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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개론 총회신학연구원 구 봉 환
들어가는 말
삼상(1 Samuel) 17장, “다윗의 다섯 물매 돌”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다
17:1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2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3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울의 진영에 나타난 다윗
12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13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
14 다윗은 막내라 장성한 세 사람은 사울을 따랐고
15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16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17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18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19 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20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21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이 전열을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더라
22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25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27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이르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29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30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31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다
41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3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브루그만은 그의 구약개론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정경적 접근만의 강조는 억압으로 나아가게 하는 위험을 가져오고 다른 한편으로, 창의적 유희 자체에 대한 강조는 본문을 교회의 사명에서 차지하는 중대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위험이 있다. 내 판단으로는 정경적인 것과 창의적인 것이 서로 공유되는 접근이야말로 가장 책임 있고 신실한 해석이 일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나는 성경을 규범적인 것으로 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목회자들과 교인들 가운데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Thus, on the one hand, the danger of the canonical by itself is in the direction of repression; the danger of the imaginatively playful by itself, on the other hand, is to dissolve the text away from the gravitas of mission. It is my judgment that the interface between the canonical and the imaginative is exactly the way in which the most responsible and faithful interpretation takes place. I expect, moreover, that that is exactly how it is done among pastors and among congregations that take the Bible as the normative and as the live Word of God.
이러한 예를 잘 보여주는 본문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기록한 사무엘상 17장을 설명하고자 한다. 본문을 보면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의 핵심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비이다. 또는 다윗과 사울왕, 혹은 그의 신하들과의 대비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과 세상, 믿음의 방법과 세속적 방법의 대비이기도 하다.
베르겐은 그의 NAC 주석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골리앗에 대항하기 위해 다윗이 선택한 무기들은 - 막대기와 돌 - 인간의 기교로 만든 물품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형성하신 것들이다. 이처럼 저자는 삼상 13:19-22에 대한 대조 구절로서 이러한 세부적인 내용을 포함한 것 같다; 팔레스틴(블레셋) 사람들은 사람이 만든 무기를 두려워하고 의존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무기로 그들을 정복했다. 이런 보급품을 가지고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나아갔다."
"The weapons David gathered for use against Goliath—the stick and the stones—were not products of human artifice; rather, they were shaped by God. As such, the author may have included these details as a counterpoint to 13:19–22; the Philistines feared and relied on weapons pulled from human forges, but David would conquer them with divinely manufactured weapons. Armed with these provisions, David “approached the Philistin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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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ergen, Robert D. 1996. 1, 2 Samuel, vol.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3: 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삼상 13:19-22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놋(청동)과 철을 다룰 수 있는 기술자가 없었다고 한다. 놋이나 철제 농기구가 있기는 했지만 이의 관리를 위해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부탁했었다고 한다. 더구나 금속제 무기와 갑옷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금속 무기로 무장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제공하지 않았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는 17장의 장면에서도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그저 농기구로 무장했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만이 손에 창과 칼을 쥐었다고 본문은 말한다.
삼상 17:4-7에 보면 골리앗의 용모와 무장에 대해 적고 있다. 그의 신장은 6규빗 한 뼘이었는데, 한 규빗이 약 45.6cm 이므로 거의 3m에 육박한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그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었다고 한다. 이는 약 65kg에 해당한다. 다리에 놋 각반을 찼고 어깨에 멘 창의 날은 철 육백 세겔(약 8kg)이었다. 이에 반해 다윗은 39-40절에 보면 사울 왕이 제공한 투구와 갑옷과 칼을 벗어 버리고 양을 치던 평상복에 막대기와 물매와 돌 다섯 개를 가지고 나간다. 사울이 제공한 금속 무장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들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익숙하다'는 말은 원어로 니싸(נִסָּ֣ה)인데 그 뜻은 '시도하다, 입증하다' 이다. 그가 평소 입던 옷과 사용하던 막대기, 그리고 물매는 사자나 곰과 싸울 때 그 위력이 입증된 것이라는 의미다. 이 구절에서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시사점은 믿음에 유익한 것이라고 입증되지 않은 것은 아무리 최신의 강력하고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세속 문명의 화려함과 첨단으로부터 온 것인지 구별하는 것이다.
