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100년 2월 15일 일반법회
> 제목: 정산종사법어 제7 권도편 8장 // 신제근 균타원 선진님
> 김제원 교무님 설법
> 타이핑: 백도원
한주일 잘 보내셨어요? 이번 주에 명절이 있지요. 다음 주 법회는 봅니다. 지난주에 결혼식이 있어서 부산 교당에 다녀왔습니다. 주례도 하고 부산교당 법회도 보고 그랬습니다.
1. 균타원 종사의 신심과 서원
▷법문을 대하는 마음가짐
오늘 문혜은 정토께서 정산종사법문 권도편과 균타원 (均陀圓) 종사님 (신제근) 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자세하게 조사해주셔서 충분히 기본적인 것은 이해가 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집에서 TV를 보거나 찻집에서 누구하고 이야기를 하면, 열심히 이야기 하고 열심히 보지만 뒤돌아 서서 보면 별 것도 아닌 이야기가 많구요, 별 것도 아닌 데 관심을 가졌던 경우가 사실 많이 있지요.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 균타원 종사에 대해서 그 분의 일생을 더듬으면서, 그 분과 인연을 짓고, 그 분이 어떤 삶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행적을 했는가 이런 것을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것은, 상당히 가치가 있고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런 분들은 불교로 말하면 보살이고 조사 급입니다. 범부가 아닙니다. 그냥 좀 열심히 산 사람이 아니에요. 그야말로 부처님입니다. 그런 분을 우리가 지금 새기면서, 그 분의 삶, 그 분의 정신, 그분의 마음, 또 어떤 여러 가지의 실적 들을 보면서, 저분은 어떤 마음으로 저런 일을 하셨으며, 나와 비교할 때 무엇이 다른가, 또 저분을 통해서 내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이 듭니다.
▷교무님과 균타원님의 인연
제가 8년 전인가 9년 전에 수도원에 갔을 때 균타원님이 마당에 앉아계셨어요. 가서 인사를 드리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어요. “균타원님께서 37명을 전무출신 시키셨던데 제가 균타원님보다 조금 더 많이 해도 되요?” 내가 그랬더니, “얼마든지 해 얼마든지!” 균타원님이 그러셨어요. 그러고 돌아가시기 바로 전 해에 전무출신 훈련에 오셨어요. 90세가 넘어서 대게 퇴임하시면 안오시거든요. 그런데 이 분이 오셔서 저희들이 목마도 태워드리고 해서 당신께서 너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고 그러셨어요. 90이 넘으셨는데도 되게 건강하셨어요. 사람들이 고생하면 아프다고 생각하는데요, 마음고생하면 아프고 영양이 부족하면 아픈거지 고생했다고 해서 아픈게 아니에요. 여기 계신 분 중에 이 분처럼 고생 많이 하신 분 없을 걸요? 그런데 90세 넘도록 사셨잖아요. 마음에 있는 것이지요. 그분이 그렇게 기뻐하셨는데, 훈련 나시고 얼마 후 병원에 입원하셔서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균타원님의 신심
균타원님은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께서 상당히 많이 챙기신 어른 입니다. 균타원님은 아까 말했듯이 키가 되게 작아요. 그래서 대종사님이 골려먹기를 “제근이 너는 앉으나 서나 똑같다.” 그러셨어요. 그 정도 골려 먹을 정도로 가까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양산 법사님은 고구마 썩은 것만 먹었는데 “좋은 것만 골라 먹고 다닌다”고 대중 앞에 하셨어요. 대산종사님은 전혀 모르고 하지도 않은 일을 “대거가 이렇게 하고 다녔다”고 안 좋은 얘기를 하고 다니셨어요. 그 목적은 대산종사님을 험하는게 아니라, 그런 일을 하고 다니는 다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지적하면 꼴아서 나가버릴 것 같아. 그러니까 이 말을 들어도 안 꼴을 사람을 내세워서 지적하는 거죠. 대산 종사님은 한번도 변명 하신 적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가 전혀 하지 않고 자기와 관련 없는 일을 대중 앞에 얘기해서 모멸을 줘도 한번도 변명한 적이 없다고 해요.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냐면, 스승을 믿는 마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여러분들께 ‘앉으나 서나’, ‘못생겼네’, ‘학벌이 어쩌네’ 하면 당장 꼴아가지고 안 나올지 몰라.
