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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단편소설
작품 분량에 따른 고전소설의 유형 분류는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 인물인 홍희
복(1794 ~ 1859)에 의해서 최초로 이루어졌다. 그의 저작인 「第一奇諺」(중국 이여진
(1763 ~1830)의 소설인 「鏡花緣」을 번역한 것)의 서문에서 “「유씨삼대록」, 「임화전
연」, 「완월회맹」, 「명주보월빙」 등은 수 삼십종에 권질이 호대하여 혹 백권이 넘으
며 少不下 수십권에 이르고 그 나머지 십여권, 수삼권씩 되는 류가 사오십종에 지
나니” 라고 분량에 따라 분류를 하고 있다. 즉 단권에서부터 수 십권에 이르는 다
양한 고소설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분량에 따른 분류도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이유는 분량을 기준으
로 한다는 것이 표기 수단만큼이나 포괄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고소설사가 단편 →
중편 → 장편으로 변화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편소설 중에서 우리 교과서는 「금오신화」, 「하생기우전」, 「삼설기」, 「허생전」을
원전강독의 텍스트로 제공하고 있다.
<핵심탐구>
1. 김시습의 「금오신화」의 가치와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본다
2. 시간을 내어 가족끼리 충남 무량사와 경주 남산(금오산)의 용장사지를 방
문하여 역사적 체험을 늘린다
3. 신광한의 「기재기이」의 번역본을 구해 읽어본다
4. 「하생기우전」의 애정소설적 요소에 대해 분석해본다
5. 「삼설기」에 속한 아홉 작품을 조사해본다
6. 연암 박지원의 전기적 생애를 조사해본다
7. 실학파와 북학파의 존재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8. 「허생전」, 「양반전」, 「호질」을 비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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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오신화
(1) 작가
1) 金時習
금오신화 의 작가 金時習(1434 - 1493)은 자가 悅卿, 호는 雪岑(법명), 淸寒子,
東峯, 贅世翁, 梅月堂이다. 그는 세 살 때 이미 글을 지을 줄 알았고 5세 때는 修撰
李季甸의 문하에서 小學, 中庸, 大學을 익혔다고 한다. 세조의 불법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방랑과 환속을 거듭하면서 세속을 멀리하다가 성종 24년 충청도 鴻山의 無量
寺에서 59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친 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동봉은 儒, 佛, 仙을 변
증법적으로 통합할 정도로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수많은 중국의 역대 뛰어난
인물에 대한 충실한 사실적 고증, 전등신화 의 신속한 유입과 비판적 수용, 엄청난
독서량 등 박학다식함이 특징인 천재적 사상가였으며 명분론에 입각한 불의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한 삶의 고통을 시와 소설로 형상화한 뛰어난 문학가이기도
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四遊錄 과 禪敎에 관한 사상서들인 十玄談要解 , 法華經
別讚 , 華嚴經 釋題 그리고 金鰲新話 와 梅月堂集 등이 있다.
2) 삶과 철학
① 고독감과 애상감으로 상징되는 고아의식(만복사저포기의 주인공 양생의 인물상
참조),
② 불의에 대한 저항과 방외인적 삶(세조의 왕위찬탈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방랑,
입산 생활),
③ 자유분방한 사고와 기행(천재적인 기질이 현실에서 용인되지 않는 여건과 관
계, 천재 시인의 광기를 세상이 이해하지 못한 경우),
④ 유,불,선의 변증법적 인식(성리학을 공부한 유림의 학자로 출발 해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입산, 승려생활 시작. 한 때 환속해 혼인했으나 다시 방랑, 입적 할
때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에의 귀의, 즉 유불선의 변증법적 인색에 의한 통
합에 몰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특성을 찾아낼 수 있다.
3) 세계관
① 일기탁약론 : 천지 사이에서 하나의 기가 풀무질할 따름이다. 구부림과 폄,가
득참과 텅빔이 기의 움직임, 사람에게 이로움과 해로움을 주는 모든 것
이 기의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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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정기이산설(精氣已散說) :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썩어 흙이 되지만 정신
은 분열되어 혼은 승천하고 백은 땅으로 스며들며 귀는 떠돌아 다니다
가 제사에 참석한다는 입장, 기가 흩어지면 음이 되고 모이면 양이 된다. 사
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는 땅으로 돌아간다는 주기론적 입장
③ 원이무물론 : 주관에 대한 생각, 우주는 둥글지만 형태는 없다. 기의 작용으로
일월성신의 움직임,추위와 더위,주야의 바뀜이 일어난다는 입장.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기의 움직임 때문이다.
<포인트>
● 김시습의 호가 지닌 의미는?
