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
hanjy9713
2023.11.15. 08:22조회 15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
요약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8월에 3주 동안 열리는 공연 예술 축제
1. 축제 정의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은 매년 여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개최되는 클래식 음악, 오페라, 연극, 춤 공연 축제다. 매년 8월 3주 동안 이어지는 축제는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스코틀랜드, 영국, 유럽의 문화 부흥을 이끌고 ‘인간 정신을 꽃피우는 기반을 제공’할 목적으로 시작됐다.
축제 참가자들은 축제 감독을 포함한 주최 측이 심사숙고해 선정하며, 이들이 펼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이 어셔 홀(Usher Hall), 퀸즈 홀(The Queen’s Hall), 페스티벌 극장(Festival Theater) 등 에든버러 시내 여러 공연장에서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진행된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열리는 8월을 전후해 에든버러에서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태투(Royal Edinburgh Military Tattoo), 에든버러 아트 페스티벌(Edinburgh Art Festival),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Book Festival),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필름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에든버러 멜라(Edinburgh Mela) 등 축제 십여 개가 함께 개최된다. 흔히 이 전체를 아울러 ‘에든버러 축제’(Edinburgh Festival)라고 말한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광경
매년 8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시작되면 에든버러 시내 주요 공연장은 물론 거리와 광장 곳곳에서 공연이 펼쳐져 도시 전체가 예술적 분위기에 휩싸인다.
축제의 끝을 알리는 불꽃놀이
축제 마지막 날 밤, 음악회에 이어지는 화려한 불꽃놀이로 3주 동안 계속된 축제가 막을 내린다.
2. 축제 유래와 역사
19세기 동안 몇 차례 음악 축제를 개최해 본 경험을 지닌 에든버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황폐해진 시민들의 마음을 다독이고자 음악 축제를 기획했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글라인드번(Glyndebourne) 오페라단의 단장이던 루돌프 빙(Rudolf Bing)이었다. 빙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극단 기획자로, 1934년에 나치스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왔다. 1943년경 그가 처음 제안한 음악 축제의 개최지는 옥스퍼드(Oxford)였으나, 1944년 후반 다른 도시들도 검토되기 시작했다. 에든버러가 물망에 오른 것은 당시 영국 문화원(The British Council) 스코틀랜드 분원의 원장이던 헨리 하비 우드(Henry Harvey Wood)의 제안 때문이었다. 1945년에 헨리 하비 우드는 에든버러의 유력 인사들을 섭외해 축제 위원회를 구성했고, 첫 번째 감독으로 루돌프 빙을 선정했다.
이후 1년여 준비를 거친 후 1947년 8월에 첫 번째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이 첫 번째 축제는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진행됐으며 브루노 발터(Bruno Walter)가 지휘한 빈 필하모닉의 연주가 어셔 홀(Usher Hall)에서 펼쳐져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이루었다. 축제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이듬해인 1948년이었는데,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시인이자 문장가인 데이비드 린지 경(Sir David Lyndsay)의 <3대 계급의 풍자>(Ane Satyre of the Thrie Estaits)를 각색한 공연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덕분이었다. 1950년부터는 영국군 군악대가 축제에 참가하면서 큰 인기를 모았고, 이것이 오늘날 개별 축제로 독립, 성장한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태투의 기원이 됐다. 밀리터리 태투는 독립된 축제 기구(Edinburgh Military Tattoo (Charities) Ltd)가 진행하지만 여전히 에든버러 축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9년 7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처음으로 영구적인 축제 담당 기관인 허브(The Hub)를 설립해, 뛰어난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선보이는 기회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주요 관광 수입원으로서의 예술 축제를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3. 축제 주요 행사
1) 유명 예술 감독과 조직위원회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클래식 음악과 현대 음악, 오페라, 연극, 춤 등 다양한 공연 예술을 균형 있게 포괄한다. 그리고 수준 높은 예술가들의 공연을 보러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람객 수백만 명을 매년 유치하고 있다.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축제를 총괄 지휘하는 예술 감독의 힘이 컸다. 뛰어난 경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초빙되는 예술 감독은 이 축제를 통해 다시 한 번 구성력과 조직력, 예술성 등을 평가받게 된다. 예술 감독의 임기는 5년 정도이며,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은 모두 예술 감독과 축제 협회가 신중하게 논의해 선정한다.
· 1947~49년: 루돌프 빙(Rudolf Bing)
루돌프 빙은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을 처음 제안한 인물로, 글라인드번 오페라단 단장이었다.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New York Metropolitan Opera)의 경영 이사로 활동했다.
