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사는 다양한 위치에서 여러 가지 기능과 의미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주어의 위치에서 주격조사처럼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밥은 먹었다.'라는 문장에서 '나는'의 '는'은 주어의 위치에 쓰였고, '밥은'의 '은'은 목적어의 위치에 쓰였다. 주격 조사는 앞에 오는 말이 주어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기능을 하는 데 비해, 보조사는 특별한 의미를 드러내는 조사이며 그 기능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주격 조사 '이/가'와 보조사 '은/는'은 구별없이 혼동하여 쓰는 경우가 많다.
주격 조사 ‘이/가’와 보조사(특수 조사) ‘은/는’의 쓰임은 문맥이나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두 가지 사항만으로 요약하여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가’와 ‘은/는’의 차이 가운데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가’는 한 편의 이야기에서 처음 등장하는 대상에 쓰이고, ‘은/는’은 그 다음에 그 대상을 다시 언급할 때 쓰인다.
‘옛날에 한 나무꾼이 살았습니다. 그 나무꾼은 어느 날 나무를 팔러 시장에 갔습니다.’와 같이 시작하는 이야기에서 첫 문장의 ‘나무꾼’에는 조사 ‘이’가, 그 다음 문장의 ‘나무꾼’에는 조사 ‘은’이 결합되었는데, 이 둘을 서로 바꾸면 매우 부자연스럽게 된다. 결국 ‘은/는’은 담화 속에 이미 등장하였거나 화자와 청자 사이에 이미 서로 알고 있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는 대상에 쓰인다고 할 수 있다.
가. 옛날에 한 나무꾼이 살았습니다. 그 나무꾼은 어느 날 나무를 팔러 시장에 갔습니다.
나. *옛날에 한 나무꾼은 살았습니다. 그 나무꾼이 어느 날 나무를 팔러 시장에 갔습니다.
2. ‘은/는’은 같은 종류의 다른 대상을 염두에 두고 그 가운데 특정한 하나의 대상을 언급할 때 쓰일 수도 있다. 이 점 역시 ‘이/가’와 구별되는 것으로, ‘철수가 집에 있다’라는 문장은 집에 있는 것이 철수라는 단순한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라면 ‘철수는 집에 있다’라는 문장은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 철수는 집에 있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3. 일반적으로 ‘은/는’은 어떤 대상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에 쓰일 때, 바로 그 ‘설명의 대상’이 되는 말에 결합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설명의 대상인 ‘인간’에 대개 조사 ‘은/는’이 결합한다. ‘은/는’ 대신에 ‘이/가’가 결합하면 ‘인간’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이 되기 어렵다.
가.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나.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다.
4. 반대로 대화의 초점이 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은/는’ 대신 주로 ‘이/가’가 결합한다.
가령 ‘이 유리를 누가 깼니?’ 하는 질문에 ‘철수가 깼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 유리를 깬 사람이 바로 ‘철수’라는 사실을 지적하여 말하기 위해서 조사 ‘가’를 쓸 수 있다. 이때 조사 ‘가’ 대신에 조사 ‘는’이 쓰이면 매우 부자연스러운 대화가 된다. 이 경우 ‘이/가’가 붙는 말 앞에는 부사 ‘바로’가 쓰이기도 한다.
가. 이 유리를 누가 깼니? / 철수가 깼어요.
나. 이 유리를 누가 깼니? / *철수는 깼어요.
5. 한 문장 안에 다른 문장이 안겨 있는 경우, 안은 문장의 주어(사실은 주제어)에는 ‘은/는’이, 안긴 문장의 주어에는 ‘이/가’가 결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는 그가 왔음을 안다’와 같은 문장에서 안은 문장의 주어(주제어)에는 조사 ‘는’이, 그에 안긴 명사절 ‘그가 왔음’의 주어에는 조사 ‘가’가 결합되어 있는데, 이 두 조사를 서로 바꾸면 문장이 매우 어색해진다.
주어는 일반적인 문장구성인 '(무엇이) 어찌한다', '(무엇이) 어떠하다', '(무엇이) 무엇이다'에서 주체가 되는 '무엇이(누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주어는 한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인 문장성분 가운데 서술어·목적어·보어와 함께 문장의 성립에 필수적인 주성분이다.
국어 문장의 주어는 명사·대명사·수사 등의 체언과 체언구·체언절 외에도 용언의 연결형이나 인용된 말 등 체언 구실을 하는 말에 주격조사 '-가/-이'가 대표적으로 쓰이며 주어를 높일 때 쓰는 '-께서'와 주어가 되는 명사가 무정명사인 경우에 쓰는 '-에서'가 있다. 일반적으로 '-에서'는 처소를 나타내는 부사격조사로 처리되는데 '이번 행사는 우리 학교에서 주최한다'와 같은 예문의 경우 주격조사로 취급하는 이유는 '우리 학교에서'가 문장의 주어가 되기 때문이다. 이때 '-에서'를 부사격조사로 보려면 문장 전체의 구성이 '이번 행사는 우리 학교에서 열린다'와 같이 바뀌어야 한다. 주격조사는 구어체 표현에서 자주 생략되는데 주격조사가 나타날 때와 생략될 때 각 문장은 의미 차이가 느껴진다. 또 주격조사의 자리에 보조사 '-은/는, -도' 등이 쓰이기도 하는데(예를 들면 '나는 꽃을 좋아한다', '나도 꽃을 좋아한다') 이 경우에는 주격조사가 쓰이지 않는다. 반면 '-만, -부터, -까지' 등의 보조사는 주격조사와 함께 쓰이기도 한다(예를 들면 '나 혼자만이 진실을 안다', '이제부터가 재미있다', '여기까지가 서울이다').
