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는 동네 가까운 남한산성 새벽 등산을 주로 한다
그날은 새벽에 몸살로 좀 힘들어 가볍게 등산을 마치고
야간 근무에 들어 가려는 심산으로 오후에 남한산성 등산 로에 들어섯다
입구 약수터를 돌아서는데
등산복을 예쁘게 차려 입은 젊은 여성분이 같이 가자고
등뒤에서 나를 부르는 것이다
설마 내를 부르겠냐 싶어 뒤돌아보니 아저씨 무서워요 같이 좀 가면 안되겠냐고 나를 세윘다
몇십년 산을 타짓만 그것도 젊고 예쁜 여성분이 같이 가자고 나를 붙잡는 경우는 여태껏 본적이 없다
그리다 말동무가 되어 남한산성에 오르는데 그 여자분이
자기 때문에 천천히 가니 운동이 되지 않아 좀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맨날 가는 산이라서 운동보다는 산에 가서 기도 하는게 더 의미가 있다고 안심 시꼈다
사실 그랬다 난 정상에 도착하면 습관적으로 하늘에 향해
두손 모아 내 인생을 돌아보는 기도를 드린다
그러다 보니 시골동네 고향 이야기 종교 등을 이야기를 주고 받던중 그여자분은 우리 고향 마을하고 바로 붙어 있는 동네가 고향이고 양평 어느 절에 관해서 상세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절이 산세와 딱 잘 어울러저서 그토록 아름다운 절을 본적이 없다고 감탄 하면서 나이를 물어보길래 알려주니 글면 거기 주지 스님이 한 3년 정도 학교 선배가 아닐까 싶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럼 거기 신도십니까 물어보니 자기는 거기 신도가 아니고
고향 친구 따라 몇번 가본적이 있다고 했다
키도 180이 훨씬 넘고 잘생긴 스님이 절을 예쁘계 가꾸고
책도 여러권을 펴내셨다니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다
더구다나 시골 학교 선배라니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가보기로 스스로 약속하고 정상에서 그여자분하고 헤어지고 나는 나만의 장소로 이동하고 나중에 그 여자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후로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해 봄 또 투자한 돈을 감당할수 없을정도로 잃고 정년 퇴직도 했고 적적한 마음에 마땅히 마음 둘곳도 없어
허전한 마음 돌려 보려고 그 절을 가기로 하고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시골 터미널에 내려 전화를 드리니 절에 주지 스님은 택시를 타고 오라 했지만 내 형편에 택시는 언감생시 10키로 포장도로를 묵묵히 걸어 갔다
아스팔트 포장도로
그때 여름 솔고개 배치고개로 넘어 가는 불볕 뜨거움은 실로 말로는 표현이 안될 정도로 아스팔트에서 품어져 나오는 도로의 열기로 얼굴이 익어가고 땀범벅인채 가로수 하나 없는 도로에 사람이 걸어가는 인도조차 형성 되지 않아 위험성 마저 있고 가장자리 힌색을 따라 그늘만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도로가 끝날때까지 그늘은 만날수는 없었다 사실 인도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를 걷는 사람은 나말고는 사방팔방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도로 끝에서 다시 산길 2키로는 그늘도 있고 쉬윘다 표말을 보고 서종사를 찾아 들었다
스님은 점심 공양도 미룬채 나를 기다려 오후 늦은 절 공양밥도 같이 먹었다
불교와 절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고향 이야기도 나누고 고즈넉한 산사에 마음 한구석을 내려 놓기도 했다
선배스님은 세상사 모든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마음을
비우라고 말씀 하시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통칭하면 팔만대장경인데 팔만대장경을 요약한게 반야심경이고 그걸 한글자로 줄이며 마음 심자로 마음을 다스려라고 일러 주셨다
마음 하나 다스리는게 그게 어디 쉬운일은 아닐텐데 그마음은 어디서 온것인지
절과 맺은 인연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매번 똑같은 방법으로 양평 서종사에 가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했다
그런 인연으로 그 가을에는 성철스님이 주석했던 해인사 백련암에 가서 초저녁부터 새벽 5시까지 삼천배를 올리고 성철스님 상좌이신 원택스님에게 금봉이라는 법명도 받아 왔다
쇠금에 봉우리봉 법명이 너무 마음에 들었으나 신심도 깊지
못한 내가 누구에게 자랑거리는 되지 못했다
처음 해보는 삼천배 나도 할수 있을까
부처님 전에 나를 들어 내 놓고 그 동안의 죄업을 빌었다