· 1950~55년: 이언 헌터(Ian Hunter)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루돌프 빙과 함께 글라인드번 오페라단에서 함께 일한 이언 헌터는 특히 시각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음악 위주이던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전시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는 미술관에서 드가, 렘브란트, 르누아르, 세잔, 고갱 등 대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또 발레 비평가인 리처드 버클(Richard Buckle)에게 기획을 의뢰한 디아길레프에 관한 전시는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헌터는 바스(Bath)와 브라이튼(Brighton) 같은 영국 내 다른 도시의 축제를 설립하기도 했고 1980년대에는 영국 국립 발레단(English National Ballet) 단장을 역임했다.
· 1956~60년: 로버트 폰슨비(Robert Ponsonby)
로번트 폰슨비는 옥스퍼드의 오르간 학자이며 BBC 음악 감독으로 활동했다. 밤 공연에 강세를 보여온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에 맞서 <프린지를 넘어서>(Beyond the Fringe) 같은 야간 행사를 기획했다. 그는 인기 있던 영국 코미디 듀오 플랜더스 앤드 스완(Flanders & Swann)의 밤 공연 등 대중 친화적인 공연을 유치하기도 했다.
· 1961~65년: 헤어우드 백작(Earl of Harewood)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2차 도약을 이끌어낸 인물로 평가받는 헤어우드 백작은 1962년에는 러시아, 1964년에는 체코 등 주제가 있는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그리고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만 공연될 극본을 의뢰하기도 했다.
· 1966~78년: 피터 다이아몬드(Peter Diamond)
피터 다이아몬드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을 맡기 전에 네덜란드 음악 축제(Holland Music Festival)의 감독을 역임했다. 유럽에서 가장 경험 많은 예술 행정가의 한 사람인 그는 페스티벌의 정치적·경제적 토대를 강화했다. 또 그의 재임 기간은 ‘에든버러 오페라의 황금기’로 평가 받는다. 이후 피터 다이아몬드는 로열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oyal London Philhamonic Orchestra)의 총책임자가 됐다.
· 1979~83년: 존 드러먼드(John Drummond)
존 드러먼드는 다방면에 걸친 취향과 재능으로 유명했으며 특히 성공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는데, 디아길레프 사망 50주년을 기린 1979년 페스티벌과 ‘베네치아 1900년’이라는 주제를 다룬 1983년 페스티벌로 큰 사랑을 받았다.
· 1984~91년: 프랭크 던롭(Frank Dunlop)
프랭크 던롭은 노동조합이 중심이 된 시의회와 함께 엘리트주의 예술의 비중을 줄이고, 연중 내내 대중을 위한 행사와 공연을 추진하는 데 힘을 쏟았다.
· 1992~2006년: 브라이언 맥마스터(Brian McMaster)
약 15년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을 이끈 브라이언 맥마스터는 다양한 연극과 희극 공연으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며 인기를 누리던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수준 높은 공연을 추구했다. 그는 “LA에서든 도쿄에서든, 비행기를 타고 와서 비싼 호텔비를 지불하더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으며, 또한 최고의 스코틀랜드 문화를 선보이고자 노력했다.
· 2007~14년: 조너선 밀스(Jonathan Mills)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멜버른 축제(Melbourne Festival)의 예술 감독을 역임한 조너선 밀스의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감독직은 2014년까지 연장됐다. 그의 후임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의 음악 감독으로 시드니 인터내셔널 페스티벌(Sydney International Festival)을 주도한 퍼거스 라인한(Fergus Linehan)이 맡을 예정이다.
2) 축제 주요 공연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3주라는 시간 동안 최고의 예술가들이 한 도시에 모여 훌륭한 음악과 오페라, 무용 공연을 펼쳐 보이는 집약적인 예술 축제다. 또한 수준 높은 공연을 적절한 가격으로 대중에게 제시하는 매력적인 축제이기도 하다. 축제 기간 내내 도시를 감싸는 예술적 분위기만으로도 수많은 관람객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① 클래식 음악
1951년, 뉴욕 필하모닉(New York Philharmonic)을 선두로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이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함께했다. 1953년에는 빈 필하모닉(Vienna Philharmonic), 1956년에는 보스턴 심포니(Boston Symphony), 1961년에는 카라얀(Karajan)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Berlin Philharmonic), 1968년에는 소비에트 연방 오케스트라(USSR State Orchestra)가 축제에 참가했다. 성악가로는 캐슬린 페리어(Kathleen Ferrier)와 테레사 베르간사(Teresa Berganza),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등 전설적인 가수들이 참가해 주목을 받았다.
