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달콤한 향신료… 인공수분 기술은 흑인 노예 소년이 개발했대요
입력 : 2022.10.03 03:30
바닐라
▲ 바닐라 난초가 나무를 타고 덩굴로 자라는 모습(왼쪽)과 바닐라 난초의 꽃. /위키피디아
아이스크림, 초콜릿, 케이크…. 달콤한 후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향신료가 있어요. 바닐라(vanilla)입니다. 바닐라는 바닐라 난초의 씨앗과, 씨앗을 둘러싼 껍질인 꼬투리에서 추출하는 향신료예요. 이 꼬투리와 씨앗을 가열하고 장기간 숙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바닐린(Vanillin)이라는 물질이 달콤하고 독특한 향을 풍긴다고 하죠.
바닐라 난초는 멕시코와 중남미가 원산지인 식물입니다. 나무를 타고 덩굴로 자라는 독특한 모양의 난초로, 끝이 다소 뾰족한 계란 모양 잎이 줄기를 따라 하나씩 어긋나는 형태로 자라납니다. 다른 원예용 열대 난초처럼, 바닐라 난초의 잎 또한 두꺼운 가죽 같은 느낌이 있어요. 바닐라 난초는 연노란색 꽃을 피운답니다.
바닐라는 현재 멕시코 베라크루스주에 해당하는 지역에 사는 원주민 톤토낙(Tontonac)인들이 야생 바닐라 난초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향신료로 생산됐는데요. 이들은 바닐라를 식음료에 첨가하는 향신료뿐 아니라, 몸에 차고 다니거나 신전에 비치해 향기를 내게 하는 방향제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400년대 초반 멕시코 중부 지대에 살던 아즈텍인들이 톤토낙인이 살던 곳을 침략하면서 바닐라를 접하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씁쓸한 코코아 음료에 달콤한 향을 내기 위해 바닐라를 섞어 마시기 시작합니다. 이 음료가 현재 우리가 마시는 뜨거운 초콜릿 음료인 코코아로 발달했다고 해요.
바닐라 난초는 꽃이 피고 나서, 하루 이내에 꽃가루받이가 돼야 열매가 맺히는데요. 꽃향기에 이끌려 찾아오는 특별한 난초벌 한 종류만 바닐라 난초의 꽃을 비집고 들어가 꽃가루를 암술에 옮겨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난초벌은 바닐라 난초가 원래 서식하던 멕시코와 중미 지역에만 있기 때문에, 벌이 살지 않는 다른 지역에서는 사람이 막 피어난 꽃을 찾아 손으로 인공수분을 해줘야 한다고 해요.
바닐라꽃을 인공수분하는 기술은 1841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레위니옹의 노예 소년 에드먼드 알비우스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있어요. 레위니옹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동부 해안에 접한 작은 섬나라인데요. 알비우스가 알아낸 이 인공수분법 덕분에 마다가스카르와 인근 섬들은 전 세계에 공급되는 천연 바닐라 대부분을 생산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일일이 수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천연 바닐라 가격은 무척 비싸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많은 곳에서 바닐라향을 내려고 화학적으로 합성한 향료를 이용합니다. 인공 향료가 발명됐을 당시에는 바닐라 가격이 일시적으로 떨어졌지만, 천연 향신료 가치를 인정받아 다시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고 하네요.
김한규 위스콘신대 박사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