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1834~1917), 운동하는 스파르타의 젊은이들, 1860년경, 캔버스에 유채, 109×15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집게와 봉투 들고 산에 가는 청년들
며칠 전 친구들끼리 서울 우면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11월의 산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갑니다. 도심에 있으면 못 느끼는 계절의 변화가 산에서는 눈으로 귀로 촉감으로 달려듭니다. 낙엽이 쌓인 산길을 걷는 맛은 상쾌하면서도 허전합니다.
잡담을 나누며 낙엽송 숲길을 걷는데 앞에 15명가량의 남녀 청년들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면산 둘레길에서는 주로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청년들이 한 줄로 늘어서 걸어가니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유심히 보니 그들은 일반 산행객과 달랐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집게 또는 비닐봉투가 하나씩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길을 걸으며 쓰레기가 보이면 가시덤불 속이라도 들어가 이를 집게로 집어 올려 봉지에 담고는 또 걸어가곤 했습니다.
그들은 걸음이 빨랐지만 동료가 쓰레기를 줍는 동안은 기다렸다가 또 걷곤 했습니다. 평범한 산행을 하는 우리들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한창 걸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들이 한참 뒤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쉬는 장소에는 주변에 쓰레기가 많이 널려 있어서 그걸 줍느라고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클린산행에 나온 청년들
처음에는 구청의 알바로 돈 받고 쓰레기 줍는 사람들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자세를 보니 그런 것 같지 않아서 제일 뒤에 봉투를 들고 가는 한 청년을 세우고 물어보았습니다.
“어디서 나와 청소하는 거죠?”
“우린 클린산행 팀입니다.”
“그럼 학생인가요?”
“아닙니다. 직장인들입니다.”
“어느 회사죠?”
“한 직장이 아니라 여러 직장 사람들이 모여서 쓰레기 수거합니다. 저도 오늘 처음 나와본 겁니다.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직장이 다르고 전혀 모르는 청년들이 산에서 만나 쓰레기를 줍는다니 가슴이 찌릿했습니다. 산이 맑아지고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그 청년에게 질문할 필요 없이 그들의 정체를 기분 좋게 상상해보았습니다. 아마 그들은 ‘오늘은 어느 산길을 청소할까, 어디서 만날까' 등 필요한 정보를 SNS를 통해 소통하며 봉사활동을 벌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원해서 쓰레기를 줍는 아름다운 청년들이었습니다. 아마 그런 클린산행 팀이 전국의 산야 곳곳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청년들이 있어 한국은 깨끗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산만 아니라 사회도.
[퍼온 글] / 출처; 2019.11.19 06:57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김수종(‘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해란초 Linaria japonica Miq.
‘미식’이란 무엇일까
“미각을 즐겁게 하는… 습관적인 기호” /
한국 음식은 ‘樂食’ 이라는 말 더 어울려
“미식은 미각을 즐겁게 하는 사물에 대한 정열적이고 사리에 맞는 습관적인 기호다.”(브리야 샤바랭의 ‘미식 예찬’ 196쪽)
입동(立冬)이 지나고 겨울비가 내리면서 이제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겨울비는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이럴 때는 따뜻한 것을 찾게 되는데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부침개를 부쳐 먹는 것도 비 내리는 오후와 딱 어울린다. 한국 사람은 부침개에 대해서라면 다들 일가견이 있다. 워낙 다양한 전을 즐기는 게 우리네 입맛이니 말이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인생 부침개’도 몇 장면이 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시골 잔칫집에서 잘 달아오른 솥뚜껑에 돼지비계를 비벼 짜르르해진 위에 부쳐낸 부추전이다. 돼지비계로 부친 전은 식용유로 한 것보다 더 고소한 맛이 난다. 다른 하나는 한 노 교수의 사모님이 늙은 호박 속으로 만들어준 전이다. 밀가루를 거의 섞지 않은 그 달달하고 담백하고 촉촉한 식감을 잊을 수 없어 집에 돌아와 몇 번이나 흉내를 내어 해보았다. 또 하나는 한 초계탕 집에서 내놓은 메밀전이다. 식당 사장이 출입구에서 초벌구이한 것을 여러 장 쌓아두고 하나씩 재벌구이를 해서 모든 식탁에 한 장씩 올려주는데, 극단적으로 얇고 쪽파 한두 줄기가 붙어 있다.
