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년 만에 다시 찾은 축복의 땅
찬란한 내포문화의 중심 당진
일반적으로 나루(津)는 대형선박이 입출항하는 항만을 말하고 포(浦)는 어선들이 드나드는 포구를 의미한다. 기원전부터 중국과 뱃길을 개척하고 교역을 하던 한진(漢津), 당진(唐津)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무역항이다. 돛을 단 무동력선이 황해(서해)의 조류를 따라 한 달정도면 중국의 상해까지 도달한다. 또한 해안을 따라 항해하면 개성-벽란도-백령도-중국(장안·서안)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실크로드 시발점이 당진이었다.
중국(당나라)과 교역이 성행하였던 신라 때에는 육상과 해상물류를 당진에서 총집합하는 집합물류의 항구인 대진(大津)이 형성되었다. 이와 같이 당진을 중심으로 항만과 포구가 잘 발달되고, 인접하여 곡창지대가 어우러져 내포(內浦)문화를 형성하였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마라난타가 진(晋)으로부터 불교가 들어온 이후 564년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고대면 진관리에 영랑사(影浪寺)를 창건하고, 이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면천면 성하리에 영탑사(靈塔寺)를 세워 명문호족(박술희, 복지겸)들을 중심으로 높은 불교문화를 이루었다.
카톨릭은 1785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영세(베드로)를 받고 귀국하여 주일마다 예배하였는데 이 집이 지금 명동성당 터이다. 이후 한국사람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이 당진에서 배출되었고, 1890년에 설립된 합덕성당은 내포(內浦)지역 천주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기독교는 1895년 면천군수인 류제가 아펜셀러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받고 초가 8칸의 예배당(지금의 면천감리교회)을 마련하여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1908년에는 면천감리교회가 중심이 되어 면천초등학교를 열고 신학문을 가르치는 당진최초의 초등학교가 되어 이미 개교 100주년을 넘겼다.
전국성장률 1위에 걸맞은 당진
영광의 문화를 꽃피웠던 당진이 1100년 만에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당진은 충분히 보호되고 관리되어야 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기업가들의 입장에서 우리 당진은 가나안 땅과 같은 곳이다. 충청남도가 전국 경제성장률 1위이고 그 중 당진이 1위이다. 당진의 땅값 상승률도 전국 평균 1위를 지키고 있다. 인구증가율도 전국 1위이고, 물가도 전국 1위쯤 되는 듯하다. 전남 광양과 경북 포항의 물가가 높다하는데 당진은 더 높다. 다만 충청남도에 대한 정부의 예산편성 증가율은 전국 꼴찌이다.
이는 당진이 경쟁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도 토지는 저평가 되어있고, 기업활동을 위한 훌륭한 인프라가 구축되어져 가고 있다. 당진에 둥지를 틀기 위해 용틀임하는 기업과 주민들간의 갈등도 발생하고 서로간 대립도 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개발과 보존, 기업과 농촌의 상생을 놓고 의견조율 과정에서 고통이 따르고 시간도 필요로 한다.
발전과 개발을 놓고 인접도시와 경쟁하면서 지자체간 저강도의 분쟁도 있다. 평택시와 항만의 명칭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여 평택항이 평택당진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제는 서해대교 아래에 있는 서부두와 동부두를 놓고 또 다시 한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는 항만물류기업이 입주하여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곳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세수입과 관련있고 지역 주민들의 자존심의 문제로 비화된다. 도시가 발전하고 문화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면 서로 상생 협력하겠지만 아직은 이르다.
산업과 문화, 맑은 영혼들이 숨쉬는 당진
당진의 성장 동력은 환경을 전제로 한 항만과 철도, 철강산업이다. 철도는 북한의 닫힌 마음을 열게하고 중국과 러시아, 유럽을 잇는 대동맥이다. 철도는 항만에 비해 물류시간을 1/10로 줄일 수 있다. 황해경제자유지역과 인천의 송도경제특구는 남북철도 사업의 성공과 자유로운 물류의 통행을 전제로 추진되던 프로젝트이다. 지난 정부에서 북한과 15~30년 장기 임대계약으로 남북경제협력을 추진하다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30년 임대 광산채굴권 및 골재채취권, 300만평의 OO재배단지 등 남쪽의 기술과 북의 노동력이 합하여 시너지를 낼수 있는 황금알 낳는 산업들이 이제는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너무 빨리 달려온 당진이 헐떡이면서 잠시 뒤를 돌아보고 있다. 빵으로만 살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화와 도덕의 바탕 위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은 유지되어야 한다. 사전적 의미로 “불특정 다수에게 건강과 생활환경에 침해를 주는 재해 현상”이 공해이고 “원하지 않는 소리”를 소음이라 한다.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같은 종끼리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기도 한다. 초식동물들은 새끼를 제대로 낳지 못하고 유산하거나, 사산, 조산을 한다. 사람들은 이유 없이 싸움을 하고 언어가 포악해 지고 있다.
