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復(반복) 4/3 부
작가: 이은집
(2부 이음)
현숙이 재빠르게 관람권을 사 가지고 와서 한장을 손안에 넣어주었다.
그녀는 어떤 부담을 느끼며 입구로 끌려갔다.
그녀는 새삼스럽게 포스터를 주시하며 층계를 올라갔다.
3부.
천정의 불들이 껌벅껌벅 들어오자 현숙이 속삭거렸다.
『밑천 좀 뽑게 한번 더 볼련?』
『글쎄……. 늦지 않을까?』
그녀는 시계를 보며 반문하다가
『일찍 들어오너라. 요즈음 왜 그렇게 늦어오니?』
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래. 한번 더 보자.』
하고 다짐하듯 대꾸했다.
『나 그럼 화장실에 갔다 온다.』
현숙이 관객틈을 헤치고 천천히 멀어갔다.
『때르릉!』
이윽고 벨이 울리자 영화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는 이미 정해진 줄거리에 의한 화면을 보았다.
주인공 여인은 드디어 남자의 침대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화면은 지워졌다.
『이제 그만 가자.』
현숙의 목소리가 뱅그르르 맴돌았다.
그녀는 현숙과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졌다.
『내일 또 만나.』
현숙이 버스에 오르며 밝은 어조로 속삭였다.
『응, 잘 가.』
그녀도 반사적으로 건네었다.
밤이 오랜 탓인지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녀는 무언가 허전하였다. 그러나 그 이유는 명백히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렇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버스에 올랐다.
몇 명의 새 손님을 실은 버스는 곧 출발했다.
그녀는 뒷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문을 닫은 가게들이 경성드뭇하게 지나갔다. 그때마다 차창엔 불분명한 그녀의 얼굴이 나타나곤 했다.
그녀는 거의 흑백에 가까운 그것을 쏘아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차문앞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내려야 할 정류장에 다달은 것이었다.
그녀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저만큼에 그녀의 집이 놓여 있었다.
순간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흐릿한 외등에 비친 대문이 그녀를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끌려들어가기가 싫었다. 허지만 언제까지나 버틸 수는 없었다.
그녀는 또박또박 대문을 향하여 움직였다. 그리고 벨을 눌렀다.
『…대체 왜 그리 늦어오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삐드득 벌어지는 대문틈으로 우욱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돌아서서 빗장을 질렀다.
『조용히 들어가라. 네 오라비댁이….』
어머니는 다음 순간 본능적인 자애를 섞어 중얼거렸다.
『또 벌어진 모양이군.』
그녀는 방으로 향했다.
『…오빠와 오늘두 또 대판거리 싸웠단다.』
어머니의 안으로 녹아들어간 말이 들려오는듯 했다.
그녀는 미닫이를 닫으며 흘낏 뒤돌아 보았다.
어머니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조그맣게 뚫린 하늘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그녀는 형광등에 스윗치를 넣었다. 밀렸던 피로가 일시에 온 몸을 휩싸고 들었다.
『상 갖다 놓았어요.』
어느새 길자가 미닫이 틈으로 사라지며 던져왔다.
밥, 국, 김치, 찌게….
조그만 상에는 이러한 것들이 언제나처럼 같은 그릇안에 담겨져서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숭늉이예요.』
다시 미닫이가 열리며 숭늉주전자가 들어왔다.
『뗑 뗑 뗑….』
이웃집에서 열한시를 알리는 괘종소리가 창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이윽고 그녀는 상을 책상 밑에 밀어넣고 이부자리를 폈다.
그리고는 책상앞에 앉아 석간신문을 훑기 시작했다.
『애앵….』
싸이렌 소리는 그녀의 피곤을 일깨워 주었다.
그녀는 석간을 던지고 이불속에 몸을 넣었다. 그리고 형광등의 스윗치를 껐다.
