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甕), 옹기(甕器)의 기원과 발전
옹(甕,瓮)은 독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어로서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옹(독)은 선사시대(청동기시대) 부터 만들어져 음식을 저장하거나 시신을 담는 관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삼국시대에 들어와 옹(독)은 생활에 긴요하게 사용되어 고구려의 안악3호분 고분 벽화 우물주변에 크고 작은 독이 늘어져 있는 장면과 백제나 신라에서는 쌀이나 술, 기름, 간장, 젓갈, 등을 저장하는 독으로 사용했던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 12세기 전반의 서긍의 [성화봉사 고려도경]에 의하면 쌀과 장의 저장용으로 큰 독을 사용했으며
과일이나 초, 식수의 저장용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15세기 후반 성현의[용제총화]에도 생활용기로서 옹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경국대전]에도 전국의 도기소와 옹(독)을 만드는 옹장(甕匠)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옹(독)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독의 형태로 생활에 긴요하게 사용되었던 그릇임을 알 수 있다.
옹기(甕器)는 그릇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약토라는 황갈색의 유약이 시유된 그릇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옹기 안에는 독을 포함하여 소래기, 단지. 식초병, 시루, 거름통, 화로, 국물, 약탕기 등 황갈색
유약이 시유된 생활용의 그릇들을 말하는 것으로 형태로서의 옹(독)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황갈색이 유약이 시유된 옹기는 15, 16세기의 분청자, 백자가마터에서는 발견된바 없으나
17세기의 청화백자 가마터인 담양 용연리 대전 전생동에서 발견되고 있어 임란, 호란 이후
조선이후 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따라 종래의 토기표면을 약토로 시유한 옹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옹기는 18, 19세기를 거치면서 조선사회의 요구에 따라 급속하게 전국으로 확산되어 만들어져
국민들이 생활에 긴요하게 쓰여졌으며, 지역에 따라 형태나 무늬에 있어서도 다양하게 만들어 졌다.
이러한 모습은 19세기 후반 기산의 풍속도에 가마가 있는 옹기점과 옹기를 만드는 모습 파는 모습 등으로 잘 나타나 있다.
20세기 전반 일제 치하에서 광명단이 옹기에 쓰여지기 시작하였고
1960년대 이후 옹기제작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 현대생활의 변화에 따라 옹기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옹기문양
손가락그림은 건조된 날 그릇에 유약을 바른 후 유약이 마르기 전에 손가락으로 훑어내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독특한 시문방법이며 그 표현이 자유분방함과 독창성에서 옹기만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시유된 유약의 두께를 점검하고 소성 후 노출된 점토를 통해 소성상태가 완벽한가를 확인하기 위해 행하여지기 시작했다.
그 후 장식문양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장독대에 놓인 여러 옹기의
내용물을 식별하고 장독 공간의 신성화에 의한 상징적 부적이 역할도 겸하게된다.
수화문에는 원호문 대나무잎문 용수철문 파도문 산모양문 구름문 풀꽃문 게문 오징어문등이 있다.
문양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독특한 방법은 풀잎이나 나뭇잎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한지 등으로 문양을
오린 후 건도된 날 그릇에 붙인 다음 유약을 바르면 그 부분만 유약이 묻지 않아 문양으로 남는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쑥 클로버 익모초나 아카시아 벚나무 등의 잎이 이용되고 있다.
▲ 물동이
(甕器把手附壺)
▲ 방퉁이, 앵병
(甕器小壺)
▲ 항아리
(甕器大甕)
▲ 익산군명문항아리
항아리 몸체에 세로로 새겨져 있으며 흘림체의 글씨여서 정확한 판독은 어려운데
익산군의 어느 지명을 기록한 것으로 판단한다.
▲ "촛병"명촛병
어깨에 촛병이라는 한글 명문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초를 제작 사용하는데 쓰인 옹기임을 알 수 있다.
옹기유를 바른 후 도구로 새겼다.
