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 2002년 1월 23일
구 간 : 국사봉 ~ 덕고개 ~ 248.5봉(△248.5m)
날 씨 : 눈 그리고 맑음
도상거리 : 12km(잃어버린 산줄기:6km) 산행시간 : 5시간 55분(접속시간 포함)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여 소한에 이를수록 추워지며 1월 15일 경 대한에 가까워지면서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 대한이 지나면서 추위는 수그러들기 시작하여 속담에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는다.'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는 이야기가 생겼다할 만큼 푸근한 것이 보통이다.
한동안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던 날씨는 마치 한 겨울 속에 때아닌 봄날 같더니 대한이 소한에 질세라 맹위를 떨치며 추위가 몰려온다. 전국이 대체로 맑겠으나,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및 제주도지방은 지형적 영향으로 오전 한때 구름 많고 눈(강수확률 30~40%)이 오는 곳이 있겠음.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4도에서 영하 2도...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생긴 일기예보에 대한 과민 반응, 추위 때문인지 열성이던 정맥꾼들 마저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도 지각을 하지 않던 김수남씨가 20분이나 늦게 도착하여 하마터면 서초구청 앞에서 기다리던 조랑말 구용회씨가 추위에 지쳐 포기하고 들어갈 뻔한 했다니, 9개 정맥을 향해 가는 길은 너무나도 멀고 험난한 길...
9명의 정맥꾼들을 태운 승합차는 지난번 내려섰던 되재마을을 통과한다. 조선시대 중엽에 한양에서 널리 알려진 지관 한사람이 묘 자리를 찾기 위해 금북정맥 줄기를 따라 오다가 지금의 사현리에 이르러 광정 쪽을 바라보다가 지형이 정안천으로 인해 뚝 끊어진 것을 보고 묘 자리 좋은 곳이 없어서 한양으로 되돌아갔다 하여 되재라 부른다나...
장수마을로도 유명한 인적이 없는 마을길을 통과하고 만나는 비포장 길을 따라 올라선 곳이 지도상에 중광목장으로 표기된 곳이다. 현재는 목장 건물을 무속인 들이 차지하고 있고, 바로 옆에 조립식 건물 한 동이 새로 들어섰는데 관상용 새를 키우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있었다.
10시 20분 중광목장을 뒤로 되재고개를 찾아 오르는 계곡에는 봄에 전령사인 버들강아지가 정맥꾼들을 맞는다. 버들강아지... 누구의 글이던가? 어름장 속으로 물이 졸졸 흐르는 냇가에는 봄이 되면 언제나 버들강아지가 탐스러웠습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화병에 버들강아지 한 묶음이 오늘은 우리 집에도 봄을 가져왔습니다.
인적이 끊긴 산판길엔 잡목들이 길을 메우고 있고 한동안 오르다가 만난 갈림길에서 계곡을 버리고 왼쪽으로 산허리를 돌아가는 산판길을 따르다보니 길은 끊기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능선을 향해 길 아닌 수직에 가까운 급사면을 올라 능선에 붙으면서 만나는 정맥길...
10시 55분 반가운 정맥길이다. 내림막길이 시작되면서 곧이어 만나는 능선분기점은 직선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팍 꺾으면 내려서는 급경사의 눈길이다. 눈이 조용히 내리기 시작한다. 충남지방에 많은 눈이 내렸다고 했는데 다행이 그리 많이 쌓여있지 않아 오늘 종주길이 무난할 것 같다.
11시 지난번 무심코 지났던 되재고개다. 되재고개는 예전 원터에서 되재마을로 넘나들던 고개라고 한다. 오른쪽으로 시원하게 달리는 23번 국도를 내려다보며 완만한 능선길을 거침없이 달리는데 잠자고 있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찬 기운이 옷깃을 스친다.
11시 08분 능선분기점이다. 왼쪽에 있는 오늘의 최고봉인 국사봉으로 향한다. 사실은 먼저 번에 올랐었지만 저절로 그 쪽으로 발걸음이 돌아간다. 2분 후 국사봉(△402.7m)에 오른다.
와! 국사봉... 안개비 속이 아니라 사방이 확 트인 국사봉이다.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주름진 산릉들이 밀려오는 듯하다. 지난번 안개비 속에 달려왔던 정맥능선에는 안개 속에 우뚝 서있던 괴물 같았던 송전탑이 곳곳에 서있고 그 후유증으로 생긴 생채기들...
산이 수려하고 아름답다 해서 부른다는 국사봉, 하얀 세상에서 만나는 국사봉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남쪽으로 넓은 정안들이 내려다보이고, 역시 23번 국도가 시원스럽다. 이제 몇 구간을 같이 달려왔는데 헤어질 시간이다. 공주여 안녕...
