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2장 15~17절, 누가복음 4장 1~2절, 로마서 5장 18~19절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장 15~17절, 새번역>
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하여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그 기간이 다하였을 때에는 시장하셨다. <누가복음 4장 1~2절, 새번역>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8~19절, 새번역>
'악'이란 무엇일까요? 너무도 긴 시간 '악'에 대한 질문이 있어왔기에 이미 나온 답들도 많고, 저마다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가슴에 와닿는 악에 대한 정의가 있다면 바로 예레미야 2장 13절을 인용하여 설명한 존 파이퍼 목사입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짧게 들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VHt17YfPw4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은 것이다." <예레미야 2장 13절, 새번역>
악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완전하지 않은 샘을 판 후 그것을 생수의 근원으로 여긴 것이라는 존 파이퍼 목사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실로 악이란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나의 것'을 위해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내가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하는 욕심, 그 욕심으로부터, 그 피조물의 창조주를 향한 불순종으로부터 악이 발현되어 집니다. 그리고 그 악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죄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포기하는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면서 사망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 새번역>
그렇다면 과연 악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일까요? 너무도 많은 시간 고민했던 일이었는데, 이번에 교회에서 '누가복음' 성경공부를 진행하게 되어 다시금 정리해서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악에 대한 모든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악은 존재하는가?", "'선하신' 하나님이, 완전한 '선'이신 하나님이 악도 창조하셨을까?" 이런 질문이 생기실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이신 하나님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이 완전한 '선'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의 고백에서도 하나님 외의 선한 분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마가복음 10장 17~18절, 새번역>
그래서 완전한 선이신 하나님은 악을 결코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에덴동산'에는 악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뱀을 악으로 보면서 뱀을 악의 근원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악이 에덴동산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에덴동산이 완전하고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표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실제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그분의 선하심으로 인하여 완전하고 온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나라였기에 악은 그곳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고로 뱀도 악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뱀은 '유혹하는 존재'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 새번역>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악의 영역'이라는 부분에서 선악과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에덴동산 안에 넘지 말아야 할 선, 명령, 약속을 허락하셨습니다. 만약 그 약속을 어기면 '죽음'이라는 녀석이 찾아올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차라리 선악과를 만들지 말았으면 어땠을까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부분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만들지 않으셨다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피조물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부여 받았지만, 아담과 하와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심으로 더욱 더 강력하게 '선악과'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유의지로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말씀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아무리 뱀이 유혹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악'은 결코 발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악'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불순종 때문입니다. '악의 영역'으로 만들어 놓으신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 모두 먹고 말았습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충분히 말씀으로 이겨낼 수 있었는데, 말씀으로 이기지 못했기에 '불순종'을 선택하고,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에 얼마나 선악과가 먹음직스럽고, 보암직도 했겠습니까? 사람을 하나님처럼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악의 영역'인 불순종을 선택했고, '악'이 발현되었습니다. 어떻게 악이 발현된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창세기 3장 7절, 새번역>
이것이 첫번째 악이 발현된 현상입니다. 수치심입니다.
그 남자와 그 아내는,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와 그 아내는 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창세기 3장 8절, 새번역>
이것이 두번째 악이 발현된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수치심과 교만은 계속해서 다른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변명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원망하게 만듭니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불순종을 통하여 악이 발현되자 아담과 하와에게는 유죄판결이 내려집니다.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완전한 죽음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성경은 끝이 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살아 있고, 이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갈 방법에 대해서 계속해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집트 백성에게 창세기 이야기를 들려줄 때 모세의 마음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날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방법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긍휼과 사랑과 은혜로 가득하신 선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불순종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의 변호사가 되어줄 '메시아'를 허락하실 것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는 놀라운 비교 지점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9절, 새번역>
특별히 바울은 로마서 5장을 통하여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 이전에 이미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 모두 등장하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일화입니다. 왜 메시아의 공생애 시작에 이 이야기로 시작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바로 '악'에 대한 이해 때문입니다.
창세기 저자와 각 복음서의 저자들은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을 터인데 어떻게 이런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저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을 믿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의 일화로 가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하여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그 기간이 다하였을 때에는 시장하셨다. <누가복음 4장 1~2절, 새번역>
어떻게 한 눈에 비교가 되십니까? 표로 잠깐 설명 드리겠습니다.
창세기 3장 | 누가복음 4장 1~13절 |
에덴동산 (위에서 언급한 대로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 성령이 가득하여 ('성령의 충만함'이야말로 '악'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가장 좋은 표현) |
아담과 하와 | 예수 그리스도 |
뱀 | 마귀(악마) |
선악과에 대한 불순종 요구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찬스) | 자신(마귀)의 말에 대한 순종 요구 (반대로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찬스) |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기까지! | 사십 일의 금식으로 심히 허기진 상황 |
뱀의 유혹에 넘어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 |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음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 |
출산의 고통과 노동의 수고 | 천사들의 수종 |
에덴동산에서 쫓겨남 | 공생애의 시작 |
아담과 하와는 '악의 영역'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악'이 발현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훨씬 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하여 '악'이 발현된 가능성조차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가 큰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악의 영역'에서 악이 발현되도록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악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의 영역'을 만드심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정확히 하셨고,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불순종으로 악을 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선'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공생애를 시작할 때, 진짜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결심했을 때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이토록 소중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이사야 40장 8절, 새번역>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8절, 새번역>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제가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이 나무랐다. "주님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 새번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계속해서 에덴동산에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그 놀라운 축복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악의 영역'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닫고,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고, 불순종할 수 있지만, 순종함으로, 내 뜻 대로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결론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악을 발현시키시겠습니까? 아니면 악은 세상에 등장하지도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겠습니까?
안타깝게도 피조물인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이 땅에 수많은 '악'을 창궐시켰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욕심이란 악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악이 만든 죄가 넘쳐나고, 죽음의 길이 목전에 있는 것 같은 시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초기 교회에서부터 이렇게 우리를 권면했던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새번역>
그렇다면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 신앙생활, 기도, 찬양, 예배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말씀'이면 승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열두제자 이외의 다른 제자들은 이미 그 승리를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일흔[두] 사람이 기쁨에 차서, 돌아와 보고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복음 10장 17~19절, 새번역>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곧 말씀이기도 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열둘을 한 자리에 불러놓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게 하시려고 그들을 내보내시며 <누가복음 9장 1~2절, 새번역>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공격할 수 있는 검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의 검'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에베소서 6장 17절, 새번역>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새번역>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 모두 말씀으로 살아갑시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당신들도 알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8장 3절, 새번역>
첫번째로 악은 존재하는가? '선하신' 하나님이, 완전한 '선'이신 하나님이 악도 창조하셨을까? 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악의 영역'은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악의 영역'을 선택하는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악'이 발현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악'을 발현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유의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사용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결코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결코 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선포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 새번역>
마지막으로 이 자유를 가지고 다음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계속 드러나게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해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널리 퍼지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도행전 12장 24절, 새번역>
https://www.youtube.com/watch?v=ejhDbsoRqDI
https://www.youtube.com/watch?v=bYREvfRoZu0
https://www.youtube.com/watch?v=FgbMlQg1sVs
https://www.youtube.com/watch?v=D_AEQD6q7pU
https://www.youtube.com/watch?v=t7T2yMDTvgE&list=PLVbVhDrpd5BfwFUzCYS-5-pZLF5BQ5gKF&index=51
https://www.youtube.com/watch?v=aydiFJlFyY8&list=PLVbVhDrpd5Bfwikav2hd2MJB2l57Fp23E&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