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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트레킹(스티브대장님 따라; 2018.7.20.~25)
1. 몽골
몽골하면 징기스칸이 떠오른다. 그와 후세들이 지구촌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정복하고 지배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태어났을 때 볼기에 몽골반점이 있다. 몽골과 우리 민족은 많건, 적건 상호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몽골여행은 형제나라를 여행하는 정서가 있다.
순수 몽골족은 지구촌에 1천 만 명이 훨씬 넘지만 내몽고는 중국령이고 중국으로부터 독립된 나라는 현재 3백만 내외 인구의 몽골(외몽고)이다. 중국대륙의 윗 쪽에 있다. 몽골 아래와 옆은 중국, 윗 쪽은 러시아와 연접해 있다. 우리가 활동한 울란바타르지역은 몽골에서도 중북부에 위치해 있다.
2. 몽골트레킹 주요 내용
트레킹과 관광이다.
이틀 트레킹, 삼일 유목체험과 관광.
몽골의 보호구역 체체궁산(2256m) 등산과 엉거츠산(2020m) 등산.
체험 및 관광으로는 낙타와 말 타기 및 울란바타르와 인접한 주요 유적지 및 보호구역 관람이다.
3. 몽골 도착과 가이드와 인사 나누기
20일 12시 조금 못되어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대장님과 다수 대원들이 오셨다. 14시 05분 몽골항공 탑승. 15시. 비행기가 이동한다. 15시 30분 이륙.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 가까워지는 시간에 기내식이 나온다. 18시 22(몽골시간 17시 22)분 몽골 착륙.
입국수속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현지가이드가 반긴다.
뜻 밖 날씨. 우리 가을처럼 선선하다. 대원들은 갑자기 시원해진 곳에 놓이니 환호다. 공기도 맑다. 대형버스에 탑승(현지시간 18시 17분).
“저는 몽골 국립대학 한국어과를 나왔고요. 이름은 허서입니다” 라는 가이드 인사가 있고, 대장님의 주의사항과 조 편성이 이어졌다. 이제부턴 몽골시간으로 통일한다. 내일 아침은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목적지로의 출발예정이다.
공항에서 호텔이 있는 다운타운까지는 20여 분 걸리기에, 그동안 가이드의 본격적인 몽골 소개가 있었다.
“이곳은 평균고도가 1350m 정도고요. 국토면적은 남한의 약 18배, 위치는 몽골 전역 중 동북부 쪽입니다. 몽골 전체 인구가 3백만명이 못되는데요. 수도에 약 150만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원래 50만명을 계획하여 만든 신도시였는데 그보다 3배 많은 인구가 거주하다보니 교통체증이 잦아요”
이어.
“안녕하세요를 몽골말로 무어라 하는지 아세요?”
하고 묻는다. 대답이 없자,
“셈베오” 하고 자문자답하는 가이드는 30대로서 키는 작지만 다부진 징기스의 후예인 사나이였다. 차가 시내로 이동할 동안 허서의 말이 이어졌고, 가끔 대원들이 질문도 한다. 대답들을 대충 모아보았다.
“알파벳은 러시아 것과 같지만 언어는 몽골어라 러시아 말과는 완전히 달라요. 인구의 56%가 30대 미만이어서 젊은이 국가이고요. 학생들 여름방학은 3개월, 겨울방학은 1주일 정도인데, 집안 일 도울수 있는 때 더 많이 쉬어요. 겨울이 6개월 정도인데 추울 땐 영하 40~50 도까지 내려가요. 시골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말을 타고 등교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죠. 주식은 고기와 밀 빵이고요. 쌀은 거개가 수입해요. 1부1처제국가이지만 전체적으로 여성권력이 좀 더 쎈 편이지요.”
공항에서 도심으로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초원지대가 주류였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큰 나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역시 몽골은 넓고 넓은 초원의 민둥산 국가로구나 하는 선입견을 가져본다.
또 오가는 말 가운데 가이드의 대답을 모아본다.
“울란바타르 물가는 한국과 비슷해요. 몽골인들의 개인소득(우리의 약 1/5 내외)에 비하여 비싼 편이죠. 자동차는 100% 수입차인데 일제가 대부분여요. 국민의 약 40%는 아파트에, 나머지는 단독이나 게르에서 생활하죠. 시내에는 한식당이 많아요. 한국에 현재 거주하는 몽골인들이 약 4만 명 되죠. 이들이 순환적으로 귀국해서 한식당을 찾아요. 또 최근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한식당이 더 늘어나고 성업 중이죠.”
한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다시 버스에 오르다. 길이 막히면 20여 분, 안 막히면 10 분 후 몽골 국회의사당 앞 울란바트르 명품 건물인 불루스카이호텔(Blue Sky Hotel)에 도착할 거란다. 시내 중심가 칸 광장 맞은 편에 있는 호텔에 도착.
“내일 아침, 짐은 전부 가지고 나오세요. 캐리어와는 별도로 체체궁산(2256m)으로의 트레킹을 위해 가벼운 배낭 차림을 하세요. 비 예보 있으니 우중산행 장비 챙기시고, 도시락은 산행 입구에서 공급합니다. 나누어드리는 물 충분히 챙기시고요.”
항상 세심하게 보살피시는 대장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여행 첫 날과 마지막 날 묵는 호탤 방에 들다.
4. 체체궁산과 후르후레계곡, 그리고 게르
조금 뒤척이기는 했었지만 그런대로 눈을 붙인 밤이었다. 잠에서 깨니 간밤부터 비가 내린 듯하다. 비가 계속 내린다. 천둥도 치고. 낙뇌가 심하면 스틱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 미끄러운 길 있을지도 모르니 스틱을 소지하자. 호텔에서 가볍게 아침 식사 후 꾸려진 짐 챙겨 전용버스로 이동. 8시 10분 만쉬르사원 부근으로 이동하기 위해 탑승. 도회지를 빠져나가는 길에 도심을 흐르는 도르흐강을 지난다.
“이 강물이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하는 가이드의 질문에 무응답의 침묵이 흐르자 가이드는,
“바이칼호로 흘러가요. 바이칼호는 원래 몽골 영토였었지요. 러시아에 빼앗긴 것입니다.”
다시 가이드의 몽골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앞으로 한 시간 조금 넘으면 목적지에 도착해요. 산이 험하지는 않지만 돌길도 있고 흙길도 있어서 미끄러짐은 조심 해야죠. 산을 걷다가 용변이 마려우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냥 적당한 곳 골라서 일 보시면 되요. 여자는 오른 쪽, 남자는 왼 쪽으로 갈라 적당한 위치 잡아 일 봅니다. 이곳의 문화죠. 소나 말이 일 본 데 옆에 일 보는 격이니까요. 환경이 오염될 게 없어요.” 적당히 은폐할 수 있는 곳 잡아 일을 본다고 하는 말에 대원들의 반응은 웃음보 터트리기였다.
“도로 옆에 상하수도시설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비가 오면 도로 곳곳에 물이 고이기도 해요. 이곳 강우량은 한국에 비하면 1/3 정도인데요.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더 늘었어요.”
울란바타르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 신공항을 짓는다고 한다. 신공항건설과 함께 그곳과 수도를 연결하는 고속도로공사 때문에 도로 곳곳이 파헤쳐지는 중이었다.
“원래 수 십 년 전 울란바타르에는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많이 살지 않았어요. 그때는 주거이전을 제한했기 때문이었죠. 주거이전의 자유를 허용한 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죠. 원래의 계획보다 몇 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지금도 인구유입이 계속되고 있고요.”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푸른 초원이 멀리 펼쳐지는 전형적인 몽골의 지형이 나타났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초원이다. 누군가 광대한 이 몽골초원을 사들이고 싶어, 외국인도 이 땅을 살 수 있나요, 하고 물었다.
“살 수 없어요. 몽골은 외국인들에게 토지 매매를 금지하고 있어요. 또 이민도 안되요. 만약 땅 매입과 이민을 허용했다면 아마 금세 몽골 땅은 이민족에 의해 지배되고 말았을 거예요”
한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독특한 제도다. 아마도 중국의 팽창주의를 경계하는 정책으로 보였다.
“몽골은 지하자원이 풍부하죠. 다만 기술력 부족으로 개발을 안하고 있을 뿐이죠. 자원개발을 하면 아마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 될 거예요.”
간밤에 내리던 비는 거의 개인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은 비가 오면 우산쓰기보다 비를 그냥 맞아요. 공기가 맑기 때문에 빗물이 깨끗하니까요. 땀도 닦아주고 한 여름에는 더위도 식혀주죠. 강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맞을 만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체경기보다 개인 경기에 강하죠. 레슬링, 유도, 복싱 등에선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고요. 민속경기로서 활쏘기와 씨름이 인기죠. 특히 씨름을 잘하면 부귀영화를 누려요” 한다.
갑자기 해가 뜬다. 우와~ 잘하면 우중산행을 피할 수도 있겠다. 가이드는 몽골날씨에 관하여서도 한 마디 거든다.
“몽골 날씨는 지역에 따라 변화무쌍해요. 일기예보가 있지만 많이 틀려요. 오히려 몽골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스스로 그날 또는 다음 날의 일기를 진단해요. 내 느낌으로는요. 오늘 비 걱정 크게 안하셔도 될 것 같네요” 한다.
