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 치기와 자치기
넓은 장터의 한 귀퉁이 공터에는 젊은 장돌뱅이들이 모여 땅바닥에 손바닥만 한 삼각형을 그려놓고 그곳에 각자 동전을 하나씩 놓고 순서를 정하여 일곱 걸음밖에 줄을 긋고 그곳에 서서 돌을 던져 삼각형 금 밖으로 돌에 맞아 튀어나오거나 밀려 나온 동전을 가져가는 놀이로 떠들썩하였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 심심해서 한다는 놀이라지만 일종의 도박으로 비춰 그다지 보기에는 좋지는 않았다. 동전을 따먹으려는 경쟁력에 각자 쏟아 붓는 집중력들이 높아졌다. 때로는 시비가 일고 고성이 나기도 하고 그걸로 중단되기도 했다.
무료할 때 할 만한 것이 저렇게 마음을 다치게 하는 저급한 놀이문화밖에 없을까, 저걸 운동력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고 평소에 할아버지는 생각하셨다.
할아버지는 어린 아이들의 놀이 문화가 적어 다양한 놀이문화의 부족함을 느껴 왔던 터라 기왕이면 학동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엽전치기 도박을 바꾸어 고안하여 비석 치기 놀이를 실행실습을 해보시고 보급하기로 하셨다. 크기는 손바닥만 하고 세우기 좋은 돌을 골라 땅바닥에 세우면 상대는 일곱 걸음 밖에서 그 돌을 쓰러뜨리는 거였다.
먼저 세워놓은 돌로부터 일곱 발걸음 있는 곳에 줄을 긋고 그 자리에 서서 돌을 던져 세워진 돌을 맞추어 쓰러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때문에 무엇보다 정신을 모으는 집중력과 거리 측정 감각이 매번 필요했다.
두 번째로는 비석을 한 발짝 거리에 던져놓고 깨금발로 비석을 밟고 내려와 깨금발 상태에서 그 돌을 주워 던져 비석을 쓰러뜨린다. 두 발짝, 세 발짝도 동일한 방식으로 그리했다.
세 번째는 두발 사이에 돌을 끼워 한 발자국을 깡충 뛰며 두발을 풀어서 탄력 받은 돌이 대포알처럼 쏘아져서 비석을 맞추는 것을, 동일하게 세 발자국까지 한다. 여기에서는 적절한 때에 발을 벌려주는 순발력이 요구되었다.
네 번째는 발등에 돌을 올려놓고 돌이 없는 발이 한 발자국을 띠며 돌이 발등에 있는 발이 뒤 따라 니가며 돌이 미끄러지듯 발을 닐려주어 비석을 맞츤다. 세발자국까지 걸어가야 하며 돌을 중간에 떨어뜨리지 않게 균형 감각을 잡아줘야 했다. 다섯 번째는 무릎 사이에 끼고 걸어가 돌을 투하하는 것이라 정확도가 성공률을 결정지었다.
여섯 번째는 똥꼬에 끼고 가서 똥 누듯 투하하여 쓰러뜨린다. 일곱 번째는 배꼽에 올려놓고 가서 투하한다. 여덟 번째는 턱밑에 가슴에 올려놓고 떨어뜨린다. 아홉 번째는 어깨에 올려놓는다. 열 번째는 뺨에 올려놓는다. 열한 번째는 이마에 올려놓고 열두 번째는 머리에 올려놓고 투하한다. 어쩜 이렇게 감탄이 나오게도 완전수 12단계일까.
이를 오창 학당 쉬는 시간에 비석치기 놀이를 하도록 권장하였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집중력이 좋아져 전체 반성적이 90푼 이상이 상향조정이 되었다. 발에서 출발해서 머리까지 올라오는 전신운동이 되어 몸의 유연성과 균형감각을 찾고 면역력과 저항력이 강해져 잔병치레를 자주 하던 아이들이 건강하여졌다. 이거야말로 즐거운 아라리이다. 이를 공감하고 여럿이 즐기는 아라리이다. “ 정든 임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뻥끗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하는 가사에서 끙끙 혼자 앓는 아라리와 여럿이 즐기는 아라리와는 대조적이다.
