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줄

[고향의봄]

탄탄한 줄

                                        김 동 근

농부의 아내가 동구(洞口)에 있는 개울 밭에 나가보니 풍년이 들어서 가지와 오이와 고추와 참외와 토마토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흐뭇한 마음으로 밭고랑에 풀을 주워내는데 가난한 걸인이 지나가다가 구걸을 한다. 농부의 아내는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길고 누런 참외가 주렁주렁 매달린 탄탄하고 긴 넝쿨의 밑동을 툭 잘라서 걸인에게 건네었다. 배고픈 걸인은 이를 고맙게 받으며 열 번 절하고 가고 농부의 아내는 흐뭇한 표정으로 걸인의 뒷모습을 바라다보았다. 배고픈 이에게 먹을거리를 베푼 이의 표정이 저렇게 행복할까. 세월이 흐르고, 세월에 떼밀려서 농부의 아내는 이승을 하직하고 하늘나라에 갔다. 그리고 염라대왕 앞에 섯다. '귀하는 어디서 왔는가.' '네 - 어디 어디에서 왔습니다.' '그렇군. 이것이 생각나느냐.' 염라대왕이 참외넝쿨을 내밀며 묻는다. '네 - 기억이 납니다.' '응 그래 - 그럼 이것에 매달려서 저 높은 곳의 극락으로 가거라.' 농부의 아내는 길게 걸쳐놓은 탄탄한 참외넝쿨을 잡고 무사히 극락세상에 올랐다. 선행(善行)의 끝은 영광의 세상으로 간다는 옛얘기 한토막이다. 기왕이면 튼튼한 줄을 지니고 세상을 착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먹을거리가 우선일 때가 있었다. 뒷골댁으로 부르는 순이엄마는 남에게 베풀기를 아주 즐겨했다. 가난하던 시절에 배가 고파서 찾아오는 걸인이나 행상인들에게 식반(食飯)을 제공하고 보릿고개에 절량(絶糧)으로 찾아오는 이웃들에도 기꺼이 곡물을 빌려주는 것이다. 여인은 그렇게 남에 빌려주는 곡량을 가을이 되어도 돌려받지를 않았고 남루한 걸인에게 꼭 마룻귀에서 소반(小盤)에 식찬(食饌)을 차려 대접을 하는 것이었다.

왜인(倭人)들에 해방이 되던 전후에 우리의 농촌에는 빈궁(貧窮)으로 몹시 어려웠다. 가진 것은 왜인들에게 빼앗기고 모두 배가 고파서 고생을 할 때인 것이다. 새벽에 날이 부윰하면 각설이나 거지들이 여러차례 문전에 와서 먹을거리를 구걸하고 다리아래나 동구의 선바위 밑에 걸인들이 수두룩했었다. 심지어는 들판에 뱀이나 개구리를 잡아먹는 땅꾼들이 다니고 사람들은 가난으로 죽제품 따위의 생활용품이나 옹기를 그리고 새우젓들을 팔러다니는 행상들이 많았던 것이다.

순희아버지인 김서방은 순희엄마와 달리 남에게 배려할 줄을 모른다. 가진 것을 거듭해 아끼고 아끼며 '한번 움켜쥐면 주먹을 펼 줄을 모르는 -'소리를 들으며 자꾸 그러모으려고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부지런 한 농사꾼이다. 집에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들판을 쏘다니며 농삿일에만 열중을 하는사람이다. 요즘처럼 결실의 가을이 오면 들판을 쏘다니며 누렇게 여문 곡식과 과채를 가리지않고 거두어서 집으로 끌어들인다. 집으로 가져온 가을의 결실들을 고방에 가득히 채우고 마당과 뒤꼍의 여기저기에 땅을 파고 묻어서 저장을 한다. 그가 들판의 작물(作物)만을 거두어들이는가. 시간이 나는대로 여기저기의 산에를 쏘다니며 산감과 밤과 머루와 다래의 산과(山果)들을 가리지않고 거두어 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뒤꼍의 감나무 곁에 김칫광을 크게 꾸리고 김치와 깎두기와 동치미들을 커다란 김칫독에 가득가득히 담가서 땅에다 파묻는 것이었다.

