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미니스커트 단속 중인 경찰들과 젊은 여성들의 모습. 경찰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을 붙잡아 자로 스커트 길이를 재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한국전쟁 이후 경제개발을 시작하는 시기인 1960년대초부터 유신정권 시기인 1970년대까지의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상과 초중고 및 대학 등의 학교생활을 촬영한 사진자료들이다.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쉽게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사진자료들을 통해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우리 부모세대 및 전후 세대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눈으로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에 촬영한 여러가지의 사진자료들을 올려 본다.
국민학교 입학식 당시 선배들의 축하공연(1960년대)
여름방학되면 연례 행사처럼 과제물로 곤충채집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1960년대)
1960년대 국민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봄소풍 가는 모습. 당시 예쁜 교복을 입은 학교들은 주로 사립국민학교거나 아니면 공립 중에도 잘 사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들이 대부분이다. 일반 보통 학교는 사복을 입었었다.
당시의 아이들의 꿈의 광장이었던 만화방(만화가게). 여기에서 당시에 희귀했던 T.V(진공관식)시청도 무료로 많이 했었다. 당시에는 동네에는 텔레비젼이 있는 가구가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다.(1960년대)
만화가게(만화방)에서 1원에 1권씩 빌려 그 자리에서 보곤 했다. 주인 몰래 의자 뒤에 있는 만화를 보다가 걸린 적도 많았고, 만화가게에서 뻔데기나 과자류 및 다슬기, 달고나 등 먹거리를 파는 곳도 있었다. (1960년대)
국민학교 시험 시 커닝 방지 위해 가방을 올려 놓고 시험보는 모습(1970년대)
동네를 방문한 말타기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아이들(1960년대). 옛날엔 리어커에 말타기 기구를 달아 5분 타는데 1-2원씩 요금을 받았다.
모기나 파리잡이 위생소독방제차량이 자기 동네를 지나가면 그게 좋아서 아이들은 열심히 쫓아갔다.(1970년대)
여학생들은 주로 줄넘기놀이를 했었다.(1960년대)
겨울철 논두렁이 얼자 썰매타는 당시 아이들(1960년대)
소풍 나온 남자 중학생들. 당시에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도시락(벤또)만 싸가지고 와 그들끼리 점심 먹었고, 좀 사는 아이들은 소풍용 배낭에 콜라나 사이다 등의 당시에 인기 있는 음료수와 과자류 및 김밥을 싸가지고 와 먹곤 했다. (1970년초반)
여름 수박밭에서 주인 없는 틈을 타 수박서리하고 있는 아이들(1970년대). 당시에는 이런 행동은 죄가 안 되었고 주인에게 걸리면 그냥 혼만 났었는데 그 후에는 이런 행위도 절도죄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뻔데기 사먹는 아이들(1970년대)
요지경을 돈을 내고 보고 있는 아이들(1060년대). 요지경에는 우리나라 관광지 칼라사진들을 환등기식으로 볼려가며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동네에 텔레비젼 등 볼만한 오락거리가 별로 없어 이러한 것들이 아이들 사이에 꽤 인기가 있었다.
추운 겨울철에 교실에 있는 조개탄난로가 가장 인기 있었다.(1970년대)
아이스케끼....삼강 아이스크림 판매(1960년대)
불우이웃돕기 쌀모으기행사 중인 국민학교(1960년대). 당시에는 쌀이 부족하여 아이들이 집에서 봉지에 쌀 한줌씩 학교에 제출하곤 했다.
장학사가 오는 날 직전에 국민학교 대청소 중인 국민학생들(1960년대)
머리 높이 줄넘기(1960년대). 이것도 잘 넘었다.
국민학교 교실에 있는 조개탄용 난로와 조개탄(1960년대)
당시 고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고고춤을 추고 있는 남녀학생들....
당시 국민학교 화장실(1970년대). 당시 화장실 청소가 제일 힘들었다.