▷균타원님 출가이야기
이분은 출가를 하실 때, 왔다가 아버지가 바로 데려가고, 또 나중에 영산으로 갔는데 네 번이나 집에서 데리러 왔는데도 안 가셨죠. 저도 출가를 서른 댓 명 정도 시켰는데, 그 중에 부모님이 반대해서 못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더 들어 가면 부모 반대가 아니죠. 어떤 부모가 자식을 이겨요. 자식이 부모 이겨먹지. 그렇지 않아요? 그런 사람이 몇 사람이 떠오르는데 참 안타깝더라구요. 전무출신 하려다가 마지막에 아버지가 나 죽이고 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요. 변산에 있는 청화 교무님은 엄마가 형제 없이 혼자신데 너 가면 나 죽겠다고 해서 근무를 그쪽에 가서 했습니다. 막판에 못 가게 하는데 뒤돌아서 가니까 계단에서 쓰러지는 소리가 났답니다. 뒤돌아 서면 못 갈 것 같아서 그냥 갔다고 합니다. 출가라는 것은 그런 겁니다. 인간적 감정, 개인의 쾌락, 개인의 편안함 등을 넘어서서 부처가 되어 보겠다. 또는 이 스승에게 내 육신을 다 내 놓겠다. 이 법을 위해서, 이 스승을 위해서, 이 회상을 위해서, 내 서원을 이루기 위해서 정말 한번 해보겠다는 그런 마음입니다. 아마 이 중에는 그런 마음을 안내셨던 분이 별로 없을 겁니다. 언젠가는 냈어. 냈다가 도로 사심이 들어오고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생 각산님 출가이야기
우리 외할머니도 열 두 명을 낳으셨는데, 균타원님 집도 식구가 열둘이었네요. 먼저 균타원님이 출가를 하셨는데, 동생이 각산님이십니다. 오늘은 각산님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각산님이 중학교를 영광에서 나왔는데, 중학교 방학 때 우연히 정산종사님과 대산종사님을 뵙게 됐어요. 균타원님이 오라고 하신거죠. 딱 보니까 법기야. 그래서 챙기셨죠. 각산님이 고등학교는 익산으로 가겠다고 해서 남성고를 갑니다. 남성고 수석을 하셨죠. 그래서 학교 다닐 때나 방학 때나 계속 가서 뵙고 하셨습니다. 특이하죠? 여러분은 스승님을 얼마나 뵙고 싶어요? 무서운 대상인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가? 하여간 이 분은 그렇게 계속 하셨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해서 대학교 원서를 쓸 때 학교에서는 서울대학교를 가기를 바랬죠. 너는 우리 학교를 빛내라고 했는데 원광대학교를 쓰니까, 원광대학교가 학교냐면서 선생님들께서 원서를 안써줬습니다. 사정해서 원서를 써서 출가하신 분이 각산님이십니다. 이 분이 38세에 서울 합동법회의 강사로 초청되어 갔다가 피곤해서 영양제 주사를 맞았는데, 영양제 병에 금이 있어서 균이 들어가서 돌아가셨습니다. 만약에 각산님이 살아계셨으면, 대산종사님 후임이 각산님이셨을 겁니다. 너무 안타까워요. 각산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항마위를 주셨습니다. 돌아가셨을 때 대산종사님 법문을 보면 이미 출가위 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원기 76년 반백년에 출가위로 추대되셨습니다. 대산종사님이 전산님께 나중에 100주년이 지나면 각산님하고 대타원님을 너희들이 여래위로 올리라고 하셨답니다. 각산님이 교전 공부한 책이나 “여의“란 책을 보면 어떤 책이 견주질 못해요. 비록 38세에 돌아가셨지만, 깨달은 내용이 시방일가를 넘어서서 완전히 자유자재한 내용입니다.