김시습은 실로 다양한 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호가 바로 그의
삶의 파란만장함을 상징해주는 동시에 자유분방한 사유의 단계를 설명해 준다는 점에
서 재미를 느끼게 해 주기도 한다. ‘梅月堂’이 금오신화같은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풍
류기담을 창작하려고 뜻을 밝힌 시에서 쓰여진 호이므로 상상력의 공간 또는 환상적
인 분위기의 미적인 이미지를 상징한다면, ‘東峰’은 유교적 대의명분론에 의한 그의
평생동안의 일관된 삶에서의 절개 내지는 지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淸
寒子’는 도교적인 자유분방하고 원융무애적인 화융사상의 한 상징이라면, ‘贅世翁’이
나, ‘碧山淸隱’도 같은 계열의 별호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雪岑’의 경우는 ‘눈덮힌
멧부리’라는 뉘앙스가 가져다주듯이 승려로서의 고고하면서도 세속에 타협하지 않고
고행의 길을 가면서 청아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배어있는 법호라고 할 수 있다.
(2) 취유부벽정기
「醉遊浮碧亭記」는 「萬福寺摴蒲記」, 「李生窺墻傳」, 「南炎浮州志」, 「龍宮赴宴錄」과
함께 금오신화 에 실려 있는 동봉의 한문 단편소설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는
殊異傳 , 三國遺事 의 여러 이야기의 발전적 계승이며, 명나라 瞿佑의 剪燈新話 ,
그 이전의 太平廣記 에 실린 여러 작품의 요소를 아울러 간직하고 있는 傳奇小說
의 전형이다.
1) 작품의 주제의식
「취유부벽정기」는 작가 김시습의 도선 사상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학계의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사실이 분명하게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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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있다. 그 하나는 역사적 회고를 통한 민족 주체 의식의 고취이고, 다른 하나는
도선 사상에 인식을 통해 역성혁명의 부당함을 설파하고 세조의 왕위 찬탈의 부당
함과 광포함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① 민족 주체 의식의 고취
「취유부벽정기」에서 남주인공 홍생과 여주인공 기자왕의 딸과의 만남의 계기는
홍생이 역사적인 공간인 부벽루에 올라 취흥에 젖어 시를 짓고 춤을 춘 것이 인연
이 된다. 이 작품에서도 전기소설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회답시’가 사건 전
개의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 작품에서 홍생과 기씨녀는 시라는 언어를 주고받음을
통해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이루고 고독한 자아의 상태를 벗어나게 됨을 알 수 있
다. 전기소설의 일종인 「취유부벽정기」에서 홍생은 기씨녀와의 만남을 통해 <타자
경험 속에서의 자기 반영>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개성에 살면서 평
양에 자주 방문하면서도 현실에서 망각하고 있었던 고구려와 단군, 기자조선 등의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에 대한
회고는 단지 감상적인 현실도피에서 머물지 않고 왕권의 단절이라는 현실의 부조리
함을 인식하는 계기로 전환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취유부벽정기」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작가의 사관과
역사의식이 분명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은 작가 김시습이 관서 지
방을 여행하던 중 평양을 방문하여 둘러보게 된 기자릉, 부벽루, 능라도, 기린굴, 조
천석, 영명사 등의 역사적 고적지에서의 체험이 밑바탕이 된 것으로 보여 진다.
② 작가의 도선 사상을 집대성
한편 「취유부벽정기」는 작가의 도선 사상을 집대성해 놓은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淸寒子 金時習이 믿었던 도교는 어떤 성격을 지니는가? 청한자는 老莊思想을
비판하면서 成立道敎와 民間道敎의 도교의 두 흐름 중 전자 즉 당시 유행한 修練道
敎를 후자 俗信淫祀 보다 더 선호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즉 청한자는 태극과 음양
을 별개의 존재로 간주하는 주자학적 견해를 반박하고 태극과 음양의 일체성을 강
조한 것처럼 독자적인 해석을 하며 그 체계가 練丹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청한자 김시습이 자유분방한 사유와 사상의 방황이후에 마지막으로 깨달은 것은 도
선적인 화융사상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원융무애사상을 통해 현실
의 고통에서 초탈할 수 있는 단적 세계관을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
취유부벽정기」에서 홍생이 屍解한 장면에서 입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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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등신화>와의 비교연구
끝으로 「취유부벽정기」는 비교문학적으로 볼 때, 전등신화 중 「鑑湖夜泛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닮음의 정도에 있어서는 「滕穆醉遊聚景園記」와
「만복사저포기」,「翠翠傳」과 「이생규장전」에 비해서는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감호
야범기」는 중국 원나라 시절 감호지방에 살던 성처사가 회계지방의 산수를 즐기다
가 배를 타고 인간세상이 아닌 은하수에 도달해 직녀의 신인 선녀를 만나 동서고금
의 고사의 진위여부에 대해 논쟁을 벌인 작품이다.