한편, 일부 주석가들은 물매 돌의 수가 다섯 개인 것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 본문은 믿음과 세속의 대비와 대결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다섯 개라는 것이 지니는 특별한 의미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예수전도단의 이지웅 목사가 쓴 "말씀을 읽다"라는 책에 보면 그가 중학생 때 참석했던 부흥회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이 책 p.17 이하에 보면 당시 부흥강사는 설교 중에 다섯 개의 돌이 상징하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 은사, 능력이라고 했다고 한다.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이 다섯가지를 잘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하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비유적이어서 설득력이 없고, 이에 대한 바른 이해는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배경과 문화를 통해 살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윗이 꼭 집어 다섯 개의 돌을 준비한 이유는 블레셋 집단을 구성하는 다섯 족속을 의미하며 이들 모두를 정복할 의도가 있어서 다섯 개의 돌을 취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입증된 가설은 없다. 아래에 소개하는 Chandler Vinsond의 블로그에 보면 (trivialdevotion.blogspot.com/2014/08/five-smooth-stones-i-samuel-1740.html) 이에 대한 여러 설명들을 볼 수 있다.
어거스틴은 이 다섯을 모세 오경에 비유했고, 다윗이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골리앗은 사탄의 예표라고 했다. 또 골리앗과 그의 네 아들이라는 설명도 있고,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와 목사, 그리고 교사라는 목회의 5중직을 나타낸다는 해석도 있다. 그 외에도 다윗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견해와 반대로 하나면 충분한데 다섯 개나 준비시키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라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백한 이해는 다윗이 평소에 하던 대로 사자와 곰과 싸울 때 지녔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행동했고, 그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대로 취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자신에게 있는 것 전부를 드리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오병이어의 한 소년의 도시락(요 6:9)이 그랬고, 밤새 수고했으나 텅 빈 그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그물을 내린 시몬(눅 5:5)이 그랬다. 다윗이 돌을 준비할 때 다섯 개가 있었고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으며, 다섯 개로 충분할지 아니면 모자랄지 다윗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투의 승패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지 돌멩이의 개수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돌멩이 다섯 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돌멩이의 개수를 가지고 논하고 있다. 모이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안 모이는 것이 맞는지 혼란스러워한다. 교회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외면해야 하는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항변해야 하는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여년을 뒤돌아보라. 드러날 것은 드러났고 밝혀질 것은 밝혀졌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여전히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 세상의 인식과 태도와 무관하게 하나님은 성도들을 보호하신다. 이 모든 일을 다 보고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며 순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는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 어떤 명분과 목적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시편에서도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지켜보고 계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시 10:12
쿰마 아도나이,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엘 네싸 야데카, 하니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알 티쉬카 아니임,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2 | קוּמָ֤ה | יְהוָ֗ה | אֵ֭ל | נְשָׂ֣א | יָדֶ֑ךָ | אַל־תִּשְׁכַּ֥ח | |||||||
קום | יהוה | אֵל | נשׂא | יָד · אַתָּה | אַל · שׁכח | ||||||||
rise up · [obj] | Yahweh | God | lift up | hand · you | not · forget | ||||||||
rise up | Yahweh | God | lift up | hand · your | not · you must forget | ||||||||
VaM2MS--H | NPMSA | NC-SA | VaM2MS | NC-SC · RS2MS | G · VaI2MS-J |
עֲנִיִּים׃ | ק | |
עָנִי | ||
oppressed | ||
[the] oppressed | ||
JMPA |
Van der Merwe, Christo, 2004, The Lexham Hebrew-English Interlinear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시편 10:12에서 시인은 외치고 있다. 개역개정의 본문과 달리 시인의 간절한 외침을 반영하면 아래와 같다.