호텔 출발 후 약 30여 분이 지났다. 더욱더 광활한 초원들이 드러난다. 몽골다움을 만끽하는 전경들이 펼쳐진다. 종종 말을 사육하는 유목민들이 게르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도 보인다.
“우리에겐 가축이 가장 큰 재산이죠. 가축으로부터 먹거리를 챙기고, 가축 팔아 생활비도 벌고 아이들 대학 학비도 마련해요. 물론 이곳은 고교까지 의무교육인 곳이 많지만요. 교육열은 높습니다. 우리 국토 대부분은 국공유지입니다. 사유지는 국토의 극히 일부죠. 물론 점차 사유지가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죠. 국공유지가 많을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이곳 사람들은 풀을 찾아 가축을 이동시켜 사육하기 때문이죠. 만약 사유지가 대부분이라면 이동식 유목이 어려워질 거예요. 국민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는 거죠. 그래서 초원 대부분은 국공유지가 많아요.”
다시 말이 이어진다.
“추운 겨울이 길기 때문에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게르를 덜 추운 산 밑 등으로 이동하죠. 물론 눈덮힌 초원에서도 말, 소, 염소, 양들은 최소한의 활동을 위해 스스로 눈을 걷어내고 풀을 먹죠.”
소도시를 지난다. 또 다른 초원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키 큰 나무들은 보기 어렵고 초지들이 광대하게 펼쳐있다.
소 떼들이 보인다. 말 떼들이 보인다. 염소 떼도. 양 떼도. 가축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은 흔하다. 호텔 출발 후 한 시간여 지나자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차가 갑자기 엉금엉금 기듯 간다. 아마도 목적지가 멀지 않은 듯.
초원의 구릉지들이 멀리 멀리 펼쳐있다. 끝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 구릉지, 또 다른 초원들.
“몽골사람들 시력이 얼만지 아세요?”
이점 영, 삼점 영, 오점 영 등의 대답이 나온다. 가이드는 숫자로 대답하지 않고 오점 영을 우회적으로 웅변한다.
“여기 사람들은요. 수 킬로 떨어진 저 초원에 방목된 가축의 낙인을 보고 누구의 말인지 금세 알아내죠” 한다. 순간 우와~ 라는 탄성의 합창이 터졌다.
보호구역에 이르니 출입문이 있고, 출입허가절차를 밟는다. 버스는 축축이 젖은 비포장도로를 곡예하듯 뒤뚱거리면서 운행하고. 다행히 낭떠러지 옆이 아닌, 평원 윗 길이 대부분이기에 큰 위험 없이 지그재그로 굴러간다.
숲이다. 숲들이 점점 더 우거지고 깊어진다.
그 누가 몽골에는 초원만 있다 말하나요.
나도 있어요.
빽빽이 우거진 키 큰 나무들의 인사
산림지대에 접어든다. 여전히 버스는 천천히 비에 젖은 완만한 비포장도로를 오르고. 호텔 출발 후 한 시간 반 여 만에 목적지에 도착. 먼저 와있는 도우미님들이 도시락과 물을 배급한다. 게르처럼 동그란 찬 통을 하나씩 받아든다. 불고기가 있으니 될 수 있는 한 거꾸로 넣지 마시고 바르게 넣으세요, 라고 하는 당부에 따라 도시락 통을 배낭에 챙긴다.
날씨는 섭씨 20도 전후로 등산하기에 딱 좋다. 우리가 오를 체체궁산은 숲의 산. 마치 알프스의 삼림과도 같다. 위로 오를수록 더 큰 나무들의 군락도 나타나고. 공기 깨끗, 물 깨끗, 적당한 이끼와 잔디처럼 작은 풀들로 뒤덮인 완만한 산지다. 구름이 적당히 낀 하늘 아래 전 대원들이 삼삼오오 오른다. 가이드가 앞서고, 대장님은 후미를 보신다. 율리대장님은 중간을 돌보시고. 언제나처럼 나는 초입에서 힘에 부친다. 그런데도 평상시 잘 훈련된 대원님들 대부분 초입부터 씩씩하게 잘들 오르신다.
한참을 오르니 누군가 1950m라고 한다. 한라산 정상과 같은 고도다. 그야말로 주욱 뻗은 가문비나무, 전나무들이 푸른 초원 위로 하늘 향해 발돋움 한다. 키 큰 나무 숲 사이로 초원의 길이 길게 이어진다.
산길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길이 아닌,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이다. 물길이나 가축들이 걸은 길을 사람들이 걷고 또 걸어 다져진 좁은 길들이 대부분이다. 살방살방 걸어 지치지 않는 길. 그래서 걷는 걸음이 한층 부드럽다. 나의 무릎이 나에게 참 좋은 길 걷게 해줘 감사해, 하고 인사하는 듯하다.
오르면서 동서남북을 보니 아주 멀리멀리 초원의 고산 능선들이 한없이 펼쳐지고.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서울 도심에서 피곤했던 우리 눈들이 푸르른 지평선을 끝없이 바라보며 휴식한다. 금세 시력이 쑥쑥 좋아지는 듯하다.
세상은 멀리 확 트여
우리들 눈이 호사 하네
초원이 끝없으니
우리 가슴 또한 한없이 넓어지네
정상에 오를 때까지 중간에 간식을 들며 쉬기도 하고. 찰칵이를 들이대기도 한다. 참으로 절묘한 날씨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마치 우리 가을처럼 산들 바람이 불어 저절로 발길이 싱그럽다. 비도 내리지 않고. 다만 아쉬운 것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 아마도 파리나 모기, 날파리 등의 곤충 등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새들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닐까.
산행 시작 후 세 시간이 채 안되어 정상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산 정상이나 요충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낭당들이 있고, 그 곁에 종교적 의식으로 형성되는 종교예식의 깃발들이 솟대처럼 펄럭인다. 기암괴석들이 정상의 위용을 더하고. 하늘이 흐렸기 때문에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든다. 나는 어느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 앞 작은 평원에서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열었다. 모두 동일한 도시락인지라 굳이 전부 모여 식사할 필요가 없다. 불고기의 양이 밥의 양보다 더 많다. 우리나라 다른 산악회 팀들도 몇 분씩 오르고. 비가 예보 되어선지 그렇게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들이 선두그룹인 것 같다.
오름길보다 내림길이 훨씬 더 길다. 식후 단체사진 찰칵. 사진 찰영 후 하산을 시작하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러나 흘러가는 가랑비다. 그래서 대원들은 본격적인 우중산행 준비를 하는 둥 마는 둥. 간밤에 내렸었던 비의 양이 꽤 되었나보다. 하산할수록 산 곳곳에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더욱 많아진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길들이 종종 가벼운 물 웅덩이로 변하고. 그 물 웅덩이 길을 피하면서 초원에 새 길 내어 걷고 또 걷는다. 어떤 대원은 무리하게 새 길 내다가 미끄러지기도 하고.
한참을 내려가니 야생화군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떤 여성산우님이 길을 걸으며 한 마디 건넨다.
“참, 이상도 하지요. 어찌 한 결 같이 야생화들이 우리들이 걷는 길 옆에만 피어있지요 !” 참 관찰력도 대단하시다. 정말 그랬다. 야생화들은 동물들을 좋아하나보다.
“정말 그러하네요” 라고 응답했다. 주로 길 옆에만 야생화들이 피어있었던 것이다.
하산 시작 후 한 두 시간이 채 안되었을 때 꽤 큰 정자가 길 옆에 나타났다. 조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대피소 역할을 하는 정자였다. 가이드와 우리 대원 몇 분들이 이미 쉬고 있었다. 이들 쉼 대열에 합류했다. 조금 있으니 후미대열 대원님들이 내려오다가 또 합류했다. 모처럼 하산 길에 대원 모두가 한 장소에 모여 담소를 나누다. 모두가 하하호호다. 그만큼 행복한 산행. 그런데 하늘의 구름은 재빠르게 이동한다. 결국 얼굴을 내밀 듯, 말 듯 하던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스콜이네요, 란 말도 한다. 너도나도 배낭 덮게를 손보거나 새로 하고,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든다. 대장님은 앞으로 십분 동안 기다려도 비가 그치지 않으면 그냥 하산할 수밖에 없네요, 하신다. 십분이 지났어도 비가 계속 내리자 마냥 머물 수 없어 모두 하산. 하산 후 한 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이 때다. 대원 일부는 환호하기 시작한다. 야생화군락이 우리가 내려가는 넓은 초원에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말씀 하셨나요.
우리들은 당신들이 걷는
길 옆에서만 핀다고요.
이 말은 쉼터에 머무르기 전에 보았던, 길 따라 길게 늘어선 야생화 군락을 부정하는 새로운 야생화들이 넓은 평원에 만개하여 우리를 반기는 인사였다. 그 말은 마치.