산삼을 캐는 심마니 아저씨는 어린이들 수준에 맞는 놀이 깜으로 거리예측 감각을 길러주는 자치기를 권장하였다. 허공에서 정확한 타격능력을 늘려주며 신속한 판단이 요구되는 놀이였다. 어린 시절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칼싸움 놀이를 하다가 나무로 만든 칼이 모두가 부러져 더는 못하게 되었더란다. 주저앉아 쉬면서 부러진 나무토막을 만지작거리다가 아이들이 나무토막 멀리 보내기를 했다는 것이다. 차츰 규칙이 바뀌갔다.
이를 정리하면 두 자 정도의 나무 채를 한쪽 부분을 대충 뾰족한 모양에 가깝게 깎아내고 또 다른 반자 정도의 나무토막 양 끝을 삼각형 모양으로 끊어내어 땅바닥과 닿지 않도록 한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순서를 정하고 두 자짜리 나무가 들어갈 수 있는 폭으로 땅바닥을 세로로 한 치 깊이로, 길이는 반자 길이로 파주고 반자짜리 나무토막을 그 위에 가로로 올려놓는다.
그리고 두 자짜리 긴 나무채로 반자짜리 짧은 나무토막을 들어 던져 멀리 공중에 띄워준다. 상대아이들은 허공으로 날아오는 작은 나무토막을 잡는다. 허공의 나무토막을 잡았으면 공수(攻守)가 바뀌고 잡히지 않으면 그 작은 나무토막이 있던 자리에 긴 나무 채를 올려놓고 작은 나무토막을 던져 긴 나무 채를 맞히면 공격과 수비가 바뀌고 맞히지 못하면 작은 나무토막이 떨어진 위치에서 긴 나무채로 작은 나무토막의 한쪽 끝을 때려 공중으로 튀어 오른 작은 나무토막을 가격하여 멀리 날아가게 한 후 처음 땅바닥을 파놓고 시작한 기준거리에서 긴 나무 채가 얼마나 되는지를 추정하여 그 측정값을 말한다. 상대가 수긍하면 땅바닥에 그 값의 수를 적어놓고 다시 시작한다. 만일 상대가 이의를 제기하면 긴 나무채로 거리를 실제로 재어보고 추정하여 부른 거리가 실측한 결과와 맞지 않으면 공수를 바꾼다.
자료 : 攻칠 공 守지킬 수
두 번째 타순이 돌아오면 세로로 한 치 깊이로 파인 곳에서 위쪽으로 비스듬히 세워놓고 지면에서 뾰족하게 노출된 나무토막의 한쪽을 때려 허공에 띄워 다시 재빠르게 타격을 가하여 멀리 보낸다. 세 번째 타순이 돌아오면 이번에 작은 나무토막을 땅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한 손에 붙들고 살짝 풀어줄 때에 긴 막대를 쥔 손이 가격한다. 이때 타격에 실패하면 공수를 바꾼다. 네 번째는 한 손으로 짧은 나무토막을 허공에 띄운 것을 석자짜리 긴 막대로 가격하여 멀리 보낸다. 마치 야구방망이 휘두르는 동작과 유사하다. 다섯 번째는 나무토막을 땅바닥 파인 곳에 놓고 가격하여 멀리 보내기다. 이는 마치 골프채를 휘두르는 동작과 유사하다. 역시 타격에 실패하면 공수를 바꾼다.
한편으로, 이런 요소들을 면밀히 보면 비석치기와 자치기의 문화에 들어있는 그 과정과 요소들이 지구를 도는 이런 성향의 바람이 되어 골프와 야구를 형성하게 하는 데에 일조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원조가 되는 건 아닐까. 비석 치기의 발동작과 손동작도 축구와 야구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도움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이런 피를 이어받았기에 오늘날 여자 골프가 세계를 휩쓸고 한국 야구가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는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리도 하게 된다.
