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정 | 시간 | 요금 |
1일차 9월6일 (목) | OZ122 08:15 인천공항→나고야중부공항 10:05 | 1시간 50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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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중부공항→나고야역(名古屋駅)/전철 | 1시간 | ¥870 | |
나고야역→다카야마(高山)/JR선 | 2시간 30분 | ¥5,000 | |
다카야마→히라유(平湯)/버스 | 1시간 | 왕복 ¥5,040 | |
히라유→가미코치(上高地, 1,505m)/버스 | 30분 | ||
묘진이케(明神池1,550m) 약55분 3km 도쿠사와(德澤 1,562m) 약80분 4km 요코오산장(橫尾 1,620m) 약60분4km 이치노보(一の保1,705m) 약60분2.6km 야리사와 롯지(槍澤1,850m) 약45분1.5km | 도쿠사와에서 왕복 4Km 알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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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7일 (금) | 요코오산장~도쿠사와~묘진이케~가미코치 | 하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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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코치→히라유 | 30분 | 왕복권이용 | |
히라유→다카야마 | 1시간 | ||
다카야마→나고야역/JR선 | 2시간 30분 | ¥5,000 | |
나고야역→도요코인호텔(마루노우치) | 택시비(?) | 호텔2일 (6,600×2)+1,500=¥14,700 | |
3일차 8일 (토) | 나고야역 |
| 호텔셔틀이용 |
시티투어 탑승(버스터미널 11번탑승구) 나고야성→도쿠가와원→나고야시시정자료관→오아시스21→엔도지상점가→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 | 하루종일 | ¥500+입장료@ | |
4일차 9일 (일) | 나고야중부공항 공연관람, 쇼핑, 온천 | 공항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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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Z123 18:50 나고야공항 →인천도착 2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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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에 걸친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잘 마친 나 자신에게 상을 어떻게 줄까 생각하다 일본 북알프스 산행을 계획했다. 1년 전의 일이다. 계획을 미리 세우면 백두대간을 잘 마칠 것 같았다.
후지산을 두 번 다녀온 경험이 용기를 갖게 하였다. 후지산의 높이는 3,776m로서 정상 부근에 다다랐을 즈음에 산소부족과 추위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북알프스는 그보다 높진 않지만 해발 3,000m 고지의 능선이 꽤 길게 이어진다. 게다가 창을 의미하는 야리가타케부터 시작되는 너덜길은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기에 준비할 때부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블로거들의 페이지를 찾아 사전 정보를 입수했다. 인터넷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4박 5일의 일정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상생활에서 4박 5일을 뺀다는 것은 일에 지장을 초래하기에 가능하면 3박 4일의 일정으로 다녀오기로 정하고 출발하는 날 일찍 출발하여 돌아오는 날은 현지에서 늦은 출발 항공권을 구입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모든 것은 인터넷으로 가능했다.
하여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하기로 하고 출발 4개월 전에 특가로 항공권을 구입했다. 왕복 273,000원. 이정도면 시작은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아시아나 기내 면세 화장품을 구입하고 돌아오는 항공편으로 받을 수 있도록 신청을 했다.
내가 혼자 북알프스를 다녀오겠다고 하자 백두대간을 함께 했던 산우들이 함께 가고 싶다며 항공권을 구입했다. 그렇게 꾸려진 5명이 출발 날이 다가옴에 따라 한 명씩 개인적인 이유로 항공권을 취소하고 결국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사실 혼자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홀로 가는 길이라면 사진을 찍어 줄 사람이 없을뿐더러 심심할 것 같은 느낌에 함께할 사람이 누구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북알프스 산행을 계획하고 트레이닝 겸 종주산행을 몇 번 하였다. 거기서 우연히 알게 된, 산행으로 치자면 대 선배겪인 산우를 알게 되었는데 북알프스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선뜻 함께 가겠다고 한다.
다음날 항공권을 구입하는데 내가 구입한 항공권의 두 배에 달하는 가격에 예매를 했다. 나 혼자 간다면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가면 될 테지만 동행이 있다고 생각하니 계획을 착실히 해야 한다는 부담이 들었다. 모든 계획은 일본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내가 세웠다.
출발 한 달 전부터 가지고 갈 물품을 거실 한쪽에 모아 두었다. 혹시 빠트리는 것이 있을까 걱정되어 따로 리스트를 만들기도 하였다. 배낭은 가능하면 무게를 최소화하려고 식품도 가벼운 것으로 준비를 했다. 비상식량으로 전투식량을 준비하고 과일을 건조기에 말려 무게를 줄였다. 행동식으로 최소한의 양식을 준비하고 가능하면 현지에서 매식을 하려고 계획했다. 나는 일본음식이 입에 맞아서 산장에서 일본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기쁨도 컸다.
출발 한 달 전부터 일본의 기상청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태풍만 오지 말기를 간절히 원했다. 일본은 기술이 우리보다 앞서있어 산 정상의 기상도 1주일 전부터 알 수 있다. 전체 거리 42Km를 환종주 하는 코스를 지역별로 날씨 검색을 할 수 있어 사이트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출발 1주일 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산에 있을 동안에는 맑은 날의 연속이었다. 후지산에 두 번째 오르던 때가 떠올랐다. 태풍이 지나간 뒤이기도 하고 궂은 날씨였지만 아들과 둘이 오르던 길을 따라 밤에는 달빛이 낮에는 햇살이 내리쬐어주던 그 길은 행운의 여정이었다.
이번에도 왠지 그날처럼 행운이 함께 할 것 같은 기대감이 가슴 가득했다.
출발 이틀 전에 일본 간사이 지역이 태풍 21호의 직격탄을 맞아 몸살을 앓았다. 항공이 결항되고 간사이공항은 침수피해로 고립되었다. 간사이 지역에 살고 있는 지인들의 소식을 들으니 지붕이 날아가고 가로수가 뽑힌 장면을 사진으로 보내왔는데 무서울 정도로 피해가 컸다.