▷떳떳하고 당당하고 아낌없는 한 생
또, 균타원님은 하나 잡으면 여지 없이 밀고 나가십니다. 얄짤없습니다. 도인을 인물이 좋냐 안좋냐, 키가 크냐 안 크냐, 학벌이 좋냐 안 좋냐로 얘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한 생 살다 가실 거 아니에요. 관속에 들어가면 냉동실에 들어갔다가 그 다음날 콧구멍에 솜 쟁이고, 그 다음날 불 속에 들어가든가 땅 속에 들어가던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한 생 사람이 몸을 받아서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다 죽을 것인가. 중생들은 곧 죽을지 모르고 ‘편할 거’ 찾고, ‘맛있는 거’ 찾고, ‘쾌락’ 찾고, ‘자존심’ 찾고, ‘이쁜 것’ 찾고 그렇게 하고 살아요. 그러나 불보살들은 그게 관심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건질까’, ‘어떻게 하면 스승님께 보은할 까’ 이게 관심 거리시죠. 우리 균타원님은 처음에는 선생님 되겠다고 원불교 오신거에요. 출가하려고 오신게 아니에요. 향타원님도 그러셨어요. 옛날에는 원불교에 가야 그래도 공부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들어온 사람들이 정산종사나 주산종사님 또는 대종사님 같은 어른들의 품 속에서 크다 보니까 어느새 발심을 하게 되고 서원을 세우게 되고 신을 바쳐서 일생을 그렇게 불보살 대열로 가게 되셨죠. 환경도 참 중요합니다. 균타원님 얘기 들으면서 아까 좀 눈물이 났는데, 비록 키는 작으시지만 오롯하게 사셨죠. 요즘 전무출신 하려면 키에 제한이 있어요. 여자는 50 cm, 남자는 60 cm 인가 그래요. 제가 종로에 근무할 때 어떤 여자 아이가 왔는데 1 cm 부족했어요. 그래서 떨어진 애도 봤어요. 균타원님은 지금 오셨으면 전무출신 못하죠. 그런데 이런 사람도 있었어요. 키가 작았는데 통과가 됐더라고, 어떻게 했냐니까 깨끼 발을 했다고 합니다. 헐려고 하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겁니다. 지금 교구 교무님이 키가 아마 안되실 겁니다. 키는 작지만 얼마나 훌륭하신지 몰라요. 내가 간절히 원하면 아이디어가 탁 떠오릅니다. 사은님이 호렴이 있습니다. 여러분 살아 오시면서 정말로 골똘하고 간절하면 사은님이, 부처님이 호렴해 주십니다. 저는 그런 체험 많습니다. 정말로 내가 간절하면 다 도와주십니다.
17세에 왔다가 19세에 서원을 세워서, 70 몇 년 간을 오롯하게 한 생 대종사님 법에, 스승님께, 서원을 위해서 살고, 세세생생 그렇게 하시겠다고 살고 가신 어른이 균타원 님이십니다. 우리가 누구를 가까이 하고, 누구를 접하고, 누구를 인연을 지을 건가 생각해 보면 바로 이런 분이시다. 그리고 전무출신도 37명, 그 중에 전산종사님이라던가 대학원 대학교 총장님이라던가 이런 어른도 내셨지만, 교당도 연원 교당을 다섯 갠가 내셨습니다. 한 사람이 시집가서 새끼 낳고, 자기 집 건사하다가, 교도 생활 하기도 어려운데, 이분은 그 쪼그만 양반이 전무출신을 37명 내시고, 교당을 다섯 개 내시고, 부산 교당, 국제 훈련원, 삼동원 다 하신 거에요. 그 조그만 양반이. 인물보고 누가 도와줬겠어요. 인물도 별로고 키도 작고 그러세요. 그런데 얘기하는 걸 들으면 아주 강단 있으세요. 자신 있으세요. 아주 대차시고요. 돌아가시기 3년 전인가 2년 전에 성리 법문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아주 자신 있으세요. 여러분, 한 생 살면서 내 안에 떳떳하고 자신이 있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다 자신이 없으니까 술로, 여행으로, 관광으로, 또는 미친 듯이 뛰어보고. 마라톤 하면 상당수가 자신의 내면에 불만이 있으니까 미친 듯이 뛰는 거에요. 사실은요. 자기 내면을 잊고 싶은거에요. 여행가는 사람들 여행 좋다고 하지만, 여행의 맛을 아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 안에 불만이 있으니까, 아픔과 괴로움이 있으니까, 뭔가 열심히 하면 잊어져 버리니까, 뭔가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고, 뛰는 자체에 의미를 두고 하는 사람이 많아요.