그 누가 몽골은 초원만 있다고 하셨나요
하던 키 큰 나무들의 숲이 말하던 음성과도 같은 대자연의 미소였다. 야생화 군락은 하산 내내 계속 이어졌다. 아마 야생화군락지를 두 시간 여 가까이 걷지 않았을까. 걷는 오른 쪽 아래에는 계곡이 흐르고. 계곡을 중심으로 키 큰 나무가 숲을 이루고. 우리가 걷는 길 왼 편으로 펼쳐지는 완만하고 긴 초원에는 수많은 야생화가 만개하였다. 모두가 행복 미소 띠며, 씩씩하게 걷고 또 걸었다.
계곡 길 숲 위
완만한 구릉 평원,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에서
야생화 친구 되어
걷는 걸음은
동심의 걸음
가볍고
힘찬 걸음
걷는 게 즐거움인 걸 느끼고 또 느끼게 하는 하산 길이다. 비는 가끔씩 흩뿌리지만 피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친구처럼 다정하기조차 하다. 하산이 거의 끝나갈 즈음, 초원에는 여기 저기 소나 말들이 삼삼오오 모여 비를 즐기고, 풀을 즐기고, 햇빛도 즐기고 있었다. 게르가 있는 사설농장들을 빠져나가자 우리들 버스가 보였다. 아마 오후 다섯시쯤 되었으리라. 계속 야생화 군락지가 펼쳐졌는데, 여기까지만 오늘의 산행길이다. 일부 대원들은 야생화에 취해 찰칵이 앞에 빠져들어 하산이 조금 늦어지는 듯 했다. 모두 하산 후 다시 버스에 오르다. 전용버스에 몸을 싣고 비포장 야생화 길을 빠져나간다. 버스가 마치 풍랑을 만난 배처럼 기우뚱거린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며 우리 모두를 놀이공원의 어드벤처의 놀이터로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놀이를 즐기다가 갑자기 덜컥, 버스가 진흙구덩이에서 나오지 못하자 방향을 틀어 탈출을 시도했으나, 다시 덜컥, 이번에는 앞뒤로 오가지도 못하고 진흙구덩이에 빠져 헛바퀴만 돈다. 결국 모두 하차. 이후 한 시간 여. 대장님을 비롯 모든 대원들이 버스를 움직이기 위해 노력한 끝에 마의 구덩이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만세다. 작게나마 해방의 기쁨을 맛본다.
제 때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를 길을
갈 수 있다면
앞이 확 트인 해방구다.
다시 어드벤처 놀이기구에 승차한다. 아예 수 십리 밖에 버스를 대기해놓고 진입조차 못했던 트레커들에 비하면 우리는 우아한 길손들이다. 버스가 진입 못해 진흙 밭을 오랫동안 또 걸어 내려가야 하는 우리나라 다른 팀들의 트레커 일부도 태워드리고. 다시 기우뚱, 기우뚱, 난 생 처음 버스 타고 해보는 비행놀이다. 노련한 기사는 더 이상 늪에 빠뜨리지 않고 50여 분 동안 비포장도로를 곡예하듯 빠져나왔다.
놀이공원에서 우연히 탄
어드벤처, 청룡열차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허공으로 몸뚱이가 금세 날아갈듯 하면서도
끝끝내 제 자리를 지켜내는
버스로 만든 안전열차와 배, 비행기
모험에 흔들리는 동심들
하하 호호
아스팔트길이 그리웠다. 콘크리트 좁은 길 위로 버스가 접어들자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이곳의 많은 버스들은 이렇게 달리는 것 같다. 웬만하면 초원의 길로 진입한다. 벼랑이 거의 없는 평원이다. 진흙탕이나 모래사구에 빠지지 않은 한 크게 충돌하거나 추락할 위험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이러한 모험을 한 덕에 우리들은 그렇지 못한 팀보다 상대적으로 그만큼 더 빠르고 편히 이동할 수 있었다. 다시 울란바타르 근교로 이동. 저녁 일곱시 쯤. 대장님께서 대원님들께 묻는다. “사우나부터 할까요, 아님 식사부터 할까요” 하자, 곧바로 어느 여성 대원님께서 큰 소리로 힘차게 “바압 !” 한다. 그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밥 ! 오랜만에 듣는 단어다. 역시 식욕이 씻는 욕보다는 원초적인 것이겠지라는 생각. 식당과 사우나시설이 함께 있는 어느 대형 건물로 간다. 식사 후 사우나. 앞으로 3일 간 게르에서 생활해야 하므로 충분하게 목욕을 해두는 게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샤워만 하고 나온다.
20시 40분에 다시 출발. 22시 가까이 되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는데 어느덧 땅거미가 짙어와 주변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앞으로 이틀 묵을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에 진입. 4인 1조로 한 동씩 배정받아 짐을 옮긴다. 게르 한 가운데에 난로가 있고 출입문을 제외하고 삥 둘러가며 4대의 침대가 있다. 한 사람당 침대 하나씩을 택한다. 게르 관리요원이 장작과 조개탄을 넣어 난로 불을 지핀다. 워낙 꽉 짜인 일정을 소화하느라 약간은 피곤. 20여 개 전후의 게르와 관련 공중화장실과 목욕탕이 있다. 식당은 별도의 건물로 있고. 공중탕에서 세수, 발 씻고 게르에 돌아와 별을 보기 위해 야외로 향할 만도 한데, 별이야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나 싶어 그냥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들었다.
5. 엉커츠 산, 거북바위, 승마
백야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보다 더 늦게 해가 지고 더 일찍 해가 뜬다. 오늘은 원래의 계획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아침을 연다. 대신 엉거츠산 등산루트는 정상을 향해 직항 왕복함으로써 시간을 조금 단축하기로 했다. 그래서 아침 여유가 있다. 밖으로 나가니 예쁜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으니 좋아한다. 아마 게르 관리인 댁 고양이인 듯. 동이 트는 게르 주변지역은 조망이 뛰어난 산과 들이 겹겹이 이어지고있는 명승지다. 날이 열리는 순간 주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경에 빠진다.
아침 식사시간까지 꽤 여유가 있어 우리들 숙소가 있는 가시권의 뒷동산에 올랐다. 사람들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다행히 예쁜 우리의 여성대원 한 분이 잠에서 깨어 눈 비비면서 밖으로 나오신다. 경치가 너무 좋아 숙소 뒷동산까지 함께 올랐다. 오르면서 워낙 빼어난 주변 경관이기에 상호 찰칵이 도우미가 되기도 하고. 어느새 숙소 뒷동산의 능선이다.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멋진 산들이 외곽에 둘러있고 가운데로 흐르는 산맥은 기암괴석들이 연이어져 있었다. 기암괴석들의 능선부근은 금강산 만물상을 왜소하게 느끼게 할 정도로 머얼리, 멀리 흐르고 있었다.
능선에서 보니 우리가 있는 숙소는 주변 수많은 명당 가운데 한 곳이었다. 식당건물이 있는 뒤편으로 온갖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영묘한 바위가 있다. 능선 건너편으로 우리가 머무는 곳보다 더 명당취락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산세가 겹겹이 형성되어 그야말로 요새 속의 요새 속의 요새들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초원과 산림, 기암괴석이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조식은 우리들 입맛을 고려하여 여러 가지 반찬들이 차려져 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건 쇠고기 미역국이었다. 미역~ 이곳은 바다와 연접한 땅이 한 군데도 없다. 그럼에도 미역인심이 후한 까닭은 우리들에 대한 배려이리라. 모두들 미역국을 큰 사발로 가득 담아 아침을 맛있게 드신다.
10시에 집결하여 엉거츠산으로 향하다. 오늘 날씨도 등산하기에 딱 좋다. 구름이 간헐적으로 적당히 끼어 햇빛을 차단해주는 양산 역할을 한다. 기온도 2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
출발지는 새벽에 올랐던 능선이다. 능선을 넘어 또 다른 동네의 뒷동산을 넘어 엉거츠산으로 직행한다. 정상을 향한 직행이기에 경사도는 체체궁산을 오를 적보다 더 가파르다. 하지만 오를 적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주변 경관에 매료되어 모두 힘차게 산을 잘도 오른다. 파르르 파르르 마치 잠자리의 힘찬 날갯짓 같은 소리들이 들린다. 메뚜기다. 이곳 메뚜기들은 철저히 황톳빛 보호색을 하고 있었다. 반사감각이 매우 좋았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면 이리 저리 힘차게 날아 이동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마주치는 날파리나 모기 등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물론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을 수 없다. 대신 공중을 유유히 비행하는 맹금류들이 아마도 들쥐들을 노리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었다. 또한 산 아랫 쪽에는 어쩌다가 제비 떼가 날기도 했다.
오르면서 조망 좋은 곳에 이르면 너도나도 사진 찍기. 알프스의 구릉지를 걷듯, 줄지어 오르는 대원들의 모습들이 평화롭다. 해발 1950m 정도였다. 키큰 가문비나무 숲들이 나타난다. 산정 부근이지만 빽빽한 숲 길이다. 숲 아래에는 이끼류, 잔디, 풀, 야생화들이 뒤섞여 있고. 종종 말 똥도 보인다. 역시 말이나 소 등은 출입하지 않는 곳이 없다. 피톤치트가 풍성한 삼림지대를 이십여 분 걸으니 정상 부근이다. 해발 2020m.