일어나주세요, 여호와여; 하나님~, 손을 들어주세요; 잊지 말아주세요, 가난한 자들을!
이 외침은 마태복음 8장 24-5의 제자들의 외침과 닮아 있다.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지만 생생하게 묘사하기로 유명한 마가는 4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구약에서 시인(아마 다윗)의 하나님은 필요한 경우에만 나타나(현현하)셨다. 그래서 아도나이(주님)께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주무시는 줄 생각했다. 그때 위기와 환난이 왔다. 주무시는 주님은 이 상황을 모르시는 게 확실하다고 여겨졌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께 외치는 것뿐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현현하셨다. 함께 배를 타고 항해 중이시다. 그때 광풍이 불고 물결이 출렁인다. 배가 심하게 요동치고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님이 옆에 계시지만 그래서 눈에도 보이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주무신다. 그러니 주님을 깨우려고 외칠 수밖에 없다.
도 요한은 요한복음 4장에서 다음과 같이 주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여기서 놀라운 것은 다윗은 이미 이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시편 10:14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이 고백을 요한 사도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벌써부터’는 하나님께서 이미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도와오고 계셨다는 의미의 완료시제의 용법을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다. 다윗에게 이 말씀은 양을 칠 때 사자의 입으로부터 자신과 양을 보호하신 하나님, 골리앗과 싸울 때 도우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노래한 것이다. 요한 사도 역시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다윗의 고백도 알고 주님의 말씀도 알고 자신의 체험적 증거도 가지고 있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늘 가까이 두셨다. 주님의 동행은 그가 이 땅에 있는 동안 늘 함께 했다. 결코 그는 고아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요한복음 14장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더 말해준다.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제 들어가는 말의 결론을 말해야겠다. 우리는 이 일련의 성경 말씀에서 역사 속에서 개입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느낀다. 우리의 신앙이 결코 고아와 같은 성격의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나만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고 다윗도 그랬고 제자들도 그랬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믿음의 선조들은 평안을 느끼며 승리했던 것 또한 안다. 그들이 승리했으므로 나도 이길 것을 안다. 세상의 화려한 무기와 첨단 장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로 이길 것을 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를 그린 사무엘상 17장의 구약과 또 그 다윗이 노래한 시편의 기록, 그리고 신약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기록에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사실은 단순하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 된 성도를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또한 삶의 굴곡진 구비구비마다 눈물과 한숨으로 기도했던 성도들의 노래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을 때 느꼈던 감사와 감격의 찬송도 담겨있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만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백성들이 다양한 삶의 정황 속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상 1장 10-11절에 보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통곡하며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하며 기도한다. 그 기도의 내용이 오늘날 이 본문을 읽는 성도들에게는 그저 한나의 말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한나와 처지가 같은 자신을 발견하고 그 한나의 말이 곧 나에게는 엄청난 삶의 변화를 초래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1958년부터 지금까지 시편을 가르쳐 온 브루스 왈트케 교수는 이와 같은 한나의 기도를 바로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에 반응했던 교회의 목소리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교회의 반응은 처음엔 인간의 소리였지만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고백과 간증은 곧 우리의 신앙을 정의하고 다듬어주는 세련된 음성, 곧 하나님의 영감이 어린 말씀이 된다.
따라서 구약개론이라는 과목명으로 공부할 때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구약을 읽을 때 그저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이고 기록 연대는 주전 1000년경이며 그 내용과 구조는 어떠하다”라는 식으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그 안에 내재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이 오늘을 사는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읽어야 한다. 그런 것을 발견하고 감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다양한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자는 다음의 책들을 주로 참고하여 이 강의안을 작성하려고 한다.
1. 구약성경의 정수: 창조, 정복, 유배, 그리고 귀환.
