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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 기행문 스크랩 소백산 비로봉-죽령(3년전 영하 39도의 악몽을 떠올리며)
와이에스 추천 0 조회 19 08.01.20 11: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소백산 능선(비로봉-연화봉-죽령)에서 떠올린 3년전 영하 39도의 악몽    

 


  삼가리 매표소∼비로봉

 

  2006년 1월 22일 일요일, 45명의 등산객을 태운 관광버스(G산악회 주관)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매표소에 도착합니다(10:00). 오늘은 백두대간 제17구간(죽령-소백산-고치령) 제33소구간(죽령-고치령) 중 소백산 비로봉의 남쪽 구간(비로봉∼연화봉∼죽령)산행을 하는 날입니다. 등산로입구에서부터 세찬 바람이 몰아쳐 소백산의 칼바람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합니다.


  그러나 날씨는 매우 포근하여 금새 이마에는 땀이 맺혀 비로사 입구에서부터는 겉옷을 벗어 배낭에 걸칩니다. 오늘도 여러 산악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겨울의 설경과 칼바람으로 악명 높은 비로봉을 찾아 왔지만 저 멀리 보이는 정상 부근에도 횐 눈은 보이지 않습니다. 등산로주변은 겨울이 무색할 정도로 가물어 먼지가 풀풀 나고 있는 황량한 풍경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쉬고 있는 곳에는 '왕관바위'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아직도 비로봉까지는 1.2km를 더 가야 합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다가 전망에 트이는 곳에서 뒤돌아보니 비로봉의 남쪽에 위치한 연화봉과 죽령 너머 도솔봉의 산줄기가 아련합니다.

 

      남쪽으로 보이는 도솔봉 능선

 

 

  남쪽으로 보이는 연화봉

 

 

    비로봉을 향하여 마지막 나무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비로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나무계단에 서서 배낭을 내려놓은 후 아까 벗었던 겉옷을 다시 걸쳐 입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을 욕심으로 안면마스크는 배낭에 그대로 넣어둔 채 비로봉 정상(1,440m)에 오릅니다(12:08). 매표소를 출발한지 한번도 쉬지 않았는데도 2시간 8분이 소요되었습니다(거리 : 5.5km).

 

 


  비로봉 정상의 모습

 

  커다란 정상표석에는 사람들이 운집하여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매우 바쁜 모습입니다. 필자도 카메라를 꺼내 기회를 엿보지만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지경입니다.


  오르막의 기온은 포근하였지만 비로봉에는 강풍이 몰아쳐 모든 사물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북쪽의 국망봉과 남쪽의 연화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쳐든 손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정상표석 주변에 모인 사람들

 

 

       북쪽의 국망봉 능선

 

   남쪽의 연화봉 능선

 

 

    대피소 왼쪽으로 이어진 소백 주능선 

 


  정상표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기를 포기하고는 배낭에서 안면마스크를 꺼내 착용합니다. 필자는 오늘 세 번째로 비로봉에 올랐지만 한 번도 기념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는 너무 추울 때라서 사진 찍을 엄두를 내지 못했고, 두 번째는 철쭉이 피는 계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포기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사람들의 줄을 기다리지 못한 채 돌아서고 맙니다.


  그러나 비로봉에 오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바로 3년 전 체감온도 영하 39도의 강추위와 칼바람 속에서 반쯤 죽다가 겨우 살아난 몸서리치는 기억을 되새겨 봅니다.            

 

 


  영하 39도의 경험-살을 에는 비로봉

 

