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誕生
항주성에 자리한 무림맹 절강지부의 대청,
지금 팔선탁 주위로 팔 인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바로 막대승을 위시한 조중, 장차수, 사공표, 학만궁, 황보가혜, 냉유도, 그리고 초췌한 표정의 팽노대였다.
중인들의 시선은 모두 냉유도의 얼굴에 집중되어 있었다.
지금 냉유도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이야기는 한 자객의 과거였다.
십년 전 엄동설한(嚴冬雪寒)의 한겨울,
중상을 입은 두 명의 노인이 북경(北京)에 숨어들어왔다.
한 명은 마른 몸집에 키가 큰 장대 같은 인물이었고
또 한 명은 툭 튀어나온 배에 얼굴이 넓은 노인이었다.
-유령쌍사(幽靈雙邪)!
그 두 사람은 유령쌍사라고 불리우는 감형(甘衡), 감전(甘塡) 형제였다.
이들 감씨 형제는 사도(邪道)에서도 악명 높은 흉마(凶魔)들로써
살인, 겁탈, 강탈 등 온갖 극악한 짓을 도맡아 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용문(龍門)에 위치한 무림명가 검부(劍府)의 무사들에 의해 중상을 입고 도주하여 북경으로 숨어 들어왔던 것이다.
허나 검부의 무사들은 추격의 발길을 멈추지 않고
북경까지 따라왔다.
당황한 유령쌍사는 숨어 있던 객잔을 황망히 빠져나와
빈민가로 들어갔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이곳 뒷골목의 빈민가는 북경의
화려함에 비해 너무나 지저분한 곳이었다.
게딱지처럼 더덕더덕 붙은 판잣집이 초라하게 늘어서 있고,
진흙탕 길가에는 굶주림에 누렇게 마른 얼굴과
지저분한 옷을 걸친 어린아이,
한 푼의 은자에 사타구니를 벌리는 창부, 건달패 등이 득실거렸다.
유령쌍사는 끈질긴 추격에 빈민가로 들어왔지만,
이곳은 처음인 그들은 한동안 막연한 눈으로 거리를 살폈다.
그때였다.
{아저씨들은 은신처를 찾으세요?}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유령쌍사는 크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낡은 처마 밑에 한 소년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는 십 사오 세 가량이나 되었을까?
허름한 옷에 얼굴에 때가 묻은 비쩍 마른 몰골의 이 소년은
비록 볼품없는 모습이었으나 무언가 기이한 느낌을 주는 한 쌍의 눈은 얼음같이 차가움을 풍겼다.
유령쌍사중 형인 감형(甘衡)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으로
우수를 뻗었다.
한달음에 소년의 목줄기를 잡은 그는 냉랭히 소리쳤다.
{네놈은 어떤 종자냐?}
첫말부터 그의 입에서 상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의 기세는 흉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소년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담사(潭邪)라고 해요. 이곳에서 살고 있어요.}
담사(潭邪)-!
그렇다. 소년은 바로 담사였다.
이 년 전, 자신을 모함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 했던
주인집 딸을 능욕하고 죽인 그는 고향을 떠나 이곳 북경의 빈민가로 흘러들어왔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버러지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빈민들의 소굴인 이곳이
천대받는 것에 익숙해진 담사에게는 오히려 편하고 정겨운 곳이었다.
감형은 흉악한 눈빛으로 담사를 노려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네놈이 어떻게 우리가 은신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담사는 목을 움켜쥔 감형의 손에 숨이 탁 막혔으나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나는 성문에서부터 아저씨들을 봤어요.
그 후 가슴에 용이 새겨진 수십 명의 무사들이 몰려왔고
나는 그들이 아저씨들을 쫓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담사는 유령쌍사의 흉악한 기세에 조금도 겁먹은 기색 없이 당당히 말했다.
{그래서 아저씨들이 숨을 곳을 찾는다는 것을 알았고
저는 아주 은밀한 장소를 알고 있어요.}
담사의 대범한 말에 유령쌍사는 흠칫 놀랐다.
{네놈이 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를 도우려고 하느냐?}
험악하게 말하면서도 감형의 손은 어느덧 담사의 목에서 떨어져나왔다.
유령쌍사도 바보가 아니다.
그들이 수년 동안 온갖 흉악한 일을 다 저지르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무예도 고절했으나 귀계(鬼計)에도 뛰어난
데가 있었다.