50여의 초가가 정다이 이마를 맞대고 모여있는 충청도 산골이 김서방의 고향이다. 산에는 맹수인 늑대와 여우와 산돼지와 고라니들이 수두룩하여 밤이면 인가에까지 내려와서 가축이나 농작물들에 피해를 주므로 어느 때는 한밤에 동네사람들이 징이나 꽹가리를 난타하여 맹수들을 산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산수(山水)가 아름답고 땅이 기름진 산골이며 인심이 좋은데 가난때문에 먹고 살기가 매우 힘이들었다.

순이네 산골 고향에는 눈이 참 많이도 내린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어오고 만 리신 상상봉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면서 내리기 시작하는 눈이 며칠이고 계속해 퍼부으면 산이고 들과 지붕과 개골창이 온통 하얀 눈속에 파묻히는데 쌓인눈이 지붕과 맞닿아 사람들은 뒷간에까지만 눈을 헤집어놓고는 장작을 나우 지핀 방에서 화롯불만을 쑤셔대며 긴긴 겨울을 나는 것이었다.

산속의 겨울저녁에는 어둠이 일찍 내려온다. 하늘에 기러기의 행렬은 계속해 이어지고 사방은 조용한데 달이 째지게 밝다. 어디서 개가 짖는다. 저녁을 일찍 끝낸 사내들은 짚단을 둘러메고 새끼를 꼬려고 마을방으로 나간다.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마을방에 모여서 옛날얘기를 하고, 아니면 춘향전이나 옥루몽과 숙향전의 옛얘기책 읽는 소리를 들으려고 저녁술을 놓기가 무섭게 뿔뿔이 나가고보면 집안은 조용하다. 할머니가 계시는 건넌방에는 부잣집 행랑에 사는 수다쟁이 할멈이 아무개네 바깥마당의 대추나무 아래에 가끔 늑대가 내려와서 장난질을 한다며 이를 쫓으려 작대기를 둘러메고 마실을 온다. 늦게 놀러와서 동네 돌아가는 얘기를 늘어놓고는 어떤 때엔 자고가기도 하는 것이다. 할멈의 얘기래야 '아무개네 누구는 등너미 둠벙배미 논귀에서 미꾸라지를 대바구니에 가득히 잡아오더라.' '아무개가 만리산 산자락에 쳐놓은 덫에 큰 산돼지가 걸렸다더라.' '아무개네 서울간 딸이 돈을 많이 부쳐왔다.'는 얘기들이다.

식구들이 밤마실을 가고 난뒤에 순희엄마는 하는 일이 하나가 더 있다. 너른 그릇에 밥을 가득히 담아서 부엌의 부뚜막 한 귀에 차려놓는 일과 뒤꼍의 밖으로 난 쪽문을 조금 열어놓는 것이다. 겨울 밤이면 동네 마을꾼들이 여기저기에 모여서 밤이 이슥하도록 노는데 가난하던 시절이라 젊은이들이 배가 몹시 고프다. 그래도 시골에는 먹을거리가 없다. 생각 끝에 '밥훔쳐먹기놀이'가 생겨나고 이것이 습관이 되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떠들며 놀다가 한밤에 밥을 훔쳐가 조리(調理)해 먹고 한편 남의 뒤꼍에 몰래 들어가서 땅에 묻어놓은 과채(果菜)나 과일들을 꺼내간다. 그리고 김칫광에서 무김치와 동치미고추를 건져다가 먹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희엄마는 그네들이 밥이나 먹을거리들을 가져가기가 편하게 미리 준비를 해 놓는 것이다.

산마을 사람들은 욕심이 없고 쾌락을 모른다. 낮에는 서로 어울려서 힘들여 일하고 밤에는 그렇게 모여 노는 것이 그네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산골사람들은 몹시 가난해도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거나 더 재밌게 살아야겠다는 욕심이 없고 그냥 살던대로 무심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간다. 정답게 어울려서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것이 시골사람들의 모습이다.

