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맞은 캐나다 비씨주 한인문화축제 '갈라공연'에 이어
한인문화축제의 둘째 날인 4일 저녁에는 한국에서 초청된 '국악의 향기' 팀의 다채로운 국악의 향연이 펼쳐졌다. 온전히 국악 공연만으로 구성된 둘째 날은 한국 문화 애호가로 자칭하는 캐나다 관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국악의 향기' 국악 앙상블은 코퀴틀람시에 거주하는 가야금 연주자 윤옥주 씨가 캐나다 이민 오기 전 활동했던 국악 공연팀으로 좀처럼 국악공연 관람이 어려운 이곳에 한인문화협회의 기획과 초청으로 성사되었다.
['국악의 향기' 리더인 윤옥주 가야금 연주자가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통신원]
한국에서 국악 중학교, 국악 고등학교,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을 졸업한 윤옥주 가야금 연주자는 가야금 앙상블과 국악 밴드 등으로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다 2018년 캐나다로 이민왔다.
'국악의 향기' 팀은 가야금, 25현 가야금, 대금, 피리, 타악기, 아쟁으로 구성된 국악 앙상블이며 이에 판소리와 민요 소리꾼이 함께 연주 활동을 하던 팀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한인문화축제에는 25현 가야금(김아람), 대금(강성우), 피리(강승호), 판소리(박현정) 연주자가 참여하였다.
['국악의 향기' 팀의 찾아가는 문화 행사, 동해문화예술회관 공연 후. 사진 출처: 윤옥주]
캐나다 한인문화축제에서 보기 드물게 한 날의 모든 프로그램을 국악 공연만으로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어서 기획자이자 공연 연주자였던 윤옥주 씨에게 진행 과정과 소감을 물었다.
"저는 전문기획자는 아니지만 공연 기획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밴쿠버에서, 해외에서는 처음이다 보니 실현 가능성을 짐작하기가 어려워 좌충우돌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머릿속으로 보여드리고 싶은 무대를 그리고 하나씩 준비하며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는 걸 느끼면서 힘을 내어 준비했습니다. 또한 부족한 부분들은 멤버들에게 부탁하고 멤버들은 기꺼이 제가 그리는 무대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신동휘 회장님과 서수경 이사님 그리고 제 주변의 많은 분이 이번 국악 연주회가 어떻게 펼쳐질지 막연했을 텐데도 저를 믿고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소리의 출력이나 무대 전환에 대한 방식이 한국과는 달라 리허설 진행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습니다만, 국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현지의 음향 스텝들과 한인문화협회 음향 감독님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열악한 상황에서도 좋은 소리를 관객분들께 들려드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한인 동포 관객분들의 따듯한 시선과 뜨거운 박수, 환호 소리에 저희 국악의 향기 연주자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윤옥주 씨는 이번 국악 연주회가 끝나자 여러 관객으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국악 공연이 없었다. 처음이다."라는 평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동안 얼마나 우리의 소리가 그리우셨을까, 왜 진작 이런 국악 공연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앞으로 꾸준히 국악 연주회를 기획하고 우리의 전통음악을 들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천년만세(千年萬歲)'는 수명이 천년만년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 통신원]
[판소리 '심청가' 공연에서 소리꾼 박현정 씨의 실감 나는 심 봉사의 장님 연기는 물론 순식간에 효녀 심청의 모습으로도 변신하였다. 사진 :통신원]
어떤 관객들은 판소리가 담은 엄청난 성량에 놀라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판소리 '춘향가'가 인기 있지만, 고국에 계신 그리운 부모님 생각을 할 수 있는 '심청가'가 프로그램에 있어 반가웠다.
['25현 가야금 듀오' 25현 가야금은 12현의 전통 가야금을 개량시킨 현대적 악기로 오늘날 널리 연주되고 있다고 한다. 사진: 통신원]
서양식 연회복 디자인의 개량 한복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한 김아람, 윤옥주 두 가야금 연주자의 모습이 파격적이었다. 25현 가야금의 소리는 마치 서양 악기 하프의 소리를 연상하게 하였고, 국악기로 연주된 곡은 놀랍게도 파헬벨의 '캐논',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민요 그리고 비틀스의 명곡 메들리였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에 관객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상에 젖어 들었다.