“ 어서 오세요. 주문한 산삼을 가져오신다고 들었어요 뭘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어요?”
“ 네, 물론 산삼도 가져왔지만 학동들이 자치기를 할 때 장갑을 끼고 하도록 하게요. 공중에 날아오는 막대를 잡을 때 장갑을 끼고 하면 아이들 손이 아프지 않아 좋고요. 더 안전하게 잡을 수 있도록 이런 장갑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하고 준비해온 장갑을 10짝을 내놓았다.
“ 어머, 우린 미처 생각지도 못했는데 학동들 사랑이 어쩜 이렇게 깊으세요?”
“ 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대감님께서 인재 키우기. 인재양성에 기울이시는 노력과 쏟아부으시는 사랑을 보면 쇤네는 더 많이 배워야 하지요. 나라를 지켜주고 발전시켜줄 고마운 사람들이 커가고 있잖아요.”
산삼 심마니 아저씨의 이런 배려 깊은 섬세한 태도와 반응은 예측하지도 못한 깜짝 놀랄 아라리였다. 그 시대에 드물게 나타나서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이벤트였다. 뭐야, 그럼 야구 장갑의 원형이라 말해도 되는 거야? 원조이면 뿌리가 되는 거네. 아무렴 어떠하냐? 이를 반복하여 즐기는 놀이는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로 골목이 활발하다.
휴식시간에 주어지는 학동들의 놀이가 비석치기에 하나 더, 자치기 종목이 추가되어 재미를 더했다. 자치기는 작은 막대를 정확히 때리는 타력과 거리 측정 능력과 예상값을 단호하게 부르는 뱃장을 키워주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학당의 학동들이 학문을 수학하는 것에 힘쓰지 않고 노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돌았다. 골목마다 공터에서 아이들이 모여 노는 소리가 시끌버끌하였다. 비석 치기 놀이가 진행하다 보면 각각의 단계에서 돌을 쓰러뜨리지 못해 탈락한 아이들이 나온다. 이때 다른 아이가 그 아이의 몫까지 대신하여 줘서 그 아이들을 되살려 내어 다시 다음 단계로 진행될 때마다 아이들의 함성이 높았다. 탈락한 아이들을 구제하여 함께 나아가는 다시 내편이라고 끌어안는 모습들이 똘똘 뭉쳐 단합을 이루게 하였다. 그러니 어찌 시끄럽다 할 만큼 탄성이 아니나오겠는가. 탈락하여 풀이 죽었던 아이가 되살아났는데 어찌 환호가 없겠는가. 죽었던 동무들을 되살려내어 다음 단계를 진행하기 위해 모두 함께 나란히 줄에 섰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신바람의 기가 솟지 않겠는가.
정든 임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서만 아라리가 난 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모여 뜨겁게 탄성과 환호를 낼 때에도 동네마다 골목마다 아라리가 났다. 어른들이 볼 때에는 온통 시끄러운 아이들 세상이었다. 이 일이 기어코 돌고 돌아 말이 들어왔다.
“ 학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은 책은 집어던져 놓고 나가놀기만 합니다. 비석 치기인지 자치기인지 뭔 놀이를 하는지 소리를 지르며 동네가 떠내려가도록 떠들어대며 아주 요란스럽게 놉니다. 이게 다 학당에서 놀이를 가르치고 권장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까?”
“ 그것도 모자라 나무칼 전쟁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끝나면 또 공깃돌 놀이를 해요. 그러고는 피곤하다고 쓰러져 잠이 듭니다, 이러고 언제 공부를 합니까?”
오창 학당 학무 운영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홍준표 운영위원이 말했다.
“ 학동들이 학당에는 놀러옵니까? 학당이 아이들 놀이터입니까? 면학분위기가 무너져가고 아주 놀자 판이되었습니다. 비석치 기고 자치기고 모두 중단시켜야 합니다.”