입에 넣고 가만히 씹으면 메밀의 숨은 감칠맛을 끝까지 뽑아낸 맛이랄까. 사장 말씀이 메밀 반죽을 잘 발효시키는 데 비법이 있다고 했다. 집에서 가장 자주 해먹는 건 감자전이다. 밀가루를 섞지 않은 순도 100%의 감자전은 입안에 잠시 머물다 그냥 스르르 목구멍으로 밀려 넘어간다. 감자 전분을 잘 받쳐두었다가 감자에서 나온 물과 섞어서 따로 부치면 쫄깃쫄깃한 식감으로 마무리하기 좋다. 감자 두 알이면 폭신함 두 장과 쫄깃함 한 장으로 저녁을 대신할 수 있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에 빠져들다 보면 종종 미식의 세계를 맛보고 싶을 때가 있다. ‘미식 예찬’이라는 책은 18~19세기 유럽의 화려한 식탁 세계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의 법률가인 장 앙텔므 브리야 샤바랭은 프랑스혁명 당시 단두대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나라가 조용해진 뒤 다시 돌아와 법률가의 삶을 이어갔다. 그는 특별한 정치적 야심 없이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인생 최고의 즐거움으로 알았다. 그가 아흔이 넘어 낸 책이 바로 ‘미식 예찬’이다. 생화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인간의 오감이 맛과 조응하는 원리를 해박하게 정리해나가면서 칠면조 사냥과 들판 요리, 숙녀들과의 식사 등 내밀한 미식 경험을 잔뜩 풀어놓는다. 참 정열적으로 먹고 예찬하다가 간 사람이다.
미식이란 무엇일까. 정열적인 욕망을 품되 그것을 조금만 취하는 것, 무엇보다 천천히 음미하는 것, 정확한 지식을 지니는 것, 강렬한 첫맛에 허겁지겁 몰두하는 게 아니라 단계별로 결을 즐기는 것. 하지만 샤바랭이 말했듯 그것은 ‘습관화’되어야 한다. 허겁지겁 흡입하기 바쁜 나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다. 비비고 섞고, 국물에 말고, 후루룩 하는 한국 음식은 서양식 디너와는 풍경 자체가 다른 것도 사실이다. 왠지 우리네에게는 미식(美食)보다는 낙식(樂食)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퍼온 글] / 출처; 세계일보 /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 2019-11-18 23:21:39
스테비아의 꽃
쉼표 하나가 국제계약 좌우한다
1990년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 소속된 선덜랜드 AFC 클럽이 스테판 슈워츠 선수와 계약할 때였다. 구단은 슈워츠 선수의 코치가 버진 갈락틱호의 우주여행을 예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슈워츠 선수와 함께 여행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구단은 슈워츠 선수가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
마이클 조던이 미국 농구계를 호령하던 시절, 소속팀 시카고 불스는 선수 보호를 위해 조던이 즉흥 게임에서 농구하는 것을 방지하는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하려 했다. 그러나 조던은 언제 어디서나 농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농구 사랑 조항’을 관철시켰다. 이 조항은 오늘날 다른 선수들의 계약서에도 포함되고 있다.
서구인들이 계약서 작성에 얼마나 신중하게 접근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작성은 신중하게 하되, 일단 서명한 계약은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서구인의 사고방식이다. 그런 만큼 거래의 백미(白眉)는 계약서 작성에 있다. 장기간의 힘든 협상도 결국 계약서에 어떤 내용을 포함시키느냐로 결판난다. 또 계약서는 법정에서 다투는 데 준거가 된다.
작성엔 '신중', 서명 뒤엔 '준수'
계약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기업인은 법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변호사 도움 없이 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법을 잘 알지 못할 경우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것이다.
필자는 외교관 생활 중 상당 기간을 정부를 대표하는 국제법 전문가로 일했다. 경험을 토대로 계약서 작성 시 숙지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소개한다.
첫째, 조동사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영어의 ‘shall’과 ‘must’는 의무조항에 사용되는 조동사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이에 비해 ‘will’과 ‘may’는 법적 구속력이 없거나 약하다. 어느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과 맺은 계약서의 기밀유지 조항에서 실수로 shall이 아니라 may를 썼다. 나중에 외국 기업이 기밀을 유출했으나 강제력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shall’과 ‘should’도 법적 구속력에서 차이가 있다. 2015년 말 파리 기후변화협상에서 참가국들은 shall과 should를 둘러싸고 대립했다. 기후변화로 타격받는 개발도상국 지원 의무를 규정한 조항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shall 대신 구속력이 약한 should를 쓰지 않으면 협정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둘째,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어느 법정에서 어떤 법을 적용하느냐’의 준거법과 관할 법원은 중요한 문제다. 가급적 한국 법정에서 국내법을 적용하도록 하되, 불가능할 경우 중립적인 제3국의 법원과 법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와 런던 파리 싱가포르에 소재하는 중재원 등이다.
필자가 주페루 대사로 재직하던 2012년 11월 페루 국방부에서 국산 훈련기(KT-1) 20대의 수출계약 서명식이 열렸다. 우리나라가 중남미 에 최초로 항공기를 수출한 사례였다. 2년여의 정부 간 협상은 인내와 능력 한계를 시험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준거법과 관할법원 문제는 최종 타결될 때까지 걸림돌로 작용했다. 페루 정부는 분쟁 발생 시 페루 국내법을 기초로 페루 법원이 관할권을 행사해야 하며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 3개 언어본 중 스페인어본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양국 간 동등한 자격하에 체결되는 정부 간(G2G) 계약인 점을 페루 대통령에게 강조해 결국 제3국인 미국 뉴욕주의 법과 법정 관할권을 관철시켰다.
