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지리박물관장은 수집한 지도와 지리 관련 자료를 보존, 전시하고자 박물관을 만들 곳을 찾다가 2005년에 카페를 하던 이 건물을 사서 2년 뒤에 이곳에 박물관을 만드셨다. “한국 땅 독도는 역사적 사실이고, 이는 지도가 말하고 있습니다.” 양재룡 관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독도 문제는 우리끼리 우리 땅이라고만 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세계인이 “독도는 한국 영토가 맞다”고 인정할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해석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그는 “한국 고지도에는 독도가 울릉도 동남쪽에만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독도가 울릉도 서남쪽이나 서쪽에 그려진 옛 지도는 얼마든지 있지만, 우리가 단지 그 지도를 읽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독도와 울릉도의 위치가 바뀐 이유는 우리나라 고지도 제작자들이 울릉도 동쪽, 육지로부터 540 리나 떨어진 먼 바다에 있어서 조선시대 책으로 만들 때 목판 밖으로 나가는 독도를 목판 안으로 접어서 옮겨 표기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했다.” 독도를 한 장의 지도 속에 본토와 같이 표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접어서 울릉도 서쪽에 그리는 방법으로 세계의 지도 제작 역사상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
필자는 관장님께 몇 가지를 더 질문하여 아래에 정리했다.
★ 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동기는?
- 교직에서 은퇴 후 연금으로 결식자를 위한 급식 봉사를 생각했으나, 어느 날 아내가, “당신의 지리에 대한 열정도 그렇고, 수집해 놓은 지도와 지리 관련 자료의 보존과 전시를 위해 박물관을 해보시지요.” 하고 권유를 하더군요. 마음이 동하여 바로 박물관 건립을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 박물관 건립 기금은 어떻게 마련했나요?
- 내 퇴직금(일부만 연금으로 하고), 아내 퇴직금을 담보로 대출 받고, 이것저것 팔아서 카페 건물을 사서,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지요. 나중에는 집도 팔아먹었지만….
★ 박물관을 수원(거주지)에서 먼 영월, 이곳에 건립하게 된 이유는?
- 교직 재직 중 경기도지리교육연구회장을 8년 동안 역임하면서 지리 선생님들과 이곳을 여러 번 답사했지요. 영월은 특별한 카르스트 지형을 비롯하여 매우 복잡한 지질과, 지형 변화가 큰 곳이라 지리적으로 아주 특별해서 우리나라 지형답사 1번지입니다. 바로 옆에 주천강, 요선암 등이 있어 이곳이 지리적으로 특별한 곳입니다.
우리 박물관 옆은 천연기념물인 요선암이 있고, 돌개구멍은 다양한 형태로 화강암반 하상 위에 발달되어 있습니다. 하천의 윤회와 유수에 의한 하식작용들을 밝힐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큽니다. 여러 개의 돌개구멍이 복합적으로 발달되었지요. 이 요선암(邀僊岩)은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양사언이 평창군수 시절 이곳의 풍광을 즐기며 암반 위에 요선암이라고 새겼다고 합니다. 영월은 지형 자체도 특별하지만 동강과 서강이 어우러진 경관도 좋고, 단종의 슬픈 스토리텔링과, 우리나라 근대 광산촌의 쇠락 과정 등 역사적, 지리적 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특별합니다. 그래서 지리박물관을 이곳에 세우게 되었지요.
★ 이 지리박물관의 규모는?
- 대지 580 평에 건물 2동, 건평은 약 270 평(150 + 120)입니다. 약 700여 점의 자료가 상설 전시되어 적어도 1시간은 보아야 합니다.
★ 그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어떻게 보관해 오셨나요?
- 중요한 자료는 집에 보관했고, 크기가 큰 것은 판 사람 집에서 가지고 있도록 했지요.
★ 박물관 운영상의 애로점은?
- 2007년 명퇴 후 100일 만에 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겨울에는 드세고 차가운 바람 때문에 몹시 추웠고, 연료비도 많이 들어갔습니다. 여러 해를 혼자서 박물관 쪽방에서 숙식을 해결했지만 고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가장 큰 아쉬움은 욕심나는 유물 자료를 보고도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여 마음에 걸립니다. 또한 입장료를 받지만 운영 경비도 되지 않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점이지요.
★ 박물관 운영하는 보람은?
- 내가 전공한 지리 공부를 계속할 수 있고, 사범대학에서 지리교육을 전공하여 평생 하던 지리 선생님을 계속할 수 있어 좋습니다. 지금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초빙 특강을 170여 차례 했고, 개관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지리 선생님으로 즐겁게 삽니다.
★ 앞으로의 꿈이나 소망은?
- ‘한국령 독도’에 대한 소중함을 후세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국토인 독도 지킴이와 해설, 지리에 대한 설명을 하며 살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의 지도를 과거에서 현재까지 여러 종류 소장, 전시하고 있어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로 독도가 우리의 국토임을 전 세계인들과 후세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줄 제대로 된 독도 책을 만드는 일이 제 평생의 마지막 소망입니다.
★ 수익 사업도 아닌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사모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내가 지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걸 알고, 아내가 먼저 박물관을 해보라고 권유했지요. 본인도 만족해 하고, 내 소망을 이루게 해주어 고맙지요. 더구나, 아내는 교장으로 재직하며,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박물관 큐레이터(학예사 자격시험) 까지 합격하여 이 박물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니 정말 고맙지요.
수원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은 달려야 하는 먼 곳. 주천강 변 강원도 산골 마을. 문화적으로 불편한 점,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교직 동료나 선후배들과 먼 거리에서 사는 외로움이 적지 않으련만 국가에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은 열정으로 즐겁게 사시는 모습을 보며 필자는 경외감으로 양 선생님의 생활상을 소개하고 싶었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더 갖고 싶어 끊임없는 욕망을 불태우는 사람이 많고, 국회의원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나라보다는 자신의 이권이나 정치적 입지에 눈이 가린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자신의 재산을 모두 박물관에 쏟아 붓고도 즐겁게 사시는 호야 선생님이 특별하고, 그렇게 사시는 모습이 거룩하게 느껴진다. 자신 소유의 박물관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사명감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서 가진 야망은 꿈이 아니다. 인류와 사회를 위하여 이바지 하려는 기여의식을 가지고 실천하려는 꿈이어야 진정한 꿈이다. 꿈이란 자아실현과 사회기여, 두 가지 요건에 부합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적한 강원도 산골마을, 법흥천이 주천강과 만나는 무릉리. 해발 1,000 m가 넘는 사자산과 백덕산 사이를 빠져나와 설구산 쪽으로 흘러 주천강에 합류하는 시냇가. 그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처럼, 산비탈을 마주하여 박물관 해설의 기쁨으로 사시는 지리박물관장님도 우리나라의 별이시다. 오랜 세월 그런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아 아름답게 반짝이기를 기도한다.
첫댓글 양재룡교장선생님은 저도 존경하는 분입니다. 과거 진로교육연구회 활동도 함께 했구요. 독도 연구에 관한한 아주 독보족인 인물입니다. 지리교사여서 들을 사랑한다는 생각으로 호야라는 호를 갖고 있으며 박물관 이름도 호야라는 이름으로 지으셨지요. 늘봄의 유려한 글로 읽으니 더욱 양재룡교장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