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보컬리스트 출신 가수들
백 보컬리스트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다.
앨범에서, 혹은 공연장에서 주인공을 빛내주어야 그 역할을 완수하는 '제3의 무대장치'인 셈이다. 과연 백 보컬리스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진정한 스타로 탄생했는지 알아보자.
암을 극복한 사이클 선수 렌스 암스트롱과 약혼식을 올렸다가 파혼한 셰릴 크로우(Sheryl Crow)를 먼저 꼽아야 할 것 같다. 1994년에 솔로로 데뷔하기 전엔 마이클 잭슨이나 돈 헨리, 조지 해리슨 같은 대형 스타들의 백 보컬을 맡았다. 어쨌든 'All I wanna do'와 'Strong enough'가 들어있는 1집 <Tuesday Night Music Club >으로 柳石?민망하게도 31살의 나이에 그래미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 시대 최고의 디바로 꼽혔던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도 맨 처음에는 조연으로 경력을 쌓았다. 휘트니 휴스턴은 샤카 칸(Chaka Khan)과 2006년 1월6일에 세상을 떠난 소울 싱어 루 롤스(Lou Rawls)의 노래에서 화음을 불어넣었다. 그러니 나중에 휘트니 휴스턴이 샤카 칸의 'I'm every woman'을 리메이크 했을 때 본인은 얼마나 행복했겠고, 샤카 칸은 또 얼마나 뿌듯했겠는가?(아니면 그 반대였을지도..)
머라이어 캐리는 1988년에 'I still believe'라는 히트 곡을 부른 브렌다 K. 스타(Brenda K. Starr)라는 여가수의 백 보컬리스트면서 후배였다. 머라이어 캐리의 떡잎을 알아본 브렌다 K. 스타는 음반 관계자들이 모이는 파티에 머라이어 캐리를 일부러 데리고 갔다. 바로 거기서 당시 '소니 뮤직'의 사장 토미 모톨라와 이어지게 되니까 머라이어에게 브렌다 K. 스타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은인이다. 그래서 1999년에 'I still believe'를 리메이크해서 브렌다에게 조금이나마 로열티가 돌아갈 수 있게 한다.
'I'm your man'이나 'Everybody knows'의 주인공인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을 보조한 백 보컬리스트 출신의 결정적인 가수 두 명을 살펴보자.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와 로라 브래니건(Laura Branigan). 뻐드렁니를 가진 제니퍼 원스는 <사관과 신사 >의 주제곡인 'Up where we belong'과 <더티 댄싱 >의 주제가 'The time of my life'로 싱글 차트 1위의 영광을 두 차례나 경험한 여가수인데, 1970년대엔 레너드 코헨이 아끼던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제니퍼 원스가 자신의 곡인 'Famous blue raincoat'를 리메이크 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허락했다.
지난 2004년 8월26일에 천국의 계단을 밟은 로라 브래니건은 예쁜 외모 덕에 외화 시리즈에 얼굴을 자주 내밀면서 연기자로서도 꽤 성공을 거뒀다. 우리나라에선 <기동순찰대>로 방송된 <Chips>의 고정 게스트였다. 그녀는 'Self control'이나 'Solitaire', 'Lucky one' 같은 히트곡도 있지만 이탈리아의 칸초네 음악을 영어로 번안해 불러서 인기를 누렸다. 그게 그녀의 대표곡인 'Gloria'인데, 이탈리아 가수 움베르토 토치(Umberto Tozzi)의 원곡을 부른 것이고 나중 다시 움베트토 토치의 곡인 'Ti amo'를 영어로 리메이크해 불렀다.
이번엔 좀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99년에 'Believe'란 흥겨운 댄스곡으로 회춘에 성공한 셰어(Cher)도 실은 백 보컬리스트였다. 팝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프로듀서 겸 작곡가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멤버였던 그룹 테디 베어스(Teddy Bears)의 노래를 도왔었다. 결국 남편을 잘 만나 소니 &셰어(Sonny &Cher)를 결성해 1960년대 최고의 부부 듀엣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이제 남성 백업 보컬리스트 출신 가수들을 알아보자.
쿠바 핏줄을 가지고 있는 존 세카다(Jon Secada). 그는 바로 동향(同鄕) 출신인 글로리아 에스테판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Gloria Estefan &Miami Sound Machine)과 한솥밥을 먹었다. 글로리아와 에밀리오 에스테판 부부의 도움으로 1992년에 솔로 데뷔앨범을 공개한 존 세카다는 'Just another day'와 'Angel'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래미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다.
'Right here waiting'과 'Now and forever'가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발라드 가수로 잘못 알려진 록 가수 리차드 막스(Richard Marx)도 조연 출신이다. 그가 모셨던 주연은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 프린스(Prince)와 함께 흑인 남성 가수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한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였다. 그가 1983년에 발표한 앨범 <Can't Slow Down >은 바로 리차드 막스의 얇은 음색이 덧입혀진 명반이었던 것이다.
2005년 7월1일, 53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영원히 눈을 감은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 또한 1970년대부터 여러 선배 가수들의 음반에서 보컬 도우미 역할을 거쳐 1980년대와 1990년대 최고의 가수가 됐다. 그는 자신이 백 보컬리스트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그런 위치에 있는 실력 있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그 대표적인 가수가 바로 자신의 노래에서 코러스를 넣어준 리사 피셔(Lisa Fischer)일 것이다.
지난 1991년에 발표한 'How can I ease the pain'이란 곡으로 패티 라벨(Patti LaBelle)과 공동으로 그래미 리듬 앤 블루스 최우수 여자 가수상을 수상하며 급부상한 그녀는 1992년에 내한 프로모션 투어를 갖기도 했다.