여러분은 원불교와 대종사님을 만나서 그런 것들을 넘어 서잖아요. 한 생 별거 있습니다. 지가 콧방귀 끼고 해 봤자 별거 없어. 오늘 신문에 나온 내용입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전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했던 육군 해군 공군 장성들을 싹 갈아버립니다. 임명 되자마자. 그래서 임명한 사람이 해군 참모총장 정옥근이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별이 네 개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군납을 7억인가 해 먹었어요. 밑에 있던 해군 소령이 도저히 안되겠어서 양심 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옥근이라는 사람이 청문회 나가서 양심선언 한 사람을 막 지적을 하면서 군 명예를 훼손한 놈이고 자기 혼자 튀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자기가 도둑놈이여. 그래서 똥별이라고 해요. 별 중에 똥색 별이라고. 지금 이 사회가 명예를 좇기도 하고, 때로는 방송에 나와서 박수를 받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자기 스스로 생각해볼 때 정말 떳떳하고 정말로 자신이 있고 내면이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균타원님은 떳떳하고 당당하고 아낌 없이 한 생을 다 바친 어른이에요. 이런 어른 많지 않아요. 여러분 뒤져보세요. 여러분들 흰머리 있게 살았는데 그런 사람 얼마나 많아요? 알고 보면 다 뒤가 구리고 얼마나 거짓말이 많아. 한 생 뭐라고 떵떵거리고 살아도 별거 없어. 오직 가고 나서 남는 것은 업이여 업. ‘선업을 지었나’, ‘죄업, 악업을 지었나’, ‘어떤 삼대력을 가져갔느냐’, ‘얼마나 인연복을 지었느냐’ 그거지. 한 때 큰 소리를 치고 그런거 보면 우스워 죽겠어. 국회위원이 됐다고, 총장이 됐다고 목에 힘주는 사람들 보면 다 애기 같아. 아이고 애기 놀고 있구나. 여러분께서는 부러우세요? 애들 같으세요? 부러우면 아직 공부 좀 더해야 해. 아까 출가위 어른이 부담스럽고 법문이 부담스러우면 아직 한참 남았다고 생각해야 해. ‘야 좋다!’ 그래야지.
▷신심과 서원
제가 균타원님 생각하면 딱 신심, 서원이 생각나요. 우리 균타원님은 오롯하게 한 생 아낌 없이 자기 수고와 아픔, 편안함 다 스승님께 던져버리고 사신 어른입니다. 그래서 대봉도위도 올라가시고 출가위도 올라가시고, 그리고 당신이 끌어들인 사람 중에 수많은 출가위가 나오고. 얼마나 훌륭하신 어른이냐. 그래서 이 분은 어떤 마음이었는가 보면, 서원과 신심입니다. 그래서 4대 분리 신심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 한 생 살다 갈 때, 육신은 죽자마자 그 다음날 관속에 묻고 그 다음날 태우던가 묻습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보물 중의 보물이요,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면서,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으면서, 가꾸면 가꾸는 대로 힘이 있으면서, 놓으면 놓는 대로 흔적도 없는 것이 마음입니다. 기기묘묘한 것입니다. 마음이 들어서 우주도 만들어지고, 나라도 생기고, 마음이 들어서 발명도 하고, 마음이 들어서 진급도 하고 강급도 하고, 마음이 들어서 부자도 되고 가난하게도 되고. 그 중에 신심, 믿는 마음은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법기 (法器)가 따로 있는게 아니에요. 아까 각산님이 처음에 왔는데 돈이 없어. 정산종사님이 이 사람이 고등학교 다닐 때 대학교 다닐 때 후원을 하라고 하셨어요. 사람들이 별로 하질 않아요. 그래서 정산종사님께서 화가 나셔서 너희들 육조대사 후신이 왔다 해도 그렇게 할거냐고 하셨어요. 각산님이 육조대사 후신이라는 거에요. 그런 어른이 왔는데 너희들 후원 안 할래 하셨어요. 대종사님 법문 중에 초창에 이 회상에 역사 이래 수많은 어른들, 수많은 수도자들, 수많은 불보살들이 다 오신다고 했어요. 한 분 한 분 보면 다 그런 어른들입니다. 도가에서 학벌, 재산, 인물 안봅니다. 제일 먼저 뭘 보죠? 신성 봅니다. 마음 봅니다. 그래서 딱 그 마음을 보고 두 가지를 갖추면 법기라고 합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각산님을 법기라고 표현하셨는데 그게 뭐냐. 그 사람 마음 속에 대서원과 대신심이 있더라. 그 사람이 법기여. 뭐 서울대학교 들어가려다 말았으니까 법기가 아니에요. 신심과 공심이 있는 사람이 법을 이룰 사람이요, 그 사람이 참 제자라고 했어요. 세상에서 아무리 비난하고 조롱하고, 세상에서 아무리 이것이 좋다고 꼬시고 유혹해도, 이 서원과 신심 하나로 똘똘 뭉친 사람, 이 사람이야 말로 법기고, 큰 인물이 되고, 이 회상에 주인이 되고, 이 세상에 큰 역할을 하고 가는 것입니다.