요약하면 금오신화 는 明나라 瞿佑가 지은 剪燈新話 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
지만 작가의 방랑생활에서 얻은 현실에서의 체험을 소재로 하여 독창성을 발휘함으
로써 전등신화 를 뛰어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초기의 1세대 국문학자들 사이에
조선조의 선비인 金安老의 龍泉談寂記 나 徐居正의 「東人詩話 의 기술에 근거하여
이 작품이 전등신화 의 모작이라고 본 견해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포인트5>
● 금오신화 의 소설사적 위상
금오신화 의 소설사적 위상은 ㄱ) 최초의 소설이라는 소설장르를 개척한 공적,
ㄴ) 전기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한 업적, ㄷ) 사회현실을 우의적으로 묘사하여 ‘사
실성’이라는 문학본래의 기능을 강화시킨 공로, ㄹ) <<전등신화>>, <<태평광기>>
등의 중국문화를 유입하여 독창적인 새로운 문학을 창조해낸 점, ㅁ)작품에 나타난 민
족주체성과 역사의식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통해 단순한 미적 형상화의 부산물로서가
아니라 역사속에서 숨쉬고 있는 생명력을 지니는 텍스트를 창조해낸 점 등이 높이 평
가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ㄱ)의 경우 최근의 ‘최치원전’을 소설의 효시로 보
려고 하는 학계의 강력한 학설전개로 빛을 잃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태상, 조선조 애정소설연구 , 태학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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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생기우전」
(1) 작가
1) 기재 신광한
기재 신광한(1484 - 1555)은 자는 漢之 또는 時晦 이고, 호는 석선재, 기재, 낙봉,
청성동주 등을 사용한 조선조 중종, 명종 연간의 사림파에 속하는 명신이다. 그는
도덕과 문장이 성세창, 정사룡 등과 더불어 당대 최고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그는
훈신과 척신들에 의한 왜곡된 언로를 바르게 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하려고 한 조광
조를 비롯한 신진사류를 축출한 ‘기묘사화’와 관련된 기묘사림으로 몰려 삼척부사에
서 체직되어 무려 15년간 여주 원형리에서 칩거하면서 우울한 중년기를 보냈다. 이
무렵 독서와 창작에 몰두하여 기재기이 를 완성하는 등 문장과 성리학에 있어서
후학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벼슬은 병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한성판윤, 형조
판서, 이조판서, 좌찬성, 우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2) 기재의 세계관과 문학관
① 사림파로서의 이상주의적 도학사상
:왕도정치에 대한 가치관은 꽃을 의인화한 가전체와 몽유록의 혼합양식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안빙몽유록>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② 문사의 풍도와 안빈낙도의 자족적 자세
:<최생우진기>에서 호탕하고 기개가 높으나 관직에 뜻은 없고, 좋은 경치를 찾
아 구경다니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최생을 통해 이를 표현하고 있다.
③ 지치주의에 입각한 민본사상
:<최생우진기>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최생이 수부를 다스리는 왕을 만나 유자
의 입장에서 용궁회진시 30운을 지어 올리게 되는데 태극 음양사상을 바탕으로
중국의 역대고사를 인용하는 대목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신광한이
노자와 장자사상 뿐만 아니라 맹자 등의 유가사상에도 듯을 두고 있었음을 확인
해 주고 있다.
④ 사회적 효용성과 載道적 기능 중시의 문학관
:기재 신광한의 문학관은 그의 유고집인 ‘기재집’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는 시의
가르침은 왕도정치를 위한 공시적 기능을 지니며, 시는 인간 삶의 성정의 근본
이 말로 일어난 것이라는 재도적 효용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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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당대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
: 정암 조광조가 도덕수행론을 바탕으로 도학정치를 구현하려고 한 것과 마찬가
지로 기제 신광한 역시 극기를 바탕으로 한 도덕성을 가장 중시했다. 이러한 가
치관은 그의 작품 속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데, 특히, <안빙몽유록>에서는
세 나무의 시를 통해, 그리고 <기재집>에 수록된 <속의한부(續擬恨賦)>에서는
중국의 옛글에 빗대어 당대의 정치현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2) 작품해설
「何生奇遇傳」은 企齋 申光漢(1484 - 1555, 성종 15 - 명종 10년)이 지은 企齋記
異 에 실려있는 「安憑夢遊錄」, 「書齋夜會錄」, 「崔生遇眞記」, 「何生奇遇傳」의 네 편
의 소설작품 중 한 작품이다. 企齋가 기재기이 를 지어 고려시대의 「최치원전」과
조선초의 금오신화 의 전기소설적 전통을 계승하고 임제, 권필, 허균으로 이어지는
조선조 소설사적 맥을 이어나간 공적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1) 기재기이의 작품
기재기이 의 작품 중 「안빙몽유록」은 꽃을 의인화한 의인체 소설이자 몽유록계
의 맥을 형성하게 된 작품이고, 「서재야회록」은 벼루를 치의자로 종이를 백의자로
먹을 흑의자로 묘사한 가전체작품이며, 「최생우진기」는 신선의 세계관을 보여줌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통박한 소설이다. 「하생기우전」은 고려시대의 하생이라는 서생
이 점쟁이의 도움으로 이미 3일 전에 죽은 여인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적선과 여경
의 두 아들을 낳고 40년간이나 부부생활을 영위한 전기소설에 해당된다.