내가 나고야 공항을 통해서 북알프스로 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교토에 살고 있는 지인 한 명이 ‘보고 싶으니 산행이 끝나면 나고야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을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다음 기회에 만나자고 거절 아닌 거절을 해야 했는데 간사이 지역이 그렇게 되고 보니 약속을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동행하는 산우와 사전 교섭을 통하여 일정계획과 준비물을 정하였다. 나는 숙영을 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침낭을 챙겼다. 이것 또한 후지산에서 체험한 준비물이다. 텐트는 있으면 좋겠지만 무게 때문에 챙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산우께 이야기 했건만, 새벽 전철에서 만나 짐을 보고 기함을 하였다. 배낭 크기만 한 보조가방을 본 순간 앞으로 3박 4일을 어떻게 지내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나는 내 짐만 잘 가져가면 되니 더 이상 제의할 것도 아니어서 체념을 하였다. 그 뒤에 먹구름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는 복선이 보였다.
아침시간에 항공사 카운터는 언제나 만원이다. 좌석은 시간을 절약하려고 모바일 티켓으로 사전에 예약을 하였다. 아시아나 카운터 앞에 비치된 저울에 배낭과 보조가방을 올려보니 10Kg을 표시한다. 배낭은 무인 수하물 위탁(셀프 백드롭)으로 부치고 나니 시간이 여유로웠다. 출국 수속은 법무부를 통과하지 않고 자동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하여 39번 게이트로 미리 가서 대기하였다. 우리를 태우려고 기다리고 있는 OZ122 비행기가 창밖에 다소곳이 차렷 자세로 있다. 요 며칠 아시아나 122 항공이 계속 딜레이가 되어 불안하였는데 다행히 우리는 제시간에 출발을 한다. 그러나 게이트 부근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일본 홋카이도에 진도 7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태풍의 영향이겠거니 하면서 우리가 가는 나고야가 아니기에 정상 비행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나에게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한 이기심의 발로이다.
이번 북알프스 여정은 산속에서 있을 3박 4일을 예상하기에 로밍도 하지 않고, 와이파이 도시락을 대여할까도 생각했지만 무게를 줄이는 차원에서 전화에 신경을 끄기로 했다. 일본이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와이파이 가능지역을 확산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와이파이 지역에서 페이스북이나 카톡을 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공동경비로 일단 3만 엔을 갹출했다. 돈이 모자라면 더 걷으면 되니 걱정할 건 없었다. 출발 30분 전에 보딩이 시작되었다. 새벽에 나오느라 설친 잠을 채워야 했다. 게다가 종일 산을 걸으려면 휴식이 필요했다. 휴대폰을 끄고 승무원에게 안대를 하나 달라고 부탁을 한 다음 식사가 나오면 깨워달라고 옆자리에 앉은 산우께 부탁을 하고 눈을 붙였다. 잠이 들락 말락 하는 사이 기내식이 나왔다. 약간의 과일 샐러드와 모닝빵, 후라이드 치킨에 약간의 채소가 덮인 볶음밥이 참 맛있다. 1시간 50분의 비행시간은 삽시간에 흘렀다.
나고야 중부공항에 내리자 입국 수속을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입국 수속 서류를 작성할 때 일본 내 숙박 장소를 기입해야 하는데 다른 때 같으면 일본 친구의 주소를 썼지만 이번에는 머물지도 않을 가미코치 산장의 주소를 기입했다. 공항에는 자원봉사를 하는 연세가 있는 어른들이 많이 눈에 띈다. 내 입국서류를 받아 들고는 가미코치의 주소를 확인하고 “산행 좋겠네요.”한다. 나는 맞장구로 “갈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어요.”라고 일본말로 대답했으나 그 말이 화근이 될 줄이야...
일본 내 법무부 입국 데스크를 통과하고 짐을 찾은 다음 안내데스크로 갔다. 일단 내가 계획한 것보다 빠른 루트가 있다면 조언을 구할 것이며 현지 지리를 모르기에 가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자하였다. 입국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눈앞에 안내데스크가 보였다. 나는 일초의 주저도 없이 쏜살같이 다가가 나의 일정을 고하였다. 안내를 하는 안내원의 명찰에는 ‘수습생’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다. 왠지 능숙하지 않을 것 같아 신뢰감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으나 성심을 다하여 나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일단 왼쪽으로 갈 것, 그리고 오른쪽으로 꺽어진다음 메이테츠선(名鉄線) 표 파는 곳에서 나고야까지 가는 표를 살 것. 나는 자동판매기로 표를 사려고 판매기 앞으로 가서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함께한 산우는 나보다 세상을 더 산 경험으로 창구에서 표를 사라고 권한다. 나고야역까지 가는 편은 좌석을 지정하지 않고 자유석으로 780엔짜리 표를 샀다. 이유는 자유석이 싸기 때문에. 지정석이 얼마인지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나고야가 처음이다. 옆에 있는 산우는 일본이 처음이란다. 산우는 철도청에 몸을 담고 있어서 일본의 철도에 대한 흥미도 매우 있어 보였다. 나는 도쿄나 오사카, 또는 그 외 지역에서 경험했던 우리나라와 다른 일본의 철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를 들면 한 라인으로 기차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가는 철로라든지, 기차가 중간에 허리를 자르고 나누어서 간다든지, 외지로 가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게 아니라 내리는 사람이 버튼을 누르고 문을 연다든지..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 진귀했었다. 시계를 보니 바늘이 1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고야 중부공항에서 나고야역까지는 약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기차 안내방송에서는 나고야역까지 걸리는 시간까지 안내를 해 주고 있다. 나는 내리는 장소를 지나치지 않으려고 졸음을 참아가며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나고야역에 내려서는 다카야마(高山)까지 가는 JR선을 타거나 아니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것이 장거리이다. 2시간 30분 거리로, 갈 때는 전철을 이용하고 올 때는 버스를 타려고 계획했다. 나고야 역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고야역 히로코지로구(名古屋駅 広小路口)로 들어가 표를 사려고 하니 매표창구는 보이지 않고 자동판매기만 있다. 다카야마역을 찾아보는데 그 많은 역 이름 중에 다카야마가 보이지 않아 지나는 사람에게 방법을 물어보니 본인도 모르겠다며 기계 옆에 있는 호출 버튼을 눌러보란다. 버튼을 누르니 바로 옆에 조그만 창구가 열리고 직원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나는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윽고 직원이 밖으로 나와 표를 두 장 끊어 준다. 한 사람 표가 두 장이다. 궁금증이 생겼다. 자세히 보니 하나는 다카야마까지 가는 표(¥3,350)고 또 하나는 자유석 특급권(¥2,160)이다.
