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 히데유키(伴 英幸) 선생이 6월 10일 서거했다. 그는 한국의 탈핵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쳐온 원자력자료정보실(CNIC, 1975년 설립)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일본의 대표적 탈핵인사 중 한 분이다. 2013년 이명박정부에 의해 입국거부를 당하기도 한 그의 서거를 애도하면서 2017년에 탈핵신문과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원자력자료정보실 반 히데유키 대표 인터뷰>
일본의 반핵단체를 대표하는 원자력자료정보실(CNIC). 도쿄를 근거지로 약 40년 동안 일본 반핵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말 그대로 핵발전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축적해 과학적 관점에서 핵발전 정책에 맞서는 활동을 이어왔다.
그 CNIC의 공동대표 반 히데유키(伴英幸) 씨가 10월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2013년 4월 한국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교보환경대상(후쿠시마 사고 이후 CNIC 활동)을 수상하러 입국했지만, 한국 내 반핵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정치적 이유로 당일 공항 출입국사무소에서 입국거부를 당해 그 다음 날 귀국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그런 일 없이 한국에 입국했고, 토론회 등 계획된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10월 13일(금) 오후, 서울 경복궁 인근에서 그를 만나보았다.
반히데유키 대표
CNIC 소개
정부와 산업계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CNIC는 ‘핵발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목표로 1975년 설립되었다. 핵발전의 위험성과 문제점에 대한 자료 수집과 조사연구를 통해 얻은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초대 대표는 다케타니 미츠오(武谷三男) 씨였고, 그 다음은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郞) 씨가 실질적으로 CNIC를 이끌었다. 2000년에 NPO법인 등록을 했고 현재 회원은 전국적으로 약 3000명. 함께 일하는 사무실 동료는 7명이며 회비와 기부로 운영하고 있다.
CNIC 창립 당시 일본 분위기는?
1970년대 중반부터 일본 각지에서 핵발전소 반대 기운이 높아졌다. 반면 일본정부와 전력회사는 ‘핵발전소가 꼭 필요하고 안전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지역에서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핵발전소에 대한 불신은 쌓여갔지만 반대를 위한 무기, 즉 이론이 매우 부족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함께 싸울 것을 목적으로 뜻있는 과학자들이 모였다. 특히 다카기 진자부로 씨는 실제로 현장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끝까지 일관되게 주민들과 함께 싸웠다. 그는 이론과 구체적인 운동을 함께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원자력학과에서 공부한 사람이 이런 활동을 하면 당연히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다. 상당한 각오가 없으면 못할 일이었다. 당시 우리(CNIC)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과학자들로, ‘구마토리 6인조’(교토대 원자력실험소 연구자들)가 있었다. 그들은 주로 서일본 지역을, 우리는 도쿄를 중심으로 동일본 지역의 반핵운동에 대응했다.
반 대표의 CNIC 참여 계기는?
나는 1990년부터 CNIC 사무국에서 일했다. 1995년에는 사무국장, 2000년 다카기 진자부로 씨가 타계한 후 공동대표가 되었다.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내가 대학에 다녔던 시절은 사회운동이 활발했던 시절로, 자연스럽게 공부보다는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 졸업 후 1976년 생활협동조합에서 13년 동안 근무했다. 1988년에 다카기 진자부로 씨가 ‘탈원전법’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 1년 동안 함께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89년부터 CNIC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핵문제에 관해서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사고를 계기로 관심을 가져 나름 지식은 축적되어 있었지만, CNIC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후쿠시마 사고 후 6년이 지났다. 현재 일본 핵발전 현안은?
무엇보다 재가동 문제가 제일 큰 현안이다. 54기의 핵발전소 중 후쿠시마제1핵발전소 1~6호기, 그리고 추가적으로 노후 핵발전소 총 6기를 폐로하기로 결정해 현재 총 42기다. 그 중 현재 재가동하고 있는 것은 5기. 각지에서 재가동을 저지하기 위한 활동이 활발하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 현장 수습, 피난구역 해제, 주민들의 손해배상 문제 등 후쿠시마 사고 관련 이슈들이 여전히 많다.
아주 중요한 또 다른 현안으로 잉여 플루토늄 처리 문제가 있다. 현재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잉여 플루토늄은 47톤이다. 일본 내 10톤(롯가쇼무라와 도카이무라 시설에 각각 5톤씩), 일본 외 37톤이 있다. 이것을 연료로 만들어 기존 핵발전소에서 다시 사용하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기본 원칙이다. ‘일본이 플루토늄을 과잉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약한 사안인데, 이미 47톤이나 보유하고 있다. 굉장히 좋지 않는 일이다. 주변국들에게 핵무기 개발의 구실이 된다. ‘일본은 보유하고 있으면서 왜 우리는 안 되냐’는 논리가 성립하고 이것이 바로 핵확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플루토늄을 핵발전소 연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또한 핵발전 확대를 의미한다.
한국도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가 골칫거리다. 일본은?
핵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모두 재처리하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일본에는 현재 재처리 전인 총 1만7천톤의 사용후핵연료가 각 핵발전소와 아오모리현 롯가쇼 처리공장 저장조에 있다. 모두 재처리하고, 플루토늄을 추출한 후 남은 고준위 핵폐기물은 유리고화체 형태로 지하 300m에 매설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일본 정부는 고준위 핵폐기물 최종처분장 부지 선정에 관한 ‘과학적 특성 맵(MAP)’을 발표했는데…
지난 7월 28일, 일본 최종처분관계각료회의가 발표한 ‘과학적 특성 맵’은, 일본 전 지역을 최종처분장에 적합한지 그 여부를 식별한 것이다. ①지하 심층부 등 지리적 안전성을 고려해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이 있다고 추정되는 지역’ ②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인 ‘바람직한 특성이 확인되는 지역’ ③제일 적성이 높은 지역으로 간주하는 ‘수송 면에서도 바람직한 지역’, 총 세 개 지역으로 나눠졌다.