엉거츠의 정상부근 가운데 가장 조망이 좋은 곳으로 안내한다. 절벽 앞 쪽으로 트인 조먕은 왜 이곳이 유네스코의 보호구역인지를 보여준다.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였으나 산과 산 사이 분지에 초원이 있고. 산맥 중앙 쪽에는 기암괴석의 산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조망을 배경으로 대원들은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며 찰칵이 앞에 서고 또 선다. 나는 셀프촬영.
하산. 하산에서는 쉬임이 거의 없다. 다시 명당마을 위를 거쳐 또 다른 명당 터 게르촌을 향한다. 내림길에서 오름길 때보다 대원 모두가 찰칵이를 들이대지 않고 사뿐사뿐 잘들 내려간다. 천혜의 명당마을이 발 아래다.
명당이란 무엇일까
너와 내가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곳
조상과 후손들도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곳
어머님 품 속,
세상 향해 용울음을 맨 처음 터트리는 곳이지
모든 대원들은 생기 충천한 땅에서 기를 듬뿍 받는다.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은 큰 복 있을 지어다 !
어느새 새벽에 올랐었던 게르 촌 뒷동산 능선이다.
13시 직전에 모든 대원 하산 완료다. 원래는 도시락으로 점심하기로 했었으나 산행코스를 단축하여 빨리 하산할 수 있어 게르촌 식당에서 전통식을 들다. 쇠고기 스테이크와 감자요리가 입에 스르르 녹는다. 이 맛을 그냥 넘길 순 없지. 일부 대원은 가볍게 반주 한잔도 하고. 오후에는 세 시에 버스 탑승하여 거북바위 관광과 승마다. 시간 여유가 있어 식당 옆 휴게소로 향하는 대원들도 꽤 있다. 아무래도 바람이 덜 통하는 게르보다는 정자 형 휴게소가 더 시원할 듯. 벤치에 눕는다. 배불리 먹은 후 휴게소에서 산들바람을 맞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휴게소에서 바라볼 수 있는 주변 경관만으로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 등에서 볼 수 있는 멋진 이색적인 자연들이 한군데로 모인 듯, 아름다운 풍광을 제각기 뽐내고 있다.
오후 세시 반 쯤 버스에 탑승. 버스는 국립공원 내 비포장도로를 간다. 역시 놀이공원에서 어드벤처를 타는 기분. 그러나 놀이동산의 모험은 금세 끝나고 엉거츠산 정상에서 볼 수 없었던 기암괴석들의 산맥들을 더 길게 가까이 본다. 꽤 넓은 도로에 진입하니 머얼리 거북바위가 보인다. 워낙 바위가 크기 때문에 멀리서 보는 거북 모양이 더 온전하다. 거북바위 자체가 하나의 관광대상이다. 그래서 주변에는 꽤 넓은 폭의 길이 확보되어 버스나 승용차가 잠시 머물다 갈 수 있게 했다. 역시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모두 거북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나도 셀카 두어장 찍다.
유목민의 실제 전통가옥과 함께 있는 승마장으로 향하다. 승마장에 가기 전 버스에서 가이드는 주의사항을 당부한다. 그리고는 부상에 대비하여 서약서를 받는다.
전통가옥인 게르에 도착하다. 밖은 우리들이 거주하고 있는 게르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니 장식이며, 숭배의 대상들이 벽을 삥 둘르며 실내장식을 이루고 있다. 가재도구도 약간은 가족단위로 배열되어 있었다. 침대는 잠을 자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고, 손님을 위한 것도 있다. 실제 원주민이 거주했던 게르로서 현재는 전시용으로 쓰고 있었다. 견본으로 남겨놓은 전통가옥과 목장의 후계자인 국립대학 한국어과에 다닌다는 예쁜 몽골 청년이 요구르트, 치즈, 우유차 등을 무상 제공하여 먹고 마시다.
승마체험. 수십 마리의 말들과 마부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들은 경주마처럼 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조랑말처럼 작지도 않았다.
마부가 관리하는 말에 태울 적합한 승마객들을 골랐다. 승마객이 타고싶은 말을 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별 일이 없는 한, 마부가 사람을 지정하여 자신이 관리하는 말에 태웠다. 상호 체중을 고려하는 듯. 왼쪽으로 올라 탈 것. 신발은 1/3만 발걸이에 낄 것. 반드시 마부가 있을 때만 타고, 내릴 것. 말 뒤 쪽으로는 절대 가지 말 것. 말을 타고 있을 때 핸폰하거나 하는 이상 행동을 하지 말 것. 좌우운행방향은 고삐 줄을 좌 또는 우로 당겨 조절할 것. 너무 뒷 쪽으로 주저앉듯 하지 말고 되도록 앞 사타구니를 압착시킬 것 등을 숙지했다.
대장님과 나는 가장 마지막에 선택 되었다. 그리고는 말에 태운 후 두 사람은 마부가 붙지 않으니 더욱 조심하라 한다. 마부는 보통 두 마리를 관리하며 말을 이끈다. 가이드는 승마선수였다. 이랴, 이랴 하며 말을 빠르게 몰고 다니면서 우리들을 찰칵이에 담아냈다. 거의 한 시간 이상을 탔다. 나의 말과 대장님 말은 가장 늦게 출발했으므로 우리 대원들이 반환점에서 돌아오는 모습과 조우했다. 단체로 마주 오는 말 탄 대원들의 모습에서 옛날 징기스칸 후예들이 대륙을 평정하던 위용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승마 후 30~40여분 정도가 흐르자 말타기에 익숙해져 빨리 달리고싶어하는 대원들도 늘어났다. 가끔은 길이 패어 걷기가 불편했을 터인데도 말은 넘어지지도 않고 곧잘 걷는다. 내가 탄 말은 나의 체중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말에게 몹시 송구스러웠으나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힘들지,
난 말타기 행렬에 참여한
염치없이 뚱뚱한 소풍객이란다
죄송해
미안해
하고 말하자 말은 히히히힝 하고 소리낸다.
승마체험장과 우리의 숙소는 아주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승마 후 게르로 귀환하는데 10여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저녁은 특식. 돌로 구워낸 양고기 허르헉이 푸짐하게 나온다. 감자, 밥, 반찬도 넉넉히 나오고. 고기에는 반주가 제 격. 몽골의 보드카며 국산 소주 등이 대원들 사이에 오고간다.
거나게 취해 있는데 식당에서 민속공연과 별자리강의가 준비되어있다고 한다. 참여하다. 민속공연은 주로 국립대학 민속학과 학생들이 중심이라고 한다. 공연에는 전통악기연주, 노래, 곡예 등이 있었다. 소수의 유럽인들과 다른 한국인들, 그리고 우리 대원의 상당수가 관람했다. 민속공연이 끝난 후 박수와 자발적인 관람 헌금. 다음으로 한국인이 별자리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졸음이 쏟아졌지만 강사의 노고를 무시할 수 없어 귀를 기울였으나 종내는 앞 의자에 팔과 머리를 묻고 잠에 들었다. 누군가 나의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래서 별자리 강좌를 끝까지 듣지는 못하고 게르로 와서 물티슈로 목과 발바닥을 닦고 잠에 들었다. 난로의 불도 공연이 끝난 후 관리요원들에 의해 켜진다. 연료는 장작과 조개탄.
6. 징키스칸 청동상, 사막, 낙타타기, 캠프화이어
오늘은 버스이동시간이 많은 날이다. 울란바타르로 갔다가 다시 아르부르드 사막으로 이동한다. 중간에 징기스칸 청동상도 구경하고 중식도 한다.
아침 눈을 떴을 때 빗소리가 난다. 게르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공명되어 묘한 자연의 소리를 낸다. 비는 내렸다가 개이고를 반복한다. 밖에는 몇 마리 말들이 비를 즐기며 풀을 뜯고 있다. 공식적인 일기예보는 맑음이었는데, 가이드의 말처럼 변화무쌍한 일기다. 지난 밤 너무 열심히 행사에 참여한 대원들을 고려하여 아침 버스에 탑승시간은 10시. 짐은 완전히 꾸린다.
짐 꾸리기. 때묻은 옷이나 양말 등이 새 옷보다 더 늘어난다. 캐리어에 새 옷과 헌 옷을 재분류해보니 반반이다. 늘 해외원정 때면 느끼는 거지만 과잉장비가 무게를 더하는 건 마찬 가지다. 이틀간 정들었던 국립공원 속의 명당 중의 명당을 떠난다. 게르를 떠나려는데 젊은 관리요원 두 분이 손을 흔든다. 어느 여성 관리인은 이틀 간 정이 들었는지 눈물을 훔친다. 늘 건강하세요. 하는 인사를 뒤로 하고 비포장도로를 간다.
잠시 박수소리가 났다. 버스가 기우뚱, 하며 왼쪽으로 크게 기울다가 다시 복원되어 굴러갔기 때문이다. 가이드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여긴 지금 거의 초가을인 셈이죠. 몽골은 겨울이 6개월 이상 되요. 해서 겨울에는 여름처럼 활발하게 방목하지 못해요. 겨울 눈 덮힌 초원 위에서 말은 발로 눈을 헤쳐 풀을 뜯고, 소나 양, 염소나 야크 등은 입술로 눈을 걷어내고 풀을 뜯죠. 그러나 어린 가축이나 노쇠한 가축은 그러한 일이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에 유목민들은 그에 대비하여 비상식량을 준비하기도 하죠. 여름에 풀을 베어 말린 건초를 저장했다가 겨울에 연약한 가축들에게 먹여요” 라고 한다.