담사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아저씨들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고 싶어요.}
{거래를 한다고!}
유령쌍사는 멀뚱한 눈빛으로
이 당돌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감형이 의아로운 눈을 물었다.
{나는 아저씨들을 한동안 은밀히 숨겨주고
북경성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해 주겠어요.
그 대신에 아저씨들이 저에게 무예를 가르쳐주세요.}
담사의 말에 유령쌍사는 일순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막연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놈아, 무예를 가르쳐 주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네놈이 무슨 재주로 우리를 북경에서 빠져나가게 도와준다는
말이냐?}
담사는 힐끗 대로 쪽을 일별한 다음 말했다.
{이제 곧 그들이 올 거예요. 선택은 두 분에게 달려 있어요.
나를 믿고 따르거나 아니면 그들의 손에 잡히든가?}
유령쌍사는 담사의 시선이 향한 쪽을 쳐다보면서 눈알을 굴렸다.
(염병할, 천하의 유령쌍사가 이따위 꼬마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니...)
감형은 내심 자존심이 상했으나 이 영악한 소년의 말을 믿어 보기로결심했다.
{좋아! 네놈을 믿어보겠다.}
담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재빨리 좁은 골목을 들어서면서 말했다.
{나를 따라오세요.}
유령쌍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춤 주춤 담사의 뒤를 따라갔다.
빈민가의 좁은 골목은 지저분하기도 했지만
미로처럼 사방으로 수많은 길이 나 있어서 유령쌍사는 갈수록
놀라움을 느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담사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곳은 나무벽이 흙담과 함께 옆으로 나 있는 좁은 길이었다.
담사가 재빨리 한쪽의 나무를 당기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공간이 생겼다.
담사는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안쪽으로 들어간 다음
급히 유령쌍사에게 말했다.
{어서 이리로 들어오세요.}
유령쌍사는 한 순간 서로 마주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빨리요. 다른 사람이라도 보면 큰일 나요.}
멈칫하던 유령쌍사는 고소한 내음과 주향이 코를 찔렀다.
{두 분 어른! 돈 가진 것 있어요!}
감형은 인상을 찡그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돈은 있지만 왜?}
{헤헤.. 이곳은 사실 옥방루(玉房樓)라는 홍루(紅樓)인데
이곳의 여자들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생긴단
말이예요.}
홍루라면 창기가 몸을 파는 곳이다.
유령쌍사는 움찔 놀랐다.
이런 두더지 굴 같은 곳이 홍루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것이다.
{이곳이 정말 홍루란 말이냐?}
감형이 의심스럽다는 듯 둘러보며 물었다.
{그래요. 이곳은 다른 홍루와는 달리 싼 편이고 은밀한 곳이기 때문에 절대로 안전한 장소예요.}
담사는 말하면서 때 묻은 손을 내밀었다.
{우선 이곳에서 삼 일 정도 있어야 하니까 은자 여섯 푼만 줘요.}
유령쌍사의 동생인 감전(甘塡)이 말없이 한 냥 정도의 은자를 주었다.
한 순간 담사의 눈빛에 탐욕의 빛이 스쳤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어 그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감전이 재빨리 담사를 잡으려고 했으나 감형의 말에 손을 멈추었다.
{그만둬! 저 놈이 도망가려고 했다면
이곳까지 우릴 데리고 오지도 않았을 거야.}
감전은 무슨 말을 할 듯 우물거렸지만 그냥 말없이 주저앉았다.
검부의 고수들과 싸우다가 검상을 입은 다리에서 통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제법 시간이 흘렀다.
유령쌍사는 운기조식을 하면서 담사를 기다렸다.
문득 나직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유령쌍사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에 붙었다.
위험에 처한 무인들의 본능적인 동작이었다.
삐__ 꺽!
문이 떨리고 붉은 홍등이 창고 안을 밝히면서 사람이 들어왔다.
순간 유령쌍사는 귀신같이 움직여 그 인물을 덮쳤다.
{아악_!}
순간 여인의 뾰족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돼요, 두 분 어른!}
동시에 담사가 황망히 외치며 뛰어들며 외쳤다.
유령쌍사는 담사의 목소리에 급히 손을 멈추었다.
땅에 떨어진 홍등이 어둠을 환히 밝혔다.
그 불빛을 빌어 유령쌍사는 비로소 담사와 함께 나타난
인물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두 명의 여인이었다.
얼굴에 분가루를 바르고 모양을 냈는데 제법 그럴 듯한 생김새였다.