순이엄마가 남들에게 베풀며 살아가는데 열심히 아끼며 벌어들이는 순희아빠 김서방은 마음이 어찌 편하겠는가. 가끔은 끼때에 식반(食飯)이 모자라면 '흥 - 또 똘똘이가 다녀갔구먼 ―' 라고 혀를 차는데 똘똘이는 동구(洞口) 개울가의 선바위아래에 기거하는 걸인 모자(母子)를 이른다. 그네는 자주 순이네에 들러서 밥을 얻어먹고 가는 것이다. '그려요. 똘똘이가 왔기에 밥을 먹여 보냈어요. 못할 일을 했는감.'라는 말로 남편의 핀잔에 순이엄마가 퉁명스레 대꾸를 한다. 그렇게 남을 돕는 자선의 행위도 의례적인 행사에서 이든 우연한 자리의 한 번에 그쳐서는 선행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순희엄마의 남을 퍼주는 습관은 아주 몸에 익혀진 버릇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느때는 김서방 부부가 순희엄마의 헤프게 베푸는 행태로 소리높여 다툴 때가 있다. 그래서 순희엄마는 등너미 외딴집에 사는 아이 만신(萬神)을 찾아가 남편과의 궁합을 보았다고 하는데 점괘의 오행(五行)이 남편 김서방은 나무이고 순이엄마는 물이어서 아주 딱 떨어지게 좋은 부부간 만남의 점괘라고 해서 기쁜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신의 말에 '근간(近間)에 관재수(官災數)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여 조금 마음이 언짢았다는 순희엄마의 말이었다.

"지신가유. 형님 -"

"야 - 어유, 서산댁이 오랜만에 오셨네유."

한나절이 기울었는데 추레한 차림의 새우젓장수가 무거운 새우젓통을 머리에 이고 순희네 싸리문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한다. 이에 순희엄마가 반기며 대답했다.

"오랜만이유. 서산댁 - 어서 마루로 올라앉으셔유."

순희엄마가 안내를 하고 새우젖장수인 서산댁이 새우젖통을 내려놓고 마루 끝에 자리를 했다.

"요즘에 자주 안오셨어 - 무슨 일이 있는가유."

"일은 무슨 - 저쪽 이월마을로 돌아다니느라고유."

아랫동네에 사는 서산댁은 오랜세월을 새우젓장수로 살아왔다. 4철 순희네에 단골로 와서 새우젓을 팔았으며 배고프던 시절에 끼니를 같이하고 피곤하면 순희네 건넌방에서 한식구처럼 누워자다가 가기도 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순희엄마와 형과 아우로 부르며 지내고 있다.

"아니 서산댁 - 이제 고생스레 장사를 안해도 되는데, 자식들두 다 잘되었구 ."

"놀어두 되지만 심심해서 집에 못있어유. 이렇게 다니며 아는 이들과 만나서 얘기두 나누고 참 좋아유."

새우젓을 팔며 고생으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고 잘살게 되었으니 이제 쉬어도 된다는 얘기이다.

"저기 형님 - 안색(顔色)이 전만 못한데 무슨 안좋은 일이라두 있는감유?"

"이제까지 맘 편하게 자알 살다가 요즈음에 별일을 다 겪는구먼 ―"

"아니 - 뭔 일이래유. 지가 알면 안되남유?"

순희엄마가 서산댁의 재촉에 얘기를 한다.

―며칠 전에 순희아버지 김서방이 만리산 아래의 산자락에 있는 부모님 선영(先塋)을 정리한다고 했다. 김서방 소유의 산이고 선대 묘소 옆에 있는 임목(林木)이어서 걱정을 않고 낙엽송 다섯그루를 베어냈다. 그리고 묘소의 둔덕도 조금 훼손을 했는데 이것이 군청의 산림과직원인 산감(山監)에게 적발이 된 것이다. 산림과 직원의 말에 기름이나 연탄이 없던 시절 가난한 이들이 산에 달려들어 임목을 자르고, 낙엽을 긁어대고 나무뿌리까지 파헤쳐서 온통 붉은 산이 되었다. '헐벗은 산때문에 산림보호령이 내려져 당국에서는 산림자원의 훼손을 엄하게 다스리고 있다.'고 했다. '남의 산에서 나무를 베면 임산물 절도가 되고 나의 산이라도 임목을 베려면 시장이나 군수의 허가를 받아야한다. 허가없이 나무를 베어내면 임산물 보호법 위반 운운 -'이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둔덕을 파낸 것도 산림자원의 훼손이어서 처벌의 대상이란다. 며칠전에 만신이 말한 점괘(占卦)가 그렇게 맞힐줄이야 - --

"어이쿠 - 어쩐대유. 형님 -"

"글쎄유. 집안이 온통 크게 걱정을 하구 있어유."