11시 16분 능선분기점으로 다시 되돌아오니 먼저 번 올랐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간 조랑말 구용회씨 그래도 기다려준 김수남씨가 고맙다. 내리막길이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 군데군데 노간주나무가 버티고 서있고 호남정맥에서 웬수 덩어리인 진달래 나뭇가지가 옷깃을 붙잡는다.
11시 21분 능선분기점이다. 오른쪽으로 내리막길이 가팔라진다. 왼쪽으로 작은 계곡이 시작되고 있고, 좀 더 높아 보이는 지릉이 따른다. 지금 내가 가고있는 이 길이 정맥길인가? 정말 정맥의 마루금은 오묘하게 이어지고 있다. 희미하지만 끊기지 않고 이어나가고 있다. 잠시 후에 맛보는 아픔을 그 때만해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잠시 멈추었던 눈이 살며시 내리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 임도가 내려다보이고, 깊은 계곡 아래로 농촌 마을도 보이는 듯하다. 묘지 공터를 지나 올라선 곳이 능선분기점이다. 펑퍼짐한 능선분기점에서 왼쪽 길을 버리고 직진한다. 전면으로 능선에 걸려있는 송전탑을 보며 간다. 잠시 봉에 올랐다가 왼쪽으로 내려서고, 다시 안부를 통과하며 오르는 길에 오른쪽 아래로 작은 저수지도 확인 할 수가 있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며 완만하고 펑퍼짐한 정맥은 다시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틀면서 송전탑 오른쪽에 있는 봉을 향하여 방향을 틀며 오른다.
11시 40분 능선분기점이다. 왼쪽으로 송전탑을 향해 간다. 다시 1분도 채 안 돼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간다. 쭉쭉 미끄러지는 내리막길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바동대며 간다. 길이 완만해 지면서 안개 속에 괴물 같았던 송전탑이 바짝 다가와 있다. 그 옆으로 자갈이 깔린 임도가 내려다보인다. 소나무와 노간주나무가 빼곡이 들어차 있는 숲을 헤치며 통과한다.
11시 45분 123번 송전탑이다. 왜 빨간 페인트를 칠해 놓았을까? 송전탑이 서있는 임도를 가로지르고, 소나무와 노간주나무가 지키고 있는 숲길을 헤치며 오른다. 오른쪽으로 희미한 길이 나있고 정맥은 왼쪽길이다. 중키의 누렇게 죽어 가는 소나무 터널 숲을 지나고, 내림길에 한눈을 팔다 엉덩방아를 찧는다. 아이고 아파라... 봉을 넘으면서 앞에 또다시 송전탑이 나타나고, 임도가 마루금 가까이 따르고 있다.
11시 50분 122번 송전탑이 서있는 임도에 내려선다. 이곳에서 잠시 한눈을 팔다보면 과외공부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훤하게 나있는 내리막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소나무 숲을 보면 선답자들의 리본을 확인 할 수가 있다. 능선에 바짝 붙어 따라오는 임도, 배수관계로 파 놓아는 지 능선을 끊어 놓아 잠시 임도에 내려서지만 다시 능선을 고집한다.
그렇게 따라오던 임도가 콘크리트포장길이 되면서 왼쪽으로 활처럼 휘며 내려서고, 정맥은 완만한 오름길이 좁은 날 등이다. 봉을 하나 넘으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거치적거리는 잡목들을 헤치며 묘 1기를 통과하여 십자로 안부에 내려선다. 왼쪽으로 쇠내골로 내려설 수가 있고, 오른쪽으로 압실로 내려설 수가 있다. 쇠내골은 예전에 소와 금이 많이 났다고 한다.
중키의 소나무 숲길이다. 오늘은 유난히 ‘길 따라 정맥 따라’ 건건산악회의 리본이 눈에 많이 띈다. 능선분기점이다. 왼쪽 길로 들어선다. 내리던 눈은 멈추었지만 간간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한차례 가파르다가 완만해지면서 바위들이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는 봉에 오른다. 이어 평탄하게 이어지는 정맥엔 준과 희의 리본이 반갑다. 드디어 너머로 군부대 철조망과 초소가 시야에 들어온다. 올 것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12시 20분 358봉이다. 참호가 자리잡고 있고, 쇠파이프로 만든 구조물이 있다. 군 시설만 보고도 놀라는 나에게 “자라보고 놀란 가슴(놈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속담 한마디를 읊는 구용회씨... 내리막길엔 군 통신 선이 거치적거린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정맥은 갈참나무 군락지를 지나 내려선 곳이 십자로 안부다.