당시 소풍 나온 고교생들이 오락회를 갖고 있는 모습으로 열심히 고고춤을 추고 있다.(1970년대)
유신정권 당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총검술, 제식훈련 및 사격, 구급훈련 등 교련훈련을 주당 2시간 이상 받았다(1970년대)
1970년대 포항에서 새마을운동사업의 일환으로 여름방학 중 학교 주변 동네 수로를 교련복 차림으로 정비중인 여고생들의 모습이다.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중고생들을 동원하여 여름방학 기간을 통해 약 2-3일 정도 학교별, 학년별로 환경개선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참고로 교련과목은 고1부터 대학2까지 실시되었으며, 해당 교과목은 1980년대 중반 노태우 정권이후에 사라졌다. 군 출신 교련교사들은 체육교사로 과목변경이 되었고....
추석귀성열차 예매하려고 며칠 전부터 서울역 앞에서 노숙하고 있는 시민들(1960년대)
바둑대국 공개방송(1960년대). 당시에는 TV 등이 별로 없어 공개된 장소에서 직접 중계했었다.
길거리 만화방(1960년대). 당시에 돈이 없어 만화방(만화가게)에 못 가는 아이들은 길거리 뻔데기나 또뽑기 장수들이 먹거리를사면 만화를 1권씩 공짜로 보게 하였다.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무단횡단하면 위반한 시민들을 보행위반이라는 울타리에 가둬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과태료를 부과하였다.(1970년대)
. 유신정권 당시에는 오후 5시 되면 국기하강식 때 길 위에 안 서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하면 곧바로 파출소로 잡혀 갔었다. 죄목은 경범죄....(1970년대)
구로공단 여공들의 추석 귀향버스를 타고 출발하는 장면(1970년대)
겨울 가뭄 당시 물 길러온 동네 아낙들(1960년대)
고고춤 추고 있는 당시 중고고생들...당시에는 고고츰이 단연 대세였지..(1970년대)
단속 중인 경찰에 딱 걸린 미니스커트 아가씨들(1970년대)
북치며 약 팔러 나온 동네 약장수들(1960년대)
선거 유세장에 나온 동네사람들(1960년대). 여기에서 후보측에서 제공한 막걸리를 마시며, 선물로 고무신이나 밀가루, 비누 등을 받아 챙겼었다.
서울 시내를 달리고 있는 전차(트램)와 군용 집차(1960년대)
시골 국민학교 아침 운동장 조회시간(1960년대)
서커스나 무료공연(1960년대). 주로 약장수들이 손님 끌기 위해 이런 공연을 주로 했었다.
서울시내를 주행 중인 전차(트램)와 미니버스들(1960년대)
싸구려 신발을 팔고 있는 신발장수와 여고생들(1960년대)
통기타 가수 김인순(여고졸업반을 불러 희트했음. 안타깝게도 1990년 중반 인천 야간업소 출연하려고 빗길에 승용차로 가다가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1970년대)
비오는 날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편지배달 중인 당시 우체부(1960년대)
어린이대공원에서 미끄럼틀 타고 있는 아이들(1970년대)
한여름 얼음공장에서 얼음을 받아 배달 중인 배달의 기수들(1960년대)
추석귀성열차 예매 위해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 중인 사람들(1960년대)
추석 귀성을 위해 서울역 앞을 채운 많은 사람들(1960년대)
야외 미팅 중인 당시 남녀고교생들(1970년대)
추석 귀성열차 타고 있는 사람들(1960년대). 열차는 증기기관차이다.
어린이날 행사 중인 경찰 사이카(1960년대)
결혼식 전날 신랑측 함지기 모습(1970년대)
전국 고교 주산부기대회에 참가 중인 여고생들(1970년대)
아침 조회 시간에 교련복 차림으로 참여하다가 태도불량으로 적발되어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 열심히(?) 벌 받고 있는 고교생들.(1970년대)
교련복 입고 플라스틱 M1소총(플라스틱 총치고는 되게 무거웠다.)을 들고 제식훈련 중인 고교생들(1970년대)
구급낭을 메고 분열을 하고 있는 여고생들(1970년대)
현지 군 장교가 학교에 시찰 나오면 교련복을 입은 고교생들은 군부대처럼 정렬하여 열병행사를 한다. 왼쪽이 고교 대대장(요즘 말하면 학생회장)이고 앞에 있는 군장교는 시찰나온 군 영관급 장교이다...뒤에는 교련교관인 장교와 학교장....