두 여인의 목줄기는 유령쌍사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두 분 어른! 이 여자들은 삼 일 동안 두 분을 모실 거예요.
아무 걱정 마시고 저를 따라오세요.}
담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유령쌍사는 담사의 일방적인 행동에 노기가 솟구쳤으나
말없이 따라 나갔다.
그 날부터 유령쌍사는 옥방루의 구석진 방에서 상처를 치료하면서 여자들과 뒹굴었다.
삼 일 후, 두 개의 관(棺)을 실은 마차가 북경 동문으로 빠져나갔다.
마차의 마부석에는 얼굴이 온통 주름으로 덮인 노인과
꾀죄죄한 차림의 십사오세 가량된 소년이 앉아있었다.
백여 장 정도 갔을까?
갑자기 길 양옆에서 십여 명의 무사가 튀어나오면 외쳤다.
{멈추어라!}
그들의 가슴에는 용(龍)자가 새겨져 있는데 말을 끌고 있던
소년, 즉 담사는
그들이 용문검부(龍門劍府)의 무사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굴에 점이 난 건장한 체격의 무사가 살벌한 표정으로 물었다.
{관 속에는 누가 있느냐?}
마부석에 앉아 있던 마부노인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가장(宋家莊) 노부부 시체인데
공동묘지에 묻으러 가는 길입니다요.}
장한은 냉랭한 눈빛으로 관을 쳐다보며
주위에 있던 무사들에게 말했다.
{관을 열고 확인해 봐라!}
말이 떨어지자 무사들이 즉시 마차 옆으로 다가섰다.
{아이고 나리들 왜 이러십니까요? 죽은 사람을 욕보이시려 하다니요.}
노인은 애원을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곧 관 뚜껑이 활짝 열렸다.
순간 검부의 무사들은 깜짝 놀라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코를 찌르는 시체 썩는 냄새와 반쯤 썩은 듯한 시체를 보는 순간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얼굴에 점이 난 거구의 무사도 힐끗 관 속의 시체들을 쳐다본 후
갑자기 손을 흔들었다.
피핑!
그러자 두 자루의 비도(飛刀)가 섬전같이 두 구의 시신 가슴을 파고들었다.
실로 무서운 비도술(飛刀術)이었다.
마부석에 늙은 마부와 함께 앉아있던 담사는 그가 비도를 언제 뽑아 던졌는지 뻔히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다.
거한의 무사는 자신의 단도가 꽂혔음에도
시체들이 아무런 미동도 없자 우수를 밀었다가 다시 당겼다.
순간, 시신에 박혀 있던 두 자루의 비도가 소리 없이 빠져나와
끈이라도 달린 듯 그의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능공섭물(凌空攝物)-!
허공을 격하여 진기로써 물체를 끌어 당기는 절세기공이었다.
거한 무사의 신비로운 무예에 마부노인과 담사는 한동안 얼이 빠졌다.
{가도 좋다.}
거한 무사의 말에 문득 노인과 담사는 정신이 들었다.
{이럇...!}
노인은 공포에 찬 얼굴로 급히 채찍을 휘둘렀다.
마차는 단숨에 이 리나 달린 후에야 천천히 달렸다.
잠시 후 마차가 북경 외곽의 공동묘지에 도착했다.
노인과 담사는 다급히 주위를 살펴본 다음 관을 내렸다.
이어 두 사람은 다시 마차바닥을 뜯기 시작했다.
삐꺽__삐거덕_
마차의 바닥에 깔려 있던 나무를 드러내자 그 안에 웅크린
채 들어누워 있던 유령쌍사가 쓰디쓴 고소를 흘리며 일어났다.
감형은 담사를 쳐다보면서 감탄성을 터뜨렸다.
{네놈의 방법이 정말 절묘하군!}
담사는 그 말에 무표정히 대꾸했다.
{제가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는 두 분 어른이 약속을 실행할 차례입니다.}
감형은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 좋아, 약속을 지켜야지.}
말과 동시에 그는 벼락같이 우수를 한쪽에 서 있던 노인에게 뻗었다.
우두둑!
어느 새 노인의 목줄기를 움켜잡은 그는 힘을 주자
뼈가 바스라지는 소리와 함께 노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흐흐...죽은 놈만이 말이 없지.}
실로 잔인한 독심(毒心)었다.
마부는 어떻게 되었든 간에 그를 도와준 은인이 아닌가?
담사는 문득 이들의 잔인한 손속에 오싹 소름이 돋았으나 태연히 웃었다.