교단에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 많이 들어 옵니다. 서울대 출신만 해도 우리 교단에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서울대 출신들 잘하는 사람도 많지만 더 엉망인 사람도 많습니다. 왜냐면 딱 상이 들어 있더만, 그래서 마른 자리만 차지하려고 해. 교수직이나 좋은 자리만 차지하려고 해. 제가 출가하니까 처음에 면접을 해요. 꼭 그 말을 물어요. “너 일생 똥통만 지라고 하면 지겠냐?” “내가 어떻게..” 하면 떨어집니다. 좌산님은 뭐했어요. 수계농원에서 사람들이 좌산님을 보고 일꾼인줄 알았데요. “젊은 놈이 일꾼하네, 안됐다.” 그랬어요. 그분이 그렇게 종법사님이 되서 그렇게 유려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마음수업” 책 보셨어요? 그분은 법통하신 분이에요. 수계 농원에서 그렇게 일하던 양반이 그럴 수 있겠어요? 결국은 꽃을 피운 사람이 누구냐. 바로 서원과 신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들어서 몸도 움직이고 그것이 들어서 깨침이 있습니다. 머리 좋다고 깨치는거 아니에요. 박사 받았다고 깨치는거 아니에요. 신으로 뚫는 거에요. 신이 없는 공부는 뭐라고 했냐. 뿌리 없는 나무에 거름 주는 것과 같다고 하셨어요. “신은 뿌리다” 이 말입니다. 제가 산에 가서 나무를 보면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도 뿌리가 문제가 생기면 금방 꺼꾸러집니다. 금방 말라버립니다. 뿌리가 문제가 생기면 말라버립니다. 사람은 그 뿌리가 마음이다. 근데 그 마음 중에서도 첫째는 믿는 마음이다. 사람은 믿는 대로 살아요. 믿는 대로 행동합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신기합니다. 기독교 문화가 있어가지고 믿음 그러면 불신이나 맹신이 생각되지만 그런 말이 아닙니다.
2. 사대불이신심 (四大不二信心)
▷ 1) 진리 (眞理)
그러면 믿음은 무엇을 믿자는 거냐.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뭘 믿자는 거냐. 진리(眞理)를 믿자는 것이다. 진리는 뭐냐 일원상의 진리다. 일원상의 진리는 뭐냐. 두 가지로 말하면 인과와 영생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과 인과보응(因果報應)의 이치다. 이 두 축이다. 이것은 역대 성자들이나 대종사님이 깨치신 같은 자리에요. 다른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 진리대로 사신 분이 스승님이고, 이 진리를 글로 나타낸 것이 법이고, 이 진리를 실현하자고 하는 데가 회상이에요. 그래서 불이 (不二) 라 그래. 둘 아닙니다. 진리가 둘이 아니에요.
깨달음을 얻으면 대자대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래요. 그런데 대자대비를 연습하면 깨달음이 오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 하시겠습니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깨달아서 대자대비가 필연으로 나오게 만들던가, 아니면 대자대비를 연습해서 깨달음이 따라오도록 하던가. 뭘 하고 계십니까? 연습을 해야 하거든요. 공부삼아서 연습해야 합니다. 원불교 공부는 연습입니다. 이걸 훈련이라고 표현했어요. 복도 지어본 놈이 짓고, 죄도 지어본 놈이 짓고, 영화도 본 놈이 보거든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실패하는 사람의 80%는 생각에 멈추고 끝나요. 성공한 사람은 80%를 실행에 써요. 생각에 머문 사람은 다 관념에 머물고 형식에 머물고 안되요. 연습 삼아서 자비심도 연습 해봐야 합니다. 세월호 소식에 자비심이 안 난다면 억지로 내보세요. 자비심 자비심 자비심. 100년 성업하는데 아까워서 못 내겠으면 연습해보세요. 학사에 아까워서 못내겠으면 연습해보세요. 여러분, 연습하지 않고는 되지 않습니다. 진리는 이 시방에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안테나만, 수신기만 꽂으면 되는데 자기가 수신을 안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인과의 진리로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당신이 지은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인연 복이든 건강이든 생김새든 습관이든 다 여러분들의 자업자득이에요. 그게 진리다 이 말이에요. 원망할거 없다는 얘기죠. 그게 감사생활하는 진리에요. 불생불멸을 알면 생사문제에 해탈을 얻지요. 그리고 불생불멸을 알면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인과보응을 알면 바쁩니다. 선연 짓고 복업 짓기에 바쁩니다. 한가하고 널널한 사람들 인과 모르는 사람이에요. 앞에서는 큰 소리치고 뒤에서는 뻘짓거리 하는 사람들도 인과를 모르는 사람이에요. 진리는 왜 진리냐. 참 진 (眞)자 이치 리(理) 자 잖아요.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고 시간과 공간이 다 바뀌어도 떳떳하게 드러나는 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천년 만년 지나도 여여하게 드러나는 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이것을 다시 말로 하면 진리는 천하가 부서져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아무리 옹립해도 무너집니다.