또한 1965년에는 아마추어 합창단인 스코틀랜드 페스티벌 코러스(Scottish Festival Chorus)가 결성됐다. 이 합창단은 1967년 카라얀의 지휘로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바흐의 <성모마리아의 찬가>(Magnificat)를 협연한 뒤 유럽에서 3위 안에 드는 최고의 합창단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후 합창단은 에든버러 페스티벌 코러스(Edinburgh Festival Chorus)로 명칭이 변경됐다.
② 오페라
오페라는 다른 장르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그러나 청중들은 스타 성악가의 멋진 공연을 기대하며 커다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최근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는 의상과 무대 배경 없이 공연하는 콘서트 오페라(concert opera)를 통해 과도한 비용 문제를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무대에 오른 오페라로는 1953년 글라인드번 오페라단이 선보인 스트라빈스키(Stravinsky)의 <방탕아의 행각>(The Rake’s Progress), 로시니(Rossini)의 <신데렐라>(La Cenerentola), 모차르트(Mozart)의 <이도메네오>(Idomeneo)가 있고, 1964년 프라하 국립 극장(Prague National Theatre)이 올린 야나체크(Janáček)의 오페라 <카탸 카바노바>(Káťa Kabanová)가 있다. 또한 1971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오페라의 <신데렐라>(Cinderella)와 1977년 <카르멘>(Carmen), 1985년 오페라 드 리옹(Opera de Lyon)이 공연한 알렉시스 에마뉘엘 샤브리에(Alexis Emmanuel Chabrier)의 <별>(L’étoile), 1986년 베버(Weber)의 <오베론>(Oberon), 1988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Houston Grand Opera)의 <중국의 닉슨>(Nixon in China), 1994년 오페라 오스트레일리아(Opera Australia)가 올린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 1998년 로열 오페라(Royal Opera)의 <돈 카를로스>(Don Carlos), 그리고 2005년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컬류 강>(Curlew River) 등이 있다.
③ 무용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역사에 있어서 호평을 받은 무용 공연으로 1951년 새들러스 웰스 발레단(Sadler’s Wells Ballet)과 모이라 시어러(Moira Shearer)가 공연한 <백조의 호수>(Swan Lake)가 있다. 또 1954년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The Soldier’s Tale)와 코미디 프랑세즈(Comédie Française)가 무대에 올린 몰리에르의 <평민 귀족>(Le Bourgeois Gentilhomme)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후 1960년대에는 현대 무용이 포함되면서 미국의 현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이 참가했고, 1980년에는 무용수 열세 명이 작업복을 입고 등장하는 혁신적인 공연 <플리버티지빗>(Flibbertigibbet)이 공연되기도 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마크 모리스 무용단(Mark Morris Dance Group)이 등장해 오페라 발레 형식으로 글루크(Gluck)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를 선보여 크게 주목받았다. 2008년에는 영국 태생 안무가 겸 연출가인 매튜 본(Matthew Bourne)이 <도리언 그레이>(Dorian Gray)를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았다.
3) 축제 주요 공연 장소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주요 공연장은 음향과 무대, 관객 수용력 등을 고려해 철저하게 검토한 후 선정됐다. 어셔 홀(Usher Hall)은 에든버러 서쪽 끝에 위치한 공연장으로 1914년에 건설됐다. 최근 오디토리엄이 개축돼 2천 9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됐으며, 뛰어난 음향 덕분에 연주자들이 선호하는 공연장이다.
어셔 홀(Usher Hall)
에든버러 서쪽 끝에 위치한 어셔 홀은 1914년에 건설됐다. 2천 9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다.
페스티벌 극장(Festival Theatre)에서는 주로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열린다. 1994년에 재건축한 페스티벌 극장은 관람객 1천 8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1929년에 영화 상영을 목적으로 지어진 에든버러 극장(Edingburgh Playhouse)에서는 현재 뮤지컬과 음악 공연을 주로 유치하고 있다. 약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은 규모 면에서 영국 최대로 손꼽힌다.
퀸스 홀(The Queen’s Hall)은 9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음악 공연장이다. 원래 1823년 호프 파크 채플(Hope Park Chapel)이란 교회로 건축됐으며, 197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물론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에든버러 재즈 앤드 블루스 페스티벌과 스코틀랜드 체임버 오케스트라(Scottish Chamber Orchestra)의 주요 무대로도 사용되고 있다.