마지막으로 단어 하나 또는 구두점 하나도 잘못 사용하면 막대한 손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글로벌 협상에서는 이질적인 문화, 통・번역상의 실수 등으로 그런 사례가 많다.
구두점 하나에도 유의해야
1984년 8월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이때 쉼표 위치에 따라 정강 정책의 뜻이 뒤바뀌는 소위 ‘쉼표 전쟁’이 발생했다. 정책 초안에는 “우리는 경제 회복을 저해할 수 있는 어떠한 세금 인상 시도에도 반대한다(We therefore oppose any attempt to increase taxes which would harm the recovery)”고 돼 있었다. 이때 ‘taxes’와 ‘which’ 사이에 쉼표의 유무를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됐다. 쉼표가 있으면 “우리는 어떠한 세금 인상 시도에도 반대하는데, 그것은 (반대는) 경제 회복에 해를 끼칠 수 있다(We therefore oppose any attempt to increase taxes, which would harm the recovery)”는 정반대 뜻이 되기 때문이었다. 원래 숨을 쉬라는 표시로 사용된 쉼표가 오늘날 열한 가지나 되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니 쉼표 사용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퍼온 글] / 출처; 한국경제신문 / 박희권(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2019.11.19 00:10
뻐꾹나리
세포호흡과 국가 정책 결정
우리는 코로 숨을 쉰다.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을 호흡이라고 하고 영어로 ‘breath’라고 한다. 생물학 교과서를 보면 ‘breath’ 말고 ‘respiration’이라고 부르는 ‘세포호흡’이라는 또 다른 호흡이 등장한다. ‘respire’는 ‘spire’라는 어근을 사용한 단어 중 하나로 이 어근을 사용한 단어들은 숨을 거두다, 열망하다, 탄식하다, 땀을 흘리다 등 생명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사실 세포호흡은 관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른 유사한 과정으로 세포호흡 과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수소가스에 불을 붙이면 폭발이 일어난다. 이 현상은 수소 분자 구조를 유지하는 전자에너지가 순식간에 열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전자에너지가 열로 바뀌는 것은 수소가 에너지를 가진 전자를 끌어당기면서 일어난다. 수소가 전자와 결합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생물은 에너지를 가진 전자를 산소를 이용해 끌어당긴다. 다만 전자에너지를 제공하는 물질이 산소가 아닌 음식물이고 폭발처럼 순식간에 에너지를 열로 모두 방출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생물체는 세포호흡으로 산소를 이용해 음식물이 가진 전자를 당기는데, 이때 전자전달계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이 장치는 여러 단계를 거쳐 전자를 주고받음으로써 전자가 지닌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한다. 이렇게 수소 폭발이든 음식물에서 전자를 당기든 전자를 주고받는 반응을 산화환원반응이라 한다.
세포호흡의 과정을 수행하는 전자전달계가 있는 곳이 바로 세포 공장이라고 불리는 미토콘드리아이다. 우리가 숨을 들이쉬면 산소는 기도를 통과해 폐에 이르고 폐를 둘러싼 혈관 속 혈액에 이른다. 적혈구의 수많은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결합하게 되고 산소는 적혈구에 의해 몸 구석구석에 있는 세포로 수송된다. 세포에 도착한 산소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사용된다. 산소를 사용한 전자에너지 이용은 결국 신체 에너지인 ATP를 만드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호흡의 최종적인 목표는 생을 유지하기 위해서 잠시라도 멈춰서는 안 되는 ‘ATP 합성’이다. 그런데, 우리가 섭취한 음식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 꼭 산소가 있어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속에서는 포도당, 지방,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과정에 산소가 없더라도 약간의 ATP가 합성된다.
호흡이 ATP 합성에 효율적이기 때문에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도 호흡을 할 수 있는 생물들이 출현했던 것 같다. 물론 이들은 산소 대신 질산이온이나 황산이온을 사용하여 전자를 끌어당겨 ATP를 합성한다. 이러한 호흡을 무기호흡이라 하는데 수생 조건을 포함한 무산소 환경에서 서식하는 많은 세균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산소를 이용한 ATP 합성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면 코로 숨을 쉬는 것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세포호흡을 통한 ATP 합성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포호흡이 없다면 코로 숨을 쉬는 행위는 무의미하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정치, 경제, 외교 등 국가의 정책 결정이라는 호흡도 우리 국민들 개개인이 행복하고 활기차게 삶을 살아가는 세포호흡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정책 결정 방향도 너무나도 분명하다. 생물이 생존하는 방식에서 배울 일이다.