『얘! 일곱시다. 어서 일어나거라.』
그녀는 미닫이 틈에서 잔등에 성철을 올려놓은 어머니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철은 제 뺨보다도 더 붉은 커다란 사과를 물어뜯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의 눈 언저리엔 얼룩이 져 있었다. 햇살은 또 다시 문살위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은 첫 시간에 강의가 없으니까….』
그녀는 문득 깨닫고 천천히 미닫이를 열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훔치며 오빠가 대청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오무러드는 대문틈으로 커다란 빨간 가방이 훗딱 사라졌다. 육학년 짜리 성애임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수돗가로 나왔다.
『고모는 잠꾸러기야!』
책가방에 눌린 채 신발주머니와 스켓취‧북을 나누어 쥔 성인이 간신히 중문지 방을 넘고 있었다.
『만화대장! 벌써 학교에 가나?』
『흐응! 지금 가면 두 권은 읽을 수 있다!』
성인은 신이 나는듯 싶었다.
성인은 만화를 위해서 있다고 할 만큼 노상 만화가게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삼학년이나 된 것이 공부는 않고….』
올케의 꾸지람을 그러나 성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얏! 얏!』
가끔 성인은 골목 아이들을 모아놓고 막대기를 휘두르며 대장노릇을 했다.
<살아있는 만화>
그녀는 얼굴의 비누칠을 씻으면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리 가! 이 녀석아!』
칼날같은 목소리가 장지문틈을 휘익 빠져나와 곧장 그녀의 머리속으로 뚫고 들어왔다.
『흥! 아침부터 대단하시군!』
그녀는 안방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웨, 아침부터 큰 소리야!』
오빠의 낮은 음성이 새어나오다가 성수의 울음소리에 말려버리고 말았다.
『이 원수 박아지들아! 한 놈이나 좀 뒈져라! 뒈져!』
그러나 올케는 짐승처럼 포효했다.
『말이래두 그리하는 법 아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녀는 우욱 방으로 들어왔다.
『상 갖다 놓았어요.』
길자의 목소리는 항상 볼퐁 맞았다. 입을 비쭉하며 사라지겠지.
『아무리 대학을 다닌다 해두 첨 봤어요.』
길자는 언니와 장단이 맞으면 곧잘 웅얼거렸다.
길자는 그 맛에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꼬박 열두시 싸이렌이 불 때까지
부엌과 방안을 드나드는 것인지 몰랐다.
『얘! 길자야! 요강 좀 쏟아라.』
올케의 명령을 길자는 떨어지기가 무섭게 복종했다.
길자는 올케의 시중을 깔축없이 완료함으로써 쾌감을 얻는 모양이었다.
『얘! 조반이나 먹고 가거라.』
어머니의 허겁스런 목소리가 미닫이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그녀는 안방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오빠의 구두소리는 멀어졌다.
『흥! 그럼 누가 눈 하나 꿈쩍 할 줄 알았어구…….』
뒤따라 올케의 뾰죽한 목소리가 닫히는 대문에 부딪친듯 산산히 흩어졌다.
『여보! 돈 들여왔어?』
『며칠만 참구려.』
『흥! 명짧은 년 같으면 지레 죽겠네! 그래두 계집질은…?』
『뭐라구?』
『그럼 왜 이제 들어오는거야? 지금이 몇 신데….』
『이제 겨우 열시반인데 뭘 그래.』
『이제 겨우 열시반…? 아니 이이가 뭘 잘 했다고 큰 소리야! 어서 돈이나 내놔요.
쌀 팔아야지! 연탄값 주어야지 김장, 고추값 갚아야지! 성애 과외공부선생….』
『그만! 그만! 며칠만 참아 달라고 하지 않았소?』
『어쩌구 저째? 밥도 며칠 참았다가 먹을라남? 흥!』
『이년을 그냥…!』
『죽여! 죽여! 왜 못죽여?』
『후우! 내가 참아야지.』
『참아? 흥! 말은 좋다.』
건너방의 어머니는 성철을 등에 올려놓고 눈을 감고 있다.
첫댓글 이 소설은 서점에서도 품절된 작품을
저와의 소중한 인연으로 한국문인협회
이은집 부이사장 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탐독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