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패션 아이콘이며 작가인 프랑수아즈 아르디가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아들이며 뮤지션인 토머스 듀트롱은 전날 소셜미디어에 "어머님이 떠났다"고 적은 글을 올렸다고 영국 BBC가 12일 전했다.
사망 원인은 공표되지 않았는데 아르디는 2004년 림프암을 진단받은 사실을 털어놓은 이래 투병을 이어왔다. 극심한 통증에 "내 삶을 끝내는 선택을 할 기회를 갖고 싶다"며 조력 자살을 희망해 여론의 동정을 산 일이 있다. 2015년에는 낙상을 당한 뒤 몇 주나 의학적으로 유도된 혼수상태(코마)에 있었고, 2021년에는 귀에 암세포가 자라 삶의 "막바지에 가까워진" 느낌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라치다 다티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소셜미디어에 그녀의 최고 히트곡 제목을 끌어와 "어떻게 그녀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나? 영원한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감수성과 멜로디로 프랑스 전 국민의 마음을 파고든 가요 레전드였다"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아르디는 1962년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믹 재거와 밥 딜런 같은 이들에게 영감을 제공한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멜랑코리 발라드로 이름을 알렸고, 영국 음악에 대한 반향으로 프랑스의 예-예(Yé-yé) 팝 운동을 상징했다.
가장 유명한 그녀 음악으로는 'Tous les garçons et les filles'(모든 소녀들과 소년들), 국내 광고 등에 사용돼 사랑받은 'Comment te dire adieu'(어떻게 안녕이라고 말할까), 'Mon amie la rose'(내 친구와 장미) 등이다. 영국에서 가장 히트한 노래는 'Dans le monde entier)의 영어 버전 'All Over The World'로 1965년 6월 차트에 16위까지 올랐다.
아르디는 1944년 나치 치하의 파리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당시 많은 소녀들처럼 라디오 룩셈부르크에서 흘러나오는 엘비스 프레슬리, 클리프 리처드, 다른 미국과 영국 스타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 열일곱 살 때 전속 레코드 계약을 맺었다. 1962년 단순하고도 애잔한 선율의 노래 'Tous les garçons et les filles'로 이름을 처음 알렸는데 모든 소년들과 소녀들이 손에 손 잡고 걸어가자는 내용이었다. 나오자마자 프랑스에서 히트했고, 영국에서도 금세 차트에 올랐다.
그녀는 스타일로도 패션 디자이너들을 사로잡았다. 이브 생 로랑과 파코 라반 같은 디자이너들의 모델로 기용됐다. 라반은 특히 그녀를 위해 금 플레이트로 만든 미니 드레스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록그룹 롤링 스톤스의 리더 믹 재거는 한때 그녀를 "이상적인 여성"이라고 칭한 반면, 동료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은 여러 통의 연애편지를 그녀에게 부치기도 했다. 딜런은 1964년 앨범 '어나더 사이드 오브 밥 딜런' 뒷면에 그녀를 소재로 한 시를 실었다.
고인의 공연 가운데 가장 사람들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1968년 세르주 갱스부르가 원래 영어로 붙인 가사를 프랑스어로 옮겨 부른 'Comment te dire adieu'였다. 이 노래는 그 뒤 여러 차례 다른 가수들이 따라 불렀다.
그녀는 블러와 이기 팝을 비롯한 많은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했다. 아르디는 나중에 영화배우도 겸해 장 뤽 고다르, 로저 바딤, 존 프랑켄하이머 같은 감독들의 영화에 출연했다. 또 소설과 논픽션 작가로도 활약해 다재다능한 면모를 자랑했다. 또 점성술에 대한 책도 썼는데 1970년대 사랑을 구하러 점성술에 기대기도 했다.
고인은 가수 자크 듀트롱과 결혼해 아들 토마스를 뒀다. 1980년대 말 이혼했는데 자주 전 남편이 생애 유일한 사랑이었다고 고백하곤 했다.
50년 넘는 커리어에 30장 가까운 앨범을 내놓았는데 2018년 발표한 'Personne D'Autre'(Nobody Else)가 마지막 앨범이었다. 음악 잡지 롤링 스톤은 지난해 역대 가장 위대한 가수 200인 가운데 그녀를 162위라고 발표했다.
Comment te dire adieu | Françoise Hardy | Pomplamoose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