감형은 노인을 죽이고 난 다음 담사를 쳐다보았다.
{네놈은 내가 저 노인을 죽여서 독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겠지?}
담사는 그 말에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 다만 어른이 저 늙은이를 죽이지 않았다면 제가 직접 죽였을 거예요.
입이 싸서 결코 믿을만한 인간이 못되거든요!}
담사의 태연한 말에 유령쌍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놈 봐라! 우리도 천하의 악종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이놈은 악마의 자식이다.)
그들은 문득 담사의 말에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감형은 한동안 막현히 담사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담사는 감형의 눈빛에서
살기와 아깝다는 듯한 마음 등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가 손을 쓰기만 하면 담사 자신도 마부노인과 똑같은 신세가 될 터였다.
하지만 그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담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두 분 어른께서 저를 데리고 다니시면 화(禍)보다는 이(利)가
더 많을 것입니다. 귀잖은 일은 전부 저에게 시키시면 되거든요!}
{흐흐... 네놈은 살고 싶으냐?}
감형은 담사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냉랭히 물었다.
{짐승도 죽음에 처하면 살고자 발버둥치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인 저로서는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흐흐.. 좋아, 당분간 네놈을 살려두지.}
감전이 갑자기 말을 했다.
{형님, 이놈을 그냥 죽여 버리는 게...}
감형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저놈은 나에게 맡겨라. 나에게 생각이 있으니까.}
감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힐끗 담사를 쳐다보았다.
{자, 시체를 묻고 빨리 가도록 하자.}
감형의 말에 감전은 말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북경을 떠난 유령쌍사와 담사는 북쪽으로 도망갔다.
검부의 추적이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유령쌍사는
아예 만리장성을 넘어 변방으로 갈 생각이었다.
사실 유령쌍사가 검부와 원한을 맺게 된 것은 단순한 사건에서
크게 벌어진 것이었다.
일 년 전,
유령쌍사는 용문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가 용문검부의 제자들과
시비가 벌어졌었다.
그때부터 유령쌍사에게는 괴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이백 년의 전통을 지닌 용문의 검부는 제자 수가 많지는 않았으나 구파일방에 못지않은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당금의 부주인 탕마일자검(蕩魔一字劍)은
성격이 편협하고악을 원수같이 싫어하는 인물이다.
용문검부의 추격은 끝이 없이 그들을 쫓아왔고,
유령쌍사는 결국북경까지 도주해 와 담사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감형은 처음에 며칠 간 담사를 데리고 다니다가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아무리 그도 악인(惡人)이었지만
자신들을 도와 주기까지한 담사를
그냥 죽여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데리고 다니다가
마음이 내키면 죽이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며칠 같이 행동을 하는 동안 담사는 자신들도 모르게
그들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에 유령쌍사는 남들이 자신들과 어울리는 것을 극히 싫어했다.
그래서 무림에 자신들의 친구는 아무도 없었고 아직도 독신들 이었다.
담사라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만 어디에 가든지 유령쌍사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술, 편안한 잠자리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길을 잘못 들어 산 속에서 노숙을 하게 되면
동굴이나 절간 등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를 재빨리 찾아서 안내를 하고, 술이나 한 잔 들고 싶다고 생각이 들 때면
어디선가 담사는 술을 구해 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유령쌍사와 담사는 친밀해졌다.
만리장성을 넘었을 때는 때때로 무공까지 전수해 주는 사이로 발전했다.
담사는 무예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남들이 한 달 걸린다면 그에게는 십 일이면 족했다.
유령쌍사는 흡족함을 느끼며 열심히 그에게 무예를 전수했다
. 원래 제자가 총명하고 똑똑하면 가르치는 사람도 기쁜 법이다.
하지만 유령쌍사가 무예를 전수하는 방법은 매우 거친 것이었다.
한 가지 수법을 하루 동안 가르쳐서 그 다음 날 바로 실전에
응용시키는 것이었다.
실전이라는 것은 감전과 담사가 직접 겨루는 것이었다.
감전은 싸움에서 조금도 사정이 없었다.
수법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그때마다 담사의 몸에 상처가 생겼다.
유령쌍사 감씨 형제는 사실 백 년 전에 멸망한 유령문(幽靈門)의후예였다.
유령문은 중원에 뿌리를 둔 문파가 아니고
서역(西域)에서 들어온 이족의 문파였다.