서산댁이 깜짝 놀라고, 순희엄마가 한숨을 내쉰다.

"어이구 형님 - 형님네 일이면 내일인데 어쩐담 ― “

서산댁이 놀라며 더 걱정을 했다.

두 노부(老婦)인 서산댁과 순희엄마가 그렇게 말을 주고받다가 서로 한숨만을 내 쉬고, 그러다가 '다시 들르마 -' 서산댁이 인사하고 새우젓통을 머리에 이고는 순희네 집을 나왔다. 지난날에 너무나 자신에게 잘해준 순희네여서 서산댁은 그네의 일이 너무도 걱정되었다.

서산댁은 흘러간 지난날을 생각해본다.

남편을 조실(早失)한 서산댁은 젊어서부터 가난때문에 너무나 고생을 많이 했다. 먹고 살아야 했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배운 건 없고 새우젓장수에 매달렸다. 바다가 없는 충청도에서 새우젓이 귀물(貴物)로 대접을 받을 때이다. 고향인 서산에서 새을우젓을 배웠기 때문에 배고파 허리가 휘어도 새우젓통을 이고 이를 악물었다. 새우젓에 매달린 삶이 고통이지만 잘 자라는 이이들을 쳐다보고 참아낼 수가 있었다. 여인은 쉬지않고 바람따라 구름을 쳐다보고 이동네와 저 마을로 한없이 또 한없이 헤매었다. 그렇게 고생을 할 때 순희엄마는 자신에게 너무나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끼니 때에 밥을 챙겨주었고 고생한다고 새우젓을 들여놓으며 고마운 마음에 서산댁이 덤으로 얼마의 물건을 얹어주어도 한사코 받지를 않았다. 너무나 피곤하여 그네의 집을 찾아가 내집처럼 잠을 자고 드나들었다.

어느 날이다. 무거운 새우젓을 이고 만리산 등고개를 넘어오는데 한나절이 많이 기울었다. 서산댁은 배가 너무고파서 허리가 휘었다. 지금까지 배가 고파도 또 다리가 아파도 잘 버텨냈는데 그날은 도무지 참기가 힘이 들었다. 새우젓통을 던져버리고 싶었으나 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서 악을 쓰고 견뎌냈다. 간신히 순희네 집에 닿아 '형님 -' 하고 기진하여 새우젓통을 마루에 내려놓고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허기때문이다.

"어쩌나 - 잠깐 기다려요. 마침 밥이 떨어졌어. 언제고 밥을 넉넉히 해놓았는데 오늘은 -"

서산댁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순희엄마는 부지런히 이웃집에 달려가 백반(白飯) 한그릇을 꾸어다가 반찬을 곁들여서 차려왔다. 서산댁은 너무나 배가고파서 인사를 차릴 여유가 없이 허겁지겁 밥그릇을 비웠다.

"형님 - 이은혜를 어쩐대유."

"은혜는 - 밥 한그릇이 얼마나 된다고 - 이봐요 서산댁! 허기를 면하는 당신의 기쁨보다 이렇게 쳐다보는 내가 더 배가 불러요. 마음이 아주 흐뭇해 -"

한마디 하고 순희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은혜를 베풀고 온화한 표정이다.

이번에만 그런 게 아니고 순희네는 걸인이나 다른 배고픈 이들이 구걸을 할 때 밥이 모자라면 이웃집에서 빌려다가 대접을 한다는 소문을 사람들이 들어서 알고있다.

'아 - 내가 이후에 고마운 이 은혜를 갚을 날이 있을까.' 세상에 배고픈 고통이 이런거고 - 이에 먹을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은공임을 서산댁은 그때에 느꼈던 것이다.

밤에 잠자리에 누운 서산댁은 얼른 잠이 오지를 않았다. 순진한 산골사람이 그렇게 관재를 당하면 얼마나 마음이 괴로울까. 착하디착한 순희네인데 하필이면 그네에게 이런 일이 - 이를 어쩐다나.