2) 문학사적 위상
企齋記異 의 문학사적 위상은 첫째, 傳奇小說의 한 전형을 마련한 점을 들 수 있
다. 소설이 등장했던 초기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중국의 남북조 시대의 지괴
소설과 당나라 때에 크게 번성했던 전기소설이라고 할수 있다. 특히 唐代의 꿈처리
를 통해 도가적 삶의 가치를 논한 심기제의 「침중기」, 이공좌의 「남가태수전」과 봉
건적 예교와 문벌을 뛰어 넘은 순수한 사랑을 테마로 한 이조위의 「유의전」, 심기
제의 「임씨전」, 장방의 「곽소옥전」, 백행간의 「이와전」,원진의 「앵앵전」 등은 조선
조의 소설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여진다. 둘째, 기재기이 는 「최치원
전」 - 「만복사저포기」로 이어지는 소설형성기의 소설문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
며, 권필 ‧ 임제 ‧ 허균문학까지의 소설사적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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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라 소설의 최초작품으로 김시습의 금오신화 가 거론되었으나, 최근에는 「최치
원전」으로 소설의 기원을 앞당기려는 학계의 움직임이 있다. 특히 기재기이 는 白
湖 林悌의 「愁城志」, 權韠의 「周生傳」, 許筠의 「嚴處士傳」 등의 5傳이 나오기까지의
金鰲新話 이후의 조선초기의 소설문학사의 공백을 메워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셋째, 기재기이 는 기재의 문하생들인 申濩, 趙完璧 등이 발문에서 쾌락설과 공
리설의 효용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문학론을 밝힌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넷째, 기재기이
는 다양한 양식을 지니는 네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빙몽유록」은 몽유록의 구
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꽃을 의인화한 가전체의 형태를 가미하고 있다. 「서재야회록
」은 선비계층의 절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文房四友인 紙筆墨硯을 의인화한 가전
의 전형적 형식을 빌리고 있는 작품이다. 「최생우진기」는 주인공 최생의 신선세계
에 대한 체험을 증공이라는 보조인물의 구술을 통해 소설작품으로 형상화한 내용으
로 되어 있는 일종의 액자형의 유형을 지니는 작품이다. 이것은 내용의 비현실성을
보고적 형태의 증인의 입을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사실성을 가미하기 위한 장치로
보여진다. 「하생기우전」은 현실계의 인물인 하생이 내세의 인물인 여주인공과 사랑
을 맺는 전기적 형태를 지니는 애정소설로 중국의 剪燈新話 와 김시습의 金鰲新
話 의 전기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이렇게 기재 신광한은 당시에 중국
을 통해 유입된 전기소설의 유형과 전통적인 문학내적 발전과정 속에서의 영향관계
에 있는 가전, 몽유록체 등의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고 있다.
3) 애정소설
한편 「하생기우전」은 소설의 내용상 유형으로는 ‘애정소설’에 속한다. 이 작품은
애정담이나 애정소설이 갖추어야 할 구성요소인 (ㄱ)<남녀 주인공의 만남> -
(ㄴ)<친밀감의 형성> - (ㄷ)<열정으로 진전> - (ㄹ)<성적 결합 여부> - (ㅁ)<사
랑의 지속 또는 단절>의 다섯 단계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애정소설의 특
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생기우전」에서 하생과 무덤 속의 여인
간의 사랑은 ‘낭만적 사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취적 사랑’의 성격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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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 애정담을 담고 있는 패설류
<<태평통재>> 소재의 <최치원>, <<대동운부군옥>> 소재의 <수삽석남>, <<삼
국유사>> 소재의 <도화녀 비형랑>, <조신>, <김현감호>, <<삼국사기>> 소재의
<온달>, <도미>, <설씨녀>, 그리고 끝으로 <<보한집>> 소재의 <이인보> 등의 패
설류에는 애정담이 나온다. 애정담은 대개 (ㄱ)<남녀 주인공의 만남> - (ㄴ)<친밀감
형성> - (ㄷ) <열정으로 진전> - (ㄹ)<성적 결합 여부> - (ㅁ)<사랑의 지속 또는
단절>가 등장하므로 그것을 텍스트에 적용해보면 다양한 유형이 나온다. 그 결과 (a)
정격형, (b)ㄱ - ㄹ의 요약적 제시와 ㅁ의 요소를 구비한 변이형, (c)몽환구조속에 ㄱ
- ㅁ이 삽입되어 있는 변이형의 세 가지 유형을 찾아내었다. (a)유형에 속하는 작품으
로는 <최치원>, <김현감호>, <온달>, <설씨녀>, <이인보>가 있으며, (b)유형의 작
품으로는 <수삽석남>, <도화녀 비형랑>, <도미>가 있다. (c)유형에 해당되는 작품으
로는 <조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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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설기」 -황주목사계자기와 녹처사연회
「삼설기」는 경판 坊刻本 중 최초의 간행본으로 간행된 시기는 1848년으로 추정
한다. 이 단편집 속에는 《黃州牧使戒子記, 三子遠從戒》․《西楚覇王記》․《삼사
횡입황천기三士橫入黃泉記),洛陽三士記》, 《오호대장기(五虎大將記)》, 《서초패왕
기(西楚覇王記)》, 《노처녀가(老處女歌)》,《녹처사연회》, 《노섬상좌기》, 《황새
결송》의 9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삼사횡입황천기(三士橫入黃泉記)’의 내용은 낙양
에 사는 세 선비가 백악산(白岳山)에 봄놀이를 갔다가, 술에 취하여 황천(黃泉)으로
들어가 염라대왕에게 소원을 말할 때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지옥으로 떨어졌다
는 불교설화이다.