“ 놀이는 주로 육체적인 것에 속하지요. 이에 비해 학습은 정신적이다라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놀이를 한다고 해서 육체만 발달하는 게 아닙니다.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의 도움 없이는 육체가 바르게 혹은 효율적으로 운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예(一例)로 몸의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은 학구 활동에 참여하는 데에 많은 불편이나 장애를 겪게 되죠. 그래서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활동이 나온다는 말을 하죠.”
“ 그래요. 놀이문화에서도 배우고 터득해나가는 좋은 점들이 많습니다. 어울려 노는 데에는 서로의 감정의 교류와 자기 자제력도 필요하고 때로는 동감이나 호응의 표현도 이견을 조정하는 노력도 해야 하니 육체 활동이지만 정신활동도 아울러 활발해지지요. 이 놀이를 통해서 남을 배려하는 인품을 배우고 키우게 되는 좋은 결과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듣고 보니 토론이 참 유익하였습니다. 저도 단순히 어린 학동들 노는 거 하고, 아이들 장난 같은 거 하고 이리 가볍게 지나치려 했는데 생각지 않았던 놀이문화의 장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놀이에 재미 들린 학동들의 단점처럼 보이는 단면을 크게 보기보다는 육체와 정신이 함께 건강해지는 장점들을 크게 봅시다. 그래서 학동들에게 놀이와 학습 사이에 고른 균형감각과 시간을 잘 활용하는 자제력을 친절하게 주의시켜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오늘 참 멋진 결론을 내려주신 운영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난제들이 우리 오창 학당에 찾아들 것입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넓은 생각으로 문제들 파악하고 지혜로운 대책을 마련하는 기능이 있다는 게 얼마나 마음을 놓이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운영위원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이후로 동네마다 마을마다 비석 치기와 자치기 열풍이 200년간이나 세차게 불어 조선반도를 휩쓸었다. 오창 학당의 손자와 충주 아씨와의 혼인 소식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소식으로 자릴 잡았다. 결혼 분위기에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할아버지께서는 교육을 통해 새로운 인재를 많이 육성해야만 일본을 제압하고 청나라에 맞설 수 있는 강한 나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셨다. 세계의 열강들이 늑대가 되어 공격을 하여도 이 난국을 헤치고 이겨나갈 인재를 양성해서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에 대비코자 하셨다. 이에 호응하는 주변의 교육기관으로 서원과 학당들도 관심을 보이고 학당 운영의 제도와 경험을 배우고자 수업 참관 및 운영 지침과 실행 자료를 요청하였다.
이러므로 학당 인재 양성의 이념과 방식을 많이 배워갈 뿐만 아니라 전신운동 비석 치기도 자연히 흥미롭게 전파되었다. 이는 곧 비석치기 친선경기로 불붙이듯 빠르게 발전하고 인근과 먼 곳에서도 참여하여 일본의 강압통치 이전까지는 매우 큰 행사로 실시되었다.
결국은 이 물결과 바람은 ' 비석치기 전국대회' 를 청주목에서 열리게 만들었다. 조선 8도의 대표 선수들이 청주목에 속속이 도착하였다. 각도는 정규 선발 선수 7명에 예비 선수 3명으로 구성하여 10명이 참가했다. 정규선수 56명과 예비 선수 24명의 선수들과 응원을 위해 사물놀이패가 4명씩 인솔자들과 함께 참가한 가운데 청주목 동헌 앞뜰은 잔치집 분위기로 타올랐다. 거기에 감독을 맡은 심판진과 대회 운영위원들도 구성되어 결코 작은 행사가 아니었다. 이러한 대규모 행사는 드문 일이어서 청주목 일원의 백성들에게는 비상한 관심사이므로 1,000여 명의 구경꾼이 모여들어 이를 지켜보았다. 때 아니게 예고 없이 주막의 민박집도 대박이 났다. 자연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거리에는 노점상들이 모여들어 좌판을 벌여 축제판이 되었다.