두 장을 사야 기차를 탈 수 있단다. 여기에서도 자유석 티켓을 구매했다. 자유석은 1량과 9량만 이용 가능하다. 출발 시각을 보니 12시 40분 출발이다. 40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그동안 산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야 했다. 슈퍼가 눈에 띄면 좋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서 일단 밖으로 나온 다음 교통안내를 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백화점에 들어가면 있지 않겠냐고 막연하게 대답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버너에 사용할 가스이다. 바로 전날 산우께서는 이런 거를 사야 한다며 사진을 보내왔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부탄가스였다. 산에서 부탄가스를 사용한다는 것도 생소한 데다 어떻게 구입할지 몰라 사진을 그대로 일본 친구에게 보여주며 구입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더니 교토 친구는 가스를 사려면 곤로(부르스타)도 일본제를 구입해야 안전하다며 신신당부를 한다. 그 이름 또한 생소하다. 우리는 부탄가스라고 하는 그것을 일본어로는 카셋트본베(カセットボンベ)라고 한단다.
직업정신은 나도 모르게 내재하고 있다가 툭툭 불거져 나온다. 이를테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대로 통역을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산에서는 조그만 돔 모양의 이소가스(イソガス)를 쓰는 게 일반적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 못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 전문가의 의견에 동조하기로 한다.
백화점으로 들어갔더니 입구에 안내데스크가 있다. 카셋트본베를 사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안내원은 상냥한 미소로 옆에 있는 직원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전화를 끊고는 같은 건물 6층으로 올라가 뒤편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생활물품 파는 데가 있을 것이라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을 잇는다.
나는 그네들의 직업정신과 서비스 정신에 한 수 배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가 뒤편으로 가니 상점 입구에 바로 부탄가스가 세 개 묶음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2개만 필요했으나 3개를 다 사야 했다. 돈이 아까운 것보다도 무게에 대한 저항감이 더 컸다.
필요한 것을 손에 넣고 기차역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되자 기차가 오고 기관사가 업무 교대를 한다. 우리는 자유석 1량 맨 앞 기관사의 뒷모습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전철 내에서는 1시간의 무료 와이파이가 가능했다.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일본에 와 있다는 것을 페친에게 알렸다. 카톡으로 가족에게 안부도 전하고..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나는 망설이다 받지 않았다. 대신 아이에게 톡으로 전해달라고 전했다. 아마 내가 일본을 간다 하니 홋카이도에서 발생한 지진 때문에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한 것 같다. 나는 나고야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고야라고 말한들 엄마는 홋카이도와 나고야를 구분할 수 없었을 테고 모두 일본으로 퉁치고 나면 나는 걱정거리가 된 딸내미에 지나지 않는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 쓴소리 한마디 들으면 그만이다. 나는 내 앞에 펼쳐진 북알프스를 머리에 그리며 앞으로 시간을 쫓고 있을 따름이다.
날씨는 쾌청했다. 다카야마로 향하고 있는 길은 시골로 이미 접어들었고 철로 옆의 풍광은 우리나라의 강원도 오지를 방불케 한다. 집 앞에 있는 논에 있는 벼가 누렇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어느 논은 이미 벼를 벤 모습도 보인다. 마을의 공동묘지가 아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화에서 본 듯한 모습이다. 산우는 모든 게 신기해 보이는가 보다. 나도 일본에 처음 갈 때가 생각났다. 2000년 초반에는 일본 입국비자를 받아야 해서 일본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았던 거 하며, 일본의 풍습이 우리와 달라 감탄했던 거 하며, 아무래도 우리보다 선진국이다 보니 본받을 점이 많은 것은 지금까지도 공부해야 하는 과제로 남아있다. 나는 가끔 일본의 공기를 맡아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일본에 가면 그 환경이 왠지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 같아 안정감을 찾게 한다.
기차는 연착을 하여 2시간 50분이나 걸려 다카야마에 도착했다. 늦어지는 중에도 차내 안내방송은 차량이 늦어지는 시간을 안내한다.
북알프스의 들머리인 가미코치까지 가는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다. 오후 3시 30분이 되었지만 아직 들머리로 가려면 버스를 두 번 더 타야 한다.
다카야마에서 히라유 온천까지 간 다음 버스를 갈아타고 가미코치까지 가는 버스표를 한 번에 구입하는데 왕복권이 가능하다. 오는 편은 일주일 내에 아무 때나 올 수 있다고 한다. 수고를 덜기 위해 왕복권을 5,040엔, 두 장을 10,080엔에 구매했다.
히라유(平湯)까지 버스를 타고 1시간 간 다음 버스를 갈아타고 가미코치(上高地)까지 30분을 더 가야 한다. 히라유 온천은 이름에도 있듯이 온천이 유명한 곳이다. 산행을 마치고 하산 길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히라유에서 온천을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히라유에서 내려 가미코치까지 가려고 버스를 갈아탔는데 손님이 우리 둘 뿐이다. 시각은 어느새 오후 5시를 넘어서고 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12시간 동안 이동 중이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북알프스의 들머리 가미코치에 도착했다 오후 5시 30분이다. 엊그제 태풍 21호의 영향 때문인지 산행객이 눈에 띄지 않는다.
