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 에세이](9)
지금은 트로트 시대 / 김잠출
나도 ‘우영우 신드롬’에 편승했다. 여러 논란과 우려가 있었지만 연기자의 캐릭터와 콘텐츠 파워에 자석처럼 끌렸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낯선 채널에서 만든 드라마라 처음엔 B급으로 여겼지만 아니었다. 아하, 유명 채널이 무의미해진 지 오래지 않은가. 이른바 콘텐츠 파워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작품만 좋으면 누구든 어디서든 알아서 찾아보는 것이 보편화됐다. 지역방송도 콘텐츠 소비자들의 새로운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이라는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다. 누구도 본방 사수에 매달리지 않으며 편성 요일과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모두 OTT를 구독하는 시대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애플 플러스에다 티빙,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등 지금 주변엔 OTT들이 차고 넘친다. 변하지 않고 짜증나는 건 지상파 방송과 공영방송이다. 그들의 예능 프로그램은 베끼기와 흉내 내기, 중복 출연에 출연진 돌려 막기 등 구태로 가득하다. 프로그램 포맷을 새로 개발하려는 창의성이나 도전 정신은 없고 아류들만 유행한다. 늘 같은 얼굴이 전 채널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도 슬픈 현실이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몇몇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채널을 장악하니 ‘메뚜기과’라고 비난받는다. 정말 지겹다. 패밀리로 포장된 꼬붕 몇을 데리고 나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거나 억지웃음을 유도하기도 한다. 쓸데없어 보이는 오버액션과 작위적인 리액션까지 되풀이하니 보는 사람 모두 절로 지친다. 어떻게 유명MC 한둘이 전 채널을 독차지하고 있는데도 방송사와 PD는 독과점의 폐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자칭 국민MC니 거물급 MC라고 지 맘대로 호칭하고 아주 자잘하고 저예산 프로그램까지 싹쓸이 하고 있다. 누가 국민 타이틀을 허했는지 모르지만 웃기지 않는가. 연말 연예대상도 똑같다. 겹치기 수상자들이 모든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방송은 다양성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거늘. 오직 한 얼굴로 오직 한 장르만으로 방송을 한다? 지나친 획일이다.
지난 7월, 영국에 이어 프랑스가 1년에 18만원에 이르는 방송 수수료를 폐지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소유한 가구 수가 계속 줄어드는데 수신료를 징수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상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3년간은 정부가 다른 부문의 부가가치세 세원으로 지원을 계속하지만 2025년부터는 공영방송들이 자체적으로 재원을 충당하여야 한다. 영국도 BBC 수신료를 2년간 동결하고 2028년부터 폐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 공영방송의 경영독립은 지상파 규제의 본산인 유럽에서조차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서울시의 공영방송 프로그램 하나도 손을 못 대고 갑론을박 중이다. 자체 경영, 독립 경영이란 얼마나 좋은 말인가. 주로 유튜브, 넷플릭스를 소비하는 젊은 층에게 무슨 염치로 수신료를 강요하는지, 그만한 가치 있는 방송을 하는지 우리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열린 공론의 장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국민의 돈으로 운영하는 KBS’나 MBC같은 공영방송이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는 공영방송 스스로 시장의 속성을 체득하고 경쟁의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자체 경영이 가능하도록 변하라는 충고라고 믿는다.
지금은 트로트 시대
지금 우리나라는 가히 ‘트로트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예전에 ‘딴따라’라고 낮춰 불리웠던 그들은 이제 하늘의 별과도 같은 스타나 아티스트로 대우받는다. 또 트로트는 ‘도로또’ ‘뽕짝’ ‘엔카의 아류’ ‘왜색가요’라며 사람들이 멸시하고 비하하던 장르였다. 대중가요, 유행가정도로 인정하는 척 했던 그 노래들이 바야흐로 르네상스, 아니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오랜 기간 방송에서도 숱하게 외면당하던 노래였다. 지금은 추억이 됐지만 1960년대부터 1987년 민주화 시기까지는 ‘금지곡의 시대’였는데 방송윤리위원회가 있었고 방송사 자체뿐 아니라 정부에서 금지곡을 결정해 방송사로 통보했다. 방송금지곡 리스트가 있었고 음반 라벨에 빨간 줄이 그어진 곡들 중에는 동백아가씨 등 트로트곡도 많았다. 비관적이다, 반사회적 가사 내용이다, 사회 불안감 조성이나 폭력을 미화한다, 왜색이다, 저항적이다 등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한 대수의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다고 금지했고 신중현의 ‘미인’은 저속한 가사라는 판정을 받았으니 실로 웃픈 기억이다.