1970년초기 교련룬련을 받고 있는 남자 고교생들. 진지하게 군장교의 작전사항을 시달받고 있다.
해양훈련을 나온 교련복 차림의 여고생들. 1970-80년대 중반까지는 학교행사에는 항상 교련복 차림으로 참여하곤 했다.
대대열병 중인 고교생들(1970년대) 각반에 혁대까지 다 찬 채로 열병한다.
1970년대 고교 교련 야외텐트. 군대처럼 A형텐트를 치고 2박 3일간 야외 훈련을 하곤 했다.
교련복 차림으로 농촌봉사활동 중인 고교생들(1970년대)
수업 중인 남녀공학 중학생들(1970년대 초반). 까까머리의 남학생과 단발머리의 여학생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지금은 사라진 타자기 공부를 하고 있는 상업계 여고생들. 당시 상업계 여학교에서는 주산과 부기 외 타자기도 다룰 줄 알아야 일반 은행에 취직이 가능했다.(1970년대)
풍금으로 음악 수업 중학 여학생들(1960년대)
1960년대 경주 수학여행 중 불국사에 앉아 사진촬영 중인 안동여고 학생들.
나팔바지풍의 교복을 입고 야외촬영한 여고생들 모습. 1970년 당시에는 나팔바지가 유행했었다. 그 당시에는 교복 뿐만 아니라 교련복도 나팔바지로 입고 다녔었다.
당시 초중고교에서는 점심시간 시작 직전 운동장에 모여 국민체조와 마스게임을 하곤 했었다.(1960년대)
말타기(말뚝밖기)놀이 중인 국민학생들.(1960년대)
야외스케치 나온 아이들(1960년대). 접이식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이젤을 가지고 나와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산기슭에 위치한 당시 달동네의 겨울(1960년대)
서울 시내버스 차장(안내양)과 손님들(1970년대)
서울역 앞 광장에서 추석귀성열차표 예매하려는 시민들(1970년대)
추석 귀성열차표 예매하려고 서울역 광장에서 밤 새우고 있는 시민들(1970년대)
서울시내가 이렇게 아이들이 축구할 정도로 한산했던 적도 있었음(1960년대)
서울 독립문 거리(1971년) 삼륜차들이 많이 지나가고 있다.
삼일고가도로(1970년대). 당시에는 경제발전의 심볼로서 다른 나라의 모델이 되었지만 지금은 철거되어 청계천공원으로 복원 되었다.
서울시내 모습(1960년대), 당시에는 반공방첩이란 구호가 어디에 가나 다 붙여 있었고, 심지어 과자나 빵 봉지에도 씌어져 있었다. '반공=공산주의 반대', '방첩=간첩을 막자'는 의미로 지난 1971년에는 북한 적십자사대표들이 남북 적십자회담 차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묶을 때 간식으로 삼립식품의 빵이 나왔는데 그걸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빵 봉지에도 '방공,방첩'이란 구호가 씌어져 있는데 그걸 잘 모르고 먹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두발단속 중인 경찰과 일반 회사원(1970년대). 당시에는 모든 남자들은 어른이나 어린 아이 말 하 ㄹ것 없이 머리만 길어도 현장에서 적발되어 소위 닭장차(창살이 있는 경찰트럭)에 강제로 실려 경찰서로 가 단체로 가위나 바리깡으로 삭발 당했었다.
경문학원 앞 거리를 걷고 있는 고등학생들(1970년대)
삼륜차(1970년대). 주로 수송용이나 연탄 배달용으로 이용되었다.
1970년 초반의 가수 김정호의 모습. 가수 김정호(1952년 3월 27일 ~ 1985년 11월 29일)는 전남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가수 겸 송라이터로 활동하였으며, 솔로 가수로 데뷔하기 이전에 '사월과 오월'의 3기 멤버로 활약했고, '어니언스(양파들)'의 많은 노래를 작곡, 작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스타덤에 오른 것은 1973년 솔로로 데뷔하면서 〈이름 모를 소녀〉가 히트하면서부터이다. 1985년 11월 29일 33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