12시 25분 십자로 안부에서 30-40m쯤 가파르게 올라선 곳엔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왼쪽으로 틀며 이어지다 북으로 뻗어나가는 정맥엔 철책선 아니 철조망이 둘러진 채 정맥꾼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우리의 땅, 우리의 산줄기인데 가지 못하다니 38선도 아니고 남북을 갈라놓은 철책선도 아닌데... 안타까운 마음, 힘없는 발걸음으로 되돌아선다.
십자로 안부에 다시 내려와 동쪽으로 홈통길을 내려서면서 묵은 논을 통과하고 원두막이 있는 과수원을 지나 내려선 곳이 연기군 전의면 양곡리 압실마을이다.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곳이라 하여 양지>이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혁 때 양곡리, 상세곡리, 하섹구리, 양지리를 병합하여 양지>와 양곡>의 이름을 따서 양곡리라 하였다고 하며, 큰 바위가 있는 골짜기 마을이라 해서 암실, 압실 또는 암곡이라 부른다 한다. 691번 지방도가 보인다.
전의면 신흥리 삼성교 다리 앞에 서 있는 11 탄약창 입간판을 보는 순간, 지긋지긋(저놈의 탄약창 때문에)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요셉의 집 입간판이 서있다. 다시 300m 쯤 진행했을 때 만나는 요셉의 집 입간판, 우측으로 콘크리트포장길로 진행한다. 정맥 능선아래자리한 요셉의 집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요셉의 집은 1993년 5월 황용연 바오로 예레미아 설립자가 경제개발의 미명 하에 농촌이 피폐해지고 버림받은 농촌의 노인들이 증가함에 대전 충청지역의 버림받은 농촌 노인들을 모시어 지역사회도 혈육도 버렸다는 절망감에 사시는 노인들에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노후를 평안히 모시고자 설립하였다고 한다.
14시 십자로안부에서 잠시 왼쪽으로 묘 군락을 지나 한 무더기 통신 선이 어지러운 소나무 숲 사이로 철조망을 향해 가다가 눈 도장을 찍고, 되돌아와 동북방향으로 덕고개로 향한다. 타이어와 통나무계단을 올라서니 이어지는 정맥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요셉의 집에는 유난히 장독대가 눈길을 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정맥길은 한 무더기의 통신 선이 따라온다.
14시 10분 능선분기점이다. 언제가 보았던 초록색의 ‘지킴이’라 쓰여진 리본이 이 곳이 정맥길 이라고 알려주며 바람에 날리고 있어 안심하고 왼쪽으로 팍 꺾으며 따라간다. 오솔길에는 몇 개의 ‘지킴이’가 연이어 눈이 띄고, 곧게 뻗어 오른 외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1번 국도를 지나는 자동차의 소음소리가 시끄럽다.
잠시 후 다시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직선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다시 갈림길을 통과하고, 이어 만나는 하얀 이불을 뒤집어 쓴 묘지에는 조화 한 다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참호를 통과하며 눈길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선다.
14시 17분 1번 국도 아래로 굴다리를 통과하고 이어 건너야하는 경부선 철길 앞에서 일단 정지하고 좌우를 살핀다. 그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세 개의 선로가 왜 그리 멀어 보이는지, 죄짓고 못살 팔자야...
14시 22분 왼쪽으로 고갯마루를 조금 벗어난 곳에 큼지막한 덕고개 표지석이 서있다. 전의면 번영회 그리고 전의면 바르게살기 위원회가 94년 7월에 세운 것이다. 오른쪽 면에 음각된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차령산맥(금북정맥) 조그만 줄기 내려와 이곳에 머므르니 고개 되었네 / 우마차 달구지가 넘나들었고 오가는 길손마다 쉬어 넘었네 / 삽교천 금강으로 물이 갈라져 몇 굽이돌고 돌아 서해로 가네/여기는 분수령 전의 덕고개 유서 깊은 옛 고을 인심 좋은 곳.’ 그림 한 장을 남긴다.
14시 25분 덕고개를 뒤로 묘지와 정자가 서있는 언덕을 올라서서 눈 덮인 밭을 통과한다. 이어 소나무숲길로 들어서는 길목엔 콘크리트 전주 하나가 길게 누워있고, 정맥은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며 이어나간다.
14시 30분 동네 뒷산 같은 정맥은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묘지를 통과하고, 이어 만나는 산불지역, 검게 그슬린 나무들이 애처롭다. 조그만 부주의가 이 많은 나무들을... 오른쪽에 있는 갈림길을 통과한다. 도로와 음내리의 마을들이 보이고, 작은 지릉을 보내면서 완만하게 이어나간다.