지금의 트로트 부흥의 원인을 누구는 코로나 덕이라 하고 누구는 ‘미스트롯’의 기획력이라고 상찬한다. 어린 시절 누나들이 대도시의 신발공장으로 떠나는 친구들과 이별모임을 할 때 부르던 노래였고 명절마다 열리는 동네 콩쿨에 빠짐없이 등장하던 그 노래들이다. 전 국민의 애창곡이니 트로트 전성시대니 하면서 전체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트로트 열풍을 보노라면 역시 방송과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고 노래는 불러야 제 맛이라는 말이 맞았다.
노래에는 힘이 있다고 한다. ‘You Raise Me Up’을 부르면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진다. ‘상록수’를 들으면 시련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확 뭉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20대엔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불렀고 환갑 지난 친구들은 어느새 ‘청춘을 돌려다오’를 목 놓아 외친다. 노래는 과거 연인에 대한 모든 기억을 훌훌 털게 하는 효과가 있었고 꼰대를 위로하고 재기의 힘을 넣어준다. 역발산기개세의 초패왕을 고립시킨 것도 무력이 아닌 사면초가라는 노래였다. 노래는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고 영육을 회복 시켜주는 치유 기능도 가졌다. 그만큼 노래는 힘을 가졌다. 동요를 부르다 보면 뜸북 뜸북 뜸북새는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는 숲에서 운다는 것을 절로 알게 된다.
‘가지마오’와 입산금지
1970년대 중반, 고향 동네에 혁명적인 사건이 있었다. 월남에서 귀국한 기철이 형이 라디오라는 신문물을 가지고 귀국한 것이다. 온 동네 아이들이 삽시간에 그 집에 몰려들었고 왕비열전과 법창 야화, 루터란 아워, 마루치 아라치를 밤낮으로 들으며 무료한 시간을 잊었다. 낮에는 마을 이장댁 감나무 꼭대기에 걸린 ‘앰푸’에서 유행가 볼륨이 울려 퍼졌고 동네는 매일 잔치 분위기였다. 논에서 밭에서 들리던 노동요는 어느새 사라지고 모두 유행가 유행가로 대체되었다. 라디오(어른들은 소리통이라고 하고 아이들은 나지오라고 불렀다)는 노동요 대신 유행가를 퍼뜨리며 일하는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었다. 신기한 뉴미디어, 최고의 문명이었던 라디오 한대가 단번에 동네 분위기를 바꾸었다.
동네 청년들은 추석날 콩쿨을 대비해 모이기만 하면 노래를 하고 가사를 까먹으면 즉석에서 개사를 하는 재치를 선보이기도 했다. 대개 자신의 처지를 빗대거나 주변 상황을 대입시킨 일종의 ‘노가바’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노가바는 원곡보다 더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효능을 발휘했다. 결혼식이나 회갑잔치, 친지들과 함께하던 뒤풀이나 각종 모꼬지에서도 노가바는 자주 소비되었는데 그런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파안대소破顔大笑와 가가소소呵呵笑笑를 참지 않았고 금방 즐거운 분위기에 휩쓸렸다.
동네에는 구순열口脣裂로 놀림을 받던 형이 있었는데 또래들 놀이에도 소외되고 자주 담 밑에 홀로 쭈그리고 있던 외톨이었다. 하루는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빈 지게를 지고 돌아왔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왜 빈 지게만 지고 돌아왔냐고 나무라듯이 따졌고 그 형은 어물어물 대답을 못하고 피하기만 했다. 무학에다 머슴보다 더 일만 해대는 신세였으니 무슨 대답을 시원하게 할 수 있었으랴. 그 날, 저물녘 우물가에 모인 또래들이 빈 지게의 사연을 물었고 마침내 실토하는 그의 얘기에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날 혼자 나무를 하러 가던 그가 산에 들기도 전에 마주친 것은 붉은 글씨가 적힌 현수막이었다. 붉은 색이 꺼림칙해 글자 수를 세어보니 네 글자더란다. 문맹이었던 그가 혼자 머리를 굴리고 굴리다 고민 끝에 생각한 것이 나훈아의 ‘가지마오’라는 노래였다. 어제도 듣고 오늘도 들었던 그 노래, 오다가다 혼자 부르며 익숙해진 그 노래의 제목은 가지마오!