[퍼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장수철(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 2019-11-19 02:03
흰석곡
이튼스쿨 579년, 교육은 공정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명문고를 폐지하고 고교평준화를 단행한 게 1974년이다.
그러나 평준화를 해보니 수월성 없는 교육 황폐화 폐단이 더 크다는 결론으로 10년 후인 1984년 외국어고를 허용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자사고를 여럿 설치했다. 일본도 고교평준화를 단행했다가 한국, 중국보다 국제 학업 성적 비교에서 뒤떨어지자 `큰일 났다`며 사립고를 대거 인가했다.
교육은 사회적 계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기회의 사다리이자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 엄중한 사명을 지닌다.
영국의 이튼(Eton)스쿨은 579년 전, 우리로 치면 조선조 세종 때(1440년) 세운 명문으로서 존슨 현총리 등 총리만 20명을 배출했다고 폐지론을 떠드는 사람은 없다. 미국의 명문 보딩스쿨 앤도버(Andover)는 1776년 독립 2년 후 설립됐으니 사실상 미국 역사와 같다. 그로튼, 앤도버, 필립스엑시터 순으로 300여 개 사립학교 서열이 인터넷에 쫘악 뜨는데 학비는 연간 5만 달러(약 5800만 원) 수준이며 이는 영국의 명문 사립들과 비슷한 금액이다. 한국 대원외고 등의 1100만 원 선과 비교해보시라. 프랑스 얘기까지만 더 하기로 하자. 프랑스는 68년 학생혁명의 발원지이며 일찍이 교육평준화를 선언했다. 고교는 공립은 무료이고 일반대학도 무료다. 그런데 그랑제콜이라는 명문대에 가려면 비싼 사립고를 가야 한다. 프랑스 언론은 명문대를 보낸 사립학교 순위를 1등부터 100등까지 발표한다. 명문 학교는 국가의 리더를 길러내고 기술 인재를 배양하는 곳으로 여겨 국민 정서에 질투심은 없다고 한다.
중세 대항해시대 이후 어차피 인간을 움직이는 원리는 인센티브였다. 그 원리가 신대륙을 탐험하고 산업혁명을 일으켰으며 지금 이 순간도 실리콘밸리에서 신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문명의 발전은 창조적 소수가 이끌어가고 그 한가운데 인재가 있다. 그들은 고소득자이고 명예가 따른다. 유은혜 장관은 특목고가 4%밖에 안 되지만 입시 전문으로 전락해 명문대 입시를 독차지한다는 논리를 폐교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튼과 웨스트민스터 두 고교 졸업생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입학의 50%를 점유한다고 한다. 미국, 프랑스의 상위권 보딩스쿨들도 `서열! 서열!`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이 `공정`을 몰라서 이튼, 앤도버, 그랑제콜을 운영하겠는가. 역사는 두 번의 칙령에서 인재 문제를 소홀히 다룰 때 어떤 재앙이 닥쳤는지를 봤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알람브라 칙령(1492년)으로 두뇌가 뛰어난 유대인 17만명을 쫓아내 1등국 지위를 영원히 잃었고, 프랑스는 낭트 칙령 폐지(1685년)로 유능한 기술을 가진 위그노 20만명이 스위스 등 이웃 국가로 도피한 후 산업혁명에서 영국과의 경쟁에서 패했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이 공정의 차원을 뛰어넘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현시점은 중국 같은 나라가 단번에 세계 2위로 부상하는 4차 산업혁명 시기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인재와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제 인재에 국가의 명운이 달렸다.
문 대통령이 조국 사퇴에 몰려 느닷없이 `공정` 슬로건을 들고나온 게 10월 15일이다. 그리고 교육장관회의 한 번 하고 번개작전 하듯이 정확히 3주 만에 외고를 폐지하는 것을 보고 세계가 웃을 것이다. 고교서열화와 부모 능력으로 대학에 가는 것처럼 질투심을 부추겨 공정을 가장하는 것은 문정부의 어두운 페르소나다.
가난한 학생 대입 선발 비율을 늘리도록 선발권을 대학에 주고 장학생을 늘리면 단번에 해결된다. 수월성 선택이 없으면 망한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300년, 500년을 명문 학교를 통해 엘리트를 길러내는데, 한국이 외고 30년 운용해보고 폐지하는 것은 자해 행위다. 총선에서 공정쇼(show)로 이득을 보려는, 탈원전보다 국운을 더 위태롭게 하는 마녀사냥이다.
다음엔 서울대, 삼성을 평준화하자고 할 차례일까.