이들에게는 맑은 영혼과 정신이 필요하다. 충분한 교육 인프라는 자유시민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과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를 위한 필수요소이다.
기업과 주민들이 공존하는 당진
기업이 입주함에 따라 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당연하다. 환경만을 고려한다면 개발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럴 수만도 없다. 지역주민들의 눈과 입, 귀를 막고 밀실에서 추진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물론 기업들이 들어옴에 따라 당진의 경기가 활성화된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실 당진의 경제가 활황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비중은 부동산 경기이다. 연로한 어르신들은 생산성이 낮은 토지를 내다 팔고 있다. 또한 산업단지에 토지를 수용당한 주민들이 아파트를 새로 사고, 가재도구들을 새로 구입한다. 이것이 당진경제의 현주소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곳 주민들 중 토지도 없고, 집도 없는 사람들은 오갈 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보상비도 없이 이사비용으로 수백만 원을 받는 것이 전부이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승자는 이익을 독식한다. 이마트의 피자, 롯데마트의 치킨이 그런 것처럼 당진에서도 대기업의 횡포에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주민들은 이주민이란 이름으로 법에 의거 생면부지의 땅으로 이동한다. 이들에게는 하루 세 끼니를 때울 먹거리가 없다. OECD국가 중 꼴찌의 복지예산을 편성하는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국가나 지자체에서도 이들을 돌아 볼 마음도 갖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이들을 돌아보지도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당진만이라도 함께 상생하였으면 한다. 기업도 최소한의 선한 양심을 보이고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부자만 더욱더 잘 사는 나라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찾아 온 기회
흔히 뉴욕, 도쿄, 런던, 서울이 가장 공해가 심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곳으로 몰려든다. 청정하고 깨끗한 아프리카와 강원도에는 사람들이 떠난다. 경제(돈)와 문화가 있고 삶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당진은 돈 있는 기업들의 배를 많이 불려 주었다. 그런 과정에서 일반시민들의 주장과 인권, 권리 등은 찾기 어렵고 철저히 외면당하였고 개발과정에서 발생되는 자연스런 현상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이해득실을 따져 볼 때이다.
필자는 당진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35년만에 귀향을 하였다. 이곳에 부모님이 계시고 자주 내려왔고, 친구와 친척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타동을 타야만 했다. 하물며 직장을 찾아 당진에 오신 분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한다. 필자도 직장을 따라 24번이나 이사를 하였고 아이들은 7번씩 전학을 하였지만 당진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토박이도 타동을 타는데 하물며 외국인 근로자는 어찌하며, 다문화 가정은 또 어떨까? 이제 당진은 토박이 비율이 점차 줄어든다. 당진의 여론을 이끌어 갈수도 없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당진에서 당진향우회를 할 수도 있음을 명심하여야한다.
직장을 찾아 이 곳 당진까지 찾아 온 훌륭한 인재들이 당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당진이 배출한 인재들도 당진으로 돌아올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들을 진정 따뜻한 가슴으로 맞이하여야 한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종교단체와 사회단체가 감당하여할 책임이다. 특히 경외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예수공동체는 이 일에 적극 나서야 하는 사명이 있다. 교회에서, 다락방에서, 둘 셋이 모인 곳에서 기도에 전혀 힘쓸 때이다.
첫댓글 세상의 엄청난 재앙과 변화를 느끼면서 ....당진이야말로 축복의 땅임을 감사케 됩니다. 꿈을 꾸는 자들에겐...꿈을 이루려 애쓰는 자들에겐 축복의 기회가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