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 서울은 12월 초부터 영하의 추운 날씨이라 따뜻한 남쪽 제주도를 찾아서 요즘 온통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 물결과
노란 귤 밭인 수확기의 귤 농장의 멋진 제주 벌판을 달리며 잠시 바다 해안과 평화로운 제주섬에서 여행을 가져 보았습니다.
서귀포 정방폭포에서~~~
운좋게 비행기 차창에서 구름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 일출도 감상하고 제주공항에 8시에 도착후 렌트카를 대여받아
온통 억새가 만발한 제주 들판과 해안을 달려서 내가 좋아하는 성산일출봉에 도착후~~~
일출봉을 오르며 환상적인 제주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허나 아쉽게도 한라산 정상은 구름속으로 숨어서 보이질 않네요
성산일출봉에는 제주의 아픈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1943년에는 일본군이 이곳을 요새화 하기 위해 일출봉 해안절벽에 24개의 굴을 팠다.
굴속에 폭탄과 어뢰등을 감춰두고 일전에 대비했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패전하였다.
이 굴은 이후 잠녀의 탈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성산일출봉과 본토를 잇는 길목은 간조때 길이 터진다 하면 터진목이라 불렀는데,
이곳과 일출봉의 우뭇개 일대에서 4·3항쟁 당시 많은 민간인이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른 오전인데도 이곳 많은 관광객들이 정상 계단을 오르고~~~
정상에 오르면 너비가 8만여 평에 이르는 분화구를 볼 수 있는데,
그릇처럼 오목한 형태로 안에는 억새 등의 풀이 자라고 있다.
분화구 둘레에는 99개의 고만고만한 봉우리(암석)이 자리하고 있다.
이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다고 해서 '성산(城山)', 해가 뜨는 모습이 장관이라 하여 '일출봉(日出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상에서는 너른 분화구와 그 뒤로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은,
제주의 다른 오름과는 전혀 다른 웅장한 느낌을 준다
요즘 제주에서 인기있는 관광지 저 멀리 우도 섬도 조망해 보고~~~
하산후 확 펼쳐진 멋진 잔디길을 걸어면서 절벽아래 어부의 집엔 해녀들이 직접 잡은 횟감과 전복과 소라 등등도 팔고
유람보트장도 있고~~~
성산일출봉 주위를 산책하노라면 시원한 제주 바다와 여유로운 자연풍광에 매료되어 모든이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여행의 진미는 이런 멋진 경치와 맑은 공기 그리고 눈과 입이 즐거운 곳에 오면 세상이 다 내세상이지요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의 다른 오름들과는 달리 마그마가 물속에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다.
화산활동시 분출된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면서 화산재가 습기를 많이 머금어 끈끈한 성질을 띄게 되었고,
이것이 층을 이루면서 쌓인 것이 성산일출봉이다.
평화로이 풀을 먹고 있는 말과 성산일출봉 섭지코지에서~~~
다음 목적지는 제주올레길 제 6코스가 가장 아름답다기에 서귀포 올레길로 귤농장의 풍경을 즐감하며 가로수를 달리고~~~
서귀포시로 접어더니 온통 노란 귤농장엔 귤이 대풍년인듯 엄청 많은 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풍경을 즐감하면서~~~
제주 올레길( 제 6코스 )작가의 산책길을 출발해 멋진 추억을 걸어 봅쎄유~~~
이중섭 화가가 살던 집은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
이중섭은 한국의 서양화가.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서양화의 양대 거목으로 시대의 아픔과 굴곡 많은 생애의 울분을 ‘소’라는 모티프를 통해 분출해냈다. 대담하고 거친 선묘를 특징으로 하면서도 해학과 천진무구한 소년의 정감이 작품 속에 녹아 있으며, 경쾌하고 유연한 필선의 은지화는 그 고유성을 인정받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작품으로는 《서귀포의 환상》(1951년),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1953년), 《부부》(1953년경), 《황소》(1953~1954년경), 《길 떠나는 가족》(1954년), 《도원》(1954년), 《달과 까마귀》(1954년), 《흰 소》(1954년경)
1945년 문화학원 재학 중 일본인 후배이며 애인이었던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가 홀로 현해탄을 건너와 그해 5월 원산에서 결혼했다. 마사코는 이남덕(李南德)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중섭은 원산사범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6·25전쟁 때 월남하여 종군화가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신사실파 동인으로도 참여했다. 월남 이후에는 부산, 제주, 통영, 진주, 대구 등지를 전전하며 그림을 그렸고,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다.
