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광한루원[廣寒樓苑]
□ 일 시 : 06월 13일 (둘째 목요일 / 맑음 /19º ~ 30º)
□ 출발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천거동 187-1.(광한루주차장)
□ 도착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천거동 187-1.(광한루주차장)
□ 산행구간 : 광한루[廣寒樓]
□ 산행코스 : 광한루원(廣寒樓苑) 일원.
□ 산행거리/소요시간 : 약 3.97km / 2시간 26분(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 대중교통 : 무궁화, 신탄진역 07:35 → 남원역 10:00 도착.
KTX, 남원역 13:02 → 서대전역 14:41 도착.
□ 참카메라와 함께한 청마(靑馬).
□ 사진 청마(靑馬)
남원에서 남원 시내버스 133번, 161번, 142번으로 이동할 수 있다. 남원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남원시 시내버스 220번, 281번, 230번, 211번, 161번, 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남원시 시내버스 101번과 220번을 이용할 수 있다.
신탄진역에서 07:35분 열차를 타고 남원역에 10:00에 도착을 하여 역 광장으로 나오니 인월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시내로 안 가는 줄 알고 머뭇머뭇거리다 관광 안내소가 보이길래 찾아가 버스를 물어봤는데 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삼진약국 앞(남문사가)에서 내리면 된다기에 출발해서 오는 버스를 겨우세워 타고는 삼진약국에서 내린다. 정확한 정류장은 남문사가.....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바람이 없어서인지 벌써부터 진국이 흐르기 시작하고, 매표소에서 나는 그냥 들어가란다.
날이 너무 무더워서 춘향테마파크 까지 같다가 다음을 기약하고 되돌이 삼진약국 앞을 지나 한정거장 지나서 버스를 타고 남원역에 도착해서 13:02분에 출발하여 서대전역에 14:41분에 도착하는 KTX를 타고 귀가를 했다.
광한루원(廣寒樓苑) 지도
남원예촌 매표소에서 들어가서
나올때는 관리사무소 동문으로 나감.
[비석군]
춘향사당 옆에는 비석군이 있는데 남원과 관련있는 인물들의 칭송비들이었습니다. 이몽룡의 실존인물
성이성의 아버지인 성안의는 제일 오랜 기간 재임한 남원부사로 여기에 공덕비가 있다는데 여기에 오시면 찾아보시길요..
[단심문]
춘향사당의 정문인 단심문(丹心門) 안으로 들어갑니다.
춘향 영정
춘향사당(春香祠堂)
열녀춘향사 (烈女春香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자세하게 현판 아래를 보니 토끼? 와 자라? 가 보이는데..
[충혼불멸비]
광한루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가면 광한루엔 어울리지 않는 "충혼불멸비"가 설치 되있습니다.
6.25전쟁시 지리산등에서 저항한 공비들과 싸우다 전사한 민간인과 청년들을 추모하는 비라고함니다
호수 북쪽 광한루 앞에는 돌 자라가 동남방향으로 향해 놓여 있어 신선사상에 입각한
지킴이의 기능을 갖고 있어 전체적으로 광한루원의 구성은 넓은 은하세계, 즉 천체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영주각
광한루원에 있는 영주각은 광한루원의 호수 안에 있는 세 개의 섬 중 하나에 세워진 누각이다.조선 세종 재위 시절에 황희가 광통루를 세우고, 정인지가 광한루로 이름을 바꾼 후에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로,대한민국 보물 제281호다. 1419년 황희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 그 후 1434년 세종 16년에 남원부사 민여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 누에 올라 경관을 감상하다가 “오호라 호남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은, 나의 고향의 경승을 감상하게 되면 나의 고향보다 나은 곳이 없고, 더욱이 이곳 광한루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라며 용성지(龍城誌)로 했다. 또 일설에는 ”호남의 승경으로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지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하고 감탄하여 그 후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광한루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광한루 누각에 걸린 여러 편액 중 광한루란 편액은 신익성,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편액은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다. 이 중 계관의 편액은 동학농민전쟁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다시 써 건 것이다. 또한 현재 광한루에 걸린 광한루란 편액은 전 민의원 조정훈이 쓴 글씨이다.