▷ 2) 스승 (師)
그 다음, 두 번 째는 뭐죠? 스승 (師). 이 진리를 누가 깨쳤죠? 스승이. 진리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해요. 시방편조(十方遍照)야. 그러나 이 진리를 성자가, 스승이 깨치신 거죠. 여러분, 성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깨치신 분이어야 되고, 또 그 분의 삶이, 말씀이, 심법이 다르죠. 중생은 별 수 없이 중생 소리 합니다. 중생은 중생소리 하게 돼 있어요. 개가 짖어 봤자 개 소리 밖에 더 됩니까? 중생은 중생소리 하는 겁니다. 그러나 깨달으신 성자들은 달라요. 우리들의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래서 스승과 둘이 아닌 신심은 맥을 대는 거에요. 여러분 맥이 뛰잖아요. 법맥, 정맥이라는게 있어. 바른 맥이요, 법의 맥이야. 신맥이라는게 있어요. 믿음의 맥이야. 이 맥이 뛰어야 해 사람이. 죽은 사람은 딱 잡으면 맥이 안뛰어요. 맥이 연결되어 있어서 뛰어야 해요. 그게 신맥 정맥 법맥. 정통 정맥이라고 하죠. 스승님께 다 바치는 거에요. 좋은 것만 바치는게 아니에요. 안 좋은 것도 다 바쳐. 법신불 전에 다 바쳐. 바치면 바치는 만큼 묘하게 돌아옵니다. 거울에다 대고 초코렛을 내밀어봐. “드세요.” 하고. 다시 나에게 줍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그걸 몰라. 중생은 땡겨 오는 것이 자기 것 인줄 알아. 스승님께 줘봐요. 일전도 손해 안봅니다.
대종사님을 주세불이라고 합니다. 옛날에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했죠. 시대가 바뀌어서 대종사님을 후천의 주세불이라고 정산종사님이 천명해주셨습니다. 주세불은 이 세상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아래 종법사님들은 좌우를 다 연결시켜 주신 분이라고 했어요. 그분들에게 맥을 대는 것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일이다. 근데 여러분이 오매불망 하다보면 정산종사처럼 될 수도 있다. 정산종사님은 스승을 찾았지만, 대종사님이 화해리 까지 직접 찾아갔죠? 찾고 기다리고 기다리며 찾는 사제간. 이것이 스승과 둘이 아닌 마음입니다. 심심상인(心心相印)이요, 오매불망(寤寐不忘)이요, 연연불망(戀戀不忘)이다 하셨습니다. 연애할 때, 연연불망, 오매불망이여. 어머니 아버지 다 저리가라여. 키워준거고 뭐고 하나도 필요 없어. 정신 하나도 없죠. 그와 같이 스승님을 향해서 님 향한 일편단심이여. 그런데 대종사님은 또 하나, 항마위 이상을 스승으로 모시라고 하셨어요. 여러 사람을 스승으로 모셔라. 성자들도 분야가 있다고 하셨어요. 우리 정산종사님 분야가 있으시고, 대종사님 분야가 있으시거든요. 다 다를 수 있다. 그 진리를 깨친 내용은 같고 심법은 성불제중 제생의생의 심법이지만 역할은 다르다. 그래서 주세불은 현직 대통령과 같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이나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공자님은 이미 전직 대통령이야. 현직 대통령은 대종사님이야.