14시 43분 십자로 안부를 통과한다. 완만한 야릉에는 다행이 산불지대가 끝이 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있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봉에 올랐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이어진다. 이어 만나는 밋밋한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 방향이다. 정맥은 산판 길을 가로지르며 꺾인 소나무 사이를 통과한다. 많은 나무들이 무참하게 뿌리가 뽑힌 능선을 지나면서 확인해보니 몇 기의 묘지가 뻔뻔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몹쓸 사람들...
정맥엔 키 작은 잡목들이 빽빽이 들어서서 거치적거리고, 한동안 잡목구간이 끝나고 오솔길이 나오지만 그것도 잠시...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한차례 오르막길이다. 눈발이 날리던 정맥길이 날씨가 개이면서 숲 사이로 햇볕이 비집고 들어온다.
15시 봉에 오른다. 산사람들 자유게시판에 자세하게 답변을 해준 이종환님의 친필로 쓴 리본이 눈에 띈다. 부러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간다. 이어 박성태씨 리본, 지금쯤 경남 의령에 있는 자굴산에 올랐겠지... 정맥은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이어나간다.
산마루 측구가 설치된 능선 가까이 가보니 왼쪽으로 까마득한 절개지, 그리고 한 겨울 눈 덮인 골프장의 전경이 펼쳐진다. 이어 미끄러지듯이 내려서서 콜프장 진입도로를 가로지르고 절개지를 올라서서 왼쪽으로 남 코스 1번 홀의 그린을 밟아 본다.
우리나라가 서글프던 IMF시절 국민들에게 힘이 되어준 박세리가 문 듯 생각난다. 나는 지금 우리의 산줄기를 찾아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자연을 훼손해가며 몇 개의 콜프장을 만든 경험이 있다. 다 먹고살자고 한 짓이지만... 죄송합니다.
정맥은 콜프코스를 조성하면서 무참히도 잘리어 나가고, 어떤 곳은 앙상한 바위만이 남아있다. 관리도로를 따라 이어나간다. 눈 덮인 러프에 떨어져 있는 콜프공을 반갑게 집어 보는 정맥꾼들... 인적이 없는 콜프코스...
15시 25분 프레야컨트리클럽 클럽하우스에 도착한다. 잠시 다리 쉼을 하며 숲을 보니 주차장 끝 지점에 붉은 색의 리본 하나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주차장을 통과하여 능선에 붙는다. 느티나무인 듯한 고목 위에 있는 새집 하나가 정겨운 정맥은 묘지를 통과하면서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홈통 길로 이어지다가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한차례 솔밭 길을 오르고 안부에 내려섰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라서니 나무숲사이로 보이는 능선 위로 큰 건물이 나타난다. 완만하게 내려서다 이어지는 평탄한 정맥엔 곧게 뻗는 외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큰 건물은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있다. 내림길엔 오른쪽으로 관정동의 마을집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왼쪽에는 겨울 한가운데에 있는 깊은 계곡이 을씨년스럽다.
15시 42분 십자로안부를 통과한다. 완만한 오름길이 한동안 이어지던 오솔길이 가팔라지면서 낙엽과 눈이 뒤엉켜 미끄럽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며 오른다. 낯선 방문객에 놀란 견공들이 소란스럽고, 철조망이 가로막혀있어 왼쪽으로 돌아 올라선 곳엔 "JOUNYISAN Training Institute" 이란 영문으로 표기된 입간판이 설치되어있다. 248.5봉(△248.5m) 정상이었던 예전 군부대 터에는 전의산 연수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관리자인 듯한 젊은이에게 궁금해서 물어 보았지만 교육연수원이란 말뿐...
15시 50분 전의산 연수원에서 22구간 정맥종주를 마감한다. 안흥진에서 이어오던 정맥이 오늘 아깝게도 맥을 이어나가지 못한 채 뒤돌아 서던 순간이 떠올라 미음 아프다. 다시 한번 회의를 느끼며 정맥길을 버리고 진입로를 따라 내려선다.
16시 전의산 연수원 입간판이 서있는 고등2리 버스정유장인 마을입구에 내려선다. 고등리는 백제 때부터 큰 골짜기여서 북방을 막는 산성이 있었던 지역이다. 높고 곧은 골짜기가 있는 산성 아래 마을이 생기면서 곧은골>고등이>라 부르게 되었다. 옛날엔 한양과 통하는 삼남대로가 여기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고장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