김아람 가야금 연주자는 한국에서의 일정 및 연습을 도맡아 음악감독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공연장 객석의 반응이 공연 전 걱정했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해외에 오랜 세월 살고 계시는 재외동포들에게 국악은 어려울 수도 있어 유명한 대중적인 곡들을 많이 프로그램에 포함했는데 내년에도, 후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들을 찾아뵙고 국악을 많이 들려드려서 모든 곡을 함께 울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초청 공연 연주자의 전하는 마음을 보면서 고국을 떠난 동포들을 위해 공연 레파토리 선정에도 많이 고민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일정을 조정해가며 어렵게 캐나다 공연에 참여한 '국악의 향기' 연주자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제히 캐나다 공연에 대한 소감과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강승호 피리 연주자는 "국내에서도 많은 연주를 통해 활동하고 있지만 해외에서 우리 국악을 연주한다는 일은 언제나 가슴 벅찬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국에서의 국악 공연은 진한 감동과 여운을 동반합니다. 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며 세계인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외국에서 퍼지는 애국가, 아리랑을 해외에 사는 동포들과 하나 되어 같이 노래를 부를 때 연주자로서 뜨거운 감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감동적인 소감을 전해왔고, 강성우 대금연주자는 "여러 해외 연주를 다녀보았지만, 캐나다 한인문화축제에서 둘째 날 공연은 그중 가장 뜻깊은 연주라고 생각됩니다. 보통 한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함이거나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는 공연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한인 동포들을 위해 연주하면서, 함께 공감하고 울고 웃을 수 있는 공연을 한 것 같아 뭉클했습니다. 밴쿠버의 여름 날씨는 천국에 비유될 정도로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지만 11월에 방문한 저희를 맞아주는 것은 쉴 새 없이 내리는 비였습니다. 하지만 비 덕분인지 마음도 차분해지고 훨씬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관객들의 집중도도 높았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온라인 미팅을 하면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뿌듯한 공연이었습니다. 이 공연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저희를 도와주시는 교민 여러분 덕분에 저희가 더 감동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전해왔다. 마치 전장에 위문공연을 하기 위해 찾아와 준 연주자들에게서 듣는 인사말과 같이 큰 감동을 주었다.
['청성곡(淸聲曲)'은 연주자의 길고 깊은 호흡이 매력적인 대금 연주곡 중에 대표적인 독주곡이다. 사진: 통신원]
['도라지 타령'을 연주한 가야금 연주자 왼쪽 우서인, 오른쪽 김이안, 윤옥주 가야금 연주자가 장구 반주를 하고 있다. 두 어린이에게 9월부터 지도했다고 한다. 사진: 통신원]
[객석의 가장 앞자리에 앉은 어린이 관객들의 국악을 감사하는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사진: 통신원]
[관객들은 캐나다에서 태어난 2세 한인 어린이들과 함께 '고향의 봄'과 '아기 상어'를 합창했다. 우서인(초등3), 한수빈(초등3), 조윤서(3살), 김한나(초등3), 우해인(초등1), 김이안(초등5) 사진: 통신원]
윤옥주 가야금 연주자가 가야금을 지도했을 때 아이들은 너무나 신기해하며 가야금 소리가 좋다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아픈데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계속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고 하고, 공연도 재밌었는지 또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국악의 향기' 연주자들과 재외동포 2세 어린이들이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통신원]
20회를 맞이하는 캐나다 한인문화 축제의 장을 총정리하는 의미에서 함께 관객의 소감도 모아보았다.
"한국에서 방문한 연주자와 현지 연주자가 리허설하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을 터인데도 합이 너무나 잘 맞았던 것 같고, 다양한 장르를 국악에 접목을 시도한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습니다. 한국어가 서툰 1.5세 젊은 층을 위해 가사 전달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한인문화축제에서 마련해준 '국악의 향기' 덕분에 막바지 가을에 어울리는 정취를 즐겨본 좋은 날이었고요.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 이영숙 씨 감상평
"멀리 문화가 다른 땅에서 이렇게 국악의 향기를 음미할 기회가 좋았습니다. 호흡과 순응하며 깊은 내면의 정서와 같이 울리는 국악은 마음을 순화시키고 평안하게 해주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흥이 넘치는 퓨전 국악곡인 '프론티어'를 생음악으로 들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약간 박자가 안 맞아 안타까와하는 연주자의 모습도 그냥 인간적이고 수수해서 좋았습니다. 판소리는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상호작용이 있어 재밌었습니다. '아기상어'와 함께 아이들의 꾸밈없는 모습과 함께 울려 퍼진 '나의 살던 고향은'은 아련하게 향수를 불러왔고, 흐뭇한 웃음을 짓게 했습니다. 국악의 저변이 넓어져 더 많은 국악 동호인들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연하신 분들 또 공연을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과 초대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 장민용 씨 감상평
이틀간의 대장정 한인문화축제를 다녀오면서 느낀 점은 대규모의 스타디움에서 진행했던 수천 명이 함께하는 한인문화축제가 그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캐나다 속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이민자이면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우리 한인 예술가들의 만남이 이뤄지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는, 실내 공연장의 기획과 구성도 좋았다. 두 번째 날의 프로그램도 캐나다에서 접하기 힘든 2시간의 국악 연주를 감상할 수 있어서 소중했다. 한인문화축제의 앞으로의 진화가 매우 궁금해진다.
*재외동포재단 스터디코리안 해외통신원리포트 2022.11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