북알프스는 히다 산맥(飛騨山脈)으로 도야마현, 니가타현, 기후현, 나가노현에 걸쳐 이어지는 산맥이다. 통칭은 북알프스로 기소 산맥(木曽山脈, 중앙알프스), 아카이시 산맥(赤石山脈, 남알프스)을 합하여 일본 알프스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 알프스라는 명칭은 영국 광산 기술자 윌리엄 가우랜드에 의해 불리기 시작했다.
산맥의 주요 부분은 중부 산악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산맥의 최고봉은 해발 3,190m의 오쿠호다카다케로 후지산과 북악에 이어 일본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다.
-출처: Ja.wikipedia-
해발 1,505m의 높이답게 가미코치의 분위기는 스산하고 썰렁하다. 태풍의 여파로 산행객도 없고 모든 상점의 문이 닫혀있어 이곳이 북알프스의 들머리 맞나 할 정도이다. 산우는 짐을 맡기겠다고 하는데 짐을 맡아주는 곳도 이미 문이 잠겨있다. 500엔에 등산보험을 드는 곳도 닫혀있고, 산장도 문이 닫혀있다. 버스 관계자 사무실이 보이자 그곳에 짐을 맡기고 가잔다. 나는 맡길 짐이 없었고, 일본의 정서상 돈을 받고 맡기는 곳이 아니면 절대 남의 짐을 맡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다못해 코인 케비넷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러나 나는 직업의식을 발동하여 통역사가 되어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산우의 배낭 크기만한 보조가방을 들고 산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기 때문이다. 산우의 입장을 최대한 불쌍하게 포장하여 짐을 맡아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였으나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갔다. 백 엔 씩 납세하라는 자율 동전 통이 화장실 입구에 있다. 나는 동전이 없어 그냥 들어갔다.
가미코치는 자연환경이 매우 좋다. 음수대가 있어 빈 통이 있으면 물을 따로 사지 않아도 된다. 나는 빈 통 하나와 보온병 하나를 가져왔으므로 그곳에 물을 채웠다.
들머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인터넷에서 예습을 했던 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평지가 길게 이어진다. 평지라고는 해도 이미 1,500 고지에 올라와 있다. 왼쪽으로 강을 끼고 조금 걸으니 인터넷에서 무수히 봤던 갓바바시(河童橋)가 나타난다. 이정표에는 버스터미널에서 0.4Km의 거리에 위치한다. 5분 정도 걸었다.
갓바바시의 명칭은 일본의 근대 소설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소설로 시작된다. 《갓바(河童)》는 갓바나라에서 벌어지는 한 사람의 정신병 환자의 입을 통해 쓴 가공의 이야기이다. 갓바 나라의 무대는 가미코치에서 야리가타케, 호타카다케에 이르기까지 아즈사 강 주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가 야리가타케 등산을 한 것은 1909년으로 그 당시의 풍경이 소설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1927년 갓파를 발표한 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일본인에게는 문학의 현장 속이라는 측면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가의 죽음과 연관된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 아린 추억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바닥을 보이며 유유히 흐르는 맑은 강물과 다리가 매우 아름답게 조화롭게 보이고 강물소리 또한 청아한 것이 소리와 풍경과 더불어 나무에서 나는 싱그러운 냄새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기회다 닿으면 읽어야 할 책이 하나 둘 늘어난다. 북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시대적으로 분류를 한다면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갓바(河童)》, 이노우에 야스시의 장편소설 《빙벽(氷壁)》, 그리고 사사모토 료헤이의 소설 《봄을 짊어지고(春を背負って)》는 최근 영화화되어 한국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책을 사려고 서점을 몇 군데 들러 보았는데 살 수 없었다.
갓바바시에서 0.2Km 지나면 캠핑장이 있는데 일단 우리는 산에 오르기에 앞서 캠핑장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프로젝트 시작이다.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버너가 고장인 것 같단다. 대비책으로 도치를 사용하여 물을 끓이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던지 옆에 텐트를 치고 있던 서양 여자아이가 자기 버너를 사용하라며 주는 것을 웃으면서 “노땡큐”했다.
컵라면과 오리훈제를 안주삼아 아사히맥주로 건배를 한다. 어느새 어둠이 짖게 내려앉는다. 일본의 북알프스는 경도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보다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저녁이 빨리 찾아온다. 손목시계가 6시 반을 알리고 있는데 하늘은 한밤중이다. 밤 새 걸을 생각으로 든든히 식사를 하고 주섬주섬 짐을 정리한다. 텐트 안의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소리를 죽여 움직인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한국에서 온 사람 두 명뿐이다. 우리는 밤을 새워서라도 최대한 오를 수 있는 데까지 오르기로 합의를 하였다. 내일은 비바람의 영향으로 어찌 될지 모르니 오늘의 움직임을 최대한으로 잡았다. 일본 사람이 우리를 보면 미쳤다 할 거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하건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이다.
내가 북알프스를 간다고 했을 때 지인인 일본 산악인이 지켜야 할 매너나 안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가능하면 산장에는 늦어도 오후 5시 전에는 들어가라고 했다. 일본 사람들은 보통 새벽 4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오후 4시쯤이면 산행을 종료한단다. 안전을 위해 헬멧을 쓰는 게 좋다고 하여 헬멧을 사 두고 짐을 줄이기 위해 챙기지 않았다.
