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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스크랩 성철스님의 수행처 벽발산(碧鉢山) 안정사(安靜寺)를 찾아서 Ⅰ
눌인 추천 0 조회 156 11.03.02 22: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성철스님의 수행처 벽발산(碧鉢山) 안정사(安靜寺)를 찾아서 Ⅰ

 

 

 

 

들어가면서

 

 

 

2월이 다가기 직전인 26일. 볼거리 먹을거리 가득한 경남 통영으로 떠났다. 통영은 지난 12월 16일에 다녀왔으니 거의 두 달 만에 찾은 셈이다. 일 년에 거의 예닐곱 번은 찾는 곳으로, 즐겨 찾는 첫째 이유는 눈 맛 때문이다. 그 다음은 입맛이요. 하나 더 붙이라면 정겨움 때문이리라.

 

 

박경리념관

 

박경리념관 내부

 

이곳에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념관이 있고, 박선생님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청마(유치환)가 여류 시조시인 정운(이영도)에게 편지를 보냈던 우체국이 있고, 전혁림미술관· 김춘수문학관 등도 있다. 또 달아공원을 찾아 따나는 산양일주도로는 눈을 황홀하게 하는 곳이다. 이번에는 또 다른 목표로 통영을 찾았다. 지난주 산청 답사에서 처음 알게 된 성철스님의 수행처 중 안정사(安靜寺)와 천제암(闡提窟)이라는 절집을 보기 위해서였다.

 

 

2월 13일 지리산 자락 경호강변 한적한 농촌마을,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210번지. 지금은 머리 위로 자동차들이 번잡하게 내닫고 있는 대진(대전~진주)고속도로가 걸려 있는 성철스님의 생가터를 찾아갔다. 부모와 7남매가 함께 기거했던 이곳에서 소년 이영주(李英柱)가 단성초등학교에 다녔고, 24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많은 책을 읽었던 집터란다. 이곳에는 엄청난 돈을 들여 생가를 복원(?)하고, 그 앞에 '시간과 공간 밖에 있는 절'이라는 뜻의 '겁외사(劫外寺)'를 지었다.

 

'겁외사(劫外寺) 일주문(2011년)

 

스님의 생가라기보다 무슨 궁궐처럼 보이는 이 안에는 대형 동상과 전시관 등이 들어서 있다. 전시관의 패널 중에는 성철의 수행처를 소개한 <성철대종사 수행의 발자취>라는 것이 있었다.

 

 

성철대종사 수행의 발자취

 

성철스님의 수행처 중 금강산 마하연과 고성 문수암을 제외하고는 다 가본 것 같은데 내가 즐겨 찾는 통영에 있다는 안정사와 천제암은 아무래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또 <죽기 전에 꼭 찾아보아야할 108 불교유적지 순례>를 하고자 한 나의 목표 중 하나로 포함이 확정된 사찰도 아니었다. 그래서 사전답사를 겸하여 안정사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안정사에 늦게 도착한 연유로 천제암 등 벽발산 일원에 흩어져 있는 사암(寺庵)들은 찾지 못하였다. 또 오후부터 호우가 내릴 것 같다는 일기예보는 서둘러 발길을 돌리게 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겁외사>에서 얻은 자료와 안정사에서 본 문화유산들을 소개하겠다. 존칭은 생략한다.

 

 

 

통영의 조산(祖山) 벽발산(碧鉢山)

 

 

 

통영지맥이 뻗어가는 산릉에서 단연 빼어난 산이 해발 650m인 벽발산(碧鉢山)이다. “가섭이 푸른 바리때를 품에 안고 미륵의 하생을 기다린다”라는 뜻인 벽발산인 반대편 계족산에서 바라보면 바리때 모양의 산봉우리와 남쪽의 기암단애가 마치 가섭이 바릿대를 안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붙인 이름이란다. 5,350,440m²(180여만 평) 규모인 벽발산은 일반인들에게는 푸르고(碧) 꽃다운(芳)이라는 뜻의 벽방산(碧芳山)이란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벽방산(碧芳山)은 통영· 고성· 거제지역에서 제일 높은 산이면서 통영의 주산(主山)이요, 조산(祖山)이라 할 수 있다. 옛 <통영지>에는 ‘산세가 마치 거대한 뱀이 꿈틀거리는 위세를 하였으며, 그 중 한 산맥이 굳세게 옆으로 뻗치다가 곧장 바다 속으로 들어가 터전을 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달아공원에서 본 다도해