[퍼온 글] / 출처; 매일경제 / 김세형(매일경제신문 논설고문) / 2019.11.16 13:27:57
부모의 공부 타령
누구나 느끼듯 자기 자식 가르치기가 제일 어렵다. 부모로서 몇 마디 좋은 말이라도 해줘야 할 텐데 이게 참 어렵다. 그래서 옛 글에서 지혜를 빌려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중국인들이 신기묘산(神機妙算)이라고 칭송하고, 삼국지 팬들에게 지혜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제갈량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제갈량은 17세에 혼인을 했는데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부득이 동생의 아들 제갈교를 양자로 들였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47세에 아들 제갈첨이 태어났다. 그 귀한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보내준 편지가 ‘계자서(誡子書)’이다. 86자 전문을 소개해 본다.
“군자는 평정심으로 수신하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욕심 없이 담담해야 의지를 분명히 할 수 있고, 고요하게 집중해야 원대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고요함 속에서 공부가 완성되며 재능은 공부에서 얻어진다. 공부해야 재능을 넓힐 수 있고 의지가 있어야 공부를 완성할 수 있다. 방종하고 태만하면 정신을 연마할 수 없으며 거칠고 조급하면 성정을 도야할 수 없다. 순식간에 나이가 들고 의지도 세월 따라 약해지면, 결국 쇠락하고 쓸모가 없어져 세상에서 버려진다. 그때에 쓸쓸히 궁색한 집구석을 지키면서 후회한들 어찌하리.”
수신(修身)과 입지(立志)의 자세를 요약한 명언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이 여기서 나왔다. 중국인들 집에 가면 이 글귀를 써서 걸어 놓은 경우가 많다.
죽음을 예견 했던 걸까. 이 글을 보낸 해에 제갈량은 54세로 전장에서 생을 마친다. 그때 제갈첨은 8세였다. 그래서인지 글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애잔해진다. 그 어린 아들이 무얼 알겠는가. 그래도 애절한 마음으로 붓을 잡아 글을 써내려간 아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제갈첨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후일 촉한 황제의 사위가 되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263년 위나라의 공격에 맞서 싸우다가 아들 제갈상과 함께 전사한다. 역사 앞에 인생이란 이렇게 비감한 것인지. 정녕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인가. 제갈첨의 비극은 제갈량의 일생을 더욱 고단하고 슬퍼 보이게 한다. 그래도 애써 위안해 보면, 제갈량은 후인들에게 자식 교육의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었으니 ‘계자서’에 들인 정성이 헛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자식 교육을 위해서 고심한 부모들이 만든 결정체가 ‘가훈(家訓)’이다. 가훈(家訓)이라고 하면 근면, 정직 등등 간단한 몇 마디 좋은 말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원래 가훈은 책 이름이었다.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 양(梁)나라 출신 안지추(顔之推)가 저자이다.
그의 ‘가훈’은 여타의 가훈과 구별하기 위해 ‘안씨가훈’이라 부르는데, 총 20편 약 5만 여자로 사회생활 전반에 걸친 자신의 생각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중국에서는 ‘안씨가훈’을 ‘가훈의 시조(家訓之祖)’라고 평가하고 있다.
안지추가 ‘가훈’을 남긴 데는 사연이 있다. 그는 9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린 동생이 불쌍했던 큰 형은 그를 응석받이로 키웠다. 한없이 너그럽지만 위엄이 없는 형이 아버지 노릇을 하면서 안지추는 멋대로 생활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술독에 빠져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위도식하던 그에게 24세에 겪은 조국의 멸망은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포로 생활이 시작된다. 정말 운도 없는지 끌려간 나라도 또 망해서 계속 유랑의 신세였다.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를 거쳐 수(隋)나라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해 느낀 모든 것들을 가훈을 통해 후손들에게 말하려 한 것이다. 너무 할 말이 많았는지 자신의 기막힌 인생 유전을 ‘논어’의 편수에 따라 20편으로 정리하였다.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을 적절히 섞어 글을 풀었는데 마치 한 편의 자서전을 읽는 것 같다.
그가 서위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같이 끌려간 양나라 귀족들은 공리공담에만 익숙할 뿐 세상의 실무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자들이었다. 입들은 살아있고 지식인 행세를 하니 문서 정리라도 할 줄 알았는데 심지어는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자가 태반이었다. 서위의 권세가들은 하사받은 양나라 귀족 출신 포로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공밥을 먹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안지추는 글을 읽고 쓸 수 있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무엇이든 기술 하나는 익혀야 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기술 가운데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공부라고 강조하고 있다.
“무릇 배움이란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봄에는 그 꽃을 즐기고 가을에는 그 열매를 얻는 것이니, 서로 토론하고 글을 짓는 것은 봄의 꽃이요, 자신을 수양하고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은 가을의 열매이다.”
