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언론은 사실을 보도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믿는 대중들은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결과로 매스미디어에 의한 여론몰이를 국민들이 선거의 결과로 뒤집기 전까지 독재자 또는 권력와 결탁한 언론이 일방적으로 TV, 신문등에 의한 보도를 믿고 언론이 유도하는 선거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21세기가 되면서 인터넷의 보급으로 쌍방향 소통으로 인한 대중에 의한 여론형성과 정치참여의 결과로 일반적 예상을 뒤엎은 선거결과가 2002년 17대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일어났지만 그것은 국민에 의한 집단지성의 발휘가 선거결과로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2010년 6월 2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기전 선거는 2008년 4월 18대 총선과 2007년 12월 17대 대통령 선거와 2006년 6월 4회 지방선거였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 세 번의 선거는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한나라당의 완벽한 압승으로 귀결된 연전연승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2005년 이후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무엇인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인지하고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치려 하였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 대표되는 재벌세력과 관료들에 의하여 참여정부는 한미 FTA등 신자유주의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05년 하반기 이후 재벌과 야당인 한나라당, 언론은 참여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여론몰이를 하였고, 2005년 하반기 이후 댓글부대로 추정되는 세력이 국민연금 반대운동을 벌이게 된다. 댓글부대에 의해서 조성된 국민여론은 당시 참여정부와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 와중에 치루어진 2006년 6월 지방선거 유세과정에서 벌어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당대표에게 일어난 괴한 지충호의 커터칼 테러사건으로 인하여 한나라당이 압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와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던 국민연금 반대운동은 한나라당이 2006년 지방선거에 압승 이후 반대운동을 벌이던 네티즌은 이상하리만치 갑자기 사라지고 오히려 국민연금이 가장 좋은 투자처라고 네티즌들은 댓글을 달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2012년 대선 이후 여러 경로로 밝혀진 바와 같이 인터넷 여론을 장악하기 위하여 자연스레 형성된 국민여론이 아니라 2004년 즈음부터 형성된 조직적 차원의 댓글부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17대 대통령선거의 한나라당 당내경선에서 당대표였던 박근혜와 서울시장 출신 이명박이 겨루게 되고 당내표심이 압도적 다수였던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이 될것이 유력하였으나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의 여론몰이로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신승하게 된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이명박으로 지명이 된 이후 당시 언론은 열린우리당의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 후보의 표를 갈라치기 하기 위하여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의 노블리스오블리주를 적극 홍보하여 유일한 박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국현 유한양행 사장을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게 한다. 그리하여 열린우리당으로 투표할 진보진영의 유권자의 표를 유한양행 사장으로 출마한 사람에게 갈라치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있기 석달전 MBC 드라마에서 이병철과 정주영을 주인공으로 한 ‘성공시대’라는 드라마를 제작 방영한다. 그 과정에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명박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대통령 선거전 공영방송이라는 MBC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명백한 위법 행위도 자행한다.
이런 저런 결과로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는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이 되고 몇 달뒤 그 여세를 몰아 2008년 18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153석으로 과반을 획득하고 친여 성향의 자유선진당 18석과 친박연대 14석까지 합치면 친여성향의 국회의원 의석은 185석을 차지하게 된다. 직전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새천년민주당과 다시 통합하여 통합민주당이 되었지만 의석수는 81석으로 쪼그라들게 된다.
압도적 과반이 된 친여성향의 국회의원들로 인하여 사대강 사업으로 이름만 바꾼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밀어붙이게 되고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의 4개 신문사에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언론사의 사장을 이명박 라인으로 재편하면서 사실상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에 재갈을 물리게 된다. 2008년 봄 이명박의 미국 순방을 계기로 참여정부 때보다 더욱 불평등한 한미 FTA 협상을 체결하고 온 이명박 정부에 대하여 국민적 비토가 쏟아지게 되고 특히 미국산 소고기 반대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MB정부 1년차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지지율 10%대로 곤두박질친 국민여론의 향배를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하여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고향인 봉하마을에 내려간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에게 퇴임후 사저로 내려갈 때 청와대 기밀을 유출해 갔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검찰을 동원하여 압수수색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2009년 봄 탤런트 장자연씨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장자연 리스트에 조선일보 사주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정관계 유력인사들이 포함된 장자연 리스트가 세간에 오르내릴 무렵 언론은 박연차 리스트를 터뜨리게 되고 박연차 리스트에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여론몰이를 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600만 달러의 뇌물을 주었다고 여론은 검찰발 보도를 하게 되고 검찰과 언론 발표를 믿었던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게 되고 그를 죽을때까지 조롱하고 멸시하게 된다. 단지 노무현 대통령이 투신하기전 유일하게 김근태 전의원과 안희정 전충남도지사만이 노무현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치졸한 공격을 멈추어라는 논평을 언론에 발표한다. 검찰조사가 끝나기 전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어린시절 뛰어놀던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을 하게 되고 노무현이 박연차의 뇌물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때 자신의 비겁함을 깨닫고 자각하게 된다. 그 결과 미국산 소고기 반대 시위로 지지율이 급락하던 이명박 정부와 장자연을 죽음에 몰고간 조선일보가 결합한 추악한 행위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고, 자신의 죄를 덮고자 고의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박연차에게 뇌물을 받은 전직 대통령의 프레임으로 몰고갔다는 것을 사람들은 인지하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며칠 뒤 있었던 6.15 남북정상회담 9주년 즈음 또 한명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시민들에 현 시국을 극복하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정당에 투표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 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라고 자각한 민주시민들에게 방향을 말한 뒤 두달 후 서거 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이명박 정부에 의하여 장악이 되자 올바른 비판을 하던 언론인들은 회사에서 쫒겨 나거나 정부에 의하여 사찰이나 고소고발을 당하게 된다. 이에 더하여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던 일반시민들도 정부에 의하여 사찰이나 고소고발을 당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벌금형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행동하지 않고 생업에만 종사했던 민주시민들은 각성하게 되고 서울 광화문 광장이나 대도시 주요 거점지역에서 집회신고를 하고 반정부 투쟁에 나서게 된다.