  2003년 1월 5일,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5.5도(섭씨)를 기록한 날, 필자는 겁도 없이 G산악회를 따라 나섰습니다. 앞으로 산을 계속 다니려면 추위와 더위를 탓하면 되겠느냐는 알량한 심리가 작용했었지요. 삼가리 매표소에서 비로사를 향하여 가는 길에 잠깐 동안 황소바람이 몰아쳐 이곳은 바람이 매우 심하게 분다고 생각했지만 비로봉정상(1,440m)에 오를 때까지는 양지쪽이라 날씨도 괜찮은 그냥 평범한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비로봉 정상에 발을 디디자마자 이곳은 이미 살아있는 생물이 숨을 쉬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지 몸을 가누기도 어렵고 비로봉을 알리는 거대한 표석의 모습이 짙은 안개구름 속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손이 다 얼어버려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낼 엄두도 못 내었고, 설사 꺼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할 수 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상의는 두꺼운 고어텍스 자켓을 입었고 바지 안에는 내의를 입었으며 신발도 보온이 되었지만, 경험부족으로 눈만 나오게 얼굴을 감쌀 수 있는 벙거지모자(또는 스키용 안면마스크)를 준비하지 않아, 밖으로 노출된 얼굴의 광대뼈 부분과 두꺼운 장갑을 끼었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부분이 모두 얼어버려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피소가 있는 곳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가야 했습니다. 도저히 앞으로 바람을 안고 갈 수가 없어서 뒷걸음질로 발걸음을 옮겨보았지만 진전이 없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죽지 않으려고 수 차례 발버둥을 친 다음에야 겨우 대피소에 도착하니 그곳은 동태가 된 몸들을 녹이는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 누군가 비로봉의 온도가 영하 39도라고 했습니다. 지상의 기온이 영하 15도면 정상의 높이가 1,440미터이고 해발 100미터당 0.6도식 낮아지므로 정상의 기온은 영하 25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소백산은 우리나라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바람의 산"입니다. 겨울에 북서 대륙풍을 정면으로 받고 있으니 바람이 강하게 불면 영하 40도를 밑돌게 되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가진 사람도 바테리가 작동하지 않아 기념사진을 찍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이런 소백산의 특성도 모르고 제대로 겨울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오기로 무모한 등산을 한 것은 그 후 겨울의 산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쳐 준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필자는 하산한 후부터 상경하는 차내에서 그리고 그 후 며칠 간 동상에 걸린 얼굴을 손으로 마사지하고 연고를 바른 덕분에 별 탈 없이 잘 넘어갔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동상 후유증으로 큰 고생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남대문시장에 가서 벙거지 방한 모자와 안면마스크를 종류별로 구입하여 혹한의 겨울산행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비로봉 대피소는 등산객들의 천국

 

  3년 전에는 비로봉에서 대피소로 가는 길이 죽음의 길이었지만 오늘은 비록 바람은 세게 불지라도 그 당시보다는 기온이 높고 또 안면 마스크를 착용하였기에 그다지 큰 고생 없이 대피소에 도착합니다. 다만 사진을 찍기 위해 얇은 장갑을 낀 채 카메라를 잡았던 손이 추위에 노출되어 너무 시리다 못해 아플 지경입니다. 배낭에는 두꺼운 장갑이 들어 있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착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대피소에는 등산객들로 이미 만원이라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대피소를 좀더 넓게 지어 놓지 이게 뭐야!" 


  필자는 안으로 겨우 비집고 들어가서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안쪽에는 먼저 도착한 G산악회 회장단이 따끈한 찌개를 끓여 성찬을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필자는 행동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더운물을 마셨으니 한결 기운이 납니다.

 

 


  비로봉∼연화봉

 

  대피소 밖으로 나오니 세찬 바람이 몰아 치지만 안면 마스크를 하였고 또 대피소에서 얼었던 몸이 풀려 별로 추위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연화봉 방면으로 걸어가면서 뒤돌아보니 악명 높은 비로봉에는 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저 봄날의 평범한 동네 언덕처럼 밋밋한 모습뿐입니다. 그러나 평소 얼마나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지 키 큰 나무가 한 그루도 자라지 않는 비로봉을 보면 이 산의 악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화봉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비로봉

 

 

  가야할 밋밋한 능선 

 


  대피소에서 작심을 하고 두꺼운 방한용 장갑을 착용했더니 활동이 둔하기는 해도 전혀 손의 시림을 느낄 수가 없어서 좋습니다. 등산로가 다소 미끄럽기는 하지만 먼길을 가야하므로 아이젠을 배낭 속에 그대로 둡니다. 아이젠을 착용하면 미끄러움은 피할 수 있지만 오늘처럼 먼 길을 가야 할 경우 발이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산행거리는 삼가리 매표소에서 비로봉까지 5.5km, 그리고 비로봉에서 죽령까지는 11.5km(거리가 12.0km라는 이정표도 있음)이므로 17.0km를 걸어야 하는 긴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G산악회의 S회장을 비롯한 준족들을 따라 걸으며 부드러운 오르내림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제1연화봉(1,394m)입니다(13:18). 남쪽으로는 가야할 연화봉(1,383m)과 제2연화봉(1,357m)너머 죽령길 건너 도솔봉(1,316m)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맑은 하늘아래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한 겨울인데도 설경이 아니라 꼭 봄의 풍경을 보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제1연화봉 이정표

 

    제1연화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연화봉

 

 

   연화봉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도솔봉

 

 

   삼가지저수지

 


  왼쪽의 욱금리마을에는 삼가지저수지가 강태공들을 어서 오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제1연화봉에서 나무계단을 내려와 부드러운 길을 오르내리는데 그래도 그늘진 곳의 등산로에는 눈이 남아 있어 겨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음은 다행입니다.


