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군왕릉에 이어 삼척시 사직동(史直洞) 산 43번지 고분군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실직군왕비 밀양박씨묘(悉直郡王妃 密陽朴氏墓)를 찾았다. 일명 실직군왕비릉(悉直郡王妃陵), 사직릉(史直陵)이라고도 한다. 갈야산 고분군과는 오십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약 2㎞ 정도 떨어져 있다.
1994년 사직동 고분군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3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1호묘인 상총(上塚)은 유구(遺構) 내부까지 도굴되었지만, 거대한 봉분과 납작(平)천장을 갖춘 평면 장방형(長方形)의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으로 확인되었다.
2호묘는 천장석 일부가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었다. 3호묘로 명명된 하총(下塚) 일사직릉에 대한 현장과 문헌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다.
1호묘, 3호묘와 관련한 조선시대의 문헌 기록이 남아 있다. 삼척부사 허목(許穆)이1662년에 편찬한 '척주지(陟州志)' 부내조(府內條)에 '史直古悉直氏之國新羅婆娑王二十三年降新羅智證王六年初置悉直州以金異斯夫爲軍主悉直國或曰悉直谷國今史直南有上下二塚其上塚崩毁其中削石 爲石葬容數十人高仞餘'라 하였다.
김종언(金宗彦)이 1884년 이후에 편찬한 '척주지(陟州誌)' 고적사직고총조(古蹟史直古塚條)에는 '新羅智證王六年初置悉直州以金異斯夫爲軍主或曰悉直國未詳今史直南有上下二塚其上崩毁其中削石爲石葬容數十人高丈餘葛夜山有如此古塚黃池山有如此塚科洞平陵有如此塚兮不可考古塚皆然'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직동 고분과 갈야산 고분은 17세기와 19세기에 이미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직동 고분군은 갈야산 고분군과 함께 삼척지역에 현존하는 고 신라기의 대표적인 고분군 유적이다. 1호묘의 구조와 규모로 볼 때 두 고분군은 대략 5~6세기 경 이 지역의 최상위 지배층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
실직군왕릉과 실직군왕비릉은 규모도 비슷하고, 석의도 거의 같다. 조각 수법 등으로 볼 때 두 고분의 석의는 같은 장인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많다. 다만 실직군왕릉의 좌우 망주석(望柱石)은 동일한데, 왕비릉의 좌우 망주석은 하단부가 약간 다르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래 망주석의 땅 속에 묻혔던 하단부가 지상으로 돌출된 것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