지나는 길에 울란바타르를 관통하여 바이칼호로 흐른다는 도르흐강을 지난다. 강은 수위가 굉장히 높아져 세찬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또 어느 곳을 지나는데 공동묘지가 보였다. 그러자 가이드는 몽골의 장법에 관하여 얘기 한다.
“몽골은 매장이 많아요. 그러나 지역에 따라 화장, 풍장, 조장 등도 해요. 조장은 꼭 와서 사체를 먹어야 하는 맹금류가 있어요. 그 독수리가 와서 먹어야 천당 간다고 믿어요. 그래서 때로는 스님을 초청하여 그 독수리를 부르는 주술도 해요. 장례절차는 보통 3~7일 걸려 치러요. 매장의 경우 반드시 정해진 공동묘지에 안장하죠. 49제를 지내는 가족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 제사는 없어요. 매장은 이별을 뜻해요. 해서 선조들이 매장된 후 매장지 쪽을 돌아보지도 않아요. 확실하게 이별하는 거죠. 죽은 자를 산자와 엄격하게 분리하려는 의식이 장법에 잠재되어 있죠.
10시 42분 경 징기스칸 동산에 도착. 도착 전 가이드의 멘트. “징기스칸이 가장 힘들어 했던 일은요. 영토확장이 아니라, 흩어져 사는 몽골인들을 한데 모으는 일이었어요” 한다.
무장인 징기스칸의 청동상이 세워진 기념관에서 버스가 주차하다.
청동상이 거대한 건물만하다. 입구 옆쪽 평지에 기마병들의 청동상들도 있고. 칸의 청동상이 있는 건물 안에 들려면 별도 입장료를 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동상건물을 삥 둘러 한 바퀴 돌 수 있다. 위치에 따라 칸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하고. 11시 11분에 다시 버스에 탑승. 대원 가운데 누군가 국내 뉴스를 보고 말한다.
“노희찬 의원이 투신자살 하였다네요”
충격. 여행 내내 그 충격이 계속 따라다녔다.
차가 약간 정체. 그 원인을 살피니 차바퀴에 방역소독을 하였다.
크지는 않지만 꽤 많은 민가들이 모여 있는 곳도 지나가고. 점심 식사를 위한 식당에 이르기 전에 잠시 큰 슈퍼마켓에 들다. 술, 과일 등 현지에서 본인이 필요한 소비품들을 사다.
12시 30분 경. 점심. 한식당이다. 닭도리탕이 주 메뉴다. 맛있다. 반찬들도 한결같이 맛있다. 13시경. 식후에도 버스로 두세 시간 더 가야 목적지에 도달한단다. 양 옆으로 전형적인 몽골의 초원이 길게 펼쳐진다. 운행차량이 드믄 아스팔트 이차선 도로 위를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듯이 버스가 달린다. 평원에 간간이 유목민의 게르가 보이고. 또 어떤 게르에는 옆에 건물도 있고 자동차도 두세대 있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띤다. 드믈게 염소떼며, 양떼, 소나 말떼들도 보인다.
14시 20분 경. 이차선 아스팔트 도로와 비포장도로로 갈리는 어느 결절지역이다. 잠시 정차한다. 남녀가 분리하여 비우기를 한다. 사막지대인 비포장도로에 진입. 도로가 별도로 조성한 것이 아니고, 초원이 있는 사막을 차가 달리면 그게 곧 길이 된다. 차바퀴를 따라 또 다른 차가 또 달리면 좀더 다져진 길이 된다. 이러한 자연스럽게 조성된 길이 초원 위로 끝 간 데 없이 뻗어있다. 이 길로 접어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통신서비스가 중단된다. 인터넷도, 와이파이도, 카톡도 안 되는 오지다. 이 야생 길로 한 시간 여 더 달려야 아르부르드사막에 있는 숙소가 나타난단다. 이 길로 옛날에는 말이 끄는 마차 등이 다녔을 터이다. 그러나 지금은 말대신 자동차가 이동수단이 된 곳이다. 그렇다고 자동차가 빈번하게 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길은 옛 길 그대로다. 신작로가 아니라 전형적인 구작로인 것이다.
가는 길에는 적당한 평원이 있고 구릉지가 나타나고 구릉지를 지나면 또 평원이 이어지고, 또 다시 다른 구릉지가 나타나는 식이었다. 사막 위에는 억새풀은 물론, 낙타가 좋아하는 낙타풀도 자라고 있었다. 지역마다 풀의 종류와 분포는 조금씩 달랐다.
구릉지를 오르면 또 나타나는 구릉지가 마치 고원 위를 계속 오르는 것처럼 착각 될 정도였다. 오지 중의 오지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15시 25분 쯤, 누군가,
“저기 좀 봐요, 저기요”하고 외쳤다. 모두 차 창 밖을 주시하고는 우와~하는 탄성을 낸다. 가이드가 외쳤다.
“영양이예요. 영양. 야생 영양입니다.”
영양(羚羊). 처음 보는 무리였다. 버스의 진입에 놀라 평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먹고 있던 야생영양들이 떼 지어 우리와 멀어지는 능선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임팔라나 물소 떼, 또는 덩치가 큰 아프리카 영양 떼의 이동들과는 달랐다. 워낙 그 숫자가 많아 도망치는 모습이 마치 빠르게 이동하는 철새 떼와도 같아보였다. 양의 덩치는 작았다. 그러나 도망치는 걸음은 매우 빨랐다.
더 달렸을까. 또 다른 영양 떼가 무리지어 버스로부터 멀어지는 능선으로 도망쳐갔다. 어쩌면 우리가 탄 버스가 오늘 이 오지에 진입하는 최초의 차량이 아니었었나 하는 논리적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짐작컨대 수천마리 영양 떼의 이동은 장관이었다. 초원 위의 거대하고 특이한 물결처럼 느껴졌다.
우리 선조님들의 호흡이 숨쉬는 우리 길에
왜 그대들이 다니시나요
우리와 후손들의 음식인 초원을
왜 그대들은 밟고, 파고, 해치시나요
영양은 스스로 도망치면서 우리들, 울긋불긋 옷을 입은 낯 선 불청객들을 향해 경계와 원망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또 능선을 넘고, 또 능선을 넘어선 15시 43분 쯤, 드디어 숙소에 도착. 버스는 숙소 입구 모래밭에 앞바퀴가 또 다시 빠졌으나 다 도착한 후여서 느긋. 게르 주인이 거주하는 주택에 식당과 공동화장실 및 욕실이 딸려있다. 그 아래쪽으로 줄지어 게르가 열 두 어 채 보이고. 주인이 거주하는 주택 입구에는 몽골국기와 우리나라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모두 조별로 게르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사막 체험, 낙타 타기다.
우리 대원의 숫자가 29명이고, 동원 가능한 낙타가 8~10마리 정도이기 때문에 4개조로 나누어 낙타를 탔다. 말을 탈 때는 가장 마지막에 걸렸었는데, 낙타에서는 맨 먼저 타게되었다. 낙타는 말보다 위험이 덜한가보다. 그래선지 서약서를 별도로 받지 않고 낙타에 태운다. 낙타타기에서는 앉는 위치와 손이 잡고 있어야 할 낙타 등이나 안장 등에 주의를 기울였다. 또한 타고내릴 땐 반드시 관리인의 통제에 따를 것을 강조. 낙타 몸이 앞으로 기울면 자신의 몸뚱이를 뒤로, 뒤로 기울면 몸뚱이를 앞으로 정도가 주요 유의사항. 모두 모두 노련하게 잘들 탄다.
역시 나의 몸무게 때문에 내가 탄 낙타에게 미안함이 없을 수 없었다. 상당히 먼 거리. 약 한 시간정도 탄 것 같다. 순하기가 그지없는 낙타는 우리들을 자신의 등에 태울 때 앞무릎과 뒷무릎을 꿇어 높이를 낮추도록 강요받는다. 그래선지 모든 낙타들은 앞다리 무릎관절과 뒷다리무릎관절들이 헤어지고 괭이가 박혀있었다.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생활을 반복적으로 강요당하는 오랜 관행에 길들여져 있었다.
우리를 태운 낙타는 때때로 풀을 뜯는가 하면, 걸으면서 배변하기도 했다. 낙타 등에 솟은 두 개의 혹 사이에 앉아 앞 쪽 혹은 보조손잡이로 쓴다. 앞 혹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니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혹을 쓰다듬으며 친밀감을 전했다.
우유 주고
고기 주고
가죽 주고
태워주고
극심한 가뭄, 한계상황에서는
목숨까지 바쳐
혹에 저장된 물마저도 주지
낙타는 우리들에게 일방적으로 줄줄만 안다. 둥그런 눈과 긴 눈썹으로 우리를 보며 늘,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낙타는 우리들의 안락과 편안함을 위해 걷고 또 걷는다. 아마 10km 가까이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걸었으리라. 18시 12분. 낙타에서 내렸다. 마부는 낙타를 꿇어앉힌다. 낙타가 좋아하는 동작은 아니다. 그러나 낙타 코에 꿰인 밧줄로 낙타의 동작을 이끌어 앞 뒤 네 발 무릎을 꿇린 덕에 편히 내려올 수 있었다.