1952년 부인이 생활고로 두 아들과 함께 도일(渡日)하자, 부두노동을 하다가 정부의 환도(還都)와 함께 상경하여 1955년 미도파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전시는 호평이었으나 은종이 그림이 춘화라는 이유로 철거되고 팔린 그림 값을 떼이는 등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큰 실의에 빠졌다. 그는 일본에 보낸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도는 유랑 생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깊은 좌절과 자괴감으로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져 정신분열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6년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통을 겪다가 그해 9월 6일 서울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숨을 거뒀다.
정방폭포 주차장 뒷길로 접어드니 해안로 숲길이 잘 조성되어 운치가 있고~~
붉게 달린 열매나무와 여러 열대식물 속에 조성된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이~~
1970년 12월 15일 서귀포- 부산 정기 여객선 남영호가
여수 동남방 해상에서 침몰되어 여객과 선원 등 323명이 희생된 조난사고가 기억에 나네요,
잠시 팔각정에서휴식하며 올레길 주위의 아름다운 길을 걸어면서~~~
제6 올레길은 해안길과 열대야 숲으로 작가들이 특히 좋아한다네요
해안올레길을 걸어며 저 멀리 바다에 뜨있는 섶섬이 감탄의 서귀포 바다가~~~
올래길엔 간간히 멈출 수 있는 벤치들도 있어 이야기와 즐거운 여행의 화제로 대화를 나눌수도 있고~~
열대 야저수 그늘집이 있어 특히 문학 시인들의 창작품을 구상할 수 잇는 멋진 숲속의 정자들도~~~
야자수 숲속에 "소라의 성"이 해안에 자리하고 잠시 관람하니 전시 도서관으로 장식되어 있고~~~
소라의성은 제주시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에요!!
코로나때매 들어갈때 방문 기록지를 작성 해주셔야해요
올레길에 소정방폭포가 육지에서 바다로 직접 솟아지는 폭포가~~~
여름엔 이곳 아래 바닷가에서 해수욕도 한다네요
소정방 폭포는 정방폭포에서 동쪽으로 300m 떨어진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는 7m정도로 해안을 향해 떨어진다.
도랑을 건너는 데크다리 주위엔 억새와 야자수 그리고 분홍색 꽃교각을 지나면서 아름답던 옛 추억도 더듬어 보고~~~
초겨울인데도 이름 모를 붉게 핀 봄기운인듯 꽃이 만발한 공원이~~~
언덕 데크계단길을 오르며 저 멀리 야자수 풒길이 특이하게 풍경을 ~~~
저 멀리 서귀포 KAL호텔이 보이고~~~
이름 모를 노란꽃도 운치 있게 올레길을 갇기도~~~
아름다운 자연속에 사랑도 있고 건강도 있다는 걸 올레길이 바로 해답이지요!!!
올래길을 나와서 정방폭포로 이동해서~~~
입구엔 멋진 소나무 가지 사이로 저 멀리 정방폭포수가 직접 바다로 쏫아지고~~~
정방폭포는 천제연폭포, 천지연폭포와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라고 불린다. 높이 23m, 너비 8m에 깊이 5m에 달하며,
국내에선 유일한 뭍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다.
많은 관광객들이 추억을 답고~~~
정방폭푸가 우렁차게 쏫아지는 동영상을~~~
자~아 똥폼 한번 찰각후~~~ 다음 목적지는 산방산으로~~~
정방폭포 ‘소남머리’는 4.3사건 당시 정보과에서 취조 받은 주민들 중, 즉결처형 대상자들 대부분이 희생당한 곳이기도 하다.
흔히 정방폭포에서 희생당했다고 하는 희생자 대부분이 정방폭포 상당과 이어지는 이곳에서 총살당했다.
‘소남머리’는 동산에 소나무가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산방산 바로 앞에는 용머리 해안이 있는데 전망용 망원경이 있어 용머리 해안의 전망을 쉽게 눈에 담을 수 있다. 날이 좋다면, 용머리 바위, 형제섬 등 주변 경치를 더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유람선을 타는 것도 권할만 하다. 가끔 구름이 산방산 꼭대기를 둘러싼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림 속 풍경을 보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준다
‘하멜 표류기’로 알려져 있는,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선원으로 난파를 겪어 제주도에 봉착했으며, 1652년부터 1666년까지
조선에 살았다. 하멜이 제주도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담은 하멜 상선 전시관이 산방산 바로 아래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헨드릭 하멜
[ Hendrik Hamel ]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 선원으로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했다. 1666년 억류생활 끝에 탈출하여 1668년 귀국했다. 그 해에《하멜표류기》로 알려진 기행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한국의 지리·풍속·정치·군사·교육·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청나라의 사신이 조선을 방문하자 하멜은 이들을 찾아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탈출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다가 이런 사실이 발각되어 처형될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다. 1656년 3월 한양 훈련도감에서 이들을 담당하기가 힘겨워지자 전라남도 강진(康津)으로 유배되어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에 소속되었다. 이곳에서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잡역에 종사하였다. 당시 흉년으로 생활은 궁핍하여 먹을거리를 구걸을 하기도 하였다. 1660년에 전라병영에 부임한 절도사 구문치는 하멜 일행에게 비교적 관대하여 이들에게 집과 텃밭을 제공하였다. 그들은 7년 동안 전라병영성 근처 초가집에 머물렀다. 1663년(현종 4) 흉년이 들자 하멜의 일행은 남원에 5명, 순천에 5명, 여수(麗水)의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에 12명이 분산되어 배치되었다. 하멜은 여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었고 고된 노역과 생활고에 지쳐 탈출을 결심하였다. 1666년(현종 7) 마침내 7명의 동료와 함께 배를 타고 탈출하여 일본 히라도(平戶)로 건너가서 나가사키(長崎)로 탈출하였다.