(1) 황주목사계자기
黃州牧使記는 국문 단편소설집인 「삼설기」 속에 포함되어 있다.
1) 작품 해설
황주목사계자기는 구성이나 서술문장이 중장편 국문소설에 비하여 근대성을 지니
고 있다. 특히 세련된 구성의 묘미나 유창한 문장표현, 서울의 시정적인 위트나 유
머와 격조 높은 풍자 등은 단편문학의 精華라고 할만하다. 서사적 전개는 옛날 동
촌 이화정에 윤수현이라는 명관은 아들 삼형제를 둔 것으로 시작한다. 발단은 아들
셋의 성격을 제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황주목사가 된 윤수현은 세 아들을 데리고 현지로 부임하게 된다. 세 아들은 그곳
에서 각각 기생을 데리고 나름대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이 틈에 기생은 각가지 폐
단을 일으키게 된다. 아들 또한 방자하기가 심해져서 날마다 풍악과 창기에 빠진다.
황주목사는 이런 행악을 참다못하여 상경하도록 명하고는 기생들과 이별하는 모습
을 엿보게 되었다.
맏아들은 이별이 서러워 울고 있는 기생에게 송구영신은 기생의 당연한 처사라고
하면서 냉정하게 꾸짖어 내치고 코를 골며 잠을 잤다. 둘째 아들은 기생과 서로 끌
어안고서 상경하고 나서 과거급제하여 데려갈 것이니 걱정 말고 절개를 굳게 지키
라고 하며 이별하였다. 그러나, 셋째 아들은 이별을 서러워하며 자기는 부모를 따라
나섰다가 몰래 도망쳐 나와서 아전의 서기나 하며 살겠다 하였다. 이러한 세 아들
의 이별 장면은 엿본 목사는 부인에게 아들들의 장래를 이야기하였다. 첫째 아들은
百惡을 구비하여 평생 평안하지 못할 것이며, 둘째 아들은 패악하여 속이기를 잘하
고 자기 이익만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셋째 아들은 태평성대에 여러 벼슬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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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를 누린 후에 정승까지 될 것이라고 하였다. 황주목사의 말을 듣던 아내
는 부모를 버리고 도망가던 아들에게 어찌 그리 후한 평가를 하느냐고 질책성의 반
문을 한다. 이 점이 작가가 의도적 장치로 설정한 반전의 미학에 해당된다. 뒷날 세
아들은 과연 아버지 목사가 예언한 대로 되었다 한다.
2) 작품의 특성
① 부분적으로 예언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② 상대방이 아무리 기생이라 하여도 애정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던 사람이 끝내
대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③ 이별 장면을 통해 인간의 자아회복의 필요성과 인간성에 대한 시사성 깊은 풍
자를 하고 있다. 넷째, 세 인물의 성격을 단순하고도 강도 있게 비교하여 단편적
구성의 묘미를 보여준다.
(2) 녹처사연회
한편 녹처사연회도 국문단편소설집인 삼설기 속에 수록된 단편이다. 삼설기 수록
9편의 작품 중에는 녹처사연회와 황새결송이란 우화계 작품이 2편이나 있다. 녹처
사연회는 황새결송보다도 본격적인 동물우화로 대표적인 조선후기 우화소설의 하나
로 평가되고 있다.
1) 작품해설
이 작품의 핵심은 동물들의 爭長과 녹처사가 초대받지 못한 동믈들과의 訟事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에 있다. 대표적인 갈등은 쟁장과 송사 중에서 녹처사와
초대받지 못한 두 종류의 동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상반된 공격 또한 흥미를 야기시
키는 부분이다.