정산종사 성탑에 서면 제가 생각하는게 있어요. 당신과 같은 신의를 제가 갖게 해주십시요. 오죽했으면 대종사님이 정산종사님과 주산종사님에게는 두 번 시켜본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느그들은 내가 세세생생 꼴마니로 끼어갖고 다니겠다”고 하셨어요. 전라도 말로 꼴마니라고 그래요. 주산님이 하신 일을 보면 대종사님이 하셔야 할 일을 기가막히게 대신 하고 다니셨어요. 대종사님 복도 많으신거고. 제가 엊그저께 제가 출가시킨 교무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각산님 책 읽다가 내용이 하도 좋아서 보냈습니다. “좋은 것은 윗 사람한테, 공덕은 아랫사람한테, 그리고 책임은 내가 져라.” 각산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쓰신 편지에 그렇게 쓰셨더라구요. 그런데 내가 가만히 보면 그러지 않더라고. 잘못된 일을 보면 꼬리 자르듯이 쏙 빠지더라구. 내가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어. 그리고 잘한거 보면 지가 잘했다고 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채워주고 일이 되게 도와주면, 그 윗사람이 아랫사람 안챙겨 주겠어요? 일전도 손해 안봐요. 물론 사회 교수들은 그리 안하데. 부려먹고 이용해 먹고 그래 버리더만. 그러나 종교가에서는 그리 안해. 스승은 절대 이용해 먹지 않습니다. 받친 것보다 오히려 더 받습니다. 그리고 잘된 일이 있으면 아랫사람 덕이라고 해줘야죠. 곤란한 일 책임지는 것은 내가 하고. 그것이 심법이다. 그래서 정산종사께서는 어려운 일 당신이 다 차지하셨어요. 좋은 일은 다 대종사님 덕이라고 하셨어요. 대산종사님께서도 그러셨죠? 전부다 윗 분 덕이라고 하셨어요. 이화여대 나와서 한국일보 기자하다가 출가하신 김지정 교무님이 있습니다. 지금 퇴임하셔서 솜가게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저를 만나면 그 이야기 자주 하셨어요. “교무님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 다 대종사님이 시키신 일 제원 교무가 하는 거야”. 내가 “맞습니다.” 하지요. 사실 알고 보면 스승님들이 다 해놓은걸 우리가 도와 드리고 있는 겁니다.
정산종사님이 다른 법인 기도할 때 자결하러 갈 때 한마디씩 하라고 하니까 정산종사님이 뭐라고 하셨죠? “우리는 가서 기쁘게 죽을 수 있겠지만, 혹시 우리가 죽어서 대종사님이 일본 관원들에게 잡혀가서 시달릴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라고 하셨죠. 다른 사람들은 처자식들이 있는데 죽으면 어쩔까 하고 있는데 정산종사님은 대종사님 걱정하고 계셨죠. 그것이 스승과 둘이 아닌 마음이다. 그리고 한번은 정산종사님께 “스승님이 맘에 안 들면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으니까, “네가 복 없음을 한탄하라”고 했습니다. 세월호 아이들이 왜 죽어요. 우리 함께 책임입니다. 우리 각산님도 마찬가집니다. 각산님이 왜 돌아가셨어요. 지금 같으면 안 돌아가셨어요. 어두운 시대라 그것이 깨졌는지도 모르고 그 주사 줬잖아요. 시대와 같이 공업으로 같이 활동하는 겁니다. 내가 그 스승을 만난 것도 알고 보면 내가 복이 없는 것이고, 잘 만난 건 내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도 여러분 인연들도 다 여러분들이 짓고 받는 것입니다. 원망할 것이 없어. 정산종사님도 그러셨고, 대산종사님께서도 “나는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을 한시도 잊어 본적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연애를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뜨거웠다 말아버리고. 어떻게 한번 만져볼라고 하는 그런거 말고.
정산종사님은 전주 가지 말라니까 보지도 않았고, 불경보지 말라니까 상도 외면해 버렸다고 해요. 여러분 어떨 것 같아. 나 같으면 “왜 보지 말라고 하지?” 했을 것 같아. 시키는 대로 하셨다. 오죽했으면 한번도 나는 그 사람들 때문에 걱정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을까요. 여러분 사람 한번 부려 보세요. 시켜놓고 안 쳐다봐도 되는 사람이 있고, 시켜놓고 확인을 꼭 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시키면 불안한 사람이 있고, 시키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고 다양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이 두 형제에게 한번도 시켜놓고 걱정해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오해가 있어. 시킨 대로 한다는게 무조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게 아니야. 미신 광신을 신이라고 착각하면 안되요. 시킨 대로 하되 자기 생각이 있는 거에요. ‘이것을 왜 하라고 하셨을까?’, ‘이것을 나 같으면 이렇게 할텐데’ 하고 대조해 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참 신심은 지혜에 바탕한 신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성장하는 신심이야. 내가 지혜가 밝아지고 내가 지도자가 되는 신심이지, 맹목적으로 생각 없이 바치기만 하는 신심은 미신이에요. 하라고 하면 하기는 해. 안 하는 놈 보다는 낫죠. “이 것에 무슨 뜻과 본의가 있겠지.. 그러면 무엇일까” 하고 자기 지혜에 바탕한 신심이어야지 아름답고 꽃이 피는 바람직한 신심이다. 정산종사 법문보고 제가 놀란 것이 뭐냐면, 어떻게 대종사님의 정전의 내용을 하나도 흩트리시지 않고 더 발전시키고, 그 안에서 더 세세곡절 스승이 바빠서 못하신 것을 다시 새겨서 해놨을까. 과학에서는 스승이 해놓은 것을 엎어버려야 해. 부정하고 더 업그레이드 해서 내놓아야 합니다. 종교가에서는 스승의 법을 더 시대에 맞게 세세곡절해서 스승과 하나가 되어야 해. 그게 종교가야. 그것이 공도자 숭배고 지자본위야.