하멜동상에서 함께 포토를 담고~~~
저 멀리 형제섬과 오른쪽엔 마라도와 송악산이 보이고~~~
노란야생화와 동백꽃이 맴을 훈훈하게~~~
레스또랑 바깥엔 하트 포토죤과 바다속의 형제섬이 들어있어 운치가~~~맛도 배가 되는듯~~~
산방산 맛집에서 사장이 추천하는 시원한 해물뚝베기탕으로 영양보충후 운전관계로 음주를 못해 아슆지만 참고~~~
송악산입구 해안에서 바라본 환상적인 산방산의 미남 봉우리가~~~
오후엔 흐린날씨에 산방산 전밍대에서 약간의 바다에 낙조의 붉은 풍경을 감상후~~~어둡기 전에 차귀도로 빨리 가자
차귀도는 면적 0.16km2로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딸린 무인도이다. 고산리 해안 자구내 포구에서 약 2km 떨어진 곳으로 배를 타면 1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제주 서부해역에 있는 차귀도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차귀도를 중심으로 죽도, 지실이섬, 와도 등 작은 부속섬들이 있다.
차귀도는 오랫동안 낚시꾼들에게 알려진 섬인데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출입이 금지돼 있다가 2011년 말 고사목을 제거한 다음, 전망대 주변 바닥 및 안전 보호책을 설치하고 내부 도로를 정비하여 30년 만에 일반 대중에게 개방했다
차귀도의 항구엔 낚시배들이 저녁이 되어 항구로 되돌아와 정박하고~~~
차귀도가 낚시천국으로 인기가 있는 이유는 육지와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다양한 대물들이 계속 올라와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자구내 포구에서 어선을 타고 선상낚시를 즐길 수 있다. 주변 바다에서 참돔과 돌돔 등의 어족이 1월~3월, 6월~12월에 많이 잡힌다.
차귀도의 섬들과 낙조의 풍경을~~~어둠이 짙어 서둘러 제주시내로 되돌아와서 반납후 제주공항으로~~~
제주공항 중국집 맛집에서 담백하고 시원한 누룽지탕으로 간식을 먹고~~~
제주공항발 21;15 비행기에 탑승후 하늘에서 바라본 제주의 야경과 김포공항에서 착륙시 수도권 야경을
즐감하고 공항철도로 즐겁고 멋진 제주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귀경했습니다.
코로나 감염의 주의 단계가 강화되는 요즘 건강에 유의하시고
좋은 나날 되세요!!!
첫댓글 일본에선 환영받던 하멜같은 선진국 사람들을 못알아보고 노예를 만들어 거지를 만든 똥자루같은 우리 선조들..! 선진문명을 적극 받아들이고 구미각국과 교역을 하던 일본에게 나라를 뺏기는 과정중의 하나를 보는 것 같다.
그려~~~~우린 바보처럼 중국만 믿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우물 안의 개구리 처럼 살다 나라를 잃게 되고~~~
일제때 지식인들이 서양 마국으로 탈출해서 영어도 배우고 세상 물정도 알아서 오늘의 남한이 생기고 박통 처럼 잘 살아 보세 하며
전 국민이 열씸히 일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발전한 선진국이 되었네유~~~
오늘날의 세계는 민주와 공산/사회주의로 나누어져 있지만 민주주의가 드 잘 살고 발전되고 있는데도 문빨정부 정치인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주장하며 정치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지요~~~
경우는 정말로 선경지명이 있는 애국자 이시네유~~~
@권영목 요즘까지도 친일파네 뭐네 하는 빨갱이들이 말하는 그 친일파라는 게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지 웃기지도 않는다. 아직 멀었다.
@李 慶雨 우린 진보 보수가 아니라
우리국민 절반이 진보가 좌빨/사회주의로 잘못 알고있는거 같애~~~
정말 열난다 ~~~
공부안하고 취직못하거나 직없을 못가진걸 국가책임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젊은이~~한심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