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퍼포먼스의 핵심이던 GTI에 내부 경쟁자가 나타났다. V6 엔진과 네바퀴굴림으로 무장한 R32가 그 주인공. Mk6은 4기통 터보 엔진으로 무게를 덜어내고 출력과 토크를 강화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놀라운 가속과 핸들링 성능을 선사하는 차. GTI가 핫해치계의 911이라면 이 차는 911 터보다.
지난 3월, <CAR>의 취재팀은 폭스바겐의 독일 볼프스부르크 본부에 있었다. 자동차 전문지로는 처음으로 Mk6 골프 GTI를 시승하기 위해서였다. 눈부신 Mk5를 잔잔하게 진화시킨 Mk6을 보고 우리는 ‘핫해치의 911’이라는 별명을 붙인 뒤, 돈으로 살 수 있는 사상 최고의 핫해치라며 그 차를 치하했다. 하지만 걸리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그 며칠 전 포드 포커스 RS를 몰아본 우리에게 GTI는 약간 심심했던 것. 알론소(스페인계의 F1 르노팀 에이스로, 2회 F1 챔피언에 오른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같은 RS에 비해 약간 지나치게 원만한 해밀턴(F1 맥라렌팀 에이스로 작년 F1 챔피언. 영국계 흑인 드라이버로 성격이 온건하다)형이랄까. 그래서 폭스바겐 관계자에게 슬며시 미끼를 던졌다. V6 엔진과 네바퀴굴림으로 무장한 R32 골프 R의 경쟁자는 바로 내부에 있다!
“나는 GTI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 한데 내가 좋아하는 코스에서 몰아붙이면 RS가 더 빠르단 말이야. 아, RS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야!”
“우리가 내놓을 차를 좀 더 기다려 보라구. 포커스 RS는 두렵지 않으니까.”폭스바겐 담당자가 입술을 깨물며 응수했다.
이후 조금씩 스펙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왔다. 4기통 터보, 약 260마력, R 배지, 2리터에 네바퀴굴림.
부족하나마 이것만으로도 <카>가 다가올 골프 R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충분했다. 이전의 골프 두 세대(Mk4와 Mk5)에 걸쳐 최강 모델은 GTI가 아니라 R이었다. 으레 네바퀴굴림 드라이브트레인과 감미로운 자연흡기 V6 3.2L를 자랑했다. 그에 앞선 VR6은 틈새시장의 력셔리 해치로 처음 선보였다. 그런데 이번에 나올 새차는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제일 가까운 차가 Mk2 랠리. 네바퀴굴림에 랠리를 겨냥한 특별판이었다. 콰트로형으로 부풀어오른 아치, 4기통과 터보를 갖춘 모델이었다. 새차가 R32보다 야성적일까? 아우디 S3의 복제형일까? 포커스 RS와 맞붙는다면 어떨까?
그로부터 다섯 달이 지난 8월, <카>는 삼엄한 경비를 받는 어느 창고에 들어갔다. 출입구에 이름이 적힌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심지어 폭스바겐 직원도 출입금지! 차는 절대로 밖에 나갈 수 없었다. 몰카에 잡혀 이태리 총리 베를루스코니의 섹스 비디오처럼 인터넷에 쫙 깔리면 곤란하니까.
우리 앞에 선 담청색 골프 R을 보고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폭스바겐답게 정교했지만, 결단코 GTI는 아니었다. 한층 뛰어나게 다듬은 공격적인 앞뒤 범퍼가 눈에 띄었다. 검은 광택 미러와 그릴, 좀 더 커진 뒷스포일러, 새로운 배기관이 달렸다.
LED 러닝램프는 도로에서 뒤따르는 차에 성난 트랜스포머 같은 인상을 쓰는 공격적인 LED 테일램프와 짝지었다. 차체가 GTI보다 20mm 낮아졌고 옵션인 19인치 합금휠(300파운드, 약 59만원. 기본형은 18인치)에 올라앉았다. 마치 네바퀴굴림이 좀 더 넓은 트레드를 요구한 듯 땅딸막하고 한층 폭이 넓다. 폭스바겐에 따르면 일종의 착시현상이란다. 차값은 2만7,000~2만8,000파운드(약 5,280~5,470만원), 세미오토는 약 1,300파운드(254만원)를 더 줘야 한다. 보디컬러는 파랑, 검정, 빨강, 실버, 회색의 다섯 가지가 마련되고, 변속기는 6단 수동 및 6단 DSG, 보디 스타일은 3도어와 5도어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영국에서 10월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해 내년 1월 고객에게 차를 인도한다고.
