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람의 월정사가 있는 오대산 등정
새벽부터 서둘러서 집결지 종로3가에 가니 출발시간보다 50분이나
빨라서 지하 역사(驛舍)에서 기다리다 버스정류장에 올라가니
오랫만에 보는 대진관광버스에 승차하여 사당동을 거쳐 쉼없이
질주하던 버스안에서 한라산 원정산행 이 후 정확히 24일만에
그동안 서울 외곽 산행길에서 만나기도 했지만 원정산행길에서
그립고 보고싶던 그 때 그 사람들 다시 만나니 내 맘이 사랑덩어리도
아닌데 계절이 청아(菁芽)한 꽃피는 봄 날 호반의 벤치에서 내님을
만나 듯 소시적 이성을 만나 데이트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휴게소에 들러 늦은 아침식사를 할 땐 작은 손인데도 마음이 커서인지
방장님의 손길이 주걱을 살 짝 돌려가면서 듬북 퍼 준 찹쌀밥으로
식사를 하면서 밥그릇을 들고 누구 옆에 앉을까하고 서성이는 이를
입으로 손으로 불러다 마주 앉게하여 반찬준비를 못 해온 신세를 면하면서
주거니 받거니하는 그 마음과 그 밥맛은 한 겨울 따뜻한 온돌방에서
깨가 쏟아지는 젊은 한 쌍이 겸상해서 먹는 아침밥이 이토록 꿀맛일까할
정도로 맛이 좋으니 나눔의 정도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열 한시가 좀 넘어서 상원사로 가는 길목에 도착하여 한아름이 넘는
전나무 숲길에서 십여분 동안 힐링걷기를 하다가 다시 버스에 승차해가니
오대산 등정(登頂)이 시작되는 월정사(月精寺)의 말사(末寺)인 상원사
(上院寺) 경내에 도착해서 두 팀으로 정해서 A팀은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비로봉 상왕봉 두로령 북대사 주차장으로의 종주를 하고 B팀은 적멸보궁
(寂滅寶宮)이나 비로봉(毘盧峰)까지만 오르다가 원점회귀하는 순서로
가는데 나는 언제 또 다시 오르랴싶어서 오대산의 진면목을 보고
체험하기 위해 A코스로 오르면서 석가모니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찰 당우(堂宇) 가운데 하나이며 이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인 적멸보궁과 오대산의
주봉인 해발 1563m인 비로봉에 올라 시야에 펼쳐진 사방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장관(壯觀)이었고 크고 작은 나무들 가지의 눈꽃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설경에 펼쳐진 상고대 모양은 환상(幻像)이었습니다.
높이가 비교적 낮고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상고대 나무가지가 이리저리
뻣쳐있는 구릉지(丘陵地)에 10여명이 앉아서 각자가 준비해간 도시락을
펼쳐놓으니 김에 싸먹는 과메기하며 푸짐한 성찬으로 점심을 먹는데
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머리위의 가지에서 상고대가 우수수 떨어지니
밥에다 눈송이를 비벼먹는 꼴인데도 아!! 그 밥맛 말로는
표현하기 힘듭니다.
상고대가 이뤄진 설경에 넋이 나간 듯 젊은 두 분 진사가 찍기에도
바빠서 날 더러 폰으로도 찍어달라는 주문이 폭주를 해서 두꺼운
낯짝이듯 염치 불고하고 그 씩씩하고 아름답고 고운 얼굴앞에서
자세를 바로 잡으라 요구하면서 폰을 드리대고 사정없이 찍어댔는데
사진이 시원찮게 나왔더라도 양해 바랍니다.ㅋㅋ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서쪽이 장령(長嶺), 북쪽이
상왕(象王), 남쪽이 기린, 동쪽이 만월, 복판이 지로·풍노인데,
다섯 봉우리가 고리처럼 벌려 섰고, 크기와 작기가 고른 까닭에
오대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현재 상왕봉이 속한
오대산에 대한 기록으로, 당시까지는 상왕산 현재의 호칭인
상왕봉은 태백산맥 줄기인 해안산맥에 솟아 있으며,
비로봉·두로봉·소대산 등이 주위에 있고 사방이 비교적
급경사이며, 남쪽과 북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물은 오대천과
계방천으로 각각 흘러듭니다. 동남쪽 기슭에는 북대사가
있는 높이 1.493m의 상왕봉과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사이에 있는 고개인데 높이는 1,310m입니다.
오대산 안에 위치한 고개이고, 오대산으로 등반하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과거 지방도
제446호선이 이 곳을 통과하게 지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곳인 두로령(頭老嶺)과
북대사 등을 경유하여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오후 네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고 뒷풀이를 하기위해 주문진으로
항해 가는데 네 분이나 멀미를 해서 안쓰럽기도 했지만
복어요리로 즐거운 뒷풀이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상원사의 유래
상원사 본전인 문수전(文殊殿)
상원사는 705년(신라 성덕여왕 4)에 신라의
보천과 효명 두 왕자가 오대산 중대에 세운
진여원(眞如院)을 시작으로 자장율사가 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로 월정사에서 약 9㎞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상원사는 동종(국보 36),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221),중창권선문
(국보 292)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상원사 안내석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과 "문수성지
(文殊聖地)"를 새겨 놓았습니다.
상원사에는 '단종애사'의 악역 세조에 얽힌
일화가 있다.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세조는 얼마 못 가 괴질에 걸리게 된다.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세조가 월정사에
들러 참배하고 상원사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물이
맑은 계곡에 이른 세조는 몸에 난 종기를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
몸을 씻고 있었는데, 동자승 하나가 가까운 숲에서
놀고 있었다. 세조는 그 아이를 불러 등을
씻어달라고 부탁하며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임금께서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직접 보았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라고 대답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깜짝 놀란 세조가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의 몸을 괴롭히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이다. 감격에 겨운 세조는
화공을 불러 기억을 더듬어 동자로 나타난
문수보살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고, 그 그림을
표본으로 하여 나무를 조각하였다. 이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221)을
상원사의 법당에 모셨다.
다음 해에 상원사를 다시 찾은 세조는 또 한 번
이적을 경험했다. 상원사 불전으로 올라가
예불을 드리려는 세조의 옷소매를 고양이가
나타나 물고 못 들어가게 했다. 이상하게 여긴
세조가 밖으로 나와 법당 안을 샅샅이 뒤지게 하자
, 탁자 밑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이 숨어 있었다
. 고양이 덕에 목숨을 건진 세조는 상원사에
'고양이의 밭'이라는 뜻의 묘전을 내렸다. 세조는
서울 가까이에도 여러 곳에 묘전을 마련하여
고양이를 키웠는데, 서울 강남구에 있는 봉은사에
묘전 50경을 내려 고양이를 키우는
비용에 쓰게 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겪은 세조는 그 뒤에 상원사를
다시 일으키고 소원을 비는 원찰로 삼았다.
오늘날 건물은 1947년에 금강산에 있는
마하연 건물을 본떠 지은 것이지만, 이름 높은
범종이나 석등은 이미 그때 마련된 것들이다.
<출처;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적멸보궁이 있는 상원사>
2015-02-12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