밤이 늦게까지 뒤척이며 고민을 하던 서산댁은 가까스로 잠을 이루고 이튿날 아침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읍내에 살고있는 큰 아들네 집으로 향해갔다. 큰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경찰에 들어가서 간부로 있다가 사법고시에 합격을 했다. 새우젓행상인인 서산댁이 고생한 보람으로 아들이 잘 되었던 것이다. 아들이 시험에 합격하고 특진을 하여 이곳 경찰서에 수사과장으로 발령이 되어서 근무를 하고 있다. 아들이 많이 배우고 관청에 있으니 혹시나 해서 아들과 상의를 해보려는 것이다.

서산댁이 무얼 알겠는가. 그냥 그렇게 아들이 배우고 잘되어서 찾아가는 것이다.

일찍 아들의 셋방을 찾아가자 아들내외가 반겨준다. 며느리는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다.

"어머님 -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서산댁이 며느리와 아들의 인사를 받고 방의 아랫목에 자리를 했다. 아들과 마주 앉았다.

"그래 - 급한 일이 있어서 아범과 상의를 하려고 왔다."

"무슨 일인가 어서 말씀을 하셔요. 어머니 -"

아들이 모친에게 얘기하기를 재촉한다.

"응 - 에미가 젊어서 장사로 모진고생을 할때야. 어려울 때 오랫동안 신세를 진 사람이 있어 - 내가 죽어도 잊지를 못하고 그이의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가 없는 이들이야."

서산댁은 가난으로 새우젓장사를 할때 오랫동안 고생을 하던 얘기와 순희엄마와 가까이 지내면서 도움을 받은 얘기와 특히 허기로 고통을 겪을때 이웃집에서 먹을거리를 꾸어다가 고통을 면해준 사례까지를 자세하게 일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집처럼 드나들고 형과 아우로 부르면서 가까운 사이로 지낸다는 말까지를 했다.

"그런데 순희아버지인 김씨가 부모님의 묘소를 정리하다가 묘소 옆에 있는 나무를 베었고 그래서 군청산림과의 산감에게 들켰다는데 이를 어쩌면 좋으냐."

"어머님 - 그일로 너무 마음을 쓰지 마셔요. 우리의 입장에 그분들을 도와주면 좋겠지만 요즘 위에서 벌거벗은 산을 복구하려고 그런 일은 엄하게 다스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군 산림과 직원과 우리 형사들이 특별단속반을 조직하여 일을 하는데 그분 김씨 사건을 군청에서 고발해오고 단속반장인 제가 그 사건을 지휘하고 있어요. 그런 일을 잘못다루면 공무원인 저에게까지 곤란하게 되니 어머님 그일은 잊어주셔요."

"그려 - 잘 되얏다. 아범아 - 네가 하는 거면 이번에 한번 만은 힘을 좀 써야한다. 나와 그이들과는 웬만한 사이래야지. 그일은 내일이나 마찬가지여."

"어머니 - 다른 일은 몰라도 이번 것은 저는 못합니다."

이때 며느리가 밥상을 들여왔다.

"못하다니 - 아니 묘터에 나무 몇개 벤 게 그렇게 잘못한 거냐. 그러고 너는 에미말을 그렇게 잘라도 되는 거여 -"

"차암 어머니 - 되고 안되는 건 제가알지 어머니가 무얼 아신다고 - 어서 아침이나 드셔요."

"어머님 시장하실텐데 진지를 드셔요."

서산댁이 소리를 높이고, 아들과 며느리가 아침밥을 권한다.

"밥 생각이 없다. 뭔 일을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너는 그렇게 에미를 무시해도 되능겨. 못된 놈같으니 -"

순희네 일로 매우 아타까운가, 서산댁이 화를 내며 벌떡 일어선다.

아들과 며느리가 모친을 만류하며 진정하기를 재촉한다.

"어서 앉으셔요. 어머님 -"

"일웂다. 내가 이걸 자식이라고 새우젓을 팔아서 가리켜 놨으니 -"

아들내외가 만류를 하고 서산댁이 화를 벌컥 내며 문을 열고 나간다.

"앞으로는 날보구 에미라고 하지도 말아 -"

바람을 일으키며 빠른 걸음으로 서산댁이 밖으로 나갔다.

"차암 - 당신은 어머님을 잘 이해를 시켜드려야지 -"

며느리의 말에 아들이 답답한지 묵묵부답이다.