안지추는 ‘춘화추실(春華秋實)’이란 성어로 공부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개괄하고 있다. 우리네도 자식에게 늘 공부 타령을 하지만, 제갈량과 안지추가 강조하는 공부와는 결이 달라 보인다. 그들이 말한 공부는 바른 사람 만들기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퍼온 글] / 출처; 한국일보 / 박성진(서울여대 교수) / 2019.11.18 18:13
쑥부쟁이
카니발을 방해하는 것들
분별없는 말들이 축제 가로막아
건강한 논쟁 없는 불일치는 소음
정당한 윤리・어법이 축제 만들어
요즘 한국 민주주의는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거의 완벽한 단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제재를 받지 않는 놀라운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 도대체 언제 이런 시절이 있었나. 거짓말을 마구 해대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이며 간첩이라 지칭해도, 심지어 특정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고 떠들어도 제어되지 않는다. 겉만 보면, 이제 한국에서 주변화되고 억압되며 움츠린 목소리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바흐친이 스탈린주의를 염두에 두며 이론화하고 고대했던 ‘카니발(축제)’의 ‘유쾌한 상대성’은, 이제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화려하게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랑시에르의 말대로 정치가 ‘치안’이 아니라 ‘불일치’를 생산하는 것이라면, 최근의 한국처럼 불일치가 극대화된 때도 드물었던 것 같다. 만일 바흐친이나 랑시에르를 기계적으로 적용을 한다면 한국 정치가 잘 굴러가고 있다는 논리까지도 가능해지는데, 문제는 다중(多衆)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좋은 의미의 ‘유쾌한 상대성’과 ‘불일치’가 가동되려면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것들을 허용하지 않는 ‘가혹한’ 체제의 존재다. 오로지 한 목소리가 국가를 지배할 때 구성원 다수의 목소리는 공포에 짓눌리며 주변화된다. 바로 그때, 평소에 억압되었던 목소리들이 일제히 터져 나온다면, ‘유쾌한 상대성’은 해방의 ‘가치’로 부상된다. 다중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국가 전체를 ‘치안’의 상태로 몰고 갈 때, ‘불일치’는 죽은 정치를 살리는 건강한 가치가 된다. ‘마음대로 떠들 자유’로 한정해서 말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에 이런 것을 막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저 먼 70~80년대에 존재했던 앙시앵 레짐들의 살벌한 얼굴들이었다.
미셸 푸코의 후기 사상의 핵심 개념 중의 하나로 ‘파레시아(parrêsia)’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모든 것을 말하기”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영어로는 ‘프리 스피치(free speech)’라 번역되기도 한다. 신분과 사상・계급과 권력을 떠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모든 전제적 시스템에 대한 대안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푸코에 의하면 파레시아에도 ‘나쁜 파레시아’가 있다. 이 경우 파레시아는 “자신이 말하는 바에 신중하지 않고, 마음에 있는 것을 무분별하게 모두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볼 때, 지금 한국 사회는 나쁜 파레시아의 천국이 되었다. <중략>
어느 사회에나 수많은 ‘나쁜 파레시아’들이 존재한다. 물론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의 나쁜 파레시아들은 대부분 그 안에서 사소한 소란을 일으키다 소멸되고 만다. 문제는 그것이 다수가 모인 공적인 공간에서 나름의 상당한 ‘권력’을 가진 매체나 주체에 의해 수행될 때다.
‘좋은 파레시아’는 정당한 윤리와 철학, 그리고 가치와 어법을 전제로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비윤리적이고, 몰가치적인 파레시아들이 합당하지 않은 어법을 통해 무한 생산되고 있다. 권력을 가진 매체와 주체들이 경쟁하듯 나쁜 파레시아들을 쏟아놓을 때, 진정한 ‘카니발의 정치’와 공동체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불일치가 건강한 논쟁으로 발전하지 않을 때, 불일치는 정치가 아니라 소음이 된다.
사적인 모임에서도 사람들은 ‘나쁜 파레시아’들을 자주 만나며, 그것만으로도 고통을 당하고, 때로 관계가 파괴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공적인 매체와 주체가 전체 공동체를 향하여 이런 것을 마구 수행할 때, 전 국민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야 할까. 카니발은 재갈이 풀린 ‘모든’ 주체가 아니라, 정당한 윤리와 어법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다.
[퍼온 글] / 출처; 중앙일보 / 오민석(시인・단국대 교수・영문학) / 2019.11.19 00:17
관상용 호박
술 싫어한 정약용, 정조가 따라준 술 마시고..
백성 위해 금주를 주장한 다산.. 그가 남긴 술 이야기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왔다. 아침 안개를 보려고 서둘렀지만, 날이 훤하게 밝고 말았다. 똬리처럼 틀고 있는 소내나루 전망대에서 열수(洌水)를 내려다 본다.
열수는 한강의 옛 이름이다. 강물에 해가 얼비쳐 눈부시다. 그래도 물안개가 깊어 강 건너 산능선은 묽은 붓자국처럼 흐리다. 등 뒤로는 실학박물관이 있고, 다산 정약용이 살던 고향집과 그의 무덤이 있다. 다산은 유배에서 풀려나 이곳에 살면서 스스로 열수옹(洌水翁)이라 불렀다.