무거웠지
미안해
등이 아팠지
죄송해
잘 참아줘서
사랑해
내가 탄 낙타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미안 해 했다. 낙타는 나의 그러한 동작에 고갤 끄덕이고, 그 아름다운 큰 눈을 꿈뻑이며 응답했다.
괜찮아
미안해 하지마
늘 하는 우리들의 일인 걸
나를 먼 거리까지 이동시켜준 낙타는 다음에 탈 대원을 자신의 등에 또 태웠다.
낙타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낙타가 즐겨 먹는 풀 한 이파리를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썼다. 그러나 계속 씹으니 약간의 단 맛도 났다.
모래사구로 가서 모래썰매도 탔다. 사구가 높지는 않았지만 모래밭을 오르고, 미끄러져 내리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동심에 젖을 수 있었다. 약간 피곤이 몰려올 때 멀리 지평선 넘어 보이지 않는 숙소까지 어떻게 되돌아가야 하나, 저 먼 숙소까지의 사막 길을 걷는 건 또 다른 트레킹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리들의 전용버스가 다가왔다. 낙타 타기 체험을 마친 대원들을 빨리 숙소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다. 나머지 대원들은 미니 밴 짚차로 실어 이동시킨다고 하였다.
역시 사막 위로 달리는 버스는 거침 없었다. 우리 걸음으로 한 시간 이상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길을 불과 십여분 만에 도착. 다시 게르에 들었다가 늦게 오는 대원들을 기다리고는 저녁 식사.
만찬이다. 슈퍼에서 준비했던 보드카 한 잔을 곁들여 고기를 먹으니 맛이 배가. 그 작은 한 잔에 이 세상 술은 내가 죄다 마신 듯, 얼굴이 새빨개진다. 21시부터 캠프화이어가 있단다. 숙소 밖 평원에 관리요원들이 캠프화이어 준비를 한다. 어디에선가 가져온 나무들을 가지런히 높여 탑 모양의 커다란 캠프를 세운다. 통나무는 아니지만 가늘고 긴 나뭇가지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다 쌓은 나무캠프 옆에 계속 불을 지필 수 있도록 여분의 나무들도 수북하개 쌓아놓고.
수 십 년 동안 수동적으로 해본 놀이다. 이제는 어른으로서, 아아니, 황혼으로서 캠프불을 구심점으로 흥겨워 빙글 도는 놀이. 앰프도 준비되어 원하는 음악도 켤 수 있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마음은 캠프장으로 달려가면서도 몸은 게르로 향한다.
축제다. 내가 묵는 게르는 캠프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도 신나는 음악이 계속 들려왔다. 게르에서 공동화장실을 오가며 즐겁게 몸을 흔드는 노익장들의 축제를 간접 경험하였다. 비록 현장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마치 뛰어든 것처럼 흥겨웠다. 손잡고 돌기, 몸 흔들기, 제자리 뛰기 등 다양한 놀이가 전개되는 것 같았다.
사막 평원으로 울려퍼지는 흥겨운 음악을 자장가 삼아 그만 잠에 들었다. 캠프가 끝났을 때 관리요원이 난로에 장작과 조개탄을 넣어 불을 지핀다. 이틀간 묵었던 게르보다 약간은 열악했지만 그래도 극한의 원정을 떠올리면 양반이 잠자는 숙소다. 상대적으로 오지에 있는 게르에서의 마지막 밤을 쪽잠으로 자다. 가벼운 겨울 내복까지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추웠다고 느껴졌을 때 어느새 새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덮어야 할 두터운 이불을 덮지 않고 깔고 잔 게 추위를 더 탄 큰 원인이었다.
7. 다시 울란바타르로
도넛 빵, 부드러운 계란 후라이, 입에 스르르 녹는 소시지, 우유차 등이 조식으로 등장. 아침 허기를 채우다. 좀 더 서둘러 울란바타르로 향하다. 구작로, 야생의 길로 다시 되돌아간다. 어제는 오후에 이 길을 통과했지만 오늘은 오전에 통과한다. 가이드는 울란바타르까지는 서 너 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하였다. 돌아가는 길에 조우했었던 귀여운 영양떼를 다시 만났으면 했다. 황야지역의 능선 몇 개를 넘고 또 넘으면 쌩쌩 달리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나올 것이다. 2차선 도로가 나타나지 않고 영원히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주변의 야생동물들과 교감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시간은 흐르고 차는 달리는 것을.
8시 52분 쯤. 차창 밖 가까운 곳에 검은 독수리 7~8마리가 초원 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억새풀지역을 지날 때면 풀 섶 바로 위로 날갯짓 하는 새들이 낮은 높이로 나비처럼 펄럭이며 난다. 물론 나비보다는 빠르다.
나의 옆 대원이 말했다.
“천지킴님, 저어기, 늑대 좀 보세요.”
늑대 한 마리였다. 마치 커다란 검은 세퍼트와 비슷했다. 배회하듯, 차가 행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약간 빠른 걸음으로 초원 위 독불장군처럼 늠름하게 걷고 있었다. 역시 상위 포식자가 있었구나. 잠시 후 반대방향에서 1/4톤 미니트럭 한 대가 지나간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승용차도 한 대 지나간다. 순간 오늘은 어쩌면 영양 떼를 구경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질주하면 자연히 더욱 더 오지로 무리가 이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과 소, 양, 염소 무리들을 일정한 곳으로 몰고 있는 전형적인 목부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야생 영양 대여섯 마리가 무리지어 뛰어간다. 저 멀리에 영양 떼가 능선에 모여 있는 듯 하고. 다시 꽤 높은 언덕을 넘어간다.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배회한다. 역시 차가 다녔으므로 영양떼의 쏜살같은 대이동의 장관은 볼 수 없었다. 만약 이 비포장도로에 지나는 차가 더 많아지고 아스팔트가 깔리면 부득이 영양 떼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든지, 아니면 개체수가 현저히 줄든지 할 것이다.
9시 26분 2차선 포장도로에 진입하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포장도로 양 옆으로도 광활한 평원이다. 잠시 후 10여대의 오토바이가 반대편에서 내달린다. 오토바이족들의 질주였다. 영양 대신 오늘은 오토바이족의 질주를 보는 것인가. 아마도 이러한 달갑지 않은 대체현상은 조만간 더 많아지는 건 아닌가. 여기저기에서 데이터가 수신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어제 전송된 문자도 이제야 들어온다. 아마 여러 지인들과 매일 소통하며 살고 있는 지구촌 가족들은 통신 두절이 두렵다. 하루 동안 통신의 깜깜이 속에서 보낸 셈이다. 시간도 현지시간과 국내시간이 함께 뜬다. 사람들은 또 다시 지구촌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며 관광한다. 10시 20분. 또 다른 아스팔트 삼거리가 나타난다. 주유소들, 파출소 등이 보이는데, 작은 용변이 필요한 분들이 있어 잠시 모두 하차한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어 일을 보고 다시 탑승. 평원에는 게르는 물론 주택이 지어진 농촌이 보이는데 승용차와 짐차 등을 가진 유목민들이 눈에 띤다. 점차 자동차를 이용한 영농이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 울란바타르를 빠져나올 때 받았던 자동차 방역소독구간을 이번에는 울란바타르 쪽을 향하면서 받는다. 도로는 좀 더 넓어졌지만 차들의 왕래가 많아진 지역이기에 차가 2차선 도로처럼 고속질주하지는 않고 있다. 여전히 농촌이다. 소가 자동차 길을 건너기 때문에 차량의 속도가 줄어들기도 한다. 11시가 가까워지자 울란바타르시내가 멀리 눈 안에 들어온다. 길을 확장하고, 또 길 옆으로 아파트 신축공사들이 줄지어 행해지고 있다. 도심 가까이 화력발전소들의 거대한 굴뚝에서는 연소로 인한 짙은 유색 연기가 끊임없이 품어져 나오고.
가이드는 차가 막히지 않아 두 군데 관광을 먼저 한 후 점심식사를 하겠다고 안내한다. 11시18분. 마치 우리나라 남산타워와도 같이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승전탑에 오른다. 자이승 승전탑에 오르는 시간은 남산 타워에 오르는 시간에 비하면 훨씬 짧다. 그만큼 높이가 낮기 때문. 그래도 높은 산이 귀한 도시라 자이승 승전탑에 오르니 울란바타르 중심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탑은 러시아군과 힘을 합해 일본군을 물리친 걸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승전탑에서 시내를 조망한 후 다시 승차. 도중에 어느 대원이 여행 내내 가끔 노트에 메모를 해오고 있는 저에게 물으신다.
“혹시 시 쓰세요. 시인이세요?”
“아아뇨. 시인의 꿈은 꾸고 있어요 ! 아직 시인은 아니지요”라고 대답하고는 미소 지었다. 시인 꿈은 그냥 꿈으로 끝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메모는 한다.