주인공 녹처사는 자기의 생일잔치를 열고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초대한다. 그 때
녹처사는 초대받은 동물들의 신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산군인 백호는 초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호랑이만이 아니라 두꺼비, 너구리, 개구리 등도 초대하지 않았
다. 두꺼비 등은 수백년 전에 고향이 황폐하여 없어지는 바람에 이주를 해온 집단
이었다. 그들이 이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자 언짢아하고 있다가 녹처사의 행동을 백
호에게 所志로 고하였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백호는 자기가 초대받지 못한 것이 불
쾌하여 두꺼비 등의 소지를 빙자하여 題詞를 써서 형리에게 녹처사를 잡아오게 하
였다. 녹처사는 차사들을 대접하고 뇌물을 주어 백호에게 그 진노를 풀게 한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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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사들은 백호가 절대적인 권위가 있으므로 초대하지 않았다고 회유시킨 것이다.
그러자 백호는 화를 풀고 여러 동물들과 즐기고 돌아간다.
이러한 이야기의 골격은 訟事의 갈등은 녹처사의 뇌물과 기지로 해소되고, 산군으
로 군림하는 지배자의 위력은 여러 동물들의 일상사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즉, 사실과 위선, 강력한 힘에 대응하는 약자들의 삶의 지혜를 동시에 제
공하고 있다.
2) 작품의 특성
① 쟁장 설화와 송사설화의 복합적인 수용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② 초대받지 못한 두꺼비 등의 분노와 백호의 분노가 적절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③ 산군인 호랑이의 위세도 결국 뇌물과 기지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④ 녹처사와 두꺼비, 백호라는 세 동물들의 성격을 재치있게 대비하는 삼설기 수
록 작품 특유의 기법을 적절히 살려내고 있다.
4. 「허생전」
(1) 작가
1) 연암 박지원
연암 박지원(1737 ~ 1805)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북학자인 대사상가이다. 그
의 자는 중미, 호는 연암이었다. 그는 부친의 무능함과 모친의 이른 사망으로 우울
한 유소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조부의 보살핌과 16세 결혼 후 장인 이보천과 처삼
촌 이량천의 도움으로 학문에 눈을 떠서 20세에 이르러서는 사기와 사서삼경을 독
파하여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대 후반기에는 친우 유언
호, 신광온과 어울려 금강산 등의 유람하면서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싹텄으며, 32세
무렵 원각사 근처의 백탑으로 이사해서는 뒤에 조선후기 4대가의 큰 학자로 이름을
날리게 된 제자 이덕무, 이서구, 유득공, 서상기 등을 만나 교유하면서 관학파들의
무능과 부패상 등을 비판하고 대안으로서 이용후생의 학문을 내놓게 된다. 특히 제
자들보다 뒤늦게 44세 무렵에 청나라를 방문하고 서양의 자연과학 문물이 이미 자
리 잡은 것을 보고 큰 문화적 쇼크를 받아 열하일기 26권을 서술하고 박제가, 홍
대용 등과 북학파로서 모순된 조선후기의 사상계를 질타하게 된다. 연암의 실학사
상의 핵심은 지전설, 휴머니즘, 민족주의, 실용주의, 리얼리즘으로 압축되며, 그의
문학관은 法古刱新과 拓古改制로 요약된다. 즉 당송팔대가의 고문에서 뛰어난 솜씨
를 보이면서도 새로운 문체를 창조하려고 노력한 개혁사상가라고 설명할 수 있다.
2) 연암의 세계관
① 우주에 대해 자연과학적인 접근태도.
② 사물을 발전적 동태로 파악하려했다.
③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해있었다.
④ 사물에 대해 개체주의적인 접근태도를 가짐으로써 개방성을 띄고 있었다.
3) 연암의 문학관
① 법고창신 강조
② 문장은 사의에서 그쳐야지 망상이나 가식이 스며들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주의의
문장론 전개.
③ 사실적 표현과 더불어 상스러운 일상어와 예사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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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노래 및 마을의 상말까지도 시정의 생활상을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 적극
수용해야 함 주장.
