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칠레 수입비중 90%, FTA 체결로 관세율 0% 적용 캐나다·멕시코산 수입량 적어 물량 늘려도 값 안정효과 미미 한돈협회, 관세정책 관행 비판 “국산 공급 안정 대책도 제공을” 서울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구입할 돼지고기를 고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정부가 돼지고기에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가격안정 대책을 발표해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5월30일 정부는 돼지고기·밀가루 등 주요 수입 식료품에 부과되는 관세를 낮춘다는 내용을 포함한 민생안정 대책을 내놨다. 돼지고기는 삼겹살·가공용 등 수입 물량 총 5만t에 현행 22.5∼25%의 관세율이 아닌 0%를 적용해 최대 18.4∼20%의 원가 인하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획재정부는 내다봤다.
하지만 수입 돼지고기 대부분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이미 0%의 관세율이 적용되고 있어 정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수입 돼지고기의 국가별 비중은 미국(36.4%)·스페인(20.1%)·네덜란드(8.9%)·오스트리아(7.2%)·칠레(7%)·캐나다(6.6%)·덴마크(5%)·프랑스(2.6%)·멕시코(1.9%)·아일랜드(1.6%)·핀란드(1.3%)·브라질(1%) 순이었다. 이 가운데 미국·유럽연합(EU)·칠레 등 수입 비중의 약 90%를 차지하는 국가들에 대해선 FTA 체결 효과로 이미 0%의 관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사실상 이번 조치로 관세 혜택을 볼 수 있는 국가는 캐나다·멕시코·브라질 정도지만 지난해 이들 3개국의 수입 비중은 전체의 10%에 못 미친다.
이같은 지적이 쏟아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7일 돼지고기 가격안정 대책 추진사항을 재차 발표하고, 할당관세를 도입하면 전반적인 돼지고기 가격안정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관세가 0%인 미국·EU에 비해 단가가 낮은데도 높은 관세 때문에 수입이 많지 않았던 캐나다·브라질·멕시코산 물량의 추가적 수입을 유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농식품부는 “육가공업체·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에서는 할당관세 적용을 받기 위해 캐나다·멕시코·브라질 등에서 이미 수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정부는 중간 유통단계 없이 가공용·구이용 정육을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해 소비자가 할당관세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정책 실효성을 놓고 여전히 물음표가 맴돌고 있다.
우선 비(非)FTA 체결국 수입 물량 확대의 파급효과가 전체 돼지고기 시장 연쇄 작용으로 이어질 만큼 막대하지 않다는 게 축산업계의 대체적 의견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국내 시장점유율이 미미한 캐나다·멕시코 등 물량이 싼값에 유입된다 해도 돼지고기값 안정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들 국가의 제안 가격도 최근 상승했고, 대한국 수출량을 유의미하게 늘릴 만큼 추가 수출 여력을 갖췄다고 볼 근거도 없다”고 진단했다.
실제 소비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대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욱 농협음성축산물공판장 경매실장은 “현재의 돼지고기값 강세는 통상적 계절적 요인과 코로나19 종식에 따른 수요 증가가 주원인”이라면서 “돼지고기는 국내산과 외국산 시장이 비교적 뚜렷하게 분리돼 있어 국산이 비싸다고 해서 증가한 수요가 외국산으로 옮겨 가지는 않을 텐데 관세로 물가를 잡겠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또 정부는 단가가 낮은 브라질산 가공용 정육에 할당관세를 적용하면 1㎏당 단가가 3500원선에 형성돼 육가공품 가격 인상 압력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 또한 현실화할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 육류유통 관계자는 “고기 품질과 조달 용이성, 클레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육가공업체들이 단순히 가격의 메리트를 이유로 브라질산을 택할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로 소비자가 얻게 될 편익보다 양돈농가들이 입을 피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할당관세 혜택을 받는 수입 물량이 당장의 물가안정에는 큰 효과도 없이 외국산 돼지고기가 국내시장에 침투할 계기만 늘려 향후 돈가 하락기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정부가 관세를 손질하는 방식으로 농축산물 물가안정책을 마련하는 관행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대한한돈협회 측은 “하반기 사료값 상승 등으로 한돈농가 경영난 심화가 예고된 가운데 정부가 할당관세 정책을 남발하면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과 생산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축산농가의 고충만 가중할 뿐”이라면서 “물가안정을 명목으로 수입 축산물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국내산 축산물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도록 사료 구매자금 지원 확대 등 공급안정 대책도 제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규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