<그 외 백보컬리스트 출신 가수들>
니콜렛 라슨(Nicolette Larson) - 1979년에 'Lotta love'로 인기를 얻은 그녀는 바로 닐 영(Neil Young)의 보컬 서포터였다. 이 'Lotta love'는 원래 닐 영의 오리지널 곡.
키키 디(Kiki Dee) - 엘튼 존(Elton John)과 'Don't go breaking my heart'를 듀엣으로 불러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그녀, 누구의 백 보컬리스트였겠는가?
이본느 엘리만(Yvonne Elliman) - 매력적인 용모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지원자였다.
리사 키스(Lisa Keith) - 1990년대 중반 'Better than you'라는 상큼한 노래를 발표하곤 깔끔하게 사라진 전형적인 원 히트 원더 리사 키스. 그녀는 트럼펫 연주자이자 레코드사 사장인 허브 알퍼트(Herb Alpert)의 음반에서 노래를 부른 여가수였다.
브렌다 러셀(Brenda Russell)- 'Piano in the dark'와 'Le restaurant'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그녀는 엘튼 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베트 미들러(Bette Midler)의 조력자였다.
올레타 아담스(Oleta Adams) - 브렌다 러셀의 원곡인 'Get here'를 리메이크해서 1991년에 빌보드 싱글 차트 탑 텐을 기록한 올레타 아담스는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와 'Shout'로 유명한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의 백 보컬리스트였다.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 - 그녀가 모신 주연은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였다. 나중에 클리프보다 더 유명해지자 'Suddenly'를 함께 불렀다.
사만사 생(Samantha Sang) -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가 재해석한 'Emotion'의 주인공. 하지만 1978년 3위까지 오른 이 노래는 엄격히 말하면 비지스(Bee Gees) 노래이다. 깁 형제들이 작사, 작곡, 제작, 그리고 백 보컬까지 꼼꼼하게 손을 봤기 때문이다. 사만사 생은 예전부터 비지스의 음악적 '식솔'이었다.
프레디 잭슨(Freddie Jackson) - 둥글둥글하게 생겨 텔레비전 시트콤에 맞는 얼굴을 가지고 있는 프레디 잭슨은 198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Rock me tonight', 'You are my lady' 같은 말랑말랑한 R&B 발라드로 많은 사랑을 받은 가수인데, 멜바 무어(Melba Moore)와 에벌린 킹(Everlyn King)을 도왔다.
폴라 콜(Paula Cole) - 1990년대 후반에 'Where have all the cowboys gone'과 'I don't want to wait'로 그래미 신인상을 수상한 그녀는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의 순회공연 때 백 보컬을 맡은 사람이다. 피터 가브리엘이 공연에서 'Come, talk to me'와 'Don't give up' 같은 노래를 부를 때 폴라 콜은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와 케이트 부시(Kate Bush)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결코 미녀라고 할 수 없는 폴라 콜이 가장 예뻐보였을 때는 바로 그 공연이었던 것 같다.
미니 리퍼튼(Minnie Riperton) - 새소리가 기분 좋게 삽입된 'Lovin' you'란 노래를 부른 그녀. 샤니스(Shanice)가 재해석하기도 했던 이 곡을 부른 미니 리퍼튼도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식구였다. 하지만 31살이던 1979년, 암은 그녀를 영원히 데리고 갔다.
캐린 화이트(Karyn White) - 캐린 화이트는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음반을 제작한 지미 잼(Jimmy Jam), 테리 루이스(Terry Lewis) 콤비에서 테리의 부인이다. 1990년을 전후한 시기에 'The way you love me', 'Superwoman', 'Romantic', 'Secret rendezvous' 같은 곡들로 집중적인 인기를 누린 그녀도 1980년대 중반까지는 펑크(funk) 뮤지션인 오브라이언(O'Bryan)의 뒷바라지를 했다.
저메인 스튜어트(Jermaine Stewart) - 1986년에 'We don't have to take our clothes off'라는 야릇한 타이틀의 노래로 반짝 인기를 얻은 저메인 스튜어트는 흑인들이 단체로 나오는 쇼 프로그램 <Soul Train>의 댄서였다가 샬라마(Shalamar)나 템테이션스(Temptations), 그리고 보이 조지(Boy George)의 백 보컬리스트로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1997년 3월 17일에 눈을 감았다.
이렇게 보니 백 보컬리스트의 대부분이 흑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확실히 흑인은 노래와 춤에 있어 DNA 구조가 근본적으로 최적(最適)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가창력이 우수하니까 많은 가수들과 음반 제작자들이 그들을 끌어들여 미흡한 부분을 그들의 실력으로 커버했을지도 모fms다. 그런 면에서 '블랙 아메리칸'들은 늘, 아니면 첫 시작이 백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불리했을 것이다.
이들이 남들 노래를 받쳐주면서 내공을 쌓았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사실 조연 경험이 많아야 주연을 맡았을 때 제대로 실력이 나오는 것 아닐까. 최근 '마주치지 말자'라는 곡으로 성공적인 컴백을 한 장혜진도 첫 독집을 내기 전에는 백업 보컬리스트였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에도 참여했다. 그녀의 경우도 백 보컬리스트 경험이 나중 빼어난 가창력의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백업 보컬리스트들을 이제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엄연한 주인공들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들도 다르게 들려질 수 있으니까. 밤하늘에는 달과 별만 있지 않다. 어둠이 있기에 달과 별이 빛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