17대 대통령선거와 18대 총선에서 압승을 한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이지만 MB정부가 시작됨과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대표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PD수첩등 일부 언론에 의하여 허구임이 드러났고, 이어서 전국민적인 반대여론이 형성이 되었고, 한미FTA의 추가협상과정에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소고기의 사실상 전면 수입을 선언함으로써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벗어나기 위하여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을 검찰과 언론, 국정원을 동원하여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MB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다시금 북풍의 공작을 만지작 거리게 된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선거과정에서 북한의 존재와 이념문제, 빨갱이로 대표되는 북한에 대한 극단적 혐오와 공포는 항상 대중을 지배해왔다.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되고 현재의 헌법이 제정된 1987년 이후 선거과정 속에서도 북풍은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되었다. 1971년 이후 17년만에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1987년 12월 16일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이 일어난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의 3강 구도 였으나 선거를 앞둔 이틀전 마유리라고 불리우던 북파 공작원 김현희가 입에 재갈을 물린채 국내로 압송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국민들이 목도하면서 선거결과에 이념적 프레임이 작동하게 된다.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 운동가 출신 정치인 김영삼, 김대중 두명의 대통령 후보는 낙선하게 되고, 전두환의 친구이자 12.12 군사 쿠데타의 주역중 한사람인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이 월드컵 4강에 오르면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서포터스인 붉은악마의 상징색이 붉으색이 되면서 레드 콤플렉스는 벗어나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선거때가 되면 북풍은 작동하였다.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 측에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이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에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의 참사 박충을 만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 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른바 총풍사건, 2012년 12월 18대 대선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문제제기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방한계선인 서해 NLL을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넘기기로 했다는 주장등 항상 선거때만 되면 한국인에게 남아 있는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선거전이 펼쳐지곤 했었다.
상기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에 따른 정치참여를 지향하는 자각된 시민들의 의지 야당세력과 중앙정부와 국회, 지방정부를 모두 장악한 한나라당과 언론의 일대 결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선거과정에서 북풍몰이를 기대하던 정부와 여당은 2010년 3월 26일 서해상에서 작전중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또다시 레드 컴플렉스를 선거에 이용하기에 이른다.
2010년 제5대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결과를 주목하는 이유는 당시 정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해상에서 작전중인 대한민국의 군함인 천안함을 북한의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고 모든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압승을 예상했지만 2010년 지방선거의 결과는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조선 인민군 해군 잠수함의 어뢰에 의해서 격침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였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에서 전문가 24여 명으로 구성된 합동 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 천안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했고 선거를 앞둔 며칠전 바다속에 가라앉은 천안함의 이양과정을 생중계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선거직전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을 이어갔다.
당시에도 천안함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고 수많은 의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선거용 북풍으로 몰고 갔고 이에 반하여 야당인 민주당은 “전쟁을 원하면 1번, 평화를 원하면 2번”이라는 선거구호를 들고 나왔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터는 각시도 교육감과 교육위원까지 포함한 총 8개의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유권자는 1인 8표를 행사하였다. 그리고 젊은층이 이전 3번의 선거보다 투표참여 확대로 지방 선거가 실시된 후 두 번째이자 15년 만에 최고인 54.4%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지방선거 이전 여론조사에서는 여당인 한나라당이 야당에 비해 크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서울특별시장의 오세훈 후보와 한명숙 후보는 20~25%정도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도되었고, 인천광역시와 강원도 광역자치단체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야권 연합 후보에 비해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막상 개표가 완료되자 서울시장 선거는 0.6% 차이로 한나라당의 오세훈 후보가 신승을 하였으며 크게 사전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선다고 언론이 보도한 인천광역시와 강원도는 과반이상의 득표로 민주당 후보인 송영길, 이광재가 당선이 되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조사를 낭독한 헌정사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였던 한명숙 후보가 검찰에 의해 기소가 되고 야권인 진보신당의 노회찬 후보가 같이 출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직 서울시장인 오세훈 후보와 상대하여 20% 이상 여론조사가 뒤진다는 발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0.6%인 3만여표 차이로 낙선을 한 것은 그때까지 있어왔던 선거전 여론조사가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상식을 뒤집는 결과가 나타났기에 이때부터 국민들은 언론이 잘못된 보도를 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하였다.
