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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아츠이치 타운의 레인저 베이스. 에어리어 레인저 2명, 오퍼레이터 1명, 그리고 혼령 한 구(?)를 포함한 4사람이 아츠이치 베이스의 정원이었다.
며칠 전 미호가 새로 전입하기 전까진.
미호는 니와베이스에 있던 포켓몬레인저였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츠이치 베이스로 입문했다. 짧은 치마가 어울리는 소녀. 감수성이 풍부해서 포켓몬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조금 엉뚱한 성격. 별명은 '커뮤니케이터'.
미호는 잠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벼운 세수를 한 뒤, 레인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푸른 머리를 단정히 빗고 분홍색 머리핀을 끼우기만 하면...! 준비 끝!
***
여기는 아츠이치 베이스의 세미나실. 원형탁자와 함께 의자가 모여 있었고, 기존 집에서 볼 법한 생활용품들이 갖추어져있었다. 업무용으로는 회의실로, 가정용(?)으로는 동료와 화목하게 대화하는 거실로 변신하는 자유형 세미나실이다.
미호는 세미나실의 창문이란 창문은 전부 다 활짝 열었다.
미호의 얼굴은 황홀한 오로라로 가득 차있었다.
"아―. 참 좋은 아침이야. 아츠이치 타운의 아침공기는 정말 상쾌해!"
미호는 하늘을 나는 새처럼 팔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창 밖에서 파비코들이 기저귀고 있었다.
"어머? 파비코다! 안녕 파비코, 잘 지내니? 어머, 나무 둥지가 너무 예쁘다!"
미호는 파비코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지냈어? 뭐어, 제트기처럼 거대한 비퀸이 나타나 너희들 알을 깨뜨렸다고!?
세상에나, 그럼 어떻게 하지!?"
"미호 양, 지금 뭐하십니까? 유아용 프로그램 찍어요?"
"으, 응!?"
사쿠가 미호와 같은 방에 있었다. 미호는 깜짝 놀란 얼굴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미호는 사쿠의 인기척을 못 느꼈다!
사쿠는 아츠이치 베이스 동료 중 한 명이었다. 그 말은 미호의 동료나 마찬가지. 눈동자가 비치지 않는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다. 사쿠의 표정을 알려면 사쿠의 눈썹이나 입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야만 한다. 건방진 성격. 사쿠의 별명은 '데이터베이스'.
"너,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미호 양이 일어나기 전 부터요."
"그, 그럼 방금 했던 것들...!"
"네에, 다 보고 다 들었습니다. 미호 양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떠들더군요."
"허, 헛소리!?"
사쿠는 읽는 이의 눈을 피곤하고 지루할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파비코들의 나무둥지가 예쁘다고 하셨죠? 파비코들은 특성 상 높은 나무 위에선 둥지를 틀지 않아요. 둥지를 틀려면 낮은 수풀 속에 틀죠. 아마 지금 보신 둥지는 구구의 둥지일겁니다.
비퀸이 제트기만큼 거대하다고요? 비퀸은 아무리 커봤자 사람의 평균 신장을 넘지 못해요. 어디서 과장된 말을 사용하시는 겁니까. 또, 비퀸은 아츠이치 타운에서 서식하는 포켓몬이 아니에요. 비퀸은 자신의 집을 지키고, 알을 낳아야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외출하는 일도 드물고요.
그리고 마지막!"
사쿠는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핵심을 두었다.
"……. 지금은 아침이 아닙니다. 정오에요, 정오."
"지, 진짜!?"
사실이었다. 시계의 바늘들은 모두 '12'란 이름의 꼭대기를 상봉하고 있었다. 사쿠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미호에게 비아냥거렸다.
"미호 양은 포켓몬들의 말은 알아들으시는데, 알람시계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네요?
알람시계가 이렇게 울지 않던가요? '일어나, 일어나 이 늦잠 퍼 자는 놈아!'라고요."
미호는 발끈했다.
뭐,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그냥 기분전환으로 어린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행동한 건데 그걸 갖고 시비를 걸게 뭐야? 얘가 왜 이렇게 동심이 없어, 동심이!?
그러던 도중, 미호는 사쿠가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책은 삼겹살을 몇 겹 얹은 것만큼 두꺼웠다.
"뭐하는 거야? 독서?"
"네. 책은 많은 지식들을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거든요. 미호 양도 읽으실래요?"
사쿠는 미호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몇 년 읽어도 끝까지 못 볼 정도로 두꺼운 책이었다. 그것도 글자가 깨알같이 조그맸다. 미호는 상당히 부담이 컸다.
"아, 아니."
그것보단 저런 책은 어디서 구해 온 거지?
"지금 읽고 있는 건 뭐야?"
"호연지방의 포켓몬들 생태를 연구하고 정리하여 고찰한 대백과 개정판이에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포켓몬 사전이라는 말이다.