트렘퍼 롱맨 3세, 2016, 이종만 and 전희정, eds. 최광일, tran. 초판.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트렘퍼 롱맨 3세(Tremper Longman III, 1952년 9월 8일 - )는 신학자, 교수이며 지혜문학에 관련된 연구에 전문적인 복음주의 구약학자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예일 대학교에서 고대 근동 언어와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교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20여 년 동안 구약학을 가르쳤으며 풀러 신학교와 리젠트 칼리지 등 유수의 신학교에서 겸임 교수로 강의했다. 잠언, 전도서, 아가서, 다니엘서 등 주석을 집필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에 있는 웨스트몬트 칼리지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6년 한국개혁신학회 20주년 기념대회에서 주제 강사였다. 지은 책으로는 여러 주석 외에도 『손에 잡히는 구약 개론』 『어떻게 창세기를 읽을 것인가』, 『어떻게 잠언을 읽을 것인가』, 『어떻게 시편을 읽을 것인가』(이상 IVP),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이상 CLC), 『담대한 사랑」(이레서원) 등이 있다.
2. 구약의 키, 김성수, 2015년, 천안고신대 교수
김성수 교수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을 배우고,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칼빈신학대학원과 루터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 전공으로 신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2003-2009년)를 거쳐 현재는 고려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3. 성서 인물에게서 듣다: 구약, 이상명, 2013년
저자 이상명은 1963년 대구에서 출생. 계명대학교(B. S.)와 장로회신학대학교(M. Div.)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대학원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종교학부에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독일의 신학 전문 출판사인 Mohr Siebeck에서 《구원의 우주적 드라마: 인류학적, 우주론적 전망에서 바라본 바울서신 연구The Cosmic Drama of Salvation: A Study of Paul’s Undisputed Writings from Anthropological and Cosmological Perspectives》라는 제하로 출간되었다. 《Journal of Asian and Asian American Theology》의 편집을 맡고 있으며, 성서와 섹슈얼리티, 신약 시대의 교육paideia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현재 미주 지역에서 가장 큰 한인 교단인 해외한인장로회 총회 직영 신학교인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in America(캘리포니아 소재)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세계의 유수한 신학교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4. 하지만 개혁주의 장로교의 입장에서 바른 신학을 먼저 정립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포커스를 맞춘 교재로 먼저 공부해야 한다. 따라서 가장 1차적인 기본 교재로는 미국의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교수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성경신학적 구약개론”을 추천한다. 이 강의에서도 이 책을 주 교재로 사용할 것이다.
그 외에도 아래의 책들을 참고하면 좋다.
5. 트렘퍼 롱맨 3세 등, 구약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목회자에게 구약 연구의 목적은 설교에 있다면 구약 전 권에 걸쳐 각 책에 맞는 설교 전략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성경해석학과 주해의 문제로 확대되며 히브리어 성경의 독해를 위한 언어 수업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구약의 각 권별 주제와 특징, 그리고 설교적 접근 방법을 미리 알지 않으면 강단의 메시지에서 길을 잃기 쉽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4번과 5번의 책으로 먼저 공부한 후 나머지 책들을 읽으면 그 책들의 서술 방향과 신학적 입장 및 강조점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6. 브루그만, 구약개론
7. 브루그만 등, 신학의 렌즈로 본 구약개관
브루그만의 책들은 정경적 입장에서 서술되어 다소 어렵다.
8. 김근주, 구약의 숲, 하나님 나라로 읽는 구약 이야기
그는 서울대, 장신대, 옥스포드에서 수학했고 칠십인역 이사야서 연구로 옥스포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웨스트민스터에서 구약을 가르쳤다.
9. 양진일, 구약성경 책별로 만나다
그는 총신대와 숭실대에서 수학했다. 숭실대에서 성서학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말씀과 함께”라는 과정을 만들어 1년(기본) 혹은 2-3년(심화)에 걸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훑어보는 강좌에서 강의했다. 가장 쉬운 입문서이며 평신도용 교재로 사용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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