국어에서 주어의 통사상 특징으로는
첫째, 주어가 존대되어야 하는 대상이면 서술어에 '-(으)시'가 첨가된다.
둘째, 하나의 문장에서 주어와 동일한 말이 반복될 때는 뒤의 말이 '자기'로 재귀화한다(예를 들면 '영희는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어가 1인칭이거나 2인칭일 경우에는 '자기'의 쓰임이 제약을 받아서 '나도 자기 책을 볼 테니 너도 자기 책을 봐'라는 문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또 일반적으로 '읽히다'와 같은 사역동사(使役動詞), '보내다'와 같은 사역의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문장의 서술어로 쓰이면 내용상으로만 주어인 말도 '자기'로 표시될 수 있다(예를 들면 '선생님께서 영호를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다').
셋째, 정상적인 주어는 도치(倒置)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장의 첫머리에 놓이지만 국어에서는 정상적인 위치를 자주 벗어날 수 있다.
넷째, 국어에서는 주어가 2개 이상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토끼가 귀가 길다'와 같은 문장이 흔히 쓰이는데 이것은 서술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 '서울은 집들이 마당이 좁다'와 같은 문장은 주어가 셋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서술어인 서술절 속에 또 서술절이 들어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다섯째, 국어 문장에서의 주어는 필수성분이지만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상황이나 문맥에 의해서 그 문장의 주어를 알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그밖에도 국어 문장 가운데는 '불이야'나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와 같이 주어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는데 이들 문장에서는 주어가 무엇인지, 또 그것이 생략된 것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제한된 수의 속담이나 관용어구에 한정되어 있다. 이와는 달리 명령문에서의 주어 생략과 서술어가 '기쁘다'나 '슬프다'와 같은 느낌을 나타내는 형용사인 경우 문장에서의 주어 생략은 문법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경우이다.
명사 주어와 명사 목적어 그리고 타동사만으로 이루어진 직설법 단문(單文)에서 문장 성분의 배열 순서에 따른 어순의 형태는 이론상으로 SOV, SVO, VSO, OSV, OVS, VOS 6가지가 존재합니다. 이 중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의 99.8%는 주어가 목적어에 선행하는 SOV, SVO, VSO 3가지 유형들에 속해 있으며, 주어가 목적어의 뒤에 오는 OSV, OVS, VOS형 어순을 나타내는 언어는 극히 드뭅니다. 한편 SOV, SVO, VSO형 어순들 중에서도 VSO형 어순을 나타내는 언어는 흔치 않으며, 80%는 SOV, SVO 두가지 유형에 속해 있는데, 언어의 종수로는 SOV형이 우세하지만 사용 인구는 SVO형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SOV형 어순을 나타내는 언어들은 대부분 주어와 목적어가 형태론적으로 선명하게 구분됩니다.
우리말과 같은 SOV형인 언어들로는;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본어, 몽골어, 만주어, 티베트어, 아이누어 등이 있으며, 동남아시아에서는 버마어가 SOV형 어순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힌디어, 우르두어, 뱅골어, 네팔어, 구자라트어, 비하리어, 마라타어, 싱할라어 등등 인도-아리안 계통 언어들과 타밀어, 말라얄람어 등 드라비다 계통 언어들이 SOV형 어순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란의 페르시아어, 아프가니스탄의 다리어 등 이란 계통어, 아르메니아어, 쿠르드어 및 터키어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어, 우즈벡어, 아제르바이잔어, 투르크멘어, 키르키즈어, 위구르어, 러시아의 타타르어, 추바쉬어, 시베리아의 야쿠트어 등 투르크 계통 언어들 역시 SOV형 어순을 나타냅니다.
유럽에서는 피레네 산맥의 바스크어와 동유럽의 헝가리어가 SOV 어순을 나타내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의 암하라어,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어, 오로모어, 서아프리카의 만데어(만딩고어) 남아프리카의 부시맨어, 호텐토트어(나마어) 등 코이산 제어들이, 남미에서는 안데스 산맥의 케추아어,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어, 북미에서는 나바호어, 아파치어, 야키어 등 아타파스칸 계통 언어들, 뉴기니 섬의 대부분의 언어들, 호주 원주민(어보리진) 언어의 상당수가 SOV형 어순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어(死語)가 되었지만 히타이트어, 토카라어, 수메르어 등도 SOV 어순이 나타나며, 고전 라틴어 역시 SOV 어순을 나타냅니다. (한편 지금은 SVO 어순을 나타내고 있는 중국어, 게르만 제어, 반투 제어 등도 과거에는 SOV 어순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후치사 어순
그린버그[J.H. Greenberg]에 따르면; 한국어처럼 SOV형 어순을 나타내는 언어는 후치사를, SVO, VSO형 어순을 나타내는 언어는 전치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어, 암하라어, 아르메니아어 등 몇몇 언어들은 SOV형 어순을 나타내면서도 전치사를 사용합니다.
3. 형용사+명사 어순
한국어와 일본어, 터키어, 힌디어 등은 영어나 독어처럼 형용사가 명사의 앞에 위치하는 형용사+명사 어순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어, 암하라어, 바스크어, 티베트어 등은 불어나 스페인어처럼 형용사가 명사의 뒤에 위치하는 명사+형용사 어순을 나타냅니다. (한편 몽골어의 경우에는 형용사가 명사의 앞에도 뒤에도 위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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