한때 그들 유령문이 저 서장(西藏) 성숙해(星宿海)에 자리한 나후마교(羅吼魔敎)의 지파(支派)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즉, 유령문의 조사 유령천사(幽靈天邪)는 마교의 장로였는데
후계자 싸움에 밀려 중원으로 도망쳐들어왔다는 것이 그 소문의 진상이었다.
하여간 유령문은 기오막측한 무공과 사이한 술법으로
한때 막강한 대강남북에 세력을 떨쳤었다.
하지만 본래 근본이 사악한 이 문파는
세력을 얻게 되자 그 악행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유령문의 문도들은 살인방화는 말할 것도 없고
백주대로에서의 겁탈도 주저 없이 자행하였다.
유령문의 이 같은 악행은 곧 전 무림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켰으며
, 마침내 구파일방이 주축이 된 강호무림의 여러 문파들이
일제히 유령문을 공격하여 멸망시켜버렸다.
그것이 지금부터 백 년 전의 일로써
유령문이 무림의 공분을 사서 멸망할 때 문중의 고수들은 대부분
추살 당했고, 유령문의 절정수법은 거의 다 절전(絶傳)되어 버렸다.
그 때문에 유령문의 제자이면서도
비전수법을 오할도 얻지 못한 유령쌍사의 무예는
강호의 이류(二流) 고수의 수준이었다.
허나 매우 기억력이 뛰어난 유령쌍사는
강호를 방랑하며 각대문파의 수법을 훔쳐 배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십 년 후, 유령쌍사는 강호에서 훔쳐 배운 수법들과
유령문의 무예를 접목하여
자신들 나름대로 독특한 무예를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실전무예였다.
오로지 살상을 위주로 한 무예였다.
담사는 지독한 독종이었다.
그렇게 상처를 입어가면서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착실히 무예를 익혀나갔다.
유령쌍사는 검부를 두려워하여 중원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담사를 데리고
서장, 천축(天竺), 대막(大漠), 신강(新疆)등 변황 오지 등을
오년 동안 함께 돌아다녔다.
제버릇 개 못준다는 말이 있듯이,
중원에서 악한 짓을 자행하던 유령쌍사는 변방이라고 해서 참을 리가 없었다.
자연 담사도 그들 일에 끼어들었고
자연 그의 손에서는 피가 마 를 날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파국의 날이 왔다.
그것은 담사가 유령쌍사를 만난 지 오 년이 되어
열아홉 살이 되던 해로써
그때 유령 쌍사와 담사는 돈황(敦荒)을 지나고 있었다.
이노일소(二老一少),
그 동안 오년의 세월이 흘러서
이마에 잔주름이 늘고 귀 밑에 희끗희끗한 머리가 보였지만,
두 명의 노인은 유령쌍사 감씨 형제였다.
그 뒤를 무표정이 따르는 소년은
이제 십 구 세 가량으로 뚜렷한 이목구비에
전신에서 야수 같은 기질을 풍기는 그는 전날 북경에서 유령쌍사를
따라온 담사라는 소년이었다.
돈황의 땅은 거칠다.
거친 황사풍(黃沙風)에 건조한 날씨,
붉은빛이 나는 황토의 황량한 고원은 끝이 없다.
{제기랄, 오늘은 허허벌판에서 밤을 지세워야 하겠군.}
쌍사의 첫째인 감형은 거친 황사풍에 진저리를 치며 투덜거렸다.
길을 잘못 들은 탓에 그들은 벌서 이틀째 황량한 고원을 헤매고 있었다.
{이놈아, 그따위 밀랍 같은 표정은 짓지 말고 어디 동굴
같은 곳이나 찾아 봐라.}
둘째인 감전은 독오른 시선으로 담사에게 화풀이하듯
노성을 질렀다.
담사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히 주위의 형세를 살펴보았다.
(저놈의 마귀새끼는 요즈음 들어 더욱 반항적인데
마음에 안들 어.
어디 오늘 밤 적당한 잠자리를 찾지 못하면 저놈에게 화풀이나 해야겠군.)
감전은 내심 악독한 생각을 굴렸다.
사실 오 년 동안 담사는 유령쌍사의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궂은일은 그의 차지였고, 혈전의 벌어질 때도 유령쌍사는
자신들이 불리하면 담사야 죽든 말든 상관치 않고 도주를 했다.
그로 인해, 담사는 몇 번인가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었지만
타고난 임기응변과 독기로 겨우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거기다가 간혹 기분이 뒤틀리면 무예를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무차별 공격했다.