허브(The Hub)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사무소로 에든버러 축제의 주요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다. 1842~45년에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로 건축된 허브는 도시 중심부 가장 높은 언덕에 고딕식 형태로 우뚝 서있다. 내부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허브 카페와 모든 공연의 입장권을 판매하는 매표소 허브 티켓(Hub Tickets)이 있으며, 메인 홀은 관객 42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어 작은 음악회 또는 간담회, 토론회 등이 펼쳐진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사무소인 허브(The Hub)
1842~45년에 건축된 교회 건물인 허브에서 축제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허브 내부에는 카페와 매표소가 있고 메인 홀에서는 작은 음악회 또는 토론회 등이 펼쳐진다.
4.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
매년 8월에 3~4주간 열리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1947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초청받지 못한 극단 여덟 개가 모여 소규모 극장에서 공연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프린지’(fringe)는 ‘주변’이나 ‘언저리’라는 뜻으로,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주변부에서 시작된 축제를 말한다. 축제의 시작은 초라했으나 해가 지날수록 점차 참가자와 관람객의 호응을 얻어, 1958년에는 페스티벌 프린지 협회(Festival Fringe Society)가 설립됐다. 프린지 협회가 참가 단체들의 공동 마케팅과 홍보를 맡아 조직적인 지원을 하면서 축제는 더욱 발전하게 됐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의 가장 큰 특징은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달리 참가자를 선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청만 하면 축제에 참가할 수 있는데, 이것이 곧 페스티벌 프린지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1947년 첫 번째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초청받지 못한 극단들이 모여 작은 축제를 벌인 것을 계기로 시작된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오늘날 에든버러 축제의 일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신청만 하면 누구든지 참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차이가 있다. 연극과 희극 공연이 주를 이룬다.
① 연극
음악과 오페라가 큰 주목을 받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달리,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서는 1947년 시작된 이래 연극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66년 옥스퍼드 극단(Oxford Theatre Group)이 공연한 톰 스토파드(Tom Stoppard)의 <로젠크랜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1992년 커뮤니카도(Communicado)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 1994년 톰 커트니(Tom Courtenay)가 출연한 <모스크바-페투시키>(Moscow-Petushki), 2006년 스코틀랜드 국립 극장(National Theatre of Scotland)의 <블랙 워치>(Black Watch) 등이 호평을 받았다.
② 코미디(희극)
연극과 함께 페스티벌 프린지에서 인기 있는 장르는 희극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의 희극 공연은 배우들이 기량을 선보이고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발판 역할을 했다. 특히 폴 머튼(Paul Merton), 로리 브렘너(Rory Bremner), 빌 베일리(Bill Bailey) 같은 배우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5.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태투(Royal Edinburgh Military Tattoo)
밀리터리 태투는 군악대의 북 연주를 의미하며, 17세기의 30년 전쟁 당시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에서 처음 시작됐다. 1594년 이후 네덜란드는 용병을 기용했는데, 이 부대는 주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독일과 스위스 용병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이었다. 매일 밤 9시 30분, 고수(鼓手)들이 북을 쳐 병영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을 알렸다. 이는 곧 술집 주인들은 더 이상 병사들에게 술을 팔지 말 것이며, 병사들은 속히 병영으로 돌아오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북은 통행금지 시간인 밤 10시까지 계속 울렸다. 네덜란드어로 ‘doe den tap toe’(두 덴 탑 투, ‘꼭지를 잠가라’라는 의미)인 이 북 신호가 ‘tap-too’(탑-투)로 불리다가 ‘tattoo’(태투)로 변형됐다고 전해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공연 형태로 발전한 밀리터리 태투는 밤 9시 30분과 10시에 두 번 공연이 펼쳐졌다. 여기에 밴드와 볼거리들이 포함되면서 19세기 후반에는 대부분의 군대와 용병 거주지에서 여름밤의 여흥을 위해 공연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중 매년 8월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앞 광장에서 열리는 밀리터리 태투가 가장 유명하다. 에든버러 밀리터리 태투 공연이 시작된 것은 1950년으로, 전통적인 스코틀랜드 백파이프(bagpipe)와 북소리가 현대적인 군대의 모습과 어우러져 구경거리가 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태투
오늘날 밀리터리 태투 공연에는 40여 개국의 연주자들이 참가하며 매년 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려든다.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태투
축제 기간 동안 에든버러 성 앞 광장에서 매일 밤 펼쳐지는 밀리터리 태투는 약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된다.