산장에 들어갈 시간이 이미 늦어버려 산장은 문을 닫은 상태이고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한들 들어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시간을 아껴야 했다. 야간산행은 백두대간에서 충분히 훈련을 하였기에 익숙하였고 평탄한 길이 아주 길게 이어져 있어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계속되는 트래킹 길이다. 첫날의 목표는 시간이 어떻게 되든 야리사와(槍澤)까지 가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백두대간 야간산행을 하며 아쉬웠던 것은 경치를 볼 수 없었던 것인데 백두대간의 연장선상에 있다. 소리만이 적막을 깬다. 소리를 밟고 걷는 듯하다. 태풍의 뒤끝이라 강물이 더욱 불어 있을 터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물소리가 산을 삼켜버릴 것처럼 위협적으로 들린다. 왼쪽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크기를 소리로 가늠하며 걷는다. 그 소리는 산행을 마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전후좌우가 암흑이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강을 따라 올랐던 거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간간히 별들이 반짝인다. 어느 순간에는 하늘이 빼꼭했다가 어느 순간에는 구름에 가리었는지 별이 하나도 안 보인다. 별이 안 보이면 왠지 불안하다. 날씨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다.
길은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평지를 걸을 때는 헤드랜턴의 배터리를 아끼려고 하나의 불빛에 의지한 채 걸었다.
묘진이케(明神池)를 지나 가미코치 묘진(上高地明神)에서 사진을 찍었다. 도쿠사와(徳沢)를 3.4Km 앞둔 지점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드문드문 텐트가 보인다. 캠프장이다.
사진 찍은 시각을 보니 저녁 7시 53분이다.
도쿠사와롯지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8시 40분 경이다. 산장의 창문으로 비추는 은은한 노란 불빛은 이방인에게 안식처와 같은 느낌이었으나 우리는 갈 길이 구만리 인데다가 사치를 누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드문드문 텐트가 쳐 있는 것으로 보아 캠핑장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길이 없다. 텐트가 없다거나 산장의 불빛이 없다면 걱정이었겠지만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산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안내판을 발견하였다.
도쿠사와 등산길 안내판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이 도쿠사와인데 도쿠사와가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도쿠사와가 계속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적어도 그 안내판에 요코오(横尾)나 야리가다케(槍ヶ岳) 표식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길’이라고 너무나 확신에 찬 산우의 말을 따라 반신반의하면서 이상한 길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등산장비가 필요합니다.’라는 안내판을 뒤로하고 비탈길을 올랐다. 좁다랗게 이어지는 가파른 오름길은 마치 백두대간 길을 연상케 했다. 그러한 길은 익숙하여서 왠지 정감이 느껴지는 데다가 지금까지 평탄한 길을 걸었다면 이제부터 고지로 오르니 본격적인 산행이라고 생각했다. 아까까지 들리던 물소리는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가파른 산행이 이어진다. 산우의 불빛에 의지하며 걷기에는 길이 위험하여 헤드랜턴을 켰다. 스틱도 꺼냈다. 스틱은 가벼운 걸로 하나만 준비했다.
한참을 오르고 올라도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 가는 길이라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길은 계속 외길이어서 알바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두 시간 여 갔을까 드디어 이정표가 나타났다. 문자를 터득한 후 맞이하는 큰 기쁨의 순간이다. 어라? 그런데 예습할 때 보던 글자가 아니다. 행여 길을 잃어 알바를 하는 상황에 닥칠 것에 대비하여 한자를 얼마나 보고 또 보았던가. 나비를 나타내는 한자 쵸가다케(蝶ヶ岳)까지 4Km, 현재시각은 10시 50분, 두 시간동안 2Km를 걸은 셈이다.
나는 그때 산우의 의견은 들으려 하지 않고 판단을 내렸다. 알바를 했다고 깨닫는 순간에는 주저 없이 원점으로 돌아가기. 그것이 백두대간에서 터득한 방법이었다. 올라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수월할 터였다. 순간의 판단 미스로 서너 시간을 낭비했지만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지 않던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지점까지 가야 했다. 돌아가서 요코오(横尾)라는 한자를 확인해야 했다. 오르는 길이 힘들어서였을까. 내려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알바를 해서 억울함과 내리막이어서 즐거움이 묘하게 교차하였다. 역시 내리막은 빨랐다. 2시간 동안 오른 길을 45분 만에 내려왔다. 내려오니 밤 11시 35분이다. 다시 불빛을 발견하고는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된 길을 찾았다. 이정표도 제대로 보인다. 요코오(横尾)까지 3.9Km.
낭비한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하듯 두발에 박차를 가하여 다음 목적지까지 속도를 내어 걸었다. 길은 다시 산속의 고속도로로 이어졌다.
‘그래 이 소리야’하고 거칠게 흐르는 강물소리를 듣고 안정을 찾았다. 다소 위협적인 그 소리에 안정을 찾았다는 것은 알바로부터의 해방이 주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요코오까지 3.9Km를 1시간 동안 신나게 걸었다.
요코오산장(横尾山荘)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35분이다.
가미코치에서 야리가타케까지 22Km의 딱 중간에 있다. 출발로부터 6시간 동안 걸었다. 어쨌거나 오늘의 목표는 이룬 셈이다. 그러나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 합의점이었기에 다음 목적지인 야리사와롯지를 향해서 가야 한다. 산의 공기가 좋아 그런지 아직 견딜만하다. 요코오에서는 목적달성을 했다는 성취감과 허기를 달래야겠기에 빵으로 요기를 하고 화장실 앞 수도에서 물병에 물도 채우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야리가다케는 내일을 기약하고 있고 날이 밝기 전까지 야리사와롯지(槍沢ロッジ)까지만 가면 되니 천천히 걸어도 되겠기에 시간의 사치를 부리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모두 꿈나라로 간 세상에서 한국사람 두 명이 북알프스를 지키고 있다. 지도를 보니 알바를 했던 곳에서 돌아오지 않고 계속 갔으면 큰 변을 당했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니 빠른 판단을 한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하였다.
충분히 휴식을 했다고 생각한 시각이 9월 7일 새벽 1시다. 야리사와롯지(1,850m)까지 가려면 계획표에는 70분이라고 되어있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걸릴지 의문이다. 계획표는 블로거들의 기록을 참고로 한 것이다. 나는 산행을 하면서 비닐 속에 들어있는 계획표의 거리와 시간을 참고했다. 4.5Km의 거리와 고도 약 200m. 야리사와까지 가는 행보다.