아들이 깊은 생각에 잠긴다. 고시에 합격하고 아직은 사회생활에 어두운 젊은 공무원으로서 현재는 경찰서수 사과장이다. 학구(學究)에 몰두하느라고 어머님이 모진 고생을 하시며 새우젓을 팔아서 학비를 댄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공부보다 어머님과의 관계를 따뜻하게 가질 걸, 자신과 처가 많이 배웠다는 걸 내세워서 혹시 모친께 소홀히 하지를 않았는가, 시간을 내어 처와 같이 물북어 한코라도 사들고 모친을 찾아서 정담을 나누며 따뜻한 진지라도 지어드리는 건데 - 모친과 사이를 옳게 가져야 하는데 고생하신 어머님과의 사이를 아예 잃어버리고 살아온 게 잘못이 아닌가. 오늘의 일도 어머님의 노여움이 없도록 할 수가 있는 건데 - 학구보다 모친을 즐겁게 해드리는 화술(話術)이 필요하고 그리고 주위의 순진한 지인(知人)들과의 사이도 정립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원만한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크게 지혜로운 행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는 새우젓장수의 어머니를 아들의 입장에서 정겹게 대해드리고 진정한 수사과장이 되어서 주민들의 안녕을 살피는 공무원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께 좀 더 따뜻하게 해드려야 했는데 - 어머님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드리는가, 이러저런 생각을 하면서 일찍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자리하고 먼저 담당형사에게서 순희아버지 김서방의 무허가 임목벌채사건의 수사기록을 보고받고 검토를 했다. 그리고 검찰에 기소의견을 달아 결재 날인을 하고 결재판에 챙겨서 2층의 서장실에 올라갔다. 부속실을 거쳐 서장님의 책상앞에 부동자세로 섰다. 그리고 수사보고서의 결재판을 서장 책상에 올렸다.

"어 - 이과장! 무슨 보고서인가요."

"네 묘소의 무허가 임목벌채사건입니다."

"응 그래요. 거기 편히 앉아서 대강 설명을 해봐요."

이과장은 서장의 지시로 의자에 앉아서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먼저 김서방이 선영을 관리하면서 묘소 가까운 곳의 낙엽송 벌채와 지반(地盤)을 정리한 것, 그리고 이과장의 어머니가 새우젓을 팔아 생활하고 그리고 자신을 학교에 보낸 것과 어렵게 장사할 때 김서방의 부인으로 부터 도움을 받은 것과 배가 고파서 고통을 겪을 때 김서방의 부인이 이웃에서 밥을 꾸어다가 허기를 메워준 사실까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래요. 대강은 들어서 알고 있어요. 순희엄마라는 이의 선행(善行)은 소문이 났던데 -"

"네 서장님! 그이의 혜택을 많이들 받았고 또 소문이 나있습니다."

좁은 시골이어서 소문이 빠르다.

"알았어요. 이과장은 아직 젊고 지식은 있지만 실무경험이 짧은데요. 공무원은 법전을 놓고 사안을 처리해야 하지만 실무(實務)를 헤아릴 때는 사건의 성격에 따라서 형평(衡平)이나 재량도 적당히 가미를 해야 하는 거지. 국리민복(國利民福)에 적합하도록 밀이야. 내가 이 서류를 검토해 보고 저녁에 다시 얘기를 합시다."

"네 - 서장님!"

대답을 하고 이과장은 서장실을 나왔다. 역시 공무원은 법전의 내용 에 기준을 두고 일을 하되 사안에 따라서 국민의 이익에 적합하도록 지혜롭게 처리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과장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면서 마음이 뒤숭숭했다. 어머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잘못과 어머님이 고생을 하실 때 도움을 준 은인인 순희엄마의 일이 잘못되어서 몹시 안타까운 것이다.

어수선한 가운데 하루가 가고 몹시 배가고프다. 퇴근시간에 부지런히 서장실로 올라갔다. 이과장을 기다렸다며 서장이 말하고 이과장이 서장 앞의 의자에 몸을 조아리고 앉았다.

"이과장! 편한 자세를 하고 들어요. 벌목에 대한 서류를 자세히 검토를 했어요. 법을 다루는 공무원은 잘못한 사람은 법에 의해 그만큼 응징을 해야 하지만 잘못이 없는 이들을 보호하고 또 선행을 한 행위에 대해서는 칭찬하는 게 공무원의 임무이고 그게 법의 정신이라고 ―"

서장이 사건에 대한 성격을 설명하고 한참을 공무원의 입장에서 벌목사건에 대한 자신의 처리방침 얘기한다.

