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刺繡)
- 허영자1)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靑紅)실
따라서 가면
㉠가슴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世事煩惱)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 내올 듯
머언
㉡극락정토(極樂淨土) 가는 길도
보일 상 싶다*.
(시집<가슴엔 듯 눈엔 듯>, 1966)
* 상 싶다 : 성싶다.
■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여성적인 섬세함과 강렬한 생명력이 결합된 시풍이 특징인 허영자의 대표작으로, ‘수놓기’라는 일상적인 일을 통해 고뇌와 슬픔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체험을 노래한 시이다. 여성적인 소재와 언어와 감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성격 : 서정적, 여성적, 성찰적
▶ 시상 전개 : 점층적 전개
▶ 구성 : ①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수를 놓음.(제1연)
② 번민은 가라앉고 아름다운 심성의 경지에 다다르게 됨.(제2-3연)
③ 사랑의 슬픔도 참아 내고 번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듯함.(제4-6연)
▶ 제재 : 자수(刺繡)
▶ 주제 : 수놓기를 통한 번뇌의 극복
■ 연구 문제
1. 이 시의 화자의 고뇌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찾아 쓰라.
☞ 사랑의 슬픔
2. ㉠이 뜻하는 바를 25자 내외로 쓰라.
☞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여러 가지의 갈등과 괴로움
3. 마지막 연에 담긴 의미를 완결된 한 문장으로 쓰라.
☞ 수놓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맑고 정돈된 마음의 상태가 극락 정토로 표현되는 영원한 평화에도 가까워질 수 있을 듯하다.
4. ㉡과 비교적 그 의미가 통할 수 있는 시구를 찾아 쓰라.
☞ ‘처음 보는 수풀 / 정갈한 자갈돌의 / 강변’
5. 고뇌를 견디는 방법, 극기의 방법을 상징하는 말을 이 시를 참고하여 한 어절로 쓰라.
☞ 수놓기
6. 행위의 진행에 따른 심리적 추이를 살펴보자.
☞ 번민(가슴 속의 아우성) → 평화(강변) → 초월(극락 정토 가는 길)
2연에서 '가슴 속 아우성'이 가라앉는 과정은 동적인 분위기가 점차 정적인 분위기로 변해 가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 텍스트 상호성
1. 내면의 번뇌와 갈등을 노래한 시를 찾아 번뇌와 갈등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 마음 속의 번뇌와 그를 정화하는 화자의 의지를 노래하는 작품 중, 시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조지훈의 '승무'가 있다. 세속의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한 여승이 깊은 밤, 홀로 승무를 추며 내면의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에서 승무라는 춤은 '자수'의 수놓기와 비슷하게 고뇌와 갈등을 가라앉히는 방편이 된다. 또, 고은은 '눈길'이라는 시에서 지난 시절의 방황과 갈등을 가라앉히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상태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이 시에서는 고요하고 정화된 정신적인 경지를 통념상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마련인 어둠에 비유함으로써 번민을 가라앉힌 마음 속의 평화로운 정경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문맥이 순탄하고, 분명한 3개의 문자이 여섯 연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세 개의 의미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 단락(제1연)을 보면 화자가 수(繡)를 놓는 것이 어떤 실용적 목적 때문이 아니라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임을 알게 된다.
수(繡)를 놓으며 색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자신이 꾸며 놓은 ‘수풀’이나 ‘강변’에 이른다. 그 ‘수풀’이나 ‘강변’은 마음의 평정을 구할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일 터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수(繡)틀 속에 스스로가 마련한 내면적 상상의 세계이다.