(2) 작품감상
許生居墨積洞, 直抵南山下, 井上有古杏樹, 柴扉向樹而開, 草屋數
間不蔽風雨, 然許生好讀書, 妻爲人縫刺1)以糊口2), 一日妻甚饑, 泣曰
子平生不赴擧3), 讀書何爲, 許生笑曰吾讀書未熟, 妻曰不有工乎, 生
曰工未素學, 奈何, 妻曰不有商乎, 生曰商無本錢奈何, 其妻恚且罵曰,
晝夜讀書只學奈何, 不工不商何不盜賊, 許生掩卷起曰, 惜乎吾讀書本
期十年, 今七年矣, 出門而去, 無相識者, 直之雲從街4), 問市中人曰
漢陽中誰最富, 有道卞氏者5), 遂訪其家, 許生長揖曰, 吾家貧欲有所
小試, 願從君借萬金, 卞氏曰諾, 立與萬金, 客竟不謝而去, 子弟賓客
視許生丏者6)也, 絲絛穗拔, 革屨跟顚, 笠挫袍煤, 鼻流淸泲, 客漑去,
皆大驚曰大人知客乎, 曰不知也, 今一朝浪空擲萬金於生平所不知何
人, 而不問其姓何也, 卞氏曰此非爾所知, 凡有求於人者. 必廣張志意
先耀信義, 然顔色媿屈言辭重複, 彼客, 衣屢雖弊辭簡而視傲, 容無怍
色7), 不待物而自足者也, 彼其所試術不小, 吾亦有所試於客, 不與則
已, 旣與之萬金問姓名何爲
“허생(許生)은 묵적골에 살고 있었다. 줄곧 남산(南山)밑에 닿으면 우물터 위에
해 묵은 은행나무가 서 있고, 사립문이 그 나무를 향하여 열려 있으며, 초옥 두어
칸이 비 바람을 가리지 못한채 서 있었다.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였고, 그
의 아내가 남의 바느질품을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셈이다. 하루는 그 아내가 몹
시 주려서 훌쩍훌쩍 울며 하는 말이,
1) 裁縫과 刺繡
2) 입에 풀칠을 함
3) 과거를 보러 감
4) 지금의 鍾路.
5) 卞承業의 조부로 실존인물임
6) 비렁뱅이
7) 부끄러운 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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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 평생에 과거(科擧)도 보지 않사오니 이럴진대 글은 읽어서 무엇하시려
오?”
하였다. 허생은,
“난 아직 글 읽기에 세련되지 못한가 보오.”
하곤 껄껄대곤 했다. 아내는,
“그러면 공장이 노릇도 못하신단 말예요?”
하였다. 허생은,
“공장이 일이란 애초부터 배우지 못했으니까 어떻게 할 수 있겠소.”
하니 아내는,
“그럼, 장사치 노릇이라도 하셔야죠.”
한다. 허생은,
“장사치 노릇인들 밑천이 없고서야 어떻게 할 수 있겠소.”
하였다. 그제야 아내는 곧,
“당신은 밤낮으로 글 읽었다는 것이 겨우 어찌할 수 있겠소 하는것만 배웠소그려.
그래 공장이 노릇도 하기 싫고, 장사치 노릇도 하기 싫다면, 도둑질이라도 해보는게
어떻소?”
하고는 몹시 흥분하는 어조로 대꾸했다. 이에 허생은 할 수 없이 책장을 덮어 치
우고 일어서면서,
“아아, 애석하구나. 내 애초 글을 읽을 제 십 년을 채우렸더니 이제 겨우 7년 밖
에 되지 않는군.”
하고는, 곧 문 밖을 나섰으나, 한 사람도 아는이가 없었다. 그는 곧장 종로 네거리
에 가서 저자 사람들에게 만나는대로,
“여보시오, 서울 안에서 누가 제일 부자요?”
하고 물었다. 때마침 변씨(卞氏;변승업의 조부)을 일러주는 이가 있었다. 허생은
드디어 그 집을 찾았다. 허생이 변씨를 보고서 길게 읍(揖)하며,
“내집이 가난해서 무엇을 조금 시험해 볼 일이 있어 그대에게 만금(萬金)을 빌리
러 왔소”
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는, 곧 만 금을 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어디론지
가버렸다. 변씨의 자제(子弟)와 빈객(賓客)들은 허생의 꼴을 본즉, 한 개의 비렁뱅이
였다. 허리에 실띠를 둘렀으나 술이 다 뽑혀 버렸고, 가죽신을 뀄으나 뒤굽이 자빠
졌으며, 다 망그러진 갓에다 검은 그을음이 흐르는 도포(道袍)를 걸쳐 입었는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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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맑은 물이 훌쩍훌쩍 내리곤 한다. 그가 나가버린 뒤에 모두들 크게 놀라며,
“아버지, 그 손님을 잘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변씨는,
“몰랐지.”
“그러시다면 어찌 잠깐 사이에 이 귀중한 만 금을 평소에 면식도 없는 자에게 헛
되이 던져 주시면서 그의 성명도 묻지 않음은 무슨 까닭이십니까?”