실학박물관에서 어디쯤이냐고 전화가 왔다. 오늘은 실학박물관에서 술 이야기를 할 참이다. 술 이야기만 할 수 없어서 이익의 <성호사설>에 나오는 청명주, 연암 박지원이 근무했던 면천의 두견주, 가장 많은 술 제법이 기록된 옛 문헌 <임원경제지>의 저자 서유구의 후손이 빚은 별바당 약주, 그리고 다산이 유배를 살았던 강진 땅의 병영 설성동동주를 준비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에 이르면 술의 제법을 기록하거나 술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농서들이 발간된다. 여러 성인들이 말했고 다산도 "무릇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하는 흉패한 행동은 모두 술로 말미암아 비롯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술의 강은 도도하게 흘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의 음주관
▲ 다산이 살았던 여유당, 1925년 을축년 홍수에 유실된 것을 1986년에 새로 지었다. ⓒ 막걸리학교
두물머리 다산의 땅에 왔으니 오늘은 다산의 음주관을 통해서 술 이야기를 풀어내보려고 한다. 다산은 강진 유배지에서 둘째 아들 학유에게 보낸 편지 글에 자신의 음주관을 잘 밝혀놓았다. "너희들은 내가 술을 반 잔 이상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는 것이다. 소가 물을 마시듯 마시는 저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는 적시지도 않고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물론 이 편지의 말미에, 아마도 둘째 아들이 술을 많이 마셔서 아비로서 속을 푹푹 썩다가 하는 말이었겠지만, "경계하여 절대로 입에 가까이하지 말아서, 제발 천애일각(天涯一角)에 있는 이 애처로운 애비의 말을 따르도록 하여라. 술로 인한 병은 등창이 되기도 하며, 뇌저(腦疽), 치루, 황달 등 별별스러운 기괴한 병이 있는데, 이러한 병이 일어나게 되면 백약이 효험이 없게 된다. 너에게 빌고 비노니, 술을 입에서 끊고 마시지 말도록 하여라"라고 했다. 웃음이 날 정도로 애처롭고 극렬하게 대학자 다산은 아들을 향해 술 단속을 하고 있는데, 아들 학유가 술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전해오지 않는다.
다산은 많은 글을 썼으니 술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남겼다. 성균관에 들어간 20대 때에 정조 임금으로부터 <병학통> 책을 선물받던 날, 큰 사발에 담긴 계당주(桂?酒)도 받았다. 계당주는 계피와 꿀이 들어간 소주다. 다산은 임금 앞이라 사양하지 못하고 다 마셨고, 몹시 취해 비틀거리며 물러나왔다고 한다.
또 다산은 중희당에서 정조 임금이 짓?게 옥필통에 가득 부어준 삼중소주(三重燒酒, 이 술이 어떤 술인지는 알 수 없다. 다른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심해본다. 정조도 언급한 적이 있는 삼해소주(三亥燒酒)의 오기가 아닌지?)를 사양하지 못하고 또 마신 적이 있다. 그때 다산은 '나는 오늘 죽었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다행히 몹시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 소내나루 전망대에서 바라본 두물머리의 아침 풍경. ⓒ 막걸리학교
다산은 맏형인 정약현에게 보낸 편지에서 상락주를 함께 마시고 싶다고 했다.
살기 좋은 땅 바람 연기에 하늘 높고 樂土風煙敞
벼슬 길에 세월만 바쁩니다 名途歲序忙
서늘해지면 바로 돛을 걸려 했더니 乘?旋?帆
더위에 지쳐 다시 침상을 의지합니다 病熱更支牀
나그네 제비는 봄 나기 괴롭고요 旅燕經春苦
푸른 매는 그 어느 날 날아오를까요 蒼鷹幾日?
가을이 오면 상락주 秋來桑落酒
함께 마시려 술병과 술잔을 씻어둡니다 應共洗壺觴
상락주는 뽕잎을 넣은 누룩으로 만들어 중양절에 마시는 술이라고도 하고, 중국 하동의 상락 고을에 우물이 좋아 뽕잎이 지는 시기에 그 물을 길어다 술을 빚으면 맛이 좋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다산이 실제 상락주를 즐겼는지 알 수 없지만, 계절감 있는 가을 술이어서 상락주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남대문 옆 회현방에서 친구 홍운백과 여름에 술 마실 때에, "하삭음을 우리가 마다할쏘냐 (不辭河朔飮)/ 꽃과 버들이 온 성에 그늘 드리웠거늘(花柳滿城陰)"이라고 했다. 하삭음은 더위를 피하면서 어울려 마시는 술을 말한다.
이렇듯 다산의 글에서는 구체적인 술 이름과 사연이 등장한다. 많은 선비들이 그냥 익명의 술을 마시고 시를 썼다면, 다산은 좀더 구체적으로 술 이름을 남겼다.