그런데 화자가 무엇 때문에 ‘가슴 속 아우성’을 느끼며 마음이 어지러워진 것일까가 궁금해진다. 그 해답은 제5연에서 구할 수 있다. ‘사랑의 슬픔’으로 해서 화자는 괴로워하고 있으며 그것을 달래기 위해 수(繡)를 놓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임을 살아서 다시는 만날 수 없기에, 화자는 ‘극락 정토 가는 길’을 수(繡)틀 속에 그려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화자는 수(繡)를 놓는 행위를 통해 사랑의 슬픔을 극복하고 절대적인 구원을 얻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이해와 감상 2
이 시는 사랑과 절제의 시인으로 불리는 허영자의 대표작으로 ‘수놓기’라는 일상적 일을 통해 ‘세사 번뇌’와 ‘사랑의 슬픔’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체험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이자 핵심 소재인 ‘자수’는 시인에게 있어 실제적인 수놓기라기보다는 고뇌를 견디는 방법이요, 극기(克己)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모두 6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의미상 3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 단락은 1연으로 화자가 수를 놓는 일이 어떤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 마음 속의 고뇌나 슬픔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둘째 단락은 2~3연으로 오랜 번민을 가라앉히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심경에 다다르는 수놓기의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여러 가지 색실을 따라가며 화자가 수를 놓다 보면, 어느덧 ‘처음 보는 수풀’이나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그러므로 그 곳은 현실 세계가 아니라, 내면적 상상의 세계로 화자가 수를 놓으면서 되찾게 된 마음의 평화를 의미한다. 셋째 단락은 4~6연으로 수를 놓고 있으면 사랑의 슬픔도 이겨내고 번뇌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소망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1연의 ‘어지러운’과 2연의 ‘아우성’으로 암시되었던 고뇌의 내용이 셋째 단락에 와서 보다 분명해진다. 그것은 바로 화자를 오래도록 괴롭혀 왔던 사랑의 고뇌요 슬픔이다. 아마도 화자는 수를 놓는 행위를 통해 아픔을 극복하고 ‘극락 정토’라는 절대적 구원까지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허영자 시는 일반적으로 간결과 반복의 표현 특징을 갖는다. 간결함은 곧 함축성을 뜻하는 것으로 허영자의 경우, 행의 길이가 짧을 뿐더러 작품 전체의 길이까지도 짧다. 이 작품도 일체의 군말을 배제한 표현의 절제를 통해 고도의 압축미를 보여 준다. 또한, 전통적 서정을 주조로 하여 사랑과 기다림, 한과 고독의 본질적인 인간 내면을 구가하는 우리 여성 시단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이와 같은 언어 절제의 압축미를 통하여 시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 이해와 감상 3
수놓기라는 일상적 일을 통해 고뇌, 슬픔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체험을 노래한 시. 여성적인 소재와 언어, 감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으로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수놓기라는, 매우 익숙한 생활 체험을 제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수를 놓으려면 시선과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해야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고자 한 것은 이러한 집중을 통해 심적 갈등을 가다듬고 맑은 심성을 획득하는 체험이다. 작품 전체를 의미상의 단락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첫 부분(제1연) :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수를 놓음. 여기서 수놓는 행위가 무엇인가를 만드는 실용적 목적보다 마음 속의 번민이나 고통을 다스리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부분(제2, 3연) : 수를 놓는 동안에 번민은 가라앉고 아름다운 심성의 경지에 다다르게 됨. 셋째 연의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 강변'은 마음의 평온을 되찾으면서 만나게 되는 내면의 상상적 세계이다.
셋째 부분(제4~6연) : 수를 놓고 있으면 사랑의 슬픔까지도 참아 내고 번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듯 싶기도 하다는 내용. 둘째 부분에서 어렴풋이 암시되었던 괴로움의 내용이 여기에 와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오랜 동안 계속되어 온 사랑의 고뇌요 슬픔이다. 이 고뇌의 이유는 사랑의 길이 막혀 있거나 아픔을 극복하고 절대적인 구원까지도 얻을 수 있을 듯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작품의 구성은 이처럼 사상을 점층적으로 뚜렷하게 제시하여, 맨 마지막 부분(특히 5연)에 와서 핵심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다. 제목이자 핵심 소재인 자수(刺繡)는 바로 이와 같은 고뇌를 견디는 방법이요 극기(克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해설: 김흥규]
1) 허영자(許英子)
1938년 경상남도 함양 출생
1961년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2년<현대문학>에 <도정연가(道程戀歌>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3년 우리 시문학사상 최초의 여성동인회 <청미회> 조직
1986년 제20회 월탄 문학상 수상
1992년 제2회 편운 문학상 수상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
시집 :<가슴엔 듯 눈엔 듯>(1966),<친전(親展)>(1972),<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1977),<빈 들판을 걸어가면>(1984), <조용한 슬픔>(1990)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