묘소의 주변이라도 나무를 베어낼 때는 해당관서에 신고를 하고 임목의 벌채허가를 받아야한다. 그러나 모든 사건은 원칙을 법전에 기준을 두어야하지만 애매하고 경미한 사안은 공무원이 살펴서 형평이나 재량(裁量)에 의해 국리민복에 적합하도록 처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순희 아버지 김서방의 벌목사건은 첫째가 경미한 사안이고 모르고 한 과실이 있어 형벌법상의 형의 절대적인 감면의 사유에 해당이 되며 선영을 관리하는 중에 일어난 일로서 공무원 특히 서장의 재량으로 내사종결을 할 수가 있다. 그렇기때문에 자신이 김서방의 잘못을 불문에 붙이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하며 기록의 서류에 내사종결을 기록하고 결재하였다. 그리고 기록서류를 이과장에게 내민다.

수사과장은 계속해 고개를 숙이고 '감사합니다.' 를 연발했다.

"이과장! 그리고 김서방의 부인인 순희엄마의 자혜(慈惠)정신을 내가 높이 산거야. 이웃집에서 밥을 꾸어다가 새우젓장수의 허기를 면해주는 흔치않은 사례를 말이야 ―"

"서장님! 감사합니다."

이과장은 계속해 서장님께 머리를 숙였다.

"낮에 이 기록을 가지고 군수님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어요. 한참을 생각한 군수님이 자신이 책임을 지고 관용을 할테니 불문에 붙이라고 하셨어- 그리고 군수님이 산림과장을 곧 부르시고 김서방의 사건을 내사종결 하라고 지시를 하셨거든- 또 군수님이 매우 기뻐하시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꼭 있어야하는 사람 -'이라며 순희엄마의 선행을 선양(宣揚)을 해야 한다고 하시며 날을 잡아서 순희엄마를 표창하겠으니 서장과 직원들이 가능하면 많이 참석을 하라고 말씀하시더군."

수사과장은 연이어 감사의 표시를 했다.

"저 - 이과장 말이야. 선행의 표창에 대한 부상으로 진천우수백미 3가마가 주어지는 거 알지 -"

"아 - 네 서장님 -"

"나도 오늘 이 김서방사건때문에 기분이 매우 좋아요. 저 - 이과장!"

"네 서장님!"

이과장은 서장님의 노련한 업무처리에 고맙고 배울 점이 많음을 생각했다.

"나와 같이 퇴근을 하는 거야. 진천순댓국집에 가서 소주 곁들여 저녁을 먹자고 -"

"네 서장님 - 그렇게 하겠습니다."

"단 벌목의 피의자인 김서방댁에 어머님께서 혜택을 보셨으니 이과장이 저녁 밥값을 내면 내가 뇌물을 먹는 셈이 돼요. 그러니 저녁 값은 내가 내는 거고 말야, 하하 -"

"퇴근준비를 하겠습니다. 서장님 -"

서장님의 농담을 뒤로, 수사과장이 서류를 챙겨가지고 서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매우 기쁜 마음에서 집의 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동태 한 코를 사가지고 어머님을 찾아뵙고 저녁을 지어드리라, 그리고 순희네 일은 잘되었으니 안심을 하시라 하고 --' 자신은 서장님과 술을 한잔하고 퇴근을 하니 조금 늦는다.' 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인데 배고픈 이에게 먹을거리를 베푸는 여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왕이면 누우런 참외가 주렁주렁 매달린 탄탄한 넝쿨을 툭 잘라서 걸인에게 건네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고난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탄탄한 줄을 배후에 지니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위의 서장이나 군수와 순희네와 새우젓장수들이 조금 더 건전한 삶을 이루려고 노력은 하지만 거친 세상을 지나가자면 작은 모순이나 갈등과 장애가 언제고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를 긍정하며 형평이나 재량으로 어려움을 헤쳐가는 지혜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주어진 삶이려니 하지를 말고 만나는 사안마다 성심을 다하고 배워가면서 살아가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수사과장이 해보는 것이다.

이과장은 곧바로 과장실로 돌아와 서류를 챙겨놓고 밖에로 와서 서장님의 차에 올라 서장님이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