 

 

정상에서는 산과 바다, 들과 섬, 이 모두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동쪽에는 진해만에서부터 가덕도, 거가대교 그리고 거제도와 그에 딸린 섬들, 남쪽에는 미륵산 주변의 적막한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 - 사량도· 욕지도· 한산도 등 - 이 촘촘히 박혀 있다. 남서쪽 아스라이 먼 곳에는 남해도를 포함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이 품고 있는 유· 무인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북서쪽에는 고성의 자란만 뒤 삼천포 와룡산· 향로봉· 수태산· 무이산 등도 조망된다. 그래서 신년에는 해돋이 명소로, 봄철 진달래와 가을 단풍이 아름답고 경치가 수려하여 등산객들을 태우고 온 버스들이 주차장을 사시사철 가득 메우고 있다.

 

 

곳곳에 많은 경점(境点)이 있는데, 이를‘벽발산 안정팔경’이라 한다. 그 중 제1경은 만리창벽(萬里蒼壁), 제2경은 옥지응암(玉池鷹岩), 제3경 은봉성석(隱鳳聖石), 제4경 인암망월(印岩望月), 제5경 가섭모종(迦葉暮鐘), 제6경 의상선대(義湘禪臺), 제7경 계족약수(鷄足藥水), 제8경 한산무송(寒山舞松) 이다. 이 중 은봉성석(隱鳳聖石)에는 자연석 세 개가 있었는데, 첫 번째 것이 넘어지면서 해월선사가 나타나고, 두 번째 자연석이 쓰러지면서 종렬선사가 도를 통하였다고 한다. 그 뒤 이 돌들을 성석이라고 불렀는데, 그 중 한 개만 남아 도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선지식인 미래불이 은봉암에서 출현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설화이리라.

 

 

광도면 안정리 1888번지(055-641-7175)에 있는 안정사는 지금 대한불교 법화종에 소속되어 있다. 안정사는 1400여 년 전인 654년 원효가“의발(衣鉢)을 간직한 채 내세불(來世佛) 미륵을 기다리는 벽발산(碧鉢山)은 참으로 마땅한 절 터였으리라”라며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안정사를 중심으로 의상암· 가섭암· 은봉암· 청계암· 만리암· 욕지암· 목련암· 운필암· 원효암· 천제암 등 13개의 사암이 즐비한 불교성역이다. 한때 14방소, 1,0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한 대사찰이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찾기 힘든다. 안정사에는 대승고덕들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해월(慧月)· 종열(宗烈)선사가 도를 깨친 곳이라고 한다. 안정사를 비롯한 은봉암, 천제암 등에는 성철선사의 자취가 서려있다. 1951년부터 1954년까지 4년간 동안거와 하안거를 했던 곳이며, 이 때 그 유명한 '삼천배(三千拜)'의 전통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성철의 주석처를 따라가 보자.

 

 

 

성철스님의 주석처

 

 

 

 

성철선사(1912~1993)는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아버지 율은(栗隱) 이상언(李尙彦, 1881~1959), 어머니 강상봉(姜相鳳, 1893~1957)의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이영주(李英柱) 법호는 퇴옹이다. 서당을 다니다가 단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진주중학교에 합격하였으나 신체검사에서 탈락 후 요양 차 대원사에 드나들었다. 이곳에서 무(無)자 화두를 들고 불철주야 정진하였다고 한다.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생가터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

 

1936년 봄 26세에 해인사에서 출가 백련암에 주석 중이던 하동산(河東山, 1890~1965)을 스승으로 삼아 계를 받고 '자성을 확철하게 깨쳐 불(佛)을 이루라'는 뜻으로 '성철'이라는 법명을 받고 승려가 되었다. 그 후 동산스님을 따라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하안거, 범어사 원효암에서 동안거를 났다.

 

1937년 3월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범어사 내원암과 통도사 백련암 등에서 지냈다. 1939년과 그 이듬해까지 금강산 마하연에서 지냈다. 그 후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오도송(悟道頌) 읊은 이후 드러눕거나 기대지 않고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시작하였고, 은해사 운부암에서 동안거를 나면서 단식 정진하였다. 그 후 깨달음을 점검받기 위해 전국 곳곳을 찾아 정진하였는데, 송광사 삼일암· 수덕사 정혜사· 서산 간월암· 법주사 복천암· 선산 도리사 태조선원· 문경 대승사 쌍련선원· 대승사 묘적암· 파계사 성전암 등에서 하안거와 동안거를 났다.