  2004년 5월, 연화봉에서 북쪽의 비로봉으로 향할 때 등산로 주변에서 우리를 즐겁게 맞아주었던 화려한 철쭉과 야생화는 모두 겨울잠에 빠졌는지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어 계절의 변화를 다시금 실감합니다. 맞은 편에서 오는 등산객을 가끔 맞으면서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며 쉬는 것도 잊어버리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니 드디어 연화봉(1,383m)입니다(13:52).

 

     연화봉 표석

 


  연화봉의 모습             
 
  연화봉에 오르니 등산객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여서 정상 표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에는 안성맞춤입니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제1연화봉과 비로봉 그리고 그 뒤의 국망봉까지 아련하게 조망됩니다. 또 남쪽으로는 소백산 천문대 뒤로 중계소철탑이 있는 제2연화봉과 도솔봉의 능선이 더욱 가까이에 서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화봉에서 희방사 방면으로 하산하거나 아니면 비로봉으로 가지만 우리들은 죽령을 향해 발길을 돌립니다.

 

   연화봉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비로봉과 국망봉

 

   연화봉의 소백산 천문대

 


  연화봉∼죽령
   
  연화봉에서 죽령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은 잘 다듬어진 도로로 되어 있어 매우 지루한 구간입니다. 죽령까지는 7km 거리이므로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멉니다. 그런데 도로의 양지바른 곳에는 눈이 녹아 맨 땅이 노출된 반면 음지에는 눈이 얼어 빙판을 형성하고 있으니 정말로 재미없는 길입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벗기를 반복해야 하는 고약한 길이라 끝까지 아이젠을 꺼내지 않고 스틱에 의지한 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몇 차례나 동료들이 빙판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을 목격하고서도 나의 결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2연화봉을 바라보면서

 

   뒤돌아본 연화봉

 

   눈앞에 보이는 제2연화봉 중계소


  제2연화봉은 중계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도로를 따라 우회합니다. 이제는 도솔봉 능선이 바로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비로봉에서 소백산 능선을 타고 오는 동안 가끔씩 거센 바람이 지나가기는 하였지만 비로봉에서 맞았던 칼바람은 아닙니다. 소백산 능선 중에서 비로봉의 칼바람이 단연 최고 등급입니다.

 

 제2연화봉을 돌아가면서 뒤돌아본 연화봉과 비로봉

 

    아련히 보이는 도솔봉 능선

 

 

   도로를 따라 죽령으로 향하며

 


  시간이 오후라서 그런지 죽령에서 올라오는 전문등산객은 한 사람도 만나볼 수 없습니다. 다만 간단한 운동복 차림으로 오르는 몇 명만이 보일 뿐입니다. 인공으로 조성된 전망대에 서니 도솔봉과 죽령에서 희방사방면으로 이어진 도로(36번과 5번 국도)가 조망되는데 이를 지나자 드디어 죽령매표소입니다(15:43). 17.0km 거리의 산행에 5시간 43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죽령매표소

 

  죽령이정표

 


  막걸리 반 컵에 멍든 인생

 

  죽령휴게소에 도착했지만 산악회버스는 보이지 않습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가게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가게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목을 축이고 있습니다. 두 가게에 모인 인원이 약 10여명입니다.


  산악회장이 부르는 가게에 들어가자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필자에게도 한잔을 권하지만 정중하게 사양하고 그 대신 큰 사발 라면을 부탁해서 끊여 먹습니다. 라면을 먹고 일어서려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막걸리를 권하기에 종이컵에 반잔을 받아 마십니다. 술꾼들은 산행을 마친 후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피로가 풀린다고 하지만 필자는 소주와 맥주 그리고 막걸리는 몸과 궁합이 맞지를 낳습니다.


  막걸리 반 컵을 마신 후유증으로 상경하는 버스 속에서도 머리가 아프더니 집에 와서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두통이 나고 허리가 아픈 것이 몸살 증세로 발전하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 저녁 몸살 약을 사서 먹고 보니 하루가 지난 이제는 상태가 제법 호전되었습니다.


  즐거운 백두대간 산행을 마친 후 마신 막걸리 반 컵에 몸이 망가지다니 개나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언젠가 속리산 문장대에 올라 그 곳에서 판매하는 막걸리 한잔을 맛있게 먹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딱 잘 못 걸렸습니다. 필자와 같은 사람만 있다면 막걸리를 제조·판매하는 업자들은 모두가 굶어 죽을 것입니다. 술이든 음식이든 등산이든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 즐기는 것이 바로 신토불이입니다. 왜냐하면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참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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