다시 탑승. 버스가 차를 돌릴 공간이 없어 후진운행 한다. 특정한 장소에서는 곡예하듯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잠깐, 대원들의 오우~하는 놀람의 소리도 들리고. 그러나 버스는 다시 제 방향을 잡아 나아간다.
이태준선생의 기념관에 들렸다. 우리나라 사람인 이태준씨는 의사이다. 몽골에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하면서 항일운동을 한 애국지사였다. 가뜩이나 승전탑 아래 주차장이 비좁은데도 불구하고 이태준기념관을 위해 상당한 부지를 제공한 몽골의 배려에 절로 감사의 마음. 기념관에서 이태준선생에 관한 일대기를 둘러본 후 다시 탑승. 12시 05분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차가 밀린다. “러시아워도 아닌데 중심가에서 차가 밀리는 이유는요. 원래 이 도시가 계획보다 세 배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라는, 몇 차례 들었던 가이드의 안내가 다시 반복된다.
버스는 독립기념광장을 앞에 둔 국회의사당을 삐잉 한바퀴 돌아 드디어 식당에 도착. 이미 차려진 밥상에 앉아 소갈비와 된장찌개를 든다. 갈비가 부드러우면서도 육질이 매우 좋다. 그래서 좀 더 먹고 싶어 추가를 원했더니 서비스로 계속 더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서비스다. 그만큼 이곳은 고기인심이 좋다. 국내에서는 야채나 반찬이 서비스 품목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몽골에서는 고기가 서비스품목인가보다. 버스에서 가이드가 한 말이 떠오른다.
“한국사람들은 고기를 살 때, 한 근 두 근 셈하여 사시죠? 몽골은 그런 셈 없어요. 여기 사람들은 반 마리, 한 마리, 두 마리 등으로 사고팔아요.”
몽골에는 커다란 한식당들이 많은 것 같다. 시내에서 우리가 들리는 곳들 대부분이 한식당이었는데 우리들 입맛에 맞게 음식이 나온다. 최근에 몽골을 가장 많이 찾는 외국인들이 우리가 아닐까. 징기스칸 광장으로 개명된 구 수하바타르광장으로 이동. 밀리는 도심에서 버스로 10분 이내에 광장에 도착. 광장은 원래 몽골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세계적인 위인이고 또 워낙 몽골인들의 우상인지라 광장이름을 바꿨다고. 광장 뒤로 국회의사당이 자리하고 있고. 광장을 한가롭게 걷는데 몽골사람들 삼 십 여명 정도의 한 소대가 무리지어 광장을 가로질러 걷는다. 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를 포함한 가족들이다. 광장에서 국회의사당 쪽에 돌계단이 있다. 그 계단에 줄지어 서서 가족사진을 찍는다. 이러한 모습이 너무나도 귀해 우리들도 그들을 배경으로 찰칵이를 들이대고. 신랑신부 말고도 특이한 복장을 한 거구의 남성이 하객들 중앙에 있었다. 혹시 주례나 종교인처럼 보여 가이드에게 저 분은 누구세요, 라고 물었다.
“도 단위에서 우승한 씨름의 천하장사여요” 한다. 사진을 찍고 흩어지는 이들 결혼 축하객들 가운데 천하장사와 기념사진을 요청하여 찍는 대원들도 보이고. 씨름 잘 하는 분이 대접받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13시26분에 박물관으로 이동. 고대, 역사시대의 유물들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75만 년 전부터 존재해온 유물들을 수 만점 소장하고 있다 한다. 원래는 사회주의혁명박물관이었었는데 독립으로 사회주의 붕괴 이후 국립역사박물관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1~3층까지의 전시실은 우리의 국립박물관보다 훨씬 작았는데 전시된 유품들의 특징은 크고 화려하였다. 공예품도 많았다. 여성들의 장신구 또한 크고, 용도도 다양하며, 정교했다.
1층에서는 전통문화를 녹화해서 방영하는 장소도 있었다. 잠시 관람 중 눈에 띤 것은 무당의 굿였다. 뛰고, 굉과리 치고, 흔들면서 신들을 부르는 의식이 우리의 굿과 많이 닮았다. 하기야 굿은 어느 나라나 그 의식이 약간씩은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 박물관을 돌아보며 그렇게 많은 전시품들을 본 건 아니지만 유목민의 역사와 문화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몽골은 역시 몽골
유품 등이 소리 내어 몽골을 뽐낸다
유목의 향기
오랜 삶과 생존의 향기
버스를 타고 간단사라고 부르는 사원에 도착했다(14시37분). 사원 안에 주차장이 있을 정도로 사원의 규모는 꽤 컸다. 경내 여러 문화재들을 거쳐 거대한 관음 청동대불상이 모셔져 있는 건물까지 다녀오는 길은 가벼운 산책의 거리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불상 앞에서 경건하게 의식을 행했다. 특히 불상으로 진입할 때 절을 하고, 건물에서 밖으로 나올 경우에도 부처님을 마주보며 뒷걸음으로 나와야한다고 하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그렇게 했다. 밖의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도 하고.
대원들이 너무 빡빡한 일정 때문에 몽골 전통의 소품 한 점이라도 구매할 수 있게 하자는 요청에 따라 백화점과 케시미어공장에 들리기로 했다. 대원들은 각자 흩어져 여러 가지 소품들과 주류 등을 구입했다. 나는 물소 뿔로 만든 빗을 찾았으나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백화점에서 나와 다시 버스에 탑승. 저녁 민속공연관람시간(18;00)까지는 여유가 있어 가이드에게 부탁해 캐시미어제품 공장으로 갔다. 이곳에서 안 사람에게 줄 스카프 한 점을 샀다.
17시. 다시 전용버스에 오르다. 몽골 전통민속공연장으로 가기 위해서다. 적어도 30분 전에 입장해야 도착순으로 자리를 잡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공연장 좌석 앞을 차지할 수 있다고. 17시 20분. 공연장 입장을 위해 줄을 서다. 줄을 서있는 입구 안쪽으로 민속공연진의 초상들이 한 분씩 줄지어 전시되어 있었다. 국보급 인물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들의 부지런함 때문에 우리 대원들은 공연마당과 가장 가까운 앞좌석에 삥 둘러 앉을 수 있었다. 맨 먼저 우리들 그룹이 입장한 후 우리보다 뒷좌석 쪽으로 세계 각지에서 관광 온 사람들이 계속 자리 했다.
공연장 규모는 작았지만 마치 마당놀이 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경연장 분위기였다. 개인용 의자는 없고 앞에서부터 뒤로 이어지며 삐잉 두른 타원형 콘크리트 계단형 돌기가 의자를 대신했다. 일정한 공간에 관람객을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구조였다. 공연시간이 꽤 남았는데도 어느새 조성된 자리는 관객들로 꽉 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관객들이 입장했다. 출입구 바닥은 물론, 나중에는 비상시 통로가 될 공간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관객들로 꽉 들어찼다. 아마도 화재 등이 나면 대형사고 위험은 그만큼 더 높아지리라.
드디어 오후 여섯시 공연시간이 되자 더 이상 관객을 출입시키지는 않는다. 1시간 짜리 공연이란다. 매우 인기가 높다. 특히 외국인들에게 더욱.
맨 처음 여성가수가 등장하여 민요를 부른다. 가락이 넓은 초원에서 소나 말을 모는 듯. 평화로운 운율이다. 전통 춤이 이어지고, 바리톤 음성의 소리꾼이 등장. 한 사람이 다양한 소리를 낸다. 특히 자연의 소리들과 닮은 소리들이다. 곤충, 가축, 바람, 벌레 등등의 소리들이 가수의 음성에 묻어나온다. 어떤 경우에는 한 입에서 두 세 개의 소리가 동시에 울려나오는 신비로운 노래도 있고.
거지차림의 광대가 들어와 도깨비춤을 춘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출연하여 다양한 동작과 소리를 낸다.
경쾌한 민요 한 곡 뽑는 노래에 현악기 등이 반주를 넣는다. 퉁소와 안무, 우유통을 들고 나와 마당에 놓고 사뿐히 추는 춤, 밥그릇을 든 목동 등장하여 춤, 여성안무가들도 등장, 손을 움직일 때마다 내는 방울소리가 현악기와 조화를 이룬다. 마두금, 퉁소, 타악기, 현악기 등이 등장하여 전통음악을 합주.
남녀 혼성의 민요가수들이 노래를 부른다. 다시 다양한 소리의 주인공 등장. 악기 연주와 조화로운 경쾌한 음악으로 우레와도 같은 박수세례 받다. 민속춤 시리즈다. 남녀 혼성. 춤의 가락이 빠른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민속악기의 합주와 함께 국민민속가수들 다수 등장하여 경쾌한 가락의 노래를 연이어 부른다. 계속 민속 악기들의 협주로 다양한 곡들을 빠르게 이어간다. 특히 어느 현악기에서는 마치 말이 황야에서 히히히이이이잉 하며 내는 소리를 흉내내자 중간 박수갈채. 다시 민속 국민가수들이 등장하여 합주 속에서 민요를 부른다. 또 민속 무용이 반복되고. 민속춤이 끝나자 이어지는 민속악기들의 합주.