그때마다 담사의 몸에서 상처가 나고 때로는 혼절한
적도 있었다.
문득, 담사의 눈에서 서늘한 광채가 스쳤다.
{저쪽에 쉴만한 동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유령쌍사는 담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황사풍 사이로 거대한 바위산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보자!}
감형이 소리치며 걸음을 빨리했다.
바위산은 생각보다 훨씬 멀리 있었다.
거의 두 시진 동안을 달려온 끝에 겨우 바위산 아래 도착했다.
회색으로 물든 바위산은 음산한 느낌을 주었다.
얼마나 헤매었을까?
담사가 바위산 중턱에서 유령쌍사를 돌아보며 황망히 외쳤다.
{여기 동굴이 있습니다!}
유령쌍사가 급히 달려왔다.
그것은 제법 큰 동굴이었는데
바닥에 구르고 있는 오래된 사람의 뼈조각을 보아
옛날에는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형은 동굴 안을 살피며 눈을 빛냈다.
{옛날에는 사람이 살았던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 볼까.}
나직이 중얼거리며 화섭자에 불을 붙였다.
들어가면 갈수록 동굴은 넓어졌는데
군데군데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한 흔적이 있었다.
돌연 감형의 눈이 커졌다.
장방형의 동굴은 분명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다.
동굴에는 각가지 가재도구가 널려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되어 썩어 있었다.
게다가 동굴바닥에는 십여 구의 해골이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는데 상태로 보아 최소한 백 년은 넘은 것 같았다.
녹슨 장검, 도 등의 병장기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무인들이 분명했다.
{이런 황량한 오지에 무림인들이 살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군.}
감형은 놀란 듯이 중얼거리며
시신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동안 동굴 안을 살피던 감형은
무언가를 찾아들고는 놀란 듯이 외쳤다.
{유령비(幽靈匕)! 유령비다.}
감형은 미친 듯이 외쳤다.
{유령비.. 유령비, 이것이 이 동굴 안에 있다니..}
감형이 쳐든 것은 한 자 두 치의 묵빛 단검이었다.
기이하게도 칼날이 온통 은은한 흑광(黑光)을 띠우고 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칼자루에만 약간 녹이 슬었을 뿐
날에는 한 점의 흠도 없었다.
감전도 그것을 쳐다보며 기쁜 듯이 외쳤다.
{유령문의 신물(神物)을 이곳에서 보다니...!}
그는 치밀어 오르는 격동에 말을 잇지 못했다.
담사는 그들의 미친 듯한 행동을 무표정이 쳐다보며
한쪽 구석에 가만히 주저앉았다.
순간 엉덩이에 무언가 딱딱한 느낌이 전해졌다.
손으로 땅바닥을 문지르자 딱딱한 것이 손끝에 닿았다.
가만히 손끝을 움직이자 서늘한 기운이 손바닥에 전해지면서 길쭉한 것이
손에 잡혔다.
담사는 힐끗 그것을 살펴보고 난 다음 유령쌍사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바닥에 널린 시신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담사는 자신이 발견한 그것을 얼른 품 안으로 감추었다.
쌍사에게 들킨 다면 꼼짝 없이 빼앗기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내 그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그는 너무도 피곤했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그는 갑자기 무릎 뼈에서 번지는 고통에 눈을 떴다.
{일어나, 이놈아!}
감형이 그의 무릎을 발끝으로 친 것이다.
담사는 그의 말에 느릿하게 일어섰다.
감형의 얼굴은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이놈아, 이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감형은 우수에 들린 흑색단검을 흔들며 물었다.
담사는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감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경멸 어린 눈으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놈아, 이 어른이 설명을 해 줄 테니 귀를 뚫고 잘 들어라.}
그의 말은 희열에 들떠 있었다.
{우리는 유령문의 제자들이다.
백 년 전 유령문은 구파일방의 연합 세력에 의해 멸망했지만,
당시 문주와 칠 명의 제자만이 간신히 살아났어.}
감형은 잠시 말을 멈추고 힐끗 돌 침상을 바라보았다.
이미 먼지가 깨끗이 제거 된 돌침상 곁에는 희미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죽은 시신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유언이었던 모양이다.
감형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비록 살아남기는 했지만
무당파와 화산파의 추격에 이곳까지 도주해 왔지.