당시는 땔감을 벌채하는 바람에 민둥산이 많아 보기 흉하던 시절로 정부가 산불조심, 입산금지를 강력하게 추진하던 때였다. 불시에 가가호호를 습격하여 밀주와 벌목을 단속해 압수하고 벌금을 매기던 살벌한 시기였다. 오죽했으면 산골 사람들이 마마호환보다 더 무서워한 상대가 세무서 직원과 면서기들이었겠는가. 그런 때에 문맹의 그 형이 ‘입산금지’란 네 글자를 유추해 무서운 단속과 벌금을 면했다. 그날 밤, 우물가 공터에 나훈아의 가지마오가 돌림창으로 울려 퍼졌다.
요즘 트로트 열풍이 거센 탓인지 옛 노래가 그리울 때가 있다. 입산금지 현수막을 ‘가지마오’로 알아챈 고향 형이 떠오를 때도 있다. 오늘도 잠시 내 기억 속의 최초의 노가바 ‘가지마오’를 부르고 싶어진다. “사랑해 사랑해요 당신을 당신만을~, 가지마오 가지마오.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이 노래를 하다보면 힘들게 살아왔던 지난 세월에 대한 기억도 빈 지게로 귀가하던 그 형에 대한 아픈 기억도 모두 바람 속으로 훨훨 날려 버릴 것 같다.
트로트의 고장, 울산
고복수 윤수일 서인국 테이 오렌지 캬라멜의 레이나 걸스데이의 유라, 트바로티 김호중과 홍자 김희재...모두 울산 출신 가수들이다. 과거에도 울산은 노래의 고장이었다. 향가에서부터 담바구 타령이나 모심기 노래 등 각종 노동요를 비롯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유명곡들이 많이 나왔다. 창살 없는 감옥이란 실화영화의 주제가였던 ‘님’은 울산의 차경철이 작사했다.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과 황토십리길, 대전 부르스와 미스트롯에서 송가인이 불러 화제가 된 용두산 엘레지와 나훈아의 청춘을 돌려다오, 현철의 못난 청춘이란 명곡도 역무원을 지낸 울산 사람 최치수가 작사했다.
태진아의 ‘태화강 연가’란 노래도 정일근 시인이 이틀 만에 만든 곡이다. 김상희의 울산 큰애기나 오은정의 울산아리랑, 김세나의 울산에 살자, 바니걸스가 부른 목도는 내 고향은 울산을 노래한 가요들이다. 일제시대 서덕출의 봄편지나 눈꽃송이는 얼마나 유명했던가. 우리나라 운동선수 최초로 개인 응원가를 가졌던 최성곤 선수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국대 1호 골을 넣었다. 또 울산 출신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은 한글날 노래를 만들었고 패티김의 팬이었다. 소설가 오영수 선생은 박꽃 아가씨의 노랫말을 직접 썼다.
지역방송 위기는 결국 지역방송인의 위기
2020년부터 국내 방송의 최고 콘텐츠는 '트로트'였다. TV를 틀기만 하면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경쟁하듯 비슷한 포맷으로 만든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 마구 쏟아졌다. 트로트 열풍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제 우승 상금이 4억원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에서만 지내던 시청자들이 TV 앞에 앉아 트로트에 빠져든 시간이 많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트로트 과잉' ‘트로트 광풍 현상’ 시대에 지역방송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트롯 열풍이 방송시장을 초토화 하고 있지만 지역방송은 여전히 수중계에 만족할 뿐 ‘지역시장’을 되찾기 위한 도전정신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8월에 열린 고복수가요제가 32회를 맞았고 목포의 난영가요제는 1968년에 시작됐지만 햇수만 거듭할 뿐 지역 방송이 외면하거나 기발한 기획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전통과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국 시장에 내놓을만한 상품이나 서울에 맞설만한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전국의 지역방송들이 협의체를 만들어 전국 단위의 트롯 경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역을 순회하며 개최하되 골든타임에 동시 편성하면 미스트롯을 능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프로야구의 프랜차이즈처럼 운영하면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으련만 지역 방송인들은 여전히 ‘서울 공화국’에 종속된 기능에 만족하고 있으니 그것이 안타깝다. 그저 중계하고 서울에서 배출된 가수를 소비하기에 급급하고 지역출신 연예인을 역수입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족) 그러니 지금 흔히 말하는 ‘지역방송의 위기’는 ‘지역 방송인의 위기’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