비가 내린다. 내일은 계속 비가 내리고 강풍이 예상된다는 예보였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만 해도 좋은 날씨를 예보했었는데, 많이 아쉽다. 만일 이번 산행을 실패하면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산행은 어쩌면 사전답사 형식의 산행이 될 수 있다.
빗줄기가 거세진다. 길을 멈추어 장비를 갖추어야 했다. 우비를 입고 배낭을 커버로 씌워야 하는데 커버가 없다. 저녁을 먹고 배낭에 챙기는 것을 깜빡한 것 같다. 커버가 없다고 하자 산우는 본인의 커버를 나에게 주고 본인은 비옷 대신 비닐을 장옷처럼 둘러쓴다. 내 배낭에는 산우의 샌들이 들어가 있고 산우의 배낭에는 내 물이 들어가 있다. 나는 내 것만 챙기고 싶은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왼쪽에서 들리는 강물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린다. 그 순간에 만일 내가 혼자 이 길을 걷고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혼자가 아니길 다행이다. 나는 산우에게 함께여서 고맙다고 했다. 혼자라도 가긴 갔을 테지만...
빗줄기가 굵어지고, 오르고 올라도 야리사와롯지가 나타나지 않자 조금씩 지쳐갔다. 우비를 입고도 우산을 썼다. 비가 계속 내리니 처마 밑에 비를 피할 곳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야리사와롯지만 나오면 처마 밑에 들어가 비를 피하는 것이 최대의 소망이 되었다. 당장은 비를 피하면 행복할 것 같다. 비옷을 입었지만 바지는 등산복이기에 바지로 빗물이 스몄다.
일본의 등산 환경은 우리나라보다 좀 더 가혹하다고 해야 할지, 높은 산이 많아서 그런지 우비도 상하가 구분되어 바지를 반드시 입는다. 우리나라에서 레인 팬츠를 사려고 했었지만 마땅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아 코트만 준비했는데, 레인 팬츠는 다음을 위해서라도 꼭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츰 지쳐갔다. 빗속이라 쉴 수도 없었고 느린 걸음일지언정 앞으로 향해야 했다. 한기라도 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저만치 꼭대기에 불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드디어 야리사와롯지다. 이제 더 이상은 가지 않기로 했고 갈 수도 없다. 힘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빗줄기가 굵어졌고 점점 바람도 세차게 분다. 남은 여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야리사와롯지에 당도하니 서너 명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비를 쫄딱 맞고 온 우리가 가엾어 보였는지 숙소 별관 문을 열어주며 들어가 쉬라고 한다. 나는 일본의 정서를 알기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여기서도 괜찮다며 밖에 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자꾸 권한다. 주인도 아니면서. 지금은 손님이 없으니 괜찮다며 문을 열어주며 들어가서 비를 피하라기에 주인한테 혼나면 어떻게 하냐고 한마디 하고 이기지 못하는 듯이 별관으로 들어갔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때가 새벽 세 시였다. 밖은 비바람이 요동치고 있다. 날이 밝아도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
젖은 빗물을 찍어내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침낭을 꺼내 마룻바닥에 깔았다.
방에는 두꺼운 요가 깔려있어 마음 같아서는 방에 들어가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잠깐 눈을 붙였다 싶었는데 산우가 일어나라며 깨운다.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간다는 거다. 야리가다케의 날씨는 시간대별로 풍속을 보여주고 있는데 점점 더 바람이 거세어 지기에 빨리 올라가려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적당한 시간에 하산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장 안에서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려가는 사람도 많다. 퍼센트로 보자면 내려가는 사람이 80%, 올라가는 사람이 20%정도 되는 것 같다.
날이 밝으니 바람이 세차게 요동을 친다. 잠시 바람이 멎으면 평화가 찾아온 듯하여 산행을 계속할까도 생각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온 산 전체를 바람이 뒤흔든다. 창밖으로 야리가다케 쪽을 바라보니 산봉우리는 운무로 덮여있고 나무들이 바람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미친 듯이 머리채를 흔들고 있다.
지난밤에 길을 잘 못 들어 알바를 한 것이 오히려 다행인 것 같다. 알바를 안 했다면 우리는 그 기세로 텐구바라분기점까지 갔을 테고 야리가다케를 바로 코앞에 두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어쩌면 위험을 뚫고 더 나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짐이 없다면 한 번 해볼 만한 도전이다. 그러나 짐을 모두 버리는 것도 산에서는 불가능하므로 더 이상 오르지 않았던 것에 대해 다행이라 여겼다.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한 많은 사람들이 야리사와롯지에 꽁꽁 묶였다. 나는 시간이 흐르도록 방관하였다. 비가 조금 그치자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었고, 비가 그치려나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또다시 비바람이 맹렬히 퍼부었다. 산을 내려가긴 내려가야 할 텐데 새로운 결정에 장애를 일으키고 있었다. 산우는 나의 처신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야리사와롯지에 그냥 머무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출발을 할 때 계획한 3박 4일 모두 산에서 지내는 일정이었기에 1박 2일이 지난 시점에서 다른 계획을 세운다는 게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실타래가 엉킨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3박 4일의 일정을 얼마나 오랫동안 세웠던가 말이다. 자, 이제 2박 3일의 여정을 새로 짜야했다. 히라유에서 온천을 할까 생각했지만 나고야까지 가는 길이 머니 길을 나서 나고야로 가는 게 급선무 같았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 가운데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도치 램프로 끓인 물로 컵라면을 먹고 짐을 다 꾸린다고 꾸렸는데 스틱을 빠뜨렸다. 스틱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도 산행이 다 끝난 뒤였다. 내년에 다시 가면 있으려나? 체념하는 수밖에 없다. 아까운데...