정부는 이 발표에 대해 ‘처분지역을 특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향후 처분을 위한 한걸음’이라는 애매한 설명을 덧붙였다.
‘과학적 특성 맵’을 통해 ‘제일 바람직한 지역’으로 식별한 지역은 어떤 곳인가?
발표를 보면, 국토의 약 30%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바람직한 지역’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수송물의 무게가 100톤이라서 육상 수송 속도가 최대 시속 20km를 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전용도로를 건설하지 않을 경우 육지 수송이 불가능하다. 그런 관계로 ‘수송 면에서도 바람직한 지역’, 즉 제일 적성이 높은 지역으로는 연안 20km 범위 내 지역이 선정되었다. 결과적으로 일본 47개 광역지자체 중에서 바다가 있는 현은 대부분 해당 지역으로 포함된 셈이고, 기초 지자체 수로 따지만 900개를 넘는다.
향후 정부는 이 지역을 중점적으로 대화활동을 전개하겠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이 ‘과학적 특성 맵’을 발표하게 된 경위는?
그 동안의 경과를 살펴보면, 2000년 ‘특정방사성폐기물의 최종처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따라 최종처분장 부지 선정부터 운영까지를 담당하는 원자력발전환경정비기구(NUMO)가 2002년 만들어졌다. NUMO는 20년에 걸쳐 ①문헌조사 ②개요조사 ③정밀조사, 총 3단계를 통해 적지를 결정하는데, 조사는 지자체장의 공모로 시작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고치현 도요초가 2007년 응모했다. 도요초 주민들의 엄청난 반대로 지자체장 소환운동이 벌어졌고, 결국 지자체장 스스로 사임했다. 다음에 취임한 지자체장이 응모 철회를 선언해 백지화됐다. 그 이후, 아직까지 공모에 응한 지자체는 없다. ‘돈으로 고향을 팔고 싶지 않다’, ‘고향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고 싶지 않다’는 인식이 그 만큼 크다는 증거다. 정부는 자꾸 ‘100년 사업’이라며 이 사업을 받아들이는 지역은 100년 동안 혜택을 받을 것처럼 홍보하지만, 이 문제에 관한 지역민들의 의식은 꽤 높다.
공모방식이 암초에 부딪친 후,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해 논의가 일시 중단되었다. 그 와중에 고이즈미 전 총리가 핀란드 최종처분장 공사현장을 시찰하고 와서는 “일본에는 핵쓰레기 처분장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곳이 없고, 당장 핵발전 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보수세력으로 알려졌던 그가 ‘탈원전’를 말하니까 무엇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다급해진 일본 자민당 핵 추진파들은 이 문제를 서둘러 본격화하려고 논의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는 2013년 ‘과학적 유망지’를 제시해 집중적인 이해활동을 전개하겠다는 방침을 내걸었고, 그 결과물로 이번에 ‘과학적 특성 맵’이 발표되었다.
이 발표에 대한 일본 지자체와 탈핵진영의 반응은?
먼저 ‘핵발전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하라’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 입장이다. 즉, 먼저 핵폐기물의 총량과 형태를 확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핵발전 가동을 멈추고 재처리 없이 직접 처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일본 47개 광역지자체 중 약 절반이 공식적으로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홋카이도의 경우 관련 조례가 있고, 그 외에도 여러 광역지자체가 이미 거부 의사를 표명하거나 거부 조례를 제정해 대응하고 있다.
원래 NUMO 계획에서는 2045년부터 최종처분장을 개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조사 기간을 20년, 건설 기간을 10년으로 계산한다면 지금쯤 이미 처분장 부지선정이 완료되어있어야 한다. 일본 정부와 아오모리현은 해외에서 처리되어 돌아온 유리고화체를 일시적으로 롯가쇼무라 시설에서 관리하지만, 30~50년 후에는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처음 반입된 것은 1994년이다. 일본 정부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 정부가 전혀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한데, 시민사회도 지자체도 정부가 제시하는 지중처분에 대해 쉽게 응할 리가 없다.
한국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 문제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 일본 등 핵발전을 추진하는 모든 나라들의 공통 문제다. 역시 총량을 확정한다는 의미에서, 핵발전 정책을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형태로 최종처분장 부지를 정하는 것은 지역에 엄청난 대립을 만들 수밖에 없다.
쉽지 않는 문제다. 지중처분이 정말 최선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확실한 답이 없다. 그래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전제로 몇 십 년 단위로 중간 저장할 수 있는 과정과 방법을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이것 또한 해당 지역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건식저장으로라도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후쿠시마 사고로부터 6년 이상 지났지만 사고의 상처는 깊어지고 사태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폐로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의 건강문제를 비롯한 생활에 미치는 악영향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다. 중대 사고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탈핵을 실현해야 한다.
핵발전은 이미 사양 산업이다. 세계적으로도 탈핵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 큰 흐름은 탈핵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해서 자신 있게 진행해 나갔으면 좋겠다. 정부가 내는 엉터리 정보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런 때일수록 정확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갔으면 좋겠다.
탈핵신문 2017년 11월호 (제57호)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출처 : 탈핵신문(http://www.nonukes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