<CAR> 취재팀은 앙상한 스펙에 살을 입히기 위해 우리 앞에 놓인 골프 R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실내는 상당히 정교했다. 검은 광택과 알루미늄에 푸른 계기 바늘, 그리고 시트는 새로운 직물 센터가 옵션인 알칸타라 소재와 잘 어울렸다. 기본형은 GTI와 같은 시트가 달리며, 2,000파운드(391만원)를 더 주면 화려한 레카로 가죽 버킷시트를 고를 수 있다. 스테레오와 공조장치 터치스크린은 기본이고, 내비게이션은 옵션.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2.0L 엔진이다. Mk6 골프 GTI의 1,984cc EA888을 손질한 것이 아니라 한때 사라졌던 1,984cc EA113이 돌아온 것. 구형 MkV GTI에 얹었던 것과 같은 엔진이다. 출력을 좀 더 높여 아우디 S3에도 이 엔진을 얹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Mk5 골프 GTI에 비해 MK6는 피스톤과 캠샤프트, 분사장치를 비롯해 터보 및 인터쿨러를 새롭게 설계했다. 폭스바겐 인디비주얼(폭스바겐의 AMG 또는 M 디비전과 같다)의 책임자 라이너 만골트는“MK6은 S3 엔진과 거의 같은데, 가장 큰 변화는 추가 파워를 뽑아내기 위해 엔진 매니지먼트와 배기계통을 손질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다시 말해 신형 GTI 엔진을 튜닝하는 데 많은 연구개발 시간이 들어간 반면 S3은 이미 성능이 입증된 기존 부품을 사용해 폭스바겐 그룹의 경제적 이점을 한껏 살렸다. 이를 통해 개발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낮춘 것. 물론 모두가 기통감축을 좋아할 리는 없지만 메이커 입장에서는 다분히 그럴 수 있다. 폭스바겐은 그 문제를 R 브랜드로 피했다. R20이 기존의 R 엔진 사이즈 논리를 따랐다면 좋았겠지만, 다운사이징에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고 만골트는 말한다.
“4기통 R 엔진은 6기통 R32보다 35kg 가볍다. 토크는 2.9kg·m 더 강하고, 연료효율은 약 20% 올라간다. 수동식의 연비는 14.1km/L, CO₂ 배출량은 199g/km. DSG는 14.3km/L에 195g/km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R32의 11.0km/L과 257g/km보다 훨씬 개선됐다. 그리고 GTI의 16.5km/L와 170g/km와도 큰 차이가 없다. 만골트의 설명이 이어졌다.
“0→시속 100km 가속에 5.5초로 R32보다 거의 1초나 빠르다.” 2.0L의 사운드트랙은 분명 6기통만큼 무르익지 않았다. 그럼에도 만골트는 골프 R의 변론에 지칠 줄 몰랐다.