오늘날 에든버러 밀리터리 태투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열리는 8월에 함께 개최되며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40여 개국의 연주자들이 참가하고 매년 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공연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 또한 해 질 무렵부터 에든버러 성 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30개 국으로 방송되기도 한다.
축제가 시작되면 먼저 사회자가 관객들의 나라를 호명하고,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에 환호하며 서로 악수를 나눈다. 그리고 어둠이 내려오면 에든버러 성의 거대한 떡갈나무 문이 활짝 열리고 백파이프와 북소리가 밤하늘을 가른다. 그리고 질서정연한 악대가 수백 줄로 정렬해 도개교를 건너 행진해 나오는데,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와 로버트 1세(Robert I or Robert the Bruce: 에드워드 2세 치하에서 잉글랜드 군대를 물리친 스코틀랜드의 왕) 모형도 함께 행진한다. 때때로 비극적인 음악이 연주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영광스러운 과거를 표현하는 <스카이 섬의 뱃노래>(The Skye Boat Song), <덤바턴의 북>(Dumbarton’s Drum) 같은 민속음악부터 빠르고 경쾌한 행진곡으로 이어진다.
이 밖에 다양한 음악과 춤 공연이 이어지고, 터키 음악이나 중국 무용처럼 이국적인 공연이 뒤섞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참가자와 관객이 하나 되어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연주하는 것으로 축제는 끝을 맺는다.
6. 에든버러 재즈 앤드 블루스 페스티벌(Edinburgh Jazz & Blues Festival)
에든버러 재즈 앤드 블루스 페스티벌은 1978년, 밴조 연주자이자 기타리스트인 마이크 하트(Mike Hart)가 만든 축제다. 초기에는 전통 재즈 음악을 주제로 대중 주점에서 펼쳐지는 무료 공연이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 규모가 확대되면서 표를 판매하는 상업적인 축제가 됐고 현대 재즈와 스윙 등으로 음악적 범주도 확장됐다. 에든버러 재즈 앤드 블루스 페스티벌은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열리기 전 7월에 열흘간 개최된다.
7. 에든버러 아트 페스티벌(Edinburgh Art Festival)
2004년 발족된 에든버러 아트 페스티벌은 스코틀랜드에서 개최되는 시각예술 관련 축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축제에서는 현대 미술을 주도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스코틀랜드 현지의 동시대 예술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다. 매해 25만 명 이상이 축제 현장을 방문하며 에든버러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갤러리들이 상당수 참여한다. 관람자에게는 자유롭게 무료로 예술을 향유하는 자리인 동시에 작가와 갤러리에게는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장이 되고 있다. 에든버러 아트 페스티벌은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한 달 동안 열린다.
8.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Book Festival)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은 1983년에 처음 개최됐다. 초기에 격년제로 열리던 축제가 1997년부터 매년 열리기 시작했는데, 첫해에는 ‘저자와의 만남’ 행사로 작가 30명을 초청한 소규모 이벤트였다. 그러나 규모와 부대 행사 모두 빠른 속도로 성장해 현재는 7백여 개가 넘는 프로그램과 행사를 마련하고 전 연령대의 관람객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초빙한 작가들과 함께 세미나와 포럼 등을 진행하며, 어린이 관련 프로그램도 집중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책 저자와 삽화가들이 주목하는 워크숍과 강좌, 강연 등을 마련해 대중의 인기는 물론 관계자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은 유서 깊은 샬롯 스퀘어 가든(Charlotte Square Gardens)에서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같은 기간에 펼쳐진다. 축제에 맞춰 새롭게 조성된 정원으로 모여드는 관람객은 22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수익금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 모두 북 페스티벌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며, 축제는 후원금과 협찬으로 운영된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은 1983년부터 에든버러 축제에 포함됐다. 2주 정도 진행되는 축제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초빙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세미나, 포럼 등 7백여 개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은 샬롯 스퀘어 가든에서 개최된다. 축제를 위해 조성된 정원에서 관광객들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9. 에든버러 멜라(Edinburgh Mela)
여러 축제가 결합되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든버러 멜라는 정통 클래식이 아닌 세계 음악과 춤, 패션까지 아우르는 민속 축제다. 2014년에 12회를 맞이한 에든버러 멜라는 음악과 춤을 비롯해 폭넓은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비주류 국가의 음악과 음식 등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근에는 친환경을 표어로 내세워 쓰레기 배출을 줄이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입장권을 구입해 축제를 즐길 수 있고, 신청자에 한해 음식 판매로 축제에 동참할 수 있다. 에든버러 멜라는 8월 말에 3일 동안 펼쳐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류정아, 오애리, 김홍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