새벽녁까지 무수한 땀으로 참회하고 나를 깨우는 극락전 삼천배는 엄숙함과 청정함에 속세의 무거운 짐을 조금은 벗어낫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사실 나는
원래부터 기독교를 다녔다
시골집 바로 앞집이 예배당이고 철 모를 때부터 수시로
교회를 왔다 갔다 했지만 신앙심은 별로 없었고 그냥 교회가서 노는 수준이라 특별한 기억도 없었다
교회를 잊고 살다가 북한산을 다니면서 다시 교회를 접했다
그때 당시는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보통 일주를 하던지
보현봉 일선사 뒤로 하산 하는게 산행의 코스였다
어느날 하산길에 보현봉 정상에 도달하는데 주위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큰소리로 알수없는 방언을 하고 그들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고 나는 오히려 그들이 좀 무서윘다
나도 자주 다니다 보니 그들을 따라 어릴적이 생각이 나서 기도 흉내도 내다 보니 마음도 차분해지고 좋을것 같아
그 다음부터는 비번날이면 보현봉에 올라가서 기도에 나도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던중 그날 주말 토요일은 밤에 산 기도하는 사람이 윈래 없고 캄캄한 산속에서 혼자 기도를 드리는데 무섭기도 했지만 추위는 참기가 어려울정도 몸이 힘들었다
그때 어느새 올라 온 어떤 분이
형제님 날도 몹시 추운데 저랑 같이 냬려 가시지요 하고
제 또래의 남자분이 말을 걸어 왔다
저는 기도해서 어떻게든 하나님을 꼭 만나야 하고 새벽 4시쯤에 항상 내려 간다고 거절하니 형제님은 이미 하나님을 만나신것입니다
캄캄한 이 산속에서 더 이상 무얼 바라고 자기 학대를 하십니까 좋은 교회도 소개 해드릴테니 그만 내려 가시지요
하고 재촉했다
난 그때부터 그사람이 소개해준 그 교회를 우리 사무실하고
매우 가까워 그냥 주일마다 일상으로 다녔고 여성 담임 목사님의 설교도 재미 있었고 나를 이뻐해주셔서 참 좋았고 교회를 소개해준 그분은 지방에 있는 교회 본부 목사님이시고 그곳의 성전을 닦는데 일을 도와 주는 사람으로 매우 신앙심도 깊고 혼자서 가끔 산 기도 하러 왔다가 보현봉에서 나를 만났던것이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같아 친구처럼 지내는 그 목사님을 따라 본부에
자주 가서 30개론도 공부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갔다 오고 나면 괜히 허전하고 마음은 공허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도 멀어지기 시작하니 신앙이 멈추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그뒤로 나가지 않다가 절대자 메시아라고 믿던 본부 총재 목사님이 티브에 이단이니 삼단이니 여성편력으로 재판을 받고 징역살이을 하고 있다고 뉴스가 요란했지만 내가 그 목사님의 사생활을 알수도 없고 이해도 할수 없었지만 예수님의 3년 무덤기간이 온다는 교육을 이미 수차례 들었던지라 그게 그걸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몇년이 흐른후에 또 다시 똑같은 혐의로 엄청난 뉴스에 전국민을 경악케도 했지만 나는 그져 나하고는 관계없는 사람처럼 애써 누르고 있었지만 세상사을 알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 재림주라는 총재님과 딱 한번 악수만 하는대도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신도 개인의 직접 대면은 영광스럽고 그 자체가 축복이었다 그렇게 절대자로 군단위까지 지교회를 세우고 재림주로 수많은 신도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분이 포승줄에 구치소로 들어가는 모습은 상상이 안 가는 충격도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학교 선배 스님을 우연찮게 만나서 그 절 서종에 갈때마다 부처님께 108배로 예를 갖추고 기도를 드렸지만 그렇다고 불교교리를 아는것도 아니고 어릴적 변산 청련암에 공양물 갔다 드리라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그 어린 마음에 누나 손잡고 가파른 산길을 걸어 가는데 그길이 얼마나 무섭던지 아버지를 원망도 했지만 그때의 아버지 모습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도
종교는 잘모르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2500년전에
이땅에 오셔서 사바세계는 아수라장이라고 하신 말씀도
또한 중생이 부처가 되고 번뇌가 지혜가 된다는 말씀도 이시대를 살아가면서 내 자신을 깨우쳐 보게 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