1879년 광한루가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루 북쪽에 다락(월랑)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 놓았다. 북쪽의 층층대는 1877년(고종14년)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광한루가 퇴락하여 본관 전체가 북쪽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우려가 있어 수지면 고평리에 사는 추(秋) 대목의 묘안을 받아들여 북쪽에 누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되 본관과 같이 아름드리 기둥을 세워 튼튼하게 고정시켜 본관의 기울음을 바로 잡고 외관으로도 더 화려하게 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누각 건축사상 큰 의의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누각에 월랑을 가설하게 된 시초이며 이전까지는 누상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만 설치하였다.
광한루원에 있는 방장정은 소박한 멋을 살린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1963년부터 시작된 광한루원의 확장 정화 계획에 따라 남원 군수 이화익의 창안으로 도편수 이한봉이 건축하였다고 한다. 또 방장정에서 광한루를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우며, 아마도 가장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장소이다.
광한루원의 "방장정"은 광한루를 중심으로
지리산을 상징하는 방장도와 금강산을 상징하는 봉래도
그리고 한라산을 상징하는 영주도 등 세 개의 삼신산이 있고,
호수 가운데의 작은 정자로서 1963년에 세워졌다.
방장정은 1964년 12월 31일 준공하였으며, 1칸 6자 6각의 규모이다.
기단부는 형성되어 있지 않고 원형의 가공 초석 위에 복석 형태의 화강석을 얹고 그 위에다 기둥과 귀틀을 세웠다.
오작교 [烏鵲橋]
까마귀와 까치가 줄을 서 만든 전설 속의 "새다리"라죠.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오작교에서 만나 한맺힌 사랑을 나눈다는 다리이죠. '오작교'가 한자로 烏鵲橋라고 쓰니 까마귀와 까치가 만드는 다리라는 의미이죠
직녀는 체중이 가볍고 날씬했으니 '까치 머리'를 사뿐히 밟고 지나가고,
견우는 빨리 '직녀'를 만나고 싶어 무거운 체중으로 까마귀 머리를 마구 밟고 지나 갔다지요
그래서 까마귀는 대머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까마귀는 실제 대머리 새입니다.
오작교로 연결된 광한루와 완월정, 그리고 영주각과 방장정이 호수와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크고 작은 잉어들과 원앙이 헤엄치는 호수의 풍경은 환상적이다. 너무 멋진 곳으로 다시 오고 싶은 곳 중의 하나이다.
영주각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서 팔작지붕 누각이다. 또 영주각에는 영주각이라는 편액 외에도
이곳에서 바라본 광한루원의 멋진 풍경을 노래한 4점 편액이 걸려있다.광한루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
1971년 신축. 동쪽을 향해 있는 수중누각이다. 옛날 옥황상제가 계식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춘향제 등 각종 행사를 치르는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까마귀 오(烏), 까치(鵲), 다리(橋)자를 쓴다.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바로 그 다리이다.
1461년(세조 7)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 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부용당에서는 첫날밤을 보내는 춘향과 몽룡이가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몽룡이는 실존 인물이란게 이미 밝혀졌죠 기록을 토대로 연구한 논문 내용을 요약하면 본래 이름은 "성이성 成以性 1595∼1664"으로 조선조 광해군 인조때의 실존 인물이랍니다. 그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 성안의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지역을 순행하다가 남원을 찾았는데 성이성은 다시 옛 연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이미 죽고 없었다는 것이 기록인데 소설이나 판소리는 미화하고 약간 꾸며서 기록과는 좀 다르지요? 춘향이의 성은 알수 없는데 소설에선 <성이성>의 성으로 바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옥지환 [玉指環]
먼저 조형물 하나가 너른 광장 가운데에 설치되 있는게 보입니다. "옥지환 玉指環"이라는 조형물인데 "옥으로 만든 가락지"랍니다.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춘향>에게 장원급제하여 돌아 오겠노라고 징표로 준 가락지랍니다. 하늘나라 궁전을 상징한다는 <광한루>는 <황희 정승>이 첫삽을 뜨고 <정인지 충신> <송강 정철>등이 완성 시켰지만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가 더욱 상징적으로 보여지는 <광한루>입니다.
광한루 정문 (廣寒樓동東門) 광한루원(廣寒樓苑)의 정문에는 "청허부 淸虛府"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황희 정승>이 귀양 와 지은 <광통루>로 시작되었는데 하늘나라의 <옥황상제>가 살던 궁전이 "광한청허부 廣寒淸虛附"라고 해서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신선이 되고파 이상향으로 "달나라 월궁 月宮"의 "광한청허부"와 견줄려고 지은 이름 이라고함.
이곳으로 나와서 섬진강뚝을 걸어 춘향테마파크로 걸어간다.
보시느라 수고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