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는 어쩌면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장면과 너무 일치한다.그 소설이 나왔을 때 나는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초등학교 4학년때 인광이라는 괴물이 있었다.우리가 12살이라면 인광이는 19살이었다.우리반에서 절대 권력을 쥔 인물이었다.반 아이들에게 인광이의 말은 법이었다.인광이 주변에는 알랑방귀를 끼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나를 비롯한 몇몇은 아웃사이더였다.
지금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여러가지 부당함에 못이겨 나는 아버지에게 인광이의 잘못된 행위를 말씀드리면서 도움을 청했다.그때 당시 아들들이 다 그랬겠지만 나와 아버지는 대화가 거의 없는 그런 부자지간이었다.그런 부자간에 그런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 자체가 큰 공감대 형성이었다.그날 저녁 아버지는 편지를 쓰셨다.담임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용기를 내어 다음날 교무실에 가서 담임선생님에게 편지를 드렸다.담임선생님은 내 앞에서 편지를 읽더니 말이 없으셨다.그리고는 교실에 가 있으라고 하였다.‘담임선생님은 과연 어떻게 처리하실까?’3교시 끝나고 인광이를 교무실로 부르는 것 같았다.인광이가 교무실갔다가 다시 교실로 들어오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호랑이 눈 같았다.긴장되는 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청소시간이 되자 인광이가 나를 보자고 했다.
학교 모퉁이를 돌아 산밑으로 나를 데려갔다.인광이 똘마니들도 대여섯명 따라왔다.나는 맞을 각오가 아니라 죽었구나 생각했다.어이없게도 인광이는 내가 쓴 편지를 들고 있었다.어떻게 된 거냐고 나에게 물었다.나는 말을 못했다.그런데 갑자기 인광이가 악수를 청했다.나는 놀랐지만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인광이가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하였다.그러자고 했는지 어쨌는지,나는 너무 당황했지만 안도감이 더 컸다.하여튼 그날은 잘 넘어갔다.
이렇게 학창시절 나는 아웃사이더였고 그들의 고통을 알기에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 철저하게 그들이 편에서서 그들을 보호하리라 마음먹었다.그러나 교직에 들어서서 그런 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살폈는지 자문해본다.오창고등학교 1학년 담임 시절 경성이란 놈은 덩치가 컸다.하루는 우리반 진수가 경성이에게 맞았다고 진수 부모님께서 아침 일찍 찾아왔다.어제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맞았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랴부랴 학교로 오신 것이다.
나는 부끄러웠다.정말이지,학교에서 그것도 우리반에서 힘센놈이 힘 약한애를 괴롭히는 것을 담임이 살피지 못했다는 사실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부모님께서는 형사고발한다고 노발대발하셨다.학생부장과 나는 부모님을 진정시키고 잘 지도하겠노라고 안심하시라고 겨우 설득하여 집으로 가시도록 하였다.그리고는 진수와 경성이를 불렀다.여기서 무자비하게 경성이를 때리는 것은 하지 않았다.경성이가 악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기에 진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하였다.그렇게 대충 마무리 하였으나 그 날 사건은 나를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담임이랍시고 아이들은 살피지 않고 설렁설렁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매일 테니스에만 매달려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았다.그 시절 오창고는 청주 인문계를 떨어진 아이들이 오는 학교이기 때문에 센놈들이 많았다.나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군주처럼 담임을 했지,나약한 아이들을 잘 보살피지는 못했던 것 같다.멀리 떨어져 있는 교실엘 하루에 열 번이상은 가야했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다.점심시간에도 교실에서 아이들을 지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스스로 학창시절 약자의 어려움을 아는 자가 담임이 되어 그들의 어려움을 보살피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실패한 담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