겨우 한숨을 놀린 그 분들은
이곳에서 상처를 치료하 며 복수를 계획했는데.}
감형은 말을 멈추고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무당파 화산이 고수들이 석 달 만에 이곳까지 쳐들어와
문주와 일곱제자들을 모두 죽이고 돌아갔어.}
감전이 냉랭하게 말했다.
{형님, 그놈은 우리의 제자도 아닌데
그런 것을 알려 주어서 뭘 합니까?}
{무슨 소릴, 이놈도 우리의 무공을 배웠으니
유령문의 제자나 마찬가지, 이놈도 알 것은 알아야 돼.}
감전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감형을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감형은 개의치 않고 계속 담사에게 설명했다.
{이것은 유령비(幽靈匕)라는 것으로
유령문의 이대신물(二大神物)중 하나다.}
감형은 흑색단검을 흔들며 말했다.
{이것은 금석을 무우 베듯 자르며
어떤 호신강기(護身 氣)라도 뚫어버린다.
그리고 이 유령비의 어딘가에는 한 가지 신법(身法)과
일초의 검법(劍法)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아직 아무도 그것을 찾지 못했어.}
{또 하나의 신물은 절명사침(絶命死針)이라는 것인데
손바닥만한적룡(赤龍) 모양으로
한번 발사되면 방원 오 장 내의 생명은 모조리 죽고 말지.}
감형은 의기양양하게 말하고는 힐끗 담사의 표정을 쳐다보았다.
{이놈아, 알아 들었느냐?}
담사는 무표정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형은 담사의 표정 없는 얼굴에 욕설을 퍼부었다.
{염병할, 하기야 네놈이 알면은 무얼 하겠나?
개 잡종 같으니라구.}
그는 돌침상으로 걸어갔다.
감전은 담사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놈아 멍청히 쳐다보기는 뭘 쳐다보느냐. 이곳에서 며칠
묵을 테니 네놈은 나가서 음식이나 구해와.}
담사는 말없이 일어나서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른한 오후,
두 다리를 쭉 뻗고 등을 바위에 기댄 담사는
햇빛을 받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바위산은 무서울 정도로 정적이 흘렀다.
담사는 눈을 천천히 떴다.
따뜻한 햇빛에 눈이 부신 그는 몇 번이나 깜박이다가
가만히 일어섰다.
그 순간, 담사는 무언가 생각이 떠오른 듯 다시 주저앉았다.
이어 품속에서 무언가 꺼내들었다.
그것은 길이는 손바닥만 하고 엄지손가락 정도로 굵은 피리모양인데 은은한 묵광을 띠었다.
담사는 한동안 자신의 옷자락으로 닦았다.
{음...}
담사는 신음성을 흘리며 눈이 가늘어졌다.
(이것이 감늙이가 말하던 유령문의 이대신물중 하나인
절명사침이란 말인가?)
내심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깨끗이 닦은 피리모양의 물건 겉면에 자그마한 글씨로
절명사침(絶命死針)이라는 글귀가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담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더욱 세세히 살폈다.
절명사침은 그 외 별다른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침(針)자 옆에 두 개의 조그만 흑 같은 것이 솟아 있었다.
(감형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침통의 장치다.
앞의 것을 누르면 우모독침(牛毛毒針)이 하나씩 튀어나오고
뒤에 것을 누르면 수백 개가 동시에 나온다고 했지.)
담사는 절명사침을 들어 한쪽 바위를 향했다.
쉬잇!
순간 머리카락 같은 가느다란 침이 소리 없이 파고들었다.
소털같이 가느다란 우모독침(牛毛毒針)은 바위 속을 반이나 파고들었다.
(으음...절명사침, 과연 죽음의 암기이군!)
담사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떠올렸다.
(이것으로 두 늙은이를 암습한다.
그 동안 무예를 배웠지만 요즈음 들어 더 이상 별다른 초식은 가르쳐
주지 않아.)
담사의 눈빛이 한동안 흔들렸다.
이윽고 담사는 무언가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절명사침을 꽉 쥐었다.
{으아악!}
{크윽!}
유령쌍사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두 눈은공포와 분노에 부릅떠져 있었다.
쌍사중 둘째인 감전의 몸에는 우모독침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었다.
하지만 반응이 좀 더 빨랐던 감형의 몸에는 감전과 달리 단지
몇 개의 우모독침이 박혀 있을 뿐이었다.
{크으으..!}
우모독침의 세레를 받은 감전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서 절명했다.