그리고 정산종사는 대종사님을 새 주세불이라고 말하셨죠. 정산종사님이 말하신거지 우리가 말한거 아닙니다. 여러분, 정산종사님이 대종사님을 주세불이라고 말했는데, 좀 부황부황한가? 좀 과한가? 아전인순가? 어떻게 생각하세요? 원불교에서만 하는 소린가? 이것은 지금 판단하기 어렵겠죠. 그러나 세월이 지나갈수록 이것은 증명될 겁니다.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이 사기 쳤는가 아니면 그게 사실인가. 우리 아버지가 저한테 계속 나한테 나는 주세불이라는 말이 뭔지도 모르는데, 출가도 안했을 때 대종사님이 주세불이라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 땐 주세불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냐 했었지. 정산종사님은 대종사님을 주세불로 천명해서 크게 보은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보은해도 그 분이 주세불이라고 천명한거 못 따라 간다고 했습니다. 스승에 대한 대 보은이지요. 그리고, 정산종사님께서 서울대 병원에서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암환자의 통증이 바늘을 한 쌈지 지고 콕콕 지르는 것과 같다고 하셨죠. 그런데 그 때가 교전 마지막으로 결집할 때거든요. 법문을 읽어드리면 딱 일어나 앉으셨어요. 이게 스승에 대한 신이다.
대종사님께서도 금강경 공부하실 때 우리 서가모니 부처님 모시고 공부하자 하셨습니다. 수심결 공부할 때는 우리 보조국사 모지고 공부하자. 육조단경 공부할 때는 우리 육조 혜능 스님 모시고 공부하자. 그렇게 하셨어요. 대종사님께서 이 세상에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세상에 똑똑한 놈 많다고 하셨어요. 근데 그게 왜 오래 못가냐. 그것은 바로 맥을 못 대서 그렇다. 사실은 예술 계통에서도 그렇습니다. 맥을 못 대면 안됩니다. 밑에 기반이 없이 혼자 설수가 없는 거거든요. 아무리 못났어도 정맥을 대고 혈성을 다하는 사람. 그 사람이 참 제자라고 하셨어요. 우리 균타원님이 그런 분 아니에요? 쪼끄마하셔도 참 제자셨죠. 모르겠네. 여러분들한테 내가 아까 대종사님이 했듯이 하면 꼴아가지고 갈는지. ‘교무님이 나를 진짜 믿으시는구나’ 그렇게 하실런지 모르겠네. 한번 해볼까? 대종사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좋았거든요. 스승이 속 있는 말 다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는 제자를 만나려면 복이 있어야 한다 하셨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런데 대종사님은 정산종사님이나 대산종사님, 양산법사 님 그런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 다하셨어요. 그런 사람 많지 않아요.
오늘은 시간이 많이 되어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남은 두 개는 법 (法) 과 회상 (會上) 입니다. 법에 대한 믿음은 삼학팔조 사은사요 이 법이 나와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아는 것이고, 마지막은 회상입니다. 영상회상이라고 작게도 표현할 수 있지만, 회상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교단입니다. 그 교단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세상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은입니다. 회상에 대한 신심은 사은입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가 하나라는 겁니다. 진리를 깨치신 분이 스승이요, 깨치신 내용이 법이고, 그 깨치신 내용을 펼치신 곳이 회상이라는 거에요. 이해하시겠죠?
첫댓글 백도원 교도님 고맙습니다^^
법회 못가서요. 그렇게 제목달기 최곳~!!!
진짜 설법을 보는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중간중간 소제목 저도 좋아요~~~
참 꼼꼼하신 정리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