금주를 주장한 다산
▲ 다산 정약용 초상화. ⓒ 이재형
다산은 <경세유표>의 '각주고'에서 중국의 주세 징수 제도를 나열하면서 "우리나라는 비록 동쪽 변경에 처하여 있으나 삼한 이래로 군주가 술과 초를 팔아서 이익을 취한 예가 없다"고 하면서, 중국인들은 주세를 거두면서 "오히려 중국이라고 자존하니 또한 수치스럽지도 않단 말인가?"라고 질타했다. 다산은 술이나 식초 같은 백성들이 먹는 음식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다산은 <목민심서> 진황 6조에서 "곡식을 소모하는 데는 술과 단술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술을 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흉년에 술을 금하는 것은 지금 상례가 되었다. 그러나 아전이나 군교들이 이를 빙자해서 소민(小民)들을 침탈하매, 술은 금하지 못하고 백성만 더욱 견디지 못한다. 또 막걸리(濁酒)는 요기가 되므로, 길 가는 자에게 도움이 되니 반드시 엄금할 것이 없다. 오직 성안의 소주는 아전과 군교들의 음탕과 주정을 부리는 근거가 되는 것이니, 엄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땅히 소줏고리(酒甑)를 - 속명으로는 고오리(古吾里)라 한다 - 거두어다가 누고(樓庫)에 저장하고 아울러 도기점(陶器店)에 타일러서 소줏고리를 새로 만들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만일 비밀히 술을 빚는 자는 모두 벌금을 징수하여 진자(賑資)로 보충한다. 성 밖의 창촌(倉村)과 시촌(市村)만은 모두 성안의 예를 따르면 도움이 있을 것이다. 서로(西路)와 동래(東萊) 연읍(沿邑)에서 모두 구리고리(銅甑)- 술이 배(倍)나 나온다-를 쓰는 것은 더욱 금하기 쉽다."
증류기를 한자로는 주증(酒甑)이라고 했고, 소리말로는 고오리(古吾里)라고 했다는 기록이나, 부산 동래 지방에서는 술을 두 배씩 뽑아내는 구리로 된 고오리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이제와 다시 보니 새롭다.
세상은 돌고 돈다. 돌다가 뒤집어지기도 한다. 다산의 시대에는 곡물을 어떻게 하면 아낄까 고민했지만, 지금 세상은 곡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세상이 되었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밝혀둔 말을 뒤집어서 "곡식을 소모하는 데는 술과 단술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술을 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 다산이 터를 잡은 다산의 묘소. ⓒ 막걸리학교
다산은 앞서 둘째 아들 학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격물(格物)에 대해서 말한다.
"주자(朱子)의 격물 공부도 이와 같은 것이다. 오늘 한 가지 사물에 대해 끝까지 궁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에 대하여 끝까지 궁구한다는 것도 이와 같이 착수하는 것이다. 격(格)이라는 것은 끝까지 연구하여 끝까지 도달한다는 뜻이니, 끝까지 연구해서 끝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
나는 다산이 학유에게 닭 기르는 법을 권유하는 글을, 외람되게도 닭을 술로 삼아 이렇게 고쳐 읽어본다.
"네가 술[닭]을 기른다는 말을 들었는데, 술[닭]을 기르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중에도 품위 있고 저속하며 깨끗하고 더러운 등의 차이가 있다. 진실로 양조서[농서]를 잘 읽어서 그 좋은 방법을 선택하여 시험해 보되, 색깔과 종류로 구별해 보기도 하고, 누룩[홰]을 다르게도 만들어 양조[飼養] 관리를 특별히 해서 남의 집 술[닭]보다 더 맛있고[살찌고] 더 향기롭게[번식하게] 하며, 또 간혹 시를 지어서 술[닭]의 정경을 읊어 그 일로써 그 일을 풀어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독서한 사람이 양조[양계]하는 법이다.
만약 이익만 보고 의리를 알지 못하며 기를 줄만 알고 취미는 모르는 채 부지런히 힘쓰고 골몰하면서 이웃의 술[채소]을 가꾸는 사람들과 아침저녁으로 다투기나 한다면, 이는 바로 서너 집 모여 사는 시골의 졸렬한 사람이나 하는 양조법[양계법]이다. 너는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 이미 양조[양계]를 하고 있다니 아무쪼록 백가(百家)의 서적에서 양조[양계]에 관한 이론을 뽑아 주경[鷄經]을 만들어서 육우의 『다경(茶經)』과 유혜풍의 『연경(煙經)』과 같이 한다면, 이 또한 하나의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세속적인 일에서 맑은 운치[?致]를 간직하는 것은, 항상 이런 방법으로 예를 삼도록 하여라."
[퍼온 글] / 출처; 오마이뉴스 / 허시명(시민기자) / 2019.11.14. 09:30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france) / Bella with White Collar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