하지만 요행히 치명상은 피한 감형은 경악과 분노에 사로잡힌 채 자신의 눈앞에 우뚝 서 있는 담사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담사의 우수에는 절명사침통이 들려져 그들 형제를 향하고 있었다.
{절...절명사침!}
한눈에 절명사침통을 알아본 감형은 비틀거리면서 경악성을 내뱉었다.
(우라질! 이 늙은이는 쥐새끼같이 빠르군!)
겉으로는 득의의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사실 담사는 감형의 섬전 같은 신법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가 기회를 엿보아 절명사침을 발사했을 때
유령쌍사는 유령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헌데 감형은 순간적으로 신속한 신법을 전개하여 치명상을 피한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성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모독침을 몇 개 밖에 맞지 않은데다
그의 절륜한 공력으로 독기를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찢어죽일 놈, 감히.. 우리를 암습하다니..}
동생이 죽는 것을 본 감형은 흉신악살 같은 표정으로 이를 갈며담사에게 다가섰다.
담사는 그자가 다가서자 급히 절명사침을 눌렀다.
허나 이미 한번 발사된 침통 안에는 우모독침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담사는 이를 악물었다.
(더러운 늙은이 명도 길군. 보아하니 중상을 입은 것
같은데 도주해야겠군.)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달아날 작정을 했다.
비록 우모독침을 맞긴 했으나 감형을 정면으로 상대해서는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감형이 수중에 들고 있던 유령비를 벼락같이 던졌다.
{죽어랏!}
담사는 갑자기 유령비가 날아오자 재빨리 바닥을 굴렀다.
슈__ 욱!
유령비는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를 스치고 돌 벽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파앗!
그와 동시에 감형의 몸이 갑자기 신속무비하게 동굴
밖으로 쏘아나가는 것이 아닌가?
사실 감형은 모든 내공을 독기가 퍼지는 것을 막는데 쓰고
있는 탓에 담사를 상대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해서 일단 허장성세를 부려 담사를 주눅 들게 해놓고는 그대로 달아난 것이다.
담사는 감형이 꽁지가 빠지게 도주하자
그제야 그 같은 내막을 알게 되었다.
{빌어먹을! 내가 저 늙은이에게 속았군.}
이를 갈면서 벌떡 일어선 그는 급히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담사가 급히 동굴 밖에 뛰어나갔을 때는
이미 감형의 신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더러운 늙은이! 꼭 잡아 죽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평생불안 속에 살아야 하니까.}
독백하는 담사는 바위산과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한나절 동안이나 찾았지만 감형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한 담사는
다시 동굴로 들어왔다.
담사는 동굴 안을 살펴보고는 감전의 시신을 뒤졌다.
그자의 품에서는 두 권의 책자와 은자, 그리고 조그만 나무 갑이 나왔다.
나무갑을 열어보자
그 안에서는 역용에 필요한 각가지 도구가 들어 있었다.
이어 담사는 책자를 살폈다.
한동안 책자를 훑어본 담사는 냉랭하게 중얼거렸다.
{더러운 늙은이들, 자신들의 무예를 나에게는
오할도 가르쳐 주지 않았군.}
두건의 비급 중 한 권은 유령쌍사가 익혀온 유령문의
무공비급이었고,
또 한권은 각대문파의 수법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전에 대한 실전무예가 수록되어 있었다.
담사는 유령비(幽靈匕) 등 챙길 것은 모두 챙기고 동굴을 떠났다.
이윽고 담사의 신형이 저 멀리 황사풍 사이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동굴 속에 자리한 돌침상이 흔들이며 윗부분이 옆으로 밀렸다.
돌 침상 안에는 조그만 공간이 있는데, 백지장처럼 창백한 안색의 감형이 힘겹게 밖으로 나왔다.
[헉헉!]
숨어있던 은신처에서 빠져나온 감형은
구르듯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사실 그는 동굴을 뛰쳐나가는 척 하면서 동굴 입구의 천정에 몸을 붙였었다.
내공을 쓸 수 없는 상태인지라 그대로 달아났다가는 꼼짝없이 담사에게 추격당할 것임을 아는 때문이었다.
다행히 담사는 미처 그를 보지 못하고 동굴 밖으로 그를 찾아나섰고, 그 후 감형은 재빨리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와
미리 보아두었던 침상 안의 비밀 공간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배은망덕한 놈! 내 기필코 네놈을 찢어죽이고 말겠다!]
동생 감전의 시신을 돌아본 감형은
이를 부득 갈고는 운기조식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