아침 8시가 되어가는 무렵에 야리사와롯지를 나서 하산길에 올랐다. 비가 계속 내린다. 캄캄한 밤길을 오를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시야가 넓어지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왼쪽 귀로 들어오던 물소리가 이젠 오른쪽 귀로 계속 들어온다. 물이 굉장히 풍부하다. 소리는 무척 우렁차다. 북알프스는 겨우내 얼었던 눈이 여름에 녹으며 흐르기 때문에 물이 풍부하지만, 요 며칠 내린 비로 더욱 풍부한 것 같다. 조그마한 폭포가 합류를 하여 물길이 불어나고 있다.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요코오까지 왔다. 오를 때 못 봤던 것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그것은 사전 계획을 세울 때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던 장면이다. 컴퓨터에서 보았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다. 지나온 산을 돌아보니 장관이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구름의 움직임이 연속적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조금 더 가을이 무르익었을 때 오면 더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점점 아래로 내려오자 산행객이 많아졌다. 모두 레인 팬츠를 입고 있다. 그 빗속을 뚫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산행을 하는 모습이라니.. 어쩌면 나도 준비만 달리하였으면 그네들과 산행을 함께 했을 수도 있다. 백두대간에서 한 것처럼 도전해 볼 수도 있었지만 안전을 우선으로 하여야 했기에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가미코치까지 왔던 코스를 되돌아 나고야까지 가야 했다. 왕복권으로 끊은 티켓으로 가미코치에서 히라유까지 간 다음 버스 환승을 하여 다카야마까지 간다. 다카야마에서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나고야까지 가려고 버스터미널로 가니 버스가 없다. 버스를 타려면 3시간 남짓 기다렸다가 오후 6시에 타야 한단다. 하는 수없이 바로 옆에 있는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는 2분 뒤에 출발한단다. 부리나케 표를 구입하고 승강장으로 달려갔다. 기차표 가격은 버스승차권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5,000엔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5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아깝긴 했지만 시간을 벌어야 겟기에 기차를 선택했다. 나고야에 도착하여 호텔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나고야에서 이틀 밤을 지내야 한다.
나고야까지는 기차에서 간간히 눈을 붙였다. 눈을 떠 창밖을 보면 가을 문턱으로 들어서는 일본의 자연경관이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나고야 역에 도착하여 우선 급한 대로 관광안내소부터 찾았다. 어느 지역이든 관광안내소는 여행자에게 있어 심장과 같은 곳이다. 관광안내소는 이틀 전에 나고야를 떠날 때도 이용한 터라 위치는 알고 있었다. 안내소로 들어서니 많은 여행객들이 줄을 잇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를 찾는다고 하자 숙박 리스트 팸플릿을 준다. 숙박 리스트 팸플릿은 지도와 함께 있어 보기에도 좋았다. 전화도 로밍이 안 된 상태여서 안내소를 나와 50m쯤 거리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하여 가까운 지역부터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 보았다. 전화 한 통화에 100엔씩 사용했다.
게스트하우스는 가격이 싸기도 하지만 외국인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어 나는 게스트 하우스를 선호하는데 전화를 거는 곳마다 모두 방이 없다고 한다.
일본의 호텔은 거의 예약제여서 갑자기 방을 구하려면 곤란을 겪는다. 하는 수 없이 다음으로 도요코인(東横INN) 호텔을 알아보기로 했다. 도요코인 호텔도 가까운 거리부터 차례로 전화를 해보았다. 도요코인은 체인호텔로 일본에 가면 자주 이용하는 호텔인데 가격도 저렴한 데다 조식이 무료이다. 회원제로 운영하는데 작년에 동경에 머물 때 도요코인 호텔에서 회원가입을 하라는 걸 1,500엔이 아까워서 회원카드를 만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결국 나고야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마루노우치)에 전화를 해보니 방이 있다고 하여 택시를 타고 무조건 호텔로 갔다.
갔더니 웬걸.. 하룻밤은 가능하지만 이틀은 불가능하단다. 회원가입을 하면 가능하단다. 회비는 가입비 1,500엔에 연회비는 없단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사용 가능하고, 우리나라에도 많이 들어와 있다. 그리하여 예정에 없던 두 명이 회원가입을 하고 이틀 밤을 묶는 행운을 얻었다. 각자 가입을 해야 각자 방을 준단다. 다행인 것은 나고야역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사실 택시비 때문에 은근히 걱정하던 차였다. 일본은 교통비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많이 비싸다.
숙박문제가 해결되어 고민을 덜었다.
배낭에 아직 남아있는 먹거리를 안주삼아 아사히맥주로 축배를 하였다.
다음날의 스케줄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는데 가장 좋기로는 나고야 시티투어버스를 탑승하는 것이다. 여행객에게 시티투어버스는 그 지역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첫차 출발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 세 번째 날 아침이 밝았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셔틀버스에 올랐다. 나고야역에 있는 시티투어버스 탑승장으로 가기 위해서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많다. 시티투어 팸플릿에는 설명이 아주 잘 되어있다. 11번 버스 탑승장에 줄을 서 있으면 출발시간 10분 전에 표를 팔러 직원이 나온다. 버스에 탑승하면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요원이 버스에서 해설을 해준다. 나고야 시내를 한 바퀴 도는 코스가 1시간 30분인데 500엔짜리 티켓을 구매하면 하루 종일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리고 타고 싶은 곳에서 탈 수 있다. 시티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내국인도 많지만 나 같은 외국인도 많다. 내렸다 탈 때마다 사람이 가득했다.
나고야 관광 루트 버스의 대명사는 메구르인데 명소(名所)의 일본어 발음 메이쇼의 ‘메’, 돌다, 순회하다의 뜻인 ‘메구루’의 구루를 따서 이름 지었다고 해설사가 설명해준다.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 관광지 매표소마다 시티투어 티켓을 보여주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나고야성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나고야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徳河家康)의 성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오사카성, 구마모토성과 더불어 일본 3대 성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전의 옛 나고야 성은 일본은 통일시키려다 죽음을 맞이한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단다.