했다. 변씨는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엔 반드시 의지(意
志)를 가장하여 신의(信義)를 나타내는 법이다. 그러고 얼굴빛은 부끄럽고도 비겁하
며, 말은 거듭함이 일쑤이니라. 그런데, 이 손님은 옷과 신이 비록 떨어졌으나 말이
간단하고 눈 가짐이 오만하고 얼굴엔 부끄런 빛이 없음으로 보아서 그는 물질(物
質)을 기다리기 전에 벌써 스스로 만족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아마 그
의 시도하려는 방법도 적지 않거니와, 나 역시 그에게 시도함이 없지 않는 거다. 그
리고 주질 않는다면 모르려니와 기왕 만 금을 줄 바에야 성명은 물어서 무엇하겠느
냐.” 하였다.
(3) 작품해설
「허생전」은 熱河日記 에 실려있는 燕巖 朴趾源의 풍자적인 한문소설이다. 열하
일기 는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칠십 수를 축하하기 위한 외교사절단
의 일원으로 참가한 연암이 약 5개월 동안의 중국 견문을 기록한 총 26편( 총 24편
설과 25편설 등이 있음)으로 된 燕行錄이다. 열하일기 는 일기형식을 근간으로 한
연행록이지만,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대부분의 연행록들처럼 서울에서 출발하여 다
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전 여정을 서술하고 있지는 않다. 즉 압록강을 건너 중
국 땅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시작하여, 북경을 거쳐 열하까지 갔다가 북경에 되
돌아올 때까지의 부분만 일기체로 서술되어 있으며, 북경에서 체류하며 관광하던
시기는 잡록의 형식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북경에서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
은 전혀 서술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허생전」이 실려 있는 「玉匣夜話」는 열하일기 총 26편중의 한 편이자 동시에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크게 당시의 역관과 중국 무역에 관
한 일화들로 된 서두부와 ‘허생’이란 일개 窮儒가 매점매석으로 번 거금으로 이상촌
을 건설하여 빈민들을 구제한 이야기, 그리고 御營大將 李浣을 만난 허생이 北伐을
추진하던 당시 집권 사대부층의 무위무능을 추궁한 결말부로 구성되어 있다.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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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야화」 後識에서 연암은 그 창작 경위를 밝히고 있다. 「옥갑야화」중 서두부의 일
화들은 연암이 동행한 여러 비장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소개한 것이나, 허
생과 관련된 부분들은 예전에 尹映이란 노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 설화(흔히 ‘허
생고사’라고 함)를 바탕으로 그가 재창작한 것이다.
「옥갑야화」 전체의 구성 중에서 「허생전」은 제 7화에 속한다. 「허생전」에는 네 인
물이 나온다. 물론 주인공은 허생이고, 구 아내와 卞承業, 李浣대장이 나온다. 이 작
품의 뛰어난 점은 인물간의 대립, 갈등양상을 치밀하게 구성한 점이다. 「허생전」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허생과 아내가 갈등을 빚는 이야기
이다. 아내는 배가 몹시 고파 울면서 허생에게 세 가지 일을 할 것을 권한다. 그것
은 노동, 장사, 도둑질의 세 가지이다. 여기에는 노동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면서
독서만 일삼는 양반들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작가의식이 스며들어 있다.
둘째 부분은 변승업과 허생이 관계를 맺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
는 「허생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10년을 기약한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하고 7년만에 중단한 허생은 당대 최고의 부자인 변승업을 찾아가 만냥을 빌린
다. 그 돈으로 그는 세 가지 시험을 한다. 하나는 과일 買占이고, 또 하나는 말총매
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매점으로 번돈으로 변산의 수천의 群盜들을 무인도로 이끌어
理想鄕으로 만든다. 섬을 떠나며 남은 돈 백만 냥 중 50만 냥은 바다에 버리고 나
머지로 나라의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구제(活貧사업)한다. 그러고도 남
는 돈 은 10만 냥은 변씨를 찾아가 갚는다. 여기에는 연암의 경제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셋째 부분은 허생이 이완대장과 대립관계를 맺는 부분이다. 변승업을 통해 이완
을 만난 허생은 그에게 세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와룡선생과 같은 훌륭한 인재를
천거하겠으니, 임금께 아뢰어서 三顧草廬할 수 있겠는가 라고 묻는다. 둘째는 명나
라 장졸의 후손들에게 宗室의 딸을 시집보내고 勳戚 權貴의 재산을 빼앗아 그들에
게 줄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셋째는 가장 쉬운 일로 辮髮 胡服을 입혀 사대부
집안의 인재들을 중국에 유학 보내고, 평민들에게 무역을 권장하여 富國의 방도를
꾀하고, 南蠻의 유물인 상투와 廣袖白衣를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 세 가
지 제안은 모두 이완에 의해 거부됨으로써 두 인물간의 평행적 관계는 지속된다.
작가 연암은 「허생전」의 등장인물인 변승업을 통해서 작가의 경제사상을 피력하
고 李浣과의 갈등을 통해서 당대의 인재등용 제도의 모순과 권력층의 부패, 무위도
식 등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면서 자신의 북학사상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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