부산 범어사

 

대구 동화사

 

영천 은해사

 

문경 대승사

 

문경 대승사

 

파계사 원통전

 

파계사 성전암

 

파계사 성전암 퇴락해서 기와불사에 동참하였다.

 

파계사 성전암

 

1947년 통도사 내원암에 있다가 가을에 봉암사로 와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를 기치로 내걸고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어 결사를 시작하였다. 향곡(香谷), 월산(月山), 종수(宗秀), 도우(道雨), 보경(寶境), 법전(法傳), 성수(性壽), 혜암(慧菴) 등 20여 명으로 구성되어 대부분의 사찰에서 하고 있는 예불문을 완성하였다. 교단 정화는 물론 주요 인물들이 조계종의 요직을 맡으며 종단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49년 하안거까지 봉암사에 머물렀으나, 빨치산이 출현으로 경남 월내리의 묘관음사로 옮겼다.

 

 

1950년 청담, 법전스님 등이 봉암사를 나오면서 봉암사결사가 무산되자 이들과 경남 고성 문수암에서 하안거와 동안거를 났다. 1951년부터 파계사 성전암으로 옮긴 1955년까지 통영의 안정사 은봉암과 안정사와 은봉암 사이에 초가삼간의 토굴(천제굴)을 지어 지냈다. 그동안 마산의 성주사와 남해 용문사 백련암에 잠시 머물기도 하였다. 이곳 천제굴에서 비로소 신도들에게 3천배와 우리가 받는 모든 고통과 악업은 과거생으로부터 우리 스스로가 지어온 업장의 과보"이기에 업장을 참회하고 자기 자신을 바로 보도록 "예불대참회"와 새로 음역한 "능엄주"를 외우게 하고, 아비라 기도를 하게 하였다.

 

봉암사결사

 

 

 

파계사 성전암에 옮긴 뒤 철조망을 두르고 1964년까지 10년간 두문불출하며“10년 동구불출”하며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지냈다. 1964년 동구불출을 마치고 부산 다대포와 서울 도선사에서 잠시 머물었고, 1965년 문경의 김용사(金龍寺)에 조실로 머물었다. 1966년 스님의 발원으로 공사를 시작한 선방 상선원이 준공되자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구도부의 구도법회를 지도하다. 20일 간 계속된 이‘운달산법회’는 최초의 대중설법이다. 그해 가을 해인사 백련암으로 옮겨 동안거를 난 후 이듬해인 1967년 7월 25일 해인총림(海印叢林) 초대 방장(方丈)에 추대되었다. 즉 성철은 출가하였던 해인사로 40년만에 귀향, 백련암을 수행처로 삼는다. 그 이후 한 번도 주석처를 옮기지 않았다.

 

남해 용문사

 

문경 김용사

 해인사 백련암

해인사 백련암 성철스님 조상

해인사 백련암

 

1981년 1월 20일 조계종 6대 종정으로 취임하였으나 취임법회에 나가지 않았고, 세속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취임 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가 화제로 등장하였다.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6년 4월 7일 종단이 안정되었으므로 종정을 사퇴한다는 사퇴서를 원로회의에 제출하였으나, 다시 추대되었다. 그 후인 1991년 8월 22일 조계종 원로회의에서 제7대 종정으로 다시 스님을 추대하다. 1993년 9월 21일 <선림고경총서>를 완간하였고, 10월 7일 '선종사에 있어서의 돈오돈수사상의 위상과 의미'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백련불교문화재단 주최로 해인사에서 개최하였다.

 

 

그해 11월 4일 오전 7시 30분 해인사 퇴설당에서 마지막 게송을 읊은 뒤 '참선 잘 하그래이'라는 유훈을 남기고 조용히 입적한다. 세수 82세, 법랍 58세.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녀군)하니 -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라. -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이여 -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이로다. -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이후 전국 각지와 해외 동포 사이에서 추모 물결이 일었다. 11월 10일 영결식 및 다비식을 봉행, 12일 100여과의 사리를 수습하였고, 1998년 11월 해인사 운양대에 사리탑을 봉안하였다. 그 후인 2001년 3월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생가터에 기념관을 건립하고 겁외사를 창건하였다.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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