사쿠의 말 그대로였다. 책 속엔 포켓몬들의 사진이 잔뜩 찍혀있었다. 미호는 사쿠의 옆으로 다가가 책 내용을 훍어보았다. 방금 전, 사쿠가 미호에게 건넨 책보다 조금은 재밌는 책이었다.
포켓몬들의 귀여운 일러스트가 잔뜩 실려 있었으니까!
지금 사쿠는 얼룩무늬 토끼가 실린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 포켓몬 잘 보아하니..!
큭큭, 한번 장난 좀 쳐볼까?
"그 포켓몬은 뭔지 알아?"
미호는 얼룩무늬 포켓몬을 가리켰다. 그 포켓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쿠가 팔로 가리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사쿠는 팔을 치웠다.
"전국도감 327번, 평균키는 1.1m, 평균무게는 5.0kg이며, 얼룩팬더 포켓몬인 '얼루기'에요."
"얼루기?"
"네, 얼루기의 큰 특징은 얼굴에 그려진 얼룩무늬에요. 얼루기들의 얼룩무늬는 제각각이라서, 똑같은 얼룩무늬를 가진 얼루기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인간의 지문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아, 또 얼루기의 다른 특징은 비틀비틀 어지럽게 걷는 것입니다. 그 움직임을 계속 관찰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함께 비틀비틀 움직인다는군요. 아무튼, 얼루기란 포켓몬은 정말 신기한 포켓몬이죠."
"흐음―. 그래?"
라고 미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듯싶더니,
"근데, 사쿠. 너 얼루기랑 많이 닮았어!"
"제가요?"
"응! 안경이 얼루기 눈을 닮았어!"
미호는 짓궂게 웃었다. 사쿠는 얼루기 사진을 쳐다보았다. 미호가 자신이 얼루기랑 닮았다고 놀린 시점부터, 얼루기가 미덥게 보였다.
사쿠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나도 안 닮았어요. 혹시 안경 하나 갖고 얼루기랑 닮았다고 얘기하시는 건 아니겠죠? 제가 안경 벗으면―"
"껍데기만 갖고 말한 게 아냐. 얼루기가 비틀비틀 걷는 습성이 있댔지?"
"그랬죠."
"지난번 회식했을 때 생각해봐! 너 그때 얼루기처럼 이렇게 비틀비틀 걸었잖아!"
미호는 얼루기의 몸동작을 따라했다. 사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때는 말입니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거죠. 보리차로 착각해서 마신 거지만요.
아무튼 술에 취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비틀비틀 걷거든요?"
"사~쿠는―♪ 얼루기얼루기얼루기얼루기얼루기얼루기얼루기얼루기얼루기얼루기얼루기얼루기얼루기…"
"노래 부르지마욧!"
사쿠가 성을 냈다. 하지만 미호는 계속 사쿠가 얼루기라며 합창을 불렀다.
'아, 짜증나게 진짜. 입을 확 틀어막을 까봐. 아니지, 아니지! 이럴 때 감정을 드러내면 지게 되어 있어. 침착하자, 침착하자! 이에는 이, 닮은 꼴 찾기는 닮은 꼴 찾기란 속담이 있었잖아!
미호 양과 닮은 포켓몬이 누가 있었지..? 음, 그러니까……. 그래, 맞아 ‘그 녀석’!'
"미호 양이 제 닮은 꼴 포켓몬을 소개해주었으니, 저도 미호 양의 닮은 꼴 포켓몬을 찾아주겠습니다."
"혹시 나에게 복수하려고 이상한 포켓몬 소개하는 거 아냐?"
"보면 알아요."
사쿠는 능청을 피우며 책 페이지를 넘겼다. 그가 펼친 페이지엔 아리따운 외모를 가진 여성형 포켓몬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피부가 노란색이며, 머리 뒤통수엔 거대한 물체가 매달려있었다.
이게 뭘까?
미호는 이 포켓몬을 보자마자 눈동자를 반짝였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미호의 취향이었다.
"와아! 그 포켓몬은 뭐야?"
"전국도감 303번, 평균키는 0.6m, 평균 무게는 11.5kg이며, 배반포켓몬인 입치트에요."
"입치트?"
"네, 포켓몬 중에서 보기 드문 순수 강철타입이에요. 방어력이 뛰어난 포켓몬으로 알려져 있죠. 정말 미호 양과 많이 닮았죠?"
미호는 사쿠의 제안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사쿠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뭐야, 사쿠 너도 여자 보는 눈이 있었구나?"
"저도 이래 보여도 남자에요. 여자 보는 눈 정도는 있다고요."
"아무튼, 귀여운 입치트랑 나랑 닮았다니 너무 기뻐!"
역시 좋아하는 군.
사쿠는 미호 몰래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왜 제가 미호 양이 입치트랑 닮은 꼴 포켓몬이라고 얘기했는지 이유를 말해도 괜찮겠습니까?"
"응. 어째서인데?"
"입치트의 머리에 달린 거대한 물체는 강철 뿔이에요. 입치트가 불편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뿔은 기괴한 턱으로 진화했습니다.