광역단체장 선거 개표 결과 민주당이 7곳, 한나라당이 6곳, 자유선진당이 1곳, 무소속이 2곳에서 승리하였다.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으로 여겨졌던 강원도와 경상남도에서 여당이 야권 후보에게 패하는 등 많은 이변이 일어났다. 이 지역들에서의 패배는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마무리 말>
2016년 올해의 한자성어가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되었다.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도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라는 순자 왕제편에 나오는 한자성어이다.
2016년은 시민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을 기반으로 제2공화국이 들어선지 1년만에 박정희에 의해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그뒤 18년간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의 딸인 18대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에 의해 탄핵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갈 때 나온 한자성어이다.
해방공간에서 찾아온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국의 정서가 반영된 헌법이 아니라 독일바이마르 헌법을 기초하고 일본식 법률과 행정체제를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따라서 문자로서의 헌법, 법률과 실생활에 적용되는 관습은 동질화 되지 못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갑작스런 종전과 일본의 패망으로 벼락같이 찾아온 한반도의 독립은 자국민에 의한 자치정부가 생기기전 어쩔수 없이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에 의하여 3년간 분할통치를 겪게 된다. 해방공간에서 이루어진 신탁통치방안에 대하여 모스크바3상회의 결과를 거짓보도한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에서부터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선거나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보수 우익언론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보도를 하고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면서 세계는 급속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체제로 개편이 된다. 자본과 대기업이 사실상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속에서 공정보도를 해야할 언론들조차 자본의 논리에 그들의 책임을 망각하게 된다. 따라서 서구의 지식인들은 2000년대 중반 항상 자본이 유도하는 대로 투표를 하는 우매한 대중에게 맡기는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하였다고 선언하고 엘리트 지식인들이 국가의 정책결정을 해야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세계에서 초고속 인터넷망이 가장 먼저 보급되고 쌍방향 소통이 일상이된 21세기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10여년전 서구의 지식인들이 포기한 대중이 이끌어가는 민주주의가 이런것이다라는 것을 세계를 향하여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의 전환점이 된 지난 10여년을 되짚어 보면 몇 년간 언론이 유도하는 댓글부대의 공작에 속아 2009년 5월 23일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다”라고 대통령을 했던 한사람을 조롱하고 죽음으로 까지 몰고간 많은 시민들이 스스로를 자책하였고, 2014년 4월 16일 충분히 구하고도 남았던 304명의 목숨을 생방송으로 실시간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국가시시템이 이렇게 형편없을 수가 있구나를 깨달았고 모든 방송사들이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내는 것을 보면서 언론사는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구나를 알게 되었으며, 연인원 1,700만명이 150여일 동안 투쟁을 하며 2017년 3월 10일 현직 대통령을 헌법적 절차에 의하여 국민이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탄핵을 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시민혁명의 승리의 경험도 가질수 있었다.
역사를 거꾸로 돌린 유신헌법을 획책한 박정희 정부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인권을 탄압하고 초헌법적인 권위를 내세워 국가조직이 불법을 자행하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와서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서구의 철학자와 지식인도 포기한 시민이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민주주의가 다시금 대한민국에서 꽃피우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래 수많은 선거가 있었지만 자본과 언론이 지배하는 영향력을 이겨낸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진정한 한국적 민주주의의 시발점이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첫댓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없었다면 우매한 국민들은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천안함 사고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한나라당과 이명박의 의도대로 흘러갔을것이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500만 국민이 깨어나지 못했다면 2010년 지방선거의 극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을것이다.
내일 제8회 지방선거의 결과에 대해 우리는 다시금 무엇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한것인지 역사의 교훈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뚜벅뚜벅ᆢ
쓰레기잡것들
청산없이
상식은 묘연하다
국암당=신천지=검찰쿠데타왕국=토왜적폐세력이다
@하회탈(안동)
@하회탈(안동)
이 글은 누가 쓴글인가요?
제가 쓴글입니다.
@수목원(대구) 긴글인데, 분석 좋네요~!
참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분석 같습니다
객관성과 합리성을 잃고
아집만 내세우면
세상으로부터
도태 당하게 된다는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
정당의 역사와 각 시대별 투표결과를 분석하면 현재 정치가보일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얼마전 써둔 글을 내일 제8회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문팬 게시판에 올려봅니다.
항상 대구 문팬을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