이런 대규모 행사는 신라, 백제, 고구려가 상당산성에서 청주목 지역 쟁탈전을 벌이는 전쟁을 빼놓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 분위기를 끌어올려주는 4 물놀이 패들의 아리랑 연주가 하늘을 찔렀다. 응원가로 준비한 민요 옹헤야도 빠른 박자로 분위기를 잘 맞췄다. 정말이지 예사 아라리가 아니었다. 즐거운 아라리의 범주를 넘어선 흥분의 쓰라리라고 말해야 옳았다.
이윽고 청주목사가 '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경기' 라는 표현을 하며 “ 조선 팔도 비석 치기 대회 개회를 선언 합니다.” 하고 흥미를 갖고 지켜보겠으니 열심히 해달라고 주문하였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꽃피는 늦봄에 전국에서 청주목으로 온 사물놀이 패들이 개회를 알리는 신나는 아리랑을 연주하였다. 뒤이어 응원가 옹헤야를 빠른 박자로 연주할 깨 흥미진진한 흥분의 분위기 아라리가 났다.
오창 학당의 대표선수를 이끌고 참가하여 선수 관리와 뒷바라지하기도 정신없이 바쁜 와중일 텐데 오창 학당의 박 선희 주무담당 敎員과 조교들이 대회본부 행사를 주관하고 모든 대진표를 편성하여 매끄럽게 진행하였다. 매번 승패가 갈리고 그때마다 사물놀이 패들의 연주가 울리고 불타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렇다 연이어 즐거운 놀이에, 짜릿한 승부에 신나는 아라리 판이 수차례 벌어졌다. 8도가 참가해서 1차전에서 4도의 승자가 나오고 2차전에 진출해서 승자가 2도로 남아 3차전 최종 결승을 하게 되었다. 뜨거운 응원으로 분산되었던 시선이 마지막 최종 결승전으로 모아졌다. 응원도 두 패로 나누어져 그 열기로 모두들 얼굴이 붉어졌다. 응원팀도 저마다 바빴다. 여기저기 어울려 간간히 막걸리를 돌리고 잔을 건네고 주고받았다.
이후로도 이 사실은 훗날 청주동헌 터를 복원 공사를 할 때에 비석 치기 용도의 돌들이 많이 출토되었으므로 증명이 되었는데 아무도 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흔하고 흔한, 쌔고 쌘 돌조각이라 불리고 비석치기나 하고 놀던 손바닥 만한 돌이 공사하는 데에 웬 방훼냐는 반응이었다, 헛소리 마라고 무시도 되었다. 아무렴, 그런 소리 좀 들으면 어떤가. 비석치기는 오늘날까지도 소멸되지 않고 살아서 불사조처럼 전해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이는 생존의 아라리였다.
자료 : 비석치기 300쪽 참조
君子들의 식사
새로 신설된 주경야독 반은 웬만한 정신력과 정성이 닿지 않으면 학습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간의 농사일로 인한 피로감이 몰려왔고 졸음이 공습하므로 까딱까딱 조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래서 수업을 짧게 하고 배운 내용을 그 자리에서 연습하고 일찍 숙달한 사람은 비어있는 옆 교실에서 먼저 휴식을 취하게 보내고 나머지는 숙제로 주어 집에서 부가의 학습노력을 하게 하였다.
주간에 신설된 청소년 기초반은 9세에서 14세에 이르는 층으로 구성되었다.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들이 좋았다.
“ 꼬르륵 ”
붓글씨를 지도하고 있는 조용한 수업 시간에 어디선가 또 슬픈 소리가 들렸다.