입치트는 말이죠. 미호 양처럼 상냥한 얼굴로 적에게 방심을 만든 틈을 타, 뒤통수에 숨기고 있던 거대한 턱을 꺼내 기습하는 무시무시한 습성을 가지고 있어요."
"뭐, 뭐어!?"
"그런 입치트의 모습은 지난번 회식자리에서 삼겹살 3인분을 통째로 먹어치우는 무시무시한 식성을 보여준 미호 양과 비슷하다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쿠가 비아냥대며 웃었다. 미호는 눈살을 찌푸린 채 볼을 침바루처럼 부풀렸다.
"아니, 전혀!"
"닮았는데요, 뭘!
미~호 양은―. 입치트입치트입치트입치트입치트입치트입치트입치트입치트입치트입치트입치트…"
"그만 불러, 재미없어!"
미호가 성을 냈다. 하지만 사쿠는 계속 미호가 입치트라며 합창을 불렀다.
후훗, 복수 성공이다!
"그럼 이런 놀이를 한 김에 리더와 닮은꼴 포켓몬도 찾아볼게요."
"리더? '미카' 씨 말이야?"
미카는 아츠이치 베이스의 리더를 맡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큰 특징은 머리에 단 조그마한 랑딸랑 방울! 찐빵머리 같다. 바토나지 스타일러를 사용할 수 있는 톱 레인저지만, 가끔은 감정에 격분해 실수를 저지를 때가 있는 초보 리더이다.
"리더의 닮은꼴 포켓몬은 이 포켓몬이에요!
사쿠는 책 페이지를 넘겼다. 책 페이지를 넘긴 자리엔 보라색 포켓몬이 그려져있었다.
험악한 얼굴, 돼지 코는 미호에게 비호감이라는 감정을 안겨주었다.
"노공룡이 미카 씨랑 닮았다는 거야?
사쿠, 진심이지...?"
미호는 버퍼링이 끊긴 동영상처럼 목소리를 떨었다. 그리고 얼굴빛이 푸른 무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하지만, 사쿠는 전혀 미호의 감정에 동요하지 않았다. 능청스럽게 말했다.
"네, 어딜 봐도 똑같잖아요? 거짓말 할 필요 없잖습니까?
큰소리 잘치고, 화 잘 내고, 그리고 잘 패고. 리더가 노공룡과 닮지 않았다면 누구라고 얘기해야하죠?"
"아, 그래. 내가 큰소리 잘치고, 화 잘 내고, 잘 패는 노공룡이라는 거구나."
"그런 셈이죠. 잠깐, 방금 누가 말한 거죠?"
"고개를 돌려봐, 고개!"
미호가 급하게 사쿠에게 속삭였다.
‘왠 호들갑이야?’
라고 의아해하며 사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사쿠의 뒤엔…….
섬뜩한 열기에 뜨겁게 타오른 미카가 서있었다!
미카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가식적이었다. 이마에 찌푸린 주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화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으니까!
「사쿠, 일 저질렀네, 일 저질렀어.」
미카와 함께 있던 수수께끼 정령―링이 혀를 쯧쯧 찼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미카는 사쿠가 미호에게 자신과 닮은 포켓몬을 찾아주겠다고 말한 시점부터 세미나실에 들어왔다. 그때는 이미 미호도 미카가 화에 치밀어 올랐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래서 불안한 기색을 보인 것이다.
사쿠는 미카가 인기척을 지우고 다가왔기 때문에 미카의 존재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미카가 사쿠의 바로 뒤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미카의 손에서 벗어나기 늦은 터.
미카는 가식적으로 깜찍한 어투로 말했다.
"자아, 우리 귀여운 사쿠. 오늘은 참 많이도 깝을 쳤네?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가 어딜 봐서 못생긴 노공룡으로 보였니? 오늘이야말로 네 비뚤어진 성격 좀 고쳐놓아야겠는데?"
"제가 보기엔 리더의 포악한 성격을 먼저 고쳐야 될 것 같은데요―"
"너, 죽었어~!!!"
미카는 사쿠의 도발에 넘어가 테이블을 번쩍 들었다. 그 테이블은 근육몬이 3마리가 힘을 합쳐들어도 버거울정도로 엄청 무겁다!
링이 미호에게 급하게 속삭였다.
「나왔다, 미카의 테이블 뒤엎기! 미호, 딴 데 가있자. 오늘은 피튀기는 싸움이 일어나겠어. 튀긴 불똥에 맞고 싶지는 않지?」
"아, 응..."
미호와 링이 세미나실을 조용히 떠난 직후, 그리고 사쿠가 미라처럼 온 몸을 붕대로 칭칭 감긴 채 발견되기 직전 상황까지는 청소년 관람불가 장면이었다.
미카가 어떻게 사쿠를 팼는지는 여러분들 상상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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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많이 휘갈겨 썼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괜찮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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