“아주 스포티하고 광폭하기까지 하다. 특히 DSG 기어박스를 달았을 때가 그렇다. 3.2L V6과는 소리가 다르지만 적어도 그에 비견할 만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할덱스 네바퀴굴림과 가로배치 엔진 레이아웃은 이전과 같다. 앞바퀴굴림으로 가다가 상황이 요구하면 잠시 뒤로 파워를 보낸다. 항상 뒷바퀴에 어느 정도 파워를 보내는 방식이 아니다. 아우디 RS6과 RS4의 세로 엔진/토센 센터 디퍼렌셜 세팅과는 다르다. 한데 267마력의 파워를 요리하는 것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다. 특히 앞으로 나올 시로코 R은 똑같은 엔진으로 261마력에 앞바퀴굴림뿐이라는 사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적어도 골프는 이번에 숨 쉴 여유를 찾았다. 사실 3도어 골프 GTI와 대등한 시로코 GT 사이에는 중복과 혼란이 있었다. 시로코가 거의 같은 출력, 같은 파워트레인이면서 보다 날씬하고 값이 쌌기 때문. 따라서 R 전략이 메시지 전달에 한층 뛰어나다. 시로코는 앞으로 앞바퀴굴림을 지킨다. 4WD 버전의 예상 수요가 적기 때문. 아울러 패키지(시로코의 리어 액슬은 골프가 아니라 파사트에서 가져왔다)와 모델 차별화도 원인이 됐다. 시로코 R은 출력과 값이 약간 떨어지고, 이오스 바탕의 대시보드가 골프만큼 호화롭지 않을뿐더러 소음처리가 뒤진다. 따라서 시로코는 보다 날이 서고 미숙하다. 반면 골프는 한층 세련되고 아늑하며 합리적이다. 만골트의 말이 이어졌다.
“디자인만이 아니라 운전경험에도 컨셉트가 다른 두 가지 스포츠카를 내놓고 싶었다. 시로코 R은 더 가볍고(각각 1,333kg과 1,399kg, 앞바퀴굴림과 XDS(전자 디퍼렌셜)를 갖춰 좀 더 민첩하다. 골프 R은 네바퀴굴림과 우월한 파워로 한층 놀라운 가속력을 선사한다.”
따라서 골프 R은 아우디 S3의 영토로 들어가고, 아우디는 5기통 RS3으로 올라가 선두주자의 자리를 지킨다. 시로코 R이 포커스 RS와 맞붙는다. 결국 골프 R은 폭스바겐 그룹 안에서 라이벌을 찾을 수밖에 없다.
GTI의 경우처럼 3단계 적응형 댐퍼가 들어온다. 컴포트, 노멀과 스포트가 그것으로, 3단계 모두 한스 요하임 슈툭(1986년과 1987년 르망 24시간에서 우승한 독일 드라이버)이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퍼에서 테스트하며 R 섀시에 딱 들어맞게 특별히 조율했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이 차는 여전히 럭셔리카라는 우리 생각을 뒷받침했다. R32보다 세련되고, 스포트 단계에서 골프 GTI보다 딱딱하지 않다. 아울러 3개 세팅은 스티어링에 영향을 준다. 서스펜션이 약간 부드럽지만, 스포트 모드에서 스티어링은 GTI의 그것보다 눈에 띄게 무겁다. 한편 앞 345mm와 뒤 310mm 디스크 브레이크도 한층 근육질이다.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뜻깊은 차를 빚어냈다.
R의 틀에서 급진적으로 이탈하던 가장 뜨거운 골프가 돌연 훈훈하게 친숙한 느낌을 준다. 윤택, 고속, 전천후 능력과 안락성. 훨씬 가볍고 능률적이며 시대조류에 잘 맞는 패키지에 R32의 장점을 듬뿍 담았다. 골프 GTI가 핫해치의 911이라면 골프 R은 911 터보다.
SPECIFICATIONS
VW GOLF R
값 약 27,000~28,000파운드(5,200~5,400만원)
엔진 직렬 4기통 1984cc 16밸브
최고출력 267마력/6100rpm
최대토크 35.7kgm/2500-5000rpm
변속기 6단 듀얼 클러치 반자동 혹은 수동
굴림방식 앞 엔진 네바퀴굴림
서스펜션 앞/뒤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 링크
무게/섀시 약 1399kg/스틸
길이×너비×높이 4213×1799×1469mm
0→시속 100km 가속 5.5초
최고시속 248km(리미트)
연비 14.4km/L
CO2 배출량 199g/km
첫댓글 아우디의 신형2.0TFSI가 265마력으로 나오면서 R32의 의미는 더욱 좁아졌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출력으로 라인업을 짜는건 아니지만 R32만의 아이덴티티를 위해서는 과급기튠을한 3.2L엔진을 올리거나 아우디가 꾸준히 사용중인 4.2L 엔진을 올리는게 맞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TFSI 참 부러운기술 같습니다^^