
선수 수급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족구를 하면서 꼭 전국 대회에서 입상하고 체전부에서 뛰는 것을 목표로 할 이유는 없다. 족구를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겁고 행복해 힘들고 고단한 삶에 활력소가 되어 준다면 이 또한 족구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팀 분위기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팀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전래동화 '의좋은 형제'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최근에 순애 언니와 함께 여행을 갔는데 제가 언니들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 어디에도 이런 언니들 없다'라고 하니 언니가 오히려 '아니, 어디에도 이런 동생들 없어'라고 말해주며 오히려 동생들을 칭찬합니다. 밤마다 몰래 서로에게 볏단을 가져다준 형제처럼 언니들과 동생들이 서로에게 좋은 자매가 되어주면서도 오히려 서로에게 더 고마워합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비록 선수단의 구성이 힘들어 대회에 참가하는 횟수는 적지만 그래도 행복한 족구를 통해 족구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 이들에게 항상 행복한 일들만 있기를 바란다. 조금 더 욕심을 내 본다면 이제 선수단 구성도 원활하게 되어 전국 대회에도 자주 출전하는 이들의 모습도 기대해 본다.
손미은과 1문 1답
Q. 아르미의 뜻은?
A. 거창군을 상징하는 마스코트가 남자는 '아림', 여자는 '아름'입니다. 팀 이름을 거창군 족구협회 임원진들과 회의를 거쳐 아림과 아름의 중간 발음 정도 되면서 가장 예쁜 단어를 고민하다가 '아르미'로 결정되었습니다.
Q. 팀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A. 먼저 전천후 족구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큰 자랑거리입니다. 족구가 너무 재미있고, 좋은 운동이지만 눈, 비 오는 날은 꼼짝없이 쉬어야 해서 아쉬웠는데 지난해 12월 거창군 스포츠파크에 실내 족구장이 생겨 이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족구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한 번은 비가 내린 날, 제가 전천후 족구장이 지어진 것을 깜빡하고 단톡방에 '오늘 비 와서 족구를 못해서 아쉽네요'라고 올렸는데 팀원들이 '우리 전천후 족구장 있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이야기해서 기분이 다시 좋아졌던 기억이 나요. (웃음) 올해 기회가 된다면 이곳 전천후 족구장에 여성부 팀들을 초청해 교류전을 개최해 보는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할 수 있으니 날씨 걱정 없이 일정 잡을 수 있으니 정말 좋네요. (웃음)
아! 그리고 사실 우리 아르미 팀은 아림 클럽 내의 여성부 팀으로 보시면 되는데요, 거창 유일의 혼성팀으로서 관내 대회인 클럽대항전 뿐만 아니라 승강제 리그 J5 리그에도 남녀 혼성팀으로 출전할 정도로 남녀노소 모든 회원이 잘 융화되는 클럽입니다. 우리 팀의 김당병 감독님께서는 2020년부터 여성부 감독을 맡아주고 계시는데 여성부가 인원이 없어 침체기를 겪고 있었던 2022년도에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 여성 회원들을 아림 클럽에 가입해 함께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도 감독님을 비롯해 기존의 남성 회원분들이 여성부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수시로 지도해 주시는 등 모든 회원들이 여성부 실력 향상에 애를 써주시는 것도 큰 자랑거리입니다.
Q. 대회를 다니면서 혹은 함께 생활하면서 즐거웠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A. 쉽게 말해 '짧은 대회, 긴 관광'이라고 말하면 될 것 같아요. (웃음)
제주도에서 돌하르방배에 출전한 적이 있었는데 대회는 전패하고 신나게 제주도 관광만 하다가 온 기억이 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선수들이 족구 연습보다는 맛집 검색을 더 열심히 했어요. (웃음)
그리고 전주 한옥마을배에서도 경기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나고 끝나고 맛있는 음식 먹고 사진 찍으면서 선수들끼리 재미있게 놀았던 것만 기억납니다. (웃음) 이렇듯 대회를 다니면서 거리도 멀고 체력적으로 힘든 여정이 많았지만 대회를 핑계로 전국 방방곡곡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닐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아 그리고 아직도 우리끼리 회상하면서 웃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저를 비롯해 우리 팀원 3명이 거창에서 열렸던 '전국노래자랑' 본선에 나가서 송해 선생님과 함께 TV에 나온 적도 있었어요. 사실 저 혼자 참가하려고 신청했는데 예선에서 무반주로 춤과 노래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날 언니들이 연가 쓰고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응원을 왔어요. 그걸 본 심사위원이 2차 예선은 뒤에 있는 언니들과 같이 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다 같이 칼 군무하니 심사위원 분께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으시더니 최종 합격했어요. (웃음) 사실 저 혼자 나가려고 해서 언니들이랑 춤을 따로 맞춘 것도 아닌데 연습한다고 노래방 같이 갔다가 하도 반복하니까 언니들도 저절로 외워졌나 봐요. 생각해 보니 웃기네요. (웃음)
Q. 팀 내 불화가 있었다면?
A. 10년간 수없이 많은 대회를 다니면서 수없이 많이 져서 사실 그때마다 기분이 상했을 법도 한데 우리는 한 번도 싸우거나 다툰 적이 없었어요. 다들 성격이 순해서 그런지 지더라도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 탓을 해서 분위기가 안 좋아졌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대회 때 부족하거나 실수한 부분에 대해 서로에게 쓴소리를 안 해서 실력적으로 발전이 더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팀은 경기 결과보다는 잘하든 못하든 최선을 다하는 경기 내용과 팀원 간의 화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불화 없이 행복한 족구만 할 예정입니다. (웃음)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사실 인원이 적어 목표를 설정하기도 애매하네요. 그저 4명이 발을 맞춰서 대회에 나가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옆에 있는 언니 동생들과 오랫동안 행복한 족구를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인 것 같습니다.
거창 아르미 족구단 선수 소개
우수비 심순애(1971년생, 거창 담다 로컬푸드 팀장, 기숙사 사감)
우수비 서미숙(1973년생, 기숙사 사감)
공격수 강연정(1977년생, 거창 사과 올씽 팀장)
좌수비 김미경(1987년생, 교사)
좌수비 구두희(1988년생, 사무직, 주장)
세 터 손미은(1989년생, 자택경비원)
공격수 전수진(1990년생, 태권도 관장)
취재에 응해 주시고 칼럼 쓰는 것을 허락해 주신 거창 아르미 족구단에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