아리랑이다. 아리랑 곡이 나오자 관객 중 약 절반 가까이 육박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로 아리랑을 합창한다. 아무리 경쾌함을 잘 내는 몽골 민속악기로 연주해내도 아리랑가락의 애잔함은 지울 수 없다. 그러자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 모습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고 듣는다. 아리랑이 끝나자 여러 나라 민요들이 메들리로 이어진다. 익숙해 하는 소수의 외국인들이 노래를 추임새로 넣기도 하고. 이러한 연주가 한 동안 이어지자 분위기는 더 고조된다.
주요 연주자들과 가수들이 등장하여 또 다른 노래들을 부른다. 예정된 공연 한 시간이 꿈처럼 흘러갔다. 그런데 덤으로 또 다른 공연이 제공된다. 서커스가 함께하는 공연. 굉가리, 퉁소, 북 등과 각종 염라대왕들의 광대 춤, 동물 춤, 광대할아범의 재등장과 퇴장 후 모든 출연자들이 한꺼번에 등장하여 인사한다. 앵콜은 사양이다. 벌써 정해진 시간보다 20여분이나 초과했을 정도였으니까.
몽고리언의 전통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뷔폐식인데 다양한 육류요리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유럽인들이 다수의 고객으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응축된 일정을 소화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석식을 마쳤을 때는 어느새 2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원래 저녁 늦게 대원들이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야식을 계획했었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 취소. 호텔에 도착하여 3일 동안 게르에서 묵은 때를 씻어내고 잠에 들다. 내일 아침 5시 30분에 콜이니까. 짐을 다시 꾸리다. 낼 입을 것, 가벼운 배낭에 맬 것을 빼놓고는 죄다 캐리어에 담다.
8. 울란바타르공항을 떠나며
우리나라 날씨가 매우 무덥단다. 무더울 동안 우리 몽골팀들은 시원한 날씨 속에서 우아한 피서를 한 셈이다. 아침 6시 30분 호텔 출발 공항으로 향하다. 공항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20여분. 7시경 공항 도착. 수속하고 8시 20분에 이륙하는 몽골항공을 탄다. 결코 여유있는 시간이 아니다. 며칠 동안 우리들의 여행을 위해 수고하신 가이드와 인사 나누고.
고마워요
수고 많으셨어요
허서
손으로 손을 붙들다가 놓는다. 만나면 헤어지는 일이 달갑지 않다. 공항에서 수속 마치고 출국 탑승장에 들다. 그런데 일본 나리타공항을 향해 이륙했던 몽골항공 여객기가 이륙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기류를 만나 회항하는 일이 발생했단다. 일기불순이다. 그래서 자동으로 우리들 항공기의 이륙 또한 길게 늘어지고. 이러한 우연한 사건 덕에 그동안 제대로 쇼핑하지 못했던 몽골 전통 공예품과 술 등을 더 살 수 있는 행운도 얻었다. 탑승시간이 반나절 지연되는 바람에 대원님들과 뜻밖의 대담도 하고. 또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우리나라를 오가며 물건들을 사고파는 인정 넘치는 몽골의 전형적인 두 아줌마들과 먹거리를 나누기도 했다. 하나를 잃으면 둘, 셋을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넓은 초원, 키 큰 나무들, 이끼, 야생화, 기암괴석, 맑은 하늘과 물, 공기, 사막, 낙타, 말, 소, 염소, 양, 야크, 야생 영양, 늑대, 게르, 민속악기들, 민속가수들, 칸의 동상 등과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져간다.
꿈같은 체험을 위해 수고 많으셨던 스티브대장님 내외, 함께 하신 대원님들과 몽골가족님들께 다시 감사 인사 올린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18년 8월 3일 천지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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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천지킴님 안녕하세요?
와우 감동적입니다.
제가 다녀오지않았어도 그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아무리 간간히 메모를 하셨다 해도 놓치는 부분이있을터인데 이리도
세밀히 기억 하시고.풀어내시다니요.
덕분에 가보지못한 몽골여행을 마음으로 잘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감사 합니다.
안녕하세요.
열심히 기록하려 했었는데
지금 보니 빠트린 것, 틀린것도 보이는 글을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시어
감사 드립니다.
서정적인 감성까지 곁들여서 출발부터 도착까지를 자세히 기록해 주신 천지킴님 멋진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시간만 나면 펜 꺼내어 뭔가 기록하시더니 탄생한 작품이군요. 대자연의 품속에서 우리 함께 어슬렁어슬렁 거렸던 5박6일 참 즐겁고 행복했어요. 너무나 더운 요즘 그 몽골의 공기가 바람이 너무 그립습니다. 더위 건강하게 잘 이겨내시구요. 멋진 산행길에서 또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몽골~ 하면 제게는 스티브대장님 내외를
떠올리게 되지요.
늘 대원님들의 불편을 미리 배려하시어
행복한 여행으로 이끌어주시어
김사 드립니다.
천지킴님께서 중간중간 메모를 하시더니 이런 훌륭한 후기글을 쓰시기 위함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출발부터 일일 모든 면면들을 다큐보듯 자세히 기록해줘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몽골산행시 천지킴님께서 보여주신 조용하면서도 인자하신 모습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정성스러운 후기글 잘 읽었습니다.
대장님, 안녕하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대원님들의 안전과 행복한 여행을 위해
헌신하시던 모습, 오래토록 기억할 것입니다.
체계적으로
모든 일정과 운행을 관리해주시어
저희들은 행복했고,
또 제겐 어줍은 산행기 또 하나 건질 수 있었습니다.
늘 감사 드립니다.
산행중에도 틈틈이 메모를 하시더니 아주 상세하면서도 감성이 듬뿍 묻어나는 여행기가 탄생했 습니다. 역시~
덕분에 몽골 초원과 사막 다시 걸어봅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게르에서 이틀간 룸메이트였는데 함께 나누었던 대화들 즐거웠구요
앞으로도 좋은 산,여행지에서 종종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편안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하세요.
늘 동료대원님들을 배려하시어
여러 가지 장비들을 챙겨오심에
저도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아직 사진방에 들지는 않았지만 늘~ 대원님들을 위해 작품까지 남겨주시어
항상 고맙고, 감사 드립니다.
또 좋은산에서 뵙겠고요.
격려에 감사 드립니다.
여행 내내 두꺼운 수첩에 계속해서 메모를 하시더니
엿새 동안 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셨군요.
들뜨고 꽉 찬 스케줄과
쉼 없이 이동하는 중에도
시간과 장소 내용을 남기시는 열정에 감탄사를 연발했고
여행 배테랑의 면목을 느낌니다.
자세한 후기 덕분에 몽골 여행을
다시 한 번 다녀온 기분이며
저도 답습하고픈 부러움이
생깁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중 늘 대원님들께
배려하시고, 또 종종 깊고 밝으신 유머로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시던 모습, 잊을 수 없습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적어도 운행일지라도 써보겠다고 하는 열망이
이 어줍은 글로 나왔는데 행진님의 격려까지 받으니
의외의 보람입니다.
함께 해서 행복했고요.
격려, 감사 드립니다.
대단하고
섬세한 기행문에
감탄합니다
저도 몽블랑기행문을
쓰려다가 지체되고
있는데 ᆢ
다시 시간내서 정독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동장소와 시간을 메모해놓았다가
기억을 되살려
썼는데
의외의 격려 받게되어
반갑고 한 편 부끄러움도 있습니다.
나중에 읽어보면 여행의 궤적이 상세히 되살아나길래
해외산행 후 종종 써본답니다.
격려말씀 감사 드립니다.
늘 조용히 든든하게 계셔주시던 천지킴님의 여행 후기 글에 다시금 몽골에서의 감동적인 광경들이 되살아 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30.gif)
여러 회원들을 위한 배려심과 후의에 감사드리며 저 또한 그런 모습 본받으며 살아야겠다는 마음 다잡아 봅니다
다음 산행에서도 뵙게되면 반가이 인사드리겠습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안녕하세요.
인연생기님과 함께
멋진 곳에 함께 여행할 수 있어
반갑고 힘찬 시간들였습니다.
늘 이웃 대원님들을 배려하시던 모습
떠오릅니다.
어줍은 보고서에 격려말씀 주시어
다시 반가움에
감사 인사 드립니다.
와우~~ 역쉬 천지킴님!!
더위에 지칠때 천지킴님의 산행기는
청량제같은 ~.*
5박6일 몽골의 드넓은 초원과 사막을 누비며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쌓고만 왔는데
이렇게 감동의 글을 접하니 그때 그날이 그리움으로 다시금 떠오르네요
간간히 메모하시고
다정다감 포근한 목소리로 야기하시던 천지킴님,
올만에 해외여행 함께함이
오늘 이처럼 큰 선물을 받게되네요
막연하게 좋았던 기억을 그리울때면 찾아와 보고 되새겨볼수있는,
이또한 함께한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또이런 행운이 주어지리라 그날까지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며
천지킴님~ 감사합니다^^*
여행에 여러 차례 동행하게 되면
또 뵈워도 언제나 기억되고 반갑습니다.
항상 이웃 위해 배려하시는 모습,
늘 귀감이십니다.
마음 먹고 메모를 해 둔 덕에
어줍은 여행기나마 올릴 수 있었습니다.
격려 주시어
언제나처럼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