“ 꼬르륵”
아이들이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몇 자리에서 들려왔다. 몇몇 아이들이 아침들을 안 먹고 온 거였다. 못 먹고 온 거라면 고통의 소리다. 아이들이 그 소리에 귀를 모은다. 수업 분위기가 분산되어 잘 될 리가 없다. 반 담임敎員 충주 아씨는 이를 학무회의에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창 학당의 운영자이신 조부께서는 백성이 병에 강한 건강한 나라가 되려면 어린이 시절에 튼튼히 키워야 성인 되어도 건강하다는 점을 강조하시고 예방의학에도 힘을 쏟으셨다. 아침 일찍 종산 산지기 칠룡이는 자신의 친구 심마니를 데리려 찾아왔다.
“ 조금만 늦었으면 지넬 만나지 못할 뻔했네.”
“ 일행들과 산행을 정하는 날을 택일하기로 하여 나가는 길일세.”
“ 그보다 우리 대감님께서 자네를 좀 보자고 하시네. 어서 가세.”
권대감은 오창 학당의 운영자로서 학동들에게 어려서부터 예방의학 방책을 적용하여 심혈을 기울여 양성 중인 인재들을 보호하고 지키기로 하셨다. 이에 걸맞은 방책으로 놀이문화를 통해 자생력을 강화하고 좋은 약재를 어려서 섭취하게 하면 건강이 일생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셨다. 그래서 학습의욕을 고취하고 진작시키기 위해 장학생들에게 산삼을 복용시킬 방안이셨다. 할아버지는 선발된 학동의 수만큼 심마니들에게 산삼 채취를 의뢰하셨다.
“ 아니 갑자기 이리 많은 산삼을 주문하십니까? 대감마님!”
“ 그대가 나이가 80 고령인데도 심마니로 산을 잘 타는 사유가 그대의 고조께서 어린 시절의 그대에게 산삼 한 뿌리를 먹여 감기 한번 안 걸렸다는 그대의 예방의학 사례를 듣고 생각이 나게 하는 게 있었소. 이번에 군자의 상을 받는 학동들에게 예방의학 차원에서 산삼을 먹여 건강히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소. 그럼 나라의 인재가 튼튼하고 건강하여 중국으로부터 바다 건너 일본으로부터 이 나라를 잘 지키지 않겠소?”
“ 이런 훌륭한 일이라면 이 심마니도 기꺼이 힘을 보태겠습니다. 대감마님!”
“ 그러시게 군자의 상을 주는 날 자네 손으로 어린것들의 입에 한 뿌리씩 직접 넣어주시게. 자네의 수고비는 마땅히 지불하겠네.”
“아닙니다. 저도 기꺼이 이런 좋은 일에 협력하겠습니다. ”
학당 운영자이신 할아버지는 산삼이 채취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사들여 유망한 어린 인재들부터 섭취시키셨다. 이들은 성장하여 훗날 만주 독립군을 지원하기도 하고 얼마는 재력으로도 상해 임시정부의 항일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가계(家系)의 힘으로도 표현되었다.
또한 새로 시작하는 면천(免賤)된 백성들로 이뤄진 주경야독반은 학생들로 넘쳐나고 인기가 초저녁부터 한밤까지를 불을 밝혔다. 그런데 그들의 자녀들이 아침식사를 거른다는 사실을 아시고 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대표 운영 위원이신 조부께서는 학무 운영회의를 여셨다.
자료 : 家집 가 系이을 계 免면할 면 賤천할 천
“ 배가 고프면 무슨 공부가 되겠소. 또한 공부를 하려면 체력이 필요한데 소리 나는 빈 뱃속은 오히려 수업 분위기와 집중력을 분산시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않소.”
대표 운영 위원이신 할아버지께서 화제를 꺼내셨습니다.
“ 아니, 학동들이 밥 먹으러 학당에 옵니까? 거지 근성을 키우는 겁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200년 후에 홍갱이 홍준표가 할 말이 연상되는 똑같은 말이 먼저 나왔다.
“ 두 끼를 굶는 학동만 식사를 제공하면 어떻습니까?”
차세대 균형식사 제공을 반대하는 오세훈 운영위원이 타협안을 내놨다.