나고야성은 공사 중이어서 천수각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새롭게 복원한 혼마루어전 들어갈 수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해설 자원봉사를 하는 어르신들이 여기저기서 조끼를 입고 해설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실내를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자 마당 한쪽에서 공연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는 마당무대가 보였다. 구경하고 갈 요량으로 근처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기다렸다. 안내 방송에 따라 사람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의 내용은 무사시대의 시대극이다.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시대극을 공연한다는 것이 매력 있었다.
나고야성을 나와 내렸던 장소에서 다시 시티버스를 타고 도쿠가와원으로 갔다.
큰 연못 중심을 둘러싸고 고저의 부드러움을 살린 도쿠가와원을 걸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숨결을 느꼈다.
나고야 명소 정류장은 모두 10곳인데 모두 들르기에는 하루 시간이 부족했다.
바로크 양식의 나고야시 시정자료관에 들러 나고야 항소 지방재판소로 이용했을 당시의 역사를 보았다.
또다시 버스를 타고 오아시스 21이라고 하는 쇼핑몰에 들러 쇼핑을 했다. 일본에 가면 몇 가지 꼭 사 오는 것이 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샀다. 주로 선물용으로 샀는데 거의 약국에서 파는 물건들이다.
시티버스를 타고 시간을 아주 잘 이용하였다. 다음으로 관광을 한 상점가인 시케미치(四間道), 엔도지(円頓寺)라는 곳은 옛날 절을 중심으로 상점가가 형성되었는데 지금은 그 이름만이 남아있어 상점가는 한산했으나 옛날의 번성했던 때를 음미해 볼 수 있었다. 도로 한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좌상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역사에 획을 그은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와리, 지금의 나고야와 관련 깊은 곳이다.
상점가에는 가부키 카페가 상점 앞을 무대로 야외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젊은 여성 관객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길을 메우고 구경을 하고 있다. 나는 연극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관객들을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나고야는 도요타 본사가 있는 곳이다. 오늘날의 도요타 자동차산업은 1933년에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면을 만드는 방직기를 제작했다고 하는데 도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입구에 방직기 기계가 떡 버티고 있다. 내부는 폐장시간이 되어 들어갈 수 없다고 하여 아쉬움을 달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시티버스가 출발한 지점으로 돌아오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쇼핑한 짐을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여 호텔의 무료 셔틀로 호텔에 들렀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저녁식사를 하러 나고야역 근처로 나왔다.
나고야역 주변은 도시 중심부답게 수많은 인파와 거대한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술집 호객을 하느라 여기저기 말을 걸어온다.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마실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 적당히 먹고 마셨다.
이번 나고야 행의 원래 목적은 북알프스 산행이 주목적이었지만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산행은 반도 못하고 관광이 주목적이 되는 이변을 낳았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관광도 재미가 있었고 매 순간순간이 귀중한 시간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은 공항에서 이것저것 즐기느라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비행기 탑승시간이 되었다.
내년에 다시 북알프스를 계획할 예정이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2018년 9월 21일(금)
욜로 씀.
첫댓글 세세하게..
잘읽고 갑니다
9월6일 저는 죠넨고야에
있었는데 하산길에 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같은 날에 북알에~ㅎ 죠넨고야.. 어딘지 몰라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제가 가는 루트와는 다른 곳~.
멀리 떨어져 있네요~^^
7일 비맞으며,, 하산길에 한국남자 두 명이 올라가던데... 혹시 그 분이 아니실런지~~
6일은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죠넨도 그랬겠지요??^^
6일 나카후사에서 쯔바꾸로다께
들려 죠넹고야까지 날씨는 정말
좋았어요 맞은편 야리가다께에서 오꾸호다가다께까지 능선이 한눈에..환상이었어요
7일은 죠넹다께들렸다가 요코오산장에 10시반에하산
카미코지에서 숙박했어요
저랑 반대코스네요~
가미코치에서 스쳤을지도~~
7일 하산길 가미코치 비오는 중에도 사람 많았는데 그중에...ㅎㅎ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잖아요.
미리 많은 준비를 하셨음에도
예기치않게 계획하신 대로 못하셨지만
좋은 시간이 되셨을 것 같아요.
다음 도전 행운을 빕니다.
언니 숙제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사리~~^^
네~ 인생 자체가 좌충우돌이지요~ㅎ
다음에는 심플하게 준비해야겠다는~~
같이 가실래요??^^
전 관광모드로~^^
백두대산 경험을 일본에서 매우 잘 이용하셨네요?
하루에 반 이상을 가셨으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성공을 못하시고 오신 것이 많이 아쉬웠을 것 같습니다.
저도 갑자기 가고 싶어졌습니다.ㅎ
네~ 백두대간이 성장시키네요...ㅎ
한 번 꼭 가봐야 할 산인 것 같아요..^^*
우리는 그런 산이 없잖아요...ㅠㅠ
욜로님~~~마치 현장에 같이 있는듯한 느낌이~~
결국은 혼자 가셨다는 얘기 들었는데...
많이 아쉬웠겠어요
내년엔 꼭 오를수 있기를 바라며
혹시 기회가 된다면 저도...ㅎ
들으셨군요..ㅎㅎ
내년에 같이가요 선배님~~
한 번 갔다오니 제가 갔던 곳까지는 안내할 수 있을 것 같아요~^^ㅋㅋ
감사 합니다
그리고 기대 합니다...^^
나도 갔다온 듯이 재미있게 읽었어요.
아~ 감사합니다.^^
대단해요^^
율로님
추석명절...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노들님도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요~~
숙제 하랬더니 너무 열씨미 하셌네유
앞으로 적당히해유 읽다 지쳐유ㅎㅎ
그 많턴 남정네들은 다 어디 갔나유
욜로님 대단한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잘 쉬시고 영알에서 알까기
제대로 하죠ㅋㅋㅋ
숙제 이런거 시키지 마유~~ㅠㅠ
그 많던 남정네는 누가 다 먹어씨까~??ㅎㅎ
알 너무 좋아하는 거 아뉴~??
알부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