▲ 주소명단지
군우 157 보병 제3000부대 병기중대
군번 11112539 상병 김삼태
작은 단지에 옹기유를 바른 후 날카로운 도구로
군사우편 주소를 기입하였다.
▲ "져츅" 명단지
입이 비교적 큰 항아리로 기다란 몸체에 세로로
"죠츅" 이라는 명문을 새겼다.
절약과 저축을 위한 좀도리 쌀을 저장하는 항아리 이다.
명문은 옹기유를 바른 후 도구로 새겼다.
▲ "치숫병" 명거북물병
치솟병 체조즌 ㅇ최 ㅇ天 일금은 五十전
평평한 바닥에 둥근 몸체를 가진 거북모양의
불병으로 등면에 한글로 둥글게 새겼다.
▲ "쳥챵쥬" 명 옹기항아리
"天쳥창쥬 독가사 이라" 고 어께에 도구을 이용하여 세로로 써 넣었는데
우측의 그림과 더불어 매우 조잡하다.
"천창주의 독아지이다" 라는 의미로 판단된다.
▲ "산내면" 명 항아리
"一圓五十ㅇ 山內面 功ㅇ"
중간 크기의 항아리 몸체에 세로 방향으로 명문을 써 넣었다.
항아리 가격과 주문자의 사는 곳을 새긴 것으로 판단된다.
▲ "연" 명 항아리
"煙 아가리 몸체 아래에 옹기유를 바른 후 손가락으로 커다랗게
연기 연 자를 쓰고 원을 둘렀다.
답뱃잎을 저장하는 용기로 사용된 것이다.
▲ "보령군" 명 항아리
"保寧郡 大川面 花山里 土器店村에 書넌 上定 金三百五十"
항아리 몸체에 도구를 이용하여 세로로 새겼는데 한문과 한글이 섞여 있는 것으로 판단 된다.
지명과 금액이 기록되어 있다.
▲ 목욕통
우리 전통가옥구조에서는 목욕 문화가 발달되지 않아 별도의 목욕시설이 없었다.
부유한 집에서는 옹기목욕통을 마련하여 사용하였으나 대부분 집에서는
소래기나 널박지 등을 부엌에 놓고 데운물을 담아 목욕하였다.
▲ 옹정
옹정이란 샘물을 보호하기 위해 우물의 벽을 흙 돌 나무 등으로 쌓은 대신 옹기로 통을 만들어서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 우물 설비를 카리키는 말이다.
옹정은 겨울과 여름의 기온 변화에도 견딜 수 있도록 좋은 찰흙으로 1.200℃ 이상의 높은 고온에서 구워냈다.
▲ 귀때사발
▲ 수박동이
물을 긷는 작은 물동이로서 손잡이가 달려있다.
옛적 어린이가 예닐곱살 되면 이 수박동이를 혹은 애기동이를 이용하여
물 긷는 연습을 하였다.
▲ 좀도리병
좀도리는 쌀을 절약한다는 절미(節米)의 전라남도 방언이다.
가난했던 시절에 쌀은 저축의 수단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짓기전에 약간의 덜어내어
좀도리병에 따로 모아 두었다.
▲ 겹오가리
그릇의 아기리 주위를 두르는 또 다른 아가리가 부착되어 있어 겹오가리로 부른다.
주로 고추장 등 단 음식을 저장하는 용기로 사용되기 때문에 개미나 벌래 등의 공격 대상이 된다.
그래서 아가리 사이에 물을 담아 이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오가리로 우리 조상들이 지혜가 담긴 그릇이다.
▲ 시루
시루는 증기로 떡을 찌는 도구이다.
농업을 위주로 하는 우리 생활에서 떡은 천신과 지신 등 모든 신들에게 제사 지낼 때
빼놓을 수 없는 재물이며 특별한 잔치가 있을 때 즐기는 귀중한 식품이다.
이러한 대형 시루는 왕실이나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때나 슐도가에서 술밥을 찔때 사용한다.