“ 학동들의 건강과 학업 정진을 위해 식사를 마련하자는 취지를 무색게 하는 발상입니다.”
“ 그럼 한 끼를 거르든 두 끼를 거르든 굶고 오는 모든 학동들만 남겨 식사를 시키지요. 그럼 문제가 해결되죠?”
“ 그리 하시면 현안이 해결되는 듯 보입니다만 새로운 문제가 하나 더 생깁니다. 집에서 굶고 나와 학당에서 식사하는 아이와 집으로 가서 식사하는 아이로 파가 둘로 나눠집니다. 이러면 보이게 안 보이게 갈등과 분열과 무시와 편견의 바람이 일지 않겠습니까?”
“ 좋은 지적입니다. 다 함께 먹으므로 먹는데 앞에서라도 차별도 없고 질시의 눈초리도 없는 편안한 한마당 식사 라야 제대로 살이 되고 피가 되고 올바른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 잘 사는 집 학동을 왜 학당에서 먹입니까? 공자께서도 옹야(雍也) 3에서 주급불계부(周急不繼富)라고 부한 곳에 부를 더 추가하지 않는다 하셨지요. 학동들은 밥 먹으러 학당에 옵니까?”
홍준표 운영위원이 말했다.
자료 :
周 마음씨가 두루(주) 미치다. 周는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
急 급할 급, 急은 궁핍하고 급박한 것.
“ 공자께서 이 자리에 계시다면 크게 덕을 이루는 한 끼의 식사를 불계부라고 해석 하시진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을 두루 부족한 것에 미치게 하여 화합을 이루는 큰 덕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함께 따뜻하게 식사하는 정(情)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울려서 하나가 되는 착한 인심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모두가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살아서 산자가 산자를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 이 모두가 교육의 목적이자 효과이지요.”
“ 꼭 기대하는 바는 아니지만 부유한 집들이 자녀의 점심식사를 학당에서 하고 있는 것을 모른 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좋은 일에 후원자로 나서 줄 것입니다. 아름다운 일을 만드는 것이지요.”
“ 그리하시지요. 다 같이 웃으며 즐겁게 먹는 점심 식사를 학동들에게 제공합시다. 모두가 君子로 키워내야 하는데 君子들이 굶거나 학우가 굶음을 아는데 혼자 식사하면 어찌 무슨 君子라 하겠소?”
“ 그럽시다. 학동들이 우리들의 꿈나무 君子들이 아니겠소? 식사를 맛있게 하고 君子처럼 큰 인재가 되려무나 하고 등을 두드려줍시다. 이러면 힘나는 아리랑, 즐거운 아리랑을 부를 수 있지 않겠소? 우리들의 아리랑으로 평안을 표현해줍시다.”
“ 그러지요. 군자의 식사이니 군자의 품위에 어울리는 식사의 예도를 가르칩시다. 품위 있는 인재, 격조를 갖춘 사람을 교육하는 것은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토론의 열기가 고조되었으나 결론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와 운영위원 모두의 마음이 흡족하여졌다. 따뜻한 홍삼차를 마시며 모두에게 덕담과 웃음꽃이 이어졌다. 군자의 식사, 격조를 갖춘 사람, 듣기만 해도 흥분되고 설레는 아리랑의 곡조였다.
얼마가 흐른 후에 고을의 유지들이 보낸 소달구지들이 와서 학당의 곳간에 쌀가마를 들여 채웠다. 이는 격조 있는 군자들의 마땅한 소위(所爲)가 아닌가. 더불어 사랑채를 개조하여 차세대 균형식사를 모든 학동들이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식탁 시설과 취사 및 조리인원을 보강하였다.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는 강복(降福)이었고 학당에는 축복이었다. 아라리가 났다. 이는 행복의 즐거운 씨를 뿌리는 아라리였다.
자료 : 降내릴 강 福복 복
권 정 택 作 소설 ' 사랑혼 아리랑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