▲ 약뇨병
오줌깨라고도 하는데 솔잎이나 짚으로 아가리를 막아 새끼줄을 메어서 분뇨통 속에 넣어 약뇨를 채취한다.
관가에 끌려가 곤장을 맞아 골병든 사람에게 얼을 푼다하여 민간요법을 널리 사용하였다.
▲ 약탕기
한약을 끓익 달이는데 사용하는 그릇이다
풍로나 화덕 위헤 올려놓고 일정한 발 열량을 유지하는 참숯이나 뽕나무가리로
불을 지펴 달였으면 한지를 쒸워 뚜껑을으로 사용하였다.
▲ 쭈꾸미잡이통
쭈꾸미을 잘을 때 쓰는 통으로 문어 잡이통 보다 작다.
줄을 이용해 메달아 버닷물에 놓어두면 쭈꾸미가 통 안에 들어가게 된다.
▲ 병아리물통
주로 작은 병아리 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통이다.
물이 스며나오는 구멍 앞에 보다 높은 턱을 두어 통안에 물을 가득 넣어도 넘치지 않게 고안되었다.
병아리가 먹는 양만큼 물이 나온다.
▲ 좌 "옥옥주점" 명술병
원통형의 긴 일제강점기 주병으로 몸체에 백색안료를 이용하여 좌우로 정광(政光) 이리 쓰고
그 사이에 새로운 옥옥주점 이리 크게 써 넣었다.
▲ 우 "성전지점" 명술병
원통형의 일제강점기 주병으로 몸체에 백색안료를 이용하여 세로로 "성전주점" 이라 써 넣었으며
뒤쪽에 천(泉) 신광(申廣) 이라는 명문이 있다.
▲ 일제강점기 술병
▲ "무창주조장정" 명 술병
비교적 큰 몸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짧은 목에 넓게 벌어진 아가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깨에는 "부창주조장정' 이라는 명문이 음각어 있어 증정용 술을 담기위해 일부러 만든 술병임을 알 수 있다.
▲ 건축 재료로서의 옹기
옹기는 일반적인 생활용구 외에도 건축 재료로서 기와 연가 연통 및 수멍통 등에도 사용되고 있다.
기와는 암막새와 수막새 암키와 수키와 망와 등에 옹기유를 발라 구웠기 때문에 발색이 곱다.
암막새와 수막새는 지붕에 물이 흘러 안으로 역류하는 현상을 막아주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암키와와 수키와 끝을 막아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러한 옹기 기와는 생활가옥보다 제실이나 제각 효열각 등 제사나 기념물과 관련된 건물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 날 그릇 서리기
▲ 허벅
허벅은 험한길을 오갈 때 편리하게 등에지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항아리 이다.
장방형의 구덕에 담아 짊어지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제주지역에서만 쓰고있다.
▲ "대정" 명 술독
주판알과 같은 독특한 모양의 술병으로 몸체에
"第 號, 石數, 斗 昇, 大正, 年 月 日, 檢定" 이라는
명문을 손가락으로 그렸다.
▲ "소화" 명 술독
일제강점기에 사용된 막걸리를 담던 대형의 술독으로 몸체에
"第 號, 容量壹石五斗, 昭和, 年 月 日 檢定, 製造者"
라는 명문이 세로로 새겨져있다.
▲ "함라" 명 술독
익산시 함라 주조장에서 사용하던 술독이다.
몸체에 "함라" 라는 한글 명문이 세로로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주문 생산한 것으로 판단된다.
반대편에 제작자의 사인으로 보이는 영문이 있는 것이 이체롭다.
▲ 소주고리
소주고리를 가마솥 위에 걸쳐놓고 가열을 하면 기체화된 소주액이
반구형의 구멍을 통해 유입된 후 냉각되어 주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고안되었다.
▲ 개량형소주고리
대형의 증류기로 증발된 기체상태의 소주액을 윗구멍을 통해 주입시키면 냉각되어
아랫 구멍으로 소주액이 나오게 고안 되었다.
▲ 주구병
병의 바닥에 배출구가 있어 액체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도록 고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